자체 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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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1.1. 우회
2. 예외
3. 비판 시도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Self-censorship

창작자가 창작할 때 스스로 수위를 정한 것.

세상에는 검열 말고도 창작을 제한하는 요소가 많다. 하지만 당시 사회 분위기와 여론을 우려해서 적당히 타협하는 경우도 있다. 또는 작가도 결국 보통 인간이어서 인간적으로 하거나 또는 흥행을 우려해서나 특정 단체의 압박이나 걱정 때문에 그런 경우도 있다.

하지만 가장 유명한 자체 심의는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으로, 인쇄업자가 읽고 불경하다면서 불태웠다.

  • 사회적으로 터부시되는 걸 묘사
  • 또는 그런 걸 찬미, 정당화하는 것. 가령 《수라의 문》에서 주인공살인을 정당화하는 것

에페보필리아처럼 여고생남고생성관계하고픈 욕망. 서양에서는 이런 걸 아동 포르노라며 금기시하기 때문에, 예술작품이나 2차원적으로 드러내도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물론 데이비드 해밀턴이나 유년의 사랑 같은 예술성 때문인지 예외이다.

그 외에도 후술하겠지만 특정한 인종, 국가, 지역 등에 대한 비하요소나 차별요소와 같이 정치적 올바름을 어기는 행위 역시 서양에서는 금기시되기 때문에, 이런 행위를 예술작품이나 2차원적으로 드러내도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된다.

하지만 그걸 하는 사람을 응징하거나 죽게 만들거나, 악당으로 묘사하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특히 하드보일드 소설에서 많이 나온다.

  • 임산부, 어린이, 여성, 노인, 환자, 비무장의 항복하는 (물론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 무고한 사람에게 누명 씌우고 살해. - 일단 나오면 불쾌하다. 그리고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죽지 않으면 찝찝하다. 게다가 이런 걸 찬미하면 문제다. 예를 들면 임산부를 통쾌하게 살해한다고 생각해보자. 끔찍하다. 통쾌하게 어떻게 묘사하는것도 문제인데 클로즈업이나 약간 기울어진 각도나 집중선을 많이 넣어서 박력넘치는 묘사를 넣고 폼나고 그럴듯한 대사를 넣으면 통쾌하고 카타르시스가 느껴진다. 대상이 대상이면 문제지만.

  • 강간 - 주인공이든 악당이든 이걸 넣으면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특히 메이저라면 사회에서 지탄받는다. 이런 걸 하는 악당이 결국 죽어도 욕먹는다. 그래도 서구의 하드보일드 소설에는 자주 나오지만 끝은 좋지 않다.

  • 소아성애, 수간, 근친상간, BDSM, 난교, 스카톨로지 등의 사회적으로 금기시되는 성적 행위를 상세히 묘사 . - 호불호가 갈리는 것을 넘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조건적으로 혐오하는 주제들이다. 소아성애는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법이며, 근친상간, 수간의 경우도 상당 수의 국가에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상세히 묘사하는 것 만으로도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된다. 조장의 우려가 있기 때문.

  • 마약이나 미성년자의 , 담배 사용을 미화. - 술이나 담배의 경우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규제하고 있는 산업이다. 그나마 성인의 음주나 흡연의 경우에는 사회적 규제가 있을지라도 금기시되지는 않지만, 미성년자의 음주나 흡연의 경우에는 모방 우려가 있기 때문에 금기시되고 있다. 마약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불법으로 취급하고 있다. 마약 사용을 미화한다는 것 자체로 큰 비판의 대상이 되며 특히나 주인공 급 되는 인물이 마약을 하고 강간이나 살인 등을 하는 걸 미화하면 모방 우려 때문에 더더욱 문제가 된다.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마약하는 모습을 묘사하는 것조차 미성년자의 모방 우려 때문에 규제하고 있다.

  • 기절놀이 등의 위험한 장난이나 살인, 불법촬영 등의 범죄행위를 상세히 묘사 - 범죄 조장의 우려가 있으며, 특히나 미성년자들이 재미로 따라하다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 자살, 자해를 미화하거나 상세히 묘사 - 역시 모방과 조장 우려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 범죄자 찬양 - 범죄 조장과 선동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 명예훼손 - 실존하는 사람, 고인, 국가, 단체, 기업, 종교를 대놓고 비하하거나 유언비어를 퍼트리는 것 역시 선동의 우려가 있다. 또한 국가마다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국가에서 법으로 금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 비하차별 - 범죄자(이것도 언론플레이의 비호를 받는다면 예외)가 아니라 특정 인종, 국가, 지역, 그 외 기타 등등에 대한 비하요소나 차별요소가 있는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정치적 올바름을 어기는 가장 대표적인 예시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 물론 정의로운 주인공이 응징하면 통쾌함을 느낄 수도 있지만 결국 나오면 해당 관련 인물은 불쾌해지며 역시 사회적 문제가 된다. 이 역시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을 선동할 우려가 있다.

1.1. 우회[편집]


나오긴 하되 파멸한다. 또는 악당으로 묘사한다. 그러니까 알기쉽게 설명하자면 인종차별 시대에는 KKK가 영웅으로 묘사되었다. 현대 인종평등 시대에는 KKK가 악당이다 라고 할 수 있다.


2. 예외[편집]


  • 소돔 120일 -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 감독의 영화의 원작소설. 심의? 그런 거 없다. 사드후작이 심의 그런 거 적용이 안되는 시대 사람이다.
  • 판토마 - 좋은 점은 눈꼽만큼도 없고 악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사악한 주인공. 역자 성귀수도 대놓고 다른 안티 히어로들은 아무리 사악해도 시대의 한계 때문에 타협해야했지만 얘는 그런 거 없다고 했다. (판토마스 1권 역자 해설에서 나온다)


3. 비판 시도[편집]


검열이란 정부 기관이나 영진위, 기윤실, 유림 따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검열은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이미 존재하며, 자기 검열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검열이다. 글 쓰는 사람이 조건반사처럼 글을 쓰면서, 심지어 혼자 생각에 잠겨 있을 때조차 스스로의 글과 생각을 제한해야 한다면, 거기엔 실질적인 검열이 없더라도 언론 자유가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가령 불평은 있지만 검열 때문에 불평을 말할 수 없는 오웰의 『1984』보다 불평 자체를 느끼지도 못하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가 더 끔찍한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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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 9월 20일 김수영의 일기

자체 심의는 창작자가 다양한 사유로 인해서 스스로의 표현의 자유를 자발적으로 어느 정도 포기하는 현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 때문에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추구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자체 심의 역시 검열의 일환이라고 보아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자체 심의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리고 시인 김수영은 자기 검열이 가장 무서운 검열이라고 평가했다.

정치적 올바름 관련 이슈가 사회적 화두가 되고 있는 영미권 등의 서양권에서는 정치적 올바름을 의식함으로서 발생되는 창작자 스스로에 의한 자체 심의가 지나치게 과도해진 끝에 오히려 정부에 의한 공식적인 차원의 검열 이상으로 지나친 검열을 발생시키고 있다는 논란이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한편 이와는 반대로 정치적 올바름을 거의 의식하지 않는 국가일본[1]의 경우에는 '작가 3원칙'으로 대표되는 이러한 자체 심의를 창작자들이 대놓고 무시해서 국제적인 논란을 초래하는 경우가 잦다. 이에 대해선 작가 3원칙 문서 및 극우 미디어물/일본 문서 등을 참고할 것.

또한 자체 심의에 대한 비판이나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 또는 정치적 올바름을 과도하게 내세우며 창작자들이나 대중에게 자체 심의나 검열을 강요하는 SJW(PC충)에 대한 비판을 담기 위해서 일부러 의도적으로 자체 심의를 대놓고 무시하는 창작자들 역시 현대에는 생각보다 적지 않기도 하다. 이렇게 자체 심의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가지는 창작자들은 주로 현대 일본의 예술계에 많이 분포하는 경향이 있지만, 정치적 올바름 관련 이슈(특히 정치적 올바름을 과도하게 내세우는 SJW(PC충)가 일으키는 여러 사건사고들)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현대 서양권의 예술계에서도 어느 정도 존재하고 있기도 하다. 자체 심의라는 개념을 비판하는 창작자들은 사실상 세계 어디에서나 존재한다. 특히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추구하는 과정에서 자체 심의를 대놓고 무시하는 행보를 보이게 된 창작자들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을 지경.

또한 창작자만이 아니라 소비자에 의해서 자체 심의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경우도 있다. 자체 심의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한 비판이나, 자체 심의와 연동되곤 하는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비판, 창작자들이나 대중에게 자체 심의나 검열을 강요하는 SJW(PC충)에 대한 비판을 실시하는 소비자들은 세계 어디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기도 하다. 정치적 올바름 관련 이슈로 골머리를 앓는 서양이나 정치적 올바름 자체를 무시하는 일본 등지는 물론이고, 당장 대한민국에서도 상기한 이유로 인해서 자체 심의라는 개념을 비판하는 소비자들은 흔하다. 표현의 자유를 극도로 추구하기 위해서 자체 심의를 대놓고 무시하는 행보를 보이는 창작자들이 현대 사회에서 하나의 세력으로서 존재할 수 있고 이들이 상업적 성과를 올릴 수 있는 것도 이렇게 자체 심의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소비자들의 응원과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기도 하다. 모름지기 공급은 수요에 따르는 법이니까.

사실 자기 검열이라고 보아도 손색이 없다.


4.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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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좀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일본정치적 올바름이란 개념 자체가 없는 국가에 가깝다. 다소 극단적인 예시이긴 하지만 극우혐한분자들에게 점령당한 일본어 위키백과니코니코 대백과의 사례를 봐도 이를 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