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카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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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1대 교황이자 성인. 축일은 3월 15일.
현재까지 최후의 그리스계 교황[1] 으로, 자카리아 교황 사망 이후 1273년이 지나도록 그리스계 교황은 나오지 않고 있다.
동로마 제국령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741년 12월 3일 그레고리오 3세의 후임으로 즉위했으며 동로마 제국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았고[2] 교양과 학식을 겸비하여 로마 시민들로부터도 그런대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동로마 제국이 이때부터 라벤나에 대한 영향력을 영구히 상실하면서 자카리아는 자신의 선출 소식을 황제에게 보고하고 선출 승인 통보를 받는 마지막 교황이 되었다.
자카리아 교황은 랑고바르드 왕국의 압력에 맞서 저항하며 프랑크 왕국과 관계를 개선하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끈질긴 담판으로 랑고바르드 왕국이 점령했던 교황령을 반환받고, 20년 간의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도 했으며, 라벤나도 반환받는 데 성공했다. 이를 미루어 보면 지식과 교양만이 아니라 인내심과 정치력도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크 왕국의 궁재 피피누스 3세가 역성혁명을 일으키기 전에 자카리아에게 답정너식의 서신을 보냈는데 눈치 빠른 자카리아는 바로 피핀의 속뜻을 눈치채고, 피핀을 왕으로 인정해주었다. 이에 이미 쿠데타 준비를 해놓은 피핀은 교황을 등에 엎고 손쉽게 킬데리크 3세를 폐위시켜 메로베우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카롤루스 왕조를 개창하였다.[3]
약 10년 동안 재임한 자카리아 교황은 752년 3월 15일 사망했다. 사후 시성됐으며 재위기간은 10년 3개월 12일에 달하였다.
1. 개요 [편집]
제91대 교황이자 성인. 축일은 3월 15일.
현재까지 최후의 그리스계 교황[1] 으로, 자카리아 교황 사망 이후 1273년이 지나도록 그리스계 교황은 나오지 않고 있다.
2. 생애[편집]
동로마 제국령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에서 태어난 그는 741년 12월 3일 그레고리오 3세의 후임으로 즉위했으며 동로마 제국으로부터도 지지를 받았고[2] 교양과 학식을 겸비하여 로마 시민들로부터도 그런대로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동로마 제국이 이때부터 라벤나에 대한 영향력을 영구히 상실하면서 자카리아는 자신의 선출 소식을 황제에게 보고하고 선출 승인 통보를 받는 마지막 교황이 되었다.
자카리아 교황은 랑고바르드 왕국의 압력에 맞서 저항하며 프랑크 왕국과 관계를 개선하는데 심혈을 기울였고, 끈질긴 담판으로 랑고바르드 왕국이 점령했던 교황령을 반환받고, 20년 간의 평화협정을 체결하기도 했으며, 라벤나도 반환받는 데 성공했다. 이를 미루어 보면 지식과 교양만이 아니라 인내심과 정치력도 상당했다고 볼 수 있다.
프랑크 왕국의 궁재 피피누스 3세가 역성혁명을 일으키기 전에 자카리아에게 답정너식의 서신을 보냈는데 눈치 빠른 자카리아는 바로 피핀의 속뜻을 눈치채고, 피핀을 왕으로 인정해주었다. 이에 이미 쿠데타 준비를 해놓은 피핀은 교황을 등에 엎고 손쉽게 킬데리크 3세를 폐위시켜 메로베우스 왕조를 멸망시키고 카롤루스 왕조를 개창하였다.[3]
약 10년 동안 재임한 자카리아 교황은 752년 3월 15일 사망했다. 사후 시성됐으며 재위기간은 10년 3개월 12일에 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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