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오디아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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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오디아르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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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칸 영화제
파일:칸 영화제 로고.svg
황금종려상
제67회
(2014년)


제68회
(2015년)


제69회
(2016년)

누리 빌게 제일란
(윈터 슬립)

자크 오디아르
(디판)


켄 로치
(나, 다니엘 블레이크)
그랑프리
제61회
(2008년)


제62회
(2009년)


제63회
(2010년)

마테오 가로네
(고모라)

자크 오디아르
(예언자)


그자비에 보부아
(신과 인간)
각본상
제48회
(1995년)


제49회
(1996년)


제50회
(1997년)

수상자 없음

자크 오디아르, 알랭 르 앙리
(위선적 영웅)

제임스 샤머스
(아이스 스톰)




파일:external/www.newscani.com/109653_88322_4523.jpg

1. 개요
2. 소개
3. 필모그래피


1. 개요[편집]


Jacques Audiard

1952년 4월 30일 생의 프랑스 영화 감독. 각본가이자 영화 감독으로 유명했던 미셸 오디아르[1]의 아들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감독에 뜻을 두고 있었던 게 아니라 1980년대에는 주로 각본으로 활동했다. 본격적으로 감독을 데뷔하게 된 계기는 1994년 <그들이 어떻게 추락하는지 보아라>부터. 이때가 41세로 상당히 늦게 데뷔한 편이다. 다음 작인 <위선적 영웅>으로 칸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수상하는 등 데뷔 초부터 나름 주목을 받으며 시작했다.


2. 소개[편집]


주로 범죄/느와르 장르의 상당히 거친 영화를 만들며, 시적이고 몽환적인 연출과 이민자와 교육이라는 소재를 많이 쓴다. 삽입곡을 사용한 연출도 능한 편.

<예언자>란 영화로는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했고 최근에는 <디판> 으로 심사위원이었던 코엔 형제에게서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다.[2] 그의 말로는 '내가 상을 받을 줄 몰랐다' 고.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번에 나온 그의 작품이 수준 이하라고 발언하면서 많은 논란이 되고 있다.[3]

갓 데뷔해 경력을 쌓던 영화음악가 알렉상드르 데스플라를 발굴한 감독이기도 하다. 한땐 데이비드 크로넨버그하워드 쇼어 급의 소울메이트로 유명했지만 <디판>에는 참여하지 않았다가, 2018년에 개봉되는 <시스터스 브라더즈>에서 다시 호흡을 맞추게 되었다.

자식이 세 명이며, 이혼 후 그,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 감독 레베카 즐로토브스키랑 사귀었다고 한다. 해당 영화 역시 즐로토브스키가 사귀었을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

3. 필모그래피[편집]



연도
제목
역할
비고
연출
각본
제작
기타
1981
프로페셔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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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
데들리 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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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영광의 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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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
아기의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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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
그들이 어떻게 추락하는지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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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데뷔작
1996
위선적 영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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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칸 영화제 각본상 수상작
2001
내 마음을 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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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내 심장이 건너뛴 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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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예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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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칸 영화제 그랑프리(심사위원 대상) 수상작
2009
아임 글래드 댓 마이 마더 이즈 얼라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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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제작
2012
러스트 앤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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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칸 영화제 경쟁 초청작
2012
꿈꾸는 자들





2015
디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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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2018
시스터스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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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 은사자상 수상작
2021
파리, 13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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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칸 영화제 경쟁 초청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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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랑스 영화사에 굵직한 작품을 여럿 남겼으며, 대표작으로 지하실의 멜로디데들리 런이 있다.[2] 심사위원 대상과 달리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은 영화제 주최 측의 입김이 많이 작용한다.[3] 디판은 난민 문제를 다룬 영화인데, 당시에 유럽 전체는 난민 문제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던 시기였다. 칸 영화제는 동시기에 강한 시사성을 가진 작품에 관대한 편인데, 이번에도 그런 케이스에 해당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