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센알텐부르크 공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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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센알텐부르크 공국
Herzogtum Sachsen-Altenburg

파일:작센알텐부르크 공국 국기.svg
파일:작센알텐부르크 공국 국장.png
국기
국장
위치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00px-German_Empire_-_Saxe_Altenburg_%281871%29.svg.png
1826년 ~ 1918년
역사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작센바이마르 공국
바이마르 공화국
지리
위치
독일 튀링겐
수도
알텐부르크
인문환경
언어
독일어
종교
루터파 개신교, 가톨릭
민족
독일인
정치
정치체제
입헌군주제
국가원수
공작
1. 개요
2. 역사
3. 왕사(王史)



1. 개요[편집]


북독일 연방독일 제국을 구성했던 공국이었으며 수도는 알텐부르크[1]였다.

1905년 기준으로 면적 1,323 km², 인구 20만 7천 가량이었다.

2. 역사[편집]


파일:Schloss_Altenburg_02.jpg
공가가 거처했던 알텐부르크 성

오늘날 튀링겐 지역에 위치한다. 전기(前期) 작센알텐부르크 공국이 17세기에 있기도 했으나, 곧 다시 해체되었고,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국이 다스렸다. 그러나 1826년 베틴 가문 에른스트 계통의 영지가 재편되면서 다시 탄생했는데 정작 군주인 프리드리히 공은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공국의 군주였다.[2] 이후 북독일 연방을 거쳐 독일 제국에 가입했다.

1918년 독일 제국이 붕괴하면서 작센알텐부르크 자유주가 되었다가 1920년에 튀링겐으로 편입되었다.

3. 왕사(王史)[편집]




  • 프리드리히 (1826~1834) - 재편 이전에는 작센힐드부르크하우젠 공국의 군주였다.[3]
  • 요제프 (1834-1848) - 딸만 다섯을 두어 1848년 혁명으로 퇴위했을 때 후계는 동생이 이었다.[4]
  • 게오르크 (1848-1853)
  • 에른스트 1세 (1853-1908) - 55년간 즉위했으나 아들이 태어난 지 얼마 안 가 죽어서, 후계는 조카가 이었다.
  • 에른스트 2세(작센알텐부르크) (1908-1918)

에른스트 2세는 1918년 퇴위한 독일 제후들 가운데 최후까지 생존한 군주였으며(1955년 사망), 고향을 떠나기를 싫어하여 유일하게 동독 치하에서 살았다. 그가 살던 성은 소련군이 들어와 몰수했지만 거주는 허락해주었다고 한다. 그의 두 아들[5]들이 모두 미혼으로 사망하여 1991년에 가계 단절.[6] 이후 이 가문에 대한 권리는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가가 보유한다고 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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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810년경 고안된 스카트(skat, 3명이서 하는 카드놀이)의 발상지이다.[2] 작센고타알텐부르크 공가가 단절되어 그 영지를 분할할 때, 작센힐트부르크하우젠 공가가 알텐부르크를 얻고 기존 영지인 힐트부르크하우젠을 작센마이닝겐 공국에 넘기면서 작센알텐부르크 공국이 성립되었다.[3] 바이에른 국왕 루트비히 1세의 장인이다. 4녀 테레제가 루트비히 1세의 왕비다. 또한 5녀 루이제는 룩셈부르크 대공 아돌프의 어머니이다.[4] 장녀 마리는 하노버 왕국의 마지막 국왕 게오르크 5세의 왕비, 4녀 엘리자베트는 올덴부르크 대공국 페터 2세의 대공비, 5녀 알렉산드라는 콘스탄틴 니콜라예비치 대공의 부인이자 그리스의 올가 왕비의 어머니이다.[5] 아버지와 달리 이들은 서독에서 살았다. 이산가족[6] 남계가 아닌 여계로는 빌헬름 2세의 동생 하인리히 왕자의 차남 지기스문트와 결혼한 에른스트 2세의 장녀 샤를로테의 후손이 아직 남아있고, 더 윗대에서 갈라져나온 여계후손도 여럿 있다.[7] 허나 이 가문도 곧 남계가 단절되고 단절 후 명목상의 공위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로 넘어갈 전망이기 때문에,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가마저 단절된 후에는 작센알텐부르크 가문에 대한 권리도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로 함께 넘어갈 것으로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