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 요구자/유럽/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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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등재 기준
3.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
3.1. 국가
3.1.1. 독일 황제
3.1.2. 라인 동맹 보호자
3.2.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3.2.1. 리페 공작
3.2.2. 베르크 대공
3.2.3. 베스트팔렌 국왕
3.2.4. 잘름 공작
3.3. 니더작센 주
3.3.1.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3.3.2. 샤움부르크리페 공작
3.3.3. 올덴부르크 대공
3.3.4. 하노버 국왕
3.4. 라인란트팔츠 주
3.4.1. 아렌베르크 공작
3.4.2. 이젠부르크 공작
3.4.3. 비트노이비트 공작
3.5.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
3.5.1.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3.5.2.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3.6.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3.6.1. 라이닝겐 공작
3.6.2. 라이엔 공작
3.6.3. 바덴 대공
3.6.4. 뷔르템베르크 국왕
3.6.5. 우라흐 공작
3.6.6.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작
3.6.7. 호엔촐레른-헤힝겐 공작
3.7. 바이에른 자유주
3.7.1. 바이에른 국왕
3.7.2. 뷔르츠부르크 대공
3.8. 브란덴부르크 주
3.8.1.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3.8.2. 프로이센 국왕
3.9.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
3.9.1.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
3.9.2.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
3.9.3.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3.10. 작센 자유주
3.10.1. 작센 국왕
3.11. 작센안할트 주
3.11.1. 안할트 공작
3.12. 튀링겐 자유주
3.12.1. 로이스게라 공작
3.12.2. 로이스그라이츠 공작
3.12.3.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작
3.12.4.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작
3.12.5. 작센마이닝겐 공작
3.12.6.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3.12.7.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3.12.8.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3.13. 헤센 주
3.13.1. 나사우 공작
3.13.2. 발데크피르몬트 공작
3.13.3. 졸름스빌덴펠스 백작
3.13.4. 프랑크푸르트 대공
3.13.5. 헤센 대공
3.13.6. 헤센카셀 선제후


1. 개요[편집]


독일작위 요구자를 다루는 문서.

1918년 독일 11월 혁명에 따라 독일 제국 황제는 물론 독일 내 모든 군주국에서 싹 다 군주제가 폐지되었다. 그래도 1918년부터 193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급격한 체제변화로 인한 사회불안정을 해소하자는 명목으로 입헌군주제 복고 가능성이 나름 높긴 했으나, 군주제를 혐오한 아돌프 히틀러와 나치당의 인기가 갈수록 높아져서 좌절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에는 왕족들과 귀족들 대다수가 공식적인 작위만 잃었을 뿐, 여전히 상류층이고 독일 정재계와 밀접해 있는지라 굳이 체제를 바꾸면서까지 자리를 되찾으면 국민들의 반발이 심해질 것 같으니 정부로부터 재산만 돌려받고 독일연방공화국의 국민으로 살고 있다.

현재 옛 왕족들 및 귀족들에 대한 독일의 인식은 전주 이씨 대동종약원 같이 전통을 중시하는 과거 명문 집안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다.

영토만 놓고 보면 프랑스, 중국, 인도, 러시아보다 작은데도 작위 요구자는 인도 다음으로 많다.(...) 인도는 땅도 넒고, 인구도 가장 많은 나라니 당연히 작위 요구자도 많을 수 밖에 없다. 물론 독일은 중세때부터 지방분권이 강한 나라이긴 하다.[1]


2. 등재 기준[편집]


이 문서는 상위 문서인 작위 요구자의 정의에 따른 현재 독일의 작위 요구자들을 나열한 목록 문서이다.
  • 해당 국가가 현재까지 존재하거나,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적법한 근거를 가지고 해당 작위를 주장한 사례가 있었던 경우.
  • 혈통을 통해 세습되는 왕위나 작위와 같이 만약 해당 정권이 존속했다면 해당 정권의 주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등재하며, 계승권을 실제로 주장하는지 아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작위 이외에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
  • 작위 소유자가 공식적으로 해당 작위를 포기, 또는 해체한 경우.
  • 식민국가나 피정복국가가 독립하고, 상대국이 해당국가를 인정한 경우에 해당하면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 합의

토론 합의에 따라,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가 직위를 자손에게 계승했거나 계승하려 시도한 경우는 등재하지 않는다. 단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라도 '몽골의 칸' 등 세습 군주의 칭호를 자칭한 경우는 등재한다.


3.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편집]


파일: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jpg
독일 황제위 요구자 겸 프로이센 왕위 요구자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


3.1. 국가[편집]



3.1.1. 독일 황제[편집]




파일:독일 제국 국장(1889).svg
관련 칭호
독일 황제(카이저)
프로이센 국왕
작위 요구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전임자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후임자
카를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제국 멸망
현 호엔촐레른 가문의 수장이자,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국왕 작위 요구자는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로 사실상 독일 내 모든 작위 요구자들의 대표다.

역대 호엔촐레른 가문의 수장이자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국왕 작위 요구자들은 각 문서 참고.

자세한 가계도는 호엔촐레른 가문 참고.


3.1.2. 라인 동맹 보호자[편집]


파일:Commemorative_Medal_of_the_Rhine_Confederation.png
관련 칭호
라인 동맹 보호자
프랑스 황제
작위 요구자
샤를 나폴레옹[2]
장 크리스토프 나폴레옹[3]
전임자
나폴레옹 6세(루이 나폴레옹)
후임자
장 크리스토프 나폴레옹[4]
루이 나폴레옹[5][6]
계승 실패 원인
1813년 동맹 해체
라인 동맹프랑스 제1제국의 속국이 된 독일 제후국들의 모임이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주도로 세워진 라인 동맹은 프랑스 제1제국 치하에서 사실상의 식민지 취급을 받다가 결국 러시아 원정에서 라인 동맹이 프랑스 제1제국과 함께 패전함에 따라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으며, 이후에도 라인 동맹이 프랑스 제1제국과 함께 전쟁에 참전하면서 계속 군사력을 소모하게 되자 라이프치히 전투 이후 라인 동맹 구성국들이 대(對) 프랑스 동맹으로 이적하여 프랑스의 적이 됨에 따라 사실상 해체되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썼던 라인 동맹 보호자 칭호는 현재까지도 보나파르트 가문에서 명목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3.2.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편집]


다른 지방과 달리 프랑스 제1제국의 위성국가가 지역 전체를 지배했었다. 따라서 라인 동맹이 붕괴된 후 이 지역은 프로이센 왕국의 직할지역이 된다.


3.2.1. 리페 공작[편집]


파일:Wappen_Deutsches_Reich_-_Fürstentum_Lippe.png 파일:Wappen_Deutsches_Reich_-_Fürstentum_Schaumburg-Lippe.png
관련 칭호
리페 공작
샤움부르크리페 공작
리페 공작
작위 요구자
(리페 가문)
슈테판 폰 리페
(리페비스테르펠트 가문)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리페
(샤움부르크리페 가문)
알렉산더 폰 샤움부르크리페
전임자
아르민 폰 리페[7]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리페[8]
필리프 에른스트 폰 샤움부르크리페[9]
후임자
베른하르트 폰 리페[10]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폰 리페[11]
하인리히 도나투스 폰 샤움부르크리페[12]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공국 멸망
마지막 리페 공작 레오폴트 4세(Fürst Leopold IV. zur Lippe)는 네 아들을 두었는데, 전처 소생의 세 아들은 귀천상혼, 나치 테크를 타서 후계자에서 탈락시켜버리고 막내 아르민(Armin Prinz zur Lippe)을 후계자로 정한다. 정작 아르민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귀천상혼해서(...) 외아들 슈테판(Stephan Prinz zur Lippe)을 두었고 그는 슈탄데스헤어인 졸름스라우바흐 백작가의 딸과 결혼해 3남 2녀를 두었다.

한편 레오폴트 4세의 종손인 리페비스테르펠트 가문의 프리드리히 빌헬름도 슈테판에게 맞서 명목상의 리페 공위를 요구하고 있다. 다만 이쪽은 딸만 3명인 데다가, 유일한 남자 형제인 동생 에른스트 아우구스트에게 자식이 없는지라, 살리카법을 폐지하지 않는 한 단절될 예정이다.

현재의 샤움부르크리페 공가 또한 1905년 리페데트몰트 공가가 단절되었을 때 리페비스테르펠트 가문에 맞서 계승권을 주장한 바 있다. 리페 공가와 샤움부르크리페 공가는 같은 가문이지만 종교(리페: 개혁교회, 샤움부르크리페: 루터교회)가 다르다.


3.2.2. 베르크 대공[편집]


베르크 대공국 국장
관련 칭호
베르크 대공
홀란트 국왕
프랑스 황제
베스트팔렌 국왕
작위 요구자
샤를 나폴레옹[13]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14]
전임자
나폴레옹 6세(루이 나폴레옹)
후임자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15]
제롬 나폴레옹[16]
계승 실패 원인
1813년 대공국 해체
베르크 대공국(프랑스어: Grand-duché de Berg, 독일어: Großherzogtum Berg)은 1805년에 아우슈터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1806년에 라인 강 서부 유역에 세운 나라였다. 1810년에 루이 보나파르트의 뒤를 이어 홀란트 왕국의 왕이 된 나폴레옹 루이는 그로부터 1년 전인 1809년에 베르크 대공이 된 바 있는데, 나폴레옹 루이는 홀란트 왕국이 프랑스 제1제국에 합병되어 멸망한 뒤에도 베르크 대공위는 한동안 계속 유지했으나, 1813년에 라이프치히 전투에서 프랑스군이 패하면서 베르크 대공국이 멸망하여 군주 지위를 완전히 상실했다. 나폴레옹 루이는 후사가 없었으며 이후 루이 보나파르트의 자식들 중 가장 오래 살았던 나폴레옹 3세와 그의 아들 루이 외젠 보나파르트가 차례대로 베르크 대공국의 대공위 요구권을 물려받았으나, 루이 외젠이 후사 없이 세상을 떠나면서 이쪽 혈통도 단절되어 육촌인 빅토르 보나파르트에게 대공위 요구권이 넘어갔다. 현 대공위 요구자인 샤를과 장크리스토프 또한 빅토르의 후손이다.

참고로 베르크 대공국은 그 전에는 비텔스바흐 가문 분가의 영지였고 나폴레옹이 신성 로마 제국을 해체하면서 프로이센의 영지인 클레페와 묶어서 강탈한 것이라 미묘하긴 하다.


3.2.3. 베스트팔렌 국왕[편집]


파일:458px-Grandes_Armes_Jérôme_Bonaparte_(1784-1860)_2.svg.png
관련 칭호
프랑스 황제
베스트팔렌 국왕
작위 요구자
샤를 나폴레옹[17]
전임자
나폴레옹 6세(루이 나폴레옹)
후임자
장크리스토프 나폴레옹[18]
계승 실패 원인
1813년 왕국 해체
베스트팔렌 왕국(Royaume de Ouestphalie, Königreich Westphalen)은 독일 제국을 구성하는 제후국은 아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헤센 선제후국, 하노버 왕국,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을 통합해서 만든 나라로, 처음이자 마지막 국왕은 제롬 보나파르트였다. 제롬 보나파르트의 후손이 프랑스 제위 계승자가 되었으므로 동시에 요구하는 칭호로 남게 되었다. 나폴레옹 6세가 손자 장크리스토프에게 이것저것 넘겨주면서 베스트팔렌 국왕 요구자의 자리는 넘겨주지 않았는지 샤를 나폴레옹이 단독 요구자이다.


3.2.4. 잘름 공작[편집]


파일:잘름 공국 국장.gif
관련 칭호
잘름 공작
작위 요구자
카를 필리프 폰 잘름
계승 실패 원인
1811년 공국 멸망
현 공위 요구자 카를 필리프 폰 잘름은 마지막 공작 콘스탄틴의 후손이다.


3.3. 니더작센 주[편집]



3.3.1. 브라운슈바이크 공작[편집]


파일:브라운슈바이크 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하노버 국왕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컴벌랜드 공작
테비엇데일 공작
작위 요구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19]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공국 멸망
현 공위 요구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하노버 왕국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다. 자세한 건 아래의 하노버 왕국 왕위 요구자 문단 참고.


3.3.2. 샤움부르크리페 공작[편집]


파일:Wappen_Deutsches_Reich_-_Fürstentum_Schaumburg-Lippe.png
관련 칭호
샤움부르크리페 공작
리페 공작
작위 요구자
알렉산더 폰 샤움부르크리페
전임자
필리프 에른스트 폰 샤움부르크리페[20]
후임자
하인리히 도나투스 폰 샤움부르크리페[21]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공국 멸망
현 당주 알렉산더는 1958년생으로, 마지막 샤움부르크리페 공작 아돌프 2세(Fürst Adolf I. Georg zu Schaumburg-Lippe)의 동생의 손자다. 현 추정상속인은 알렉산더의 장남인 하인리히 도나투스(1994년생)이다.


3.3.3. 올덴부르크 대공[편집]


파일:올덴부르크 대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올덴부르크 대공
작위 요구자
크리스티안 폰 홀스타인고트로프
전임자
안톤귄터 폰 홀스타인고트로프[22]
후임자
알렉산더 폰 홀스타인고트로프[23]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대공국 멸망
올덴부르크 대공국은 1918년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2세 대공(Friedrich August)이 퇴위하면서 멸망했고, 현 대공위 요구자는 증손자인 크리스티안이다. 크리스티안은 1955년생으로 3남 1녀를 두고 있다.

올덴부르크 대공가는 올덴부르크 왕조의 방계인 홀슈타인고토르프 왕조다. 이름과 달리 올덴부르크 왕조 전체에서 당주[24] 계승서열이 맨 뒤다.


3.3.4. 하노버 국왕[편집]


파일:Wappen-der-Königreich-Hannover.jpg
관련 칭호
하노버 국왕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컴벌랜드 공작
테비엇데일 공작
작위 요구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25]
계승 실패 원인
1866년 왕국 멸망
1917년 영국 작위박탈법
1918년 브라운슈바이크 공국 멸망
하노버 왕국게오르크 5세줄을 잘못 선 죄로 프로이센에 합병되었다. 게오르크 5세의 아들인 컴벌랜드 공작[26]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는 사촌인 前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빌헬름이 죽자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위를 상속받았다. 프로이센 왕실에서는 이를 승인하지 았으나,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2세의 아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빌헬름 2세의 외동딸 빅토리아 루이제 폰 프로이센 왕녀랑 결혼하자 두 집안은 화해하였다. 이후 빌헬름 2세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의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계승을 승인했고,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는 컴벌랜드 공작위 계승을 포기한다.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작위박탈법을 통과시켜 해외의 일부 귀족들[27]의 작위를 박탈했고, 하노버 가문은 컴벌랜드와 테비엇데일 공작위를 상실한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 이후 공화국이 되었고, 마지막으로 남은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위도 폐지되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 사후 아들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를 지나 현재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가 작위 요구자이다.


3.4. 라인란트팔츠 주[편집]



3.4.1. 아렌베르크 공작[편집]


아렌베르크 공국 국장
관련 칭호
아렌베르크 공작
작위 요구자
레오폴트
계승 실패 원인
1810년 공국 멸망


3.4.2. 이젠부르크 공작[편집]


이젠부르크 공국 국장
관련 칭호
이젠부르크 공작
작위 요구자
알렉산더 폰 이젠부르크[28]
계승 실패 원인
1815년 공국 멸망


3.4.3. 비트노이비트 공작[편집]


비트-노이비트 공국 국장
관련 칭호
비트노이비트 공작
알바니아 공작
작위 요구자
막시밀리안 폰 비트노이비트
전임자
카를 폰 비트노이비트[29]
후임자
프리드리히 폰 비트노이비트[30]
계승 실패 원인
1806년 공국 멸망
비트노이비트 공국은 1806년에 나사우 공국과 프로이센 왕국에 분할편입되면서 멸망했다. 현 공위 요구자 막시밀리안은 마지막 공작 프리드리히 카를의 후손이다.

1914년 당시 비트노이비트의 명목상 공작이었던 프리드리히 폰 비트노이비트의 남동생은 빌헬름 폰 비트노이비트로 알바니아 공국[31]의 초대 공작이 되었으나 1925년 퇴위했고, 그 아들 역시 후손을 보지 못하면서 1973년 계보가 단절되었다. 이후 해당 권리는 당시 당주였던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차남 카를에게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3.5. 메클렌부르크포어포메른 주[편집]



3.5.1.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편집]


파일: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작위 요구자
보르빈 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전임자
프리드리히 프란츠 폰 메클렌부르크슈베린[32]
후임자
알렉산더 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33]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대공국 멸망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가는 마지막 대공 프리드리히 프란츠 4세의 두 아들들이 모두 남자 자손이 없어서 2001년 단절되었고, 이후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가에서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위도 요구하고 있다.


3.5.2.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편집]


파일: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메클렌부르크슈베린 대공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대공
작위 요구자
보르빈 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
전임자
게오르크 알렉산더 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34]
후임자
알렉산더 폰 메클렌부르크슈트렐리츠[35]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대공국 멸망
현 대공위 요구자는 보르빈이며, 슬하 2남 1녀를 두고 있다.


3.6. 바덴뷔르템베르크 주[편집]



3.6.1. 라이닝겐 공작[편집]


파일:라이닝겐 가문 문장.png
관련 칭호
라이닝겐 공작
작위 요구자
안드레아스 폰 라이닝겐
전임자
카를 에미히 폰 라이닝겐[36]
후임자
페르디난트 폰 라이닝겐
계승 실패 원인
1806년 공국 멸망
라이닝겐 공국은 현재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에 위치한 공국으로 1803년에 라이닝겐-다게스부르크-하르텐부르크 백작 카를 프리드리히 빌헬름이 라이닝겐 공작이 되면서 건국되었지만 불과 3년 후인 1806년 바덴 대공국과 헤센-다름슈타트 대공국에 분할되면서 멸망했다. 현재 공위 요구자는 안드레아스이다. 안드레아스는 2남 1녀를 두고 있다.

여담으로 안드레아스의 형인 카를 에미히 공은 前 라이닝겐 공작이었는데, 귀천상혼을 해서 공작위랑 가문 계승권을 동생 안드레아스에게 넘기고 본인은 러시아의 황제인 니콜라이 3세를 자칭하고 있다.[38]


3.6.2. 라이엔 공작[편집]


라이엔 공국 국장
관련 칭호
라이엔 공작
작위 요구자
필리프 에르바인
계승 실패 원인
1814년 공국 멸망
라이엔 공국은 바덴 서부에 세워진 프랑스 제1제국의 위성국이었다. 1814년에 프랑스 제1제국이 멸망하면서 라이엔 공국도 함께 멸망하였다. 현 공위 요구자는 필리프 에르바인이다.


3.6.3. 바덴 대공[편집]


파일:1920px-Coat_of_Arms_of_the_Grand_Duchy_of_Baden_1877-1918.svg.png
관련 칭호
바덴 대공
작위 요구자
막시밀리안 폰 바덴[39]
전임자
베르톨트 폰 바덴[40]
후임자
베른하르트 폰 바덴[41]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대공국 멸망
1918년에 독일 제국이 무너지면서 바덴 대공국은 대공가가 축출되고 바덴 공화국이 되었다. 1945년 이후에는 바덴 북부 지역이 뷔르템베르크-바덴으로 통합되었으며, 남부 지역이 바덴 주가 되어 1951년까지 존속했다가 1952년에 바덴 주도 뷔르템베르크-바덴에 통합되면서 오늘날의 바덴-뷔르템베르크 주가 되었다.

현 대공위 요구자 막시밀리안은 독일 제국의 마지막 국가수상이었던 막시밀리안 폰 바덴의 증손자로, 1966년 결혼해 세 아들을 두고 있다.


3.6.4. 뷔르템베르크 국왕[편집]


파일:Wappen_Deutsches_Reich_-_Königreich_Württemberg.jpg
관련 칭호
뷔르템베르크 국왕
작위 요구자
빌헬름 폰 뷔르템베르크-알트하우젠
전임자
카를 폰 뷔르템베르크-알트하우젠[42]
후임자
필리프 폰 뷔르템베르크-알트하우젠[43]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왕국 멸망
독일 제국의 멸망으로 뷔르템베르크 왕국을 포함한 독일의 여러 제후국들도 멸망한 후 뷔르템베르크는 뷔르템베르크 자유 인민공화국(Freier Volksstaat Württemberg)이 되어 1945년까지 지속되다가 뷔르템베르크-바덴, 뷔르템베르크-호엔촐레른 주로 잠시 개편되었으며, 현재는 바덴-뷔르템베르크 주를 이루고 있다. 빌헬름 2세의 아들이 요절하여 뷔르템베르크 왕실의 직계혈통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현재는 뷔르템베르크-알트하우젠 분가에서 왕위 요구자를 배출하고 있다.

현 수장인 빌헬름은 왕국 멸망 당시 추정상속인이었던[44] 알브레히트 공작의 고손자이다. 원래 아버지 프리드리히가 수장 자리를 물려받을 예정이었으나, 2018년에 교통사고를 당해 할아버지 카를보다 먼저 사망하는 바람에 카를이 2022년 사망한 후 그 자리는 빌헬름이 이어받았다. 빌헬름은 1994년생으로 아직 미혼이기에, 현재로서는 빌헬름의 숙부 필리프가 추정상속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45]


3.6.5. 우라흐 공작[편집]


우라흐 공작 문장
관련 칭호
리투아니아 국왕
우라흐 공작
작위 요구자
빌헬름 알베르트 폰 우라흐
전임자
카를 안젤름 폰 우라흐[46]
후임자
카를 필리프 폰 우라흐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귀족 작위 폐지
리투아니아 왕국의 처음이자 마지막 국왕 빌헬름 폰 우라흐뷔르템베르크 왕국 왕가의 분가인 우라흐 공가의 수장이기도 했다. 그에 따라 리투아니아 국왕 칭호와 우라흐 공작 칭호는 같은 우라흐 가문의 수장이 명목상으로 겸임하고 있다.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 제국이 패망하여 독일의 귀족제가 폐지됨에 따라 우라흐 공작 칭호는 명목상의 칭호로만 남게 되었다. 우라흐 공가의 현 수장은 빌헬름 알베르트 폰 우라흐다.


3.6.6.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작[편집]


파일: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국 문장.png
관련 칭호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작
호엔촐레른-헤힝겐 공작
작위 요구자
카를 프리드리히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전임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47]
후임자
알렉산더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계승 실패 원인
1849년 공국 멸망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호엔촐레른-헤힝겐 두 공국은 1849년 같은 가문의 종주인 프로이센 왕에게 영토를 양도하여 합병된다. 지크마링겐의 마지막 공작 카를 안톤의 차남은 신생 루마니아 왕국카롤 1세가 된다.


3.6.7. 호엔촐레른-헤힝겐 공작[편집]


파일:호엔촐레른헤힝겐 공국 국장.svg
관련 칭호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공작
호엔촐레른-헤힝겐 공작
작위 요구자
카를 프리드리히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전임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48]
후임자
알렉산더 폰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계승 실패 원인
1849년 공국 멸망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 호엔촐레른-헤힝겐 두 공국은 1849년 같은 가문의 종주인 프로이센 왕에게 영토를 양도하여 합병된다. 이후 호엔촐레른-헤힝겐 가문은 1869년 단절된다.


3.7. 바이에른 자유주[편집]



3.7.1. 바이에른 국왕[편집]


파일:Wappen_Deutsches_Reich_-_Koenigreich_Bayern_(Grosses).png
관련 칭호
바이에른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
잉글랜드 국왕
아일랜드 국왕
프랑스 국왕
작위 요구자
프란츠 폰 바이에른[49]
전임자
알브레히트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후임자
막스 폰 바이에른[50]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왕국 멸망
현 왕위 요구자인 프란츠 폰 바이에른 공작은 마지막 국왕 루트비히 3세의 증손자로 바이에른 왕국을 통치하던 비텔스바흐 가문의 수장이다. 비텔스바흐 가문은 여계로 넘어온 자코바이트 계승권자로, 스튜어트 왕조의 왕위들을 요구할 수 있다. 다만 프란츠 공은 자식이 없어서, 후임자는 동생인 바이에른에서의 공작(Herzog in Bayern)[51] 막스가 된다. 바이에른 공국은 1506년 이후 기존의 게르만족의 분할상속제를 폐지하고 장자상속제를 적용시켰는데 이로 인해 기존의 자신들의 영지와 공작위를 잃어버린, 그리고 후에 분할 상속을 통해 작위를 받았어야할 이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바이에른에서의 공작(Herzog in Bayern/Duke in Bavaria)이라는 작위를 만들었고 비텔스바흐 가문의 후예들은 작위를 받게 되었다. 물론 이 작위는 예우상의 작위였고 실제 통치는 바이에른 공작(Herzog von Bayern/Duke of Bavaria)이 통치했다. 이후 바이에른의 공실 구성원들[52]은 Prinz von Bayern[53] 작위와 Herzog in Bayern 작위를, 방계 후손들은 Herzog in Bayern 작위를 갖게 되었다. 프란츠 공의 동생인 막스 공은 명목상으로라도 통치 공작이 아니기에 Herzog in Bayern 작위를 성으로 쓰고 있는 것이고 형이 사망한 후에야 명목상의 바이에른 공작에 오르는 것이므로 Herzog von Bayern을 성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후임자인 막스 폰 바이에른은 5명의 딸을 두었으며, 그중 장녀는 리히텐슈타인의 왕세자빈인 조피(Sophie)이고 그녀는 3명의 아들을 두었다. 하지만 바이에른 왕국은 다른 독일 국가들처럼 살리카법인데다 다른 남계후손들도 꽤 남아있기에 막스의 사후에는 조피와 그 후손이 아닌 프란츠와 막스의 6촌 동생(부계혈통상)이자 고종사촌인 루이트폴트에게 왕위 요구권이 넘어갈 것이며,[54] 설령 조피와 그 후손들이 바이에른 왕위를 요구한다 해도 비정통 왕위 요구자로 간주될 가능성이 높다.

3.7.2. 뷔르츠부르크 대공[편집]


뷔르츠부르크 대공국 국장
관련 칭호
뷔르츠부르크 대공
작위 요구자
지기스문트
전임자
레오폴트 프란츠
후임자
레오폴트 아마데우스 페터 페르디난트 아르히발트
계승 실패 원인
1814년 대공국 멸망
뷔르츠부르크 대공국은 라인 동맹의 가맹국이자 프랑스 제1제국의 위성국이었다. 프랑스 제1제국이 1814년에 멸망함에 따라 뷔르츠부르크 대공국 또한 바이에른 왕국에 합병되어 멸망했다. 현 대공위 요구자 지기스문트는 토스카나 대공국의 왕위 요구자이기도 하다.


3.8. 브란덴부르크 주[편집]



3.8.1. 브란덴부르크 변경백[편집]


파일:브란덴부르크 주장.svg
관련 칭호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프로이센 국왕
작위 요구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전임자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후임자
카를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계승 실패 원인
1806년 변경백국 멸망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되면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국(Mark Brandenburg)이 같이 멸망했지만, 프로이센 왕국 국왕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칭호는 명목상으로나마 계속 이어졌으며, 독일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이 멸망한 뒤에도 독일 제국과 프로이센 왕국의 작위 요구자가 대대로 명목상의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칭호를 쓰고 있다.


3.8.2. 프로이센 국왕[편집]


파일:프로이센 왕국 국장.svg
관련 칭호
독일 황제(카이저)
프로이센 국왕
작위 요구자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전임자
루이 페르디난트 폰 프로이센
후임자
카를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왕국 멸망
독일 제국은 명목상 여러 왕국과 군주국들로 구성되어 있고, 프로이센 국왕이 독일 황제를 겸임하였으므로 두 작위는 명목상 별개로 존재한다. 실제로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빌헬름 2세가 황제 자리에서 폐위당하자 프로이센 왕국의 왕위라도 유지하려 하였으나 그것마저도 실패하여 망명한 것이다.


3.9.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편집]



3.9.1.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편집]


파일:1920px-Coat_of_arms_of_Duché_Schleswig-Holstein-Sondebourg-Glucksbourg.svg.png
관련 칭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
작위 요구자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
전임자
크리스토프
후임자
알프레드
계승 실패 원인
1866년 공국 멸망


3.9.2.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편집]


작센-라우엔부르크 공국 국장
관련 칭호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작
작센라우엔부르크 공작
작위 요구자
프리드리히 페르디난트
전임자
크리스토프
후임자
알프레드
계승 실패 원인
1866년 공국 멸망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프로이센 왕국이 승리함에 따라 슐레스비히홀슈타인 공국, 작센라우엔부르크 공국은 모두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었다. 현재 글뤽스부르크 왕조 본가에서 대대로 공위 요구자를 배출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현재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주의 하위 행정구역인 라우엔부르크는 정식명칭이 라우엔부르크 공국(Herzogtum Lauenburg)으로, 명목상으로나마 공국으로 존속중이다.


3.9.3.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편집]


파일: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작위 요구자
마리야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
앤드류 안드레예비치 로마노프
카를 에미히 폰 라이닝겐
전임자
블라디미르 키릴로비치 대공[55]
드미트리 로마노비치 로마노프
에미히 키릴 폰 라이닝겐[56]
후임자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
알렉세이 안드레예비치 로마노프
에미히 폰 라이닝겐[57]
계승 실패 원인
1721년 영토 대부분이 덴마크에 합병됨
카를 페터 울리히(표트르 3세) 치세에 모든 영토를 상실함
러시아 제국 홀슈타인고토르프로마노프 왕조의 초대 황제인 표트르 3세는 본래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이었으나 선대 때 자국 영토 대부분이 덴마크에 합병된 탓에 사실상 명목상의 공작이나 다름 없었을뿐더러 그나마 자신의 치세까지 남아있던 홀슈타인고토르프 공국 영토마저 어렸을 때 빼앗긴 탓에 이후 프로이센 왕국프리드리히 대왕이 거둬줄 때까지 여러 곳을 유랑하며 살아야 했다. 표트르 3세를 폐위한 예카테리나 2세는 러시아 황제위는 본인이 손에 넣었지만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칭호는 아들인 파벨 1세에게 넘겨주었으며 파벨 1세 이후의 러시아 황제들도 명목상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칭호를 썼다. 현재 명목상의 러시아 황제위를 두고 서로 다투는 마리아와 앤드류 그리고 카를 에미히 또한 홀슈타인고토르프 공작 칭호를 쓰고 있다.


3.10. 작센 자유주[편집]



3.10.1. 작센 국왕[편집]


파일:작센 왕국 국장.svg
관련 칭호
작센 국왕
바르샤바 공작
폴란드 국왕
리투아니아 대공
작위 요구자
(작센게사페 가문)
알렉산더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다른 친족)
다니엘
미하엘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전임자
마리아 에마누엘
뤼디거
마리아 에마누엘
후임자
게오르크 필리프
게로
(임시)
레오니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58]
(장래)
안드레아스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왕국 멸망
작센 왕가 후손의 전임 당주인 마리아 에마누엘이 2012년에 사망하면서 차기 당주가 누가 되어야 할지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마리아 에마누엘의 누이의 후손인 작센게사페 가문과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다른 친족이 당주 자리를 두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며 전자는 알렉산더를, 후자는 뤼디거를 차기 당주로 내세우고 있다.

수장인 마리아 에마누엘[59]이 2012년 사망하면서 직계가 끊겼고, 살리카법을 접고 그의 누이의 후손인 작센게사페 가문[60]의 알렉산더와 귀천상혼으로 태어난 육촌 형제 뤼디거[61]가 계승해야 할지를 놓고 분쟁이 일어났다.

일단 구 작센 왕국 헌법과 1997년 마리아 엠마누엘에 의해 정해진 계승법에 의하면 여계 후손이 귀천상혼 후손보다 우선하기 때문에 작센게사페의 알렉산더가 앞서지만 일부 친족들이 반발하여 뤼디거를 옹립한 상황이다. 여기서 귀천상혼 배제 원칙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에는 귀천상혼 계열인 뤼디거를 건너뛰고 또 다른 육촌인 호엔촐레른-지크마링겐[62] 수장 카를 프리드리히가 왕위요구자가 된다. 반대로 살리카법을 엄격히 적용할 경우에는 마리아 엠마누엘의 막내여동생이 작센 왕실과 같은 가문인 작센코부르크고타 왕조의 헝가리계 분가(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의 공작과 혼인했으므로 이 경우 현재 작센코부르크고타코하리 공작인 시메온 2세[63]가 작위 요구자가 된다.

독일의 다른 왕조들은 엄밀히 말해 알베르트 계통이 단절된 것으로 보는데 알렉산더는 여계 후손인 데다 아버지가 레바논계 멕시코인이고[64] 뤼디거는 아버지인 티모 왕자가 귀천상혼 때문에 작센 왕조에서 제명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후보 모두 정통성에 결함이 있어 독일 귀족 연감에 등록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계승권 분쟁에 에른스트 계통도 끼어드는데 작센 왕국 이전 베틴 가문의 구 상속법이 준살리카법[65]에 엄격한 귀천상혼 원칙을 적용하는 것을 구실로 삼아 알렉산더와 뤼디거를 모두 부정하고 에른스트 계통의 수장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가 작센 왕위 계승권을 주장하고 있다. 물론 상술했듯 여기도 단절되는 것은 기정사실.


3.11. 작센안할트 주[편집]



3.11.1. 안할트 공작[편집]


파일:안할트 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안할트 공작
작위 요구자
에두아르트 폰 안할트
전임자
프리드리히 폰 안할트[66]
후임자
율리아 카타리나 폰 안할트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공국 멸망
현 공위 요구자 에두아르트(Eduard Prinz von Anhalt)는 1941년 생으로 마지막 안할트 공작 요아힘 에른스트의 차남이다. 세 딸 밖에 없어서 2010년에 살리카법을 폐지하고 맏딸 율리아 카타리나를 후계자로 정했다.[67] 율리아 카타리나는 아들 하나가 있다.

마지막 공작 에두아르드의 아들 요아힘 에른스트의 자손은 전원 귀천상혼(...)을 했으며, 에두아르드의 장녀 마리 아우구스테는 요아힘 폰 프로이센 왕자와 혼인해 카를 프란츠를 낳고 이혼했고, 카를 프란츠의 아들 프란츠 빌헬름은 러시아 제국 제위 요구자인 마리야 블라디미로브나 여대공과 혼인해 게오르기 미하일로비치 대공을 낳는다. 다만 에두아르트 폰 안할트 역시 평민과 혼인하였으나 아무런 제재조치가 없었던 것을 보면 동군연합을 구성하기는 힘들 듯하다.


3.12. 튀링겐 자유주[편집]



3.12.1. 로이스게라 공작[편집]


파일:로이스-게라 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로이스그라이츠 공작
로이스게라 공작
작위 요구자
하인리히 14세 폰 로이스
전임자
하인리히 4세 폰 로이스[68]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공국 멸망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가문에서는 '~세'가 동명의 군주를 구별하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가문의 남자 구성원들에게 태어난 순서대로 붙이는 숫자라는 것이다. 로이스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6세를 기념하기 위해, 12세기 말부터 가문의 남자 구성원들 모두가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그라이츠 계통에서는 100세까지 다 채우면 그 다음에 태어나는 남자는 1세가 되고, 게라 계통에서는 세기가 바뀌고 처음 태어나는 남자부터 다시 1세로 되돌아가는 방식으로 이름을 붙인다.

1918년 당시 로이스그라이츠, 로이스게라 두 계통이 있었는데 1927년에 그라이츠 계통이 끊겼다. 그러나 1945년에 하인리히 45세가 소련군에 납치되어 게라 본가도 끊기고, 지금은 17세기에 게라 계통에서 분가한 로이스쾨스트리츠 계통이 로이스 가문을 대표한다. 현 당주 하인리히 14세는 1955년 생으로 2남 2녀를 두었다. 정작 현 당주 하인리히 14세나 그의 아버지, 자녀들 모두 오스트리아에서 태어났다. 진첸도르프 가문이 소유하고 있던 오스트리아에 있는 성을 그 대가 끊기면서 로이스쾨스트리츠 계통이 19세기 초에 상속해서인데, 로이스 지역에 있던 성들이 소군정에 의해 몰수되고 동독이 되어버리면서 더더욱 독일 본토와의 연고가 희미해졌다.


3.12.2. 로이스그라이츠 공작[편집]


파일:로이스-그라이츠 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로이스그라이츠 공작
로이스게라 공작
작위 요구자
하인리히 14세 폰 로이스
전임자
하인리히 4세 폰 로이스[69]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공국 멸망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가문에서는 '~세'가 동명의 군주를 구별하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가문의 남자 구성원들에게 태어난 순서대로 붙이는 숫자라는 것이다. 로이스 가문은 신성 로마 제국의 하인리히 6세를 기념하기 위해, 12세기 말부터 가문의 남자 구성원들 모두가 하인리히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그라이츠 계통에서는 100세까지 다 채우면 그 다음에 태어나는 남자는 1세가 되고, 게라 계통에서는 세기가 바뀌고 처음 태어나는 남자부터 다시 1세로 되돌아가는 방식으로 이름을 붙인다. 어차피 그라이츠 계통은 24세까지밖에 못 채우고 단절되었으니까.

1918년 당시 로이스그라이츠, 로이스게라 두 계통이 있었는데 1927년에 그라이츠 계통이 끊겨서 게라 계통이 로이스 지역 전체를 대표한다.


3.12.3.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작[편집]


파일: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작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작
졸름스-빌덴펠스 백작
작위 요구자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
전임자
마리에 안토이네테
후임자
콘스탄틴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공국 멸망


3.12.4.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작[편집]


파일: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작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작
졸름스-빌덴펠스 백작
작위 요구자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
전임자
마리에 안토이네테
후임자
콘스탄틴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공국 멸망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공가와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공가 모두 현재는 남계혈통이 단절된 상태이며, 마리에 안토이네테가 졸름스-빌덴펠스 백작위 요구자인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5세와 결혼하여 자녀를 얻으면서 해당 작위들의 요구권은 졸름스-빌덴펠스 백작가로 넘어갔으나 현재 수장인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의 살아남은 유일한 아들인 콘스탄틴에게 자녀가 없어 동군연합이 다시 해체될 예정이다. 이후로는 신성 로마 제국 당시 협약에 근거하여 슈바르츠부르크 공가와 혈연적 관계가 없는 스톨베르크(Stolberg) 백작가로 승계된다고 한다. 스톨베르크는 프로이센 산하의 백국이었으므로 결국 국가로서는 프로이센에 흡수되는 것.

다만 이를 무시하고 준살리카법을 적용할 경우 마지막 통치자 귄터 빅토르의 여동생 마리에의 후손 올덴부르크 대공국의 대공위 요구자 크리스티안[70], 로이스-게라의 공족인 하인리히 8세[71], 마지막 직계 상속인 프리드리히 귄터의 대고모 테클라의 후손 쇤부르크-발덴부르크의 공위 요구자 울리히[72]가 공위 요구자가 된다. 이 중 쇤부르크-발덴부르크의 울리히가 가장 정통성 측면에서 앞서는데, 크리스티안과 하인리히 8세가 살리카법을 2번 위반한 것과는 달리 울리히는 1번만 위반했으며, 그와 그의 아버지 빌헬름이 귄터 빅토르의 양손 및 양자로 입양되었기 때문. 그러나 쇤부르크-발덴부르크 역시 현재 공위 요구자와 유일하게 남은 남성 후계자에게 후사가 없어, 졸름스-빌덴펠스 백작가와 비슷한 시기에 단절될 것이 유력하며 살리카법을 2번 이상 위반한 후손들만 남게 된다.


3.12.5. 작센마이닝겐 공작[편집]


파일:작센마이닝겐 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작센마이닝겐 공작
작위 요구자
콘라트 폰 작센마이닝겐
전임자
베른하르트 폰 작센마이닝겐[73]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공국 멸망
현 공위 요구자 콘라트는 1952년생으로 미혼이다. 유일한 후계자이자 남계 친족으로 조카 콘스탄틴(1980년생)이 있지만 아버지인 에른스트는 베른하르트가 귀천상혼을 해서 태어난 아들이라 논란이 있는 모양.[74][75] 콘스탄틴은 아들 미하엘(2015년생)이 있지만 일단 여기도 귀천상혼으로 태어난데다가(...) 혼인 중에 태어났는지가 알려지지 않아서 후계자인지는 알 수 없다. 방계 가문으로 잘펠트(Saalfeld) 남작가가 있지만 여기도 시조가 귀천상혼을 해서 태어났다(…).


3.12.6.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편집]


파일: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작위 요구자
미하엘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전임자
카를 아우구스트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76]
후임자
(임시)
레오니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77]
(장래)
안드레아스 폰 작센코부르크고타[78]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대공국 멸망
현 대공위 요구자는 마지막 대공의 손자인 미하엘이다. 1946년생으로 딸 하나밖에 없으며 사촌인 빌헬름에게 아들 콘스탄틴(1977년생)이 있었으나 2018년 자녀 없이 사망하면서, 살리카법을 폐지하지 않는 한 단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남은 방계 가문은 작센 왕가, 작센마이닝겐 공가,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로 세 개가 있지만 작센 왕가와 작센-마이닝겐 공가는 귀천상혼 문제가 있어서 만약 대공가가 단절된다면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이 대공위를 계승한다고 한다.


3.12.7. 작센알텐부르크 공작[편집]


파일:작센-알텐부르크 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대공
작센알텐부르크 공작
작위 요구자
미하엘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
전임자
게오르크 모리츠 폰 작센알텐부르크[79]
후임자
(임시)
레오니 폰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80]
(장래)
안드레아스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공국 멸망
작센알텐부르크 공국 멸망 후 공위 요구자를 배출하던 작센알텐부르크 공가는 1991년에 마지막 정통 공위 요구자 게오르크 모리츠가 독신으로 사망하여 단절되었다. 현재는 작센바이바르아이제나흐 대공위 요구자인 미하엘이 작센알텐부르크 공위 요구권을 넘겨받았지만, 상술한 이유에 따라 살리카법을 폐지하지 않을 경우 이쪽 또한 단절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단은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에 합쳐졌지만 그조차도 단절이 확실시되는데, 상술했듯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는 작센코부르크고타에 통합될 것으로 추정되는 중이다. 영지가 재조정될 가능성이 높지만 일단은 작센바이마르아이제나흐처럼 작센코부르크고타로 통합된다고 가정.


3.12.8.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편집]


파일:작센코부르크고타 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
작위 요구자
안드레아스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전임자
프리드리히 요시아스 폰 작센코부르크고타[81]
후임자
후베르투스 미하엘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공국 멸망
현 공위 요구자는 마지막 공작 카를 에두아르트의 손자인 안드레아스다. 1943년생으로 2남 1녀를 두었으며, 장남인 후베르투스 미하엘은 1남 2녀를 두고 있다. 여담으로,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가는 현 영국 왕실[82]벨기에 왕실, 그리고 전(前) 불가리아 왕실과 같은 가문이다. 다만, 영국 왕실과 벨기에 왕실은 현재 작센코부르크고타 성씨를 쓰지 않는데, 그 이유인 즉슨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 독일 제국과 적으로 만난 까닭에[83], 반(反) 독일 여론을 의식해서 성씨를 바꿨기 때문이다. 영국 왕실은 성씨를 '윈저(Windsor)'로 바꿨고, 벨기에 왕실은 성씨를 '벨기에'[84]로 바꿨다. 불가리아만 '작센코부르크고타' 성씨를 그대로 불가리아어식으로 바꾼 삭스코부르고츠키(Сакскобургготски)를 사용한다.


3.13. 헤센 주[편집]



3.13.1. 나사우 공작[편집]


파일:나사우 공국 국장svg.png
관련 칭호
나사우 공작
룩셈부르크 대공
작위 요구자
앙리
전임자

후임자
기욤
계승 실패 원인
1866년 공국 멸망
현 룩셈부르크 대공 앙리나사우 공국 공위 요구자를 겸하고 있다. 이름의 유래가 된 나사우는 라인란트팔츠에 있지만 나중에 수도가 된 비스바덴은 헤센에 속한다. 멸망 후 헤센나사우 주로 개편된다.


3.13.2. 발데크피르몬트 공작[편집]


파일:발데크-피르몬트 공국 국장.png
관련 칭호
발데크피르몬트 공작
작위 요구자
비테킨트 추 발데크운트피르몬트
전임자
요시아스 추 발데크피르몬트[85]
후임자
카를 안톤 추 발데크운트피르몬트[86]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공국 멸망
현 공위 요구자 비테킨트(Wittekind zu Waldeck und Pyrmont)는 1936년생으로, 마지막 공작 프리드리히의 손자다. 서독 공군 중령을 지냈다. 52살 때 20살 연하인 1956년생 귀족 여성 Cecilia Gräfin Goëß-Saurau과 결혼해 카를-안톤(Carl-Anton), 요시아스(Josias), 요한(Johannes) 등 세 아들을 두고 있다.


3.13.3. 졸름스빌덴펠스 백작[편집]


졸름스-빌덴펠스 백국 국장
관련 칭호
졸름스빌덴펠스 백작
직위 요구자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
전임자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5세
후임자
콘스탄틴
계승 실패 원인
1806년 백국 멸망
졸름스빌덴펠스 백국은 1806년에 헤센 대공국에 합병되어 멸망했다. 현 백작위 요구자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는 마지막 백작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2세의 후손이다.

프리드리히 마그누스 6세부터는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후국의 공위 요구자를 겸하지만, 그의 두 아들에게 모두 자녀가 없어 다음 세대부터는 다시 동군연합이 해체될 것이 유력하다.


3.13.4. 프랑크푸르트 대공[편집]


프랑크푸르트 대공국 국장
관련 칭호
프랑크푸르트 대공
로이히텐베르크 대공
작위 요구자
니콜라우스 폰 로이히텐베르크
전임자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
후임자
콘스탄틴 폰 로이히텐베르크
계승 실패 원인
1813년 대공국 멸망
현재 대공위 요구자인 니콜라우스 폰 로이히텐베르크는 첫 번째 프랑크푸르트 대공[87]이었던 외젠 드 보아르네의 직계 후손이며, 1974년 사망한 세르게이 게오르기예비치의 재종손자(6촌)이다. 다만 할아버지가 귀천상혼으로 태어나서 공식적으로 상속받지는 않은 모양.

아버지 니콜라이 니콜라예비치도 그렇고, 전임자도 그렇고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이름을 지니고 있는데, 3대 공작이었던 막시밀리안 폰 로이히텐베르크가 니콜라이 1세의 딸 마리야 니콜라예브나 여대공과 혼인하면서 러시아로 귀화했기 때문이다. 정작 본인은 독일어 사용자라서 그야말로 혼돈.


3.13.5. 헤센 대공[편집]


파일:헤센 대공국 국장.svg
관련 칭호
헤센 대공
헤센 선제후
핀란드 국왕
작위 요구자
하인리히 도나투스 폰 헤센[88]
전임자
모리츠 폰 헤센[89]
후임자
모리츠 폰 헤센[90]
계승 실패 원인
1918년 대공국 멸망
헤센 대공국은 본래 헤센가의 본가인 헤센-다름슈타트 가문이 대공위 요구자였는데, 헤센 대공가 비행기 추락사고로 가주와 가족들이 사망하고 1968년 가문이 통째로 단절되었다. 대공위 요구자의 자리는 헤센다름슈타트 가문에서 헤센카셀 선제후위 요구자인 헤센카셀 가문의 수장에게 넘어갔다.


3.13.6. 헤센카셀 선제후[편집]


파일:헤센카셀 선제후국 국장.png
관련 칭호
헤센 대공
헤센 선제후
핀란드 국왕
작위 요구자
하인리히 도나투스 폰 헤센[91]
전임자
모리츠 폰 헤센[92]
후임자
모리츠 폰 헤센[93]
계승 실패 원인
1866년 선제후령 합병
헤센 선제후령은 나폴레옹 전쟁 시기 추가된 선제후령으로, 헤센카셀 방백 가문에서 선출되었다. 베스트팔렌 왕국이 세워지면서 잠깐 멸망했다가 1813년 부활, 빈 회의에서 왕국으로의 승격을 노리기도 했다. 하지만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에서 오스트리아 편을 들어서 프로이센에 합병되었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현재 선제후위 요구자는 헤센카셀 방백가의 수장이 맡는다. 덤으로 헤센 대공위 요구자도 이쪽이 맡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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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참고로 통치 가문의 귀족이든 일반 귀족이든 상관없이 귀족 자체의 수는 유럽에서 프랑스가 제일 많다.[2] 샤를 마리 제롬 빅토르 나폴레옹.[3] 장 크리스토프 루이 페르디낭 알베릭 나폴레옹.[4] 샤를 나폴레옹의 장남. 위의 샤를 나폴레옹의 대립 왕위 요구자와 동일인이다.[5] 루이 나폴레옹.[6] 샤를 나폴레옹의 장손이자 장 크리스토프 나폴레옹의 장남.[7] 슈테판의 아버지.[8]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아버지.[9] 알렉산더의 아버지.[10] 슈테판의 장남[11]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남동생. 아버지와 동명이인이다.[12] 알렉산더의 아들.[13] 샤를 마리 제롬 빅토르 나폴레옹.[14] 장크리스토프 루이 페르디낭 알베릭 나폴레옹.[15] 샤를 나폴레옹의 장남.[16] 제롬 그자비에 마리 조제프 빅토르 나폴레옹.[17] 샤를 마리 제롬 빅토르 나폴레옹.[18] 샤를 나폴레옹의 장남.[19]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20] 알렉산더의 아버지.[21] 알렉산더의 아들.[22] 크리스티안의 아버지.[23] 크리스티안의 장남.[24] 올덴부르크 가문 본가는 단절됬고 현재 올덴부르크 왕조의 종가는 글뤽스부르크 왕조다.[25]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26] 영국의 작위이다.[27] 대부분이 독일, 오스트리아 등 적국의 귀족들이었다.[28] 독일 황제 겸 프로이센 왕위 요구자인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폰 프로이센 왕자의 처남이다.[29] 막시밀리안의 아버지.[30] 막시밀리안의 동생.[31] 정확히는 알바니아 공령[32] 슈베린 계통의 마지막 대공.[33] 보르빈의 장남.[34] 보르빈의 아버지.[35] 보르빈의 장남.[36] 안드레아스의 형.[37] 라이닝겐-로마노프의 러시아어식 바리에이션[38] 단, 카를 에미히 공 본인은 가문명을 "레이닌겐-로마노프"(Лейнинген-Романов)[37]라 칭한다.[39] 막시밀리안 안드레아스 프리드리히 구스타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베른하르트 폰 바덴.[40] 베르톨트 프리드리히 빌헬름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하인리히 카를 폰 바덴.[41] 베른하르트 막스 프리드리히 아우구스트 구스타프 루트비히 크라프트 폰 바덴.[42] 빌헬름의 할아버지.[43] 빌헬름의 숙부, 현 시점에서 추정상속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44] 빌헬름 2세의 8촌 동생에 해당한다. 빌헬름 2세의 사후 명목상의 왕위를 계승했다.[45] 빌헬름의 할아버지 카를은 오를레앙 가문 출신 부인과의 사이에서 4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빌헬름의 아버지 프리드리히고, 차남 에버하르트는 귀천상혼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기에 에버하르트를 건너뛸 경우 3남인 필리프가 1순위 계승권자가 된다. 필리프는 비텔스바흐 가문 출신 부인(리히텐슈타인 공세자빈 조피의 여동생이다)과의 사이에서 1남 3녀를 두었다.[46] 현재는 귀천상혼으로 왕위 요구권을 박탈당한 상태다.[47] 카를 프리드리히의 아버지.[48] 카를 프리드리히의 아버지.[49]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50] 참고로 리히텐슈타인의 왕세자빈인 조피(Sophie)의 아버지이다.[51] 성이 바이에른에서의 공작이다. 후에 프란츠 공이 사망할 경우 바이에른의 공작(Herzog von Bayern)으로 성이 바뀌게 될 것이다.[52] 보통 공작의 손자까지.[53] 바이에른의 공자(公子). 왕국 승격 이후엔 왕자(王子).[54] 루이트폴트에게는 3남 2녀가 있는데, 장남과 3남은 미혼이고, 차남 하인리히 루돌프가 아들 한 명(2021년생)을 두고 있다. 장녀와 차녀는 각각 3남, 1남 1녀를 낳았다. 다만 영국의 왕위 계승법은 아들 우선 상속법이므로(아들을 우선하되 아들이 없을 경우 딸이 계승), 이론상의 자코바이트 계승권은 막스를 거쳐 조피와 그 후손들에게 넘어갈 예정이다.[55] 키릴 블라디미로비치의 아들, 마리아 여대공의 오빠.[56] 카를 에미히의 아버지. 어머니가 알렉산드르 2세의 증손녀이다.[57] 카를 에미히의 아들.[58] 미하엘의 딸. 살리카법 때문에 정식 당주는 되지 못한다.[59] 마리아라는 이름이 세컨드네임도 아니고 당당히 첫머리에 나왔지만 당연히 남자다.[60] 1997년에 마리아 에마누엘이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선언했다. 게사페 가문은 레바논마론파 출신으로 멕시코로 이민한 성공한 사업가 가문이다.[61] 어머니가 평민으로 정육점 집 딸이어서 아버지가 왕실에서 절연당했다.[62] 호엔촐레른 왕조의 가톨릭 분파이다.[63] 불가리아의 마지막 차르인 그 사람 맞다. 불가리아 왕실도 작센코부르크코하리의 분가였다가 본가의 남계 후손이 단절되면서 새롭게 본가가 되었다. 따라서 이론상으로는 폴란드-불가리아 이중 제국(…) 같은 것도 가능하다…만 불가리아 왕실이 가톨릭이 아닌지라 폴란드 왕위를 물려받을 수 있는 자격요건이 갖춰줬는지는 다소 불확실하다.[64] 이 때문에 본래 알렉산더의 어머니 아나의 결혼 역시 당초에는 귀천상혼 취급이었다. 그러다 나중에 마리아 에마누엘이 알렉산더를 후계자로 정한 것.[65] 모든 남성 후손이 단절됐을 때만 여성에게 계승권이 돌아간다.[66] 에두아르트의 형.[67] 왜냐하면, 아스카니아 가문의 남성이 에두아르트 본인 밖에 없고, 작센 계열 공국들과 달리 방계 가문도 없기 때문.[68] 하인리히 14세의 아버지.[69] 하인리히 14세의 아버지.[70] 마리에 > 올덴부르크 대공비 엘리자베트 알렉산드리네 > 니콜라우스 > 안톤귄터 > 크리스티안[71] 마리에 > 발트 연합 공작 아돌프 프리드리히 > 보이츨라바 페오도라 > 하인리히 8세[72] 테클라 > 게오르크 > 울리히 게오르크 > 빌헬름 > 울리히[73] 콘라트의 아버지.[74] 다만 어머니는 작센코부르크고타의 직전 공위 요구자인 프리드리히 요시아스의 딸 베아트리체이다. 그런데 베아트리체도 귀천상혼으로 태어났다(...).[75] 에른스트는 콘라트의 이복형인데, 어머니가 평민이라 귀족 어머니를 둔 이복동생 콘라트가 형을 제치고 수장이 되었다. 현 수장의 직계자손이라면 수장의 판단에 따라 동등결혼 승인이나 복권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데, 전임 수장의 결정을 번복하고 콘스탄틴을 후계자로 삼을 수 있는지가 논란의 쟁점인 셈이다. 일단 콘라트는 콘스탄틴을 후계자로 삼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승계 과정에서 잡음이 생길 여지는 남아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76] 미하엘의 아버지.[77] 미하엘의 딸. 살리카법 때문에 정식 당주는 되지 못한다.[78] 작센코부르크고타 공가의 현 수장. 그러나 안드레아스 역시 1943년생으로 고령이기 때문에, 안드레아스는 대공가 단절 이전에 먼저 사망하고 그 장남이자 후계자인 후베르투스가 대공위를 계승할 가능성도 있다.[79] 작센알텐부르크 공가의 마지막 당주.[80] 미하엘의 딸. 살리카법 때문에 정식 당주는 되지 못한다.[81] 안드레아스의 아버지.[82] 다만 생물학적으로는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사망하고 찰스 3세가 즉위하면서 글뤽스부르크 왕조로 교체되었다. 그냥 이름만 계속 윈저일 뿐이다.[83] 특히 벨기에는 이른바 벨기에 강간이라고 할 정도로 독일군에게 막심한 전쟁 범죄의 피해를 당했다. 흡사 벨기에판 난징 대학살 수준이라서 오늘날까지도 벨기에 내에서는 독일을 증오하는 여론이 크다.[84] 프랑스어로는 '드 벨지크(de Belgique)', 네덜란드어로는 '판 벨히어(van België)', 독일어로는 '폰 벨기엔(von Belgien)'.[85] 비테킨트의 아버지.[86] 비테킨트의 장남.[87] 일단 영지는 장인 막시밀리안 1세 요제프가 다스리던 바이에른 왕국에서 분리되어 생성되었다.[88] 하인리히 도나투스 필리프 움베르토[89] 하인리히 도나투스의 아버지.[90] 하인리히 도나투스의 장남. 할아버지와 동명이인이다.[91] 하인리히 도나투스 필리프 움베르토.[92] 하인리히 도나투스의 아버지.[93] 하인리히 도나투스의 장남. 할아버지와 동명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