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 요구자/유럽/영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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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등재 기준
3.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
3.1. 국가
3.1.1.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국왕
3.2. 잉글랜드
3.2.1. 도싯 후작
3.2.2. 랭커스터 공작
3.2.3. 올버니 공작
3.2.4. 요크 공작
3.2.5. 잉글랜드 국왕
3.2.6. 컴벌랜드 공작
3.2.7. 테비엇데일 공작
3.3. 스코틀랜드
3.3.1. 스코틀랜드 국왕
3.4. 웨일스
3.4.1. 귀네드 국왕
3.4.2. 웨일스 공작
3.5. 영국 본토 밖
3.5.1. 맨 섬 영주
3.5.2. 지브롤터 영주


1. 개요[편집]


영국작위 요구자를 다루는 문서.


2. 등재 기준[편집]


이 문서는 상위 문서인 작위 요구자의 정의에 따른 현재 영국의 작위 요구자들을 나열한 목록 문서이다.
  • 해당 국가가 현재까지 존재하거나,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적법한 근거를 가지고 해당 작위를 주장한 사례가 있었던 경우.
  • 혈통을 통해 세습되는 왕위나 작위와 같이 만약 해당 정권이 존속했다면 해당 정권의 주권을 이어받을 수 있는 누군가를 특정할 수 있는 경우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등재하며, 계승권을 실제로 주장하는지 아닌지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 작위 이외에 영토에 대한 권리 주장.
  • 작위 소유자가 공식적으로 해당 작위를 포기, 또는 해체한 경우.
  • 식민국가나 피정복국가가 독립하고, 상대국이 해당국가를 인정한 경우에 해당하면 등재하지 않는다. 토론 합의

토론 합의에 따라,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가 직위를 자손에게 계승했거나 계승하려 시도한 경우는 등재하지 않는다. 단 근대 이후 공화국의 독재자라도 '몽골의 칸' 등 세습 군주의 칭호를 자칭한 경우는 등재한다.


3. 현재 작위 요구자 목록[편집]



3.1. 국가[편집]



3.1.1.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국왕[편집]


파일:영국 국장.svg
관련 칭호
하노버 국왕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국왕
인도 황제
작위 요구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1]
계승 실패 원인
1837년 동군연합 해체
1901년 왕조 교체
1922년 연합왕국 해체
하노버 왕국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왕위 요구자는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3세부터 영국 왕족임을 자칭하면서[2] 대대로 영국 하노버 왕조의 왕위도 요구하게 되었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는 무려 영국 국적까지 취득하여 독일과 영국의 이중국적자가 되었다. 영국 치하의 아일랜드가 아일랜드 자유국이 되어 자치권을 얻음으로써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이 해체된 건 윈저 왕조 때의 일이므로, 하노버 왕조의 입장에선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3.2. 잉글랜드[편집]



3.2.1. 도싯 후작[편집]


관련 칭호
도싯 후작
작위 요구자
존 마이클 에드워드 시모어
전임자
퍼시 해밀턴 시모어
후임자
세바스찬 시모어
계승 실패 원인
제인 그레이 폐위의 여파로 도싯 후작가 몰락
도싯 후작을 대대로 배출했던 잉글랜드 왕국의 그레이 가문(Grey family)은 제인 그레이를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제인 그레이가 폐위된 후 제인 그레이의 아버지 헨리 그레이가 장녀인 제인 그레이의 복위를 위해 토마스 와이어트의 반란에 가담한 게 문제가 되어 그레이 가문이 완전히 몰락했으며, 그 후로 영국에서 도싯 후작이라는 작위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현재 이론상의 도싯 후작위 요구자는 헨리 그레이의 차녀이자 제인 그레이의 첫째 동생 캐서린 그레이가 직계 조상인 서머싯 공작 존 마이클 에드워드 시모어다. 자코바이트 왕위 요구자처럼 어디까지나 이론상의 작위 요구자일 뿐이므로 사실상 무의미하지만 말이다.


3.2.2. 랭커스터 공작[편집]


파일:랭커스터 왕조 휘장.svg
관련 칭호
랭커스터 공작
작위 요구자
(하노버 왕조)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스튜어트 왕조)
프란츠 폰 바이에른[3]
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알브레히트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막스 폰 바이에른
계승 실패 원인
1688년 제임스 2세 폐위, 1714년 왕조 단절 및 교체(스튜어트 왕조)
1837년 동군연합 해체, 1901년 왕조 교체(하노버 왕조)
잉글랜드 내에는 랭커스터 공국이 있는데, 영국 국왕이 곧 랭커스터 공작으로 간주되어 영국 왕실의 재정으로 관리된다. 이는 장미 전쟁에서 랭커스터 왕조의 방계인 헨리 7세가 최종적으로 승리하면서 생긴 관행이다. 따라서 명목상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왕족을 자칭하는 하노버 왕국,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왕위 요구자와 자코바이트 왕위 요구자는 랭커스터 공작 칭호의 요구자로도 볼 수 있다.


3.2.3. 올버니 공작[편집]


올버니 공작 문장
관련 칭호
올버니 공작
작위 요구자
후베르투스 프린츠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전임자
에른스트 레오폴트 프린츠 폰 작센-코부르크-고타[4]
후임자
제바스티안 프린츠 폰 작센-코부르크-고타
계승 실패 원인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직후, 독일 제국 산하 작위를 계승한 영국 왕족들의 영국 내 작위 박탈
최후의 올버니 공작인 카를 에두아르트는 본래 영국 잉글랜드의 서리 주에서 태어난 영국 왕족으로, 본가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원 작위인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위를 계승하고자 독일 국적을 택했다. 그러던 중에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영국과 독일이 서로 적으로 만나면서, 카를 에두아르트의 올버니 공작위를 포함한 영국 내 작위가 모조리 박탈되었다. 카를 에두아르트 본인을 포함해 그의 후손들은 당시 영국의 국왕이었던 조지 5세의 이런 처사에 동의하지 않았으므로, 2023년 현재까지 이들의 작위 요구는 유효하다. 현 올버니 공작위 요구자는 카를 에두아르트의 귀천상혼한 장남 요한 레오폴트의 장손 후베르투스이다.[5]


3.2.4. 요크 공작[편집]


파일:요크 왕조 휘장.svg
관련 칭호
요크 공작
작위 요구자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
전임자
마이클 에드워드 애브니-헤이스팅스
후임자
마커스 애브니-헤이스팅스
계승 실패 원인
1485년 공국 멸망
장미 전쟁에서 승리한 헨리 7세요크 왕조를 멸망시키고 요크 공국 또한 잉글랜드 왕국의 직할령으로 편입했다. 그 후로 요크 공작 칭호는 잉글랜드/영국 국왕의 둘째 아들이 받게 되었다. 현재 요크 왕조의 왕위 요구자인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가 현 윈저 왕가의 요크 공작 칭호 사용에 맞서 명목상의 요크 공작 칭호를 쓰고 있다.


3.2.5. 잉글랜드 국왕[편집]


파일:Royal_Coat_of_Arms_of_England_(1399-1603).svg
관련 칭호
잉글랜드 국왕
프랑스 국왕
스코틀랜드 국왕[프란츠]
아일랜드 국왕[프란츠]
바이에른 국왕[프란츠]
요크 공작[사이먼]
작위 요구자
(자코바이트파)
프란츠 폰 바이에른[6]
(요크 왕조)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
전임자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마이클 에드워드 애브니-헤이스팅스
후임자
막스 폰 바이에른
마커스 애브니-헤이스팅스
계승 실패 원인
1485년 왕조 교체(요크 왕조)
1688년 제임스 2세 폐위, 1707년 스코틀랜드와 통합, 1714년 왕조 단절 및 교체(스튜어트 왕조)
독일비텔스바흐 가문은 여계로 넘어온 자코바이트 계승권자로, 스튜어트 왕조의 왕위들을 요구할 수 있다. 스튜어트 왕조는 스코틀랜드 국왕 제임스 6세잉글랜드 왕위도 얻은 바 있다.

요크 왕조의 왕위 요구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1485년장미 전쟁에서 랭커스터 왕조 지지파가 승리하여 요크 왕조가 멸망한 이후 요크 왕가 후손들은 대대로 요크 왕조의 왕위를 요구하고 있으며, 현 왕위 요구자는 초대 클래런스 공작 조지의 후손인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다.

제인 그레이의 짧은 재위기간 및 요절로 인해 단명한 왕조인 그레이 왕조는 원래대로라면 제인 그레이의 방계 후손인 서머싯 공가가 이론상의 왕위 요구자 가문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제인 그레이가 자신의 폐위를 공식적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본 문단에는 없다.

3.2.6. 컴벌랜드 공작[편집]


관련 칭호
컴벌랜드 공작
테비엇데일 공작
하노버 국왕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작위 요구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7]
계승 실패 원인
1917년 영국 작위박탈법


3.2.7. 테비엇데일 공작[편집]


관련 칭호
테비엇데일 공작
컴벌랜드 공작
하노버 국왕
브라운슈바이크 공작
작위 요구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8]
계승 실패 원인
1917년 영국 작위박탈법
하노버 왕국의 국왕인 게오르크 루트비히가 영국에서 조지 1세로 즉위한 뒤로, 그의 손자인 조지 3세가 자신의 다섯째 아들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1세에게 컴벌랜드 공작위와 테비엇데일 공작위를 내렸는데, 이후에 영국에서 빅토리아 여왕이 즉위하자, 살리카법에 따라 여성의 왕위 계승권을 인정하지 않는 하노버 왕국과 영국 간의 동군연합이 해체되면서 하노버 국왕이 이 두 작위를 대대로 계승하게 된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면서 영국 내에서 반독 감정이 극심해짐에 따라, 1917년에 영국 의회에서 독일 국적자들의 영국 내 작위를 박탈하는 법이 제정되면서, 하노버 왕실은 컴벌랜드 공작위와 테비엇데일 공작위를 상실했다. 현재 하노버 왕위 요구자는 자동으로 브라운슈바이크 공작위와 컴벌랜드 공작위, 테비엇데일 공작위의 요구자가 된다.


3.3. 스코틀랜드[편집]



3.3.1. 스코틀랜드 국왕[편집]


파일:영국 국장(스코틀랜드).svg
관련 칭호
스코틀랜드 국왕
잉글랜드 국왕
아일랜드 국왕
프랑스 국왕
바이에른 국왕
작위 요구자
프란츠 폰 바이에른[9]
전임자
알브레히트 레오폴트 폰 바이에른
후임자
막스 폰 바이에른
계승 실패 원인
1688년 제임스 2세 폐위
1707년 잉글랜드와 통합
1714년 왕조 단절 및 교체
제임스 2세명예혁명으로 폐위되자 스코틀랜드 하이랜드 주민들과 아일랜드인들은 이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자세한 건 자코바이트 항목 참고.


3.4. 웨일스[편집]



3.4.1. 귀네드 국왕[편집]


파일:Aberffraw.svg
관련 칭호
귀네드 국왕
웨일스 공작
작위 요구자
에반 본 앤윌
계승 실패 원인
1283년 왕국 멸망
귀네드 왕국(웨일스어: Teyrnas Gwynedd, 영어: Kingdom of Gwynedd)은 중세 북웨일스에 있었던 왕국으로 사실상 웨일스를 제패했던 나라다. 프린스 오브 웨일스(Tywysog Cymru, Princes of Wales)라는 칭호도 귀네드 국왕이 썼다. 귀네드 왕국은 에드워드 1세 치세의 잉글랜드가 웨일스를 점령하는 와중에도 끝까지 저항했으나 끝내 멸망하여 잉글랜드 치하에 놓이게 되었다. 현 왕위 요구자 에반 본 앤윌은 오웨인 압 그루피드의 후손이다.

물론 영국이나 (독립 가능성은 희박하지만[10]) 향후 독립된 웨일스 안에서 그가 귀네드 국왕이라는 칭호를 쓸 수 있게 해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3.4.2. 웨일스 공작[편집]


파일:princeofwalesfeather.png
관련 칭호
웨일스 공작
잉글랜드 왕세자[막스][마커스]
프랑스 왕세자[막스][마커스]
스코틀랜드 왕세자[막스]
아일랜드 왕세자[막스]
바이에른 왕세자[막스]
요크 공세자[마커스]
하노버 왕세자[에른스트]
브라운슈바이크 공세자[에른스트]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 왕세자[에른스트]
인도 황태자[에른스트]
노르망디 공세자[에른스트][막스][마커스]
작위 요구자
(독립 공작)
러웰린 존스
(하노버 왕조)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6세
(자코바이트파)
막스 폰 바이에른
(요크 왕조)
마커스 애브니-헤이스팅스
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11]
프란츠 폰 바이에른[12]
사이먼 애브니-헤이스팅스[13]
후임자

벨프 아우구스트[14]
조피 폰 바이에른[15]

계승 실패 원인
1284년 공국 멸망(독립 공작)
1485년 왕조 교체(요크 왕조)
1688년 제임스 2세 폐위, 1707년 스코틀랜드와 통합, 1714년 왕조 단절 및 교체(스튜어트 왕조)
1837년 동군연합 해체, 1901년 왕조 교체, 1922년 연합왕국 해체(하노버 왕조)
웨일스 공국이 잉글랜드 왕국에 정복되어 웨일스 공작 칭호가 영국 왕세자의 칭호로 자리잡은 뒤에도, 영국 왕세자와 별개로 명목상의 웨일스 공작 칭호를 대대로 쓰는 웨일스 공가 후손이 남아있다. 현 공위 요구자는 러웰린 존스다.

이와는 별개로, 하노버 왕조 측이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왕위를 주장하는 관계로, 이 작위의 요구자의 후임자는 자동으로 웨일스 공위 요구자가 된다. 잉글랜드의 왕위를 요구하는 자코바이트 계열과 요크 왕조의 후계자들도 마찬가지다.

3.5. 영국 본토 밖[편집]



3.5.1. 맨 섬 영주[편집]


파일:1280px-Coat_of_arms_of_the_Isle_of_Man.svg.png
관련 칭호
맨 섬 영주
작위 요구자
(영국 왕실 직할령 맨 섬)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독립 영지 맨 섬)
그레이스
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데이비드
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6세

계승 실패 원인
1765년 영국 왕실 직할령으로 편입(독립 영지 맨 섬)
1837년 동군연합 해체, 1901년 왕조 교체(하노버 왕조)
본래 맨 섬은 스코틀랜드 서부 섬들과 함께 통치되던 독자적 국가였다가 이후 통일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귀족이 자국 밖에서 영주로서 통치하던 땅이 되었는데, 1765년에 그레이트브리튼 왕국 국왕 조지 3세가 맨 섬의 영주로부터 맨 섬을 구입하면서 영국 왕실 직할령이 되었다. 다만 명목상의 맨 섬 영주 계보는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현 영주위 요구자는 그레이스다. 한편 맨 섬을 구입한 조지 3세를 시작으로 영국 국왕이 맨 섬 영주 칭호를 쓰기 시작했으므로 상술한 영국 하노버 왕조의 왕위 요구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또한 맨 섬 영주위 요구자라고 볼 수 있다.


3.5.2. 지브롤터 영주[편집]


파일:지브롤터 문장.svg 파일:스페인 국왕 휘장.svg 파일:758px-Greater_Arms_of_Charles_I_of_Spain,_Charles_V_as_Holy_Roman_Emperor.svg.png
관련 칭호
지브롤터 영주
영국 국왕
하노버 국왕
스페인 국왕
아라곤 국왕
네오파트라스 공작
스페인 국왕
에트루리아 국왕
파르마 피아첸차 공작

양시칠리아 국왕
칼라브리아 공작
프랑스 국왕
나바르 국왕
앙주 공작
부르봉 공작
작위 요구자
(하노버 왕조)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
(현직 스페인 국왕)
펠리페 6세
(카를로스 정통주의)
식스토 엔리케 데 보르본-파르마 이 보르본-부세트
(카를로스주의)
카를로스 하비에르 데 보르본-파르마 이 오란지-나사우
(압스부르고 왕조)
도미닉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
(카를로스주의)
페드로 후안 데 보르본 도스-시실리아스 이 오를레앙[16]
(자유주의)
루이스 알폰소 데 보르본 이 마르티네스-보르디우
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4세
후안 카를로스 1세
하비에르[17]
카를로스 우고 데 보르본-파르마[18]
안톤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19]
카를로스 마리아 알폰소 마르셀로
알폰소 2세
후임자
에른스트 아우구스트[20]
레오노르 데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오르티스[21]

(카를로스) 우고 데 보르본-파르마
잔도어 합스부르크-로트링겐
하이메
루이스 데 보르본 이 바르가스
계승 실패 원인
1700년 영국의 지브롤터 합병(스페인 국왕)
1901년 왕조 교체(하노버 왕조)
지브롤터는 본래 스페인령이었으나, 1700년에 스페인 왕위 계승 전쟁의 와중에 영국이 일방적으로 점령하면서 영국령이 되었는데, 스페인 정부와 왕실이 이 사실을 인정하지않고 지브롤터를 스페인에 반환하라고 요구하고 있으므로, 스페인 왕위 요구자와 현직 스페인 국왕은 자동으로 지브롤터 영주위 요구자가 된다. 그리고 하노버 왕조지브롤터영국령이 된지 한참이나 지난 1901년부터 영국의 왕위 요구자가 되었는데, 이에 따라 자동으로 지브롤터를 포함한 영국의 모든 속령에 대한 권리의 요구자가 된다.

지브롤터유럽 본토에 위치해있지만, 스페인을 제외하면 국제사회에서 영국 영토로 인정되므로, 이 지역에 관련된 지위를 요구하는 사람은 영국의 작위 요구자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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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2] 성씨에 Königlicher Prinz von Großbritannien und Irland를 추가했다. 당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은 그레이트브리튼 북아일랜드 연합왕국과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나누어져 해체된 상태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성씨에 추가한 말에 Nordirland(북아일랜드)가 아니라 그냥 Irland(아일랜드)가 들어갔다는 건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해체를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거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로서 그레이트브리튼 아일랜드 연합왕국의 왕족을 자칭하는 이들은 하노버 왕국과 브라운슈바이크 공국의 왕위 요구자 뿐인 셈이다.[3]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4] 후베르투스의 아버지.[5] 이전에는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위 요구자인 안드레아스로 나와 있었지만 영국의 작위는 귀천상혼 여부 상관없이 철저한 장자상속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3남의 장남인 안드레아스는 정통성이 떨어진다. 때문에 만일 작위가 박탈되지 않았다면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위와 올버니 공작위는 카를 에두아르트가 죽으면서 분할 상속되었을 것이다. 영문 위키백과에서도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위 계승 권리만 잃었을 뿐 올버니 공작위 부활을 위해 영국 왕실에 요청하는 것은 금지되지 않았다고 나와있다.[프란츠] A B C [사이먼] [6]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7]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8]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9]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10] 웨일스잉글랜드와 함께 영국의 구성국들 중에서는 독립 여론이 가장 낮은 곳이다. 매우 오래 전에 잉글랜드에게 정복당한 역사가 있어서, 같은 켈트계 국가인 스코틀랜드아일랜드보다도 잉글랜드와 국민정서상 더 가깝게 여기는 편이다.[막스] A B C D E F [마커스] A B C D [에른스트] A B C D E 아우구스트[11]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버지.[12] 프란츠 보나벤투라 아달베르토 마리아 헤츠호그 폰 바이에른[13] 마커스 애브니-헤이스팅스의 아버지[14]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15] 막스 폰 바이에른의 장녀이자 리히텐슈타인 공세자빈[16] 페드로 후안 마리아 알레요 사투르니노 이 토도스 로스 산토스 데 보르본 도스-시실리아스 이 오를레앙[17] 프란시스코 하비에르 데 보르본-파르마 이 데 브라간사[18] 하비에르의 장남. 카를로스 하비에르의 아버지.[19] 안톤 마리아 프란츠 레오폴트 블랑카 카를 요제프 이그나츠 라파엘 미하엘 마르가레타 니체타스 폰 합스부르크-로트링겐[20] 에른스트 아우구스트 5세의 아들.[21] 펠리페 6세의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