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위/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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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번역의 문제
3.1. 세속 군주
3.2. 성직 군주
4. 주요 작위
4.1. 세속 제후
4.1.5. 코메스(COMES)[1]
4.2. 성직 제후
5. 기타 작위
5.2. 부왕(副王)
5.5. 기타
6. 관련 문서
7. 참고 자료


1. 개요[편집]


유럽 귀족 작위의 대략적인 틀은 모두 고대 로마에서 기원하여 프랑크 왕국 카롤루스 왕조 때 정립된 것이다. 특히 영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지와 같이 중세 성기에 봉건제가 확립된 나라의 행정 문서를 보면 라틴어로 해당 작위명을 쓴 것을 볼 수 있다. 왕은 REX, 공작은 DUX, 백작은 COMES, 남작은 BARO 같은 식.

고대 말~중세 초기 서로마 제국이 한순간에 뿅 붕괴한 것 혹은 게르만족들이 로마의 영토를 침탈하기 위해 로마의 국경 안으로 들어와 영토를 뜯어먹은 것으로 생각하기 쉬우나, 사실 대부분의 게르만족들은 오랜 기간 교류해온 로마 문명을 스스로 선망해서 로마의 시민권과 관직을 원했고 서로마 각지에서도 분리주의적 움직임이 나타나 양자가 결합하면서 해체된 것에 가까웠다. 실제 군사력이 사실상 없던 서로마 황제는 영토를 이미 점유한 게르만족들에게 사후승인 식으로 해당 지역에 대한 지방관직을 뿌렸다. 이때 관직의 칭호는 일정한 기준에 따른 것은 아니어서 전통적인 로마 관직인 프라이펙투스(Praefectus)에서부터 장군(Dux), 대관구장(Patrician), 행정관(Comes) 등 일정한 법칙 없이 주어졌다. 로마에서는 5세기 경 이미 직위가 세습 가능한 재산의 일종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에 따라 로마의 제도를 따라한 게르만족의 봉건제에서도 저런 직위들이 세습 가능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8세기에 이르러 대륙의 대부분의 게르만 세력은 카롤루스 대제에게 무력으로 통합되었지만, 기존의 강력한 게르만 대족장들의 지위를 완전히 박탈할 수는 없었기에 실질적으론 이들이 반독립적인 세력으로서 프랑크 왕국에 종속되는 것에 불과했다. 카롤루스 대제는 이러한 대족장들에게 'Herzog'라는 관직을 수여했는데, 이는 고대 게르만족에서 '부족을 전쟁터로 이끌고 나갈 지도자로 선출된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던 'Harjatugô'에서 유래한 것이었기에, 이것이 법률용어인 라틴어로 번역될 때는 고대 로마의 'DUX'로 번역되는 것이 가장 적절했다. DUX라는 관직이 단순한 자칭 칭호로 여겨지기 쉬움에도 불구하고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 군주 다음 격의 지위의 작위로 공식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사례에 따른 것이며, 한자문화권에서 DUX 계열의 작위는 보통 공작으로 번역된다.

한편, 프랑크 왕국은 행정관이라는 의미의 COMES라는 관료직을 만들어 소규모 유력자들에게 행정 구역을 할당했다. 이때 유력자들은 봉급을 화폐로 된 급여 대신에 은대지(BENEFICIUM)로 수여받았다. 이것은 특정한 토지의 조세권을 수여받는 것으로, 고려의 전시과나 조선의 과전법이랑 비슷하다고 이해하면 편하다. 원래 법적으로 은대지는 직위가 끝나면 왕이 회수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귀족 사회는 이 은대지의 세습을 끝없이 요구했고, 직위 역시 별 문제가 없으면 세습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결국 은대지는 세습화 되어 영지로 발전한다. 다만 알아둬야할 것이, 사실 카운티를 비롯한 후대 영지 그 자체는 은대지가 아니었다. 영역은 순전히 사법이나 행정, 군사 업무 등의 관할권으로, 보통 영내에 일정 부분은 은대지로 지정되었으나, 사유화와 가산화가 진행되면서 관할권 전체를 영지로 삼게 되었다.[2]

시간이 흐르면서 더 다양한 작위가 나타나고 복잡해지지만, 적어도 서로마제국 붕괴기~중세 전기 동안에 생긴 제일 핵심적인 작위 구조는 렉스(REX, 왕)-둑스(DUX, 공작)-코메스(COMES, 백작)[3] 셋이라고 보면 이해하기 쉽다.

DUX나 COMES 등은 본래 관직에서 출발한 개념이었고, 특히 프랑크 왕국의 법률에는 한 사람이 복수의 관직(작위)를 겸임하거나 복수의 지역을 관할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러나 프랑크 왕국이 분할되면서 이러한 원칙은 유명무실해지고, 크고 작은 유력자들 사이에서 서로의 관직과 영역을 쟁탈하는 약육강식의 세상이 펼쳐졌다. 본래부터 반독립적인 세력이었던 DUX는 자연스럽게 거대한 세력을 이뤘으며, 하위 행정관 개념이었던 COMES도 약소 세력들을 흡수하여 큰 세력으로 성장하기도 했다.[4] 명분상이나마 관료였던 유력자들은 이렇듯 영역제후로 변신하여 반독립적 지위를 누리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관할구역은 영지가 되었다.

그 외에도 10세기 이후 축성술의 발전으로 지방의 소규모 유력자들이 성을 쌓고 사병을 기른 다음 주변 성들을 점령해서 스스로 영주로 오른 경우도 나타났다. 이들은 프린스, 로드(Lords), 도팽(Dauphin),[5] 대백작 등 일관적이지 않은 칭호을 자칭하기도 했으나, 대체로는 기존에 통용된 보편적인 관직 칭호를 썼다.

영역제후령이 해체된 근세에도 왕국 중앙 귀족이나 관료들이 대부분 백작 작위인 것도 백작의 유래 자체가 왕이 임명한 행정관이라는 관념이 이어진 결과였다.[6] 덕분에 '백작이 공작보다 (권력으로 보나 권위로 보나) 하위의 작위'라는 흔한 인식과 달리, 지방 귀족 세력의 힘이 약화된 근세에는 공작보다 백작이 더 정계에 많이 나타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카롤링거 프랑크 왕국의 위계는 장기적으로 전유럽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나, 각국이 저마다 다른 환경에 놓여있었기에, 상호 간에 작위체계가 완전히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 전통을 가장 잘 계승한 프랑스와 독일 간에도 차이점이 여럿 존재하는데, 대표적으로 중세 초 기독교 세계의 변경이었던 독일에서는 이민족 침입에 대응하고자 후작(변경백) 작위를 활발히 생성하는가 하면, 더 늦게 봉건제를 도입한 탓에 독립적 세력이 오래 존재하여서 중앙집권적 황제권력과 지방분권적 제후권력, 중간자적 교회권력 간 상호작용 속에서 선제후궁정백, Fürst, 주교후, 제국백, 제국기사 등 독특한 작위들이 탄생하였다. 프랑스의 경우 독립적인 영역제후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왕실 강화책으로 왕자나 친족을 새로이 신설한 여러 도팽(Dauphin)이나 공작(Duke) 등으로 임명하였다. 영국은 앵글로색슨 7왕국이후 시대에는 이교도 대군세앵글로-노르드 왕조 시대처럼 한 차례 노르드인의 영향을 받았다가 노르만 정복으로 체제를 재구성하면서 다양한 전통이 혼합되었다. 노르만 왕조 성립시에는 백작(Earl)이나 하위 행정관(Shire reeve; Sheriff) 등은 각각 노르드와 앵글로색슨 사회에서 받아들이면서도 기존의 Thegn(테인)은 각각 대륙의 남작(Baron)으로 대체하였고, 더 나중에는 공작(Duke)도 도입하였다. 동유럽 슬라브인의 경우, 역시 봉건제 도입에서 독일의 영향을 받았지만, 공작(Herzog)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고 전통적인 Князь(Prince; Fürst)가 그 위치를 차지하는 경우도 있었다.


2. 번역의 문제[편집]


유럽의 작위를 번역하는 것에는 이미 많은 견해의 차이가 존재하는 관계로, 본 문서는 특정 역어를 내세우기보다는 일반 언중에서 자주 쓰이는 번역어를 채택하되 혼동을 막고자 원어(주로 라틴어)를 병기한다.

우리에게 익숙한 오등작식 역어는 일본에서 탄생하였다. 메이지 유신 시대 일본이 유럽식 작위제를 도입하면서, 동아시아 오등작에 맞추어 번역하였는데, 실제로는 전혀 다른 작위들을 동일하게 번역하는 바람에 유럽 작위의 서열 문제를 오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이것은 그 당시부터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에서 귀족들 뿐만 아니라 평민들도 정치를 할 수 있었고 귀족들의 작위가 서열화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는 많은 유럽 국가들에서도 이런 번역을 차용해, 독일의 Burggraf 라는 작위는 Viscount로 쓰지 않고 Burgrave로 옮기지만, 유래가 같은 네덜란드벨기에의 Burggraaf는 자국에서도 아예 Viscount(자작)로 번역하고 서유럽권에서도 Viscount로 옮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단 번역 자체는 해야 하니) 굳이 일본의 시도 자체를 비판할 것까지는 없지만, 저렇게 대충 번역한 것에 맞추어 중근세의 사회상을 이해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문제가 된다.

일단 상기했듯 유럽 작위 체계는 그 골자를 최초 관료제 시절에 비추어 REX(왕)–DUX(공작)–COMES(백작)의 3단계 혹은 일반적인 귀족과는 어느 정도 구별되는 지위인 군주를 제외하고 자유영주의 작위 체계 편입을 염두에 두어 DUX(공작)–COMES(백작)–BARO(남작) 3단계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하다.[7] 일본식 번역에서 후작으로 번역하는 Markgraf는 백작의 파생 작위이며, 자작으로 번역되는 Viscount도 백작의 보좌역으로 파생 작위에 해당한다.

또한, 백작은 그 근본이 군주의 행정관이고 후대 작위 수여에서도 충실히 반영되지만, 공작은 군사령관에서 출발하였어도 점차 지방 세력으로서 성격이 강해지면서, 후대에는 (명목 상으로는 공작이 상위인데도) 백작이 (각종 궁중직 등 중앙 관직을 역임함으로서) 실질적 권력을 더 크게 가지는 일도 흔했다. 이 역시 중세 유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저 오등작 체계로만 이해하는 사람에게는 이상하게 비춰질 수 있는 부분이다.

한편, 유럽 내에서도 어원은 같은데 사회·문화적 차이로 지위가 달라진 작위가 있기에 번역 문제가 커진다. 대표적 사례는 로마의 프린켑스(PRINCEPS)에서 유래한 Prince인데, 이 작위는 영어프랑스어권과 독일어권에서 그 지위가 상이하다. 영어–프랑스어권에서는 왕국(Kingdom)에서 군주의 친족(특히 후계자)에게 주는 작위로 자주 쓰였기에 흔히 왕자라고 번역되나, 동시에 '(태생·혈통이) 고귀한 자'라는 원관념에 충실한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부족제적 관념이 이어진 독일어권에서는 각지의 영주들이 저 '고귀한 자'라는 칭호를 쓰기에 충분한 자로 간주되어서 황제에게 임명된 영역제후, 즉 백작과 변경백도 프린스(Fürst, 퓌르스트)를 자칭했다. 결과적으로 영어–프랑스어권에서는 프린스가 '왕자'나 '대군(大君)'으로서 왕에 버금가는 우월한 작위가 되었으나, 독일어권에서는 공작(Herzog)보다 낮은 격인 칭호가 되었다. 덕분에 현대에도 모나코안도라, 리히텐슈타인의 군주가 졸지에 왕자로 번역되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하여간 프린스를 독립국가의 군주로 칭할 때는 흔히 대공이라고 번역하나, 이 역시 공작으로 번역되는 Duke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오해될 소지가 있다.[8] 오스트리아 같이 'Erzherzog(Archduke)'를 칭한 것[9] 역시 대공이라고 번역되어서 오해의 소지가 있다는 점에서 더욱 오해의 여지가 크고, 심지어 Grossherzog(Grand Duke), Grand Prince,[10] High Duke 등을 포함하면 더 복잡해진다.

사실 현대 입장에서는 작위를 세세히 따지면서 서열을 따지는 것 자체가 역사학에서 아주 큰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말하자면 전근대 시대 귀족들끼리의 서열 싸움을 위한 설정놀음에 가깝기 때문이다.

한편 작위에 대한 이해는 동아시아에서도 역사적 맥락에 따라서 시시때때로, 나라별로 다르고 바뀌었다는 점도 일원적인 번역을 어렵게 만든다.

이를테면 춘추시대 이전에는 중원의 패권을 장악한 주나라의 군주만 왕을 자칭했고, 주나라의 종법 질서에 따르는 주변부의 수많은 도시국가의 군주들은 제후를 자처해, 제후가 오히려 더 보편적인 군주의 개념이었다. 하지만 전국시대에 모든 제후들이 을 자칭하면서 기존에 제후의 칭호였던 후작은 제후(군주)의 신하에게 수여되는 명예 작위로 격이 낮아졌고, 고조선에 관해서도 "조선후가 왕을 칭하였다"라는 기록을 남길 정도가 되었다. 진나라가 통일 이후 황제 칭호를 만들고, 한나라 때부터 황족들을 왕작으로 책봉하는 관례가 정착되면서, 왕조차도 신하에게 수여하는 작위 칭호로 또 격하되었다.

이러한 작위 인플레이션으로 격이 떨어지는 일이 빈번했기에, 봉건시대 국가들은 자기 칭호를 실제 위신에 맞추려고 노력했는데, 가깝게는 구한말 조선대군주라는 칭호를 자칭한 사례가 있다. 당시 서구에서도 이미 동아시아에서는 왕이 황제에게 책봉된 제후 작위의 개념으로 쓰인다는 점이 널리 알려졌기에, 서구 세력과의 교류에서 조선의 자주성을 강조하고자 새로운 칭호를 만들 필요가 있던 것이다. 서양에서 서술한 동아시아사를 봐도, 독립국 군주는 Emperor로 옮기고 King은 황제국의 속국이라는 점을 강조해서 설명한다. 일본의 덴노를 일반적으로 Emperor라고 번역하는 것도 그 영향. 베트남도 외왕내제를 철저히 실행했기 때문에 다이비엣응우옌 왕조에 대해서도 군주를 Emperor라고 번역해준다.


3. 군주[편집]




3.1. 세속 군주[편집]




3.2. 성직 군주[편집]




4. 주요 작위[편집]



4.1. 세속 제후[편집]


사실 유럽에는 동양의 '제후'라는 신분 개념은 없었다. 하지만 군주와 그에 예속되는 영주가 구별되는 것은 동양과 동일했고, 귀족 계층 내에서도 정규 작위가 있는 Major nobility와 비정규 작위를 보유하거나 단순한 지주인 Minor nobility의 구분도 있다. 따라서 보통 봉토와 정규 작위가 있는 계층을 제후로 인식하며, 그 작위 칭호는 오등작에 상응하여 번역되고 있다.

라틴어를 기준으로 하여, 독일어·영어·프랑스어·이탈리아어·스페인어·러시아어 순으로 각각의 칭호를 표로 정리하였다. 언어 칸에 연한 초록색으로 칠해진 것은 해당 언어를 사용한 나라에서 실제 사용된 작위가 아니라 번역어임을 의미한다.


4.1.1. 선제후[편집]


언어
남성형
여성형
라틴어
Princeps Elector
독일어
Kurfürst
Kurfürstin
영어
Prince-elector
Prince-electress
프랑스어
Prince-électeur
Princesse-électrice
이탈리아어
Principe Elettore
Principessa Electrice
스페인어
Príncipe Elector
Princesa Electora
러시아어
Курфюст(Kurfyust
Курфюстина(Kurfyustina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황제를 뽑는 권한을 가진 제후들. 1356년 황제 카를 4세가 금인칙서에서 모든 제후 중 가장 우월한 지위로 공표했다. 이후 선제후를 겸하는 작위의 소유 가문 변동 같은 정치 환경의 변화에 따라 때때로 선제후를 겸하는 작위가 바뀌기도 하였으나, 선제후 제도 자체는 제국이 해산될 때까지 존속하였다.

법에 따라 선제후로 지정된 작위들의 격은 왕(보헤미아), 궁중백(라인팔츠), 공작(작센 등), 변경백(브란덴부르크) 등 다양했으나, 황제를 선출하는 특권 자체가 독보적이었기에 선제후라는 칭호를 더 내세웠다.[11]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들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제국이 해산되는 과정에서 나폴레옹에 의해 또는 대공(Großherzog)으로 지위가 바뀌었다. 라인 동맹에 반대했던 헤센-카셀 선제후 만이 빈 체제 이후에도 선제후 칭호를 사용했으나,[12] 1866년에 프로이센 왕국에 합병되어 소멸되었다.


4.1.2. 프린켑스(PRINCEPS)[편집]


언어
왕족 칭호로써
제후 칭호로써
비고
남성형
여성형
남성형
여성형
라틴어
Princeps
Principissa
(좌측과 동일)

독일어
Prinz
Prinzessin
Fürst
Fürstin

영어
(Royal) Prince
(Royal) Princess
(Sovereign) Prince
(Sovereign) Princecess

프랑스어
Prince (Royal)
Princesse (Royale)
Prince (Souverain)
Princesse (Souverain)

이탈리아어
Principe (Reale)
Principessa (Reale)
Principe (Sovrano)
Principessa (Sovrano)

스페인어
Príncipe (Real)
Princesa (Real)
Príncipe (Soberano)
Princesa (Soberano)

러시아어
Царевич(Tsarevich
Царевна(Tsarevna
Князь(Knyaz
Княгиня(Knyaginya
[13]

우리말에서는 주로 남성은 왕자, 여성은 공주왕녀 정도로 옮기는 경우가 많으나, 하술하듯 실제로는 구체적인 의미를 가려서 군주, 제후, 공(또는 후) 등 적절한 역어로 구별하여 번역해야 한다.

라틴어 PRINCEPS는 고대 로마에서는 원수정 시기 시민 중 으뜸으로 취급되었던 황제의 칭호로, 거슬러 올라가면 First와 어원이 같다. 곧 으뜸인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게르만 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혈통적 우월성이 짙으며 부족제 사회에서는 족장을 의미하게 되었다. 독립국 군주가 쓸만한 칭호였으나, 서유럽에선 시간이 흐르면서 격이 떨어지고 왕실·가문 작위로 변용되어 군주·고위 제후의 후계자나 일족을 지칭하는 칭호가 되었고, 결국 독일어권과 영어–프랑스어권의 사회문화적 차이로 그 관념이 달라지게 되어, 독일어를 기준으로 Fürst와 Prinz로 분화하게 되었다. 비교사적으로는 중국왕작,[14] 조선군(君)과 매우 유사하다.

이와 같이 개념이 분화된 것은 단어의 원관념, 즉 '고귀한 자'라는 관념과 큰 관련이 있다. 프린스는 그 권위가 혈통에서 비롯하였으며, 그 자체로 독립국 군주에 대한 호칭으로서 충분한 칭호로 간주된 것이다. 이 점은 그러한 의미가 분화되고 강화되면서 탄생한 Prince(Prinz)가 특히 군주의 일족에 대하여 쓰였다는 점, 그것도 Emperor(Kaiser)나 King, Grand Duke, Grand Prince 등을 막론하였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프랑스고대 로마부터 공적 지배체제를 경험하고서 봉건제로 이행하였으며, 영국도 비록 초기 앵글로색슨이주 시기로만 브리튼의 전통이 상당수 파괴되었기는 해도 프랑스와의 지리적 인접성에 따른 지속적 교류로 기독교와 로마의 유산을 앞선 시기에 재도입할 수 있었다. 그래서 영국이나 프랑스에서는 아무리 세력이 큰 제후라도 왕이 권위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인정하였으며, 이미 자리잡은 관료제적 지위(Duke, Count 등)를 가산화하여 봉건귀족이 되는 방식을 취하였기에 굳이 부족제 전통인 프린스 호칭을 자칭하려 하지 않았다.[15] 영국과 프랑스에서 Prince(Fürst)는 외부로부터 도입한 것에 가까웠다. 예컨대 프린스 오브 웨일스는 잉글랜드 왕국 외부에서 웨일스인 스스로 건국한 웨일스 공령을 정복하면서 편입한 것이다. 이러한 작위 중 일부는 왕실 구성원들이 겸하게 되면서,[16] 비록 그 작위 자체는 엄연히 왕족(Royal Prince)이나 태자(Crown Prince)라는 의미와는 구분되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론 Prince는 왕족이 전용하는 칭호라는 정치적 의미가 부여되어 관료제적 작위보다는 우월한 지위로 인식되었다.[17]

반면 독일 지역에선 프랑크 왕국 시대 이후에도 부족제가 유지되면서,[18] 부족 공국들을 위시한 유력자 집단은 '고귀한 자'로써 Prince(Fürst)를 칭해왔고, 그에 따라 독일에 난립한 (반)독립적 군소세력들은 오랜 기간 Fürst(퓌르스트)라는 이름으로 존재하였다. 신성 로마 제국에서 퓌르스트는 부족제 시절 유력자의 후예로서 선제후(Kurfürst) 탄생 전까지는 제위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선제후가 형성된 뒤에도 황제가 임명한 제후라면 다들 사용할 수 있는 그럭저럭 지체 높은 칭호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에서 선제후가 황제(독일왕) 다음의 최고위 격으로 설정되고 그에 다음가는 격으로 Herzog를 명시적으로 규정하면서, 선제후나 Herzog는 점차 Fürst를 자칭하려 들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Fürst는 Markgraf(변경백)나 Graf(백작)처럼 Herzog보다 낮은 '황제 직속 제후'를 통칭할 때 사용되었다.

16세기 무렵부터 Herzog보다 낮은 여러 작위를 단일 작위인 Fürst로 통합하는 것을 황제에게 승인받고, 이를 공식 칭호로 내세우는 제후들이 등장했다. 즉, Fürst는 앞서 살펴본 제후(諸侯)를 지칭하는 통칭 개념이 아니라 고유 작위로서 쓰이는 경우에도 Herzog보다는 격이 낮았다.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으로 신성 로마 제국의 영방 제후에게 주권이 공인되자, Herzog 이상의 작위를 가진 제후는 본래의 작위를 그대로 사용했지만 그보다 낮은 제후들은 Fürst 칭호를 내세우며 그 국체(國體) 또한 Fürstentum으로 만들기 시작했고,[19] 신성 로마 제국이 해체된 뒤 라인 동맹에서 백작 계통의 칭호를 유지하고 있던 제후들은 모두 Fürst로 단일화되었다.[20] PRINCEPS 계열의 칭호가 다른 지역에서는 보통 군주에 준하는 칭호로, DUX와 동격이거나 그보단 약간 높은 정도의 서열로 취급되는데 반해, 독일 지역에서 Fürst가 DUX(Herzog)의 아래 서열로 규정된 것은 이러한 배경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신성 로마 제국의 Fürst는 맥락에 따라 제후나 후작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21] 영어–프랑스어권에서도 엄밀한 구분이 필요하다면, 영역제후로서의 Fürst는 "Sovereign Prince"라고 부연한다. 반대로 독일어에서는 군주나 영역제후 Prince는 Fürst로 옮기고, 같은 단어에서 파생된 Prinz는 군주나 고위 제후의 후계자 혹은 귀족 가문원의 칭호를 가리킨다.

한편 동유럽에서는 프랑크 왕국에서 기원한 Herzog(Dux)를 칭하는 사례가 없었기에, 자연히 PRINCEPS와 같은 격인 Voivode 또는 Князь가 영역제후의 최고 서열 칭호로 자리매김 했다. 게다가 같은 Principality(Fürstentum)라도 독일 내 작은 영방국가와 동유럽의 Voivode나 Князь가 다스리던 거대한 나라는 그 규모부터 다르기도 하다. 따라서 Voivode와 Князь는 다른 유럽 언어로 Prince(Fürst)로 번역되지만, '공작'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이처럼 PRINCEPS는 번역이 대공(大公)·공(公) 또는 후(侯) 등 어느 하나로 정해지지 못하여, 여러 가지가 난립하는 어려움이 있다. 작위 서열을 자세히 따지지 않아도 '왕자'라는 의미인지 '군주'라는 의미인지 헛갈려 오역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 제국제후(Reichsfürst)
원래는 황제가 공식 승인한 Fürst 정도의 의미로 성직 제후와 세속 제후 구분없이 지정되었고, 세속 제후 중에선 왕·Herzog·Markgraf·Landgraf·Pfalzgraf·Graf 등을 망라했다. 16세기부터 제국의회가 상설화되면서 이 칭호는 점차 제후인단(Fürstenrat) 중에 단독으로 1표를 행사하는 제후를 의미하게 된다.[22] Reichsfürst로 공인받은 것이 영지를 Fürstentum으로 승격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으며,[23] 반대로 황제가 영지를 Fürstentum로 승격시키는 것이 제국의회에서 1표를 행사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기에 Fürst 중에는 백작단(Grafenkollegium)에 소속되어 공동으로 표를 행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 Grand Prince
  • 대공국
    • 프린스 오브 웨일스: 잉글랜드 왕국의 확정상속인에게 관습적으로 수여하던 영역제후 작위이다.[24] 영어로는 똑같이 Prince라고 쓰기에 분간하기 어렵지만, 이 작위는 본디 영역제후로서 탄생하였기에 왕실 작위나 가문 작위인 독일어의 Prinz에 해당하지 않는다. 독일에서는 관용적으로 영국의 표현을 존중하여 Prince of Wales라고도 쓰지만, 자국어로 번역할 때는 Fürst von Wales라고 쓴다.[25]
    • 프린시페 데 아스투리아스: 위와 같은 이유에서 Fürst에 해당한다.


4.1.3. 둑스(DUX)[편집]


언어
남성형
여성형
라틴어
Dux
Ducissa
독일어
Herzog
Herzogin
영어
Duke
Duchess
프랑스어
Duc
Duchesse
이탈리아어
Duca
Duchessa
스페인어
Duque
Duquesa
러시아어
Герцог(Gertsog
Герцогиня(Gertsoginya

상기하였듯 카롤루스 대제가 게르만 지역의 대족장에게 수여한 관직인 'Herzog'가 라틴어로 번역될 때는 고대 로마의 'DUX'로 번역되는 것이 가장 적절했기 때문에, 이 사례에 따라 서유럽과 중부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군주에 준하는 최고위 작위가 되었다. 특히 후일 신성 로마 제국선제후가 제정된 이후에 선제후의 다음가는 작위의 격으로 Herzog를 명시적으로 규정하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중세 초기에는 독립성이 강한 제후였으나, 중세 사회가 안정화 되어감에 따라 군주의 권한이 점점 확대되면서 제후들을 견제하려는 군주의 필요로 신설되기도 했다. 프랑스의 경우 왕족의 방계 가문이 가질 영지를 만들기 위해 여러 백작령을 묶어 공작령을 만들었고, 신성 로마 제국의 경우 공위가 된 부족 공국을 적당히 약화시키기 위해 옛 부족공국에 더 작은 규모의 공작위를 신설해 분할하기도 했다.[26]

러시아에선 독일어 Herzog의 번역어인 'Герцог'를 다른 유럽의 DUX 계열 작위를 번역하는데 사용했다. 특히 러시아 제국에서 Герцог를 임명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모두 외국인이 받은 명예상의 칭호에 불과했으며, 국내의 작위로 사용된 적은 없다. 슬라브권에선 보통 Князь(PRINCEPS)가 '공작'으로 번역된다.

  • Archduke[27]
  • 공국
    • 부족 공국[28]


4.1.4. 마크그라프(Markgraf)[편집]


언어
작위 칭호
독일권 Markgraf의 번역
남성형
여성형
남성형
여성형
라틴어
Marchio
Marchionissa
(좌측과 동일)
독일어
Markgraf
Markgräfin
영어
Marquess
Marchioness
Margrave
Margravine
프랑스어
Marquis
Marquise
Margrave
Margravine
이탈리아어
Marchese
Marchesa
Margravio
Margraviato
스페인어
Marqués
Marquesa
Margrave
Margravina
러시아어
Маркиз(Markiz
Маркиза(Markiza
Маркграф(Markgraf
маркграфин(Markgrafin

프랑크 왕국에서 임명된 백작(COMES; Graf)의 일종으로, 국경 일대에 설치된 변경주(Mark)를 담당하여 자체적인 군사력을 갖추고 외세로부터 제국을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 변경주는 다른 영지에 비해 폭넓은 군사권과 사법권이 인정되었으며, 국경 밖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이를 가신들에게 분봉할 수도 있었기에, 중세 초기에는 상당한 세력을 떨치던 영역제후였으며 자연히 백작 계층 내에서도 그 서열이 높았다.

하지만 신성 로마 제국에선 주변 나라들이 카톨릭화되고 영역제후들이 여러 영지를 보유하는 사례가 흔해지면서 변경주의 가치가 퇴색되고, 유력한 Markgraf들은 선제후나 공작(Herzog)으로 승격했기에, 남아있는 Markgraf는 백작(Graf)과 특별히 격이 다른 지위라 하긴 어려워졌다. 반면에 서유럽에서는 본래 Markgraf에 해당되는 작위가 백작보다 높은 별도의 작위 계층으로 정착했기에, 오히려 신성 로마 제국의 Markgraf를 번역할 때에 한정해 Margrave 등으로 별개 단어를 사용할 정도가 된다. 한편 러시아에선 서유럽 Marchio 작위의 번역어로 'Маркиз'를 사용했는데, 러시아 제국에서 Маркиз를 임명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모두 외국인이 받은 명예상의 칭호에 불과했으며, 국내의 작위로 사용된 적은 없다.

일본이 근대화 때 당시 서유럽 작위체계를 오등작에 맞추어 Marquess를 후작에 대응한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서 일반적으로는 후작으로 번역한다. 신성 로마 제국의 Markgraf에 대해서는 그 어원을 살린 대체 번역으로 변경백이라는 단어가 쓰인다.



4.1.5. 코메스(COMES)[29][편집]


언어
남성형
여성형
비고
라틴어
Comes
Comitissa

독일어
Graf
Gräfin

영어
Earl
Countess
[30]
Count
[31]
프랑스어
Comte
Comtesse

이탈리아어
Conte
Contessa

스페인어
Conde
Condesa

러시아어
Граф(Graf
Графиня(Grafinya


라틴어로 행정관인 COMES에서 유래한 것으로, 자잘하게 나뉜 행정단위 하나하나에 임명되어 행정관 역할을 하거나 중앙에서 관료 역할을 했다. 사실상 영지를 수여받은 작위 중 제일 핵심적인 지위.[32] 예외적으로 영국에서는 웨식스 왕국이 잉글랜드를 통합할 즈음에는 노르드인의 영향으로 야를(Jarl)에서 파생한 Earl을 사용하였으나, 정복과 함께 대륙식 봉건제를 도입한 노르만 왕조 기준으로는 그 역할이나 지위가 대체로 대륙의 Count와 유사했다.

잘름(Salm) 가문에서만 사용하는 특이한 작위이다. 분가와 본가를 구분할 목적에서 고안하였으며, 그 격은 일반적인 백작위(Graf)와 같았다. 현대적으로 영역(英譯)하면, Altgraf는 Old-count, Waldgraf는 Wood-count, 험백작은 Rough-count, 라인백작은 Rhine-count 정도로 옮길 수 있는데, 구백작은 본가 소재지라서, 임백작은 상대적으로 삼림지대여서, 험백작은 산악 등 험지(險地. rough land)이기에, 라인백작은 라인강변에 접했으므로 붙은 칭호이다.[33]


4.1.6. 카스텔라누스(Castellanus)[편집]


언어
직책으로써
성주(城主)
작위 칭호
비고
남성형
여성형
라틴어
Castellanus
Burgravius
[34]
Praefectus
Praefectissa
[35]
독일어
Kastellan
Burggraf
Burggräfin

영어
Castellan
Burgrave
Burgravine

프랑스어
Châtelain
Burgrave
Burgravine

이탈리아어
Castellano
Burgravio
Burgraviato

스페인어
Castellano
Burgrave
Burgravina

러시아어
Кастелян(Kastelyan
Бургграф(Burggraf
Бургравин(Burgravin


본래는 성벽을 두른 도시 또는 요새에 파견된 관리였다. 특히 전통적으로 유럽의 도시는 고대 로마 제국 말기에 주교구와 연계되었던 영향으로 주교가 도시영주인 경우가 많았고,[36] 따라서 성주는 보통 인근 주교나 세속영주의 봉신인 경우가 많았다.[37] 9세기 무렵에 축성기술이 발전하면서 방어력이 향상되자 일부 성주는 성관(castle)을 거점으로 삼아 본래의 주군인 영주를 무시하면서 독자세력을 키우기도 했고, 토착 유력자가 스스로 축성하여 성주를 자처하기도 했다. 10~12세기에 이런 현상이 만연해져 성주 행세하는 유력자들의 할거로 일부에선 기존의 영역제후령(Principatus; Principaute; Principality)이 해체되는 지경에 이르렀는데, 역사학에선 이를 "Castellany"라고 부른다.[38]

국왕을 중심으로 하는 통치질서가 확보되어 상대적으로 중앙집권이 먼저 진행되고 있던 서유럽 지역에선 이들이 일찍부터 국왕의 봉신이 되어 다른 정식 영역제후가 되거나 국왕 직속의 지방관이 되는 신분 전환이 신속하게 이뤄졌다.[39] 반면에 독일어권이나 폴란드 왕국·헝가리 왕국 등 중부 유럽에선 오랜기간 토착 세력으로 자리잡았고, 결국 국왕이나 유력 제후의 봉신이 되면서 그라프(Graf) 계열의 정식 관직을 받게 되어 'Burggraf'라는 별개의 영역제후가 되었다.[40] 이들은 다른 일반적인 그라프들보단 그 세력의 규모가 영세했기에 그라프 계층 안에선 하급 서열로 취급되었으나, 자신의 영지 안에서는 다른 그라프들과 동등한 권한을 행사했다. 따라서 신성 로마 제국의 Markgraf처럼 다른 유럽언어로 번역될 때는 Burgrave 등으로 번역되고, 한자문화권에서는 그 어원을 살려 성백(城伯)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4.1.7. 바이콩테(Vicomte)[편집]


언어
남성형
여성형
라틴어
Vicecomes
Vicecomitissa
영어
Viscount
Viscountess
프랑스어
Vicomte
Vicomtesse
이탈리아어
Visconte
Viscontessa
스페인어
Vizconde
Vizcondesa
독일어
Vizegraf
Vizegräfin
러시아어
Виконт(Vikont
Виконтесса(Vikontessa

중세까지는 일반적으로 영지를 받은 제후가 아니었다. 바이카운트는 카운트의 보조자 중 하나로, 백작을 보좌하거나 백작의 부재 시 대리 업무를 본 직위다. 어원도 "vis"(vice) + "count" 꼴로 조어한 것이다. 즉, 현대적 표현으로 쓴다면 "Vice Count", 번역하면 "부백작(副伯爵)"이 된다. 그래서 봉건제에서 관료제로 전환되던 근대에 작위체계가 재편되기 전까지, 바이카운트는 상설된 관직이 아니었고, 따라서 바이카운티(자작령) 같은 영지도 원칙적으론 존재하지 않았다. 물론 봉건제의 특성 상 무수히 많은 개별 사례가 있기에 드물게나마 특이한 사례는 있었는데, 일례로 카탈루냐 지방에서는 9세기부터 자작령이 등장했다. 당시에는 바르셀로나 백작이 기존의 에스파냐 변경주를 차지하면서, 그 광할한 영지를 여러 부백작(자작)들이 나눠 관리하게 되었기에 발생한 현상이다. 이처럼 이른 시기부터 부백작이 영역제후처럼 보이는 경우는 이처럼 그 주군이 백작이고 그 세력이 비정상적으로 강대하여 여러 부백작을 임명한 특수한 상황 속에서 발생했다.

부백작은 프랑크 왕국의 분해로 혼란스러운 시절 상급자인 백작이 약화되었을 때를 노려 백작위를 탈취하거나, 10~12세기 무렵에 각지에서 성주들이 할거하는 흐름에 따라 성을 차지한 부백작이 그 주군인 백작에게 독립하여 국왕과 봉건계약을 맺는 방식으로 영역제후가 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프랑스의 리옹 자작령은 부백작이 리옹 백작령을 탈취한 사례이며, 베안 자작령은 성주처럼 독립한 사례에 해당된다.

서유럽에 '바이카운트'가 군주가 수여하는 공식적인 작위로 도입된 것은 중앙집권이 가속화 되는 중세 말기~근세의 일로, 영국처럼 다른 남작들과는 구분할 필요성이 있지만 정식으로 백작까지 하사하기는 애매하여 바이카운트를 임시 작위로 수여하다보니 그것이 공식 작위로 굳어져 버린 경우가 많다. 스페인에선 17세기에 백작 이상의 작위를 얻기 위해서는 반드시 사전에 자작 작위를 매입해야 한다는 자격요건을 제정하여 왕실의 재정을 충당하기도 했는데, 이를 강매'선자작령'으로 부른다.

독일 지역에서는 Graf의 보좌직 자체는 많았으나, 그것이 제후의 작위로써 간주된 바가 없기 때문에 완전히 대응하는 작위는 따로 없다. 독일어 Vizegraf는 다른 나라의 바이카운트를 번역할 때만 사용되는 단어로, 자국에서 사용되던 작위를 가리키지는 않는다. 신성 로마 제국 안에서는 그라프 가운데 최하위 서열로 여겨지던 Burggraf(성백)와 동격으로 취급되었다. 러시아에선 프랑스어 Vicomte 작위의 번역어로 'Виконт'를 사용했다. 러시아 제국에서 Виконт를 임명한 사례가 있긴 하지만 모두 외국인이 받은 명예상의 칭호에 불과했으며, 국내의 작위로 사용된 적은 없다. 다른 유럽 국가들도 공식 자작위가 없던 시절에는 외국의 바이카운트 작위는 보통 남작과 백작 사이의 지위로 취급했다.

일반적으로는 오등작을 빌어와서 번역하던 일제의 영향으로 자작으로 옮긴다.

  • 비담(Vidame)
원래는 주교가 보유한 사병을 맡은 지휘관이었다. 주변의 영주들이 봉헌한 세속 영지를 다스리기 위해 주교가 대리인으로 파견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점차 부백작처럼 세습직위로 되었다. 중세 프랑스에서는 관할구역을 정식 소유주인 주교에게서 탈취하여 국왕과 봉건계약을 맺고 영역제후로 독립한 사례들이 있었는데, 근세에는 영지없는 희귀한 칭호 정도로 남는다. 라틴어로는 Vicedominus로 번역된다.

4.1.8. 바로(BARO)[편집]


언어
남성형
여성형
비고
라틴어
Baro
Baronissa

독일어
Freiherr
Freifrau
[41]
Baron
Baronin
[42]
영어
Baron
Baroness

프랑스어
Baron
Baronne

이탈리아어
Barone
Baronessa

스페인어
Barón
Baronesa

러시아어
Барон(Baron
Баронесса(Baronessa


Baron 계열은 프랑크 왕국 및 그 영향을 받은 나라들, 즉 프랑스와 노르만 정복 후 잉글랜드, 근대 프랑스로부터 이를 도입한 러시아 등지에서 주로 사용되었고, Freiherr는 상대적으로 독자 어휘를 많이 보존한 독일어권에서 사용되었다. Baron과 동치된 Freiherr는 'Frei'(자유) + 'herr'(영주) 꼴로 조어되어, 역시 의미상 자유인이자 유력자였음을 나타낸다.

자유인, 전사, 영주 정도의 뜻에서 유래한 것으로, 특별히 군주에게서 지위나 행정구역을 받은 건 아니고, 장원을 소유해서 경제적 여유 좀 있는 자유민들이 중무장을 해서 전사로서 봉사한 것에서 비롯하였다. 즉 군주에게 영역을 봉토로 하사 받은 '영역제후'가 아닌, 게르만족의 종사제 속에서 자연발생한 지역 유력자, 호족의 성격을 가진 영주가 유래이다. 이것이 후대에 명예지위화 되어 작위가 되었다.

어원에서 보다시피 자유민, 전사 등의 의미가 있다보니, 소규모 호족만을 가르키는 것이 아니라 문맥에 따라서 '(군주의 직속) 봉신'이라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여, 남작 외에도 공작이든 백작이든 왕의 봉신을 모두 일컬었다. 이 때는 'pair·peer(동료·동지)'라는 말과 상통하였다.

남작위의 활용은 11세기 노르만 정복 이후의 잉글랜드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정복왕 윌리엄을 따라 온 수많은 노르만족 가신들은 잉글랜드의 땅을 봉분 받아 지주가 되었으며, 왕 직속 가신인채로 남작이 되었다. 유럽 대륙의 남작은 지역에서 자연 발생한 소규모 호족인 까닭에 군주의 직속 봉신이기보다는 현지 공작, 백작 등 영역제후의 가신인 일이 흔했지만, 영국의 남작은 시골 구석 하나하나까지 왕 직속이었다. 이렇게 발생한 수 많은 남작들은 잉글랜드 특유의 '중앙집권적 봉건제'를 만드는 기반이 되었으며, 이전부터 잉글랜드에 존재하던 관직인 셰리프 등 관료직에 임명되어 지방 행정의 주축이 되었다. 이와 유사하게 잉글랜드의 백작위도 대륙의 그것과는 달리 영역제후가 아니었는데, 비록 법으로 정한 만큼 세입을 나누어 가지거나 셰리프가 소집해준 병력을 지휘하는 등 몇몇 권리가 있기는 해도 기본적으로 프랑크 왕국 시대처럼 백작령이라고 이름 붙은 좀 커다란 행정구역을 맡는 관료에 불과했으며, 따라서 독자적으로 백작령 내의 남작에게 충성을 받지도 못했다. 이러한 실세 남작의 경우는 Lord라는 별도의 호칭을 수여받기도 했고, 존 왕 시대의 반란 등에서 보듯 중앙정치에서도 핵심적 역할을 하였는데, 이는 못해도 백작 정도는 되어야 비슷하게 힘을 행사하던 대륙하고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43]

프랑스의 경우, 중세 성기 이후 소규모 호족들에게 명예직으로써 으레 주는 칭호 정도로 정착하였다가 근세 무렵에는 더 흔해져서 대검 귀족(Noblesse d'épée)[44]에 속하는 하급 귀족 가문이라면 다들 가지고 있는 칭호가 된다.[45] 남작령이라는 칭호가 붙은 토지를 가진 경우도 있었고, 그런 토지가 딱히 없는 경우도 있었다.[46]


4.2. 성직 제후[편집]


  • 대주교후(Fürsterzbischof)
  • 주교후(Fürstbischof)
  • 수도원장후(Fürstabt)
  • 사제장후(Fürstpropst)
  • 기사수도회[47]


5. 기타 작위[편집]



5.1. 왕실[편집]


대공(大公)으로 번역되는 칭호들 가운데 오스트리아의 Erzherzog와 러시아의 Великий Князь는 왕실 구성원 전원이 공유하는 칭호였다.
  • 도팽(Dauphin)
원래 알봉 백작(Comté d'Albon)은 문장(紋章)으로 돌고래를 사용했기에 별명으로 돌고래를 뜻하는 '도팽'으로 불려지게 되었는데, 이 별명이 점차 비엔누아의 통치자가 사용하는 독특한 칭호인 '도팽 드 비엔누아(Dauphin de Viennois)'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후 그 작위가 프랑스 왕실에 매입되어, 관례적으로 왕태자가 해당 작위를 수여하면서 공식적으로 도팽 칭호를 사용했는데, 결국 '프랑스 왕태자(Dauphin de France)'라는 공식 칭호가 되었다.
  • 인판테(Infante)·인판타(Infanta)
스페인과 포르투갈 및 그 식민지들에서 사용된 칭호로, 왕태자가 아닌 국왕의 자녀나 손자들에게 수여된다.


5.2. 부왕(副王)[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부왕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3. 영주[편집]


  • 영주(Herr)
독일어 'Herr'는 원래 고대 말~중세 초까지 주군·군주·영주·부족장 등의 뜻하던 말이다.[48] 신성 로마 제국 등 독일어권에서 남작은 'Freiherr(자유영주)'로 불렸고, 그보다 낮은 귀족 토호는 'Herr(영주)'라고 불렀다.
'Herr'는 제후로 정식 승인되지 않은 관습적 봉신인 점에서 Freiherr와 구분된다. 독일 지역에서 'Freiherr'는 황제나 상급 제후에게 승인을 받아야 사용할 수 있는 칭호였고,[49] 일부 유력 영주는 곧바로 Graf(백작)급 작위를 받기도 했다. Herr는 남작보다 격이 낮은 만큼 준남작으로 번역해도 무방하겠으나 그러한 번역례는 찾아보기 어렵고, 도리어 Freiherr와 구분하지 않고 남작으로 번역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영지는 Herrschaft(영어: Lordship)로 지칭되었는데, 행정 및 사법 권한은 남작령과 유사했다.
지역별로 지위가 조금씩 달랐는데, 독일에서는 기사보다 높았지만, 핀란드에서는 기사보다 낮은 지위의 귀족 칭호로 쓰였다. 저지대 국가에서 자유영주(Vrijheer)는 남작(Baron)이 아니라 독일의 Herr와 동일한 신분이다. 모두 라틴어로 Dominius, 영어로 Lord, 프랑스어로 Seigneur로 번역된다.


5.4. 기사[편집]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기사(역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언어
남성형
여성형
비고
라틴어
Eques
[50]
독일어
Ritter
Ritterin; Frau
[51]
영어
Knight
Dame
[52]
프랑스어
Chevalier
Chevalière

이탈리아어
Cavaliere
Dama

스페인어
Caballero
Caballera

러시아어
Рыцарь(Rytsar
Дама(Dama

유럽 고유의 신분으로 본래는 직업에 가까운 개념이었으나, 신분계층으로 정착되면서 평민과는 확연히 구분되었다. 나라와 시대를 막론하고 개별 사례마다 명백한 귀족 신분인 경우가 있고, 법적으로는 귀족이 아니나 사회적으로 그에 준하는 취급을 받는 경우가 있고, 명확하게 귀족이 아닌 경우도 있어 일률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다. 슬라브권에서는 유사한 신분으로 보야르(Боярин)가 있었다.
  • 제국기사(Reichsritter)
신성 로마 황제의 직속 봉신인 기사층을 가리키며, 세습 작위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 훈작사
기사 가운데 신분적으로 평민과 다른 예우를 받는 계급에 한정되어 사용되는 번역어이다. 현대에는 보통 Knight Bachelor의 번역에 사용되고 있다.


5.5. 기타[편집]


이탈리아 왕국에서 주로 작위를 계승하지 못하는 귀족 자녀들에게 주어진 칭호로 남작보다 낮은 서열인 작위였다.
  • 장티욤(Gentilhomme)·장트담(Gente dame)
남성형은 'Gentilhomme', 여성형은 'Gente dame'이다. 프랑스에서 태생적 귀족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영어 'Gentleman'의 어원이며, 법적으로 귀족인지 여부를 제외하면 영국의 Gentry와 똑같이 정의된다.
독일어권에서 작위가 없는 지방귀족에게 수여된 칭호였다. 영주인 경우와 아닌 경우가 혼재하였는데, 영주라면 작위를 지닌 귀족들처럼 명부에 등재되었다. 'Herr'(영주)와 함께 묶인 'Herr und Landmann'의 형태로 쓰이기도 했는데, 이는 Fürst 이하의 작위를 지닌 가문에서 남계 후손들에게 주어지는 명목상 칭호로 쓰이기도 했다.
  • 에들러(Edler)
'Landmann'과 유사하게, 독일어권, 특히 오스트리아·바이에른 등에서 작위나 영지가 없는 귀족에게 수여된 칭호였다. 나중에는 영국의 'Esquire'와 유사하게 장교나 관료에게 주어졌다.
프로이센의 지주 호족으로, 귀족 신분이지만 작위 칭호는 아니다. 군인이나 관리로 활약하며 프로이센 왕국의 성장을 주도했으나, 한편으로는 지주로서 산업화 등 사회발전을 저해하기도 하였다.
  • 이달고(Hidalgo)·이달가(Hidalga)
남성형은 'Hidalgo', 여성형은 'Hidalga'이다. 스페인에서 주로 작위 없는 귀족을 가리키던 말이다. 넓은 뜻으로는 상위귀족들도 포함하지만, 후대로 가면 보통 기사 미만의 작위 없는 하급 귀족을 가리키게 되었다. 영지를 보유한 경우도 있으나, 많은 경우 기사와 동일한 기원을 지닌 이들로서 토지재산을 보유하지 않았다. 포르투갈에도 이러한 귀족 신분이 존재했는데, 포르투갈어로는 남자와 여자 각각 'Fidalgo'(피달고), 'Fidalga'(피달가)라고 부른다.
콩키스타도르로서 아즈텍 제국을 정복한 에르난 코르테스나 문학 돈키호테의 주인공 알론소 키하노가 이달고 신분이다. 돈키호테 1부의 원제에도 이 말이 들어간다.
  • 드보랴닌(Дворянин(Dvoryanin), 포메시크(Помещик(Pomeshchik)
러시아에서 공식적인 작위가 없는 최하위 귀족으로 드보랴닌은 '귀족', 포메시크는 '지주'라는 뜻이다. 드보랴닌은 주로 '봉직귀족'으로 번역되는데, 이들이 소유한 토지가 군 복무나 궁정 사무 등의 봉직을 맡아 그 대가로 하사받은 토지인 포메스티예(Поместье(Pomest'ye)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제국에서는 19세기 후반까지 귀족만 토지를 소유할 수 있었고 1746년에는 이를 법률로 명문화하기까지 했는데, 자연히 작위나 포메스티예를 상속받지 못한 귀족의 자녀들은 단순한 지주인 경우가 많았다.
젠트리는 영국적 개념으로서 준귀족 신분인데, 작위 보유자의 자손들도 작위나 영지가 있든 없든 일단은 귀족으로 여겨지던 대륙과 달리, 영국의 경우 오직 작위보유자 본인만 귀족 신분이었기에 법제적으로는 귀족이 아니었던 까닭이다. 물론 사회적으로는 사실상의 귀족으로 간주되었으며, 이러한 지위에 있는 이들 중에서도 준남작이나 기사, 에스콰이어 등 작위나 칭호를 지닌 이들은 단순한 지주일 뿐인 다른 젠트리보다 더 격이 높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참고로 요먼 등은 나름 경제적으로 상류층이고 귀족이나 준귀족 신분과 교류를 하긴 했으나, 젠트리가 아닌 단순한 자유민(평민) 신분으로 간주되었다.


6. 관련 문서[편집]




7. 참고 자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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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반적으로 후작보다 백작이 더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부분은 번역 문제상 원어를 확인해야만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특히 아래 항목들은 단순히 직역상 백작으로 번역될 뿐, 시·공간에 따라서 그 지위와 역할, 명목상(de jure)과 사실상(de facto)은 천차만별이므로 성급히 일반화하지 않도록 유의할 것.[2] 이에 관해서는 영지(역사) 문서 참고.[3] 대부분의 작위가 특히 Count(Graf)에서 세분화되어 나온 작위다.[4] 예컨대 툴루즈 백작이나 플랑드르 백작이 그 대표적 사례. 비슷하게 최초에는 루앙 백작에서 시작한 노르망디 공작도 비록 그 지위를 군주에게서 받았다고는 해도 세력 기반은 자신이 이끌던 노르드인 바이킹이었고, 그래서 오랜 기간 독립적이고도 강력한 권력을 누렸다.[5] 프랑스의 비엔누아 지역에 근거한 작위로, 문장돌고래였기에 거기서 나온 별명이 그대로 정착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불어를 그대로 음차해서 도팽이라고 부른다. 후에 프랑스 왕이 해당 작위를 사서 왕태자의 작위로 사용하게 된다.[6] 그와 더불어 지나치게 높지도(공작) 낮지도(남작) 않은, 적절한 위치인 점도 한몫한다.[7] 오늘날 범공용적인 행정구역인 주정부–지방정부–하위구획을 연상할 수 있는데, 사실 근대 행정구역 자체가 봉건 영주의 영지들을 관료제 하에 편입시키기 위해 발생한 결과물이어서 연관이 있다. 더 정확하게는 각 왕국이나 영역제후령이 하천이나 산맥, 삼림 등 자연경계와 당대의 기술적 한계에 의해 점유지가 나누어졌고, 다른 한편에서는 하급 귀족이나 도시 등도 계층적으로 각자 자치권을 행사했으므로, 이러한 사회구조가 근대까지 연속된 까닭이다.[8] 무엇보다도 대공 문서에서도 설명하듯, Prince 외에 Grand Duke를 대공으로 번역하는 것도 맞는지라 혼동하기가 더욱 쉽다.[9] Archduke는 '아크 듀크'가 아닌 '아치 듀크'로 발음한다.[10] 보통 슬라브계 국가의 대공은 정확하게는 Grand Prince이지만, 서유럽권에서는 영역제후로서의 Prince 개념 자체가 익숙하지 않았고, 전통적으로도 Grand Duke로 번역해왔다. Grand Prince와 Grand Duke를 명확하게 구분하는 언어는 독일어나 슬라브 계통 언어 정도이다.[11] 본래 선제후 제도가 성립하기 전까지는 제국 내 제후(Fürst)라면 누구든 선거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12] 나폴레옹은 기존의 헤센 선제후국은 베스트팔렌 왕국에 합병했고, 헤센 가문의 선제후 지위를 대체한 대공 작위는 헤센-카셀 대신 방계인 헤센-다름슈타트에 넘겨 '헤센 대공국'을 만들었다. 때문에 헤셀-카셀의 선제후 빌헬름 1세는 빈 회의 동안 헤센 지방의 고대 게르만 부족인 카티족에서 따온 '카텐 왕(König der Chatten)'으로 승격해달라고 청원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독일 연방에서 대공 지위만 공인받았으며, 헤센-다름슈타트의 헤센 대공국은 그대로 승인되었다. 결국 헤센-다름슈타트의 헤센 대공국보다 우월함을 내세우기 위해 헤센-카셀은 종전대로 '헤센 선제후국'을 유지하면서 보조 칭호로 '풀다 대공'을 사용했다.[13] 슬라브 계통 국가에서 Князь는 최고격 작위로써 보통 '공작'으로 번역한다.[14] 본래 천하에서 유일한 존재인 천자의 지위였으나 황제 개념이 탄생하면서 제후 신분의 칭호가 되었고, 황권이 안정화되면 황족에게만 수여되는 명예적 작위로 성격이 바뀐다.[15] 이들 지역에서는 왕의 봉신인 유력제후를 통칭할 때도 Prince보다는 Baron(자유민, 직속 봉신)이나 Peer·Pair(동료·동지)라는 말을 사용하였다.[16] 굳이 Prince가 아니더라도 이 같은 역할을 하는 사례는 더 있다. 대표적으로 보헤미아 왕국모라바 변경백, 스코틀랜드 왕국의 로스시 공작(Duke), 프랑스 왕국의 도팽(Dauphin) 등이 있다.[17] 단, 프랑스에서 프린스 중에 주권국의 계승권과 관계 없는 Prince de Titre는 공작보다는 아래이자 백작보다는 높은 지위로 간주된다.[18] 엘베 강 서안은 카롤루스 대제 때에야 막 정복되고 기독교화하기 시작한 참이었고, 동안은 북방십자군이나 동방식민운동 과정에서 신성 로마 제국으로 편입하였다. 엘베 강 동역을 정복할 즈음에는 슬라브인 영역이라고는 하여도 기독교나 봉건제를 이미 수용한 상태였으나, 민족 구성이 달랐기에 현지에 정착한 독일인 공동체와는 또다른 지위를 차지하였다.[19] 리페 후국, 발데크피르몬트 후국, 로이스그라이츠 후국, 슈바르츠부르크존더샤우젠 후국, 슈바르츠부르크루돌슈타트 후국, 리히텐슈타인 등이 이 사례에 해당된다.[20] 샤움부르크리페 후국, 라이엔 후국 등이 이 사례에 해당된다. 빈 체제로 복구된 헤셀-홈부르크 만이 독일 연방에서 기존의 방백(Landgraf) 작위를 유지했지만, 1866년에 헤센 대공국으로 재합병되었다. 또한 슈탄데스헤어 중에 Graf에서 Fürst로 승격되는 가문이 생기기도 했다.[21] 상기하였듯 중세에서 근세 초기까지는 Markgraf와 Graf 등 Herzog 미만을 전부 퉁쳐서 부른 칭호이므로, 그 역어는 후작이 아닌 제후가 된다. 16세기 무렵 공식 작위화된 Fürst는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 영방국가의 주권을 행사하게 되면서 다른 군주나 제후에게 예속된 Graf보다 우월한 지위로 여겨진다. 이러한 고유 작위로서의 Fürst를 번역할 때는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를 활용하여 번역하는 것이 적절하다. Markgraf는 자연스럽게 '변경백'으로 번역된다.[22] 황제가 Reichsfürst로 지정했다고 제국의회 투표권이 무조건 인정되지는 않았다. 일례로 리히텐슈타인 가문은 1608년에 Reichsfürst로 지정되었지만, 황제 직속의 제후가 아니라 합스부르크 가문의 봉신이기에 제국의회에 참석할 수 없었다. 이에 1699년에 셸렌베르크 영주령과 1712년에 파두츠 백작령 등 황제 직할의 영지를 매입했고, 1719년에 두 영지를 통합하여 Fürstentum으로 승격된 뒤에야 정식으로 황제 직속 제후의 신분을 인정받았다.[23] 관례적으로 Fürst를 칭하고 있지만 황제에게 Fürstentum으로 정식 승인되지 않은 백작령은 'Gefürstete Grafschaft'로 지칭되었다. 일반적으로 '후백국'으로 번역되며, 영어로는 'Princely County'로 번역된다.[24] 마찬가지로 콘월 공작위(duke) 역시 잉글랜드 왕국의 확정상속인에게 관습적으로 수여된다. 타국에서도 이러한 관행을 여럿 찾아볼 수 있다. Prince 중 Fürst가 아닌 것 중에서는 대표적으로 프랑스 왕국의 도팽(Dauphines), 보헤미아 왕국모라비아 변경백작 등이 있다.[25] 간혹 Prinz von Wales로 쓰기도 하지만, 독일어 위키에서도 이러한 번역을 오역으로 지적하고 있다. 마치 영어 위키에서 동유럽의 Великий Князь를 Grand Prince로 옮겨야 하는데도 Grand Duke로 오역하고는 한다고 지적하듯, 이 역시 오늘날에는 왕실이나 가문 작위로서 Prince(Prinz) 개념이 더 익숙한데다가 해당 작위가 관습적으로 확정상속인에게 수여된 탓에 발생하는 오역이다.[26] 대표적으로 작센은 하인리히 사자공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 황제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후 작센-비텐베르크나 작센-라우엔부르크, 베스트팔렌 등 공국(Duchy)과 기타 군소 백작령, 주교후령 등으로 분할된다.[27] 오스트리아 대공국 및 그 계통에서만 사용한다. 원어인 독일어에서도 Grand duke는 Grossherzog로 쓰는 반면 Archduke는 Erzherzog로 쓴다.[28] 당대에 사용한 용어가 아니라, 독일 내 부족제에서 봉건제로의 이행 중 과도기를 설명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학술 용어이다.[29] 일반적으로 후작보다 백작이 더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부분은 번역 문제상 원어를 확인해야만 명확하게 알 수 있다. 특히 아래 항목들은 단순히 직역상 백작으로 번역될 뿐, 시·공간에 따라서 그 지위와 역할, 명목상(de jure)과 사실상(de facto)은 천차만별이므로 성급히 일반화하지 않도록 유의할 것.[30] 영국 고유 작위에 사용된다.[31] 외국의 작위를 번역할 경우 사용된다.[32] 물론 고대 로마, 프랑크 왕국, 프랑크 왕국 이후의 백작은 서로 그 지위가 상이하다. 특히 프랑크 왕국 붕괴 전의 기초 행정 단위(Pagus; Gau) 백작과 붕괴 이후 그 행정 단위들을 통합하면서 탄생한 영역제후로서의 백작, 더 후대인 중세 성기 즈음 후발 영주들이었던 성주령체제의 백작은 그 권력이나 권위에서 큰 차이가 있다.[33] 어느 정도 독립적인 세력이라면 이런 경우가 종종 있었다. 예컨대 폴란드의 경우 칭왕 전에는 고공작(High Duke)이라는 독특한 칭호를 사용했었고, 오스트리아는 칭제 전에는 태공작(Archduke)을 자칭하였다. 또한, 똑같은 백작(Comes) 칭호를 쓰더라도 긴느나 아르드르처럼 사실상 성주령 수준인 곳이 있었는가 하면 플란데런처럼 영역제후로서 그들 상위에서 명목상이나 사실상 주군으로 군림하는 곳이 있는 등 그 지위가 상이했다. 보통 이러한 영역제후령은 공작을 자칭하였으나, 플란데런이나 툴루즈 등처럼 백작에서 만족하는 경우도 있었다.[34] 독일어 Burggraf를 라틴어화한 번역어이다.[35] 고대 로마에서는 다양한 행정직으로 분화되었는데, 중세에는 종종 성주 직책을 가리키는 데에도 사용되었다.[36] 그래서 중세 성기에 도시민들이 자치권을 얻고자 코뮌 운동을 전개하였을 때 첨예하게 대립했던 존재는 세속영주보다 도시 주교인 경우가 많았다.[37] 예컨대 성주들은 보통 자기 성채와 거기에 딸린 소규모 토지 및 도시 내 권리 정도만 행사하였고, 백작들은 도시 내에서는 주교 우위권을 인정하거나, 구역을 나누어 다스리거나, 아예 그 자신이 주교의 봉신인 경우도 있었다. 물론 예외도 있어서, 백작이나 Vicarius 등 세속인이 역으로 교회의 보호자 자격으로서 통치에 관여하거나 사실상 지배자 노릇을 하기도 하였다.[38] Castellany는 일반적으로 성주가 관리하고 있는 영역, 즉 성주령(城主領)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를 구분하고자 성주령을 뜻할 때에는 일부러 'castellania'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어휘는 아니다. 따라서 'castellany'라는 단어는 그 문맥에 따라 어떤 의미인지 주의깊게 살펴보고 번역해야 한다.[39] 따라서 Castellanus 계열의 단어는 일반적으로 '성주'로 번역할 뿐, 별도의 작위 개념은 아니었다.[40] 대표적으로 먼 훗날 독일을 통일하는 호엔촐레른 가문뉘른베르크 성주(Burggraf) 출신이었다. 뉘른베르크 성주에서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로 임명받아 프로이센 공국을 상속받고 프로이센 왕국이 되어 독일 제국을 선언한다.[41] 신성 로마 제국 내 작위인 '자유영주'로, 법률용어인 라틴어로 번역될 때 'BARO'로 쓰였기에 외국의 Baron과 동격의 개념이 되었다.[42] 외국의 남작을 번역할 때 사용.[43] 애초에 중세 유럽에서는 섬기는 행위조차 신분에 따라 제약되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무나 대뜸 섬기겠노라 청원한다고 유력 군주나 제후의 가신이 될 수 있던 것이 아니다. 같은 주군을 섬긴다는 것은 (실제로는 어느 정도 위계를 구분하기는 하였지만) 본질적으로는 격이 같다는 뜻이다. 같은 이유로 똑같이 봉사하는 것이 임무였음에도 기사(Knight)와 미니스테리알레스(Ministeriales) 등은 고귀한 태생에 따라 격이 나뉘었으며, 농민들도 자유민과 부자유민을 구별하였다. 격이 낮은 사람은 같은 탁자에 앉지 못하며, 특정 복장이나 도구를 쓸 수 없고, 재판소에서도 참여하거나 증언하지 못하는 등 불이익이 있었다. 특히 신성 로마 제국에서 황제의 봉신이었던 제국백작이나 제국기사, 자유 제국시, 주교후, 제국수도원 등은 제국의회에 참석할 특권 등을 누렸다.[44] 프랑스의 귀족 분류 중 하나로 근세 평민 출신의 신귀족이 출현하면서 종래의 세습 귀족들이 자처한 표현이다. 자신들이 중세 시절의 기사 계급에서 유래하여 복무의 대가로 영지를 하사받아 세습되어온 부류라는 의미로 사용한 것으로, '혈통 귀족'이나 '구(舊)귀족'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다.[45] 사실 다른 유럽 국가에선 부르주아 계급을 귀족으로 편입시키기 위해 작위를 남발하더라도 주기적으로 명감을 갱신하며 수여된 작위들을 엄격하게 관리했으나, 근세 프랑스에서는 루이 14세가 여러 전쟁을 벌이면서 재정 확충을 위해 매작하는 일이 잦았기에 귀족들이 작위 칭호를 사칭하는 것이 흔해졌던 것이다.[46] 오해와는 달리, 영국을 제외하면 봉토나 작위 보유가 꼭 귀족 신분과 결부되는 것은 아니다. 현 세대에 작위도 봉토도 없더라도 선조가 귀족이었다는 사실이 증명된다면 귀족으로 인정되었다. 다만, 귀족 신분 자체가 밥 먹여주지는 않았기에 용병이나 관료, 가신, 하인, 시종, 성직자 등 밥벌이 방법을 찾아야했을 뿐이다. 후대로 가면 오히려 귀족이고 영주이면서도 작위는 없는 경우도 발생하였다.[47] 물론 기사수도회 소속 기사와 일반적인 세속 귀족에 속한 기사는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으므로 이를 유념해야 한다.[48] 이 말은 근대까지 그 위상이 계속 낮아진 결과 지금은 영어의 'Mister'(미스터)처럼 그저 선생님 정도의 의미 정도로 쓰이는 경칭이 되었다. 물론 이는 세계적으로 아주 일반적인 현상 중 하나인데, 예컨대 영어 미스터도 'Master'(마스터)가 어원으로 과거에는 젠트리 등 귀족 및 준귀족의 경칭이었고, 한국어에서도 선생이 경칭이 되는가 하면 양반은 멸칭, 영감도 격식 없는 칭호로 변했으며, 일본어에서도 키미(君)가 그냥 2인칭 대명사로 변했다.[49] 참고로 제국백과 달리 '제국남(Reichsfreiherr)'은 공식적으로 존재하지 않고 단순히 일부 황제 직속 남작의 자칭이었을 뿐인데, Freiherr 자체가 이미 공식 승인된 칭호이여서 굳이 제국남을 지정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50] 신분 계층이 아닌 직업·병종의 의미일 때는 Miles를 사용했다.[51] 여성은 보유자가 아닌 배우자일 때 Frau로 호칭했다.[52] 엄밀히 말해서 'Dame'은 기사 '작위'를 받은 여성이나 기사부인을 가리키는 말로, 현재는 'Knight' 자체가 사실상 성별 중립적 단어가 되었다. 영어에서 직업이나 병종으로서 여기사를 가리키는 단일한 단어는 존재하지 않는다. 'Knightess'나 'Knightress' 등은 근래에 와서 탄생한 말이며, 일반적으로 쓰이지 않는다. 이는 영어의 경우 로망스어의 영향을 많이 받기는 했어도, 로망스어계통은 로망스어식으로, 게르만어계통은 게르만어식으로 조어하는 방식이 최근까지도 대체로 지켜졌기 때문이다. '-ess'나 '-ress', '-ine', '-a' 등 여성형 접미사라틴어 및 로망스어에서 온 말이고, 게르만어에서는 '-in'이나 '-inne', '-en' 등 그러한 접미사가 쓰였다. 영어에서도 원래는 그러한 접미사를 사용하였으나 차츰 노르만어의 영향으로 사어화되고 대신에 'female'이나 'lady' 등 여성을 가리키는 형용사나 명사와 합성되어 사용되었다. 같은 이유에서 'Earl'의 여성형은 존재하지 않아 동격의 로망스어 'Countess'를 빌어다가 쓰고 있으며, 얼핏 비슷해보이는 'King'과 'Queen'은 사실 같은 어원에서 나온 말이 아니고 서로 유래가 다르다. 참고로 이러한 조응관계는 다른 말들, 이를테면 통치영역의 조어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컨대 게르만어계인 'Kingdom'(King+dom)과 'Earldom'(Earl+dom), 로망스어계인 'Duchy'(Duch+y)와 'County'(Count+y)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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