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승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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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복무 현황
3. 대우
4. 열악한 환경
4.1. 전우애
4.2. 2차대전 시기
4.2.1. 독일
4.2.2. 미국
4.2.3. 일본
4.4. 낮은 생존율
4.4.1. 탈출 수단의 발전
5. 승조원 인력 확보를 위한 노력
5.1. 식단
5.2.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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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해군 장교의 잠수함 승조원 휘장
미 해군 장교의 잠수함 승조원 휘장
해상자위대 간부의 잠수함 승조원 휘장


1. 개요[편집]


잠수함에 탑승하는 선원에 관한 문서이다.


2. 복무 현황[편집]


잠수함은 꽤나 전문적인 조작을 필요로 하기에 상당수의 나라들에서는 전문성이 높은 장병들을 승조원으로 뽑으며, 한국의 경우 모든 잠수함 승조원은 최소 하사 이상의 부사관이다. 잠수함 승조원의 교육 기간이 1년에서 1년 6개월까지 걸리기 때문에, 교육 수료 뒤면 2~3개월밖에 복무를 못 하는 수병은 잠수함 승조원으로서의 경제성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한국과 달리 부사관을 총원 병에서 선발하는 대부분의 외국 해군에서는 잠수함에서 근무하는 수병도 볼 수 있으나 역시 승조원 대다수는 부사관이다. 신병 때부터 잠수함에 자원 혹은 강제로 배속되는 경우보다는[1] 수상함 등에서 근무하다 잠수함에 지원하는 경우가 더 많고, 수병 때부터 잠수함을 타더라도 긴 교육기간 때문에 해군에서 이들을 장기복무에 선발되는 조건으로 선발하므로 대부분이 복무 중 부사관이 되기 때문이다.

양성 기간이 길고 혹독한 편이기 때문에, 잠수함 훈련을 수료했다고 해서 바로 정식 승조원이 되지는 못하는 게 대부분으로, 교육 수료 후에도 잠수함에서 견습 승조원으로 또 몇 개월을 보내야 한다. 한국에서는 잠수함 승조원 자격부여제도(SQS: Submarine Qualification System)를 통해 자격을 획득한 사람만 승조원이 될 수 있다. 잠수함 승조원의 힘든 근무 여건 중 하나가 여기서도 드러나는데, 보통 수상함이나 육상에서는 웬만큼 작은 함정이나 부대가 아니면 승조원 개개인은 자신의 직별(해군 부사관의 특기)에 맞는 일만 할 수 있으면 대체로 문제가 없지만, 잠수함은 인원도 적고 긴급 상황 발생 시 조치를 빨리 취해야 하므로 자기 직별 이외의 타 직별 일까지 다 숙달해야 한다. 장교들 또한 장교로서 자기 병과의 일뿐만 아니라 부사관들이 할 수 있는 것도 다 해낼 수 있어야 잠수함 장교로 인정받을 수 있으므로[2] 과정 자체가 더 힘들다. 이런 특성 탓에 자연스럽게 세세한 것까지 챙기는 성격이 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국 해군에서 잠수함 타다 온 장교는 정말 더럽게 꼼꼼한 사람으로 통한다. 뭐 하나만 잘못되어도 문자 그대로 죽을 테니까 안 그러기도 힘들다. 그 덕인지 해군 내에서 잠수함 장교는 유능하다는 이미지가 있어 육상부대 지휘관들이 많이 탐내기도 한다고 한다.

견습 승조원들은 자신이 원하는 때에 각 직별장을 찾아가 시험 등을 본 뒤 합격 서명을 받아야 하며, 모든 직별장들의 서명을 받으면 정식 승조원이 되어 이때부터 당직이 주어지고 수당도 지급된다. 이때 휘장 수여식도 치러진다.[3]

대한민국 해군은 1990년대에서야 잠수함이 취역했을 정도로 잠수 전력 자체가 창군 이래 40년 이상을 부재했기 때문에 수상함 출신의 항해사관이 주류를 차지해 왔다. 해역감시와 대잠초계를 담당할 해군 항공대의 경우에도 1963년 해산되어 한동안 맥이 끊겼다가 1973년에 부활했을 정도였으니.[4] 그러나 착실히 잠수함 전력을 강화한 탓에 제57잠수함전대, 제9잠수함전단을 거쳐 2015년에 잠수함사령부가 창설됨에 따라 고정 티오를 소장까지 올리는 데 성공했다. 휘하 잠수함도 과거 9척이었으나 현재는 21척까지 늘어난 상태. 잠수함 장교로서의 역대 최고 계급은 대장으로, 2023년 현재까지 양용모 제독이 유일하다. 중장으로 내려가면 이홍희(해사 29기), 김정두(해사 31기), 김판규(해사 37기), 정승균(해사 44기)등이 있다.

1990년대 초에 임관해 잠수함으로 경력을 쌓은 잠수함 항해사관들도 2010년대 후반부터 제독에 진입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 해군 장교단 내에서 잠수함 계통의 목소리도 더 커지고 2020년대나 2030년대에는 잠수함 출신 해군참모총장도 나올 것으로 보인다. 결국 2023년 10월 29일, 잠수함 특기로는 최초로 양용모 제독이 해군참모총장 자리에 올랐다.

대한민국 해군의 잠수함 부대는 해군작전사령부 직할의 잠수함사령부에 일괄 배치되어 있다. 1990년에 돌고래급 잠수정 세 척으로 제57전대를 창설했으며, 이후 꾸준히 그 규모를 늘려 1995년에 제9전단으로 승격. 그리고 2015년에 잠수함사령부로 승격되었다. 사령관은 소장이다. 또한 제주도에 위치한 해군기지에 1개 잠수함전대가 상시 배치되고 있다. 잠수함 부대원의 생활

미합중국 해군은 각 함대에 잠수함군이 편성되어 있고 그 격은 수상함군과 같다. 해역함대사령관에 잠수함 출신도 많고 해군 주요 요직이나 해군참모총장, 해군참모차장에도 잠수함 출신이 해군항공이나 수상함보단 좀 떨어지지만 절대 적지 않다. 특히 SSBN 등에 정통한 특성상 이들은 핵전력 운용에 있어서도 상당한 베테랑이기에 중용될 수밖에 없다. 냉전의 막바지였던 1982년부터 1994년까지 12년 동안 연달아 잠수함 출신이 참모총장을 지낸 적도 있었고 2010년대 들어 다시 잠수함 출신이 참모총장에 오르고 있다.

해상자위대에서는 별도의 함대인 잠수함대호위함대와 동격의 위치이나 숫자가 가장 많은 수상함, 대잠전력의 발달로 수상함보단 좀 떨어지지만 자기만의 권역을 갖춘 해상항공에 밀려 역대 해상막료장 32명 가운데 겨우 3명을 배출하는 데 그쳤다. 그나마도 2명은 일본군 해군 출신이었고 방위대학교 시대에는 대한민국을 찾아 현충원에 분향한 적이 있는 전 통막장 사이토 다카시 정도가 잠수함 출신 해상막료장이다.

일본 해상자위대의 잠수함은 16년이 지나면 퇴역시키며, 항상 정원초과로 운용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부에서는 이 조치를 '재무장을 대비한 준비'라고 평가하고 있지만 영국이나 미국에서는 승조원들을 두 조로 나누고 이들을 번갈아가면서 승함시키는데, 예를 들면 골드/블루 팀으로 나눈다 → 골드 팀이 임무를 마치고 귀항 → 블루 팀이 승함해서 다시 임무를 수행 → 블루 팀이 탄 잠수함이 귀항 → 이하 반복을 통해 항시 준비만전인 상태를 유지하면서 임무를 수행하는 데 반해 일본 잠수함에는 그딴 것 없고 닥치고 정원 초과라는 걸 미루어보면 그렇게 신빙성있는 추측은 아닌 듯하다. 오히려 조선소를 먹여살리려고[5] 멀쩡한 잠수함을 퇴역시킨다는 게 중론이다. 물론 잠수함이야 멀쩡하게 남아있으니까 아주 근거가 없는 이야기도 아닌 셈이지만… 다만 이럴 경우 승조 인원이 문제가 되기 쉽다. 앞서 언급했듯이 영국이나 미국은 잠수함 1척당 승조원이 2개 조이므로 유사시 잠수함만 확보되면 일거에 2배의 잠수함을 운용할 수 있으나 일본은 승조원 부족으로 잠수함같이 민감한 장비의 여유가 있어도 제대로 못 돌린다. 안 그래도 자위대 특히 해상자위대는 육상보다 고된 함상 근무로 지원률도 낮고 장기 신청하는 인원도 항상 정원에 못 미치는 마당이니 미칠 노릇일 것이다.

잠수함은 군대에서 특수부대와 쌍벽을 이루는 금녀의 구역이다. 장비가 많아 여자만을 위한 공간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한다. 예외적으로 미 해군이 임대해서 훈련상대로 삼은 스웨덴 해군의 고틀란드급 잠수함에는 여성 승조원도 존재했고 노르웨이 해군은 여성 함장까지 배출했으며 영국의 차세대 핵전력인 드레드노트급 잠수함은 남녀공용을 상정하고 있지만 이건 정말 보기 드문 사례다. 미 해군의 핵잠수함들에도 공간이 없다고 징징거리며 여군의 탑승을 막았는데[6] 그 반도 안 되는 배수량의 디젤 잠수함에 여군을 탑승시킨 스웨덴 해군이 오히려 용자 아닐까. 현재 미국에서도 여군을 잠수함에 태우려는 계획이 추진 중이다. 그러나 도입 초기부터 SSBN 근무자들이 동료 여군 몰카를 돌려보다가 불명예 제대 후 은팔찌를 차는 흉흉한 사건이 보고되는 등 진통이 적지 않다.


3. 대우[편집]


한국 해군 잠수함 승조원의 근무 환경은 열악한 주제에 그리 많다고 볼 수 없는 수당과 부식 외엔 별다른 메리트가 없다. 특히 잠수함 도입 초기에 보장됐던 조기 진급제도도 수상함 출신 간부들이 이의제기하는 바람에 사라져 버렸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매년 선발하는 잠수함 승조원 지원률은 항상 미달되며, 잠수함의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 그래서 충원률을 채우기 위해 부대나 함정별로 인원을 차출해 후보자로 내보내기도 한다. 자연히 시험장에 온 강제 차출된 후보자들이 잠수함 생활을 기피하기에 어떻게든 떨어져 보려고 발악하는 풍경도 연출된다.[7] 충원률이 떨어지는 만큼 기존 승조원들의 부담이 커지고, 그만큼 잠수함 근무를 포기하려는 사람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몇몇 제독들을 중심으로 한 해군 예비역들과 민간인들이 매번 잠수함 승조원들의 처우 개선을 촉구하고 있으나, 아직 눈에 띄는 개선 움직임은 없다. 관련 기사

결국 참다 못해 이런 일까지 벌어졌다. "잠수함 못 타겠다"…승조원 부사관 무더기 전역 2015.02.24 그래서 잠수함 승조원에 대한 급여 30% 인상 등 혜택을 늘리기로 했다. # 하지만 급여를 올려도 여전히 인력부족이 심각하다.#

미 해군에서는 해군핵추진프로그램이라는 원자력사령부가 따로 존재하여 원잠 함장 출신 4성제독들이 심심치 않게 배출될 정도로 잠수함 부대의 위상이 높다. 잠수함 출신으로 제7함대 사령관과 해군참모총장을 역임한 조너선 그리너트의 사례도 있다. 하지만 잠수함 근무가 빡센 것은 마찬가지라서, 파일럿 위주로 우주 비행사를 배출하는 게 관행이었던 미 해군이 잠수함 엔지니어 출신의 우주 비행사를 배출할 정도다.[8]

4. 열악한 환경[편집]


과거 잠수함의 존재를 널리 각인시켜 관심과 열기를 이끌어 잠수함 기술력 발전의 기폭제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는 소설 해저 2만리노틸러스호와 같은 윤택하고 쾌적하며 모험과 신비로 가득한 생활상은 수세기를 초월했다는 네모 선장의 장담 그대로다.

제일 견디기 힘든 건 환기가 안 되고 햇살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세수도 제대로 못하고 한밤중에 기상하는 건 견딜 만하다. 하지만 탁한 공기는 정말 견디기 힘들다. 잠수함에서의 임무가 끝나면 다음번에는 꼭 순양함을 타고 싶다.

미 해군 잠수함 통신병 오웬 키트릿지

잠수함은 밀폐되어 있고 오랫동안 햇빛을 볼 수도 없으며 통풍도 안 되기 때문에[9] 승조원은 수상함의 승조원들보다 더 큰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잠수함 승조원의 증언에 따르면, 잠수함에서 근무하는 건 '빌라 지하 21평에 40명이 사는 것과 맞먹을 정도'라고 한다. 또한 환기가 안 되니까 냉각기를 엄청나게 틀어대도 더워서 고생하는 판이다. 거기다가 이 냉각기란 게 승조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선내 기기들을 식히려고 달아놨을 뿐이다. 우스개소리로 주 법원에서 어떤 사내에게 5년 징역형 대신 해군 잠수함에 타도록 판결을 내렸는데 이건 너무나도 가혹한 판결이라는 말까지 있다.

현직 특수부대 소령의 증언에 따르면 잠수함 통신은 기밀 운영이라 승조원들은 잠수함에 있을 때 가족에게 어떠한 연락도 불가능하여 한번 잠수함에 있으면 승조원이나 그들의 가족이나 서로 그동안 무슨 일이 있나 알 방법이 없다.

잠수함에서 오래 있으면 치아가 빠진다는 속설이 돌곤 하는데 다른 낭설처럼 아예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잠수함 내부의 높은 이산화탄소 농도가 치아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한국 역시 잠수함 운영 초기엔 이같은 사례가 발생하곤 해서 현재는 공기정화 장치를 크게 개선했다고 한다. #

4.1. 전우애[편집]


흔히 빡센 부대가 부조리가 적다고 말하듯이, 열악한 환경과 침몰시 전원 사망 확정이라는 특성 탓에 대부분 국가에서는 잠수함 함장의 재량을 넓게 인정하고, 함 내 인간관계를 원만하게 만드는 것에 큰 노력을 기울였다. 흔히 한 배를 탔다라는 말의 상위호환인 셈. 그래서 위에서 내려오는 대우는 열악할지언정 같은 함 내에서의 인간관계는 나쁘지 않은 편이다. 병영부조리로 유명한 구 일본 해군도[10] 잠수함 승조원들간엔 부조리가 적어 전출 신청자가 드물었다고 한다.

4.2. 2차대전 시기[편집]


돼지 배: 2차 대전 당시 미 해군이 잠수함을 가리키는 별명

2차 대전의 잠수함은 냉방 장치마저 없는 열악한 시설과 좁은 공간 때문에 항해 초기 며칠 이후에는 신선한 식재료는 변질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즉 신선한 음식은 상하기 전에 다 먹어치우고 이후부터는 통조림 같은 보존식품 위주의 식단이 짜이기에 수상함보다도 더 시원찮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제2차 세계 대전 잠수함전을 다룬 걸작영화 특전 U보트에 잘 나오는데, 출항준비 때 보면 승조원 침상이건 어뢰 위건 심지어는 파이프 사이사이에 빈 공간만 보이면 닥치는 대로 식료품을 쌓아놓은지라 승조원들은 식료품과 함께 자고 식료품을 밟으면서 뛰어다니는 상황을 연출하고, 작전 중반을 넘어서면 곰팡이로 뒤덮여 속만 도려내어 먹는 상황을 보여준다.(오죽하면 입을 씻어서 같이먹으라고 커피를 준다...)


4.2.1. 독일[편집]


특히 2차대전 당시 독일 잠수함은 거주성이 매우 나빴는데, 본래 잠수함은 작을수록 잠항속도가 빨라서 대형 잠수함보다 유리하다. 물론 대형 잠수함의 경우 연료탑재량과 어뢰 탑재량이 많으므로 장기간 보급받지 않고 작전수행이 가능해서 태평양을 무대로 삼은 미군이나 일본군, 여러 식민지를 돌아다닐 필요가 있는 영국군의 경우는 대형 잠수함도 만들었지만, 독일은 바로 앞의 영국을 상대로 싸웠기 때문에 작전 반경은 넓으면 좋긴 하다 정도에서 끝낼 수 있었다. 애초에 해군 잠수함 부대에 배정된 군비가 부족한 것도 작용해서 독일 잠수함은 승조원의 편의를 희생해서 전투시설을 최대한 채운 소형 잠수함을 건조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칼 되니츠 제독은 회고록에서 '독일의 잠수함은 병기로서는 1류지만, 승조원들의 희생으로 움직이는 병기'라는 내용으로 평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1차 세계대전의 활약으로 독일 잠수함에 대한 지원병은 항상 충분했고,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종전시까지 높은 사기를 유지하며 싸웠다. 잠수함 승조원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독일 해군의 정예로 여겨졌고, 종전 후 U보트를 수장시키는 과정에서 끝까지 잠수함에 남겠다고 하여 침몰하는 잠수함과 운명을 같이 하거나, 침몰하는 잠수함을 울면서 바라보다 바다에 뛰어든 수병까지 있었다. 또한 장교들 역시 잠수함을 선호했는데, 이는 구축함이나 순양함, 전함 등을 지휘하려면 적어도 영관급은 되어야 하지만 잠수함은 대위도 함장을 맡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열악한 독일군조차 U보트 승조원들에게는 임무기간은 한 번에 최대 3개월까지만, 임무 후에는 10일 이상의 휴가만큼은 반드시 보장해 주었다. 어차피 휴가 짤라서 임무에 투입해 봤자 승조원들이 제정신을 유지하지 못 하면 작전수행이 문제가 아니라 사고, 실종, 심지어 반란이나 연합군에게 투항하는 것 같은 부작용부터 걱정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

4.2.2. 미국[편집]


미국의 잠수함은 시설 면에서 상대적으로 괜찮은 편이었지만, '벙커링'이라 불리는 침상 공유 문제와 이산화탄소로 탁한 공기, 좁은 공간문제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벙커링'은 병기와 각종 설비 등의 탑재로 인해 부족한 거주 구역과 침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대로 침상을 사용하는 방법이었는데, 8시간 근무교대를 상정하여 승조원 총원의 2/3 정도로 침상을 제한하고, 개인실이 있는 함장을 제외하고 교대로 여러 사람이 침상을 공유하는 방법이었다.

이건 독일보다는 그래도 나은 편이었다. 앞서 말한 배수량 제한 문제로 독일은 총원의 절반 숫자로 침상을 맞춰야 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로 인해 피부병 등의 전염병 문제가 부가로 따라왔다. 또한 잠수와 환기문제로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는 현상이 있었는데, 2차 세계대전 때는 여기에 대한 인식조차 없었던 시기라 항상 머리가 아프고 탁하고 뻐근하다는 느낌을 받으며 싸워야 했다. 미국 잠수함은 그래도 샤워, 화장실 사용에서는 타국보다 나았는데, 복잡한 절차와 냄새나는 공기가 유입되지만 잠수 중에도 화장실 사용이 가능했다는 점, 매일 면도 등도 할 수 있을 만큼 세면이나 손씻기 등은 충분히 가능했고, 제한적인 샤워 시설이 있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일단 씻어서 위생관리를 할 수 있으면 침상을 공유하더라도 전염병 문제가 줄어드니까. 또한 냉각 설비가 충실했는데, 함내 기재는 물론 승조원의 전투력 유지에 큰 영향을 주었다. 당장 바다 한가운데라 습도계가 상한을 찌르는데 온도까지 올라가면 정신병 원인이 하나 추가될 뿐이다.

수상함과 비교하면 매우 열악한건 분명하지만, 타국 잠수함은 잠수 중에 양동이에 볼일을 봐야 하는 상황이었고 샤워 시설 같은 것은 없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점과 비교하면 분명 장점 맞다. U보트는 1주일에 한 번 레몬수를 수건에 묻혀 몸을 닦는 정도밖에 하지 못했다. 승조원들의 사기 진작을 위해 가토급 잠수함의 경우에는 아이스크림 제조장비가 있었고 이게 고장나면 출격 금지를 때렸다.


4.2.3. 일본[편집]


일본의 잠수함은 덩치가 큰 만큼 공간을 살려 승조원들의 침대를 정원에 맞춰서 구비했다. 보통은 침대 하나를 여러 사람이 돌려쓰며 공간을 아끼던 타국의 잠수함에 비해 1인당 1침대가 거의 확보되었다.

식단에는 다소 문제가 있었다. 다른 나라들이 밥이라도 많이 주려고 한 반면 일본군은 운동량이 많지 않으니 칼로리도 필요없고[11] 그 상황에서 영양분이 많이 주어지면 피부병이 발생한다는 어처구니 없는 이유로 식사량을 되려 줄여버렸다. 그래도 양 자체는 줄었을지언정 그게 무슨 그지깽깽이를 만들 정도로 비참했던 게 아니라, 애초 육상보다 많은 양이 나오는 수상함보다 좀 적은 정도여서 심각한 문제로 불거지지는 않았다. 도리어 식재료의 질이나 메뉴의 다양성 등은 신경을 많이 써 줘서 잘 나왔던 편이다.

일본의 잠수함 승조원들은 유달리 케찹에 대한 기억이 많다. 일단 케찹 자체가 당시 일본에선 나름 값나가는 식재료였던데다 탑재 공간 문제로 인해 최신기술인 열풍건조를 적용한 고형으로 지급됐기 때문에 기억에 강렬하게 남았기 때문이다. 고형 케찹은 건조 과정이 추가되므로 값은 일반 케찹보다 더 비싸다. 단, 고형 케찹은 열풍건조기술의 한계로 1945년에나 개발되었기에, 전쟁 전체 기간 중 잠수함 승조원들이 고형 케찹을 접한 시기는 그리 길지 않다. 이 고형 케찹은 그 형태 때문에 토마토 양갱, 케찹 양갱 등으로 불렸다.

물론 케찹 외에도 카레라이스 등 다른 수상함에서 먹을 수 있는 여러 메뉴들도 잠수함 내에서 조리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선 잘만 나왔다.

또 다른 문제점이 바로 잠수함 내부가 찜통이었다는 것이다. 미 해군 잠수함에는 먹는 건 시원찮아도 냉방 설비는 좋아서 이 점이 전투효율에 큰 영향을 줬다고 한다.

함내가 넓은 덕분에 다른 나라와 달리 잠수함마다 군의관이 배치되었는데, 일반적으로 외과 전공자가 배치되는 수상함과 달리 피부과나 정신과 전공자 위주로 배치됐다. 피부과 군의관은 열악한 함내 환경 특성상 피부질환이 수상함에 비해 많음을, 정신과 군의관은 역시 폐쇄 공간에서 근무하는 이들의 특성을 고려해 배치한 것인데, 일각에선 전투에 큰 도움이 안 되는 이들을 배치한 것을 반성해야 한다고 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이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전공이 어쨌든 간에 의사인 이상 간단한 수술 정도는 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 최소한 없는 것보다는 나았는데, 비록 전문성 강화 차원에서 가급적 자신의 전공과의 자료를 전담해 진료하지만, 의사 면허를 가진 이들은 원칙적으로 내과의가 수술 등을 할 수도 있다. U보트의 경우 지속적인 폭뢰 공격을 버티지 못한 함장이 함내에서 권총으로 자살해 버린 적도 있는 반면, 일본군은 패닉에 빠져있던 함장을 정신과 전공이던 군의관이 진정시키는 데 성공해 무사귀환시킨 사례도 있으니 이들을 절대 배치해서는 안 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 잠수함은 전반적으로 살벌하고 답답하던 일본군 내에서 분위기가 매우 밝고 구타 및 가혹행위가 적었으며 규율이 느슨하기로 유명해, 고되고 힘들며 전사할 가능성이 큼에도 전출 희망자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제정신인 일본 잠수함 함장이라면 구타와 가혹행위를 반드시 없앴기 때문이다. 왜냐면 전함 무츠같이 악에 받친 승조원이 어차피 맞아죽을 거 같이 죽자는 식으로 자폭 시도를 해버리면 잠수함 특성상 승조원 전원 몰살은 확정이기 때문이며, 해군 상층부에서도 잠수함 승조원들의 고생 자체는 알고 있어 군기가 느슨해도 비교적 관대하게 넘어가 주었다. 함장 입장에서도 함내 분위기를 풀어줘야 자기도 각 좀 덜 잡고 덜 눈치보고 편히 있을 수 있기에 그런 면이 있다.

해상자위대도 디젤 잠수함치곤 대형함들을 보유하고 있는 데다, 구 일본 해군 시절부터의 전통 탓인지, 잠수함의 승조원 침상은 1인당 1개를 완비하고 있으며 잠수의관(潛水醫官)으로 불리는 의관(자위대의 군의관은 군대가 아니므로 의관이라고 한다.)이 승조하고 있다. 해상자위대 의관 출신으로 유명한 JAXA 우주비행사 가나이 노리시게(金井宣茂)가 잠수의관 출신이다.


4.3. 핵잠수함 시대[편집]


핵잠수함 시대가 오면서 원자로 덕분에 산소와 물을 마음껏 쓸 수 있게 되었지만, 승조원들은 원자로라는 방사능 물질과 같이 먹고 자고 해야 하는 고충을 겪게 되었다. 미국 등 서방측 핵잠수함은 미 해군 역사상 최강의 공돌이로 손꼽히는 노제독 하이먼 리코버가 반평생을 투자해 일궈놓은 원자로의 안전기준이 엄격하여 그다지 큰 문제가 없었지만, 소련의 핵잠수함은 원자로 시스템이 부실하여 툭하면 방사능 누출 사고로 승조원이 죽어나갔다. 유명한 사건이 영화로도 유명한 K-19 잠수함 방사능 누출 사고 등 적지 않았다. 심지어 소련 해군에는 이런 농담이 있었다고 한다.

깜깜한 밤중에 원자력 잠수함 타는 애들을 어떻게 알아볼까? 간단하다. 그 녀석들은 깜깜한 데 있으면 시퍼렇게 빛이 나니까.

핵잠수함이 덩치가 커지고 물과 산소에 여유가 생겨 재래식 잠수함에 비해 좀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밀폐된 공간에서 유폐된 생활을 해야 한다는 잠수함 근무의 혹독한 본질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핵잠수함은 식량과 무장이 떨어지지 않는 한[12] 1년이건 2년이건 무한대로 잠항작전이 가능하지만 실제로 그만큼 잠항 작전을 수행하는 잠수함은 아직까지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잠수함과 같은 밀폐환경에서 정상적인 인간이 맨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기간은 여전히 길어야 3개월이기 때문이다.[13] 다만 미래에 무인기술이 발전하면 가능해질것으로 보인다.

4.4. 낮은 생존율[편집]


잠수함에게 맷집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발각당해 두들겨 맞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무사히 빠져나갈 가능성은 보통 0에 수렴한다. 도저히 적을 뿌리칠 수 없다면 적재된 연료고 뭐고 다 버리고, 숨까지 참아가며 소음을 차단하는 것으로 적이 우리가 격침당했다고 착각하거나, 아니면 완전히 놓첬다고 생각하고 물러가기를 기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공격을 피할 수 없다면…

  • 폭뢰 공격은 단순히 잠수함을 파괴할 수 있는 위협적인 공격으로 그치지 않고, 엄청난 소음으로 음탐을 어렵게 만든다. 폭뢰를 퍼붓고 있는 수상함이나 얻어맞고 있는 잠수함이나 동일하게 적용되는 문제지만, 소나를 못 쓰면 레이더, 레이더도 먹통이 되면 그냥 사람을 보내 견시를 시키면 되는 수상함과 달리 음탐 없이는 그냥 물 속의 장님인 잠수함 측은 대응하기 힘들다.

  • 제대로 맞았다면 탈출이고 뭐고 잠수함과 함께 가라앉을 운명이다.

  • 비교적 가볍게 내부에 금이 가서 조금씩 침수되는 상황이라면, 수상함이라면 해당 격실을 폐쇄하고 어떻게든 물을 빼내거나 아예 채워버려서[14] 버텨볼 수 있지만, 잠수함은 소량의 침수 만으로도 치명적인 문제가 생길 수 있다.

  • 잠수함에는 배터리를 포함해서 각종 위험한 고반응성 화학물질을 이용하는 장비들이 있는데, 이런 장비들은 비교적 침수 피해를 늦게 받을 만한 위치에 몰려 있지만, 어쨌든 이곳으로 침수가 발생한다면 바닷물과 각종 화학물질들이 반응을 일으키며 온갖 독가스(대표적으로 염소 가스)가 발생할 수 있다. 방독면이 대부분 구비되어 있지만, 마구 쏟아지는 독가스를 별로 버텨줄 수가 없기에 무조건 탈출해야 한다. 원자력 잠수함에서 원자로에 구멍이 나서 바닷속 버전 체르노빌 발전소가 되어버린다던가 하는 일도 이미 실제로 발생한 적이 있다.

  • 설령 이런 사태가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침수가 계속되면 결국 부력을 상실하여 깊고 어두운 심해로 가라앉는다. 탈출 해야하지만 잠수함은 물 속에 있기에, 수상함과 달리 탈출이 굉장히 어렵다.

  • 잠항 중에는 압력차 때문에 해치를 그냥 열 수 없다. 일단 고의적으로 침수를 통해 압력차를 맞춰야 한다.[15] 당연하지만 물속에서 헤엄처 나오는 시간을 버티기 위한 호흡장비는 필수적으로 챙겨야한다.

  • 압력을 맞추기 위해 침수를 시키는 과정에서 배터리 등이 침수되면서 유독가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바닷물 속으로 나오기 전에 잠수함 속에서 죽을 가능성이 크다.

  • 또한 탈출을 위해 침수를 시키기도 이전에 이미 피격으로 인한 침수로 유독가스가 나오고 있다면, 압력을 맞춰 해치를 열기도 전에 사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할수없이 부상하는 수 밖에 없다. 운이 좋아 유독가스를 특정 구획에 묶어둘 수 있더라도 피해를 완전히 피할 가능성은 없다시피하다. 부상하는 동안 격침 당하지 않고 무사히 항복한다면 높은 확률로 포로로 잡히고 끝[16]

  • 해치를 열 수 있게 되었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는데, 해치를 여는 순간 압력차가 다시 발생하며 탈출하는 승조원들의 폐포가 터지는 참사가 일어날 수 있다. 따라서 반드시 전원이 호흡기구 착용 이전에 모든 숨을 내뱉어야하며, 해치를 열때도 숨이 남아 압력으로 폐포가 터지지 않게 모든 과정이 정확한 타이밍을 맞춰야 한다. 프랑스 영화 울프 콜에서 이런 위험성이 잘 묘사된다.

  • 사고 없이 무사히 잠수함을 빠저나왔더라도 잠수함이 폭뢰 등에 공격받고 있다면 나오자마자 폭압/충격에 휘말려 사망할 수 있다. 물은 공기보다 충격 전달이 매우 잘 된다. 그리고 잠수함이 아직 가동 중일 경우,[17] 해치 밖으로 나오자마자 스크루에 휘말려 산산조각날 수도 있다.

  • 운이 좋아서 탈출에 성공하거나 잠수함 자체가 적을 피해 부상하는 것에 성공하였더라도, 필히 망망대해 위에 표류 중인 상태가 될 것이다. 수상함에서 구명보트 타고 표류하는 상태만 해도 얼마 못가 저체온증으로 죽기 십상인 마당에 깊은 바다에서 헤엄처 나온 잠수함 승조원들은 더욱 대책이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운이 좋다면 배에 탈출 보조용 장비로 구명보트 노릇을 할 것들이 있을 수도 있으나 그런 장비가 있더라도 그 장비를 제대로 쓸 수 있을 거란 보장은 없고 대체로 못 쓰는 경우가 많다.[18] 그래도 정말 운이 좋다면 아군 혹은 적의 함선, 혹은 상선에게 구조될 수도 있고.

  • 침수를 막지 못하고 해저로 침몰하는 중인데 탈출도 못하는 경우, 심해로 가라앉다 설계능력 이상의 수압을 받게 되면서 페트병 찌그러지듯이 선체가 구겨진다. 침몰 중 침수가 발생하는 경우 에어 포켓이 생긴 구획으로 생존자들이 몰리게 되는데 자연스럽게 간신히 조금 남은 공기를 더 많은 사람이 나누게 되므로 수 시간에서 하루 이틀 안에 저산소증으로 죽는다.[19] 그나마도 수심 몇 백미터까지 침몰했을 때의 이야기고 만약 심해로 내려가게 되면 승조원도 높아지는 압력을 견디지 못하고 호흡을 할 수 없으며 각종 신체 기관들이 파열된다.

  • 부상능력만 상실한 상태에서 탈출에 실패한 경우, 잠수함이 일단 다른 기능은 정상 동작하기 때문에 잠시 희망을 품을 수 있지만 영원히 부상할 수 없으므로 결국 산소 고갈로 서서히 질식사하게 된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제해권을 빼앗긴 독일군은 대체로 그들을 구조하지 못했다. 수상함이라면 교신 시도라도 해볼 수 있으나 현대의 기술이라도 해저에서 부상능력을 상실한 잠수함을 찾는데에는 매우 긴 시간이 걸리는데 대전기의 잠수함은 말 할 수도 없다.

실제 독일의 U보트 승조원 4만 명 중 3만 명이 전사했고 생존자 중 절반은 그 운 좋은 포로였다. 사실상 피격이 바로 전사로 이어지는 것이 바로 잠수함 승조원이다. 때문에 독일 해군에서는 U보트 승조원들의 사기를 어떻게든 유지하기 위해 생환 후 다음 출항하기 전에는 끝도 없이 파티를 열어주고, 여자친구가 없다면 해군에서 직접 여자친구를 붙여줄 정도였다.전반적으로 범죄를 저지르더라도 너무 심하지만 않으면 헌병들도 잠수함 휘장을 단 해군 장병들의 일탈 행위는 어느 정도 넘어가주는 게 관례였다. 문제는 이들이 언제든 이렇게 비참하게 전사할 수 있다는 상상도 못할 공포감을 느끼며 작전에 임해야 했다는 것이다.

미 해군의 잠수함도 처지는 그다지 다르지 않아서, 해당 시기에 잠수함 승조원의 사망률은 약 20%로 미군의 모든 병과 중에서 가장 높았다. 1만 6천명의 잠수함 장교와 승조원 중 장교 375명과 승조원 3131명은 복귀하지 못하고 실종된 상태로,[20] 관례상 여전히 "순찰중(Still in Patrol)"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4.4.1. 탈출 수단의 발전[편집]


오늘날에는 기술의 발전만큼 잠수함 침몰 시 승조원 구출에 대한 다양한 방법과 시스템들이 연구 개발되고 있긴 하지만 비용의 문제도 있고 아직 괄목할 정도의 생존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바다속에 있다보니 수상함과는 다르게 수압때문에 출입구를 열지도 못하고 죽는 게 빈번하다.[21]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나름대로 탈출을 위해 배려한 설계가 나왔고, 이후 기술 발달에 따라 여러가지 탈출 수단 강화 조치가 취해졌다. 이전보다는 많은 (언제까지나 이전보다는) 잠수함들이 탈출 절차를 간소화 하기 위한 전용 구획 정도는 갖추고 있고, 아예 완전히 탈출을 위해 설계된 특수 설비가 갖춰진 경우도 생겨났다. 다만 이런 것을 이용해 탈출을 할 수 있는 상황이더라도 설비를 제때 활용하지 못한 승조원이 그냥 버려지게 되는 식의 문제는 피하기 어렵다.

당연하지만 크기의 한계가 심한 재래식 잠수함 보다는 덩치가 큰 원잠들이 보통 훨씬 다양한 탈출 수단을 갖추고 있는데, 러시아 해군시에라급 잠수함, 야센급 잠수함, 타이푼급 잠수함 원잠의 경우는 아예 탈출 포드를 장착하고 있는게 대표적. 이런 설비들 중 일부는 매우 제한적이긴 하나 나름대로 수면으로 나올 때까지 그럴싸한(?) 조향까지 가능한 경우도 있었다.

파일:시에라급 탈출포드.jpg
시에라급 잠수함의 탈출포드

파일:mNvWcs8.jpg
타이푼급 잠수함의 탈출포드. 두개를 장착하고 한개당 85명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파일:야센급 탈출포드.jpg
야센급 잠수함의 탈출포드. 좌 상단에 있는 붉은 캡슐.

이런 호화스런(?) 장비가 있는 경우에는 복잡한 탈출 절차를 비교적 생략하고 탈출 포드에 들어가서 밀폐후 분리해서 빠저나오면 끝이니 참 요긴해 보이지만… 정작 실전에선 저 탈출 포드를 간단히 쓸 수가 없었다고 하며, 심지어 침몰을 유발한 피격이 하필이면 바로 탈출 포드에 가해진 피격이었다[22]는 식의 영 좋지 않은 경우가 생기기도 해서 언제까지나 운이 정말 좋은 경우에나 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1989년 화재로 침몰한 소련의 K-278 콤소몰레츠함의 경우 탈출 포드가 제대로 분리되지 않다가 고정쇠가 수압으로 파손되면서 분리는 되었지만 수면에 떠오른 후 갑작스런 압력변화로 인해 해치가 떨어져나가면서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포드에 탑승했던 인원 5명 중 3명이 익사하고 말았다.

그리고 원잠의 경우 전력/물/산소가 넘쳐나는 대신 원자력 엔진이라는 오히려 더 위험할 수 있는 게 실려있는 고로...[23]


5. 승조원 인력 확보를 위한 노력[편집]



5.1. 식단[편집]


잠수함을 탄 후 음식 구경도 아주 많이 했다. 요리, 신선한 채소, , 베이컨, 참치는 기본이고 우린 언제나 좋은 것만 먹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렇게 황제처럼 먹어본다. …강철 상자에 갇힌 황제 꼴이지만.

미 해군 잠수함 어뢰 담당병 해리 줄리언




미국 해군 잠수함 승조원들에게 제공되는 특식 짤
대신 이렇게 일이 궂은 만큼 잠수함 승조원들은 해군에서도 3D 정예 인력들로 취급을 받아 선별과정부터 아주 강력한 필터링을 거친 멘탈갑 수병들로만 엄선하고 그마저도 고된 함내 생활에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조치한다. 그중 최선책으로 해군의 전통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잠수함의 업무환경을 고려해 밥 먹을 때는 개도 안 때린다라는 인류 공통의 원칙하에 먹을 것들이 가장 확실하게 잘 나온다. 이는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갖가지 영양소가 1일 평균치 이상으로 반드시 보급되어야 한다. 안 그러면 영양실조 걸린다. 일례로 2차대전 초기 각국의 잠수함에는 중세에나 있었던 괴혈병이 나돌았을 정도. 이런 고충을 알고 있는 잠수함을 가진 국가는 국가 불문 잠수함 승조원의 식사는 항상 빵빵하게 제공한다.[24] 심지어 장병들을 소모품 취급하고 일본인은 초식동물 운운하던 일본군조차도 잠수함 승조원은 삼시 세끼 쌀밥을 먹였다. 또한 일본군 수상 보급의 상징이자 호텔급 전함에만 배급되던 라무네도 잠수함 승조원에는 우선 배급되었다. 식사 외에도 승조원들의 스트레스를 푸는데 효과 만점인 달달한 디저트에도 엄청나게 신경써서 미 해군은 당시 순양함 이상에만 배치되던 함내 아이스크림 제조기는 잠수함에 한해 함종을 불문하고 무조건 배치했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장보고함 잠수함의 초대 함장이었던 해군 제독 안병구 예비역 준장이 썼던 수기를 보면 알 수 있는데, 해군의 잠수함 전대가 타 부대보다 식비가 무척 많이 나가자 국방부에서 예산감사를 온 적이 있었다. 이때 함장은 감사를 위해 방문한 이들을 좁디좁은 잠수함 내부로 초대해 "이 안에서 저희 애들의 유일한 낙은 밥 먹는 것뿐입니다."라고 한마디하자 국방부 감사관들조차 현장에서 바로 납득해 잠수함 승조원들의 근무상황에 대한 특수성을 보장하도록 보고서를 올렸다. 그래서 잠수함 승조원의 1끼에 책정된 부식비는 8000원이 조금 넘는다. 이는 수상함에서 복무하는 수병의 하루 부식비에 해당하는 액수이다. 육군 병사의 하루 부식비는 대략 6000원이다. 또한 부식은 원래 군의 정식 구매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잠수함만큼은 따로 영수증만 제출한다면 민간에서의 직구매도 가능하다.

그러나 문제는 잠수함도 전투함이다보니 식사 순간에도 어떻게 무언가 일이 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그렇게 되면 당연히 승조원들의 사기는 순식간에 바닥을 치게 된다. 위에서 말한 장보고함 함장의 경우도 부하들을 잘 먹이기 위해 미리 사골을 구해놓았다가 설렁탕을 만들기로 했는데, 10시간 동안 펄펄 끓여서 거의 다 완성된 그 순간, 긴급부상을 하면서 잠수함이 기울자 사골 솥이 와장창 엎어졌다. 당연히 조리장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그날 식사 분위기는 말 그대로 정말 답이 없었다. 그래서 잠수함에서 두번째로 가장 높은 보직은 부장이 아니라 조리장이다라는 우스개소리조차도 있을 정도이다. 심지어 물이 부족한 잠수함 내에서 조리장은 함장과 더불어 드물게 매일 샤워를 할 수 있다라고 알려져 있다. 다른 승조원들은 조금만 오래 씻어도 물 낭비한다고 한소리 듣는데, 조리장의 경우는 되려 잘 안 씻으면 "너같이 드러운 애가 한 밥 어떻게 먹냐?"고 항의 듣는다.

잠수함 승조원의 식사 수준이 높은 건 북한도 마찬가지다. 육군 경보병 출신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해군 잠수함 승조원이 자신들이 배급받는 기호품들과 맞먹는 것들을 배급받는다는 것을 알고 놀랐다고 한다. 이북에서 경보병은 후방 침투를 담당하는 특수부대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매우 후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뜻이다.

5.2. 기타[편집]


그 외에도 부족한 인력 확보를 위한 유인책으로 각종 매체를 통한 선전과 고액의 보수,[25] 빠른 진급 보장 등 유인책을 동원한다. 장기간 항해를 하는 함선들의 경우 대부분 승조원들을 위한 복지 역시 적지 않게 배려가 되어있는데, 잠수함은 선체 특성상 이런 것들을 마련할 수가 없으므로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제도이기도 하다.[26]
[1]소련 해군이나 조선인민군 해군 등 공산권 국가는 물론, 원칙적으로 100% 지원자만 받던 2차대전 때의 독일 해군도 사람이 부족할 경우 일부 승조원을 강제로 배치했다.[2] 대한민국 해군 기준으로 장교는 항해와 기관 두 병과만 잠수함에 탑승하는데 일단 두 직별의 일을 모두 할 줄 알아야 한다.[3] 2차대전 때의 독일 해군처럼 2회의 출동 혹은 1회 출동 중 공로를 세우는 것으로 휘장을 수여하는 경우도 있었다.[4] 그것도 겸사겸사 해병대 항공대를 해군에 합친 것이었다.[5]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도 아닌 것이… 돌려먹기를 위해 일감을 일부러 만들어주는 일은 그리 드물지 않은 일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면장 선거' 를 보면, 낙도에서 마을 유지 둘을 위시한 파벌로 나뉘어 파벌 구성원들의 건설업에 일감을 먹여주기 위해 항만 정비, 뜬금없는 농업 시험장 건설, 스포츠 센터 건설(낙도인데도…) 등 없는 공사도 만들어서 하는 꼬락서니를 볼 수 있는데 이런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6] 미국 드라마 NCIS 시즌 1에서도 묘사될 정도다.[7] 한 강제 차출된 하사는 체력검정에서 꼴찌를 해서 탈락하기 위해 일부러 윗몸일으키기를 열 번 정도만 하고 뻗은 척을 했는데, 다른 후보자들이 두세 번만 하고 드러누워버려서 자신이 합격하는 바람에 좌절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행히 기압 변화 관련 수치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아 원대복귀했다고.[8] 미 해군은 아예 네이비 씰 출신자까지 우주에 보냈다.[9] 베트남 전쟁 당시 땅굴을 파서 미군을 고전시킨 북베트남 측 군인들도 땅굴에서 사는 것을 두고 햇빛을 보지 못해 미치겠다라고 하소연했을 정도이다. 그나마, 여긴 통풍이라도 하기에 미군이 가스를 쓰는 작전도 안 통했다.[10] 당시 일본 해군 전함 승조원들은 구타와 가혹행위가 일상이었다. [11] 잠수함은 겉으로 보기엔 움직일 공간이 없어 칼로리를 적게 소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인간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활동량이 적어도 몸의 소모가 매우 빠르게 진행된다. 육군도 전투 스트레스 때문에 고열량의 전투식량을 먹어도 살이 빠지는 판국에 숨쉬는 것조차 스트레스인 잠수함에서의 전투배치가 문제가 안 될 리가…[12] 수상에서 보급을 받을 수도 있다.[13] 그러나 미국 SSBN-735 잠수함에서 140일 동안 잠수 한 것이 최장 잠수 임무기간이라고 한다.[14] 수압때문에 균열이 있으면 수압차이로 전체적으로 붕괴 위험이 있어 물을 채워 압력을 맞추기도 한다.[15] 이 과정을 주수 라고 한다[16] 해군 사이에는 방금 전까지 서로 전투로 죽고 죽이더라도 배를 잃은 승조원은 적어도 추격사살 하지는 않고 웬만하면 서로 구해주는 분위기가 있다.[17] 기관이 조금이라도 돌아간다면, 인원탈출에 최적화된 속도와 심도를 유지하게끔 오토파일럿으로 세팅하고 탈출한다.[18] 소련의 원잠들이 탈출 포드를 통해 탈출할 수 있게한 장비를 달았지만 정작 여기가 피격 당한 위치라 못 쓴다거나 하는 일이 많았다고.[19] 쿠르스크함의 침몰 당시 침수되지 않은 격실로 대피한 승조원들은 부검 결과 9시간 정도 생존했었다. 조명이 나가 어두운 격실 내에서 이산화탄소 정화 카트리지를 실수로 물이 묻은 바닥에 떨어트리는 바람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 원인이다. 실제 격실 내부의 산소는 며칠 정도는 생존할 수 있을 만큼 있었다. 이산화탄소 정화에 실패했더라도 화재가 없었다면 1~2일 정도는 생존할 수 있었을 것이니, 실질적인 골든타임은 이 범위 내라고 볼 수 있다.[20] 해저탐사에 의한 잔해발견/식별 등으로 침몰이 확실하게 확인된 경우에는 전사자가 된다. 잠수함 특성상 격침전과에 잠수함 1척 격침이 기록되더라도 이 잠수함인지 저 잠수함인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21] 수심을 조금만 내려가도 강철이 구부러지는데 당연히 사람의 힘으로는 문도 못열고 그대로 죽는다[22] 탈출 포드가 제일 먼저 박살[23] 다만 다른 문제 없이 부상 능력만 상실한 경우에는 재래식 잠수함과 달리 원자력의 힘으로 굶어죽기 전까지 주구장창 버틸 수 있다. 어쨌든 다른 문제가 없다면 원잠에선 물/전력/산소가 남아돈다.[24] 물론 이게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데, 좁은 내부구조 때문에 운동을 하기가 힘든데 스트레스는 스트레스대로 받는 상태에서 이걸 푸짐한 식사로 해소하다 보니 잠수함 승조원들은 군간부 중에서 저질체력 비율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군함과 달리 평소에는 바닷속에만 있는데다 좁아터진 잠수함 특성상 음식이라도 상다리 부러지는 수준으로 줘야 정신을 부여잡을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긴 하다.[25] 미 해군의 경우, 같은 계급 기준으로 가장 많은 보수를 받는 분야가 심해잠수사고, 그 다음이 잠수함 승조원이다. 수상함은 물론이고, 항공기 승무원들보다 돈을 더 받는다는 것. 한국군도 군대 전체에서 근무수당 등급이 제일 높은 것은 전투기 조종사이고, 바로 아래등급이 잠수함 승조원이다.[26] 예를 들면 체력단련실이나 시청각실 같은 것들은 잠수함에는 들어갈 공간이 없다. 미국이나 러시아조차 전략원잠의 경우 그 크기 덕분에 오락실에 수영장, 사우나, 다양한 화초와 새 수십 마리를 기르는 온실까지 구비되어 있다지만, 수상함의 그것에 비하면 열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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