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영실(대왕 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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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대왕세종 장영실.jpg

파일:장영실_상호군.png

1. 개요
2. 작중 묘사
3. 작중 행적
3.1. 노비 시절
3.2. 면천
3.3. 파직
3.4. 파직 이후
4. 인간관계
4.1. 세종
4.2. 다연
4.3. 최해산
4.4. 세자 이향
4.5. 이천
4.6. 이순지
5. 고증 오류들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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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언감생심. 조선에 필요한 손 까지는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당신의 시름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손이라도 한번 되어보고자 했을 뿐입니다.

KBS 드라마 대왕 세종의 등장인물이며 배우 이천희가 연기한다.

동래현의 관노 출신 천재 기술자. 후에 면천되어 정3품 상호군의 자리까지 올라간다. 극중 세종의 30년지기 친구이자 든든한 조력자. 다연과 가슴 절절한 사랑을 하기도 한다.

가슴 한쪽엔 노비 시절 한영로에 의해 새겨진 '도적 적賊'자[1]가 남아있다.

가족으로는 홀어머니가 등장하며 아버지가 중국의 상인이라는 언급만 나온다.

작중 직급은 동래현 관노 → 군기감 관노 → 상의원 별좌 → 호군 → 대호군 → 상호군[2]


2. 작중 묘사[편집]


타고난 기술자 답게 각종 기술에 관심을 보이며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은 말도 기억하여 직접 실현해보이고 응용도 한다. 상황판단이 빠르고 머리가 좋아서 여러 상황을 기발한 생각으로 해결한다.

극 초반의 장영실의 성격은 사납고 까칠하며 자존심이 강하다. 건방진 모습도 자주 보인다. 세종을 만난 이후로는 비교적 순종적이게 된다.

세종이나, 세종을 만나기 전 사랑했던 다연 등 자신이 애정을 가지고 있는 인물을 위해 맹목적으로 일한다.

3. 작중 행적[편집]



3.1. 노비 시절[편집]


5화에서 다연과 함께 다연 어머니의 약을 구하러 나온 장면으로 첫 등장한다. 다연과는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상태이나 다연의 아버지 한영로는 장영실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영실은 한영로에게 인정받기 위해 그를 따라 고려 부흥 세력에 동참하게 된다. 하지만 애초의 계획대로 고려 부흥 세력을 밀고하여 출세하려는 한영로에 의해 영실은 도망치는 신세가 된다.

다연과 다시 만나 행복하게 지내나 싶었으나 다연이 경녕군의 아내가 되는 것을 싫어한 효빈 김씨에 의해 다연과 영실이 정을 통했다는 사실이 들통난다. 영실은 노비의 신분으로 양반의 딸과 사랑을 나누었기에 꼼짝없이 맞아죽을 위기에 처했고[3], 다연은 그를 구하기 위해 한영로의 요구대로 명나라에 진헌녀로 끌려가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된 영실은 오열한다.

한영로를 완전히 증오하게 된 영실은 영실의 뛰어난 기술력을 기억하고 접근한 고려 부흥 세력에게 한영로를 죽여주는 대가로 무기를 만들어준다. 영실의 무기는 충녕대군을 겨누었고, 충녕과 함께 있던 이선에게 준 자신이 만든 장신구에 새겼던 표식과 같은 표식을 무기의 탄알에 새긴것이 발견되어 충녕의 앞으로 끌려가게 된다. 이때 예고편의 설명은 "조선의 천재 기술자가 만든 무기가 조선의 천재 정치가를 노린다!". 충녕과 장영실의 첫만남이었다.
대군의 앞에서도 눈을 부라리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지 않고 기술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태도에 화가 난 충녕대군은 조선에 필요치 않은 손이라며 영실의 손을 잘라버리려 하지만 이수에 의해 저지당한다. 영실의 실력을 높게 산 최해산은 최대한 영실을 보호하려 하고 동시에 영실의 기술자로서의 한을 알아봐주며 무기 제작을 사주한 이들에 대한 증언을 해줄 것을 설득한다. 영실의 증언이 없으면 세자(양녕대군)이 오해를 받을 상황이어서 충녕의 호소까지 연이어지자 영실은 증언을 해주고 최해산의 밑에서 일하게 된다.

최해산을 따라 갔던 충녕의 유배지에서 충녕에게 완전히 마음을 열게 된 영실은 충녕의 사람으로 살게된다.


3.2. 면천[편집]


조선만의 천문 기술을 만들기 위해 명나라로 가서 목숨을 걸고 천문 기술을 빼내오고 이를 바탕으로 천문의기를 제작하는 총책임자가 되었지만 천한 신분탓에 따라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를 문제삼은 세종이 영실에게 종5품 상의원 별좌의 관직을 주었으나 대신들의 반대가 상당했다. 계속되는 반대와 이에 맞서 단식까지 하는 세종과 어린 세자의 눈물에 의해 영실은 괴로워하다 결국 관직을 반납한다.

밤새 빗속에서 무릎을 꿇고 거절을 받아들이기를 기다리는 영실에게 세종은 다가와 자신의 일산을 씌워준다.

"과인의 옥체보다 더 중한 것이 이 아이다. 이 아이가 강건해야 돼.과인의 치세는 길게 잡아야 삼십년에 불과해. 허나 너의 기술은, 너의 기술로 만들어낼 천문의기를 비롯한 각종 기기들은 백년, 아니 오백년, 아니 어쩌면 더 길게 살아남아 이 나라 조선을 지탱할 힘이 되어줄 거다. 과인은 결코 너를 버릴 수 없다. 허면 오늘날의 과인은 뛰어난 인재를 잃는 것이요, 후손들은 뛰어난 문명을 잃는 것이다. 후손들에게 그리 큰 빚을 질 수는 없다! 이렇게 과인과 함께 버텨보자꾸나. 이렇게라도 버텨서, 우린 꼭 이겨내야 하는거다. 부디, 과인의 청을 물리치지 마라."

대신들도 결국은 영실에게 관직을 주는 것에 동의하며 사건은 원활하게 마무리된다.
이때의 방송 엔딩 장면에는 신분에 연연하지 않는 세종의 인재 등용 방식에 대해 현실의 상황을 함께 이야기하는 자막이 나온다.


3.3. 파직[편집]


영실이 빼내온 명나라의 천문 기술이 뒤늦게 문제가 되어 명나라로 소환당할 위기에 처한다. 이때 세종은 비밀리에 문자 창제를 하던 상황이었어서 이 역시 명나라와 문자 창제를 반대하는 세력의 눈을 피해야만 했다.
문자 창제와 장영실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무엇도 포기할 수 없던 세종은 영실을 왜국으로 빼돌리려 했으나 조선의 안전을 위해 영실은 거부한다.

"영실아! ...넌 과인에게... 과인에게 넌, 30년 지기다. 형제보다, 때로는 내자와 자식보다 ...더 귀했다."

"그렇습니까..."

"과인의 청을, 한번만... 아무 생각하지 말고 한번만, 들어다오..."

"송구합니다. 아무래도 전... 지기보단 이 나라... 이 나라 조선이 더 중한 모양입니다."

명나라로 불려가는 당일 아침 세종이 가마에 오르자마자 가마가 무너져 앉는다. 가마를 마지막으로 손 본 자는 영실. 명나라로 가지 않기 위한 명분을 만들기 위해 수를 쓴 것이다. 왜 일부러 가마를 부수었냐고 묻는 황희의 질문에는

"군주에게서 버림받은 분기를 푸는 길이 달리 무엇이겠습니까."

영실의 의중을 알아챈 세종은 분노한 표정으로 영실을 친국할것을 명한다. 안타까운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세종에게 영실은 묘한 미소를 지어보이며 끌려간다.
명나라 사신들은 세종이 영실에게 도형[4] 정도로 퉁치고 넘어가려 할 거라 예상하고 그것으로 꼬투리를 잡으려 벼르고 있었는데, 그들의 예상과는 전혀 달리 세종이 영실에게 내린 형벌은 장형 중 최고형인 100대. 목숨을 건지는 게 불가능한 사실상의 사형이며, 설사 살아남아도 평생 불구로 살 것이 거의 확정적인 중형이었다. 때문에 처음에는 말만 저러고 몇대 치다 말겠지 하던 명나라 사신단조차 기어이 형이 마지막까지 집행되는 것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모두가 영실과 세종이 왜 그러한 결정을 했는지를 알기에 안타까워했다. 영실은 결국 100대를 다 받고 사망하게 된다.

힘겨워 마십시오, 전하. 곧 끝날 것입니다.



3.4. 파직 이후[편집]


아들처럼 여기던 영실이 사망하자 술로 나날을 보내던 최해산이 최만리의 편에 서는 것을 막기 위해 세종은 한 산중의 동굴로 데려간다. 거기에는 영실이 살아 있었다. 영실은 한쪽 다리를 저는 불구가 된 몸으로나마 살아남아서 산속 동굴에 숨어 지내며 세종 측과만 접촉을 하고 계속해서 연구를 해가고 있던 것이다. 최해산은 처음엔 세종이 영실을 끝까지 부려먹는다고 생각하여 분노하지만 영실이 자신의 선택이었음을 밝혔고 최해산 또한 마음을 다잡게 된다.

장영실은 몰래 세종의 문자 창제 또한 돕던 와중 해수에게 살아있다는 것을 들키게 되는데, 성치도 않은 몸으로 혼자서 명나라 군사들에게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을 최해산이 구하러 온다. 단 둘이서 군사들과 대치하던 와중 최해산은 영실을 구하려다 해수의 칼에 맞아 죽게 되며 영실은 슬퍼하며 가까운 사이였던 이천과 김종서와 함께 최해산의 장례를 치르어준다. 훗날 훈민정음의 반포식날 영실은 자신의 시신을 문자 연구에 바친 최해산의 무덤에 찾아가 총통등록을 바치며 조용히 눈물을 흘린다.

세종과는 계속해서 좋은 지기이자 군신관계로 지낸듯 보인다. 마지막화에서 세종의 곁에 있던 이는 영실이었으며 세상을 내려다보는 세종을 바라보며 그가 누구냐는 아이의 질문에 대답해준다.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분이시다. 또한 가장 낮은 자이기도 하지. 단 한명의 백성도 그에게는 하늘이고 땅이고 우주였다."



4. 인간관계[편집]



4.1. 세종[편집]


첫 만남은 위에서 서술하였듯이 조금도 좋지 못했다. 백성과 대의를 위하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세종을 영실은 비웃으며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쏘아붙이기도 한다. 하지만 유배지에서 그에게 관심을 갖게 되고 최해산에게는 둘이 같은 마음을 안고 사는 비슷한 사람이라는 말도 듣는다. 영실은 자포자기한채 이전의 열성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는 충녕이 신경쓰이는지 걱정하며 그에게 다가가서 설득하고 이렇게 살아도 괜찮으냐며 호소했다. 세종의 즉위 이후엔 영실은 세종의 신하로서 맹목적이게 일했는데, 가뭄으로 인한 세종의 근심을 덜기 위해 만들었던 수차가 갑작스러운 폭우로 망가지자 영실이 빗속에서 울면서 수차를 붙잡고 수리한 적도 있다. 그런 영실의 노력을 세종 또한 잘 알고 있어서 둘은 서로를 진심으로 위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이며 좋은 친구로서, 주군과 신하로서 관계를 이어나간다.

최후의 순간에 이 '지기'로서의 관계에 매달린 쪽은 세종인데, 세종은 꽤나 무모한 방법으로 영실을 빼돌리려 했으나 영실은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때 세종은 눈물을 흘리며 때론 내자와 자식보다도 아꼈다고 호소했으나 영실은 한편으로는 매정하다 할수 있게 행동한다. 하지만 영실은 대신 정인지를 개인적으로 만나서 금상의 꿈에 흠집을 내는 일, 금상을 제 화살 받이로 쓰는 일은 절대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눈이 침침한 세종을 위해 돋보기를 만들어주고 가는 등 비단 조선뿐만 아니라 세종또한 진심으로 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세종의 사람들이 대부분 죽은 이후여서인진 몰라도 세종과 장영실 단 둘이 드라마의 대미를 장식할 만큼 둘은 이 드라마에서 깊은 유대 관계를 보여준다.


4.2. 다연[편집]


장영실의 연인.
첫 등장부터 서로가 사랑하는 사이임을 보여줬다. 다연 말로는 나고 앉을 때부터 영실이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한다. 영실을 노비가 아닌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며 그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해 안타까워한다.

죽은 다연 모를 위해 손수 폭죽을 만들며 불꽃놀이를 보여주는 영실이 정말 고마웠는지 둘은 다연 모의 무덤 앞에서(...) 사극 치고는 수위가 높은 키스신을(...) 찍기도 한다.

명나라에서 다시 재회했을땐 놀랍게도 둘은 서로에게 차갑게 대하는데, 다연의 말로는 자기 없이도 잘 사는 모습에 질투가 나서 그랬다고 한다. 하지만 서로 너무나도 그리워했었고 위하고 있었다. 영실은 다연을 "마음에 두었던 여인"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아 옛 연인이라고만 여기고 있는건가 싶지만 관직을 얻은 후 다시 명나라를 찾을 때 관복을 입은 모습을 다연에게 보여준다고 설레서 잠도 잘 못잤고 다연이 순장 당할 위기에 처하자 절망하며 어떻게든 살리려고 한다.

하지만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고, 다연은 살아 남는 대가로 영실이 가져간 정보를 알려달라는 해수의 요구도 거절하며 처연히 죽음을 택한다. 죽기 직전 다연의 방 창문 밖으로 보이는 광경은.. 마포나루에서 두 사람이 같이 봤던 불꽃놀이. 영실의 마지막 선물에 다연은 행복한 눈물을 흘리며 목을 매어 죽는다. 밖에서 불꽃놀이를 보여주며 다연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던 영실은 완전한 이별에 주저 앉아서 오열한다.[5]


4.3. 최해산[편집]


화약을 다루는 사람으로서 영실의 능력을 알아보고 충녕에게 그를 위한 작업실 또한 마련해 줄 것을 요구한다. 영실을 친아들처럼 생각해서 위험에 처하거나 곤란한 상황이 생기면 앞장서서 막아줬으며 영실의 업적을 제 업적인것 마냥 자랑스러워 하기도 한다. 영실또한 이를 모르는 바가 아니어서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며 명나라에서 위험한 상황에 처했을 땐 최해산을 속여서라도 안전하게 만들어주려고 하는 등 아버지처럼 여긴다. 파직 후 목숨을 건졌음에도 최해산에게 알리지 않았던 건 그가 힘들어하고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싶지 않아서.


4.4. 세자 이향[편집]


향이 어릴적 영실이 직접 굴렁쇠를 만들어 주었다. 어릴 때부터 재미있는 (과학)이야기를 들려주는 영실을 좋아하며 따랐다. 심란할 때마다 영실의 작업실을 찾아가는데 영실은 원래의 까칠한 성격 답게 마냥 어르고 달래지는 않고 혼자서 해결하도록 가만히 둔다.
세종이 영실 같은 지음이 있다는 것을 부러워 하는데, 영실은 향 또한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그의 의중을 읽어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영실이 명나라로 끌려가기 전날 밤 향은 영실의 앞에서 그가 영실을 알아 온 시간을 말했는데 영실이 그가 기억하고 있는 것 보다 훨씬 오랜 시간을 그를 지켜봐왔다고,[6] 그의 어린 시절 모습을 담담히 말해주자 이내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린다. 당신 같은 신하는 두지 않겠다고 말하는건 덤.


4.5. 이천[편집]


최해산과 같이 영실의 작업을 가까이서 지켜봐 왔다. 처음엔 장영실의 출신을 들먹이면서 무시하는가 싶었지만 장영실의 실수를 칼같이 짚어내며 지적해준다. 높은 관직에 오른 영실을 여전히 아이 취급하는 최해산에게 타박을 하는 등 원칙주의자에 무뚝뚝하지만 영실을 인정하고 위하는 인물 중 한명이며 최해산과 같이 영실의 부모 같은 존재이다.


4.6. 이순지[편집]


장영실과 함께 하는 장면은 많지 않지만 영실이 장을 맞을 때 집현전 학자들 중 가장 크게 분노하는 모습을 보인다. 영실을 구하려고 나서려던 중 정인지에 의해 저지되고 빼돌려진 천문의기 옆에서 연구 서적들을 끌어안으며 "이걸 같이 만들고 함께 관측을 하는 그 모든 순간에 상호군께서 계셨습니다" 라며 오열한다. 장영실을 조선의 중요한 인재이자 많은 시간을 함께 한 동료로서 여기는 듯 하다.
최해산이 영실과 다시 만나는 순간에 영실을 데리고 나온 사람이기도 한데, 영실의 작업실에 남아 있던 것으로 보아 숨어 지내는 영실을 보좌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5. 고증 오류들[편집]


대왕 세종이라는 드라마 자체가 잘 된 고증과는 한참 거리가 먼 문제작이지만, 그 중에서도 장영실과 관련된 오류 중 대표적인 것은 다음과 같다.
  • 세종이 장영실에게 관직을 내리려 하자 고위 관료들이나 집현전이 "노비에게 관직을 준다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므로 불가하다!" 라고 맞서는데, 세종실록의 이 기사를 보면 실제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사의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세종이 "몇 년 전에 과인이 장영실에게 관직을 내리려고 대신들에게 물어 보니, 허조가 반대하고 조말생이 찬성해서 결론을 못 내렸다. 그리고 나중에 다시 물어보니 유정현이 찬성하기에 내렸다. 이제 관직을 더 올려 주려고 하는데 괜찮을까?" 라고 묻자 영의정 황희 등이 "태종 때부터 천한 출신으로 고위 관직까지 올라간 사람이 잔뜩인데 하필 장영실만 안 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답해 그대로 올려 주었다는 것이다. 노비 제도 자체를 고치자는 것도 아니고 하고많은 노비들 가운데 공이 있는 자 몇몇에게 관직을 준다는데야 반대할 이유가 없었으며, 실록 전체에서 면천(免賤)이라 검색하면 관련된 기사가 수두룩하게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7]. 즉 '신분에 연연하지 않는' 인재 등용 방식은 세종 뿐만 아니라 역대 조선 국왕들이 흔히 취했던 조치다[8].
  • 상술되어 있듯이 본작에서 장영실은 최해산과 대단히 가까운 사이로 묘사되는데, 세종실록만 놓고 보면 최해산이 등장하는 기사 39건과 장영실이 나오는 기사 14건 가운데 서로 겹치는 게 없다. 즉 적어도 실록에 따르면 둘이 붙어 다니는 것으로 그려질 근거는 전혀 없는 셈인데[9], 그도 그럴 것이 최해산은 화약과 화포 기술자였고 장영실은 천문기기, 시계, 활자 등을 발명했으므로 같은 기술자이긴 하지만 전문 분야가 다르기 때문이다.
  • 장영실이 최해산의 묘에 찾아가 총통등록을 헌정하는 묘사가 있는데, 실제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먼저 총통등록이라는 책은 세종의 명을 받은 군기감에서 편찬되었다는 것이 역사적 사실이다. 그리고 군기감은 물론 관청의 하나이고. 다시 말해 가마 사건으로 이미 파직된 장영실이 다시 등용되기라도 하지 않는 이상 편찬에 참여할 수가 없는데, 실제 역사는 제쳐놓고 작중에서의 묘사만 놓고 보더라도 장영실이 복직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 바로 윗 문단에서 상술했듯이, 장영실은 화약과 화포 기술자가 아니었으므로 복직이 됐다 치더라도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한 책을 펴내는 데 참가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차라리 최해산이 총통등록을 완성한 뒤 장영실에게 서문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미처 서문을 써 주기 전에 최해산이 세상을 떠났다, 이에 장영실은 뒤늦게 서문을 써서 최해산에게 헌정했다...... 라는 쪽이 훨씬 그럴듯하다[10].

6. 여담[편집]


  • 수영을 못 한다. 물에 빠졌을 땐 다연이 구해주었다.[11]
  • 거의 처음으로 극화 된 장영실이다. 그간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여진 모습이 없다보니 이천희는 어떻게 연기할 지 난감했다고 한다. 참고로 대왕 세종에서의 이천희의 장영실 캐릭터는 호평을 받는 편이다.
  • 이천희는 당시 예능 패밀리가 떴다에 출연하면서 구박받고 맹해보이는 등의 코믹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는데, 이 때문에 시청자 게시판엔 장영실의 이미지에 대한 항의가 자주 올라왔고 이천희는 아산 장씨 종친회에서 연락까지 받았다고 한다.
  • 이천희는 훗날 가구 공방의 사장이 되는데 장영실과 묘한 싱크로율이 있다.
  • 75회의 엔딩으로 대왕 세종 등장 인물들 중 주인공 세종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주인공으로 나오는 공식 MV가 방송되었다. 노래는 영지의 '달'.
  • 작중 세종과 나이가 비슷한(혹은 세종보다 연상인) 친구로 묘사되는데 실제로는 이천희가 세종 역의 김상경보다 7살이 어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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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귀족의 여식을 탐했다는 이유로.[2] 실제로는 대호군의 자리까지만 오른 것이 맞지만 여기선 왜인지 상호군까지 올라간다.[3] 그런데 이 장면에서 한영로가 동원한 일꾼(?)들은 아무리 봐도 사병인데, 실제 역사에서는 이미 사병 혁파되고 그에 반대했던 공신들이 유배됐다 돌아온 지 이미 오래다.[4] 강제 노동형.[5] 이때부터 대왕 세종의 메인 테마곡인 케이윌의 소원이 처음으로 나오면서 애잔함을 더욱 배가시킨다.[6] 향이 기억하고 있는 영실과의 인연은 9살 부터였으나 영실은 향이 3살일 때부터 지켜봐 왔다.[7] 장영실 외에 다른 예를 하나만 들라면 중종 대의 정막개라는 인물이 있는데, 역적 모의를 사전에 고발한 공을 인정받아 정 3품 상호군에 제수되었다. 이 자리는 양반 사대부로 태어났다고 해도 쉽게 올라가지 못하는 당상관직이며, 장영실도 오르지 못했던 고위직이다. 다만 반란을 고변했다는 이유로 고위직을 받아서는 앞으로 거짓으로 고변하는 일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데다 정막개 본인도 성격이 영 글러먹었기에 나중에 관직을 박탈당하긴 했는데, 여기에서 주목할 만한 건 "천것에게 고위직을 주면 안 됩니다" 가 아니라 "역적 모의를 고변한 공으로 고위직에 앉혀서는 앞으로 비슷한 사례가 또 있을 수 있습니다" 였다는 것. 다시 말해 "천민이라도 공을 세우면 고위직에 오를 수는 있는데, 역적 모의 고변은 이런 공으로 인정하면 안 됩니다." 라는 소리다.[8] 면천 뿐 아니라, 조선은 필요하다고 인정될 경우 이미 오래 전에 죽고 없는 사람의 공과도 몇 번 거듭해서 따져 상이나 벌을 내렸던 나라다. 배설이 좋은 예.[9] 실제로 이후에 방영된 장영실에서 최해산은 안 나온다.[10] 다만 이쪽도 문제인 건 마찬가지인데, 총통등록은 개인 문집이 아니기 때문.[11] 다연 왈. "동래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여태 헤엄도 못 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