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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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정치인이다.

1966년 전라북도 남원군에서 태어났다. 고려대학교 3학년 재학중 제적되었으며 이후 광주지역으로 내려와서 사회운동을 했다. 특히 1992년 이후에는 김영환, 하영옥 등이 만든 민족민주혁명당 조직원으로 활동하며 광주전남연합을 주도했다.

1989년 7월 북한의 주체사상을 대학가에 배포한 후 '반제청년동맹'을 이끌고 있던 김영환에게 북한 간첩 윤택림이 접근했다. 김영환은 윤택림의 권유로 '관악산 1호'로 조선노동당 당원이 된 후 1991년 5월 19일 1년 후배 조유식과 함께 입북하여 김일성을 만났다. 이후 남으로 돌아온 김영환은 1992년 3월 16일 하영옥 등과 함께 민족민주혁명당을 결성했다. '민혁당'은 북한의 승인을 받아 결정한 당명이었다.

민혁당은 산하에 경기남부위원회, 영남위원회 등을 두었고, 이들을 통해 전국연합의 의사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은 1991년 대한민국에서 각 부문별 사회운동을 전개하던 세력이 연합하여 결성한 조직이나, 1990년대 말에는 이미 'NL세력의 단일대오'로 축소되어 있었다. 민혁당 경기남부위원회는 전국연합 경기동부위원회로써 활동했으며, 장원섭을 통해 광주전남연합을 지도했다.

2004년 광주전남연합의 조직력을 통해 윤난실 후보를 꺾고 민주노동당 광주시당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민주노동당 광주시당사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민주노동당 후보로 광주광역시장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강운태 후보에 밀려 하였다. 같은 해 민주노동당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갑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김동철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건이 한창 진행중일 때, 중앙위원회 온라인 회의를 방해하려는 목적으로 인터넷 서버를 내리며 논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은 인터넷 등지에서 소위 '장완섭의 난'으로 불렸다. 기사

이용섭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광주광역시장 출마로 인한 2014년 상반기 재보궐선거에서 통합진보당 후보로 광주광역시 광산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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