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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張任
?~213년
1. 개요
4. 미디어 믹스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인물이자 유장 휘하의 장수로 익주 촉군(蜀郡) 사람이다.

정사에서 유비가 그를 자기편으로 회유하려 했으나 지조가 굳었기에 애석해 하며 죽였다. 연의에서는 아예 유장군의 에이스로 격상됐다. 유비가 회유하려 했다는 점에서 활약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뿐 숨겨진 인재였을 거라는 추측이다.


2. 정사[편집]


<선주전>에 주석으로 달린 <익부기구잡기>에 따르면, 장임의 집안은 대대로 한미한 가문이었지만 장임은 어려서 담력과 용기가 있고 지조와 절개를 갖추니, 주의 종사로 복무하게 되었다.

<선주전>에 따르면 유장유괴, 냉포, 장임, 등현 등을 보내 부(涪)에서 유비를 막게 했으나 모두 격파되었고 물러나 면죽현에 의지했다.

<선주전>에 주석으로 달린 <익부기구잡기>에 따르면 유장이 장임, 유괴를 보내 정병을 이끌고 부(涪)에서 유비를 막게 했는데, 유비에게 격파되자 물러나 유장의 아들 유순과 함께 낙성을 지켰다. 장임이 군사를 이끌고 안교로 출전해 싸웠으나 다시 패하고 사로잡히게 되었다. 유비는 장임이 충성스럽고 용맹하다는 것을 듣고 군사들에게 명해 그를 투항하게 했다. 장임이 성내며 외쳤다.

노신(老臣)은 끝내 두 주인을 섬기지 않는다.[1]


이에 그를 죽였는데 유비가 탄식하며 애석해했다.


3. 연의[편집]


별 활약이 없었던 정사에서의 모습과 달리, 삼국지연의에서는 유장 세력의 에이스이자 명장으로 묘사된다. 유비와 맞섰음에도 불구하고 삼국지연의의 수혜자가 된 희귀한 케이스.

유비가 서천으로 침공해 오자 유비군의 공격에도 오랫동안 낙성을 지켜냈다. 낙봉파에 유비를 죽이기 위해 매복했지만 대신 방통을 전사시키는 전과를 올렸고, 이후 낙성을 포위하다 지친 유비까지 죽이려고 했으나 때마침 엄안을 항복시키고 구원하러 온 장비와의 일 대 일 대결에서 승부를 내지 못하고 물러난다.

어쨌든 방통 대신 대책을 세우기 위해 관우에게 형주를 맡기고 파촉에 온 제갈량의 계략에 빠지고 만다. 제갈량이 일부러 부실한 군사를 데려가서 '네가 이 제갈량을 아냐 모르냐' 운운하며 허세를 부리는 척하자 공격하러 성을 나섰고, 그 순간 매복했던 조운이 낙성으로 가는 다리인 금안교를 끊어버리는 바람에 산으로 도망치지만 역시 매복했던 장비를 만나 사로잡힌다. 같이 행동했던 탁응이나 같은 에이스였던 엄안 등이 이미 항복했지만, 유비의 거듭된 권유를 뿌리치고 정사와 비슷하게 "충신은 죽더라도 두 주인은 섬기지 않는다."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그리고 유비는 그를 기리기 위해 충혼비를 세웠다고 한다.

단, 자치통감에 따르면 정사에서는 방통보다 장임이 먼저 죽었다. '낙봉파' 자체가 연의의 창작이므로 방통을 죽인 적도 없고, 장비가 촉에 도착하기 전에 이미 유비에게 처형되었다. 제갈량, 장비, 조운은 낙성 전투에 참가하지 않았고 유비가 자력으로 낙성을 함락시키고 성도를 포위할 무렵에나 유비군과 합류했다. 그러므로 장비와 벌인 단기전 역시 거짓이다.


4. 미디어 믹스[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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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장이었다는 근거가 전무한 엄안과 달리, 장임은 유장 세력에서의 노장이었을 가능성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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