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제원
덤프버전 :
분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정치인. 18·20·21대 국회의원.
정치 입문 이래 친이계에 속하였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른바 윤핵관으로 통하였으며, 현재 원내 친윤세력의 핵심이다. 2023년 12월 12일, 제22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
2. 생애[편집]
1967년 4월 13일, 부산직할시에서 사학재벌이자 정치인인 아버지 장성만과 어머니 박동순 슬하 2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3] 부산 동래초등학교[4] , 서울 여의도중학교와 여의도고등학교(11회), 중앙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중앙대학교 신문방송대학원 석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이후 가문 소유의 동서학원 소속 대학인 경남정보대학 수석부학장, 부산디지털대학교 부총장을 역임하였다.
3. 정치 활동[편집]
자세한 내용은 장제원/정치 활동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아버지 장성만도 재선 국회의원이고 국회부의장까지 지냈지만 정계입문이나 지금같은 정치적 입지 확보만큼은 적어도 아버지의 후광이 아닌 장제원 본인의 힘으로 스스로 일군 것이다. 아버지가 국회의원에 공천받은 것은 순수하게 전두환의 힘이었으며, 전두환이 물러나자 13대, 14대 총선에서 줄줄이 낙선하여 정계를 은퇴하였다. 그나마 당선된 11대 총선마저도 무투표 당선이어서 민심의 반영이 안 되었다는 점으로 보아 실질적으로 민심의 힘으로 당선된 건 12대 총선 한번뿐이다.
4. 비판 및 논란[편집]
자세한 내용은 장제원/비판 및 논란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5. 여담[편집]
- 부산광역시에서 태어났고 가족이 보유한 사학재단의 본거지도 부산광역시인데다 현재 본인이 맡고 있는 지역구도 부산광역시 사상구지만, 정작 평소 대화 중에는 부산 사투리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5] 태어나서 초등학교 때까지만 부산에서 자랐고, 부친이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중학교 때부터는 줄곧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동에 올라와 생활했다.[6]
- 짝눈에 삼백안, 날카로는 눈매, 특유의 내려간 입꼬리까지 안좋은 인상의 요소를 두루 갖추었는데 성격이 다혈질이라 쉽게 흥분하거나 언성이 높아질 때 특유의 독기어린 표정을 지을 때가 많다. 미소짓거나 웃을 때도 입꼬리가 잘 올라가지 않는다. 이는 아들도 해당되는 일이다.
- 출마하지 못했던 19대 총선을 제외하고는 부산 사상에서 3선에 성공했다. 장제원 개인에 대한 논란과 가정사와는 별개로 지역구 관리는 굉장히 잘하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 공석에서의 강한 이미지와는 다르게 의외로 아들에게는 그리 무섭지는 않은 듯 하다. 아들이 고등래퍼에 출연했을 당시 사생활 논란이 터졌을 때도 혼내지 않고 대화로 풀었다고 하며, 음주운전으로 자숙하는 중에도 아내 생일파티에 초대하고 이때 아들이 찍어준 본인과 본인 아내의 사진을 페이스북에 게시하며 ‘고맙게도 용준이가 와줬다’라는 글을 올렸다.[7] 노엘 또한 인스타에서 장제원에게 '보고 싶다'라고 말하는 등 서로의 관계는 원만한 듯 하다.
- 의외로 노래 실력이 상당하다.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별빛 같은 나의 사랑아’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준수한 노래 실력을 보여줬다. #
- 아들이 일으킨 논란에 비해서는 신기할 정도로 정치인 경력에 타격을 입지 않았다.[8] 일단 지역구에서 평가가 상당히 좋은것으로 보이며, 본인이 주도하는 산악회 모임에서 전세 버스를 92대나 빌릴 정도로 세력이 크다. 무엇보다 윤핵관의 대표격으로 실세가 된 영향이 컸다고 볼수 있다. 언제부턴가 본인도 정말 큰 일이 아니고서야 아들이 일으킨 논란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고 있다.
6. 소속 정당[편집]
7. 선거 이력[편집]
8. 둘러보기[편집]
[1] 본인은 Chang을 쓰나, 언론등 일부에서는 Jang Jewon으로도 표기된다.[2] 종파 36세손으로 항렬자는 쓰지 않았다.[3] 장성만 사후에는 어머니 박동순이 동서대학교 이사장을 맡고 있고 형인 장제국이 동서대학교 총장으로 재직중이다.[4] 부산에서 가장 유명한 사립초로 역시 부산 지역재벌인 김세연과 동문이다.[5] 그래도 부산 사람이라고 사투리 억양이 약하게 묻어나며, 동시대 서울토박이들과는 억양이 미묘하게 다르다.[6] 같은 당 소속의 박형준 부산광역시장도 마찬가지로 고향은 부산이지만 학창시절은 서울에서 보냈다 보니 사투리를 일절 쓰지 않는다.[7] 이는 좋게 말하면 부드러운 아버지지만 나쁘게 말하면 남에게만 엄격하고 제 자식에게는 관대한, 소위 '오냐오냐' 키우는 아버지인 셈이다. 결국 그의 아들은 아버지의 정치인 경력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는 불효를 저질렀다.[8] 정몽준과 남경필이 각자의 아들이 일으킨 논란으로 단 한 번의 공직선거 참패를 당하고 정계은퇴로 내몰린 것을 생각해 보자.[9]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10] 2016.6.23. 새누리당 복당.
2016.12.27. 새누리당 탈당.
2017.1.24. 바른정당 창당.
2017.5.2. 바른정당 탈당.
2017.5.12. 자유한국당 복당.
2016.12.27. 새누리당 탈당.
2017.1.24. 바른정당 창당.
2017.5.2. 바른정당 탈당.
2017.5.12. 자유한국당 복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