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타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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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취안 드래곤스 No. 49
장타이산(張泰山 / Chang Tai-shan)
생년월일
1976년 10월 31일(47세)

출신지
중화민국 타이둥
신체
173cm, 95kg
포지션
3루수
투타
우투우타
선수
웨이취안 드래곤스(1996년 ~ 1999년)
신농 불스 (2000년 ~ 2010년)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 (2011년 ~ 2015년)
애들레이드 바이트 (2017년 ~ 2018년)
코치
웨이취안 드래곤스 (2019년 5월 ~ )
국가대표
1998 방콕 아시안게임 대만 국가대표
2001년 야구월드컵 대만 국가대표
2003년 아시아 챔피언쉽 대만 대표팀
2004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
2005년 코나미컵 대만 국가대표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대만 국가대표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WBC) 대만 국가대표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만 국가대표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유, 청소년기
2.3. 이후
3. 코치 시절
4. 이모저모



1. 개요[편집]


대만 출신의 프로야구 선수이며, 전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의 소속 내야수이다. 현재 대부분의 타이완 리그 기록[1]을 갖고 있다. 대만 프로야구 리그 통산 홈런 2위(289홈런)[2]이며, CPBL 최초로 2000안타와 1000타점[3]을 기록한 선수이다.

20시즌간의 통산 성적은 1863경기 타율 .307, 출루율 .363, 장타율 .493, 2134안타, 289홈런, 158도루, 1338타점.


2. 선수 경력[편집]



2.1. 유, 청소년기[편집]


대만 타이둥 현(台東縣)에서 태어나 타이위안 초등학교(泰源國小)에서 야구를 시작했다. 중학교 때 타이완 남부의 야구명문인 메이허 중, 고교(美和中學)로 진학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 길거리에서 패싸움을 하여 야구부에서 퇴부조치를 받기도 하는 등 그렇게 얌전한 편은 아니었던 모양.

그러나 강타자로서의 재능을 알아본 타이완 청소년 대표팀 감독이 대표로 선발하여 다시 야구계로 돌아올 수 있었고, 별다른 활약은 없었지만, 그때의 경험이 그를 타이완을 대표하는 강타자로 만들어 준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2.2. 대만 프로야구 리그 시절[편집]


1995년 당시 만 18세의 나이로 스바오 이글스(時報鷹)의 특별 보충선수[4]로 뽑혔지만 바로 이 그 해 승부 조작으로 해산되는 일이 벌어지면서 다시 무직자가 되었다. 그로 인해 면제받았던 병역 문제도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하지만 쟝타이산은 당시 84kg이던 체중을 당시 중화민국군의 면제 기준이 되는 109kg까지 인위적으로 찌워서 면제 판정을 받은 후, 바로 다시 85kg으로 살을 뺐다.

이 문제로 당시 많은 논란과 함께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후 당시 웨이취안 드레곤즈 감독이던 쉬성밍(徐生明)의 강력한 요청으로 다시 그 팀의 연습생으로 입단하게 된다.

1996년, 19살의 쟝타이산은 대만 프로야구 사상 가장 어린 나이로 등록된 선수가 된다.

프로 7년째인 1996년에 가장 어린 프로야구 선수가 많은 활약[5]을 한 모습을 본 웨이취안 팀의 궈회장(郭董事長)은 리그 중간에 당시 월급 6만 위안에서 파격적으로 두 배인 12만 위안[6][7]으로 인상한다.

1998년에 수차례의 월간 MVP상 획득과 연도 MVP상, 그리고 골든 글러브 등을 수상하면서 리그에서 쟝타이산은 공수를 겸비한 강타자로 자리 잡게 된다. 1999년에 웨이취안 드레곤즈 팀이 해체되고 나서 2000년부터 신농 불스(現 이다 라이노스)로 옮겨 활약하였고, 2003년에는 CPBL 사상 최초로 개인 통산 100홈런과 100도루를 기록한 선수가 되었고, 같은 팀의 황중이(黃忠義), 정쟈오싱(鄭兆行)등과 함께 싱농불스의 삼번도(三番刀) 타선[8]으로 불리게 된다.

당시 어린 나이[9]머리숱이 빠지게 되면서 여러 우스갯소리로 리그 야구 심판인 쉬쟌위엔(徐展元)은 쟝타이산이 홈런을 치면 그의 머리를 보고 또 날아가는 공을 보면서 '이젠 돌아오지 않는 (공)머리가 되었다'라고 그의 머리숱이 없어짐을 비유하면서 농담을 하였고, 슝디 팀의 린밍시엔(林明憲)도 머리숱이 없는 사람들을 농담으로 '타이완 빛나리 야구부대'라고 하면서 부대장은 자신이고 대장은 바로 쟝타이산이라고 하기도 했다.

CPBL 14년 차인 2003년에는 28개의 홈런과 22개의 도루를 기록하면서 대만 프로야구 리그 역사상 최초로 20-20 클럽을 달성한 사람이 되었다.

2006년에는 본래 늘 맡아보던 3루수를 그만두고 1루와 외야로 전향했다. 그리고 그해 타이완 프로 역사상 100홈런과 100도루 외에 다시 1000안타를 최초로 기록한 선수가 된다. [10]



2.3. 이후[편집]


2015년 시즌 이후 퉁이 라이온즈를 퇴단하고 일본 독립리그로 갔다.

2017년 호주리그 애들레이드 바이트에서 현역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2019년 자신의 데뷔팀이었던 웨이치안 드래곤스의 재창단 멤버로 참가하겠다고 밝혔다.

3. 코치 시절[편집]


2019년 5월부터 웨이치안의 타켝 코치로 부임했다.


3.1.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 시절[편집]


청소년 대표팀과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 2001년 야구 월드컵, 그리고 2003년 아시아챔피언십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그리고 2005년 코나미컵과 2006년 WBC, 2007년 대륙간컵,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등 거의 모든 대회에서 타이완의 국가대표 중심타자 역할을 하면서 활동했다.

그러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예선이 끝난 후 올림픽에 참가하기 위하여 베이징으로 출국하기 전에 약물 검사에 적발되어 본선 무대에는 참가하지 못하고 1년 동안 자격정지의 처분을 받았다. 본인은 아내와의 사이에서 자녀를 갖는 방편으로 복용한 임신 관련 약물이었다고 변명했지만, 국제기구에서 정한 금지약물 성분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당시 그토록 염원하던 올림픽 무대에 참가하는 대만 야구 국가대표팀으로서는 쟝타이산이 3루에서 빠진 것이 아주 큰 타격이 되었다. 타격에서는 당연히 이루 말할 수도 없고, 수비에서도 안정된 모습을 보이던 그가 약물복용으로 빠지게 되면서 흔들리게 되었고, 결국 삐걱거리는 타선과 엉망인 수비 조직력으로 결국 올림픽에서 숙적인 중국에게마져 져버리게 되면서[11] 쟝타이산에게 엄청난 여론의 비난과 책임론에 휩싸이게 된다.

본인 말로는 그 당시에 죽고 싶었다고 하면서 은퇴도 생각했다고 하지만 아내의 헌신적인 권유로 다시 마음을 다잡고 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


4. 이모저모[편집]


  • 타이완의 유명한 야구 명문가 집안인 타이둥 양자(台東陽家)의 구성원 중 한 명이 바로 장타이산이다. 가계도의 야구 선수를 보면 대표적으로만 추려도 여러 명이 있을 정도. 잠시 살펴보면 천즈위안[12]과 천즈펑[13]의 외삼촌이고, 가오펑녠[14]의 외사촌 형이면서, 천융순[15]의 내종 사촌 동생이라는 것.
  • 장타이산은 2009년에도 윌튼 베라스(威納斯), 셰자셴(謝佳賢)과 함께 '매우 위험한 타선'이라고 불린 데다가, 거기에 제2회 WBC 대회를 통해 스타로 발돋움 한 린이취안(林益全)이 중심타선에 가세하여 '정말 매우 위험한 타선'으로 불리는 싱농 불스 팀의 중심타선의 한 축으로 활약했다.
  • 대만 원주민 민족 중 하나인 아미족 출신이다. 원주민 중에서는 야구를 비롯한 스포츠 선수가 주류인 한족에 비해 많다. 아미식 이름은 아티 마사우(Ati Masaw).
  • 금지 약물이 적발되면서 한때 대만 야구계에서도 무수히 욕을 먹었으나, 결혼 9년차에 아직 아이가 없어 클로미펜 이라는 불임 치료제를 먹었는데 그게 문제가 되었던 것. 이후 아들이 태어나 이름을 클로미펜이라고 지었다. 조금이라도 장타이산을 이해하는 분위기도 있는편이다.
[1] 출장 경기, 타수, 타석, 득점, 안타, 2루타, 홈런, 타점 기록을 갖고 있다.[2] 1위는 301홈런을 기록한 린즈셩.[3] 홈런 기록과 타점 기록은 사실상 은퇴했던 2015년까지는 기록 경신이 먼 이야기였으나 현재는 많이 근접했고, 대만 야구계의 또다른 레전드 린즈셩이 기록 경신을 노리고 있다. 2020시즌 종료까지 홈런 부분에서는 3개 차이로 코앞까지 따라붙어 있는 상태이다. 사실 장타이산은 통산 홈런 1위이긴 하지만 거포라기에는 홈런수에 비해 단타수가 워낙 많아서 통산 장타율이 5할 미만이고, 현재까지 CPBL의 통산 장타율 1위는 5할 중반대의 린즈셩이다.[4] 한국으로 치면 이거와 비슷[5] 퉁이 라이온즈 팀의 슈퍼루키 선발 12승 투수 우쥔량(吳俊良)과 신인왕을 두고 박터지게 경쟁하던 사람이 장타이산이다.[6] 현재의 월급은 33.1만 위안/현재 환율로 한화 약 1,270만원[7] 야구선수 치고는 상당이 적은 금액이라고 생각될 수 있지만, 대만 프로야구 리그의 특성 상 월급을 많이 받는 선수는 드물다. 왜냐면 대만 프로야구의 스폰서는 알다시피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들이 운영을 한다.[8] 이 세 선수가 모두 대만 원주민 출신이라서 그렇게 부른다.[9] 만으로 겨우 26살[10] 2006년 5월 4일에는 162개 째 홈런을 기록하여 당시 최고이던 린중치우(林仲秋)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고, 바로 이틀 후 163호를 때려내면서 타이완 최고의 기록을 세운다.[11] 자세한 내용은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 항목 참조, 당시 대만 대표팀이 승부조작을 했다는 의혹도 있다.[12] 陳致遠:슝디 엘리펀츠의 외야수이자 국가대표 선수.[13] 陳致鵬:슝디 엘리펀츠의 외야수.[14] 高豐年:전 중신 웨일즈와 싱농 불스 팀의 선수.[15] 陳勇順:예전 TML 당시 니엔다이띠엔공 팀(年代雷公隊)의 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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