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수(1957)

덤프버전 :

장태수 관련 틀
[ 펼치기 · 접기 ]



장태수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펼치기 · 접기 ]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우승반지

1985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5.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11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1982 KBO 베스트 10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4번
창단

장태수
(1982~1992)


최홍주
(1993~199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5번
결번

장태수
(1994~2016)


최태원
(2019~2022)
KIA 타이거즈 등번호 85번
신동수
(2012~2018)

장태수
(2019~2020)


오준형
(2021~)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85번
이태오
(2022)

장태수
(2023)


결번




장태수
張泰洙 | Jang Tae-soo

출생
1957년 10월 15일 (66세)
경상북도 의성군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신천초 - 중앙중 - 대건고
포지션
중견수, 유격수[1]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82년 1라운드 (삼성)
소속팀
상업은행 야구단
삼성 라이온즈 (1982~1992)
지도자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연수코치 (1993)
삼성 라이온즈 2군 주루코치 (1994~1997)
삼성 라이온즈 1군 주루코치 (1998~1999)
삼성 라이온즈 타격코치 (2000~2002)
삼성 라이온즈 주루코치 (2003~2004)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2005~2009)
삼성 라이온즈 1군 수석코치 (2010~2011)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2012~2016)
KIA 타이거즈 잔류군 야수코치 (2019)[2]
KIA 타이거즈 2군 총괄코치 (2019)[3]
KIA 타이거즈 잔류군 총괄코치 (2020)
롯데 자이언츠 잔류군 총괄코치 (2023)
프런트
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트 (2017~2018)

1. 개요
2. 선수 경력
3. 지도자 경력
4. 프런트 경력
5. 연도별 주요 성적
6.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출신 감독. 선수 시절 포지션은 중견수였다.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및 원년 멤버이며, 류중일 등과 함께 삼성 한 팀에서만 프로 선수 생활을 했다. 야구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장면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마지막에 최동원에게 삼진을 당하는 모습이다. 2아웃 3루 풀카운트에서 인코스 라이징 패스트볼에 배트를 멈추었는데 1루심에 의하여 스윙으로 판정되었고[4] 그 순간 롯데 자이언츠의 우승이 확정되었다. 2011년 최동원의 타계 후 스포츠 채널에서는 1984년 한국시리즈 하이라이트와 최동원 특집 다큐멘터리를 틀어주는 일이 많았는데, 그 때마다 등장한다.


2. 선수 경력[편집]


프로 창단 원년부터 중견수로 활약했으나, 실업 야구 시절에는 상업은행의 주전 유격수로 빠른 발과 견실한 수비로 유명했었다. 그러나 삼성 라이온즈의 창단 감독인 서영무는 갓 대학을 졸업한 오대석을 주전 유격수로 낙점하고, 장태수는 빠른 발이라는 강점을 살리기 위해 중견수로 전향시켰다.

이만수, 이선희 등과 함께 삼성의 원년 멤버로 활동했으며 체크스윙을 자주 했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1984년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타석에서 체크스윙으로 휘두르다가 최동원에게 헛스윙 삼진을 당하며 패배가 확정되었다.[5]

성실하고 수비도 잘 한 만능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현역 시절 장태수는 삼성 외야의 축을 담당했던 삼성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선수로 뛰어난 외야 수비와 허슬 플레이, 빠른 발, 나름 괜찮은 타격을 선보이던 삼성의 대표 외야수였다.


3. 지도자 경력[편집]



3.1. 삼성 라이온즈[편집]





1992년 시즌 종료 뒤 은퇴했고 미국으로 건너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산하 마이너 팀에서 1년간 지도자 연수를 받았다. 연수를 마치고 귀국해 1994년부터 친정 팀 삼성 라이온즈의 코치로 선임되며 2016년까지 재직했다.

선수 시절에 다재다능했던 것만큼 코치로서도 주루코치, 타격코치, 작전코치, 외야수비코치 등 다양한 보직을 맡았다. 2004년 말 선동열 수석코치가 감독으로 승격되며 2군 감독이 되었다가 2010~2011년에는 수석코치를, 2012 시즌부터는 김성래가 수석코치와 타격코치 겸임으로 맡게 되어 다시 2군 감독으로 보직을 변경했다.(장태수는 1985년 선수 현역 시절 이후 같은 팀 26년 만에 코치로서 최초로 우승 했다.)

1994년부터 2016년까지 한 팀에서 코치 생활을 무려 23년이나 하였다.[6] 15년 넘게 한 팀에서 코치를 해 온 건 두산 베어스송재박과 더불어 둘 뿐이다.(거기에 둘 다 외야수 출신이다.) 그간 여러 차례 감독이 바뀌었음에도 한 팀에 오래 있었다는 것은 그만큼 여러 감독들이 그의 코치로서 능력이나 삼성 선수단과의 친화력 등을 높이 평가한 듯하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철밥통이라며 까는 팬들도 있는 듯하다.


3.2. KIA 타이거즈[편집]


2019년 1월 7일 KIA 타이거즈의 잔류군 야수코치로 부임하였으나, 김기태 감독이 사임하고 박흥식 2군 감독이 1군 감독 대행으로 승격하면서 5월 17일부로 2군 총괄코치로 전보되었다.#

2020 시즌에는 잔류군 총괄코치를 맡게 되었다.


3.3. 롯데 자이언츠[편집]


한동안 야인으로 지내다가 2023 시즌 롯데 자이언츠의 잔류군 총괄코치로 부임하게 되었다.

시즌 후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았다.


4. 프런트 경력[편집]


김한수 감독이 부임하고 코치의 세대교체 바람이 불면서 35년만에[7] 유니폼을 벗고 스카우트 팀으로 옮겨 활동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19년 KIA 타이거즈의 코치진에 합류하며 자리를 떠나게 되었다.


5.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삼성
64
214
.336
(3위)
72
15
3
3
27
42
34
(4위)
47
.477
.456
(2위)
1983
82
245
.208
51
4
1
4
21
36
10
24
.282
.279
1984
74
192
.268
55
13
2
2
8
40
10
29
.406
.380
1985
104
252
.290
73
13
0
1
25
33
10
33
.353
.372
1986
96
200
.285
57
12
1
8
29
35
15
28
.475
.370
1987
89
266
.282
75
15
3
8
32
47
8
38
.451
.368
1988
92
290
.266
77
7
4
(3위)
8
33
54
25
(3위)
44
.400
.361
1989
106
290
.303
88
10
1
5
34
39
24
39
.397
.379
1990
103
243
.235
57
14
1
3
30
41
9
36
.337
.331
1991
89
178
.292
52
3
2
4
32
33
2
30
.399
.389
1992
92
162
.216
35
4
2
2
20
28
4
24
.302
.316
KBO 통산
(11시즌)
991
2532
.273
692
110
20
48
291
428
151
372
.389
.363


6. 관련 문서[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5 15:16:16에 나무위키 장태수(1957)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아마추어와 실업야구 시절에는 유격수였다.[2] ~5월 16일[3] 5월 17일~[4] 물론 슬로우 모션으로 안 보더라도 방망이 끝이 홈플레이트를 돌아서 마운드를 향하고 있기에 확연한 스윙은 맞다.[5] 풀 카운트에서 체크스윙하고 배트 던지며 1루로 달려나갔던걸로 보면 볼넷인줄 알았던 것 같다. 그러나 주심은 1루심에게 확인하고 삼진을 외치는 동시에 롯데의 우승을 선언하였다.[6] 연속기간은 연수기간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등번호가 있냐 없냐 기준으로는 끊어졌다고 해야하지만 일반적인 사회에서는 회사에서 보내준 연수기간으로 근속년수를 단절해버리진 않는다.[7] 현역 시절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