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피에르 파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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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피에르 파팽의 역임 직책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

마누엘 아모로스
(1988~1992)

장피에르 파팽
(1992~1993)


에릭 칸토나
(1993~1995)


장피에르 파팽의 수상 이력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파일:리그 1 심볼.svg

1987-88 · 1988-89 · 1989-90 · 1990-91 · 1991-92
파일:발롱도르 트로피.png

파일:월드사커 로고.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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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파일:옹즈도르.png



1991 FIFA 올해의 선수
수상
로타어 마테우스
2위
장피에르 파팽
3위
게리 리네커
1989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마르코 반 바스텐
루드 굴리트
장피에르 파팽
1990 Onze d'Or
Onze d'Or
Onze d'Argent
Onze de Bronze
로타어 마테우스
살바토레 스킬라치
장피에르 파팽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B
Olympique de Marseille B
파일:jean-pierre-papin-foot.jpg
이름
장피에르 파팽[1]
Jean-Pierre Papin
출생
1963년 11월 5일 (60세)
프랑스 불로뉴쉬르메르
국적
[[프랑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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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신체
176cm
직업
축구 선수 (스트라이커 / 은퇴)
축구 감독
소속
선수
INF 비시 (1983~1984 / 유스)
발랑시엔 FC (1984~1985)
클뤼프 브뤼허 KV (1985~1986)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1986~1992)
AC 밀란 (1992~1994)
FC 바이에른 뮌헨 (1994~1996)
FC 지롱댕 드 보르도 (1996~1998)
EA 갱강 (1998~1999)
JS 생 피에르 (1999~2001)
감독
FC 바생 다르카숑 (2004~2006)
RC 스트라스부르 (2006~2007)
RC 랑스 (2007~2008)
LB 샤토루 (2009~2010)
FC 바생 다르카숑 (2014~2015)
클루브 샤흐트레 풋볼[2] (2020~2022)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 B (2023~ )
국가대표
54경기 30골 (프랑스 / 1986~1995)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2.2. 국가대표
3. 지도자 경력
4. 기록
4.1. 대회 기록
4.2. 개인 수상




1. 개요[편집]


파일:external/www.sportsignings.com/papin2.jpg

프랑스의 축구 선수 출신 감독. 포지션은 스트라이커였다. 약칭은 JPP.

현역 시절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서 리그 1 4연패를 이끌면서 1991년 발롱도르를 수상하는 등 팀의 간판 스타로 활악했다. 특히 구석으로 정확하게 차 넣는 슛과 발리 슛은 그의 전매특허였다. 다만 국가대표팀에서는 1990, 1994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바람에 이렇다 할 족적을 남기지 못한 비운의 선수다.[3]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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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은 아니고 레전드급이었던 마르세유 시절.

파일:external/www.milansverige.se/img-le-onze-de-reve-de-jean-pierre-papin-1317395898_620_400_crop_articles-140303.jpg
AC 밀란 시절.

당시 2부 리그에서 뛰던 발랑시엔에서 데뷔를 했다. 될놈은 떡잎부터 다르다고, 시작부터 남달랐던 스트라이커로 데뷔 시즌인 84-85 시즌에 33경기 15골을 집어넣으며 자신의 등장을 알렸다. 다음 시즌 벨기에의 클뤼프 브뤼허로 이적해 31경기 20골을 넣었다.

그러한 활약으로 당시 마르세유 제국을 건국 중이었던 언론 갑부였다가 훗날 승부조작 사기꾼이 된 구단주 베르나르 타피의 과감한 투자로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에 입성하게 된다. 당시 같이 이적한 선수들이 카를하인츠 푀르스터, 알랭 지레스인데, 카를하인츠 푀르스터는 유로 1980 우승팀인 서독에서만 81경기를 뛴 레전드이자 크리스토프 메첼더의 우상이고, 알렝 지레스는 지롱댕 드 보르도에서만 519경기 168골을 넣은 프랑스의 전설적인 선수로, 1980년대 초중반에 옹즈 몽디알의 유럽 최우수 선수상인 옹즈도르에서 미셸 플라티니와 엎치락뒤치락했던 선수다. 이런 가운데 마르세유 입단 이후 무려 5연속 리그 1 득점왕과 3연속 유러피언컵 득점왕이라는 말도 안 되는 활약을 펼쳤고, 그 속에서 마르세유는 4시즌 연속 리그 1 우승과 90-91 시즌 유러피언컵 준우승을 달성하는 등 전성기를 달렸다.

파일:mag award FF 1991 photo.jpg
마르세유 시절 1989, 1991년 프랑스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는 등 여러 상을 수상했는데, 특히 1991년의 경우는 발롱도르까지 거머쥐며 그의 선수 인생 최고의 시즌으로 자리매김한다.

이후 92-93 시즌, 세계 이적료 기록을 갈아치우는 £10m의 이적료로[4] AC 밀란으로 이적하게 된다. 이유는 루디 푈러의 영입과 챔피언스리그 우승.[5] 밀란 이적 첫 시즌에 원하던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올라갔는데 아이러니 하게도 상대가 마르세유였다. 게다가 결과는 1:0으로 패배. 하지만 다음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함으로서 결국 목표를 달성했다.

챔스 우승 이후 밀란에서 짐을 싸서 바이에른 뮌헨으로 이적하게 된다. 하지만 결과는 2시즌 간 27경기 3골에 그치며 완벽한 먹튀로 전락하게 된다.

그 후 지롱댕 드 보르도로 이적하여 55경기 22골을 넣으며 부활하였고, 98-99 시즌 EA 갱강으로 이적한 후에 한시즌 뛰다가 레위니옹[6] 프리미어리그 팀인 JS 생 피에르로 이적해서 2년 뛰고 은퇴했다.


2.2. 국가대표[편집]


파일:papin france.jpg
명성에 비해서 굉장히 어두운 국가대표 시절을 보냈다. 미셸 플라티니의 2세대 전성기(1982 스페인 월드컵 4위, 유로 1984 우승, 1986 멕시코 월드컵 3위)[7]지네딘 지단의 3세대 전성기(1998 프랑스 월드컵 우승, 유로 2000 우승) 사이에서 전성기를 보낸 것.

물론 파팽이 못한 것은 아니라서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 조별 리그 1차전 캐나다전과 3·4위전 벨기에전에서 골을 넣고, 유로 1992에서는 조별 리그에서만 2골을 넣는 등 제몫을 다했다. 하지만 1986 멕시코 월드컵에서는 16강-8강-4강 모두 결장하고, 유로 1992에서는 조별 리그 탈락을 해버렸다는게 문제. 특히 파팽의 전성기가 시작됐을 때가 하필이면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로 불리던 시대라 1990, 1994 월드컵에서 모두 예선 탈락을 하는 등 최악의 시기를 보냈다. 그래도 월드컵에 한 번도 못 나온 이 아저씨에 비하면 양반이다.

이런 이유와 더불어 프랑스 리그에 크게 관심이 없는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이름이 덜 알려진 편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명성을 갖고 있던 선수였다. 다만 최근 들어서는 피파 온라인 2를 통해 많이 알려진 편이다. 침투가 상당히 좋은 편이어서 사용하는 유저들이 많았다.


3. 지도자 경력[편집]


2004년 6부 리그의 바생을 맡아 2004-05 시즌 5부 승격을 이끌어냈다. 2005-06 시즌 계약이 종료되었다.

2006-07 시즌 RC 스트라스부르 알자스의 감독으로 부임해 19승 13무 6패를 기록하며 리그 3위로 팀을 승격시켰다.

2023년 11월 30일, 올랭피크 드 마르세유의 리저브 팀 감독으로 부임했다.#


4. 기록[편집]



4.1. 대회 기록[편집]









4.2. 개인 수상[편집]



[1] 외래어 표기법에서는 인명을 표기할 때 줄표(-)를 무시한다. 줄표의 앞뒤를 별개의 단어로 보아 띄어 쓰지는 않되, 연음 등은 고려하지 않고 표기한다.[2] 프랑스 샤르트르를 연고로 하는 샹피오나 나시오날 2 참가 구단[3]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출전해서 2골을 넣고 3위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3·4위전을 제외한 토너먼트 경기에 모두 결장하는 등 주역이라고 보기는 어렵다.[4] 역사상 최초의 1,000만 파운드 이상의 이적료를 기록한 선수가 파팽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불과 24일만에 유벤투스가 잔루카 비알리를 £12m에 영입하며 깨졌다.[5] 3시즌 동안 벤피카, 츠르베나 즈베즈다, 스파르타 프라하 등에게 밀려 탈락했다. 특히 츠르베나 즈베즈다에겐 결승전에서 승부차기로 패배[6] 프랑스령 레위니옹이며 마다가스카르 근처에 있는 섬 맞다.[7] 참고로 파팽과 같이 영입됐던 알랭 지레스 역시 2세대 프랑스 국가대표팀의 중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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