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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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 2007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파일:201810142003617642_1_20181014200439865.jpg
이름
장학영
張學榮 / Jang Hak-Young

출생
1981년 8월 24일 (42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조건
170cm, 63kg
포지션
풀백
프로 입단
2004년 성남 일화 천마
소속팀
성남 일화 천마 (2004~2010)
서울 유나이티드 FC (2010~2012 / 군 복무)
부산 아이파크 (2012~2014)
성남 FC (2015~2017)

국가대표
5경기 (대한민국 / 2006)
범죄
승부조작 시도

1. 개요
2. 선수 경력
3. 논란
3.1. 승부조작 시도 적발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축구인. 현역 시절 성남 FC에서 활약했다.

은퇴 후 후배 선수에게 승부조작을 제의한 사실이 발각되어 대한축구협회에 의해 영구제명되었다.[1]

2. 선수 경력[편집]



2.1. 성남 일화 천마[편집]


경기대학교를 졸업했으나 K리그 팀들로부터 영입 제의를 받지 못했고, 결국 성남 일화 천마에서 연습생 신분으로 훈련에 참가해야 했다. 이 때 안익수 당시 성남 2군 코치로부터 성실성을 인정받아 2004 시즌 도중에 정식 계약을 맺게 되었고, 중앙 미드필더에서 현재의 포지션인 풀백으로 포지션을 변경한 것도 이 때이다.

처음에는 미숙한 경기력으로 왜 쓰는지 모르겠다는 불만과 함께 많은 팬들의 질타를 받았지만, 전북 원정 경기의 대승을 기점으로 본인이 가진 경기력을 온전히 보여주면서 차경복 성남 감독의 눈에도 띄어 데뷔시즌에 16경기나 출전하고, 이듬해에는 아예 주전자리를 꿰차기에 이른다. 어디선가 갑자기 갑툭튀한 무명 선수가 주전으로 대활약하는 것을 보고 성남 팬들은 복에 겨워하며 하악이라는 별명을 붙여 주었다. 이 때의 활약으로 딕 아드보카트 감독에 의해 A대표팀에도 소집되기까지 한다.

김학범 감독의 부임 이후에는 장학영-김영철-조병국-박진섭으로 이어지는 철의 포백의 한 축을 담당하며 성남 일화의 마지막 K리그 우승, AFC 챔피언스리그 4강 진출에 일익을 담당한다. 김학범 감독의 사임 이후 김학범 감독 아래에서 주축을 담당하던 선수들이 이런 저런 이유로 팀을 떠날 때도 조병국, 정성룡 등과 함께 그대로 잔류해 신태용 감독의 아챔 우승에도 기여한다. 전성기에 왼쪽 풀백자원이 풍부해서 대표팀과 인연이 없었던 게 아쉬울 따름이다.[2]

그리고 2010년 시즌 중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하면서 팀을 떠났다. 공익으로 병역을 이행하는 중에는 K3리그서울 유나이티드에서 뛰면서 경기감각을 유지했다.[3]

2.2. 부산 아이파크[편집]


복무를 마치고 복귀한 팀은 성남이 아닌 부산 아이파크였다. 장학영의 소집 해제를 앞두고 성남이 부산에서 한상운을 영입하면서 그 대가로 장학영의 소유권을 부산에 내주었기 때문. 장학영은 자신의 등번호였던 33번을 쓰던 홍철에게 2012년에는 자신의 번호를 비워둘 것을 미리 이야기 했을만큼 팀에 대한 복귀를 당연시했고, 떠날 때도 팬들을 따로 불러서 송별회를 치룰 만큼 팀과 팬에 대한 충성심이 컸던 장학영이었다.

이때만 해도 장학영이 도박중독자인 줄 몰랐던 성남팬들은 레전드를 이렇게 내칠 수 없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하지만 당시 성남일화 프런트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그대로 장학영을 부산에 넘겨준다. 당시 부산 감독은 다름아닌 장학영을 발굴해 낸 안익수. 클래스는 영원하다는 명언 그대로 소집 해제 후 부산 아이파크에 이적하자마자 주전으로 활약한다.

당시 신태용 감독의 계획은 안정환을 영입하여 성남의 구심점으로 내세우는 것이었으나 영입하지 못했다. 결국 홍정호+안정환 영입 실패(센터백+팀의 구심점)를 만회하려 했는지 황재원을 영입하였지만 그는 사이버 선수가 되었다. 계획이 다 틀어지고 멘탈레기만 남은 결과 문자 그대로 망하였다. 한상운은 성남에서 부진하여 J리그로 임대됐고 홍철은 당시 발바닥 수술을 받고 폼이 나빴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남궁웅[4]이 왼쪽 풀백을 보며 선전했지만, 팀을 구원하진 못했다. 결국 팀이 존폐 위기를 맞은 연말에 신 감독은 계약기간을 2년 남겨놓고 사퇴했다.

2013 시즌 10살 아래 신인 박준강과 부산의 좌우 측면 수비를 나눠맡아 책임졌다. 2014 시즌에도 주전으로 33경기에 출장해 3개의 도움을 기록하였다.

2.3. 성남 FC[편집]


2014 시즌 후 계약이 종료되어 자유계약 대상자가 되었다. 사실 그 해 겨울에도 자신을 키워준 김학범이 있는 성남 FC로 돌아오지 않겠냐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이적 계수가 발생하는 선수라 그런지 겨울을 넘기게 되었다. 하지만 결국 2015년 6월 25일에 성남 FC와 계약하며 친정에 복귀했다. 그 후 김학범 감독 휘하에서 부진했던 김동섭이 부산으로 떠나고 박용지가 들어오면서 박용지+장학영과 김동섭을 트레이드 한 것이 아니냐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리고 2015년 7월 8일 서울과의 홈경기에서 복귀전을 치뤘다. 김두현에게 주장 완장을 받는 모습이 매우 감동적이었고, 시즌 초부터 그를 기다렸던 성남 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그 후 박태민을 밀어내고 주전 레프트백 자리를 차지한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좋은 활약을 펼쳤고, 시즌 중에 합류해 비교적 적은 17경기에 출장하며 1개의 도움(9월 23일 성남의 상암 원정 무승 기록을 멈추게 한, 부산 출신 박용지의 골을 만들어냄)을 기록했다.

2017 시즌이 끝나고 성남과의 결별 소식이 들려왔다. 공식 홈페이지 게시판에 본인이 직접 쓴 인증글도 올라왔다.

성남과 결별 후 타 구단으로 이적해 선수 생활을 더 이어나간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어느 팀도 그를 부르지 않았고, 결국 2017년을 끝으로 사실상 현역에서 은퇴했다. 은퇴 후 성남팬들은 군 복무와 한상운이라는 뻘영입 때문에 이적한 것을 제외하면 팀을 선수 생활 내내 지킨 레전드의 은퇴식이나 코치직 어느 것도 주지 않는 것에 의아해 하면서 구단을 원망했다. 그래도 장학영 본인은 기분 나빠하지는 않았고, 은퇴 후 장학영은 유소년 축구 교실을 운영하였고, 수익이 괜찮았다고 한다.

3. 논란[편집]



3.1. 승부조작 시도 적발[편집]


그런데 현역에서 은퇴하고 1년 뒤에 승부조작을 권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남빠들을 비롯한 모든 축빠들을 분노에 차게 만들었는데, 2018년 9월 21일, K리그2 부산 - 아산 경기 전날, 아산 숙소에서 아산 무궁화 소속 후배 이한샘을 만나 5,000만 원을 건네고 승부조작을 권했지만 이를 거절한 후배가 아산 구단에 즉각 신고하면서 현장으로 출동한 경찰에게 승부조작 혐의로 체포되어 구속되었다. 현재 장학영 이외의 사건 관계자들은 해외 도피 중이다.

사건 한달 전 다음 카페 내 홍보 게시판에 축구 레슨 인원 모집을 한다는 글을 올렸다.[5] 이 글을 토대로 짐작해보건대 생활고에 급전이 필요해서 브로커 일을 시작한 걸로 보인다.

만약 이 사건이 그대로 실행이 되었더라면 카잔의 기적, 2018 아시안 게임 축구 금메달에서 다시 시작된 한국 축구의 열기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었던 아찔한 사태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더욱 무서울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후배 선수들의 증언으로는 이미 선수 시절부터 도박에 빠져 지내고 고작 2,000 ~ 3,000만 원 연봉을 받는 선수들한테 자주 을 빌리고 다녔다고 한다. 주로 사설 토토에 빠져 지냈으며, 또한 이번 승부조작 제의 사건 과정에서 이혼했다는 것도 뒤늦게 드러났고, 이 이혼 사유도 도박 중독인 걸로 밝혀져서 성실하고 모범이 된 선수 생활과는 반대로 사생활은 개막장을 달리고 있었음을 제대로 인증했다. 심지어, 이 때 장학영은 수억대 연봉을 받고 있었다. 이런 레전드였음에도 은퇴식을 치르지 못한 것도 알고 보니 채권자들이 몰려들 것을 우려했던 것이었고, 성남 구단도 이런 걸 미리 알고 있어서 일부러 은퇴식을 치러주지 않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학영이 승부조작을 제의한 선수인 이한샘의 소속 구단 아산 무궁화는 대한민국 경찰청 산하이자 경찰청 의무경찰 휘하 축구단이다. 더군다나 사건 발생 며칠 전 아산 선수들은 전원이 승부조작 방지 세미나를 수료했다. 즉, 현직 경찰에게[6] 범죄에 가담하라는 미친 제의를 한 것이다.[7]

직후, 대표 성남빠 유명인인 샤다라빠는 웹툰을 통해 장학영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금치 못하며 그동안 본인이 구입해서 보관중이던 장학영 유니폼 및 관련 상품들을 모두 쓰레기 봉투에다 넣고 갖다버렸음을 인증했다, 샤다라빠는 장학영이 공익근무 때문에 서울 유나이티드에 잠시 임대되었을 때 일부러 서울 유나이티드 홈경기를 보러 가기도 했을 정도로 장학영의 광팬이었는데, 굉장히 분노했고 심한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샤빠의 풋볼 다이어리 479편.

더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장학영은 성남 FC천안시에서 성남시로 연고 정착이 된 이후부터 성남시에서 처음으로 배출된 명망도 있고 위상도 매우 높았던 자랑스러운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로 인정을 받던 선수였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성남의 골수빠들의 입장에서는 레전드의 배신으로 인해 그저 분노만 치밀어 오르는 사건이 되었다. 농담이 아니라, 성남 FC의 골수 팬들 사이에서는 성남시에서 연고정착이 된 이후 가장 먼저 떠올리는 레전드 선수들이 바로 신태용박남열, 장학영, 김두현, 김철호[8]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선수 소개 선발에서도 장학영의 이름이 불리면 그 어떤 선수들보다도 가장 환호성이 높았던 선수로도 유명했었다.

물론 K리그 골키퍼의 전설이자 성남의 첫번째 골키퍼 계보를 시작한 신의손부터 신태용, 김해운, 권찬수, 김도훈, 김영철, 김상식, 안익수, 이영진, 샤샤, 이상윤처럼 수많은 슈퍼스타급의 레전드 선수들의 계보가 있고 위상이 매우 높긴 하지만, 이 선수들 중에는 성남 FC로 연고 정착이 되기 이전에 활약했던 선수들도 있었다. 그래서 장학영이나 김두현, 황의조성남 FC에서만큼은 위상이 더 높은 선수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참고로 2022년 현재 이들의 상황은 극과 극이 되었는데, 김두현전북 현대 수석 코치가 되었으며, 황의조국가대표팀지롱댕 보르도의 대표 스트라이커로 활약하고 있는 반면 장학영은 승부조작범으로 전락했다. 심지어 성남 FC 감독을 역임했던 김학범올림픽 축구 대표팀 감독으로 순항했다는 점을 보면 정말 비교되는 셈이다.

장학영이 부산으로 떠났을 때도 "다른 선수들이야 그렇다 쳐도 장학영이 없으면 왼쪽 수비는 누가 막아? 절대 안 돼!!"라고 탄식했을 정도였다. 2년 뒤 다시 장학영이 성남으로 복귀했을 때도 싫어했던 성남 팬들은 아무도 없었고 당연히 높은 환호를 받았다. 실제로 뉴스 기사에서도 '성남의 레전드'라는 호칭이 아무렇지도 않게 나왔었을 정도다.#

결국 비단 샤다라빠 말고도 성남의 골수 팬들 사이에서도 반응은 한결같이 "딴 새끼도 아니고 왜 하필이면 장학영이냐? 하늘같은 대선배가 후배들한테 승부조작을 하는 것도 말렸어야 될 새끼가 도대체 왜 그딴 짓거리를 저질렀어?"라고 쌍욕이 나오고 유니폼도 줄줄이 찢어버리는 인증이 나왔다. 왜냐하면 성남 FC에서 가장 높은 위상과 명망을 가졌던 레전드 선수였기 때문에, 유니폼을 구입하면 대부분 김두현이나 장학영의 이름을 많이 새겼기 때문이다.

승부조작 적발 이후 장학영은 재판에 넘겨졌으며, 승부조작을 제안한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 부산지방법원 형사10단독 장기석 판사는 국민체육진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전직 프로축구 선수인 장학영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했다고 14일 밝혔다. 장기석 판사는 "장씨의 범행은 스포츠의 생명인 공정성을 무너뜨리고 프로축구 관계자와 팬들에게 깊은 불신을 안겨줘 결국 프로축구 발전을 크게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와 죄책이 무겁다" 라고 판결했다. 그러나 "실형을 선고하되 초범인 점, 실제 승부나 경기조작이 이뤄지지 않은 점 등을 고려했다" 면서 양형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이마저도 형량이 무겁다며 즉각 항소하였다. 이에 실제 승부조작이 이뤄지지 않았고, 사기 피해로 아파트가 경매에 넘어가고 이혼으로 양육비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에서 선수 생활을 은퇴하여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태에서 범행에 이르게 된 점이 인정되어 6개월로 감형되었다.

2020년 이후로 장학영과 관련된 기사가 나오지 않는데, 항소심 선고 이후로 대법원에 상고했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상고를 포기해서 형이 저렇게 최종적으로 확정된 것으로 보인다. 만일 실제로 저렇게 되었다면 2020년쯤에 형기를 마치고 만기출소했을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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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따라서 (이미 은퇴하긴 했지만) 축구인 자격이 영구적으로 박탈되었고, 선수뿐만 아니라 지도자·행정가 등 축구와 관련된 모든 직종에서 영원히 활동할 수 없게 되었다.[2] 핌 베어벡 감독 시절 K리그 챔피언 결정전 직전에 대표팀 소집을 받았는데 부상을 이유로 차출을 거부해 놓고 며칠 후에 챔피언결정전에 출전한 일 때문에 안 좋게 찍혔다는 설이 있는데 그냥 설일 뿐이고 그걸로는 핌 베어벡 이후로도 국대와 인연이 없었던건 설명이 안된다. 이 시절에는 부동의 주전으로 이영표가 있었고 김동진, 김치우 등 국제무대 경험과 나름의 장점을 가진 선수들이 있었기에 경쟁에서 밀렸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3] 서울 유나이티드에 있을 때 장학영을 제대로 활용해 보려고 여러 포지션에 걸친 실험이 있었다. 윙포워드 부터 중미, 수미, 심지어 센터백도 뛰었다. 그냥 골키퍼 말고는 다 해 봤다고 봐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딱히 K3리그에서 '이거다!' 싶은 활용법을 찾지 못했다. 다만 이 경험이 이후 부산에서 공격적으로 올라가는 플레이에 영향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긴 하다.[4] 남궁도의 동생[5] 6회 60만 원. 회당 10만 원으로 프로선수, 그것도 대표팀 경력도 있는 네임드 선수 출신한테 받는 개인 레슨 치고 너무 저렴한 비용이었다. 여담으로, 레슨을 받아본 사람들의 말로는 "꽤 잘 가르쳐준다."는 평이었다.[6] 의경도 엄연히 경찰 신분이다.[7] 물론 승부조작 방지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또는 경찰청 소속 선수라 하더라도 선수 개인마다 입장은 다르기에 이한샘과 같은 신분의 동료 선수라도 금전적 유혹에 혹해서 승부조작에 가담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이 점에서 이한샘의 판단은 매우 용기 있고 도덕적인 것이었다.[8] 지금은 수원 FC로 이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