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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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니'의 주요 수상 및 헌액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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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5ARYZvK4L2afx8AcWcf6kF-1.jpg 로큰롤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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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저니
JOURNEY

헌액 부문
공연자 (Performers)
멤버
닐 숀, 그레그 롤리, 로스 발로리, 아인슬리 던버,
스티브 페리, 스티브 스미스, 조나단 케인

입성 연도
2017년
후보자격 연도
2001년
후보선정 연도
2017년







저니
Journey
파일:external/umgayun.net/f358b08a06533a2c02b010d70fb2929c.jpg

▲ 전성기인 스티브 페리 시절

{{{#!wiki-style="margin:-5px -10px"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640px-Journey_band.jpg

▲ 2008년 새 보컬인 아넬 피네다와 함께[1]

결성
197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
데뷔
1975년 1집 앨범 <Journey>
장르

활동
1973년 ~


1. 개요
2. 주요 멤버
3. 밴드 역사
3.1. 초창기 및 전성기
3.2. 침체기
3.3. 중흥기
4. 공연 영상
5. 여담
6. 디스코그래피



1. 개요[편집]


1973년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록밴드이다.[2] 1978년부터 1986년까지 "Wheel In The Sky", "Any Way You Want It", "Don't Stop Believin'", "Open Arms", "Separate Ways(Worlds Apart)", "Faithfully", "Be Good To Yourself" 등의 히트 넘버들을 쏟아내며 전성기를 구가하였다.

특히 미국적인 사운드를 구사하는 록밴드라고 하면 반드시 손꼽히는 밴드이며 미국 어디를 가도 플레이되는 명곡들을 발표했던 바 있다. 다만 히트곡들은 대부분 스티브 페리 시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뛰어난 연주실력에 비해 스티브 페리가 추구한 팝적인 요소로 인해 저평가된 부분도 있었다. 2000년대에도 활동을 꾸준히 계속하고 있으며, 2022년 여름에는 신보를 발표하고 투어를 할 정도로 전혀 녹슬지 않는 베테랑 밴드의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2. 주요 멤버[편집]


  • 닐 숀(Neal Schon)
기타리스트. 본명은 닐 조지프 숀(Neal Joseph Schon), 1954년 2월 27일 미국 오클라호마 출생. 저니의 리더. 그룹 결성이후 단 한번도 빠진적 없다. 성이 Schon인데, 독일계라고 한다. 아닌 게 아니라 저니의 노래를 들어보면 단순한 록이 아니라 소울풍이면서 독일 클래식의 선율이 상당히 스며든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기타 신동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열 여섯 살 때인 1970년에 카를로스 산타나의 산타나(밴드)의 리듬 기타리스트로 데뷔하였다. 공연 영상을 보면 엉덩이가 꽉 끼는 멜빵바지 같은 걸 입고 기타연주를 한다. 저니의 히트곡 가운데는 닐 숀의 솔로연주 파트가 꽤 많이 포함돼 있다.[3]

  • 그렉 롤리(Gregg Rolie)
닐 숀과 함께 산타나를 떠나 저니를 결성한 키보디스트 겸 보컬리스트. 본명은 그렉 알란 롤리(Gregg Alan Rolie), 1947년 6월 17일 워싱턴(Washington) 출생. 초기 산타나에서 키보드와 리드보컬리스트 였으며, 역시 저니에서도 스티브 페리가 합류하기 이전 리드 보컬도 함께 맡았다.

  • 스티브 페리(Steve Perry)
저니의 전성기 때 보컬리스트. 본명은 스티븐 레이 페리(Stephen Ray Perry), 1949년 1월 22일 캘리포니아 출생. 에일리언 프로젝트라는 무명 밴드에서 1977년 발탁되어 4집때부터 활동했다. 피아노와 기타가 주가 된 록-팝 명곡이자 저니의 최대 히트곡 Open Arms을 비롯해, 국내에서 광고 음악으로 많이 쓰였던 유명한 록큰롤 넘버 Separate Ways (Worlds Apart)등 저니의 여러 힛트곡들은 닐 숀이 빠진 페리&케인(Jonathan Cain) 콤비가 작곡했다. 닐 숀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더 많다. 생긴 걸 보면 아르헨티나 축구선수 메시와 상당히 닮았다. 얼핏보면 메시와 농구선수 코비 브라이언트를 섞어놓은것 같다. 포르투갈계라고 한다. 1985년에는 마이클 잭슨이 주도한 We Are the World에도 참여했다. 탁하면서도 미성인 보컬에서 느껴지는 고유의 가창력은 단연 일품이다. 그의 목소리가 부재한 저니의 사운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저니의 상징과도 같은 인물이다. 또한 밴드 보컬을 논하는 데 있어 빠지지 않는 인물이기도 하다. 1979년 4월 16일 일본 도쿄에서 선보였던 'On A Saturday Night'이란 곡의 라이브 도입부에서 그는 가성을 섞어 4옥타브 도(C6)(!!)를 선보였다.[4]
현재 안타깝게도 전성기 라이브 영상은 많이 남아있지 않지만 유튜브에 있는 라이브 영상 몇개만 보더라도 차원이 다른 보컬리스트였다. 특히 81년 휴스턴에서 부른 "Don't Stop Believin'"은 고음파트에서 여타 보컬리스트와 차원이 다른 역량을 보여준다. 라이브에서 많이 삐걱대는 록밴드 보컬이 부지기수인걸 감안하면 오히려 라이브의 퍼포먼스가 더 뛰어날 정도.

프론트맨으로써 80년대까지 전성기를 이끌며 밴드를 하드캐리 했으나, 9집 "Raised on Radio" 앨범 발표 후 긴 투어로 인한 번아웃과 건강문제, 매니져와의 갈등으로 1987년 휴식기에 들어가며 탈퇴를 선언하였다. 1996년도 "Trial by Fire"에서 잠시 저니로 복귀하였으나 다시 탈퇴하고 이후 저니와는 거리를 두고 솔로 활동에 매진하였다.
2000년대에는 소소한 활동을 이어가다가 2018년도에는 "Traces"라는 앨범으로 솔로 커리어 최초로 빌보드 200 TOP10(6위)을 찍기도 했다. 1998년도에는 사고로 인한 엉덩이 수술, 2013년에는 흑색종으로 생긴 암세포로 고생했고 여러모로 병치레를 많이 하였지만 2022년 현재 아직 활동을 놓고 있지는 않고 있다. 지난 2021년 11월에는 캐롤 앨범의 성격을 띤 "The Season"을 발매하여, 세월과 함께 무르익은 잔잔한 보컬을 선보였다.

  • 조나단 케인(Jonathan Cain)
초기 밴드의 리더였던 그렉 롤리의 탈퇴 이후 'Every Time I Think Of You'로 알려진 영국 출신의 록 그룹 베이비스(The Babys)[5]에서 영입한 키보드,백킹 보컬. 본명은 조나단 레오나드 프리가(Jonathan Leonard Friga), 1950년 2월 26일 시카고 출생. 작곡에도 능해서 80년대 초중반 전성기 때의 곡들은 대부분 그에게서 나왔다.

  • 로스 발로리(Ross Valory)
저니 결성 때부터 쭉 함께 활동해온 베이시스트. 본명은 로스 라몬트 발로리(Ross Lamont Valory), 1949년 2월 2일 샌 프란시스코 출생. 엄청난 노안이어서 젊을 때와 현재의 모습에 큰 차이가 없다.

  • 에인슬리 던바(Aynsley Dunbar)
저니 결성 때부터 스티브 페리가 합류한 'Infinity' 앨범까지 함께 한 명 드러머. 본명은 에인슬리 토마스 던바(Aynsley Thomas Dunbar), 1946년 1월 10일 영국 리버풀 출생. 스티브 페리 합류 후 저니의 음악 노선이 상업적이고 대중적인 방향으로 바뀌는 데 대해 반감을 갖고 밴드를 떠났다. 록 역사상 위대한 드러머 중 한 명으로 저니 가입 이전에는 존 메이욜, 프랭크 자파, 데이빗 보위, 루 리드 등과 협연했고, 저니 탈퇴 이후엔 제퍼슨 스타쉽에서 활약했고, 화이트스네이크의 명반 1987에도 참여한다.
  • 스티브 스미스(Steve Smith)
에인슬리 던바가 떠난 뒤 합류하여 저니의 전성기를 함께 한 드러머. 본명은 스티븐 브루스 스미스(Steven Bruce Smith), 1954년 8월 21일 미국 매사추세츠 휘트먼(Whitman) 출생. 본래 재즈 장르에서 활동했고, 밴드 해체 후에도 솔로로 재즈 드러머 중 손에 꼽힐만한 드러머로 왕성히 활동한다. 96년 재결성 때 다시 합류하였다가 스티브 페리가 부상으로 밴드를 떠나자 함께 떠난다. 이후 들어왔던 드러머 딘 카스트로노보가 후술할 사건으로 갑작스레 밴드를 떠나게 된 뒤 저니에 재합류. 함께 투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버클리 음악대학 출신.

  • 스티브 오게리(Steve Augeri)
96년 'Trial by Fire' 앨범으로 재결성했으나, 보컬 스티브 페리가 부상으로 투어 활동이 힘들어지게 되어 밴드를 떠난 뒤 새로 합류한 보컬리스트. 1959년 1월 30일 뉴욕 브루클린 출생. 스티브 페리와 유사한 음색인 점이 발탁하게되는 데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 '아마겟돈'의 삽입곡 'Remember Me'를 부르며 저니의 보컬리스트로서 활동을 시작하고, 2001년 11집 'Arrival', 2005년 12집 'Generations' 앨범 활동까지 활동한 뒤 성대결절로 인해 저니를 탈퇴.

  • 딘 카스트로노보(Deen J. Castronovo)
96년 재결성 후, 보컬 스티브 페리가 부상으로 인해 밴드를 떠나게 되자 재결성으로 합류한 저니의 전성기를 함께 했던 드러머. 1964년 8월 17일 캘리포니아(California)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 출생. 스티브 스미스 역시 '스티브 페리가 없는 저니는 저니가 아니다' 라는 말을 남기고 밴드를 떠난다. 이 빈 자리를 메꾸기 위해 86년 저니의 해체 후 닐 숀과 조나단 케인이 결성한 밴드 '배드 잉글리쉬'에서 함께 활동했던 인연이 있던 딘 카스트로노보를 영입한다. 빼어난 보컬 실력을 함께 갖춰 라이브 공연 시 'Mother Father', 'Still they ride' 등 일부 곡들은 리드 보컬로서 소화해내기도 한다. 합류한 뒤 쭉 함께 활동을 이어오다 가정폭력 사건으로 밴드를 떠나게 된다. 그러다 2021년 7월 밴드에 재합류하여 다시 현 멤버가 되었다. 현재 저니의 드러머로는 딘과 함께, 세컨드 드러머(Second Drummer)로 2020년 합류한 나라다 마이클 월든(Narada Michael Walden, 1952.04.23. ~ )[6]이 있다.

  • 랜디 잭슨(Randy Jackson)
지금은 아메리칸 아이돌 심사위원으로 유명한 그분 맞다. 7집 Raised on Radio 제작 시 밴드의 갈등이 고조된 시기에 로스 발로리를 해고하면서 긴급하게 투입된 베이시스트였다. 저니에서는 Raised on Radio 단 한개의 앨범에만 참여하였으며, 이후에는 세션베이시트로써 상당한 입지를 다지게 되었다. 참여한 앨범 및 라이브는 그야말로 다양했으며, 대표적인 가수로는 빌리 조엘, 셀린 디옹, 마이클 볼튼, 케니 지 등등 수없이 많았다. 훗날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Journey 합류 당시를 회고하면서 스티브 페리의 보컬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코멘트는 "But no one … no one will ever be Steve Perry. He's one of the greatest singers to ever grace the microphone" - 한마디로 최고의 보컬리스트였다는 말.

  • 제프 스캇 소토(Jeff Scott Soto)
스티브 오게리가 떠난 뒤 합류해 짧게 활동했던 3대 보컬. 잉베이 말름스틴 밴드의 보컬로도 잘 알려져있다. 1965년 11월 4일 뉴욕 브루클린 출생. 저니에서의 짧은 활동과는 별개로, 록 음악사에서 발군의 가창력으로 정평이 난 그의 보컬은, 샘 쿡과 서술된 밴드의 상징적 프론트맨인 스티브 페리, 프레디 머큐리에게서 영향받은 바, 하드 록파워 메탈 등 다양한 스타일을 소화한다.

  • 아넬 피네다(Arnel Pineda)
저니의 4대 보컬리스트. 본명은 아넬 캄파네르 피네다(Arnel Campaner Pineda), 1967년 9월 5일 필리핀 마닐라 톤도(Tondo) 출생. 2008년 밴드의 13번째 정규 앨범 'Revelation'부터 합류하여 활동하고 있다. 스티브 페리와 흡사한 목소리와 그에 부합하는 탁월한 가창으로 저니의 4대 보컬로 발탁되었지만, 엄밀히 하자면 그의 가창은 스티브 페리의 짙은 목소리와 구별되는 듯한 또 다른 인상을 남긴다.


3. 밴드 역사[편집]



3.1. 초창기 및 전성기[편집]


1973년 산타나에서 백업으로 활동하였던 기타리스트 닐 숀과 키보드 겸 보컬 그렉 롤리가 중심이 되어 처음 시작하였다. 1977년 걸출한 보컬리스트 스티브 페리가 가입하면서 밴드의 형태가 안정화되었다. 이듬해 발표한 앨범 Infinity는 빌보드 200에서 21위까지 올랐으며 "Lights", "Wheel in the Sky" 등의 싱글이 플래티넘을 기록하였다.

1979년 Evoution 앨범은 밴드의 빌보드 핫 100 첫 20위권에 진입한(16위) "Lovin', Touchin', Squeezin'"과 25위를 기록한 "Any Way You Want It"를 수록하고 있었으며 앨범 차트에서 8위까지 오른다.
특히 "Any way you want it"은 지금도 회자되고 있는 신나는 락앤롤 곡으로 2000년대에 락 오브 에이지
미녀 삼총사 OST에도 수록되었다. 미드 빅뱅이론에서도 쉘든과 레너드 엄마가 카라오케 게임으로 부른 엉터리 버젼(...)도 유명하다.


(1:00부터)


1981년 발표한 Escape 앨범부터 밴드의 최전성기를 구가하게 된다. 9x 플래티넘을 기록하고 앨범 차트 넘버원에 오른 이 앨범은 이후에도 팝 록계의 명곡으로 꼽히는 "Who's Crying Now", "Don't Stop Believin'", "Open Arms" 세 곡의 싱글을 빌보드 핫 100의 10위권 안에 진입시켰고 그 중 Open Arms는 빌보드 2위에 6주간 머무르고 그 해 말까지 34위에 기록되었다. 또한 대한민국에 대중적으로 알려진 거의 유일한 곡이기도 하다. 다만 '도입부 한정'으로는 바로 아래 서술된 Separate Ways도 유명하다. 이 곡은 제목을 몰라도 심지어 저니라는 밴드명은 몰라도 도입부는 대한민국 중장년 이상이라면 다들 한 번은 들어보았을 것인데 1991년 삼성전자 My-CD (카세트테이프/CD 플레이어) 광고음악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1983년 Frontiers 앨범 역시도 앨범 차트에 2위에 오르고 6백만장이 팔리는 초히트를 기록하였으며, "Separate Ways (Worlds Apart)", "Faithfully", "Send Her My Love", "After the Fall"등이 빌보드 핫 100에서 상위권에 랭크되었다.[7]

1985년, 스티브 페리는 마이클 잭슨라이오넬 리치, 퀸시 존스가 주도하는 초대형 자선 프로젝트 We Are the World에 참여하기도 한다.[8]


3.2. 침체기[편집]


이후 닐 숀과 스티브 페리의 솔로 프로젝트가 진행되면서 밴드에 대한 집중도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밴드 자체의 인기도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87년 밴드를 해체하게 되었다.

1991년 및 1997년 재결성을 시도하였으나, 그다지 주목 받지는 못했다. 1996년 Trial by Fire에서 싱글 커트된 "When you love a woman"이 빌보드 핫 100 12위에 진입함과 동시에 어덜트 컨템퍼러리 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였지만, 전체적으론 산만한 구성과 시대의 변화에 역행한 사운드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하지 못했다. 이후 스티브 페리가 다시 나가고 가까스로 잉베이 맘스틴의 객원 보컬로 유명한 제프 스캇 소토를 고용하는 등 프로젝트 형식으로 밴드를 이어갔다.


3.3. 중흥기[편집]


2007년 12월 닐 숀은 또 하나의 중대한 선택을 하게 되었다. 2007년 12월 필리핀 출신의 보컬리스트 아넬 피네다(Arnel Pineda)를 뽑아서 저니의 역사를 이어가기로 결정한 것. 여기에는 보컬 스티브 페리의 퇴행성 골관절 질환으로 인한 라이브 취소 및 탈퇴 등 많은 뒷이야기들이 있다. 이에 관해 더 알고 싶은 분은 2013년에 나온 Journey의 다큐 영화(Don't Stop Believin': Everyman's Journey)를 보는 걸 추천한다. 아래의 내용은 다큐 영화를 보는 편이 더 자세하고 정확하다. 새 보컬 아넬의 기구한 인생사도 볼 수 있다.


아넬 피네다는 필리핀에 한 백만명 쯤 된다는 커버밴드 The Zoo의 보컬이었다. 필리핀의 음악시장은 영어권이다보니 필리핀어와 영어 음악 시장이 양분되어있고, 피네다의 밴드는 필리핀에서 Journey를 비롯하여 Stryper, Aerosmith, 서바이버(밴드) 등 수많은 1970~1990년대의 유명 밴드의 곡들을 커버했는데 물론 자신들의 오리지널 곡들도 있었지만 항상 관객들은 저니의 곡만 듣고 싶어했고, 오리지널 곡에는 관심도 없던지라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아넬은 13살 때 심장병으로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치료비 때문에 남은 가족들(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은 빚더미에 눌러 앉게 되었다. 결국 아버지는 빚을 갚기 위해 친척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떠났고, 아넬은 아버지의 부담을 덜기 위해 13살의 나이에 집을 나와 노숙자가 되었다. 병 줍기, 몸 팔기 등 안 해본 일이 없다는 듯. 성인이 된 후에도 마약에 빠지기도 했고, 이혼을 두 번 하게 되는 등 힘든 삶을 살고 있었다.

가수가 된 이후 각종 밴드 대회 우승 경력도 있고 여러 밴드를 거치면서 에이전트를 통해 홍콩에서 몇 년간 공연도 했으며 워너브라더스 레코드에서 솔로 앨범(1999년)도 낸 적이 있을 정도로 원래부터 필리핀 내 인지도는 꽤 있는 편이었다. 이중 아넬 피네다의 노래를 좋아하던 팬이 아넬 피네다가 저니의 곡을 커버한 영상을 유투브에 꾸준히 올리며 홍보를 해주고 팬질을 했는데, 사람들이 그 업로드 된 비디오를 보고 정말 스티브 페리랑 똑같다.라는 반응을 보였던 데 있다. 그리고 이 영상들이 흘러 원곡자 저니에게 까지 들어갔다. 스티브 페리가 공연할 수 없게 되자 새 앨범을 위해 보컬이 필요해진 저니의 리더 닐 숀과 멤버들은 유튜브에 떠도는 Journey의 트리뷰트, 커버 영상 등을 수도 없이 봤다고 한다. 그 영상들을 보고 아넬 피네다가 외국인이기 때문에 말이 통할 지, '미국 밴드'인 Journey에 외국인을 영입해도 될지 끝까지 고민하다, 결단을 내리고 닐 숀이 이메일을 통해 보컬로 영입 제의를 했다.

근데 처음에 아넬 피네다는 그게 장난 메일인줄 알고 무시했다.

그렇지만 메일이 계속 오고, 저니 쪽에서 집으로 전화까지 하게 되면서 '저니를 만날 수 있다, 저니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들려줄 수 있다.'는 마음으로 오디션을 보러 갔다. 근데 여기서 또 웃지 못할 일화가 생겼으니...

입국장에 선 피네다에게 미국 입국심사관이 물었다.

"뭐하러 미국에 왔나?"

"저니 보컬 하려고"

"ㅎㅎㅎㅎㅎㅎ"

"ㅎㅎㅎㅎㅎㅎ"


결국 입국심사 사무실로 끌려간 피네다는 저니 노래를 사무실에서 불러서 심사관들이 비로소 입국을 허가했다는 일화이다. #

어찌어찌 오디션은 봤지만 목소리가 안 나오는 상태였고, 멤버들은 며칠 간 더 지켜보기로 한다. 멤버들의 조언과 보컬 트레이닝을 통해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오자 합격을 하게 된다.

이 모든 일이 2007년 말에 일어난 일이다. 그때 유튜브는 생긴지 3년이 약간 안되는 구글이 인수한 덕에 이름이 좀 알려져 있기만 한 입지가 불안한 동영상 서비스에 불과했다. 이시기 UCC 바람이 불던 시기라 유튜브 외에도 많은 동영상 서비스 사이트간 경쟁도 치열했다. 이런 시기에 지구 반대편에서 피네다와 저니를 연결한 것이 유튜브다. 어떤 의미에서 미국의 대표적 UCC 1세대 스타가 된 셈.

그렇게 저니의 보컬리스트로 정식 발탁돼 활동하면서, 저니라는 밴드는 지금도 블랙 아이드 피스(애플 디 앱이 필리핀 출신이다.)와 함께 필리핀에서 가장 인기 있는 외국 뮤지션이다. 필리핀에서 공연하면 피네다 손 잡아보려고 사람들이 난리 이고 나머지 멤버는 전부 쩌리... 저니 측에서도 이 공연이 꽤나 인상깊었는지 넘버 중 Seperate ways의 공식 라이브 영상은 마닐라 공연으로 걸어놓고 있다.


2017년 2월 15일. 비록 전성기는 지났지만, 대망의 첫 내한 공연을 성황리에 가졌으며, 전석 매진이었다. 관객들이 아재 중심일 것이란 예상과 달리, 젊은 층의 관객, 가족 관객도 많았고, 많은 노래에서 떼창이 이어졌다.[9] 워낙 히트곡이 많은 밴드로, 1980년대 그들의 전성기를 함께 했거나, 이후 그들의 팬이 된 사람들이라면, 모두가 공감하고 좋아할 만큼 셋 리스트도 알차게 채워졌으며, 스티브 페리에 대한 아쉬움을 무색케 할만큼 아넬 피네다의 무대 매너가 돋보였고, 멤버들의 연주는 전성기의 실력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앵콜에선 살벌한 Jam(즉흥 연주)을 들려주기도.


4. 공연 영상[편집]



미국에서 저니를 상징하는 곡 Don't Stop Believin'[10]. TV나 라디오 방송에서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 곡이기도 하며, 글리 등의 TV쇼에서 리메이크되어 조명받기도 하였다. 해당 영상은 유명한 저니의 휴스턴 라이브인데, 최고의 가창력을 마음껏 선보이는 스티브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전성기 라이브다.


한국에도 잘 알려져 있는 그들의 최대 히트곡이자 대표곡 Open Arms[11]. 한국에서는 2013년 슈퍼스타K3에서 울랄라세션이 불러서 재조명받았다. 그래서인지 저니를 잘 모르는 어린 세대 중에서는 울랄라세션의 원곡으로 아는 사람도 있다.울랄라세션 커버. 또한 머라이어 캐리, 보이즈 투 멘, 부활(밴드)박완규 역시 커버한 바 있다. 또한, 김경호도 이 곡을 커버했는데 공연이 아니라 대학교 강의 중에 커버했다.


새 보컬리스트 아넬 피네다(Arnel Pineda)를 맞아들인 후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공연한 Faithfully.[12]


5. 여담[편집]



참고로 이 밴드는 게임으로 만들어진 적도 있다. 1983년 3월 출시. 동명의 어드벤처 게임과는 전혀 상관없으며, 미드웨이에서 제작했다. 이 게임은 세계 최초로 디지털 실사 그래픽을 쓴 게임이라고 한다. 괜히 모탈 컴뱃 시리즈의 회사가 아니다. 다만 게임성은 B급이라는 듯. 비슷한 시기는 아타리 2600으로 이식되었지만 하드웨어 특성상 그래픽은 2600의 평균적인 수준. 하드코어게이밍의 리뷰 기사(英)

앨범 자켓 아트에 SF풍의 딱정벌레가 자주 등장하는데, 막상 저니도 이게 뭔지 모른다고 한다. 저니 자켓 아트는 원래 저니 매니저였던 월터 허버트가 의뢰한 디자인인데, 저니한테는 상의하지 않았다고 했다.

Separate Ways가 넷플릭스의 인기 드라마 기묘한 이야기(미국 드라마) 시즌 4 예고편에 삽입되었다. 현실과 비슷하지만 훨씬 암담하고 잔인한 뒤집힌 세계와 이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을 잃은, 또는 잃을 뻔 했던 주인공들에 대한 이야기라 가사와 굉장히 잘 어울린다는 평.

6. 디스코그래피[편집]


  • Journey (1975.04.01)
  • Look Into The Future (1976.01)
  • Next (1977.02)[13]
  • Infinity (1978.01.20)[14]
  • Evolution (1979.03.23)[15]
  • Departure (1980.02.29)[16]
  • Dream, After Dream (1980.12.10)[17]
  • Captured (1981.01.30)[18]
  • Escape (1981.07.17)[19]
  • Frontiers (1983.01.24)[22]
  • Raised On Radio (1986.04.21)[23]
  • Greatest Hits (1988.11.15)[24]
  • Trial By Fire (1996.10.22)[25]
  • Greatest Hits Live (1998.03.24)[26]
  • Arrival (2000.12)[27]
  • Generations (2005.08.29)
  • Live In Houston 1981: The Escape Tour (2005.11)[28]
  • Revelations (2008.06.03)[29]
  • Live In Manila (2009.10.02)[30]
  • Eclipse(ECL1P53) (2011.05.24)
  • Escape & Frontiers Live In Japan (2019.03.29)
  • Freedom (2022.07.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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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타 매고 있는 사람이 리더인 닐 숀[2] 산타나(밴드)의 초대 매니저로 알려진 허비 허버트(Walter James 'Herbie' Herbert II)가 매니저를 맡았었으며, 초기 저니의 밴드명도 저니가 아닌 골든 게이트 리듬 섹션(Golden Gate Rhythm Section)이었다. 당시 멤버는 기타를 맡은 닐 숀과 키보드와 리드 보컬을 겸한 그렉 롤리, 베이스인 로스 발로리를 비롯해 리듬 기타를 맡은 조지 티크너(George Tyndall Tickner, 1946.09.08 ~ )였고, 드러머는 당시 같은 지역의 밴드 더 튜브(The Tubes)에서 드럼을 맡고 있던 프레어리 프린스(Charles Lempriere 'Prairie' Prince, 1950.05.07 ~ )였다. 이들은 초창기에 백업 밴드로 활동하였으며, 저니라는 팀명은 인력팀, 즉 공연 스탭이었던 존 빌라누에바(John Villanueva)라는 사람이 제안하여 채택되었다.[3] 저니의 팝적인 색채가 강한 곡들만 접한 팬들은 닐 숀의 기타리스트로서의 역량을 잘 모르고 지나가기 쉽지만, 어려서부터 기타 잘 치기로 유명했음은 물론 나중에 발매한 솔로 앨범들이나 얀해머와 함께 만든 앨범들을 통해서도 테크닉과 필이 최정상급임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젊은 시절 새미 헤거와 함께 결성해서 만든 그룹 HSAS 시절의 'Whiter Shade of Pale'을 꼭 들어 보자.[4] 페리의 별명이 The Voice이다. 이 표현은 휘트니 휴스턴, 루치아노 파바로티와 같은 가창의 본좌들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별칭이다. 그만큼 (특히 전성기) 스티브 페리의 목소리는 여타의 보컬들을 넘어서는 경지를 구축하였다.[5] 참고로 여기 보컬이 나중에 솔로활동과 닐 숀, 케인과 함께 배드 잉글리시에서 활동하게 되는 존 웨이트이다.[6] 머라이어 캐리, 휘트니 휴스턴, 스타쉽 등의 앨범에 참여한 명 프로듀서이자 마하비시누 오케스트라, 웨더 리포트의 드러머로 재직한 거물급 뮤지션이다.[7] 각각 8위, 12위, 23위, 23위에 올랐었다.[8] 두 번째 훅(Hook) 부분에서 케니 로긴스 다음 소절인 "Oh, There's A Choice We're Making, We're Saving Our Own Lives'를 맡아 불렀다. 이 짧은 소절에서도 그는 3옥타브 도♯(C#5)를 곡의 깊이에 맞게 구사한다.[9] 2017년 저니는 한국,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투어를 했다. 바로 위 문단 영상이 2017 일본 공연인데 한국의 떼창과 뜨거운 열기와 다르게 앉아서 박수만 치는 걸 볼 수 있다. 일본 관객 정서상 저것도 일본 치고는 굉장히 뜨거운(...) 반응이다.[10] 밴드의 7집 앨범인 〈Escape〉의 첫 트랙으로 실려있다. 기타 솔로 후 후반부에 경쾌하게 몰아치는 스티브의 고음은 대중음악사의 보물로 남아있다. 최고음이 3옥타브 도♯(C#5)임은 물론이고, 앞서 말했던 닐 숀의 기타 솔로 이후 펼쳐지는 샤우팅 구간과 코러스에서의 고음 파트 때문에 부르기엔 많이 어려운 곡으로 꼽힌다. 아래 쓰인 '글리'를 비롯해, 톰 크루즈가 록커로 분한 영화 〈락 오브 에이지(영화)〉, 노르웨이 최강의 메탈 보컬 요른 란데 등이 다시 부르기도 하였다.[11] 'Don't Stop Believin'과 같은 앨범의 마지막 트랙으로 실려 있다. 최고음 2옥타브 시(B4)로, 매끄럽게 부르기 까다로운 곡으로도 알려져 있다.[12] 이 곡 역시 어렵긴 마찬가지다. 저니의 대표 발라드로서, 역시나 최후반부에 등장하는 곡의 최고음은 3옥타브 레♯(D#5)에 이르며, 보컬 고유의 목소리를 염두에 두면 제대로 커버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곡이기 때문이다.[13] 이때까지의 보컬은 키보드를 담당하고 있던 그렉 롤리(Gregg Rolie)였다.[14] 스티브 페리(Steve Perry)의 보컬 데뷔작이다. 그렉 롤리는 몇몇 트랙에서만 리드 보컬 또는 백킹 보컬(Backing Vocal)을 겸하게 된다. 그리고 이 앨범까지가 에인슬리 던바(Aynsley Dunbar)의 참여 앨범이다. 앨범에는 'Lights', 'La Do Da'를 비롯해, 닐 숀의 기타 솔로와 합을 맞춘 스티브의 초고음(3옥타브 파(F5))을 만끽할 수 있는 명곡 'Wheel In The Sky'가 수록되어 있다.[15] 1996년까지 저니의 드럼을 맡은 스티브 스미스(Steve Smith)가 처음 합류한 앨범이다.[16] 저니의 명곡 중 하나인 Any Way You Want It이 첫 트랙으로 실려 있다.[17] 일본의 저명한 패션 디자이너 다카다 겐조가 기획한 판타지 로맨스물인 'Yume, yume no ato'의 사운드트랙이다. 또한, 이 앨범이 스튜디오 작품으로서는 그렉 롤리의 마지막 참여 앨범이다.[18] 저니의 첫 라이브 앨범이다. 몬트리올, 도쿄, 디트로이트 등의 라이브를 수록한 앨범이며, 나름 저니의 분기점이 되는 앨범으로 통한다.[19] 저니의 초명반이자, 대중음악사 전체를 통틀어도 명반에 속하는 앨범으로, 팬덤을 떠나서도 인식되는 저니의 대표곡들이 대부분 수록되어 있다. 그 중 Don't Stop Believin, Still They Ride, Open Arms, Who's Crying Now빌보드 핫 100 차트에 각각 9위, 19위, 2위, 4위에 올랐으며, 앨범 자체도 빌보드 200 정상에 오르는 쾌거를 이룬다. 그리고 이 앨범부터는 건반 주자로 조나단 케인(Jonathan Cain)이 합류하게 된다. 추가로, 이 음반에 수록된 7번 트랙인 Lay It Down은 최고음이 3옥타브 솔(G5)로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저니의 록킹(Rocking)한 곡이다. 여기서 스티브 페리는 그야말로 상술했던 The VOICE란 별명에 걸맞는 발군의 가창력을 여유롭게 난사한다.[20] 뮤직비디오가 볼품없기로 유명하다.[21] 매튜 모딘, 린다 피오렌티노 주연의 1985년 영화 'Vision Quest'(국내 제목으로는 '청춘의 승부')의 삽입곡으로 쓰인 바 있다.[22] 전작 이후 뒷심을 발휘한 저니의 수작으로, 앨범은 빌보드 200 2위에 올랐으며, 명곡 Faithfully(빌보드 핫 100 12위), Separate Ways(Worlds Apart)[20](빌보드 핫 100 8위), Only The Young[21]이 수록되어 있다.[23] 스티브 페리가 탈퇴하여 10년 만에 돌아오기 전까지의 마지막 참여 앨범이다. 빌보드 200 4위, 스웨덴 앨범 차트 16위, UK 앨범 차트 22위에 올랐고, 빌보드 핫 100에 올랐던 곡들로는 Be Good To Yourself(9위), 'Suzanne'(17위), I'll Be Alright Without You(14위,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로는 1987년 7위까지 올랐다)가 있다. 현재 저니의 메인 멤버인 랜디 잭슨(Randall Darius Jackson, 베이스 겸 백킹 보컬)이 세션으로 합류한 앨범이기도 하다.[24] 가장 널리 알려진 저니의 베스트 앨범이다.[25] 10년 만에 발매된 저니의 10집으로, 비록 전성기와 같은 호응을 받지는 못 하였지만 빌보드 핫 100 12위, 빌보드 어덜트 컨템퍼러리 차트 1위를 점한 When You Love A Woman이라는 걸출한 싱글을 배출한 앨범이다. 이 앨범을 끝으로 스티브 페리는 정녕 저니에서 탈퇴한다.[26] 휴스턴일본 무도관 라이브를 담은 라이브 및 준 베스트 앨범이다.[27] 보컬은 페리 다음의 스티브인 스티브 오게리(Steve Augeri)로, 빌보드 200 56위까지 오른 앨범이다.1998년 합류한 후 현재 저니의 드럼을 맡고 있는 딘 카스트로노보(Deen Castronovo)가 처음 참여한 앨범이다.[28] Escape 앨범의 휴스턴 라이브 실황을 담아 24년 만에 발매한 앨범이다.[29] 아넬 피네다가 공식적으로 합류한 첫 작품으로, 이 앨범은 저니의 신곡들을 모은 1면(이 면에서는 싱글 컷된 After All These Years가 저명한 곡이다. 느낌 상 스티브 페리 시절의 Faithfully랑 유사한 멜로디가 귀를 끄는 곡이다. 또한 이 곡은 빌보드 어덜트 컨템퍼러리 차트 9위까지 오름으로써, 12년 만에 밴드의 톱텐 싱글(Top 10 Single)이란 명예를 안겼다.)과 저니의 세월을 함께 한 명곡들을 아넬이 다시 부른 2면으로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아넬의 고향인 필리핀과 대한민국에는 7월 달에 발매, 유통되었으며, 발매년도에 100만 장 이상을 판매하는 성과를 거두었다.[30] 아넬의 고향에서 펼친 라이브라는 데 의의가 있는 앨범이다.[31] 《Eclipse》 앨범 이후 11년 만의 컴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