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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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스포츠계 용어
3. 사례
3.1. 야구
3.2. 축구
3.3. 농구
3.4. 배구
3.5. e스포츠
4. 관련 인물
5. 다른 의미


1. 개요[편집]


Journeyman

본래는 서양 중세 수공업에서 장인(master)과 도제(apprentice) 사이 단계에 있는,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면서 일감을 받아 일하는 단계에 있는 수공업자로서, 번역하자면 '직인'을 일컫는 뜻이었다. 오늘날의 프리랜서와 비슷하다.

'여행'이란 뜻으로 직역되는 'Journey'에서 알 수 있듯이 떠돌이라는 인상이 물씬 풍기는 단어. 때문에 수공업이 잘 알려지지 않는 오늘날엔 위와 같은 사전적인 의미보다는 하단 비유적인 의미로서가 폭넓게 쓰인다.


2. 스포츠계 용어[편집]


프로 스포츠에서 자주 사용되곤 하는 은어. 원 클럽 맨과는 대척점의 성격으로 해마다 혹은 자주 여행을 다니듯 팀을 옮기는 선수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며, 개인 기량 위주 플레이가 주류인 체조, 테니스 혹은 팀 플레이더라도 상대 선수와의 경합이 성적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컬링같은 종목들의 경우는 아예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저니맨이라는 별칭이 붙는 수준의 선수는 보통 1~2년도 채 되지 않아 팀을 갈아치우면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는 케이스들이 대부분인데 보통 실력있는 선수들의 케이스에선 많이 찾아보기 힘든 편, 고로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이런 선수들은 대부분 어중간한 팀이거나 어중간한 실력[1], 혹은 폼이 하락해서 옮겨 다니는 경우가 많다. 야구축구, 농구처럼 다인원 팀 플레이가 지향되는 종목들의 경우, 10명이 넘는 선수 중에서 단 한명의 선수만 부재하더라도 그 선수의 입지에 따라 팀 성적에 엄청난 영향이 갈 수도 있으며[2], 점점 거대 자본화되어가는 현대 스포츠에서 선수의 실력은 곧 엄청난 자본 문제와 직결될 수 밖에 없고[3] 설녕 요건이 만족되어 선수를 보내더라도 이런 경우가 장기적으로 반복되면서 성적도 시원찮아진다면 구단의 브랜드 가치까지 셀링 클럽 수준으로 하락할 수 있기 때문에[4] 실력있는 선수들의 이적은 그 자체로도 이슈가 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해당 선수가 실력이 있을 수록 그 선수의 의사보다 먼저 어떻게든 팀이 잡으려 하고[5] 선수 입장에서도 계속 팀을 옮겨다니게 된다면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들도 적응에 힘들어할 수 밖에 없으며[6] 경우에 따라서 자신의 평판에도 영향에도 영향이 갈 수 있기 때문에 웬만한 경우가 아니면 저니맨들처럼 무분별한 팀 이동은 지양하는 편이다.

이제 막 1군에 진입한 정도의 젊고 어린 나이일때 여러 팀을 옮겨다니거나 노장들이 저니맨처럼 여러 구단들을 전전하는 경우는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이들의 경우는 조금 특이할 만 하다. 전자의 경우는 정말 리오넬 메시마이클 조던처럼 종목 자체에서 역대를 논할 수준의 재능이 있는게 아닌 이상은 당연히 기량이나 경험 면에서 이제 초짜 티를 갓 뗀 수준이라 주전 및 교체멤버들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벤치에만 계속 세워뒀다간 포텐셜이 하락할 수 있기 때문에 경험치를 먹이고자 여러 하위팀으로 임대를 보내는 것이며[7], 후자는 노쇠화로 기량이 하락했지만 아직까지 하부 리그에서는 그럭저럭 통할 만한 수준의 실력을 갖추고 있거나 해당 선수의 상품성을 높이 산 구단들이 오퍼를 넣는 것인데 여기서 현역 생활을 연장하고 싶거나 돈을 조금 더 벌고자 하는 선수와의 이해 관계가 통하면서 해당 구단이 허락하는 요량까지 뛰다가[8] 커리어를 마감하는 케이스다.

간혹 실력 자체는 뛰어나지만 개인의 멘탈 문제나 괴짜 성미로 인해 저니맨이 되는 경우도 있다. 축구에서는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크리스티안 비에리 등이 이 방면에서 유명한 인물이며, 야구에서는 이런 케이스의 저니맨으로는 풍운아 케빈 미첼이 있다. 저니맨이더라도 결국 실력이 있으면 어딘가 받아주는 팀이 있긴 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는 사례들로 볼 수 있는데, 정말 극히 드문 케이스로는 셀링 클럽들의 스카우터들조차 포착하기 힘들 만큼 불모지 수준의 리그에서 포텐셜이 폭발하여 여러 하부 리그를 옮겨다니며 천천히 검증을 마치는 동안 저니맨이 되는 사례도 가뭄에 콩 나듯 종종 있다.

하지만 이런 일부 선수들이 아닌 절대 다수의 저니맨들은 많은 이적료에 예산을 지출할 여유가 없는 구단, 어중간한 실력이라 자리를 잡기 힘들지만 그럼에도 팀을 찾는 선수, 어떻게든 경험 없는 유망주 대신 조금이라도 검증된 자원으로 전술을 맞춰보려는 코치진이라는 세 객체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탄생한다. 이들은 커리어 내내 포텐셜이 폭발하지 않아서[9] 타 구단들한테 이리저리 즉석복권 뽑는 요량처럼 잠깐 불려갔다 금새 옮겨다니는 것을 반복하다가 그대로 나이가 차고 커리어를 마감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와 관련한 유명 저니맨을 꼽으라면 국내에서는 대표적으로 석현준을 들 수 있다.

3. 사례[편집]



3.1. 야구[편집]


이 방면의 레전드MLB에서 46세까지 현역 선수로 뛰면서 1252경기에 등판해 통산 최다 경기 등판기록을 보유한 원 포인트 릴리프의 전설 제시 오로스코나, 13개의 서로 다른 팀에서 활동한 기록을 보유한 MLB 통산 최다 대타홈런기록 보유자 맷 스테어스가 있다.[10] 투수 중에는 김병현디백스 시절 동료로 알려진 마이크 모건[11]과 론 빌론(Ron Villone)[12] 두 선수가 총 12개의 서로 다른 팀에서 출전하면서 이 부분 기록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이 기록에 도전장을 낸 선수로는 2013년까지 13개 팀에서 뛴 옥타비오 도텔이 있었고, 13번째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에서 출전하면서 맷 스테어스와 타이기록이 되었으나 이 이후 은퇴. 2019년 현재 현역 에드윈 잭슨이 14번째 MLB 팀을 찾으며 단독 1위로 올라섰다. 마이너리거같은 경우에는 LG와 두산에서 뛴 레스 왈론드처럼 8개국 프로리그에서 승리를 거둔 경우도 있다.

사실 메이저리그에서는 40인 로스터의 ¼~⅓은 이렇게 단기 계약으로 뛰며 마다 새 팀을 찾아다니는 선수가 주를 이룬다. 바로 "스프링캠프 초청 마이너 계약"인데, 한 팀마다 25인 로스터 기준으로 내야 2~3명 외야 1~2자리 백업 포수 1명, 총 다섯 명[13]을 뽑기 위해 스프링캠프마다 수많은 베테랑이나 저니맨들을 데려와서 경쟁시키는데, 높게는 3: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인다.[14] 대개는 캠프 중간에 위약금도 못받고 방출당하며[15] MLB 로스터에 진입하면 봉급이 크게 상승하는 형태로, 시애틀 팜에서 성장하여 2005년에 처음 콜업을 경험했던 추신수무릎팍도사에서 "몇 경기 벤치에만 앉아있는데도 마이너 한달 월급이 나온다"고 한 바 있다.

심지어 기존의 커리어가 빵빵해서 자존심이 있거나 MLB 로스터의 해당 포지션 경쟁이 치열한 경우는 마이너 계약을 하고 "일정 날짜[16]까지 메이저 콜업을 못 받으면 계약을 파기할 수 있다"는 조항을 넣기도 한다. 이런 선수들은 대개 선수층이 얇은 다른 팀으로 입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개는 새 팀에서도 9월 확장 로스터에서나 콜업을 받거나 1년 내내 마이너 팀에서만 뛰는 경우가 허다하다. 포지션별로 본다면, 대개 유틸리티 플레이어로서의 활용가치가 뛰어난 센터라인 수비수가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높다. 치열한 경쟁 때문에 빅리그에 올라올 가능성이 부족한 투수나 코너 외야수, 1루수들은 MLB 팀들보다도 오히려 일본프로야구한국프로야구 등 동양 리그의 진출을 바라는 경우도 있다. 금전적으로 더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민훈기 기자가 취재한 브랜든 나이트브라이언 코리의 이야기를 보면 아주 파란만장하다. 독립리그까지 갔다가 국가대표에 선발되고, 웨이버 공시로 풀렸으면서도 테오 엡스타인에게 계속 계약을 제시받으면서 마이너와 트리플A를 오르내리며 정신없이 뛰다가 미국 북동부에서 멕시코 국경도시로 트레이드까지 되고 일본야구 진출도 트라이아웃에서 겨우 계약하는 등, 미국도 미국이지만 특히 도미니카 공화국 같은 중남미 출신 선수들은 이렇게 선수 생활을 하면서 금전적 문제 등으로 가정이 파탄나기도 하고 우울증에도 시달린다고 한다.

KBO에서 가장 많은 팀을 거친 선수는 최익성, 이동수[17], 허도환으로 6개 팀에서 1군 기록을 남겼다. 이 중 가장 대표주자는 최익성으로, 삼성 라이온즈에서 뛰던 1998년 이후 거의 매 해 타 팀으로 이적하며 스토브리그를 순탄하게 보낸 경우가 없다시피 했다. 이동수 역시 삼성에서 롯데로, 1년만에 다시 쌍방울로, 쌍방울 해체 뒤 선수단을 인수한 SK에서 해태로, 또 해태에서 두산으로 옮기는 등 엄청나게 옮겨다녔다. 최향남의 경우는 아예 인생이 저니맨. 또한 투수 김영수김경태는 좌완불펜투수로서의 가치 때문에 방출되고도 이곳 저곳 떠돌아 다녔고, 그 외에도 손지환 역시 5가지 유니폼을 입으며 최익성의 기록을 위협하는 저니맨이 되었다. 손지환의 경우 아쉬운 타격에 비해 좋은 수비를 가졌기 때문에 내야에 구멍이 난 이팀 저팀 다니며 내야를 땜빵하는 케이스.

최근에는 KBO 리그에서도 트레이드가 예전보다는 활성화되면서 저니맨이 늘고 있다. 오준혁이 한화-KIA-KT를 거쳐 SK로 이적하면서 20대 중후반의 젊은 나이에 저니맨이 되었다. 허도환도 타격은 약하지만 1군 백업 포수 역할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기량을 가지고 있는 덕택에 두산-넥센-한화-SK-KT-LG 총 6팀의 유니폼을 입었다. 정현도 삼성-KT-SSG-NC를 거치면서 저니맨 테크를 착실히 밟다 은퇴했으며 이상호 역시 롯데-SK-NC-LG-KT를 거치며 빼도박도 못할 저니맨이 되었다. 외국인 선수 중에는 KBO에서 8시즌을 뛰며 KIA-넥센-LG를 거쳐 SK를 마지막으로 KBO 커리어를 마무리한 헨리 소사가 대표적인 저니맨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송신영은 특이한 경우. 원래는 현대 유니콘스 - 넥센 히어로즈 적통으로써 프랜차이즈로의 길을 걷고 있었으나 트레이드 마감 기한을 4시간 남겨놓고 LG 트윈스로 트레이드되었다. 반 시즌 뛰고 FA 대박을 터트려 한화 이글스로 떠났지만, 2012년 분식회계하며 끔찍하게 부진했다. 결국 신생팀인 NC 다이노스의 20인 외 보강 선수로 지명되어 2011년, 2012년, 2013년 모두 제각기 다른 팀에서 뛰게 되었다. 떠돌아다니는 신영언니를 보는 넥센빠들은 그저 피눈물만 짓고 있었는데… 2013년 4월 18일 뜬금없는 트레이드로 인해 친정팀 넥센 히어로즈로 컴백하며 프랜차이즈 선수로 복귀하였다. 즉, 프랜차이즈 선수와 저니맨을 모두 겪은 흔치 않은 케이스.[18] 그러다가 2016년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로 40세의 나이에 한화 이글스로 또 팀을 옮긴 뒤 그 다음해에 은퇴하였다. 이러다 보니 KBO 리그에서 이적이 가능한 방법을 거의 다 경험해 본, 흔치 않은 선수다.[19]LG 트윈스심수창도 예로 들 수 있다. 2004년부터 2011년 7월 말까지 LG 1기 시절을 보내다가 마침 위에 서술된 송신영과 트레이드 되었으며, 이후 히어로즈, 롯데, 한화를 거쳤다가 다시 LG 트윈스로 복귀했다. 저니맨 트레이드[20] 야수 쪽에서도 비슷한 경우가 있는데, 그건 바로 채태인. 보스턴 레드삭스 산하 마이너에서 방출된 뒤 삼성 라이온즈에 해외파 특별지명으로 지명된 뒤 삼성의 대표 프랜차이즈 스타 타자 중 한 명이었으나, 넥센으로의 트레이드 이후 사인 앤 트레이드, 2차 드래프트를 거치며 롯데와 SK를 거쳤다.

트레이드웨이버 공시가 국내보다 훨씬 활발한 해외의 경우엔 대형 트레이드들이 엄청나게 많이 터지는데, 해외의 저니맨은 셀 수 없이 많다. 메이저리그의 경우 A급으로 꼽히는 선수라도 FA 시점이 다가오면 각 팀들의 이해 관계 때문에 이리저리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대박 계약으로 겨우 정착하는 경우도 있다.[21] 극단적인 경우가 리그 최고의 선발 중 하나로 꼽히면서도 FA 2시즌 전부터 FA 계약때까지 4번이나 팀을 바꿔야 했던 클리프 리. 물론 그 과정에서 팀을 옮기는 선수들 중에는 빅마켓 팀의 유망주들도 상당히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는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는 저니맨 생활이기에 선수 본인에게 큰 스트레스가 된다.

일본프로야구의 저니맨으로는 투수로는 쿠도 키미야스[22] 에나츠 유타카[23] 등이 꼽히는데, 이들은 영입한 팀마다 리그 우승 등에 꼬박꼬박 공헌해 '우승 청부사'라는 명예로운 별명으로 불리는 케이스. 타자로는 일본에서만 5개 팀(+LA 다저스)에서 뛴 나카무라 노리히로가 일본프로야구의 대표적인 저니맨으로 꼽힌다.[24] 1990년대 이후에는 일본에도 FA 제도가 생기고 포스팅 시스템 등으로 일본인 야구 선수들이 메이저리그로 진출할 길이 생기면서 미국과 일본을 오가는 저니맨들이 여럿 생겼는데, 일본인 메이저리거의 선구자 노모 히데오도 말년은 저니맨이었고 메이저리그에서 7개 팀을 거쳐간 아오키 노리치카, 메이저리그 5개 구단에서 뛴 사이토 타카시, 일본 4개구단-메이저 3개 구단에서 뛴 요시이 마사토, 일본 4개-메이저 2개 구단에서 뛴 오카지마 히데키 등 많은 저니맨들이 있어왔다. KBO 리그를 거쳐간 이리키 사토시, 카도쿠라 켄, 다카쓰 신고 등의 일본인 선수들도 충분히 저니맨이라 할 수 있는 커리어를 보낸 선수들이다.


3.2. 축구[편집]


정말 오래 뛰기 위해 팀을 여러 번 옮긴 가장 대표적인 저니맨급 선수는 니콜라스 아넬카,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 히바우두가 있다[25] 이 경우는 실력은 충분하지만 선수 개인의 현역 연장 의지가 워낙 강해서 자신을 오래 받아주는 팀을 찾기 위해 매번 팀을 갈아치운 케이스에 해당된다.

무려 19개 국가를 옮겨다닌 일본 축구선수도 있다. 이름은 '이토 단'이며 그는 다양한 리그 경험을 위해 한 리그에 오래 적을 두지않고 계속 옮겨다니면서 뛰고 있고, 2017년에는 동티모르리그로 옮겼다. 현재 소속팀은 28번째 소속팀.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지만 아직 은퇴 생각 없고 다음 목표가 중앙아시아카더라. 곧 30회 이적을 기록할 꺼 같다. 그러나 2018년 8월 삿포로에서 축구교실 코치로 활동 중이다가 2019년 사커 리그의 로버스 FC에 입단하여 다시 현역 생활을 이어갔다. 같은 해 북마리아나 제도의 old B bank에 임대되어 뛰다가 은퇴함으로써 총 30개의 클럽에서 현역 생활을 한 축구 선수로 기록되었다. 2020년 4월부터 홋카이도의 고등학교 축구부 코치를 하고 있는 듯 하다.

기네스북이 공인한 역대 최다 이적 축구 선수는 우루과이 국가대표 출신 포워드 세바스티안 아브레우이다.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도 대표적인 저니맨 중 한명으로, 여러 빅클럽(유벤투스 FC, FC 인테르나치오날레 밀라노, FC 바르셀로나, AC 밀란, 파리 생제르맹 FC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들을 옮겨다니며 맹활약을 보여줬다. 비록 한개의 클럽에서 뛴 기간은 짧지만 그때마다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주면서 팀 승리에 기여했다.[26] 이후 LA 갤럭시에서 2019년까지 맹활약하다가 2019-20시즌 겨울 이적시장에서 AC 밀란으로 복귀했다. 또한 1981년생(만 42세)인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현역에다가 빅클럽 소속의 주전인것을 보면[27] 참 대단한 선수라고도 볼수 있다. 즐라탄이 어느 팀의 레전드냐고 궁금해할텐데 전성기를 보내고 2020년에 다시 복귀한 팀인 AC 밀란 혹은 가장 오랫동안 뛴 파리 생제르맹 FC의 레전드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아시아 선수 중에선 혼다 케이스케가 아시아, 유럽, 북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남아메리카 총 5개의 대륙에서 뛰어본 희대의 기록을 가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차두리, 이근호가 있지만 특히 석현준이 이 방면에서의 대표적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데 총 11개의 팀 이적이라는 대한민국 선수로서는 가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급의 저니맨 생활을 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 시작해 중동까지 갔다가 프랑스 리그를 거치더니 병역 문제가 논란이 되며 사실상 커리어가 마감되다시피 했다. 사람들에겐 기억이 가물가물 해질 때 쯤 스포츠 뉴스 토픽으로 올라오는데, 왠지 매번 기사가 실릴 때마다 팀 유니폼이 바뀌는 느낌이 드는 선수.

어두운 일면으로, 브라질이나 동유럽에서는 상기한 이유 뿐만 아니라 소속사나 에이전트가 계약금을 뽑아내기 위해 선수를 저니맨으로 만드는 경우도 많다. 이런 선수들은 제대로 정착하면 실력을 더 키울 수 있음에도 지속적으로 팀을 옮겨다니며 성장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다 제대로 된 소속팀에 정착해서 늦게야 빛을 보기도 한다. K리그나 J리그에서 성공한 브라질, 동유럽 선수 중 과거에 팀을 자주 옮겨다닌 기록이 있다면 상당수가 이런 케이스.


3.3. 농구[편집]


NBA에서는 2020년 기준으로 역대 최다 이적기록(12개 구단)을 자랑했던 처키 브라운, 조 스미스, 토니 마센버그 3인방과 크리스 개틀링, 그리고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한때 3J[28]로 유명했던 짐 잭슨이 이 분야의 레전드이다.

특히 처키 브라운은 노스캐롤라이나 주립대학교 출신으로 1989년 NBA 드래프트 전체 43위로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 지명되어 2002년 새크라멘토 킹스에서 은퇴할 때까지 무려 12개 구단에서 활약했다. 여기에 이탈리아와 CBA 구단에서 뛴 걸 합산하면 토니 마센버그(16개)에 이은 2위(15개)이다.

1994~1996년까지 휴스턴 로키츠에서 뛴 걸 빼면 브라운은 정규시즌 초반부터 함께 하는 경우가 없었으나, 어느 구단에서든 부상자가 생겨 급히 베테랑을 수혈할 필요가 있으면 늘 브라운을 불러왔다. 비록 그의 성적은 통산 평균 5.9 득점에 3.1 리바운드로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10개월짜리 계약이든 남은 시즌이든 뭐든 간에 성실함을 바탕으로 팀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었기 때문이다.

크리스 개틀링의 경우, 버지니아 주의 중견 대학인 올드 도미니언 대학교 출신이었지만, 대단히 성실하고 파워포인트 포지션에서 꾸준히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 플레이로 백업 멤버에서 주전으로 천천히 올라가 1996/97 시즌 댈러스 매버릭스에서 뛰던 시절 올스타에도 선정되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그는 한 곳에 눌러앉지 못하고 2002년까지 모두 9개 구단에서 뛰었다.

이처럼 그가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한 것에 대해 일부에서는 그를 트레이드의 희생자로 보는 시각도 있다. "다시는 트레이드될 수 없다."며 조급한 나머지 자신의 기록에만 열중하다 주가가 떨어졌다는 얘기다. 특히 올스타가 된 댈러스 때부터 득점에만 연연하다 팀 플레이를 망쳐 결국 뉴저지로, 그리고는 밀워키로 옮겨져야 했다. 그곳에서도 그는 식스맨 이상의 역할은 맡지 못한 채 리빌딩이나 트레이드를 위한 카드로 사용되며 덴버, 클리블랜드, 마이애미 등을 떠돌아다니다 2002년에 러시아CSKA 모스크바를 거쳐 2003년에 이탈리아의 빅토리아 리베르타스 피사로를 끝으로 은퇴했다.

짐 잭슨은 일반적인 저니맨과 달리 한때 올스타에 버금가는 실력자였다. (비록 부상으로 풀시즌을 소화는 못했지만 커리어 하이가 25점-당시 리그 5위-에 달한다) 그러나 여자 문제로 인해 댈러스가 3J를 해체하고[29] 나서부터는 이상하게 인생이 꼬이기 시작했다. 팀동료 키드는 피닉스, 뉴져지 등에서 레전드가 되어가고 매쉬번도 그만큼은 아니지만 마이애미와 샬럿[30]에서 터프한 근성을 갖고 스타가 되가는 동안 잭슨은 역대 최다인 12개의 팀을 옮겨다니며 선수생활을 해야했다. 말이 12개지 그 넓은 미국땅에서는 동부와 서부, 중서부, 남부 등이 서로 문화조차 다른점이 많은데, 그는 6개 디비젼을 모두 경험했다. 그와 타이기록을 갖고 있는 다른 선수들은 대부분 후보급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억울할지도 모른다. 실력도 괜찮고 성격이 그렇게 모난것도 아닌데[31] 심할 정도로 일이 안 풀린 편이다.

한편 레전드나 MVP급 중에서는 샤킬 오닐이 팀을 많이 옮긴 편이다. 오닐은 총 6개의 팀에서 뛰었는데 이중 피닉스, 캐벌리어스, 셀틱스는 말년에 옮긴거지만, 슈퍼스타급 기량을 가지고 있을 때는 팀을 자의로 2번이나 옮겼다. 올랜도에서 데뷔한지 4년만에 레이커스로 옮겨서 충격을 줬는데, 당시 오닐은 리그 최고의 선수 중 하나였으나 팀내 또다른 슈퍼스타 앤퍼니 하더웨이와 에이스 역할을 놓고 갈등에 휩싸이다 가버린 것이다. 재밌게도 오닐은 8년 후 코비와 비슷한 상황에 휩싸였는데, 팀의 경영진이 젊은 코비를 선택하자 히트로 가버렸다. 당시만 해도 오닐은 MVP급[32]이었기에 리그를 한바탕 뒤집어놓은 바가 있다. 또한 윌트 체임벌린 역시 팀을 여러번 옮겼는데 필라델피아 워리어즈로 데뷔했다가 이적하진 않았지만 팀이 샌프란시스코로 이적하는 바람에 샌프란시스코 워리어즈가, 이후 고향 필리로 가고픈 마음에 필라델피아에서 새롭게 옮겨간 세븐티식서스,[33] 마지막으로 LA로 이적해 레이커스에서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만 36세를 맞이하며 (1984년 12월 생) 역대급 선수로 이름을 남길 것이 확실시되는 르브론 제임스는 2021년 기준으로 팀을 세번 옮겼는데[34] 비슷한 '급'의 선수들의 해당 나이대에 비하면 상당히 자주 옮긴 편이다. NBA에서 프랜차이즈 스타를 찾아보기가 예전보다 힘든데, 많은 젊은 선수들이 이에 큰 가치를 두지 않는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닐, 르브론, 체임벌린같은 경우는 저니맨이라기보단 "우승청부사"의 느낌이 강하다.

현역 NBA 농구 선수 가운데에는 2021년 기준 열두 번째 팀에서 뛰고 있는 트레버 아리자가 대표적인 저니맨이다. 아리자는 NBA 역사상 가장 많이 트레이드당한 선수이기도 하다. 단신 가드 이쉬 스미스는 아리자를 능가하는 저니맨인데 2010-11시즌 데뷔 후 2022-23시즌까지 13번째 팀을 경험했다. 2022년 기준 34세여서 기량만 유지된다면 NBA 기록인 16개 팀을 깰 가능성이 있는 유일한 선수.

국내 프로농구에도 저니맨이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전형수황진원으로, 특히 황진원은 처음에 서울 삼성 썬더스에 지명받아 입단했으나 첫 시즌을 치르기도 전에 창원 LG 세이커스로 트레이드되었고 그나마 그 시즌 도중 여수 코리아텐더 푸르미로 이적, 그 다음 또 서울 SK 나이츠로, 코리아텐더에서 바뀐 부산 KTF 매직윙스로, 안양 KT&G 카이츠로, 원주 동부 프로미로, 서울 삼성 썬더스로 여러 군데 옮겨다녔다. 황진원 역시 수비력이 괜찮고 한 방이 있기 때문에 자주 옮겨다녔다. 그리고 김영만도 기아 소속으로 뛰다가, 기아의 프렌차이즈로 자리잡았으나, 최희암 감독의 병크 때문에 저니맨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강대협과 정종선도 팀을 자주 옮겨다녔던 대표적인 저니맨이다. 2020년 들어서 여섯팀 이상 이적한 선수가 생겼는데 바로 오용준이다. KBL에서 저니맨의 끝판왕은 외국인 선수 리온 윌리엄스가 있다. 리온은 20-21시즌 종료를 기점으로 삼성 썬더스전자랜드 엘리펀츠를 제외한 총 8개팀에서 뛰었다.

WKBL에서는 김보미가 대표적인 저니맨이다. 김보미는 우리은행에 지명되어 뛰다가 금호생명으로 이적했고, FA 자격을 얻어 하나외환(현 하나원큐)으로 이적했으나 곧 정선화의 보상선수로 KB 스타즈에 지명, 3번째 팀 이적을 했다. KB 스타즈에서 활약하다가 KB 스타즈가 염윤아를 영입하면서 또다시 보상선수로 하나원큐로 이적하게 되었으나, 하나원큐가 고아라를 영입하며 삼성생명에 보상선수로 내어준 이하은을 되찾아오기 위해 김보미를 보내면서 김보미는 삼성생명 선수가 되었다. WKBL 6구단 중 무려 5팀에 몸담은 전적이 있는 유일한 선수로 당시 팬들 사이에서는 신한에만 이적하면 6구단 유니폼 다 수집 가능하겠다라는 농담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김보미는 삼성생명에서 우승을 이루어내고 은퇴하여 6구단 유니폼 수집의 꿈(?)은 이루지 못했다.


3.4. 배구[편집]


한국프로배구에서도 역시나 존재한다. 다만, 리그 규모가 워낙 작은 터라 사례가 많지는 않다. 특이한 점이라면 유독 주전 세터들의 이적이 흔하고, 대표적으로 황동일[35], 강민웅, 노재욱, 한수지에 심지어 10주년 전설 중 한명인 김사니가 대표 사례.

세터 포지션이 아닌 선수들 중에 대표적인 저니맨은 바로 한송이. 여배판 김영만이라 봐도 될 정도로 첫 소속 팀인 도로공사에서 뛸 당시 첫 FA를 맞았는데, 그 당시 프런트의 황당한 병크로 인해 저니맨이 된 사례. 남자부에서는 주상용이 대표적이다. 둘 모두 하드웨어나 공격은 그럭저럭인데 수비가 잘 안 되는 윙스파이커라 컵대회에서는 기대치가 높아지는데 외국인 선수가 합류하는 리그에서는 그 자리의 백업 혹은 원포인트로 전락해 기대 대비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이면서 결국 떠돌아다닌 경우다. 센터의 경우 전진용, 리베로의 경우에는 곽동혁이 있는데 이 경우는 하드웨어적 측면으로 팀을 많이 옮기는 편.[36][37]

외국인 선수로는 펠리페 알톤 반데로가 있다.


3.5. e스포츠[편집]


e스포츠의 경우에는 오버워치 정도를 제외하면 선수 교체가 힘들다는 특성 때문에 다른 종목들과 달리 특정 부분의 강점 때문에 저니맨이 되는 경우는 드물고, 몇몇 대기업 팀들을 제외하면 불안한 운영 구조, 혹은 2부리그나 주요 강국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리그로의 잦은 이적 때문에 저니맨이 자주 발생하는 편이다. 특히 다른 스포츠와 달리 선수 생명이 짧고 패치 버전에 따라 선수의 퍼포먼스가 요동치기 때문에 정상급 기량을 지닌 선수임에도 팀을 바꾸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e스포츠 저니맨 분야의 레전드로는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 활동하는 키키스[38], 수노, 피넛[39], , 플라이, 후니, 파워오브이블 선수 정도를 들 수 있으며, 코칭 스태프 중에는 김정수 감독을 들 수 있겠다. 이들 중에도 차이가 있다면 수노는 애매한 기량 때문에 점점 수준이 떨어지는 리그로 이적하며 저니맨이 되어버린 경우고, 피넛은 기량 면에서 딱히 문제될 수준이 아니지만 팀의 자본이 불안정한 탓에 자주 이적을 한 경우다.[40] 칸의 경우 초반에는 하위권 팀을 전전하는 전형적인 저니맨이었고 이후엔 포텐을 폭발시켰지만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 케이스. 김정수 감독의 경우 본인 스스로 밝힌 도전정신 때문에 팀성적과 상관없이 1년만하고 팀을 나오고있다. 대표적으로 중국에게 첫 롤드컵 우승을 만들어준 IG에서 파격적인 대우를 준비했는데도 거절하고 2부에서 승격한 담원에 먼저 연락을 한것. 그러나 2020년에는 T1과 다년계약을 맺으면서 처음으로 한팀에 1년 이상 머무는듯 했지만 롤드컵 진출 실패라는 성적에 자진사퇴. 이후 BLG를 거쳐 2022년 DRX에 5년만에 리턴했지만 개막 5경기만에 경질되었다.

프로와 아마추어의 중간이라는 애매한 구도로 돌아가는 카트라이더 리그에도 본격적으로 저니맨이라 할 만한 선수가 생겼다. 바로 무려 6개의 프로팀에서 뛴 전대웅[41]정승민.[42] 둘 모두 2021년 수퍼컵 기준 5번째의 프로팀 경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예선을 통과하고 얼마 되지 않아 팀이 매각되면서 순식간에 6번째 경력이 생겼다.[43] 전대웅의 경우에는 자진퇴단과 방출을 반복하는 선수 본인의 논란과 전성기에 비해 꺾인 기량, 정승민의 경우에는 선수 생활 내내 지적받아도 도저히 고쳐지지 않는 약점 때문에 안정된 상위권 팀에게는 크게 메리트가 없지만 하위권 팀에게는 일단 본인들이 멱살잡고 예선을 확실하게 뚫어준다는 확고한 장점으로 인해서 여러 팀의 러브콜을 받은 케이스다.


4. 관련 인물[편집]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하나라도 포함된다면 기재가 가능하다.

5. 다른 의미[편집]


의미가 확장되어 스포츠업계 외 다른 업계에서도 종종 쓰이는 용어가 되었다.

한국 아이돌에서도 연습생이 데뷔 전 소속사를 여러 번 옮겨 다니면 이게 되기도 하는데, 이전 소속사에서 데뷔할 확률이 적어질 경우 기회 확보를 위해 다른 기획사로 인력이 이동하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DSP에서 데뷔하기 전에 드림티, 예당, 코어, 키이스트를 거친 허영지. 그러나 보통 연습생 경력은 아무리 연습생을 오래 했다고 해도 정식 경력으로 인정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새 그룹으로 데뷔하는 경우가 아니라 기존 그룹에 합류하는 경우 다른 신인 그룹들에 비하여 방송국에서 받는 대우(대기실 및 음방 출연 순서 배정 등) 측면에서 형평성 문제가 발생하기도 한다. 소속사는 그대로인데 4 에 소속을 두었던 윤채경도 있다.

또 연습생은 아니고 현역 가수지만, DJ DOC도 일종의 연예계의 저니맨이라고 할 수가 있는데, 이들은 소속사와의 잦은 불화로 인하여 그동안 자주 이 소속사 저 소속사 자주 전전하였다고 한다.

개그계에서는 박준형[44]최국[45]이 저니맨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계에서는 철새라고 하며, 대표적으로 이인제김한길이 당적 변경을 많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성향이 다른 정당으로 이동한 것에 가중을 두면 이인제가 더 저니맨에 가깝다.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일자리를 자주 잘리거나 여기저기 옮겨다녀 이직이나 해고가 잦은 경우에도 저니맨이라고도 한다. 이런 경우엔 대개 어중간한 스펙으로 딱히 어디에 가더라도 우대를 받지는 못하나 그렇다고 해서 오너 입장에서 아예 써먹을 만한 구석이 없는 건 아닌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일머리는 그리 좋진 못해도 외국어는 그럭저럭 할 줄 안다든지, 아니면 영상 편집을 좀 할 줄 알거나 컴퓨터 활용 능력도 전문가급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잘 하는 편인 경우. 물론 그냥 어중간하게 잘하는 게 아니라 진짜 뛰어난 수준이라면 차라리 프리랜서를 뛰지 저니맨 테크를 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전문직이라고 보기엔 애매하지만 국가공인 자격증을 갖고 일하는 간호사치위생사, 물리치료사의 경우 전 직장에서 큰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라면 어딜 가도 일단 구직이 어렵진 않지만 일반적인 직장인의 경우 이직이나 해고가 잦다면 당연히 취업 평가에서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보니 30대 중후반 무렵부터는 이직에 좀 더 신중하라는 조언이 많다.

로펌 변호사나 페이닥터로 일하는 의사 역시 저니맨 테크를 타기도 한다. 물론, 이 쪽은 어딜 가나 일정수준 이상의 금전적 대우는 받을 수 있으니 일반적인 직장인들보다는 낫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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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어중간한 수준이라는 것은 대개 팀에서의 확실한 주전급 실력은 보장하지 못하지만 대충 감독이 원하는 롤에 있어서 수행 자체는 가능하거나 교체 및 백업 땜빵용으로 나왔을 때 그냥저냥 무난한 입지의 활약만 해줄 수 있는 레벨을 뜻한다. 즉, 잠깐의 땜빵은 가능하지만 안 좋게 말하면 딱 옆그레이드 정도만 기대할 수 있는 선수인 것[2] 아무리 현대 스포츠가 고도의 기술력에 힘입어 세이버매트릭스나 기계적 전술 분석 시스템 등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사람이 하는 플레이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레알 마드리드처럼 오고싶어 안달난 재원들을 골라먹는 수준의 최상위권 명문 구단이 아닌 이상 실력 있는 에이스들 중심으로 팀 전체의 전술을 맞추는 경우는 굉장히 흔할 수 밖에 없다.[3] 오타니 쇼헤이, 파울로 디발라 등의 예시에서도 볼 수 있지만 해당 선수의 유니폼을 위시한 굿즈 판촉은 물론 그 선수의 초상권, 광고 로열티 등과 같은 축구 외적 가치에서 얻어오는 잠재적 수입은 결코 만만하지 않은 수준이다. 경우에 따라선 아예 그 구단을 상징하는 마케팅 아이콘이 되기도 하는 편[4] 이렇게 된다면 당연히 실력 있는 선수나 감독, 스태프진들은 커리어를 위해 입단을 꺼릴 것이고 구설수거리만 있으면 비아냥대기 일쑤인 언론과 더불어 그 실력 있는 선수를 보고 구단의 팬까지 된 라이트팬들의 이탈 및 비난으로 인해 팬덤이 전체적으로 위축될 수 있다. 당장 구단 수입과도 직결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셈[5] 간혹 핵심 멤버를 생각보다 쉽게 포기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셀링 클럽과 비슷한 맥락으로 해당 선수를 오래 잡고있기엔 구단의 위상이 높지 않다보니 억지로 앉혀있는것보다 이적료를 받고 파는게 낫다는 판단에서거나, 혹은 이적 당시에는 해당 선수의 잠재력을 완벽히 신용하지 못하여 걸어놓은 바이아웃 등의 조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자포자기하는 경우다.[6] 그나마 농구, 야구처럼 한두 대륙 안에서만 최상위권 프로리그가 편중되어 있는 경우는 그나마 낫지만 축구의 경우는 최상위 프로리그가 무려 영국,독일,이탈리아,스페인까지 있고 프랑스, 포르투갈, 터키처럼 그에 준하거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수준의 리그들이 타 국가에도 수없이 퍼져있기 때문에 선수들이 이동과 적응에 엄청난 애를 먹기 마련이다.[7] 하지만 이렇게 임대를 오래 보냈음에도 임대간 팀에서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가차없이 방출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며, 선수 본인이 원 소속팀에서보다 많은 기회를 얻고자 일부러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FA로 나와서 하위 팀으로 가는 경우도 흔하다. 여기서 실력을 개화하면 상위 구단으로 갈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보통 저니맨이 되는 편[8] 아무리 셀링 클럽이나 하위 리그더라도 유망주들을 잘 키운다는 이미지를 위해서 적절한 성적이 나와야 하는데 주전으로 뛰는 노장의 실력이 영 시원찮아진다면 그거대로 문제고, 이 업계도 연차 개념처럼 경력이 높을 수록 점점 연봉이 오르기 때문에 이미 다른 구단에서 뛸 만큼 뛰고 온 노장들은 상당한 고액 연봉자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사우디 리그처럼 실력은 하위권이어도 고자본이 오가는 리그가 아닌 이상 남미 리그, K리그 같은 중소규모 리그는 아무리 상품 가치 높은 선수더라도 연봉 부담에 한계가 있을 수 있다.[9] 물론 축구에서는 제이미 바디, 미슬라브 오르시치, 야구에서는 알 라이터, 라이언 쉼프처럼 뒤늦게 재능이 만개하는 극소수의 예시도 없지 않아 있긴 하다[10] 심지어는 일본에서 뛴 적도 있다. 1993년에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1년을 뛰며 최초의 캐나다 출신 일본프로야구 선수가 되었다.[11] 78년 데뷔해 2002년까지 선수 생활을 해서 70,80,90,2000년대의 4-decade를 모두 뛰어본 선수로도 유명하다. 김병현이 더그아웃 인터뷰에서 월드시리즈에서 블론세이브를 기록한 순간 '모건 아저씨 반지는 어떡하나' 하며 주저앉았다고 밝히면서 다시금 회자되었다.[12] 이 투수는 좌완 셋업맨으로, 커리어 내내 단 한 팀에서도 3년 이상 뛴 적이 없는 진짜 저니맨이다. 길어야 2시즌 뛴 게 전부다.[13] 물론 게임데이 25인을 넘어 MLB 한 시즌 40인 로스터의 경우엔 대상자가 늘어나지만, 40인 로스터에 들고 트리플A 등에서 대기하는 선수들은 베테랑 뿐만 아니라 서비스타임 문제로 콜업이 늦어지는 유망주들도 다수를 차지한다.[14] 물론 이런 저니맨들 외에도 마이너에서 올라온 유망주들까지 합세한다.[15] 당해 마이너 계약 선수가 정규시즌 전에 방출되는 경우엔 "당해 연봉을 위약금으로 지급해야 한다"는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16] 대개는 5월 중순이다.[17] 다만 이 선수는 쌍방울-SK를 별도로 보아서 6팀이다.[18] 사실 저니맨으로 가장 유명한 최익성삼성 라이온즈 프랜차이즈로 여겨지기도 한다.[19] 넥센에서 트레이드로 이적, LG에서 FA로 이적, 한화에서 신생팀 특별지명으로 이적, NC에서 트레이드로 이적, 넥센에서 2차 드래프트로 이적. 방출 후 이적이나 FA 보상선수를 제외한 모든 이적 방법을 다 겪었다. 특히 특별지명은 KBO 리그에서 신생팀이 새로 생겨야 나올 수 있기 때문에 더욱더 어려운 기록이다.[20] 실제로 송신영과 심수창은 트레이드 전까지 프랜차이즈 스타였다가 동시대에, 그리고 순식간에 저니맨이 된다. 또 두 선수는 원 소속팀으로 돌아온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심수창은 해체 후 재창단만을, 송신영은 방출 후 이적만을 경험하지 못 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이 있다.[21] 보통 리빌딩을 계획하는 팀이 FA를 앞둔 팀의 주축 선수를 포스트 시즌을 노리는 팀에게 유망주 패키지와 트레이드한다.[22] 단, 쿠도는 세이부 라이온즈프랜차이즈 스타였다가 두 차례 FA로(세이부→다이에→요미우리) 이적한 뒤 전성기가 확연히 지난 40대 이후부터 FA 보상선수로 요코하마에 이적한다던지 하는 등 본격적인 저니맨 생활을 했다.[23] 이쪽은 이미 전성기 때부터 수뇌진과의 불화 등의 문제로 이 팀 저 팀 자주 옮겨다녔다.[24] 이쪽은 오사카 긴테쓰 버팔로즈프랜차이즈 스타였지만 긴테쓰 구단이 소멸하면서 LA 다저스와 계약을 맺고 메이저 진출을 시도했다 실패한 뒤 후신 구단인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뛰었지만 부진을 보인 끝에 1년만에 방출되고 저니맨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25] 1972년 생으로, 43세까지 현역이였다.[26] 다만 그렇게 굵직굵직한 클럽만 돌아다녔는데 챔피언스리그 우승이 없다. 다행히 맨유에서 뛸 때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하며 유럽대항전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했다.[27] 공격수의 경우 레전드 대우를 받는 선수가 아닌 이상 대개 만 35세쯤에 빅클럽을 떠나 하위권 팀이나 약체 리그에서 말년을 보내고, 막판에 크게 벌고 은퇴할 계획이라면 MLS, J리그, 중국 슈퍼 리그, 카타르 스타즈 리그 같은 위상은 낮지만 돈은 많이 주는 리그에서 크게 번 다음 만 37~38세쯤에 은퇴한다.[28] 나머지 2J는 제이슨 키드, 자말 매쉬번.[29] 가수 토니 브랙스톤을 둘러싸고 키드와 잭슨간의 마찰이 있었다.[30] 뉴올리언즈로 이전하기 전이다.[31] 상기된 여자문제 제외하곤 큰 스캔들이나 팀내 불화에 휘말린 적도 없다. 오히려 키드가 가정폭력으로 소송에 휘말린 적이 있다.[32] 실제로 이적 직후 MVP를 간발의 차이로 놓쳤다.[33] 시라큐스 내셔널스에서 이름을 바꿨다.[34] 물론 두번째는 원 소속팀으로 복귀다. 즉, 클리블랜드 → 마이애미 → 클리블랜드 → 레이커스[35] 현존하는 남자배구팀 7팀에 모두 소속된 선수[36] 센터는 거의 리시브 면제인 포지션인데 장신선수가 워낙 적은터라 배구를 너무 늦게 입문해 기본기가 부실해도 키가 최소 190이 넘거나 육박하면 어느 팀도 탐을 낼 정도다. 지태환, 박준혁, 문명화가 그 예.[37] 리베로의 경우 2010년대 들어 부용찬, 오재성처럼 학창시절부터 리베로 포지션만 뛴 선수들이 나오긴 해도, 이강주, 이승현처럼 신장이 동포지션의 선수 중 작은 편에 서전트 점프가 안 되는 윙스파이커 혹은 세터면 포변을 시키는 경우가 잦고, 어느 경우든 리시브와 디그, 라인 조율에 유사시 2단 연결까지 모두 수준급이지 않은 데다 유일하게 교체 횟수 제한이 없어서 약점 보강이 어렵기에 팀의 상황에 따라 거취가 불안정해지면서 이적도 잦다. 특히 거론된 곽동혁은 첫 이적 당시 감독과의 악연으로 인해 무려 5년 이상 리그에 복귀하지 못했던 적이 있음에도 복귀 후 이적이 많았다.[38] 2021년 기준 무려 31개의 팀에서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39] 데뷔 이후부터 줄곧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지만 매년마다 팀을 옮겨다닌 저니맨 중에서도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이후 22 시즌에 19 시즌에서 활약했던 젠지에 다시 합류하면서 처음으로 친정팀으로 복귀를 하게 되며 저니맨 이미지는 희석되었다.[40] 예외는 17년의 SKT에서 킹존으로의 이적이나 19년 젠지에서 LGD로의 이적 정도.[41] 긱스타 - 아프리카 프릭스 - GC부산 이스탯츠 - 게헤나 스위퍼스 - TBP 게이밍 - Team GP[42] 긱스타 - 아프리카 프릭스 - SGA 이스포츠 - 게헤나 스위퍼스 - TBP 게이밍 - Team GP. 이쪽은 아프리카와 SGA 중간에 아마추어팀 경력이 있다.[43] 전대웅의 경우 아이티뱅크, 트리플퍼펙트를 프로팀 경력으로 포함하면 8번째다.[44] 개그 콘서트, 개그투나잇, 코미디의 길, 코미디빅리그에 출연하였다. 방송사는 모두 다르다.[45] 개그 콘서트, 웃음을 찾는 사람들, 코미디의 길, 코미디빅리그, 개그공화국에 출연하였다. 5개의 방송사에서 코미디 프로에 출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