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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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장성은 중국의 성급 행정구역으로, 성도는 항저우시다. 약칭은 저(浙 ), 간혹 웨(越 )로도 표기한다. 인구는 약 6,500만 명이며 면적은 104,141 km2으로 남한과 거의 같다.
중국 남동부에 위치하며, 북쪽에는 장쑤성, 동북으로 상하이시, 남쪽으로는 푸젠성과 접한다.[1] 지역을 지나는 운하를 중심으로 우전진 등 많은 수향 마을들이 있다. 해안 지역으로 예로부터 왜구들의 침입과 약탈에 시달리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장쑤성, 상하이시와 함께 중국 강남(江南)지역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발전하였으며, 전 알리바바 그룹 회장 마윈을 비롯해 부자가 많은 지역으로 손꼽힌다.
저장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을 흐르는 첸탕강의 옛 이름인 저장(浙江)에서 유래했다.
약칭인 저(浙 )는 저장성의 이름을 줄인 것이며, 웨(越 )는 본래 이곳을 가리키던 전통적인 이름으로 사오싱에 수도를 두었던 춘추시대의 월나라(越)에서 유래한다.
지금은 베트남 역시 '월(越)'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베트남/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인 남월(남비엣) 때문이다. 춘추시대의 월나라의 주요 민족과 같은 계통의 민족이 남월의 주요 민족이라 추측되며, 그런 이유로 황하 유역의 중국인들이 이들을 똑같이 '월'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또 한자 다른 이 '월(粤)'도 있는데 이것은 광둥성 일대를 가리키는 의미로 중화민국기부터 약칭을 사용하기 시작해 유지되고 있다.
산지가 비교적 많고 높이가 한국의 가야산 정도인 1,433m의 센샤링산이 있다. 동쪽은 바다에 접하는데, 항저우만이 있고 해안선이 복잡해 성 중에선 가장 섬이 많다. 인구와 면적 등의 규모는 남한 전체보다 약간 큰 수준이다.
저우산 군도의 주요 섬인 저우산섬은 중국에서 3번째로 큰 섬(하이난 섬, 충밍다오[2] 에 이은 3번째)이다. 양안 전체로는 타이완 섬이 있기 때문에 4번째로 큰 섬이다.
저장성의 항구인 닝보시와 저우산시 쪽은 인류 벼농사의 시작이었던 신석기시대 허무두(하모도) 문화의 발상지이다. 1970년대의 발굴작업으로 6~7천년전 인류 최초로 볍씨를 대량 재배한 것이 발견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이민족의 국가였던 월나라가 위치해 있었지만 기원전 333년 경에 멸망하고 초나라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후 진시황에 의해 통일되었지만 초한쟁패기와 전한기때 민월과 동월[3] 이 한나라의 제후국이기는 했어도 독립을 누렸지만 한무제 때 병합하였고, 이후에는 계속 중국계 왕조의 영역으로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장쑤성의 남부[4] 와 함께 저장성의 북부가 손오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오대십국시대에는 오월이 있었다. 그리고 송나라 때에는 남송의 중심지였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는 저장성 북부가 장쑤성 남부와 함께 경제ㆍ문화적 중심지였다. 장제스가 저장성 닝보(영파) 출신이며 현 대만 정치인 중 주리룬, 훙슈주도 외성인 2세로 아버지가 저장성 출신.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화민국 건국과 함께 여기서도 군벌들이 활동했다. 1919년 안휘군벌의 루융샹이 절강독군에 임명되면서 1924년까지 안휘군벌의 세력에 있었으나, 1924년 강절전쟁으로 인하여 루융샹이 축출되고 강소독군 치셰위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차 직봉전쟁 이후 제노전쟁이 벌어지자 돤치루이는 쑨촨팡을 절강독판에 임명하여 세력균형을 유지하려 했으나 새로운 강소독판 양위팅의 전횡으로 손봉전쟁이 일어나 봉천군벌이 장강 유역에서 축출되게 된다. 이후 쑨촨팡의 지배를 받았으나, 국민당의 1차 북벌 과정에서 중국 국민당에게 점령되어 국민당의 핵심적인 지역 중 하나가 된다. 이후 4.12 상하이 쿠데타 이후 난징 국민정부가 이곳에 수립되었으며, 중일전쟁 중 일본군에게 점령되어 왕징웨이 정권이 수립되었지만, 종전 이후 국민정부에 반환되었다.
1946년 2차 국공내전이 발발한 이후 장강을 도하한 인민해방군에 점령되어 현재까지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이다. 국부천대 이후에도 저장성 소속 다천(大陳) 군도가 현재의 진먼섬, 마쭈 열도처럼 중화민국의 영토로 남아있었는데, 앞의 두 섬과 달리 여기는 제1차 대만 해협 위기 당시 중화민국 측에서 방어에 한계를 느끼고 1955년에 철수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되고 중화민국 저장성 정부도 폐지되었다.
중국 현(2012~) 국가주석인 시진핑은 베이징에서 태어났지만 저장성 공산당 서기로 일한 경력이 있고, 여기서 정치 경력을 쌓았다. 다만 시진핑은 푸젠성에서 일한 경력이 더 길고 시진핑의 대만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 등은 푸젠성 시절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취저우에는 산둥성 취푸(曲阜)와 마찬가지로 공자의 사당인 문묘가 있다. 공자의 제사를 모시는 문묘 자체는 중국 전역에 위치해 있으나, 이 곳은 취푸처럼 공자의 직계 후예들이 제사를 지냈던 역사가 있다. 이는 정강의 변으로 송나라가 남송으로 쫓겨나면서, 당시 공자의 후예들도 취저우에 피난을 가서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를 남종이라고 부르는데, 북중국을 차지한 금나라도 취푸를 지킨 공자의 후손들을 북종으로 삼아서 공자의 후계를 잇도록 하면서 정통성이 나뉘게 되었다. 이 정통성 문제는 남북이 다시 재통일되고 난 원나라 시기 때 남종이 북종에 정통성을 양보하면서 해결하였다. 그러나 남종은 취저우에 있는 기존의 문묘에 그대로 남아서 공자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2021년에 사회주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인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공동 부유 시범구'로 지정했다. #
중국어의 방언인 오어가 사용된다.
||1. 개요[편집]
저장성은 중국의 성급 행정구역으로, 성도는 항저우시다. 약칭은 저(
중국 남동부에 위치하며, 북쪽에는 장쑤성, 동북으로 상하이시, 남쪽으로는 푸젠성과 접한다.[1] 지역을 지나는 운하를 중심으로 우전진 등 많은 수향 마을들이 있다. 해안 지역으로 예로부터 왜구들의 침입과 약탈에 시달리기도 했다. 오늘날에는 장쑤성, 상하이시와 함께 중국 강남(江南)지역의 대표적인 지역으로 발전하였으며, 전 알리바바 그룹 회장 마윈을 비롯해 부자가 많은 지역으로 손꼽힌다.
2. 명칭[편집]
- 한자 : 浙江省
- 한국 한자음: 절강성
- 한어병음 : Zhèjiāng Shěng
- 오어 : tseqkaan(T4)san(T2)
- 객가어 : Tset-kông-sén
- 한국어 : 저장성
저장이라는 이름은 이 지역을 흐르는 첸탕강의 옛 이름인 저장(浙江)에서 유래했다.
약칭인 저(
지금은 베트남 역시 '월(越)'을 사용하지만, 그것은 베트남/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국가인 남월(남비엣) 때문이다. 춘추시대의 월나라의 주요 민족과 같은 계통의 민족이 남월의 주요 민족이라 추측되며, 그런 이유로 황하 유역의 중국인들이 이들을 똑같이 '월'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또 한자 다른 이 '월(粤)'도 있는데 이것은 광둥성 일대를 가리키는 의미로 중화민국기부터 약칭을 사용하기 시작해 유지되고 있다.
3. 지형[편집]
산지가 비교적 많고 높이가 한국의 가야산 정도인 1,433m의 센샤링산이 있다. 동쪽은 바다에 접하는데, 항저우만이 있고 해안선이 복잡해 성 중에선 가장 섬이 많다. 인구와 면적 등의 규모는 남한 전체보다 약간 큰 수준이다.
저우산 군도의 주요 섬인 저우산섬은 중국에서 3번째로 큰 섬(하이난 섬, 충밍다오[2] 에 이은 3번째)이다. 양안 전체로는 타이완 섬이 있기 때문에 4번째로 큰 섬이다.
4. 역사[편집]
저장성의 항구인 닝보시와 저우산시 쪽은 인류 벼농사의 시작이었던 신석기시대 허무두(하모도) 문화의 발상지이다. 1970년대의 발굴작업으로 6~7천년전 인류 최초로 볍씨를 대량 재배한 것이 발견되었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이민족의 국가였던 월나라가 위치해 있었지만 기원전 333년 경에 멸망하고 초나라의 영역으로 들어왔다. 이후 진시황에 의해 통일되었지만 초한쟁패기와 전한기때 민월과 동월[3] 이 한나라의 제후국이기는 했어도 독립을 누렸지만 한무제 때 병합하였고, 이후에는 계속 중국계 왕조의 영역으로 있었다. 삼국시대에는 장쑤성의 남부[4] 와 함께 저장성의 북부가 손오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오대십국시대에는 오월이 있었다. 그리고 송나라 때에는 남송의 중심지였다. 명나라와 청나라 때는 저장성 북부가 장쑤성 남부와 함께 경제ㆍ문화적 중심지였다. 장제스가 저장성 닝보(영파) 출신이며 현 대만 정치인 중 주리룬, 훙슈주도 외성인 2세로 아버지가 저장성 출신.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무너지고 중화민국 건국과 함께 여기서도 군벌들이 활동했다. 1919년 안휘군벌의 루융샹이 절강독군에 임명되면서 1924년까지 안휘군벌의 세력에 있었으나, 1924년 강절전쟁으로 인하여 루융샹이 축출되고 강소독군 치셰위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2차 직봉전쟁 이후 제노전쟁이 벌어지자 돤치루이는 쑨촨팡을 절강독판에 임명하여 세력균형을 유지하려 했으나 새로운 강소독판 양위팅의 전횡으로 손봉전쟁이 일어나 봉천군벌이 장강 유역에서 축출되게 된다. 이후 쑨촨팡의 지배를 받았으나, 국민당의 1차 북벌 과정에서 중국 국민당에게 점령되어 국민당의 핵심적인 지역 중 하나가 된다. 이후 4.12 상하이 쿠데타 이후 난징 국민정부가 이곳에 수립되었으며, 중일전쟁 중 일본군에게 점령되어 왕징웨이 정권이 수립되었지만, 종전 이후 국민정부에 반환되었다.
1946년 2차 국공내전이 발발한 이후 장강을 도하한 인민해방군에 점령되어 현재까지도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이다. 국부천대 이후에도 저장성 소속 다천(大陳) 군도가 현재의 진먼섬, 마쭈 열도처럼 중화민국의 영토로 남아있었는데, 앞의 두 섬과 달리 여기는 제1차 대만 해협 위기 당시 중화민국 측에서 방어에 한계를 느끼고 1955년에 철수하여 중화인민공화국의 영토가 되고 중화민국 저장성 정부도 폐지되었다.
중국 현(2012~) 국가주석인 시진핑은 베이징에서 태어났지만 저장성 공산당 서기로 일한 경력이 있고, 여기서 정치 경력을 쌓았다. 다만 시진핑은 푸젠성에서 일한 경력이 더 길고 시진핑의 대만 문제에 대한 높은 관심 등은 푸젠성 시절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취저우에는 산둥성 취푸(曲阜)와 마찬가지로 공자의 사당인 문묘가 있다. 공자의 제사를 모시는 문묘 자체는 중국 전역에 위치해 있으나, 이 곳은 취푸처럼 공자의 직계 후예들이 제사를 지냈던 역사가 있다. 이는 정강의 변으로 송나라가 남송으로 쫓겨나면서, 당시 공자의 후예들도 취저우에 피난을 가서 정착했기 때문이다. 이를 남종이라고 부르는데, 북중국을 차지한 금나라도 취푸를 지킨 공자의 후손들을 북종으로 삼아서 공자의 후계를 잇도록 하면서 정통성이 나뉘게 되었다. 이 정통성 문제는 남북이 다시 재통일되고 난 원나라 시기 때 남종이 북종에 정통성을 양보하면서 해결하였다. 그러나 남종은 취저우에 있는 기존의 문묘에 그대로 남아서 공자의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2021년에 사회주의가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표인 평등 사회를 지향하는 '공동 부유 시범구'로 지정했다. #
5. 언어[편집]
중국어의 방언인 오어가 사용된다.
6. 행정 구역[편집]
7. 요리[편집]
자세한 내용은 절강 요리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기타[편집]
- 몇 안 되는 야생 은행나무가 서식(한다고 추정)하는 곳이다.
- 첸탕 강 하구는 조수간만의 차와 하구의 지형 요건이 맞물려서 사리 때 바닷물이 역류하여 큰 파도를 만들어낸다. 아마존강의 포로로카와 비슷한 이유이다. 그래서 이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관광객들이 강 하구에 많이 모여든다. 심할 때는 아예 파도가 제방까지 넘어서 사람들이 다치는 사례도 있다. YTN 보도 영상
- 진화시에 헝디엔이 있다. 항저우에는 서호가 있다. 5A급 관광지를 2번째로 많이 보유한 성이다.
- 닝보에는 짝퉁 롯데월드인 로먼 유 파크가 있다.
9. 역대 영도인[편집]
10. 출신인물[편집]
10.1. 고대[편집]
월나라의 출신인물들은 다 이곳 출신이다.
- 서시 중국 역사상 최고의 미인 중 하나로 꼽힌다. 예로부터 미인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 구천
- 손견으로 이어지는 오나라의 손씨 일가 대부분이 절강성 항저우시 푸양구 출신이다.
- 반림
10.2. 중세[편집]
10.3. 현대[편집]
- 김용: 자닝시 출신
- 장학성: 사오싱(紹興) 출신
- 루쉰: 사오싱 출신.[6]
- 마윈: 항저우 출신
- 천치메이: 우싱 출신
- 천궈푸: 우싱 출신
- 천리푸: 우싱 출신
- 장제스: 닝보 출신 1887년 10월생 중화민국 제 1~5대 총통
- 장샤오셴: 닝보 출신
- 장징궈: 닝보 출신 1910년 4월생 중화민국 6~8대 총통
- 저우언라이 :사오싱 출신.[7]
- 첸넝쉰: 가선현 출신.
- 첸쉐썬: 항저우 출신
- 야오원위안: 사오싱 출신.
- 왕국유: 하이닝(海宁) 출신
- 위정성: 사오싱 출신
- 링링: 항저우 출신
- 위화: 항저우 출신
- 커제: 리수이 출신
- 다이지타오
- 다이리
- 웡원하오: 근현 출신
- 호일천: 항저우 출신
- 쑨바오치: 항저우 출신
- 쑨양: 항저우 출신
- 후웨이더: 우싱 출신.
- 인루겅: 윈저우 출신.
- 왕정팅
- 왕커민
- 차이위안페이
- 정핑루: 난계 출신.
- 투유유: 닝보 출신
- 위다푸: 푸양(富陽) 출신
- 딩레이 닝보 출신
- 펑린(馮琳): 자싱시 출신. 1999년 10월생(25세). 2018년 중국 관영매체의 언론인을 양성하는 대학인 베이징 중국전매대학의 아나운서ㆍ앵커 전공에 차석으로 합격했고, 2021년 7월 1일의 중국공산당 100주년 기념식에 1,0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학생대표 4인 중 1명으로 선발되어 충성맹세를 선창했다. 또한 동년 9월 중국전매대학 입학식에서는 재학생 대표로 연단에 올라 “나는 천안문광장 근거리에서 시진핑 주석의 연설을 학습하고 경청할 수 있었고, 무한한 영광을 느꼈습니다.”, “나는 중국 인민의 아나운서, 중국공산당의 아나운서입니다. 나는 어려움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승리를 향해 행진하는 중국 인민의 목소리, 중국공산당의 정정당당한 진리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라고 연설했다. 펑린의 사진과 영상은 그녀의 미모로 인해 중국 네티즌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며 화제를 모았고, 그녀의 개인 웨이보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고 있다. 한편 이러한 현상은 중국인들, 특히 중국의 젊은이들 사이에서 부쩍 심해진 맹목적이고 배타적인 중화사상과 애국주의, 중국공산당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심을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10.3.1. 연예인[편집]
- 주결경 - 프로듀스 101, 아이오아이, 프리스틴 타이저우 출신[8]
- 호일천 - 항저우 출신
- 서몽결 - 진화 출신[9]
- 린스이 - SNH48 원저우 출신
- 셰싱양 - 항저우 출신
- 쉬자오 - 닝보 출신
- 쉬쟈치 - SNH48 타이저우 출신
- 쉬펑판 - INI의 멤버
- 우저한 - SNH48 자싱 출신
- 윈윈 - NCT, WayV 원저우 출신[10]
- 이런 - 프로듀스 48, EVERGLOW 항저우 출신
- 임윤 - 후저우 출신
- 저스틴 - NINE PERCENT 원저우 출신[11]
- 차이쉬쿤 - NINE PERCENT 원저우 출신
- 탕웨이 - 항저우 출신
- 황언루 - BEJ48 원저우 출신
- 리시칸 - 원저우시 출신
- 장약남 - 원저우시 출신
- 장강락 - 원저우시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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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푸젠성과 저장성 크기를 합치면 한반도 크기와 비슷해진다.[2] 상하이에 속한 섬으로 장강 하류에 있는 세계 최대의 삼각주 섬이다. 충밍다오는 상하이시 충밍현에서 2016년 상하이시 충밍구로 승격되었다.[3] 동구라고도 한다.[4] 난징(건업) 등[5] 대한민국 전라남도 여수시와 한자가 같다(丽는 麗의 간화자).[6] 난징으로 유학을 간 이후 그만두었고, 후에 도쿄를 거쳐 대학은 도호쿠대학에 다녔다.[7] 엄밀히 말하자면 저우언라이가 아니라 저우언라이의 할아버지의 고향이지만, 저우언라이는 자신의 진짜 고향을 이곳으로 생각했다. 자세한 것은 저우언라이 문서 참조.[8] 초등학교까지 타이저우에서 다니고, 중학교는 상하이,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다.[9] 출생지는 상하이시.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저장성 진화에서 오래 살았다고 한다.[10] 중고등학교 시절을 베이징에서 보냈다.[11]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항저우에서 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