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3효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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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효웅
호조 소운
사이토 도산
아마고 츠네히사[1]

1. 개요


戦国の三梟雄

1. 개요[편집]


효웅梟雄은 '잔인한 성격을 가진 영웅'이란 뜻으로, 전국 3효웅은 전국시대에 등장한 호조 소운, 사이토 도산, 아마고 츠네히사 3인을 일컫는 말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아마고 츠네히사 대신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들어가기도 한다.

호조 소운은 주가에서 빠져나와 주가의 주가를 박살내고 주가와 대등한 위치에 섰으며, 사이토 도산은 일개 승려에서 기름 장수, 무사를 거쳐 성씨를 몇번이나 갈아치우면서 세력을 구축, 끝내는 자신이 옹립했던 주군까지 쫓아내고 일국의 주인이 되었다. 아마고 츠네히사는 하극상을 일으키고 거성을 탈취, 쥬고쿠 일대를 모략과 정복으로 지배했다.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경우에는 주군 가문인 미요시 가문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제멋대로 휘둘렀으며, 쇼군 아시카가 요시테루를 시해하고, 다시 충성을 맹세했던 오다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드는 등, 모략과 배반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다.

효웅 소리를 듣는 이들 모두 효웅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잔인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2], 사이토 도산은 야망을 위해서 주군을 갈아치우고 자신의 성을 바꿔가며 미노의 명가들을 제압했으며 주군의 애첩을 빼앗음으로써 아들 요시타츠의 혈통에 두고두고 의문을 남기기도 했으며[3], 아마고 츠네히사는 공성 중 장남인 마사히사가 전사하자 성 하나를 농성 측을 포함하여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마츠나가 히사히데는 노부나가가 이에야스에게 그를 소개하면서 했던 말처럼 당대에도 쇼군 시해, 대불전 방화 등의 악행으로 유명했다. [4]

이들의 말년은 저마다 다르다. 호조 소운은 후호죠씨 100년 영화의 기틀을 마련하고 유능한 후계자까지 둔 상황에서 편안하게 말년 보내고 세상을 떠났지만, 사이토 도산은 미노를 장악하는 데까지는 좋았지만 결국 자신의 아들인 사이토 요시타츠에게 암살되었고, 아마고 츠네히사는 일단 그의 당대에는 문제가 거의 없었지만 그의 말년부터 아마고 가문에 조금씩 그늘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아마고 츠네히사 대신 거론되는 마츠나가 히사히데의 경우도 최후는 노부나가에게 대항하다가 끔살로 마감했으니 좋은 마무리는 아니었다. 어쩌면 그다운 마지막이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 이런 평가를 받아온 인물들도 시간이 지나며 연구, 재평가를 받게 되며 그 인상들이 많이 달라지게 되었다. 소운은 바쿠후의 명령을 받아 영지를 점령했던 것으로 추측되며 도산도 그의 악행은 대부분 아버지대에 일어났던 일들로 추측된다. 특히 히사히데의 경우는 그간 알려졌던 악행과 기행들이 전부 거짓으로 판명났고 주군 미요시 나가요시가 재평가를 받게 됨에 따라 히사히데도 단순히 "당대를 깽판만 치며 살아간 효웅"이라는 일반적인 평가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이들 외에도 센고쿠 시대의 대표적 효웅으로는 우키타 나오이에, 마츠나가 히사히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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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우에 따라서는 아마고 츠네히사 대신 마츠나가 히사히데가 들어가기도 한다.[2] 다만, 소운의 경우엔 호리코에 코보 아시카가 챠챠마루를 멸망시킨 것 때문에 효웅 소리를 듣는데 알려진 것과 달리 소운은 챠챠마루의 부하가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 연구에서는 쇼군의 명령을 받아 멸망시킨 것으로 보기 때문에...[3] 시바 료타로의 소설 등을 통해 도산이 주군의 아들을 자신의 아들 요시타츠로 양육하다가 주군의 아들을 옹립한다는 핑계로 주군을 배반했다는 이야기가 유명하지만, 도산이 그랬다면 미노를 탈취한 뒤 요시타츠를 그대로 내버려뒀을 리도 없고, 도산을 살해한 뒤 요시타츠의 행적도 미묘하기 때문에, 요시타츠가 도산의 아들이 아니었다는 설은 에도 시대 군기물의 창작으로 보는 견해가 최근에는 더 유력하다.[4] 사실 히사히데는 누명을 쓴게 많다. 단적으로 에이로쿠의 변은 히사히데가 벌인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