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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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청
全羅南道廳 | Jeollanam-do Provincial Government

파일:jeonnam-2010-5-1.jpg


슬로건
세계로 웅비하는 대도약! 전남 행복시대
주소
전라남도 무안군 삼향읍 오룡길 1 (남악리)
국가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관할 구역
전라남도
직원 수
1,261명[1]
예산
11조 8,098억 원 (2023년)
도지사

파일:더불어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김영록 (재선)[2]
부지사
명창환 (행정)
박창환 (정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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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연혁
3. 조직
3.1. 휘하 시/군청
3.2. 역대 도지사
3.3. 산하기관
3.3.1. 지방공기업
3.3.2. 지방출연기관
5. 여담
6. 관련 문서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전라남도의 행정을 총괄하는 기관이자 그 기관이 입주한 건물.

2005년 10월 17일 목포시무안군에 걸쳐 개발된 남악신도시[3]로 이전과 동시에 업무가 시작되었다. 위의 사진에서 우측에 있는 둥근 건물은 전남도청을 견제하는 전라남도의회 건물이며, 전남도의회뿐 아니라 전남재난안전대책본부도 도청과 함께 있다. 그야말로 전라남도 행정의 중심. 도청 청사 앞쪽으로는 만남의 광장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 전라남도청 내에 위치했던 전남소방본부는 2020년 10월에 장흥군 소재의 신 청사로 이전했다.

여담으로 도봉구청과 외형이 비슷하다.[4]


2. 연혁[편집]


파일:전남도청 1896.jpg
1890년대의 전남도청

1895년 야심차게 추진했던 23부제가 여러 문제점을 안고 기존의 8도를 보완한 13도제가 시행 결과 1896년 기존의 전라도가 남·북으로 분도되었고 이 결과 전라남도가 탄생하게 되었다. 이전까지의 도청(도관찰부)은 전도의 "라"를 맡을 정도로 조선시대 당시에는 호남의 중심도시 포지션을 가지던 나주에 위치하였다. 그러나 도제로 원복할 때 광주로 이전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도청을 품게 된 광주가 호남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오르게 된다.

이 때 당시의 청사는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쓰이는 광산동 청사 맞은 편 전일빌딩 자리에 있던 광주관아 건물을 사용하였으나, 한일합방을 거치며 대한제국 시절 지금의 세무서격의 사무를 보던 광주재무감독국이 폐지됨에 따라 전남도청 또한 주인을 잃고 비어버리게 된 이 신식 목조건물에 입주하게 되었다.

파일:전남도청1910.jpg
1910년대의 전남도청

참고로 이 건물은 현재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자리, 즉 광산동에 위치하였다. 이때부터 전남도청의 광산동 시대가 개막하게 되었다.

여담으로, 본 문단에 첨부된 1896년 전남도청의 사진은 사실 전남도청이 광산동으로 이전한 후, 전남도경찰부가 사용할 당시인 1910년대에 촬영된 사진이다.

파일:13_1_96161.jpg
1930년대의 전남도청

1930년대가 되면서 전남도청 역시 이 당시 경성부청, 부산부청, 인천부청 등이 겪던 청사 협소 문제를 겪게 되었고, 이에 1910년대부터 사용하던 구 재무감독국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새로운 청사를 짓게 되었는데, 이 청사가 바로 광주시민 및 전남도민들에게 구 도청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를 아시아문화전당 건물이다.

흔히 구 전남도청은 5.18 관련 영화나 도청 이전 이전의 사진자료, 직접 봤던 시민·도민들의 기억 속에서는 하얀 건물이고, 현재의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또한 흰색이나 신축 당시에는 적벽돌과 화강암이 조화를 이루는 외관이였으며, 2층의 본관 건물과 이전 직전까지 민원실로 쓰이던 도청 회의실 건물만이 있었다. 흰색 도료로 칠해진 것은 해방 후 미군정 시기였으며, 본관 3층 증축과 별관 건설은 1975년의 일이였다. 여담으로 미군정 시기 흰색 페인트칠을 한 것이 일각에선 백악관을 흉내(...)내려 한 것이란 소문이 돌기도 하나 그것보단 지어진지 20년이 다 되어가며 건물노화로 곳곳에서 벽돌가루가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였다는 쪽이 더 설득력이 있다.

파일:15_1_106732.jpg
1940년대의 전남도청

1940년대 당시에는 전남도청의 앞부분이 지금과는 달랐는데, 아직 금남로[5] 확장공사가 이루어지기 전이라 도청 앞 분수대와 로터리가 아직 없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한편, 이 사진에서 유독 눈에 띄는 고풍스러운 건물(맨 앞에 위치한 큰 기와집)은 한때 전라남도지사의 관사로 쓰이기도 했던 무덕전이다. 참고로, 무덕전 바로 뒤에 있는 2층 짜리 하얀 건물이 바로 아래 사진의 좌측에 위치한 건물과 일치하다. 즉, 다시말해 옛 무덕전 자리에 현재는 분수대와 원형교차로가 들어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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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의 전남도청

이후 1950년대1960년대를 거치고,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금남로 확장 및 도청 증축공사를 모두 끝내고, 이전의 모습과는 달리 전남도청 주변이 완전히 도시화 되었다.[6] 때문에 이 당시 금남로 확장공사와 도청 증축의 성공적인 마무리를 자축하는 행사가 1975년에 열리기도 했다.

그러나 도청 증축으로부터 5년 후인 1980년, 전라남도 뿐 아니라 대한민국 역사에 중요한 장소로 떠오르게 되는데, 바로 5.18 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비무장 시민을 향해 집단발포를 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로 말미암아 광주 전역이 시민군과 계엄군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 되었고, 그 중에서도 바로 이 도청이 5월 27일 계엄군에게 최종적으로 진압 될 당시까지 시민군이 마지막 거점으로 삼아 최후의 저항을 펼치던 곳이다. 이 때문에 현재도 곳곳에 탄흔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러한 배경으로 남악리 이전 후에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입주하는 과정에서 이 중요한 사적을 일부 헐겠다고 했을때 관련 단체들의 반발이 매우 심했으나, 원만히 해결 된 후 리모델링을 거쳐 현재 국립아시아문화전당으로 쓰이고 있다. 이후의 역사는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문서에서 확인 가능하다.

이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1993년 5월 13일 김영삼 대통령의 담화문인 "5·18의 연장선에 선 문민정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담화문"에서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의 의사에 따라 현재 광주 시내에 있는 전라남도청을 전남도 관내로 이전하고, 당시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었던 현 도청 위치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기념탑을 세우는 방안을 적극 검토, 지원할 것입니다."라고 말을 해 본격적으로 이전 논의가 시작되었다. 이후 노무현 정부에서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추진을 본격화했고, 전라남도청도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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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대의 전남도청

이후 2005년 10월 11일, 1930년대부터 쓰인 전남도청을 보존하고, 지금 현재의 전남도청으로 청사를 이전하였다.

도청 청사가 전라남도의 서쪽 끝인 무안군에 위치해 있어서 여수, 순천, 광양을 비롯한 동부권 주민들이 방문하기 불편하다는 민원이 계속해서 나왔었다. 이를 반영해서 제2청사 기능을 하는 동부권 통합청사를 순천시에 건립하기로 하였다. 위치는 순천시 해룡면 신대지구이며, 2021년 10월 착공해서 2023년 개관 예정이다.#


3. 조직[편집]


해당 홈페이지로.


3.1. 휘하 시/군청[편집]






3.2. 역대 도지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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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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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이남규
제2대
박철수
제3대
이을식
제4대
추규영
제5대
민병기
제6대
이기세
제7대
황성수
제8대
이하영
제9대
민영남
제10대
최의남
제11대
민영남
제12대
송호림
제13대
김용관
제14대
신용우
제15대
김보현
제16대
김재식
제17대
허련
제18대
고건
제19대
장형태
제20대
김종호
제21대
김창식
제22대
전석홍
제23대
문창수
제24대
송언종
제25대
최인기
제26대
백형조
제27대
이효계
제28대
이균범
제29대
구용상
제30대
조규하
제31-32대
허경만
제33대
박태영
제34-36대
박준영
제37대
이낙연
제38대
김영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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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산하기관[편집]





3.3.1. 지방공기업[편집]



3.3.2. 지방출연기관[편집]


  • 광주전남연구원
  • 한국학호남진흥원
  • 전라남도순천의료원
  • 전라남도강진의료원
  • 전남신용보증재단
  • 전남바이오산업진흥원
  • 전남테크노파크
  • 전라남도중소기업진흥원
  • 전남정보문화산업진흥원
  • 명량대첩기념사업회
  • 전남여성가족재단
  • 전남인재평생교육진흥원
  • 전라남도청소년미래재단
  • 전라남도문화재단
  • 녹색에너지연구원
  • 포뮬러원국제자동차경주대회조직위원회
  • 전라남도국제농업박람회
  • 전라남도환경산업진흥원
  • 전라남도사회서비스원
  • 전라남도세계친환경디자인박람회조직위원회
  • 남도음식문화큰잔치
  • 남도장학회
  • 전라남도관광재단

4. 대중교통[편집]


청사를 이전한 지 20년 가까이 되었으나 대중교통이 상당히 불편하다. 남악신도시 내 시내버스 이용은 불편하지 않으나, 시내버스 노선이 죄다 아파트 쪽으로만 가는지라 도청 바로 앞에 정차하는 버스 노선은 두 개 뿐이다. 외지에서 오는 경우 아래와 같은 방법을 통해 올 수 있다.

1. 남악시외버스정류장 : 전남 13개 시/군에서 남악경유 목포/진도행 버스를 이용하여 도청 앞에서 하차 가능하다.
2. 목포종합버스터미널 : 목포 버스 60번을 이용하여 도청 맞은 편 시외버스 승차장에서 하차 가능하다.
3. 목포역 : 목포 버스 1번을 이용하여 목포우체국에서 환승하여 목포 버스 60번 이용 가능하다.


4.1. 버스[편집]


전남도청(43030)
도청사거리 방면
목포시 시내버스
간선버스

[1] 국가직 공무원 제외[2] 민선 7·8[3] 정확히는 남악신도시 밖에 있다.(...) 도청이전부지 개발과 동시에 배후지역 개발을 위해 남악신도시를 기획한 것일 뿐이지 도청을 이전하기 위해서 개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류상으로만 따로 되었을 뿐 실제로는 둘 사이의 구분을 전혀 느낄 수 없다. 굳이 엄밀히 따지자면 도청이 위치한 곳은 무안군 삼향읍이다.[4] 무안군과 도봉구는 자매결연 관계. 참고로 도봉구청은 2003년 11월 17일에 이전과 동시에 업무가 시작됐다.[5] 위 사진의 우측 하단에 위치한 하얀 도로가 바로 금남로이다.[6] 1940년대의 전남도청 모습과 1980년대의 전남도청 모습이 다른 것도 1975년에 일부 증축을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975년도에 실시된 증축공사로 본관만 있던 전남도청에 별관도 새로 생겼다. 위 사진의 좌측이 본관, 우측이 1975년에 지은 별관이다.
전남도청(43056)
전남교육청 방면
목포시 시내버스
간선버스

지선버스




4.2. 철도[편집]



청사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임성리역이 있으나 무궁화호 하루 왕복 1.5회에 그치고 있어서 실질적으로는 목포역을 이용해야 한다. 임성리역에서는 전라남도청으로 바로 오는 대중교통편마저 없다.


4.3. 시외버스[편집]


행선지만 놓고 보면 전라남도 13개 시/군에서 남악까지 바로 오는 시외버스 편이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하루 1~2회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자동차로 35분이면 도달하는 함평읍이나 영암읍의 경우 읍내에 위치한 터미널에는 직통편이 없고 함평 학교면 함사거리와 영암 학산면 독천터미널에서 시외버스 이용이 가능하나 이마저도 하루 3~4회에 불과해서 여러모로 이용이 불편하다. 순천, 여수, 광양, 진도를 제외하면 목포종합버스터미널을 이용하는 게 훨씬 낫기에 아래 노선은 남악으로 바로 가는 버스도 있다 정도로 참고해 두면 좋다.

행선지
경유지
운행회사
비고
서울
무안
금호고속

부산
삼호, 광양, 동광양

광주(직통)
광주송정역, 우산동
고속도로
광주(직행)
청계, 무안, 함사거리, 다시, 나주, 나주혁신도시, 진월동

진도
삼호, 우수영(해남), 녹진(진도)

완도
삼호, 독천, 해남, 남창, 원동(완도)

여수(직통)
삼호, 순천, 여천
금호고속
광우고속
고속도로
여수(직행)
삼호, 독천, 강진, 장흥/배산, 보성/벌교, 순천, 여천



5. 여담[편집]


파일:external/i.huffpost.com/n-FIRE-large570.jpg

  • 구 도청의 경우 5.18 당시 격렬한 전투현장이였던 탓에 곳곳에 탄흔이 남아있다. 또 도청앞 분수대도 도청 건물 못지않게 민주화의 아이콘과도 같다. 때문에 이 도청 앞 광장은 서울특별시의 광화문광장이나 시청앞 광장과 같은 위치로 앞서 언급한 광장들과 마찬가지로 광주광역시에서 현재에도 대규모 집회가 자주 열리는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위 사진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당시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는 망언에 분노한 시위대가 전국 곳곳에서 횃불 시위를 열었으며 광주에서는 구 도청 분수대에서 열렸는데 그 때 찍힌 사진이다.

  • 1993년 5월 13일 김영삼 대통령의 담화문인 "5·18의 연장선에 선 문민정부,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관련 담화문"에서 "광주 시민과 전남 도민의 의사에 따라 현재 광주 시내에 있는 전라남도청을 전남도 관내로 이전하고, 당시 민주화 운동의 현장이었던 현 도청 위치에 5·18 광주 민주화 운동 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기념탑을 세우는 방안을 적극 검토, 지원할 것입니다."라고 말을 했는데 그것이 현재의 결과물이다. 담화 이후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를 거치면서 전남도청은 전남 무안으로 이전하고 전남도청 자리엔 노무현 대통령의 공약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자리 잡았다. 그리고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맨 앞 도청 건물은 민주평화교류원이 됐다.


  • 도청의 행정동이 23층인 이유는, 전라남도를 포함하여 22개의 시군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6. 관련 문서[편집]




7.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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