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정부/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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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민주정의당
정책 및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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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가
긍정적 평가 · 부정적 평가
타임라인
1980년
12.12 군사반란 · 서울의 봄 · 사북사건 · 5.17 내란 · 5.18 민주화운동 · 전두환의 김대중 내란음모 조작 사건 · 동명목재 공중분해 사건 · 미스유니버스대회 폭파음모사건 · 사회정화운동 실시 · 공직자 숙정계획 원풍모방 노조사수투쟁 · 노동계 정화조치 계엄포고 제13호(삼청교육대) · 방송자율정화방안 발표 · 중화학공업 1차 투자조정 조치 · 만화정화방안 발표 · 중화학공업 2차 투자조정 조치 · 10.27 법난 · 이윤상 유괴 살인 사건 · 언론통폐합 · 폭력성 만화영화 금지 정책 · 광주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 부림 사건 · 서울 지하철 2호선 개통 · 대청댐 준공
198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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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교복자율화 조치· 야간통행금지 해제 ·민족화합민주통일방안 발표 · 한국콘트롤데이타 노동쟁의 · 제주 C-123 추락사고 · 부산 미국문화원 방화 사건 · 한국프로야구 개막 · 의령 총기난사 사건 · 장영자-이철희 금융사기 사건· 제1차 일본 역사교과서 왜곡 파동 · 정부 제2청사 개청 · 녹화사업 · 오송회 사건
198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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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부산 대아호텔 화재사고 · 대통령배 전국남녀배구대회 개막 · 정치활동 규제자 2차 해금 · 청계피복 노조 합법화 투쟁 · 민중문화운동협의회 결성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방한 · 대우어패럴 노조 탄압 · 정래혁 투서 사건 · 88올림픽고속도로 개통 · 민중민주운동협의회 결성 · 목동주민 철거 반대투쟁 · 전두환 방일 반대투쟁 · 1984년 한강 대홍수 · 함평 무안 농민대회 · 청량리경찰서 여대생 성추행 사건 · 전두환 대통령 방일 · 서울대 민간인 감금 폭행 고문 사건 · 서울올림픽주경기장 개장 · 민주화추진위원회 결성 · 박영두 의문사 사건 · 민주통일국민회의 결성 · 망원동 수재 사건 · 학생의 날 부활 · 민정당 중앙당사 점거농성 · 전국학생총연맹 결성 · 판문점 총격사건 · 박종만 노동자 분신 · 자유실천문인협의회 재창립 · 민주언론운동협의회 결성
198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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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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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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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전두환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는 자국민에 대한 학살을 자행한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로 볼 수 있다.[1] 한국의 역사 교과서에서도 민주주의 체제에서 절대로 따르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로 그려져 있으며, 정보기관의 주도 아래 군사 독재 정권으로 억압되고 통제된 사회 분위기를 조성했던 박정희 정권도 아직도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하여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존재하지만, 전두환은 본인이 자처했던 보수 세력에서조차도 공을 인정받는 수준이 미약하다. 물론 정말 제정신이 아닌 극우주의자 중에서는 진심으로 좋아하는 사람이 더러 있지만, 단순히 호남 지역에 대한 반감만 가지고 옹호하거나 80년대의 고도성장에 대한 향수 등의 영향이 클 뿐, 대통령으로서의 전두환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정말 드물다.[2] 대한민국의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 전두환을 찬양하는 건 이완용 등 매국 부일파들, 하판락, 김태석, 민덕기일제 특고경 고문기술자들, 김일성·김정일·김정은북한 백두혈통[3] 정치인들을 찬양하는 것과 별다를 바가 없으며, 서양으로 치자면 아돌프 히틀러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 실제로 공식석상이나 사석에서 전두환을 공개적으로 옹호하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간 십자포화를 각오해야 할 정도.[4]

이런 인식이 만들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국민에게 선출되지도 않았으면서 민주 국가의 수장인 대통령을 참칭하고, 민간인 학살을 저지른 범죄자 겸 독재자이기 때문이다. 하물며 국민 상대로 사기 친 이승만이나 군사 독재자인 박정희도 행보에 크게 비판을 받았을지언정 최소한 표면적으로나마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당선되었고,[5] 적어도 상당 부분의 임기 동안은 겉보기로라도 민주주의를 내세우기는 했다. 하지만 전두환은 과정으로 보나[6] 결과로 보나[7] 정통성과 정당성 측면에서 대한민국 헌정사상 가장 반민주적인 대통령이다.[8]

이에 더해 전두환 정부는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잡고 서울의 봄5.18 민주화운동 등의 진압 과정 중 시민 학살을 저질렀으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 시절 삼청교육대를 운영하면서 셀 수 없이 많은 고문과 인권 유린을 자행했다. 1987년에는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여 직선제 개헌을 끝까지 거부하고[9], 6월 항쟁 및 6.29 선언 후 쫓겨난 후에도 자신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으며 과거 비자금에 대한 추징금 납부 거부, 아들이나 친동생의(후자는 새마을의 이미지를 실추시킨 주범이다.) 탈세 문제, 손녀 전수현의 한국 비하 발언 등으로 대다수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최악의 정부로 인식되고 있다. 당장 동시대 군사내란의 주범이자 하나회의 일원으로 같이 법원에 섰던 노태우가 12.12 군사 반란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신군부의 유혈진압 개입 등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죄하였으며 막대한 추징금을 완납한 것과도 무척 대비되는 부분이다.

물론 전두환 정부 시절의 정책들 중에 긍정적인 부분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김재익 경제수석을 중용하여 3저 호황 아래 고도성장을 이룩했으며, 1988 서울 올림픽을 유치하여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 전두환 정부 산하에서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공적들도 분명히 존재하기는 한다. 전두환/긍정적 평가의 내용은 대부분 이런 맥락에서 서술된 것. 문제는 어차피 이러한 호황은 개발도상국의 반열에 올라 기반이 어느 정도 잡힌 상태에서 이루어낸 것이고 이런 몇 없는 긍정적인 점들조차 아예 묵살당할 정도로, 아돌프 히틀러 수준은 아니더라도 학살을 통해 정권을 정립시킨 전두환 정부는 시작부터 반인권, 반민주적 행태가 극악에 치달았다는 것이다. 당장 박정희도 전두환과 마찬가지로 유신 독재 시절 독재를 자행하였지만, 전두환은 박정희 정권 내내 하나회 유지는 물론 정권을 잡기 위하여 학살부터 시작하면서 이미 인식이 지저분해질대로 지저분해졌다. 당장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그의 장례식에 5공화국 내란주범이었던 하나회의 살아남은 주축 세력, 주류에서 밀려나거나 은퇴한, 속된 말로 퇴물인 정치인들만이 그를 조문했으며 공식적으로 주요언론은 물론이고 어떤 정당도 추모의사나 성명을 밝히지 않았다. 단지 어찌되었던 국가의 대통령이었으니 조문의사는 각자 개인의 역량에 맡긴다 정도로 표현한 정도였다.


2. 긍정적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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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부정적 평가[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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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론 김재익을 등용해서 대한민국 경제의 리즈 시절을 이끌었고 1988 서울올림픽을 유치시키는 등 긍정적으로 볼만한 요소들이 있기는 하나 이러한 공을 깡그리 0로 만들고도 남을 정도로 과오가 크다.[2] 이 점이 박정희와의 큰 차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박정희도 독재자이긴 했지만 박정희는 최소한 일단 국민 투표에 의해 뽑힌 대통령이기도 하고, 세계 최하위급의 가난한 나라에서 국가 인프라 구축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경제를 성장시켰다는 점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심지어 이 공은 노무현, 유시민, 문재인, 이재명 같은 진보 성향 인물들도 명백히 박정희 정권의 업적이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박정희 또한 음지에서 숙청을 일삼거나 자신의 정치적 숙적들과 문화계 예술계 인사들을 중정을 이용해 탄압했을지언정 최소한 전두환처럼 아예 대놓고 자국민을 무자비하게 대량학살하는 만행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또한 5.16 군사정변 역시 당시 장면 총리와 윤보선 대통령의 정치 분쟁에 환멸을 느낀 일부 시민들로부터 환영을 받기도 했다. 또한 그의 딸이 아비의 부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보수정당의 대표를 거쳐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로 그 경제적 공에 의한 박정희의 후광이 있었다는 점도 부정하기 힘들다. 만약 박정희가 권력욕을 버리고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은 뒤 순순히 정권을 포기했다면 독재자라는 타이틀이 없어지거나 희석/미화됨으로써 그의 과를 고려하더라도 평가가 지금과 상당부분 달라졌을 것이고, 박정희 본인이 암살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3] 당연히 백두혈통이라 한 건 새빨간 거짓말이다.[4] 실제로 국민의힘 당시 대선후보인 윤석열 前 검찰총장이 후보 경선시절, 공개적인 자리에서 전두환을 옹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가 여권에서는 물론, 같은 진영인 에서마저 십자포화를 당했으니 이 정도면 말 다했다.[5] 이승만은 3번의 당선 중 처음 1번은 간선제, 다음 2번은 직선제로 정당하게 뽑혔고 마지막은 부정이 많았던 직선제였기에 취소까지 됐다. 박정희도 5번의 당선 중 앞의 3번은 직선제로 뽑혔으며 나머지 2번은 비민주적인 간선제를 이용해서 뽑혔다. 전두환은 2번 당선되었는데 둘 다 비민주적인 간선제였다.[6] 차례의 쿠데타를 거쳐 대통령을 겁박하여 하야시키고, 비민주선거를 통해 당선[7] 자신에게 반대하는 다수의 국민과 심지어 아무 죄조차 없는 일반인을 고문하고 인권유린을 일삼는가 하면, 5.18로 대표되는 자국민에 대한 학살까지 자행했다. 5.16은 그나마 사망자가 없고 교전세력은 같은 군인들이었으며 나름의 명분도 존재했다지만 5.18은 발생과 진압과정에서 어떤 명분도 없었으며 피로 얼룩진 무자비한 학살이었다. 결국 가장 큰 책임은 전두환에게 있다.[8] 이 점에서 자신의 오랜 벗이자 후임자였던 노태우와도 비교된다. 전두환은 쿠데타로 실권을 장악하고 1981년부터 1985년 2.12 총선 이전까지 야당 정치인들에게 가택연금을 가한 데다 간접선거로 대통령이 된 반면, 노태우는 야권 대선주자들과 정당하게 대결하여 국민의 직접 선거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민주적인 정통성과 정당성이 보장된 존재다. 김옥숙이순자에게 이를 빌미삼아서 너희 남편체육관에서 뽑힌 독재자, 우리 남편국민의 직접선거로 당선된 대통령이라는 식으로 대놓고 까며 이순자에게 빅엿을 선사한 적이 있었다.[9] 후에 이 조치는 6월 항쟁을 점화하는 역할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