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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傳御刀

1. 개요
2. 특성
3. 대중매체
4. 여담


1. 개요[편집]


고려 말~조선 초기의 도검. 창덕궁에 소장되었던 검이다. 전어도(傳御刀)라는 명칭은 '어물(御物: 임금이 사용하는 물건)이라고 전(傳)해지는 칼(刀)'이란 뜻으로, 이름처럼 조선 왕의 칼이라고 추정한다. 창덕궁에 있었으나 현재는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져서 소장 중이다. 전시품목이 종종 바뀌어서 전시를 안할 때도 많다.

2. 특성[편집]


한국 도검의 특징적인 양식을 지녀 역사성과 학술성, 예술성을 인정받는다.

길이는 무려 147cm에 달하고 칼날인 도신은 92.0cm, 자루 길이는 55cm이다. 칼집 길이도 103cm에 이르는 거대한 장검이다. 손잡이는 상어 가죽으로 감싸고 머리에는 용의 머리를 조각했는데, 채색한 뒤 붉은색 매듭 끈을 드리워 장식했다. 검의 끝부분이 역날검처럼 생겨 오해하기 쉽지만, 역날검은 아니며 끝부분 만이 양날인 의사도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크기를 볼 때 실전용이 아닌 지휘도였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는데[1] 오오타치쌍수도 같은 무기를 보면 꼭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제식장비가 아닌 개인의 장비이기에 날 형태가 괴상하다는 것도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파일:발해전어도.jpg

칼의 모양이 워낙 특이하다 보니 전어도가 사실은 후세에 만들어진 창작품이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러시아 체르냐찌노 발해 고분에서 크기나 형태가 전어도와 상당히 유사한 철검이 발굴됨에 따라 이러한 주장은 쏙 들어가게 되었다. 두 검의 관계에 대해서 이런저런 추측이 나오는 중.

또한 일본 정창원에서 보관 중인 당태도[2] 유물 중에 칼끝의 모양은 다르지만, 전어도처럼 끝부분만 양날인 유물이 존재한다.[3]


3. 대중매체[편집]


  • 2020년 개봉한 한국영화 도굴에서 이 전어도가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영화에서는 선릉 안에 잠들어 있는 것으로 나온다.

  • 용의 눈물에서는 김무생이 분하는 이성계가 가지고 나온다. 약간의 생김새 차이는 있지만 거대한 크기, 칼끝부분의 모양, 긴 자루, 자루 끝 용머리 장식까지 알아볼 수 있는 특징이 잘 구현 되어 있다. 큰 키인 김무생 배우가 칼로 땅을 짚고 서있을 때 높이가 명치 부근까지 올라오는 것을 보면 상당히 크게 제작되어 있다. 다른 등장인물들이 사용하는 칼들은 조선식 환도, 고려식 환두대도(외날직도), 중국식 양날 직도 등이라 우연히 비슷한 칼을 사용했다고 볼 수 없이, 전어도를 잘 알고 이성계의 칼로 등장시켰다고 볼 수 있다. 첫화의 위화도회군 부분에서 지휘할 때 뽑아드는 장면이 있는데, 날 방향을 반대로 잡는다.(...) 칼의 생김새가 특이한 데다, 촬영용 소품은 날이 없기 때문에 헷갈린 듯... 다만 크기가 너무 커 허리춤에 패용하고 다니기 거추장스러운지 무장하고 말을 탈 때 빼고는 직접 패용하고 돌아다니는 장면은 드물며 지휘 막사 등에 세워둔걸 꺼내는 장면이 많다.

위화도 회군 이후엔 이성계가 갑옷 입고 무장하고 등장하는 장면이 거의 없어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상왕이 된 이후 함흥본궁으로 이동할 때 등장. 이 때는 직접 들고다니지 않고, 내관처럼 보이는 수행원이 들고 따라다닌다.

이후 조사의의 난이 일어난 후 조사의가 이성계의 지지의 증거로 하사받아 사용한다. 가끔 지휘할 때 꺼내서 휘두르는 정도. 막판에 전황이 몰려 사로잡힐 위기에 처하자 자결용으로 사용하려 하지만 그 전에 화살을 맞고 실패. 다만 자결시도 때는 초반의 이성계와 달리 날 방향이 제대로 되어있다.

  • 그 외 이성계가 등장하는 사극중에서는 특별히 부각되어 등장하는 장면은 없다. 전투를 준비하며 미리 뽑아둔다면 모를까 패용하거나 들고 있다가 급작스럽게 칼을 뽑아 한손으로 휘두르는 연기를 하기엔 지나치게 큰게 단점으로 작용하는듯. 다만 육룡이 나르샤 등 몇몇 사극들에서 이성계가 사용하는 칼을 전어도와 비슷하게 자루 끝에 용머리 장식이 있는 환도 형태로 등장시키는 편.


4. 여담[편집]


  • 이 검에 대해 이방원태조 이성계에게 선물한 검이라는 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며 전혀 근거가 없다는 것이 드러났다.기사 이성계가 사용하던 검은 용두검이며 1950년에 도난당했다. 기사의 고궁박물관 관계자 말에 따르면 "전어도는 어떤 왕이 쓴 것인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도 알 수 없다"고 한다. 현재 국립고궁발물관 소장품 설명에서도 간략하게 "왕이 사용한 것이라 전해지는 칼이다. 칼자루 끝을 용머리 형태로 조각하여 채색하였으며, 용의 입에 고리를 달고 유소를 매었다."라고만 쓰여있을 뿐이다. 90년대에 방영한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이성계의 검으로 등장한 것을 보면 90년대 당시에도 이게 이성계의 검이 아닌가 하는 일각의 인식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되나, 역시 정확한 것은 불명.

  • 2006년 네이버 블로그에서 전어도에 대해 <무학대사의 스승 나옹대사가 봐 둔 묫자리에서 나온 것을 이자춘이 이성계에서 넘겨주었고, 훗날 이성계가 우왕을 폐할 때 다른 칼로는 죽일 수 없자 자신의 전어도로 목을 베었고 우왕이 차고 있던 사진참사검이 조선 왕실에 저주를 내려서 이를 막기 위해 전어도를 사진검 옆에 꽂아 3일 동안 싸워서 전어도는 박살났고, 이 저주를 막기 위해 조선 왕실이 사인검을 주기적으로 만들었다>는 야사가 있다고 소개한 적이 있다.(커뮤니티에 남아있는 원문) 다만, 해당 야사를 소개한 블로그는 폐쇄되어 원문을 볼 수 없고 해당 전설에 대해서도 관련된 자료를 찾을 수 없기 때문에 어디서 수집한 것인지 출처를 알 수 없어서 현대에 들어 창작된 소설로 보는 것이 중론이다. 원문에 묘사되는 우왕의 비늘 이야기는 이중환택리지에서 인용한 것으로 보이지만, 혈통에 저주를 남긴다거나 검끼리 울어서 한 쪽이 깨진다거나 하는 서술은 구전보다는 현대 장르 소설에서 주로 묘사되는 클리셰이기도 하고 전설로 보기에는 다소 구체적인 감이 있다. 사실 성계육이나 조랭이떡처럼 이성계와 관련된 실체 불명의 전설은 여럿 존재하기도 하고, 비슷하게 두억시니 문서에 나와 있는 전설도 커뮤니티에서 창작되어 야사처럼 소개되었면서 퍼져나갔듯이 이 전어도 이야기도 인터넷 문화를 통해 창작 전설로 이야기가 덧붙여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좋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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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현대에 검술을 하는 이들은 대다수 1m 정도 길이의 카타나에만 익숙해져 있기에 자신들이 다루기 불편할만한 길이의 도검만 보면 무조건 의장용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2] 당나라 시절의 무기로 일본도의 외부 장식에 영향을 주었다.[3] 파일:정창원_당태도.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