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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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田榮
(? ~ 기원전 205년)

진나라 말기의 군벌이자, 제나라의 왕족. 제왕 전광(田廣)의 아버지이자, 전담(田儋)의 사촌 동생이다.


2. 생애[편집]


진 2세(秦二世) 원년(기원전 209년), 사촌형 전담 그리고 아우 전횡(田橫)과 함께 봉기하여, 은거하고 있던 현지 현령을 때려 죽이고, 사촌형 전담을 제왕(齊王)으로 세웠다. 그 해 6월, 전담이 (魏)나라를 구하러 갔다가 진나라 최후의 명장 장한(章邯)에게 대패하여 죽자 동아로 달아났으나, 장한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이때 제나라에서는 제왕 건(齊王建)의 아우 전가(田假)를 다음 왕으로, 전각(田角)을 상국으로, 전간(田間)을 장수로 세웠다.

초나라항량이 전영을 돕고자 장한의 군대를 격파함으로써 위급한 상황에서 벗어난 전영은 본국에서 전가를 왕으로 세운 것에 분노했다. 그래서 장한을 추격하는 초나라 군과 합류하지 않고 제나라를 공격해 제왕 전가와 상국 전각을 몰아내고, 사촌형 전담의 아들 전불(田市)을 왕으로 옹립했다. 자신은 상(相, 재상)으로서 사실상 제나라를 다스렸다.

상국 전각은 조나라로 망명했고, 이에 앞서 조나라에 구원을 요청하러 간 장수 전간은 조에 계속 머무르며 제나라로 돌아오지 않았고, 폐위된 제왕 전가는 초나라로 망명했다. 전영은 초나라와 조나라에 이들을 죽일 것을 청했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들어주지 않았다. 이에 제나라는 항량을 돕지 않았고, 향량은 장한에게 패배해 전사했다. 이 일로 전영은 항량의 조카 항우(項羽)의 원한을 사게 되었다. 한편 전영의 수하 장수 전도(田都)는 전영의 조치에 반기를 들고 독자적으로 조나라를 도와주러 출진했다.

한 고조 원년(기원전 206년), 항우를 주축으로 한 제후 연합군이 진나라를 멸망시키고, 항우가 각지에 새로이 제후들을 분봉했는데, 전영은 항우가 조나라를 구하고 진나라를 정복할 때 돕지 않았기 때문에 왕으로 옹립되지 못했다. 전불은 교동(膠東)[1]으로 봉국이 옮겨졌고, 항우를 도와 함께 진나라를 멸한 제나라 장수 전도가 대신 제나라 왕이 되었다. 또 제북군(濟北郡)[2]의 몇 개 성을 진나라로부터 빼앗고, 항우에게 항복한 제왕 전건의 손자 전안(田安)은 제북왕이 되었다.

이 조처에 불만을 품은 전영은 함께 불만을 품은 조나라의 진여(陳餘)와 손을 잡고 제왕 전도를 공격해 초나라로 쫓아냈다. 교동왕 전시가 항우를 두려워해 교동으로 옮기려 하자, 전시를 죽이고, 제북왕 전안까지 죽여서 세 개로 쪼개진 제나라를 통합하였다. 그리고 전영은 실질적인 제나라의 왕이 되었다. 또 진여에게 군사를 주어 상산왕(常山王) 장이(張耳)를 내쫓게 했으며, 팽월(彭越)에게 서초의 일부인 양나라 땅을 휩쓸게 했다.

한 고조 2년(기원전 205년), 항우가 제나라를 치자 성양(城陽)[3]에서 회전을 벌이다 패해서 평원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그곳의 평민에게 살해되었으니 전영이 제나라 왕으로 재위한 지 8개월 만이었다. 이후 항우는 폐왕 전가를 대신 제나라 왕으로 복위시켰으나, 죽은 전영의 아우 전횡이 초나라에 맞서 전가를 내쫓고, 전영의 아들인 전광을 옹립해 제나라를 재건했다.
[1] 지금의 산둥성 자오동시[2] 지금의 산둥성 내[3] 산둥성 칭다오(青島)시 청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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