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익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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全翊戴
1640년(인조 18) ~ 1683년(숙종 9)

1. 개요
2. 생애
3. 둘러보기


1. 개요[편집]


조선무신이자 관료이다. 본관은 천안(天安), 자는 태로(台老).

소속 붕당은 [[남인|
남인
]]이다.


2. 생애[편집]


1640년 충청도 충주목(현 충청북도 충주시)에서 전옥(全鈺)의 다섯 아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사맹(副司猛:종8품)을 지내다가 1672년(현종 13) 별시 무과에 병과 136위로 급제하였다.#

경신환국이 있은 후, 1682년 (숙종 8) 봄, 김익훈과 김석주가 남인을 끝장낼 목적으로 허새(許璽), 허영(許瑛), 유명견(柳命堅) 등이 반역을 하도록 계략을 꾸민 뒤 오정위의 서녀를 첩으로 둔 김환을 시켜서 정보를 빼내오게 했다. 또 전익대를 협박해 반역 사실을 자백하도록 했다.

하지만 전익대는 계속해서 반역을 부인했고, 또 서인 내부의 소장파인 한태동(韓泰東)·조지겸(趙持謙) 등이 이를 반대하며 서인 내부에서도 논란이 발생했으며 김익훈 등을 역처벌하라는 탄핵 여론이 나타났다.

한편 전익대는 처형되었다. 그런데 허새의 옥사가 김익훈과 김석주 등이 남인을 몰살시키기 위해 일을 키운 것으로 밝혀지면서 서인 내부에서는 의견이 갈라졌다. 소장파들 사이에서 당은 다르지만 허위 날조로 상대방을 말살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여론이 나오게 된다. 이때 송시열은 처음에는 김익훈의 처벌을 주장하였지만 한성으로 상경한 뒤 서인 노장파(노론)의 의견을 듣고 의견을 바꿔 결국 처벌을 반대하며 서인은 노론소론으로 분당되게 되었다.


3.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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