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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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편집]
전쟁(戰爭, War)은 국가 혹은 그에 준하는 교전단체 간 무력을 사용하여 자국의 상대적인 권력을 증진시키거나 적대 세력을 토벌하는 행위를 말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범유행전염병, 기근, 자연재해와 더불어 인류를 괴롭히는 재난이다.
2. 어형[편집]
한자어 '戰爭'(전쟁)은 한중일 모두에서 사용하나 '戰'의 자형이 각각 다르다. 각각 戰(한), 战(중), 戦(일) 식. '爭'도 중/일에서는 '争'으로 자형이 약간 다르다. 대개는 '戰'이 핵심 한자이기에 대부분의 한자어는 '戰'을 가지고 만들어진다. 한국어에서 '-전'(戰)은 전쟁의 방식을 주로 나타내고(예: 해전, 시가전, 공중전 등등) 개별 전쟁이나 전투는 '~전쟁', '~전투'라고 부른다.
그런 의미에서 '대전'(大戰)은 '제1차 세계 대전', '제2차 세계 대전' 등 '-전'이면서도 개별 전쟁이기에 특이한 면이 있다. 다른 표현과 비슷하게 갔다면 '1차 세계 대전쟁' 식으로 되었을 것이다.[5] '관도대전' 등 이미 '대전'으로서 개별 전투/전쟁을 나타내는 예가 있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한데, 전근대의 이러한 '대전'은 주로 '큰 전투'를 나타내 약간 또 의미가 다르다.
큰 전투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대첩'(大捷)이 있다. 보통 크게 이겼을 때 그렇게 부른다. 다소 역사적인 용어로 현대전에서는 '대첩'이라는 말을 잘 쓰지 않고 대개 청산리 대첩(1920)이 제일 근래의 용례이다.[6]
영어 'war'는 게르만어 계열 단어이다. 특이하게도 프랑스어 'guerre', 로망스어 계열의 'guerra'와 동원어이다. 기욤-윌리엄-빌헬름과 같이, 로망스어와 게르만어 사이에서 [g\]와 [w\]로 서로 맞대응되는 단어들이 있다.
라틴어로는 bellum인데, '아름답다'를 의미하는 'bello-'[7] 와 혼동될 여지가 있어서 로망스어에 게르만어 계열 차용어가 들어왔으리라는 설이 있다.#1 #2 라틴어 'bellum'에서 유래한 단어에는 'casus belli'(전쟁 명분), ‘para bellum’(파라벨럼)이 있다.
독일어 'Wehr'는 영어 'war'와 동원어이기는 한데#[8] '방어'로 뜻이 조금 다르고 '전쟁'을 나타내는 단어로는 보통 'Krieg'를 쓴다.
3. 기원[편집]
전쟁의 정확한 기원은 알 수 없지만, 기원전 1.2-1.5만년 사이의 신석기 시대 제벨 사하바 유적이 존재하기에 선사 시대인 구석기 시대에조차도 부족 및 집단끼리의 전쟁이 있었으리라고 보고 있다. 실제로 신석기 시대의 주된 식량 획득 수단은 사냥이 아닌 채집이었으며 농경이 서서히 시작되고 있었는데도 무기가 비정상적으로 많이 나온다. 특정 몇 지역을 제외하면 채집이 여전히 압도적인 효율을 보였으며 서서히 농경을 시작하던 때였는데도 무기가 출토되는 것이다. 특히 칼은 사냥할 때는 아무 쓸모가 없으므로[9] 대체로 전쟁용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요컨대 이런 무기의 대량 발굴은 과거에 전쟁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청동기 시대에 접어들면 독일 북부 톨렌제 계곡 등지에서 남유럽의 용병까지 동원해 수천 명이 맞붙은 조직적인 대규모 전투를 벌인 흔적이 발견되는 등 여러 전투의 흔적이 훨씬 많아진다.
역사적으로 전쟁이 없었던 때는 거의 없었다. 지금까지 멸망한 국민국가 60개 중 50개가 전쟁으로 사라졌으며,[10]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현대에도 곳곳에서 끊임없이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4. 기준[편집]
전쟁의 기준은 선전포고 여부, 사상자 유무, 교전권 보유 여부 등이 기준이 될 수 있다.
정확하게 전쟁을 정의하기는 사실상 어렵다. 왜냐하면 전쟁마다 발발하는 원인, 피해 규모, 진행 양상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를 두고 특정 사건이 전쟁인지, 단순한 폭동인지, 쿠데타인지 등등, 정확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렇기에 전쟁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목적, 목표, 수단이라는 이 세 가지 요소가 폭력성을 띄고 있냐는 것이다.
국가간의 선전포고를 하면 보통 전쟁으로 간주된다. 애당초 '공적으로 상대국에 전쟁을 알림'이 선전포고의 정의이기 때문이다. 다만 6.25 전쟁처럼 선전포고 없이 전쟁이 일어난 사례도 많기 때문에 이것만을 기준으로 삼기는 어렵다. 선전포고 문서에서도 보듯 선전포고 행위 자체가 사문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어 현대의 전쟁은 선전포고를 거친 전쟁이 더 드물 지경이다. 선전포고가 있다면 전쟁으로 여겨지지만 전쟁으로 여겨질 정도의 무력 행사가 일어난다고 해서 꼭 선전포고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대체로 부상자 및 사상자가 발생하는 유혈사태가 일어나는 시점부터 전쟁으로 간주된다. 예컨대 군대를 출동시켰다 하더라도 중국-인도 국경분쟁처럼 대치만 하는 상태로 끝나면 '분쟁'(紛爭, conflict)으로 그친다. 심지어 선전포고까지 했어도 사상자가 극히 적은 1939~1940년 독일-프랑스 전선 같은 경우는 가짜 전쟁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영국-잔지바르 전쟁은 심지어 30분 만에 끝났지만 사상자도 있었고[11] 선전포고도 제대로 이루어졌기에 전쟁으로 불린다.
드문 사례로 사상자도 발생했지만 당사국 사이의 이해로 전쟁이라고 불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중국-소련 국경분쟁의 경우 최소 1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양자 모두 핵전쟁의 위협을 느껴 극적으로 합의했고 일반적으로 전쟁이라고 여겨지지 않는다. 심지어 중국과 인도도 2020년 분쟁 과정에서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양측을 비롯해 세계 어느 국가도 이를 전쟁이라고 보지 않았다. 실제로도 저들이 싸우고 있는 동안에도 양국 대사관은 철수조차 안 했고 심지어 무역 활동도 정상적으로 진행되었다. 물론 사상자도 극소수였다.
앞서 정의에서 '국가 또는 이에 준하는 집단'이라는 말이 들어간 만큼, 어느 정도 정규전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이나 권리가 있는 집단이어야 한다. 전투 능력이 없으면 물론 전쟁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것이다. 전투 권리를 얻는 것은 '교전권'(交戰權, belligerency)이라고 하고 근현대에 더 중요시되었다.[12] 교전권이 없는 집단이 단발성의 공격 행위를 벌일 경우 전쟁이 아닌 테러로 취급된다.[13] 한 지역에서 여러 번의 테러가 있을 수도 있으나, 그런 경우 각각이 다른 테러 사건으로 불린다. 한편 전쟁은 군대가 주둔해 있는 동안 여러 전투가 벌어져도[14] 전쟁으로서는 동일한 전쟁으로 본다. 교전단체가 아닌 세력을 진압할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전쟁이 아니라 민간인에 대한 진압 활동으로 취급된다.
시민 운동이 폭력적이 되어 폭동이 되는 조지 플로이드 사망 항의 시위와 같은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경찰 활동의 연장선으로 취급되나, 규모가 커지고 기간이 길어지면 내전이나 농민 전쟁으로서 전쟁으로 분류된다. 법적으로 경찰 활동에 불과하더라도 그 작전의 규모가 특정 이상으로 커지면 실질적으로는 전쟁이나 마찬가지가 된다.[15]
전쟁은 무력 행위의 성격이 전면적이어야한다. 그러므로 전쟁은 단순한 파병, 평화유지작전, 국경 분쟁과는 성격이 다르다. 단, 이 기준으로 보아도 역사상 완전히 전면적인 전쟁은 없다. 심지어 역사상 가장 전면적인 전쟁이라 평가받는 2차 세계대전에서도 화학무기를 자제해서 쓰지 않으려는 제한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한마디로 모든 국면이 전면적이라기 보단 개별사항을 실체적으로 따져 전면적인 성격이 제한적인 부분보다 더 많이 보이면 전쟁이라고 봐야한다.
5. 원인[편집]
전쟁은 왜 일어날까? 그리고 왜 이런 질문이 중요할까? 만일 원인을 알고, 그것이 조절 가능한 원인이라면 먼저 해결해서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문제의식에서 시작한다. 이를 해결할 만한 단서를 얻기 위해 많은 군사학자들이나 정치학자들은 전쟁의 원인에 대해 계속 관심을 가진다. 그렇지만 실제 사회와 전쟁은 수많은 변수가 개입하기 때문에 누구도 전쟁의 원인을 완벽하게 설명하진 못했다.
고대에 전쟁의 원인은 명확했다. 농사가 되는 강 유역의 쓸만한 땅들이 부족했고, 평화가 계속될수록 사망 인구수보다 출산 인구수가 많아지니 인구는 넘쳤으며 이로 인해 새로운 땅을 필요로 했기 때문이다. 타 부족을 침략하여 땅, 노동력, 여성, 재화를 얻을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더욱 부강해질 수 있었다. 그러나 관개가 발달하고 농업생산력이 인구부양을 넘어서자 이러한 이유의 전쟁은 점차 사라지고 국제정치학적, 종교적 역학이 더욱 중요해졌다.
일반적으로 전쟁의 목적은 영토, 자원, 종교, 사상, 이권 쟁탈 등이 있다. 하지만 더욱 근본적으로 전쟁의 원인을 생각하는 견해들이 있는데, 바로 국제 · 경제적이나 정치적인 기본 원리, 심지어는 심리적인 원인에서 찾는 견해들이다. 정치현실주의의 토대를 만든 국제정치학자 중 하나인 케네스 월츠는 <인간, 국가, 전쟁>이란 책을 통해 전쟁의 원인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보았는데, 개인의 심리, 국가 내부의 정치, 국가 간의 정치라는 세 가지 이미지를 도입해 설명하였다.
5.1. 본성[편집]
인간의 심리적 본성 자체에서 나오는 경쟁적이고 공격적인 성격이 전쟁의 원인이라고 보는 견해다. 인간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불완전하고 폭력적인 심리가 있어서 전쟁으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인간의 일반적인 행동이며, 이를 막기 위해 국가가 필요하다는 사회계약론이 대표적으로 전쟁을 인간 본성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는 이론이다.
인간의 폭력성이 선천적이라는 걸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흐름은 다윈의 진화론에서 나온 진화심리학적 관점으로 이 인간의 공격성이 선천적인 이유가 바로 "없었다면 인간은 지구에 없다"는 것이다. 야생에서 진화해 온 인간이 공격성이 없었다면 진작에 먹이를 구하기 위해 동물을 사살하거나 인간을 위협하는 맹수로부터 보호하지 못하고 진화는커녕 대가 끊겼을 건데, 그 때 인간이 살아남는 쪽으로 진화하며 더욱 사냥을 잘하는 진화 뿐만 아니라 공격성 역시도 크게 진화해 버린 것이다.
한편 인간의 후천적인 전쟁에 대한 심리는 바로 환경이 이런 심리를 조장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1930년대 후반의 독일은 똑같은 어느 지역과 다를 이유가 없는 똑같은 사람들이 모였지만 독일 내에서 너나할 것 없이 모두가 전쟁을 바람직한 상황으로 생각하고 전쟁을 통해 해소하게 되며 사람들이 전쟁을 추구하려는 본성이 만들어진다.
이런 견해들의 가장 큰 문제는 올바른 동시에 쓸모가 없다는 것이다. 전쟁뿐만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인간 활동이 따지고 보면 인간 본성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인간이 전쟁을 하는 건 인간의 폭력적인 본성 때문이지만 반대로 전쟁하지 않는 건 인간의 평화적인 본성 때문이고, 심지어 이 두개가 정말로 동시에 맞는 말이기 때문에, 정치의 방향을 설정하고 정책을 만드는 데 구체적인 도움을 주기는 어렵다. 케네스 월츠는 한스 모겐소의 고전적 현실주의가 전쟁의 원인을 인간 본성으로 돌려버리는 한계를 지적하며 세계의 무정부성이 바로 전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걸 가능하게 만드는 진정한 구조적 원인으로 지적하며 신현실주의를 만들어냈다.
5.2. 정치[편집]
전쟁은 단지 정치의 연장선 중 하나이다.
전쟁은 국가의 중대사인 군국기무다. 백성의 생사 및 국가의 존망과 직결되어 있는 까닭에 깊이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정치란 권력에 관여하려는, 혹은 권력 배분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노력이다.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다.
전쟁의 제일 큰 발발 원인은 국가 간 권력(power)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케네스 월츠의 지적대로 "분쟁을 조정할 상위 권위체가 없는 무정부적 국제체계 아래서 개별 국가의 생존을 위한 안보(혹은 권력) 추구가 전쟁의 구조적 원인"이다.
현대 국제정치학에서 전쟁은 세력균형(balance of power)이 무너졌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경험적 근거 역시 풍부하다. 제1차 세계 대전은 궁극적으로는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를 전후한 독일의 급격한 국력 신장이 유럽의 세력 균형을 뒤흔든 결과였고, 제2차 세계 대전은 패전에도 다시 유럽 최강국으로 부상한 독일이 영국과 프랑스의 쇠퇴로 유럽에서 발생한 힘의 진공을 노리고 팽창을 추구하다 맞이한 파국이었다.
토머스 홉스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는 정의대로 인간은 투쟁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개인간의 갈등은 국가라는 공권력과 법의 형성으로 인해 억제되었으나 그러한 공권력이 존재하지 않는 국가 간의 관계는 여전히 그러한 투쟁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것이 전쟁의 근본적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쟁은 그 대가가 너무나도 크며 동시에 결과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이러한 갈등을 조정하는 과정, 즉 국가 간의 정치인 외교를 통하여 이를 조정해왔다.
따라서 클라우제비츠의 말대로 전쟁은 정치의 연장이며, 다시 말해 전쟁이라는 수단은 국가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행위(정치)의 가장 마지막 단계인 동시에 가장 확실하면서도 도박적인 수단이다. 따라서 현명한 정치인들은 철저하게 계산하여 조정과 타협을 통해 얻어지는 국익이 전쟁이라는 수단을 선택했을 때 예상되어지는 국익보다 작다고 여겨질 때 전쟁이라는 수단이 사용되는 것이다.
한편 전쟁 역시 정치에 영향을 준다. 구국영웅은 지지율을 빠르게 상승시킬 수 있으며 패배는 즉시 실각으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이 벌어지면 정치인들은 신경이 엄청나게 곤두서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쟁에서 승리하면 지지율은 거의 만장일치급으로 폭등한다. '전쟁의 승패는 병가지상사'라는 말은 군인들에게나 해당되는 것이고 정치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마가렛 대처는 포클랜드 전쟁의 승전으로, 버락 오바마는 오사마 빈 라덴의 사살로 지지율을 상승시켰다. 반대로 레오폴도 갈티에리는 포클랜드 전쟁의 패배로 위기에 몰렸다. 패전한 아돌프 히틀러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이오시프 스탈린은 제 명에 죽은 것도 그렇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지지율이 중요해짐에 따라 전쟁이 정치에 주는 영향은 더 커졌다.
세계 정치 문화의 변동은 전쟁의 발발율을 크게 줄였다. 과거 국가들 중에는 전쟁을 숭상하는 상무적인 문화를 지닌 곳이 많았다. 그렇게까지 보지 않더라도 필요악으로 생각하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반면 현대에는 전쟁을 범죄시하며, 시민과 지배층들은 평화를 원하고 있다. 또한 "대량살상무기", "평화주의", 후술할 "무역"의 세 요인은 서로 양의 되먹임 고리를 형성한다. 핵무기에 의한 대량학살 위협은 평화주의를 육성한다. 평화주의가 퍼지면 전쟁이 물러가고 무역이 번창한다. 무역은 평화의 수익과 전쟁의 비용을 모두 늘린다. 또한 이에 따라 각국의 독립성을 약화시켜 어느 한 나라가 일방적으로 전쟁을 일으킬 가능성을 줄인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더 이상 전면전을 벌이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이제는 더 이상 독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이다.
5.2.1. 민주평화론[편집]
1990년대 이후 국제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통계연구와 질적인 조사를 거쳐 다음의 2가지 사항을 보편적으로 합의했는데 이를 민주평화론(Democratic peace theory)이라고 한다. 간단히 요약하면 민주주의 국가의 국민은 전쟁이 자신들에게 손해가 되는 것을 이해하기에 침략전쟁에 동의하지 않으며, 반면 적의 침략에는 자신들이 직접 손해를 입으므로 격렬하게 저항한다는 것이다. 그 결과
- 민주주의 국가 사이에서는 전쟁이 없는 경향이 있다.
- 단, 민주주의로의 이행기에 있는 국가라면 전쟁에 취약성이 있다.
- 민주주의 국가라도 비민주주의 국가와는 전쟁을 한다.
반박을 시도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고 세부사항을 파고 들어가면 허점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적어도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확실하게 빗나간 사례가 없다.
우선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최초의 국제전인 한국 전쟁 제1세계의 대한민국이 제2세계의 북한, 중국, 소련의 침략에 맞서 UN의 도움을 받아 벌인 전쟁이었으며, 베트남 전쟁, 중국-베트남 전쟁, 이란-이라크 전쟁 역시 양측 모두 비민주주의 체제였으므로 민주평화론에 어긋나지 않는다. 걸프 전쟁,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은 비민주주의 국가가 민주국가인 미국과 벌인 전쟁이고, 남오세티야 전쟁과 우크라이나 전쟁도 민주주의로의 이행기에 있는 국가인 조지아와 우크라이나가 비민주주의 국가에 가까운 러시아와 벌이는 전쟁이며, 아르메니아-아제르바이잔 전쟁 또한 민주주의 국가인 아르메니아의 상대국이 1인 독재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아제르바이잔이라는 점에서 역시 민주평화론에 위배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경우 대한민국과 전쟁할 확률이 가장 높은 북한이 민주주의 국가라고는 전혀 볼 수 없기 때문에 민주평화론을 적용하기는 어렵다. 실제로도 직접적인 전쟁만 없을 뿐이지, 1980년대 말 ~ 1990년대 초의 무장 간첩 침입이나 제2연평해전 등 전투는 간헐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영토에 직접적으로 포격을 가하는 연평도 포격전과 같은 일도 일어났다.
5.2.2. 맥도날드 평화론[편집]
미국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이 주장한 평화론. 맥도날드가 있는 나라끼리는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이론으로, 맥도날드의 로고에서 착안해 '황금아치 이론'이라고도 한다. 이는 물론 맥도날드에 전쟁을 억제하는 힘이 있다는 게 아니라[16] 맥도날드가 들어왔을 정도로 자본주의가 잘 정착되었다는 것으로, 토머스 프리드먼이 주장한 자본주의에 의한 평화 이론을 기반으로 한다. 이러한 맥도날드 평화론을 다룬 책이 그 유명한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다.
그러나 냉전이 끝나고 대부분의 국가가 자본주의화된 현재도 전쟁은 계속 발생하고 있으므로 꼭 들어맞는 말은 아니다. 실제로 코소보 전쟁에서는 세르비아의 맥도날드가 나토의 폭격으로 박살난 적이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냉전 해체를 상징하던 맥도날드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에서 문을 닫았다.
혹은 미국의 가장 유명한 브랜드라는 점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맥도날드로 은유해 표현하곤 한다.[17] 한일전쟁이 일어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맥도날드 체인점끼리 싸워봤자 본사에서 나와서 다 문 닫아버린다'고 표현하는 것이 그런 식.
비슷한 이론으로 컴퓨터 회사 Dell의 부품 공급망으로 연결된 국가들은 서로 전쟁을 하지 않는다는 '델 평화론'이 있다.
5.3. 경제[편집]
흔히 '전쟁은 경제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라는 이해가 널리 퍼져 있지만[18]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일례로 20세기 초에는 노먼 에인절(Norman Angell)의 '거대한 환상(The Great Illusion)'을 비롯해 유럽의 주요 나라 간의 긴밀한 경제적 상호의존으로 더 이상 강대국 간 전쟁은 불가능해졌다는 자유주의적 관측이 대세를 이뤘다. 그러나 이러한 낙관적 견해는 제1차 세계 대전을 예측하지도, 설명하지도 못했다. 강대국들은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무릅쓰면서도 전쟁에 뛰어들었다.
경제가 전쟁의 원인과 아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중세-근대 유럽에서는 전쟁으로 적국의 생산을 빼앗아오는 것이 합리적인 (이익인) 것으로 생각했고, 이를 위해 국내의 생산을 쥐어짜 병력을 만들어 전쟁에 몰두했으며, 상대편도 전쟁을 위해 병력을 짜냈을 테니 나도 더 짜내고, 또 쥐어짜낸 만큼 전쟁에서 벌어와야 하니까 군사적인 역량도 키우고, 또 이기려면 자원이 더 필요할 테니까 국내에서 최대한 짜내고... 이런 순환 속에서 근대 유럽국가가 국내 자원을 최대한 짜내기 위해 관료제 등의 행정력과 군사력을 키워서, 그걸 바탕으로 세계를 주도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경제가 독립적이고 결정적인 전쟁 발발 원인이 아니라 권력을 구성하는 한 하위분야란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막스 베버의 지적을 인용하자면, "권력은 사회적 관계에서 한 행위자가 다른 행위자의 저항에도 자신의 의사를 관철시킬 수 있도록 만드는 위치에 있게 되는 확률"이며, 그 원천(source)은 경제적 능력을 포함하여 무척 다양하기 때문이다.
5.3.1. 오늘날 강대국의 전쟁이 줄어든 까닭[편집]
21세기에 주요 강대국이 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한 가지 이유는 자본주의 경제의 팽창으로 타 국간의 교역 활동으로 얻을 수 있는 재화가 매우 커졌다는 점과 무기의 발전으로 전쟁비용의 급상승을 들 수 있다. 때문에 군사적으로 빼앗을 수 있는 부는 평시 경제에 비하자면 매우 푼돈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IS처럼 국가에 비해 매우 소규모인 테러리스트 조직이나 아프리카 곳곳의 군벌이라면 지금도 유전이나 은행을 털어서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막대한 이득을 얻을 수 있겠지만[19] 미국이나 중국 같은 거대한 강대국이 연간 GDP의 0.1%도 될까말까한 재화를 얻으려고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은 수지가 안 맞는 행동이다.
그리고 또 한가지 더 큰 이유는 부(富)의 형태가 변했다는 사실이다. 과거에는 경제 자산은 주로 노예, 가축, 금은보화 등 물질이었다. 따라서 정복을 통해 부를 얻는 과정이 상대적으로 단순했다. 전쟁터에서 적을 무찌르기만 하면 도시를 점령하고, 시민들을 노예 시장에서 팔고, 값나가는 포도밭과 금광을 점령하여 곧바로 돈을 벌 수 있었다. 로마는 포로로 잡은 그리스인, 갈리아인 등을 노예로 부려 번영했고, 19세기 미국은 캘리포니아의 금광과 텍사스의 소(牛) 목장을 점령하여 번창했다. 이렇듯 전근대에 정복자가 활개치던 시대에만 해도 전쟁은 승전을 하면 손실은 적고 수익은 큰 사업이었다.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정복왕 윌리엄(잉글랜드 왕 윌리엄 1세)은 수천 명의 사망자를 대가로 단 하루 만에 잉글랜드 전부를 손에 넣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부는 군사적으로 빼앗기 매우 어려운 형태로 변모하였다. 오늘날 주요 경제 자산은 포도밭이나 금광, 심지어 유전(油田)이라기보다는 기술적, 제도적 지식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다. 즉, 세계 경제는 물질 기반 경제에서 지식 기반 경제로 탈바꿈했다. 오늘날의 부(富)는 주로 인적 자본과 조직의 노하우로 구성된다. 어찌어찌해서 승리한 중국 인민해방군이 실리콘밸리를 장악한다 해도 실리콘밸리에는 문자 그대로 실리콘 광산이 있는 것도 아니고 Apple, 페이스북, 구글 같은 기업을 무력으로 장악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진짜 부(富)는 빅 테크 기업들의 엔지니어들과 할리우드의 배우, 대본가, 감독, 특수효과 전문가의 머릿속에 있다. 이들은 중국군의 병력이 교두보에서 출발하기도 전에 록키 산맥 너머 미국 동부 지역이나 각종 1세계 혹은 중립국으로 재빠르게 도피할 것이다.[20] 그러니 중국으로서도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승리할 자신이 있다 해도[21] 침공을 통해 애플이나 마이크로소프트를 얻을 수는 없으므로 그런 헛된 시도를 하기보다는 그들과 협력하여 그들의 소프트웨어를 구매하고 그들의 공산품을 제조함으로써 수십 억 달러를 버는 것이 이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에서 승리한다면 어찌저찌 경제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는 있다. 가령 과거 영국과 미국은 각각 나폴레옹과 히틀러를 상대로 승리한 후에 그랬던 것처럼 세계 무역 체제를 자국에 유리하게 재편한 바 있다. 중국도 미국에 군사적으로 승리한다면 위의 기업들을 차지할 수는 없을지언정 미국이 가하는 무역 압박은 상당 수 해소할 수 있을 것이고 주변국을 잘 어르고 달랜다면 수십년간 미국처럼 초강대국 지위를 누리며 지낼 수 있다.
하지만 총력전 문서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핵무기와 같은 대량 살상무기의 등장은 과거 전쟁의 범위가 군사끼리 했던 국지전서 민간인을 포함시키게 되며 후방으로까지 확장시켜버렸고 국가 경제를 돌릴 민간인들의 피해 발생으로 전쟁을 통해 예상되는 피해는 매우 막대해졌다.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 이후로 강대국 사이에서 전면전이 벌어지지 않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단지 이들 간에는 서로 위험부담이 낮은 대리전, 저강도 분쟁만 있었고, 이 경우에서도 전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핵무기를 사용하려는 유혹은 낮았다. 실제로 미국같은 초강대국이라고 할지라도 핵을 보유한 북한같은 불량 국가를 공격하는 것을 극도로 기피한다. 북한 정권이 군사적 패배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나올지가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평화'라는 말은 새로운 의미를 얻었다. 이전 세대들이 평화를 일시적인 전쟁의 휴지(休止) 기간으로 생각했다면, 지금 현대인이 생각하는 평화는 전쟁을 고려하지 않는 상태로 여긴다. 게다가 강대국도 전쟁이 벌어지면 인적손실, 경제손실, 국가기반 손실 등등을 생각하게 되면서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자 승리할 수 있는 확신이 없다면 전쟁을 꺼린다. 1913년에 사람들이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평화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현재는 전쟁이 없지만 내년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의미였다.[22][23] 반면 지금 현대인이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평화가 존재한다고 말하면, 그것은 현재의 정황상 그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뜻이다. 그러한 인식이 프랑스, 독일 뿐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에 (모두는 아니지만) 퍼져 있다.
5.4. 정당한 전쟁 이론[편집]
먼 옛날부터 지금까지 어떤 상황에서 전쟁이 정당화되는가에 대해서 심도 있는 논의가 있었다. 전쟁 자체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호구처럼 맞고만 살 수는 없으니 어디까지나 차악/필요악으로서 전쟁이 용인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을 세운 것이다. '전쟁은 정의로워야만 정당화된다'라는 뉘앙스에 가깝다. 선전포고나 교전권, 무장저항권과 같은 개념도 그러한 최소한의 규칙을 세우려는 목적에서 생겨난 면이 크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정당한 전쟁이 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봤다. 근본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전쟁론과 유사한 내용이지만, "명분"과 "권위"라는 요소 외에 "의도"라는 요소가 새롭게 추가되었다.
1. 정당한 권력에 의해서 행해져야 한다. 즉 개인의 탐욕 같은 것에 휘둘려서는 안 되며 국가의 지도자가 국가의 공익을 대표해야 한다.
1.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즉 단순히 적자생존이나 '자국의 이익'과 같은 게 아니라 그쪽에서 먼저 뭔가 잘못을 저질렀거나 빼앗긴 영토를 되찾는 등의 명분이 필요하다.
1. 정당한 의도를 가지고 행해져야 한다. 즉 의도가 나쁜 쪽으로 변질되어서는 안 되고 전쟁 도중에도 되도록이면 평화로운 해결책을 추구해야 하며 전쟁범죄를 삼가야 한다. 셋 중 사실상 가장 지키기 어렵다고 볼 수 있는데, 아퀴나스에 의하면 첫 번째와 두 번째가 정당해도 이 세 번째 때문에 전쟁이 변질되면 정당하지 않게 될 수 있다고 봤다.
손자병법에서도 전쟁에서 살펴야 할 다섯 가지 중요 사항으로 '도천지장법(道天地將法)'을 들고 있는데, 각각 도리 내지는 명분, 천시, 지리, 장수, 군법을 의미한다. 이 중 '도'가 그 첫째임은 자못 의미심장하다. 전쟁에서는 내외에 내세울 명분이 뚜렷해야 함을 우선적으로 밝힌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화문명은 저 다섯 가지를 딱히 신경 안 쓰고 상당히 공격적인 전쟁을 선호했다.
6. 전략[편집]
자세한 내용은 전략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전쟁의 수행 주체인 군대의 운용 방법을 전략이라 한다.
7. 대비[편집]
7.1. 필요성[편집]
전쟁은 근본적으로 모두에게 손해이며 부도덕한 행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쟁에 대한 대비와 국방력 확충의 필요성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즉 역설적이게도 전쟁을 최대한 겪지 않고자 한다면 전쟁을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고서 군사론에서 소개하는 “평화를 원한다면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이 있듯이, 전쟁 대비가 잘 되어야 외세의 침공 가능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것이다.[24] 사회학적 관점을 봤을 때, 국제 사회에선 영구구속력을 가진 상위 권력이 없기 때문에 기회가 생겨서 전쟁을 일으켜 무력으로 무언가를 탈취한다 해도 전쟁을 일으킨 나라의 힘이 막강하다면 제재받지 않기 때문에, 힘의 균형이 무너지면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한 게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재 지구상에서 벌어지는 각종 분쟁과 내전은 역설적이지만 상호 간에 보유한 무력이 어정쩡한 수준에서 비등비등하면 정권을 잡을수 있다는 야욕이 생겨 발생한다. 예를 들어 A와 B 중 어느 한쪽이 압도적인 무력을 보유하고 있다면 상대측은 지면 모든 것을 잃기에 저자세로 대응하기에 전쟁은 발생하기 어렵다. 그리고 A와 B 모두가 압도적인 무력을 보유하고 있을 때에도 역시 전쟁은 발생하기 어렵다. 결국 현대의 전쟁은 A와 B가 서로 비슷한 수준의 무력을 보유하였으면서도 그 무력 수준이 변변치 않아 어느 쪽도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주기 어려운 상황이거나, 서로에게 서로가 파훼할만한 군사, 정치, 경제, 사회적 약점이 존재하여 서로가 서로 한번 해볼만하고 90% 이상의 확률로 이길 수 있다는 판단하는 상황에서 주로 발생한다.
냉전이 상호확증파괴의 가능성을 지렛대 삼아 전쟁 없이 종료된 것이나, 지구상에서 군사력 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인 동북아시아가 실제로는 전쟁, 분쟁, 테러 위험에서 가장 안전한 지역인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일정 수준 이상의 잘 조직된 군대의 존재, 즉 상호 간의 일정한 군사력 유지는 확실하게 전쟁을 막는 역할을 한다.
즉 전쟁은 최대한 피해야 하지만, 그에 대한 대비가 철저해야만 전쟁을 억제할 수 있다. 세계를 권역별로 나누어서 살펴보면 알 수 있지만, 해당 지역 국가들의 중앙 정부가 통제하는 체계적인 군비 수준이 낮은 곳일수록, 전쟁, 분쟁, 테러가 잦아지며 범죄조직 소위 갱단들의 활동으로 인해 사망하는 사람이 많아진다.
7.2. 행동지침[편집]
자세한 내용은 전쟁/행동지침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3. 보험[편집]
전쟁에 참전하는게 아니라 말 그대로 휘말려서 죽거나 다칠 경우,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세계 대부분의 보험사들은 전쟁으로 인해 죽거나 다치면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 표준약관에 "전쟁, 외국의 무력행사, 혁명, 내란, 사변, 폭동 상황에서는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전쟁으로 인한 피해 및 보험금이 일개 보험사의 지급한도를 훨씬 뛰어넘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보험이란 100명의 가입자에게 돈을 걷으면, 그 중 1~10명 정도에게만 보험금을 지급하고, 남는 자금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금융소득을 얻는 사업이다. 그런데 만약 대한민국에 전쟁이 터지면 그건 남북한 간의 전면전이고, 그러면 분명 100명의 가입자 중 90명이 넘게 보험급 지급을 요구할텐데, 그렇게 되면 납부받은 보험금 총액보다도 훨씬 많은 보험금을 지급해야 하니 수지타산을 따지기는 커녕 보험사의 파멸이 거의 확정된다. 따라서 정말 전쟁이 터지고 보험금을 지급할 때가 되면 보험사가 파산할테니 개인의 입장에서도 재난에 대한 보장이 전혀 되지 않으며, 그렇다고 보험사가 파산하지 않을 정도로만 보험금을 책정한다면 차라리 그 돈으로 보험에 가입할 게 아니라 적금을 드는 게 훨씬 낫다, 사측, 개인 모두 전쟁 관련 보험상품에 가입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자국에서 터진 전쟁이 아니라 외국의 전쟁에 일부 개인이 휘말리는 경우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보험사가 파산할 정도의 리스크가 있지는 않다. 따라서 추가 수수료를 내고 전쟁에 의한 손해를 배상해주는 특약도 잘 찾아보면 있다. 여행자보험에도 잘 살펴보면 분쟁지역에서 상해를 입었을 때에 대한 특약이 종종 있으며, 선박보험에도 분쟁지역 근처를 지나가는 경우에 대한 보장 특약이 있다. (단 그만큼 추가 보험료가 발생한다) 또, 사안에 따라 전쟁 상황에서 신체 또는 재산에 손해가 발생했더라도, 그 직접적인 원인이 전쟁임을 입증하지 못하면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도 있다. 예컨대 전쟁이 나서 북한군의 포탄에 맞아 죽으면 보험금 지급 면책사유지만, 전쟁이 나서 차를 타고 남쪽으로 피난가다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면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 전쟁이라고 명확하게 규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피해 배상 면책이 적용될지 안될지 장담할 수 없다.
8. 과정[편집]
8.1. 확전[편집]
전쟁이 일단 선언되면 군대는 전투준비태세에 돌입하고 국가는 전시체제로 가동되어 국가의 자원을 동원해 전투를 지원하게 된다.[25]
이후 전쟁은 상대 편에서 이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무력 투쟁을 하거나, 빼앗긴 것을 탈환하려 하거나, 제3자가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무력 개입을 하거나, 동맹국의 전쟁을 지원하기 위해 개입하는 등 다양하고 복잡한 양상으로 변화한다. 이렇게 복잡하게 변화한 전쟁은 뜨거운 감자처럼 누구도 쉽사리 끝을 맺거나 손을 쓰기가 어려운 상태가 된다.
그래서 전쟁은 시작하기는 쉽지만 끝내기는 어렵다.[26] 미국은 이라크 전쟁에서 2주 만에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후세인을 체포했지만, 거기서 빠져나오는 데는 14년이 걸렸다. 이라크군이 이라크 영토를 IS로부터 전부 탈환했다고 종전 선언을 한 것뿐이고, 그것으로 일어난 사태는 아직도 중동을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8.2. 종전[편집]
전쟁은 한쪽 교전단체가 완전히 섬멸되거나, 항복하거나, 교전단체 간에 합의를 하거나, 또는 제3자가 중재를 나서면서 끝나게 된다.
옛날엔 항복 같은 일방적인 승전으로 전쟁을 끝맺거나, 심지어는 멸망시켜 전쟁을 끝내는 것도 흔했다. 특히 거대한 전쟁인 제2차 세계 대전 때문에 전쟁을 하면 수도가 점령당하고 저항력이 완전히 붕괴할 때까지 저항한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나치 독일/일본 제국 같은 정신나간 상대가 아니라면 협상의 여지가 있으니 싸워서 못 이길 것 같으면 일찌감치 손 털고 권토중래를 노리는 편이 합리적이다. 반대로 우세한 쪽에서도 괜히 깊숙히 들어가 강한 저항에 부딪히기보다는 초반에 유리한 전장에서 승리한 후 상대방이 받아들일 만한 조건으로 종전하는 편이 낫다. 아예 상대방이 멸망할 때까지 밀어붙이면 전쟁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손실하게 되므로 손해이다.
그런데도 실제로 전쟁이 오래 지속되는 것은 우선 전략적 오판의 영향이 크다. 서로에 대한 정보부족으로 승리 가능성을 실제보다 높게 생각하기에 쉽사리 손을 놓지 못하는 것이다. 한편 상대방이 이쪽을 말살하려고 든다고 생각해 갈 데까지 간 사례가 바로 제2차 세계 대전이다. 실제로 그 당시 계획된 몰락 작전을 보면 독일이라면 모를까 일본은 말살당할 뻔 하긴 했다. 다만 몰락 작전이 계획되기도 전에 이미 갈 때까지 가버린 상황이기 때문에 전후 순서가 뒤바꼈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론 상대적으로 빠른 항복으로 몰락 작전 만큼은 피할 수 있었기에, 결론적으로 전략적 오판이라 볼 수 있다.
또 한 가지는 정치집단의 이기심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전쟁에서 패배하면 국가 전체의 손해는 둘째치고 정치집단은 그 책임을 물어 실각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실각을 피하기 위해, 빨리 손 터는 것이 국가에는 유리함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독재국가, 군국주의 국가는 전쟁으로 고통받는 국민의 반전의식을 짓밟을 수 있고, 정치집단이 실각하면 단순히 직업을 잃는 정도를 넘어 목숨까지 위험해지므로 생존본능까지 더해져 필사적으로 전쟁을 지속하는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중에도 일본 제국 지배층은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승산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도 국민들을 자폭으로 몰아 넣으면서까지 전쟁을 지속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국공내전에서 교훈을 얻은 까닭인지 6.25 전쟁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타났다. 중공군의 춘계공세를 끝으로 유엔군과 중공군 모두 서로를 한반도에서 축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휴전회담이 시작된다.
중근세 유럽의 전쟁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당시의 전쟁은 왕들의 대화 수단 수준이었고, 외교를 하다 말이 잘 안 통하면 정정당당하게 한판 붙어서 누가 옳은지를 판결하는, 결투 재판과 비슷한 측면마저 지니고 있었다. 그 와중에 죽어나가는 백성들은 알 바 아닌거고.[27] 이는 프랑스 왕실이 목잘리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나고 프랑스 공화국이라는 국가를 멸망시켜야 하는 상황이 오기까지 지속되었다.
한편 동양에서는 일단 중원이 통일될 때까지 그 내부에서 상대방 정권을 멸망시키려는 전쟁이 반복되었고, 통일된 중국이라는 거대한 세력의 영향하에서는 대외전쟁도 잘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일어나면 멸망 직전까지 싸웠지만. 게다가 서세동점의 시대가 오자 패배하면 권토중래는 생각도 하지 못하게 될 만큼 착취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전쟁이 멸망으로 끝난다는 고정관념에는 이도 영향을 끼치고 있는 듯.
이렇듯 현대 군사학자 대부분은 웬만큼 세력이 비슷하고 규모가 있는 전쟁의 경우 협상이나 중재로 끝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전쟁론을 쓴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종류를 절대전쟁(Absolute War)과 제한전쟁(Real War)로 구분했다. 절대전쟁에서는 서로의 공격에 공격으로, 정치에 정치로 맞받아치며 공격의 강도가 무한히 상승하는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펼쳐지지만, 현실에선 자원과 심리의 한계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클라우제비츠는 헤겔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알려져 변증법적 방법론을 사용했는데, 헤겔에 관념을 절대정신과 현실로 구분한 것처럼 클라우제비츠도 비슷한 논리를 사용한다.
퀸시 라이트(Quincy Wright)는 "근현대의 대등 세력간의 전쟁은 4~5년에서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주장을 한 바 있는데, 물론 전쟁의 승패가 5년 내 결정날 수도 있지만 국가적인 부담감이나 모랄빵, 경제문제 때문에 전쟁수행을 중단한다는 뜻이다. 이란-이라크 전쟁은 7년이나 계속되었는데, 그 결과 양국 모두 국가파산을 고려할 만큼 경제력이 붕괴되었다.
조약을 맺는다고 승패가 없는 건 아니고 대부분 조약을 먼저 맺으려고 하는 쪽이나 조건이 불리하게 잡힌 쪽이 패전했다고 보는 것이 보통이다. 이렇게 열세에 놓인 쪽에서는 일반적으로 전황이 고착되거나, 국내의 정치적 상황이 악화되거나, 가용자원의 상태가 매우 안 좋아지거나, 강화조약의 조건이 용납 가능한 경우 정치의 영역에 돌입해 종전이나 휴전을 약속하는 조약을 맺게 된다. 단, 일방적으로 두드려맞는 경우엔 항복을 고민하거나 최후까지 결사항전을 결의하게 된다.
현대 국제법에서는 더이상 무력에 의한 강제 병합으로 이뤄진 국경선의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보는 편이다. 땅 뺏으려고 전쟁하는 짓은 하지 말자는 것이다. 이를 현상 유지의 원칙이라 한다.
한편 제3차 중동전쟁에서의 이스라엘과 돈바스 전쟁에서의 러시아가 혁신적인 방법으로(?) 그 합의에 도전하기도 했다. 이스라엘의 주장을 요약하면 시리아는 국가라고 볼 수도 없는 존재이며 이스라엘이 침공받은 방어전쟁이니 정당하게 영토를 강탈해도 된다는 것이고, 러시아의 주장은 우크라이나 내전에서 몇몇 의용군이 친러파 진영을 도와주러 간 것이고 침공은 아니라는 것이다. 당연히 이스라엘과 러시아의 주장은 국제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의 친이스라엘, 친러시아 국가들만 인정하는 불법 병합에 불과하다.
9. 피해[편집]
전쟁이란 당신들이 경험해서 알고 있고 맛보았던 그것
전쟁에 관한 나의 말은 짐작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당신들이 전쟁을 일으킬 때 당신들은 그렇게 함으로써
비난받을 짓을 하는 것
당신들이 전쟁의 불길을 타오르게 하면 전쟁은
거세게 불붙어 타오르게 되지
아래에 천이 놓인 맷돌이 곡물을 갈아대듯 전쟁은
당신들을 갈아대고
암낙타가 매년 수정되어 쌍둥이 새끼를 낳듯 전쟁은 최악의 사태를 배태한다.
전시에 태어나는 아이들은 낙타 도살꾼 아흐마드 아드처럼 불길함의 징조
전쟁은 그 아이들에게 젖을 주다가 끊고 만다
전쟁이 당신들에게 가져다주는 수확물은
이라크 지역 마을 사람들이 얻게 되는 디르함 화폐나 곡물 같은 것이 아니다.[28]
- 다히스와 알가브라 전쟁에 대한 자힐리야 시대 아랍 시인 주하이르 이븐 알미 술마의 까시다. <무알라까트> 에서 발췌.
전쟁이 벌어지면 각종 범죄와 비극이 발생한다. J.그라이트는 모든 인류 죄악의 총합이자 인류 스스로 파멸의 길을 걷는 행위라고 묘사했다. 전쟁에서는 주로 폭력 위주의 범죄만 일어나리라 생각하기 쉽지만 전쟁은 모든 비리와 범죄를 다 모아놓은 것이다. 그래서 인생을 통틀어 유일하게 적군에 합법적인 제압을 포함한 살인을 허용하고, 살인 외에도 적을 상대로는 사회에서 용인되지 않던 거의 모든 범죄들이 용인된다. 물론 제노바 협약과 같이 국제법이 정한 선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적에 대한 살해행위가 용인된다.
예를 들면 적의 물자를 전리품으로 노획하거나, 적을 속이기 위해 거짓 정보를 흘리거나, 상대국의 경제를 파탄내기 위해 위조지폐도 뿌려지고, 평시라면 꿈도 못 꿀 주거침입도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며, 이 과정에서 얼마나 살인, 상해, 강간, 방화, 폭행, 협박이 일어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리고 내가 적군을 상대로 저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뒤집어 말하면 나도 적군에 저런 일을 당할 가능성 역시 같이 따라다닌다는 뜻이며, 이런 일을 당해도 구제받을 수 있는 수단은 사실상 없다.
군법으로도 금지된 고문마저도 복수나 심문이라는 명목하에 암암리에 행해지게 된다. 정규군도 이럴 정도니 반군 무장 단체나 실패국가들은 말할 것도 없다.
9.1. 전장에서의 어려움[편집]
전투를 앞둔 병사의 눈빛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전쟁을 하자는 말을 하지 못할 것이다.
오토 폰 비스마르크 독일 제국 총리[29]
전쟁은 암흑으로 덮인 과학이다. 그 속에서는 그 누구도 자신 있게 행동할 수 없다. 관습과 선입견, 그리고 무지의 자연적 소산만이 판단의 기준이 될 뿐이다. 모든 과학은 원칙을 가지고 있지만 유독 전쟁만은 원칙을 가지고 있지 않다.
▲ 프랑스 왕국 육군 대원수 모리스 드 삭스
9.1.1. 극도의 긴장[편집]
쉽게 비유를 들자면, FPS를 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게임이라도 항상 지겨울 정도로 은엄폐를 반복하고 주위를 살피는 등 긴장해야 하며 한 번 긴장을 놓는 순간 기습당하고 만다. 그마저도 게임사의 배려가 듬뿍 들어가고 나름 심의규정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환경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실전이라면 덤으로 부비트랩이나 지뢰가 있을지 없을지조차 모르는 경로를 매일 매일 이동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점은 게임에서야 습격을 당해서 죽었어도 게임은 다시 할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한 번 죽으면 재시작이 안 되고 영원히 사망하고 살아남는다 해도 손가락까지 온전하게 생존[30] 한다면 몰라도 팔이나 다리를 잃는 상이군인이 되면 불편함은 물론 종전 후 취직도 힘들다. 이렇기에 사람의 목숨과 인생이 달린 문제이니 당연히 게임처럼 즐길 수도 없다. 당장에라도 생존하고 싶다는 욕구와 압박감은 물론 총탄이 빗발치는 환경에 대한 공포감으로 엄청난 스트레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이 글을 읽는 사람 대부분은 겪어 봤거나, 군필자에게 듣거나, 그것도 아니면 매체를 통해 봐서 알고 있겠지만, 군 훈련 중에 몇십 킬로그램이 넘는 장비들을 지고 산지를 오르내리는 행군은 필수적이면서도 매우 힘든 훈련이고 사격 실전에서는 그걸 수개월, 수년씩이나 반복해야 한다.
또한 옷도 제때 갈아입지 못하고, 샤워나 제대로 된 식사는 기대조차 할 수 없고[31][32] , 피곤해도 포격이나 폭격이 날아올 수 있으니 마음대로 잘 수도 없다. 설령 잘 수 있는 시간이 생겨도 언제 적이 습격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불안에 떨어야 한다. 적들은 당신이 힘들어서 쉬고 있거나, 밥을 먹고 있거나, 자고 있는 순간을 노린다. 상대방이 방비에 덜 신경쓰게 되는 상태에 놓여 있으면 습격하기 쉽기 때문이다.
군필자가 아니더라도 대한민국 남성이라면 훈련소 과정은 99% 거치게 마련이니 진짜 총소리를 들어본 적 있겠지만, 총소리나 폭음은 영화나 게임에서 들리는 소리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될 수준으로, 9mm 구경의 작은 탄환을 쓰는 총의 소리조차도 천둥소리처럼 크다. 실탄 사격장같이 실내공간에서 사격을 할 때 귀마개를 쓰지 않으면 .32 ACP(7.62mm) 같은 소구경탄으로도 청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물론 실외에서도 마찬가지.[33]
실제 총소리는 매체에서 폭탄이 터질 때 들리는 소리와 매우 흡사하다. 이는 당연한 것이, 총알의 추진 원리는 총의 공이가 탄피에 내장된 뇌관을 때리고 이 충격으로 탄피에 채워진 화약을 폭발시키고, 그 힘으로 총알이 날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34]
하다 못해 약하다고 무시당하고 게임이나 영화에서 주구장창 갈기고 쏘는 5.56mm 구경의 소총탄을 쏠 때도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굉음과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낸다. 사격장이 수 km 떨어져 있음에도 그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노인들이 “콩 볶는 소리”라고 칭하는 것이 바로 이 소리이며, 소구경 소총탄인 5.56mm도 이 정도인데 전차포나 야포 사격장은 오죽하겠는가. 사격장 인근 주민들이 괜히 민원을 제기하는 게 아니다. 당신도 거의 매일 귀에 꽂히는 천둥소리를 들으며 살아야 한다면 제정신으로 살기 힘들 것이다. 또한 155mm 곡사포의 RAP탄 사격 시 근방 15m 내에 있으면 실제로 고막이 찢어지기도 한다. 사족이지만, 구스타프 열차포 운용인원들은 쏠 때마다 폭음과 충격파가 상상을 초월하는 탓에 방음과 방진을 위한 특수 귀마개를 끼고도 귀가 멀지 않도록 귀를 막고 소리를 질러야 했다.
박격포, 대전차무기, 중기관총, 고속유탄발사기 등 중화기 운용병의 경우는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 얼핏 보기에는 강력한 무기를 가지고 있으니 생존률이 높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화력이 강력한 만큼 적들 역시 자신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중화기의 무력화를 더 치밀히 노린다.
이런 상황에 노출되면 일주일은커녕 단 하루만 지나도 심신이 지치고 피폐해진다. 자신의 목숨이 달려 있는 수많은 변수들이 산재한 상태에서 길게는 8~10년을 초긴장 상태로 있는 것은 극도로 고통스럽다. 이 때문에 전시라도 중요한 작전 중이 아니면 배치된 병력들을 주기적으로 전후방 교대시키고, 일정 기간이나 조건을 채우면 전역시켜 주긴 했지만 큰 전투가 벌어지거나 급박한 상황에서는 당연히 제한된다. # 실제로 세계대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의 대다수는 가볍든 무겁든 PTSD, 즉 트라우마 증상을 겪었다.
9.1.2. 끔찍한 죽음[편집]
전장에서 부상을 당하는 고통은 평소에 부딪히고 넘어져서 다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가장 흔한 부상에 속하는 총상의 엄청난 고통은 물론이고 동맥에 맞으면 응급조치해도 과다출혈로 사망하게 되며 폭발 등으로 사지가 절단되는 끔찍한 경우가 비일비재하다.전쟁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자신을 지키기 위한 전쟁도 예외는 아니다. 왜냐하면, 전쟁이 남기는 것은 오로지 파괴와 슬픔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전쟁을 일으키는 자는 그 의도가 무엇이든, 결코 용서받을 수 없다. 따라서 나는 히틀러를 결코 용서할 수 없다. 망상으로 인해 벌어진 전쟁에서 수천만 명의 죄없는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기 때문이다.
버나드 로 몽고메리 -《전쟁의 역사》작가 후기 中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이 설치한 함정으로 인해 서방 진영 군인들에게 심각한 스트레스나 트라우마, 불안감이 생긴 사례가 있다. 어디서부터 날아올지 모르는 총알이 자신 옆에 있는 동료 병사의 머리를 관통하고, 동료 병사들이 습격당해 죽는 순간이나, 부상의 고통에 시달려 괴로워하는 모습들을 수개월 혹은 수년 이상을 지켜봐야 한다.[35] 당장 일개 병사들이 마구 쏴대는 소총탄도 배에 한 발 맞으면 복강이 터져 즉사하거나 피를 엄청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다가 쇼크로 죽는다. 총알 중 제일 약하다고 알려져 있는 .22 Long Rifle탄에 피탄되어 난 상처도 신체에 심각한 부상을 입히며 회복도 오래 걸리고, 운 없게 머리나 심장에 맞으면 죽거나 식물인간이 된다. 하다못해 에어소프트건에서 발사되는 6mm 탄[36] 도 맞으면 꽤나 아프고 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멍이 들거나 실명하거나 치아가 손상될 수도 있는데 진짜 5.56mm[37] 야 오죽하겠는가.
그나마도 총에 맞아서 죽는 것은 양반일 정도로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을 수도 있다. 적군에게 잡혀서 유린당하거나 고문당하고 죽을 수도 있고
포탄에 맞거나 생화학 무기에 피폭되어 죽을 수도 있다. 포탄도 피폭지에서 바로 휩쓸리면 그나마 편안한 죽음이고, 현대전 특성상 포격 사망자의 상당수가 살상반경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가 사지가 떨어져 나간 채로 몇 시간씩 고통받다가 죽는 일이 허다하다.
갑작스럽게 폭격을 맞거나, 적의 기습을 당해 혼자 낙오된 상태에서 제대로 된 응급조치만 받으면 충분히 살아 남을 수 있는 부상을 치료하지 못하고 몇 시간, 최악의 경우 며칠 동안 신음하다가 상처가 감염되고 곪아가면서 세균에 감염되어 비참하게 죽어가는 경우도 많다.
가벼운 부상도 회복되기 위해서는 며칠 가량의 시간이 필요하지만 전쟁이 워낙 급박하게 돌아가는 중이라면 병력 부족을 이유로 완치가 되지도 않았음에도 신체거동이 불가능할 정도가 아니라면 바로 전선에 배치되곤 하며, 이 경우 부상병은 엄청난 육체적 후유증과 심리적 고통을 떠안게 된다. 치명상을 입어 가망이 없으면 흑색명찰[38] 을 달고 치료도 없이 그냥 버려지게 되어 죽게 된다.
6.25 전쟁 참전 용사의 다큐멘터리 발언을 보면 전투의 참상을 알 수 있다.김달육: (사람이) 포탄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요? 조그맣게 갈비 조각이 나. 사람이. 분해되어 버리고 아무것도 없어. 펑하고 터지고 가보면 나무에 창자 조각 요만큼 걸려있고 살토막 요만큼 걸려 있고 이래. 포탄 맞으면 아무것도 없어.
질문자: 그러면 27일날 그날 돌아가신 분들은 그렇게 그냥 산에 버려져 있는 건가요?
김달육: 버린 게 아니라 시체를 찾을 수 있어야 버리지.
질문자: 선생님 그 때 상황 모습이... 영화 고지전 보셨어요?
김달육: 응. 그런데 그건 애들 장난이지.
특히 현대의 전쟁은 정밀유도무기가 보편화되고 포병을 이용한 장거리 화력투사가 매우 쉬워졌기에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그렇기에 포격이나 미사일, 공군의 폭격과 같이 일개 보병이 대항할 수조차 없는 공격수단에 아주 쉽게 노출되게 되는데 이는 병사 개개인에게 큰 무력감을 주며, 엄청난 굉음과 파괴력으로 신체적, 정신적인 피해를 준다. 이런 극도의 상황에서 얼마 전까지 자신이 있던 건물 등의 엄폐물이나 함께 의지하던 전우가 순식간에 작살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PTSD가 안 생기는 게 신기할 지경이 된다. 지금보다 화력이 훨씬 약했던 1, 2차 세계대전 당시에도 부상병의 몸에서 적출해낸 파편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 것이 인간의 뼛조각이었다고 한다. 직격으로 산화한 병사가 있으면 그 주변 전우들은 달궈진 육편과 깨진 뼛조각을 뒤집어쓰고 부상병이 되어 실려간 것이다.
역설적으로 미국과 유럽 등에서 장애인에 대한 시선이 평등한 편이고 복지가 발달한 것이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을 포함해 수많은 전쟁이 났기 때문에 큰 부상을 당해 장애인이 된 부상병이나 민간인 등이 여럿 나왔고 이들은 국가의 부름으로 전쟁에 참여한 자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39] 그 정도로 부상자가 많다는 뜻이다.
직접 겪지 않더라도 다른 이들의 사망을 지켜보는 것 역시 상상 이상으로 끔찍하다. 정상적인 나라의 국민이라면 군인뿐만 아니라 민간인의 죽음을 지켜보는 것도 매우 끔찍한 일이다. 당장 연령 제한이 걸린 유튜브 영상이나 일부 고어 사이트에서 노골적으로 보여지는 민간인 피해 영상만을 보는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그 참상을 오감으로 직접 경험하는 당사자의 입장에선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된다.[40]
대놓고 잔악 행위를 벌이기로 유명했던 나라의 군대에서도 일개 인간으로서의 양심이 남아 있거나 정신적 충격을 크게 받은 군인의 경우 죄책감은 물론 심각한 PTSD를 앓게 된 사례가 많다. 중일전쟁 때 중국인 여성을 살해하고 자식인 갓난아기를 절벽에서 던져 버려 죽게하는 지휘관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일본군 병사도 있다. 그 독일 국방군에서 가장 미친 부대인 아인자츠그루펜에서도 전쟁범죄와는 별개로 충격을 받은 나머지 토하거나 진짜로 미쳐 버린 병사가 나올 정도다.
끔찍한 얘기지만 사실 전장에서 적의 총에 맞아 죽는건 덜 비참한 경우이다. 대다수의 군인들은 전투 중에 죽는게 아니라 장티푸스와 같은 전염병, 몇 일씩 음식을 먹지 못한 굶주림, 추위로 인한 동상, 비인간적인 학대 등으로 고통스럽게 죽는다.
9.1.2.1. 기계화 부대, 기갑부대[편집]
기계화 부대, 기갑부대는 일반 보병보다는 낫지만 전쟁에서 처참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기계화 부대가 타고 다니는 병력수송장갑차나 보병전투장갑차는 일단 소총탄은 잘 막는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그렇기 때문에 중화기의 1순위 표적이 된다. 강한 병기에는 강한 무기가 맞붙기 마련이다. 적군의 전차와 장갑차는 물론이고 적 보병의 대전차 미사일, 공군 및 공격용 헬리콥터, 대전차 지뢰를 모두 피하는 건 불가능하고, 만일 제대로 맞으면 장갑차량이 폭발하거나 불이 나는 경우가 허다하다.[41] 설령 그러지 않더라도 무한궤도가 끊어져 사각지대에서 적 보병에게 공격당하거나, 포탄이 바닥나거나 주포가 못 쓰게 되어 움직이는 통조림이 되어 버릴 수도 있다.
기갑차량이라고 총탄에 천하무적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기갑차량은 차종과 부위에 따라, 때때로 운에 따라 방호력 편차가 심하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쓰는 M113 같은 녀석은 중기관총에도 잘못하면 뚫릴 수 있다. 그리고 적에게 측면이나 후면을 내주는 순간 어떤 장갑차량도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전차의 경우는 보통 장갑차보다 훨씬 안전하고 튼튼하지만 전차전이 벌어지는 환경은 적이 어디 있는지 겨우 보이거나 은엄폐를 철저히 한 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저 멀리서 날아온 또는 출처가 불분명한 전차포탄, 어쩌면 사각지대나 하늘에서 날아온 대전차미사일이나 폭탄에 얻어맞아야 된다는 소리다.[42] 서구권 전차들의 경우에는 탄약고에 명중해도 운에 따라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지만 포탑 아래로 탄들이 빙 둘러 있는 동구권의 자동 장전 전차의 탄약고가 피격당한다면 그대로 전차가 폭발하여 내부 승무원 전원이 끔살당하게 된다. 심지어 현실은 더 매정하다. 포탄이나 미사일이 후면도 아닌 상부를 노려 공격해오거나, 수틀리면 그냥 하늘에서 다 때려잡는다.
이 때문에 전차와 같이 작전을 했던 2차대전 당시 어느 미군 보병은 수기로 '전차병들은 누구보다 용감하다. 우리는 숨을 수라도 있지 전차는 잘못되면 숨지도 못하고 얻어맞으면 산채로 불타 죽는다.'라고 전차병들을 동정하기 까지 했다.[43] 한편 메르카바 전차 같이 임시 화장실로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면 전차 내부에는 대체로 화장실이 없다. 생리적 욕구도 마음대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생존력 자체는 기갑부대 병사들이 더 높은 게 맞다. 전차가 아무리 크고 요란하고 적들의 1순위 타겟이라도, 전차가 가지는 방호력은 권총이나 소총과 같이 대전차화기가 없는 일반 보병 상대로는 조건부 무적 수준으로 상당하다. 또한, 대부분의 서구권 전차들은 탄약고를 승무원 구획과 분리해 놓아서 탄약고의 폭발이 다른 곳으로 분산되어 피격당하면 불타 죽는다라는 말도 이제는 동구권 전차들을 제외하면 크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44] 포탑이 박살난다고 쳐도 최소한 조종수나 주변 보병들의 사망률은 낮아졌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아군 기갑전력은 매우 강력한데 적국의 기갑전력이 병맛인 경우라 관통이 더 힘든 경우에는 더더욱 안전하다. 그리고 무인포탑 장착형 전차는 포탑이 관통당해 폭발하더라도 무인화된 포탑에 격벽이나 장갑재를 붙이거나 유폭 시 포탑과 차체가 분리되도록 하는 등 설계상 안정성을 더 높여 전차병의 생존성을 더 향상시킬 수 있다.
9.1.2.2. 포병[편집]
포병의 경우에는 기갑부대가 있는 전방, 공군 기지가 있는 후방의 중간에서 지원을 때려박아 주는 포지션이라 상대적으로 안전할 것 같지만, 이는 공군과 미사일, 대포병레이더 등의 정밀 정찰 및 타격수단이 발달하기 전인 한국전쟁 쯤까지만 맞는 말이고[45]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포병들은 적 입장에서 우선순위가 높은 고가치표적이며 현대 포격전의 기초는 대포병 사격이다. 그 말인즉슨 내가 상대방을 때리면 얼마 지나지 않아 나한테 그게 되돌아온다는 건데, 포탄과 장약이 잔뜩 쌓인 포격진지의 특성상 잘못 맞으면 순식간에 증발해 버릴 확률이 높다. 때문에 현대의 포병들은 대체로 장갑화된 차체를 이용해 자주화를 시키려한다. 방열과 이동의 편의성도 있지만 자주포 내에서 사격하는 포병은 지근탄에도 일반적인 야포보다 훨씬 안전하고, 퇴각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일반 야포를 쓰는 부대들이 많고, 자주포라도 사격 후 제때 이탈하지 못하거나 방열 상황에서 선제 포격을 당하면 장갑차 수준의 장갑을 지닌 자주포로는 직격탄으로부터 생존할 수 없다.
대공포, 지대공 미사일 등의 방공무기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바꾸어 말하면 이쪽은 먼저 적 항공기를 발견한다 치더라도 생존 확률이 그리 높지 않은데, 먼저 발견당한다면 그대로 죽은 목숨이다. 현대 전장에서 우선적으로 하는 작전이 와일드 위즐,SEAD, 적 방공망 제압(DEAD)이기 때문이다. 이는 육군이나 해군 함정에서는 장거리 스탠드-오프 미사일을 이용해 날려버리기, 전술기로는 미사일 사정거리 밖의 장거리에서 순항 미사일을 쏘기, 심지어는 전자전기를 동원해서 방공레이더를 무력화한뒤 각종 투사수단으로 쳐부수는 방법까지 동원되고 있다. 안전한 위치에서 대기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오히려 가장 먼저 공격당할 위험성에 노출되는 것이다.
게다가 무인기, 드론을 비롯한 장거리 정밀 타격수단까지 발전하면서 포병의 걱정거리는 하나 더 늘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서 러시아군이 란셋과 같은 소형 자폭 드론을 대규모로 운용하기 시작하면서 상대적으로 중장갑인 전차들과 가치가 적은 보병들은 무시하고, 후방에 있는 자주포, 자주대공포와 미사일들을 쪽집게처럼 타격하는 전술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9.1.2.3. 해군[편집]
선원과 저승 사이에는 널빤지 하나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
토머스 기번스
장기간 동안 배를 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바다와 배 자체도 적이 될 수 있다. 선박이라는 물건이 원래 한 번 만들면 굉장히 오래 쓰는 물건인지라 화장실이 심하게 불편한 구조거나, 바닷물로 샤워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바닷바람은 생각보다 강하고 차갑다. 또 망망대해에 홀로 떠 있는 섬 같은 선박 내 공간의 특성상 작은 일로도 사람 간의 갈등이 일어나기 굉장히 쉽다. 평시에도 선원들을 괴롭히는 파도나 폭풍우, 배멀미는 두말할 것도 없다. 잠수함이라면 햇빛이라고는 전혀 볼 수 없는 답답한 공간이라는 것은 덤. 특히 이 중 잠수함은 오랜 잠항으로 인한 답답함 + 햇빛을 거의 보지 못함 + 고된 업무강도 + 공격 받거나 암초와의 충돌과 같은 사고가 발생시 바닷속에서 탈출 못하고 그대로 죽는다는 불안감까지 합쳐져 전군을 통틀어서 가장 스트레스 많이 받는 보직 중 하나로 꼽힌다. 이런 관계로 세계대전 당시 잠수함 선원들은 전황이 어떻든 거의 마지막까지 꾸준히 휴가를 나갔고,[46] 일반 수병이 먹는 식사의 질도 해군, 아니 군대를 통틀어서 가장 좋았다. 지금도 잠수함 승조원들은 그 점이 감안되어 식사 등 어느 정도는 특별 대우를 받는다.
만약 군함이 격침된다면 그나마 각국의 해군들은 살아남은 적 수병들을 대체로 구해내서 포로 취급은 해주기에[47] 구조만 제때 받는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지만, 격침을 당했다는 것은 그곳이 전투지역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는 것이다. 아군과 적군 모두 구조활동을 하는 동안에는 위험한 상태가 되기에 침몰하는 군함의 승조원을 미처 구조하지 못하고 떠나 버릴 수도 있으며 침몰하는 군함서 강한 수압으로 꼼짝없이 갇힌 이들은 물은 계속 차오르는데 산소도 부족해져 결국 물이 얼굴을 뒤덮고 산소부족으로 고통스럽게 죽는다. 2차대전 당시에도 침몰하는 함에서 탈출했음에도 여러 이유로 구조를 받지 못하고 죽어간 수병들이 엄청나게 많았다. 그나마 있는 구조의 희망도 적이 상식이 있을 경우에나 해당되고 만일 적이 국제법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조난자들을 쏴버릴 수 있으며, 그게 아니어도 전투 중 눈먼 총탄이나 포탄, 파편에 맞아 죽을 수도 있다.
만약 당신이 타고 있던 군함을 격침시킨 적이 잠수함이라면 원래 공간이 부족하고 잠항을 해제하면 생존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잠수함 특성상 아무도 구하지 않고 그냥 퇴각해 버릴수도 있다.[48] 이렇듯 불타는 배에서 간신히 탈출하는데 성공했더라도 어느 정도 운이 따라줘야만 구조받을 수 있다. 그렇지 못한다면 망망대해에서 둥둥 떠있다가 저체온증으로 차례로 죽거나, 그 전에 식량이 떨어져서 아사하거나, 상어와 같은 맹수들에게 처참히 죽게 될 수도 있다.
심지어 격침되는 군함이 잠수함일 경우, 작전 지역 자체가 물속이기에 만약 적의 폭뢰나 어뢰에 공격을 받아 문제가 생기게되면 그대로 몰살당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선체가 찌그러져 전반적인 압력이 무너지면 순식간에 밀려오는 강한 수압에 처참하게 죽을 수 있다. 게다가 적의 공격으로 부상장치가 망가져 다시는 떠오를 수 없게 된다면?[49] 유독가스가 누출되어버렸다면? 화재가 일어났다면? 결정적으로 원자로에 이상이 생긴다면?[50] 다른 배라면 바다로 뛰어내려서 탈출한다는 최후의 희망이라도 가져 볼 수 있지만 잠수함 승조원은 매우 높은 확률로 그대로 몰살이다.
9.1.2.4. 공군, 항공대, 우주군[편집]
사실 공군(및 육해군 항공군)은 육해공 중 비교적 가장 시설이 좋은 환경에서 전쟁을 수행하게 된다. 만약 전쟁이 났는데 당신이 공군이라면 전투기를 탈 때 외에는 후방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물론 전쟁 중 환경 따위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지상에 주기되어 있는 군용기가 많은 공군 기지나 민간 공항은 개전 시 적의 0순위 집중 폭격 목표지가 되므로 공군 기지 자체가 적에게 습격당할 위험이 높다. 특히 대한민국은 개전과 동시에 적에게 생화학무기 공격+적 특작부대 공격 콤보를 얻어맞을 확률이 100%이다. 그래서 공군 병력들은 총을 쏴보지도 못하고 죽거나, 총을 쏴보지도 못하고 전쟁에서 이기거나 둘 중 하나가 된다.
실전에 투입됐을 경우 적기나 지상의 대공전력에 격추당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전투기 조종사의 경우 전투기라는 쇳덩어리를 격추시키기 위한 미사일과 기관포탄은 사람에게 파편만 튀어도 치명적이다. 따라서 기체에 포탄이나 미사일이 피탄된다면 조종사가 파편에 맞아 크게 다치거나 죽어 버릴 수 있다. 또 설령 기체만 파괴되어 탈출하려 해도 탈출 장치 계통이 피탄에 의한 문제가 생겨버린다면 그대로 죽거나 천운에 맡겨 비상착륙을 실행해야한다.
매체에서는 공중전을 묘사할 때 대체로 현란한 곡예비행으로 서로 쫓고 쫓기며 번쩍이는 예광탄을 퍼붓는 매우 멋있고 남자의 로망을 자극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건 다 옛날 얘기다. 한국 전쟁 시기까지만 해도 조종사의 조종실력과 상황판단이 주가 되는 이러한 그나마 낭만이라면 낭만인 도그파이팅이 대세였지만, 베트남 전쟁부터는 지대공, 공대공 미사일이 사용되면서 버튼 하나로 공중전이 끝나 버리는 시대로 변했다[51] . 그나마 각국의 미사일 기술이 미숙하던 초창기에는 회피기동이나 교란장치 등으로 죽음을 만회할 수도 있었지만, 현재는 미사일의 기동력과 탐지 및 유도 기술이 전투기의 그것을 훨씬 뛰어넘어 버렸다. 아예 기술적 차이가 압도적이면 그나마 다행이고, 엇비슷한 현대 전투기가 서로 맞붙을 경우 승부를 결정짓는 요인은 누가 더 빨리 탐지하고 쏴 버리냐에 달리게 되었다.[52] 열심히 돈 들여 훈련하고 출격시켜놨더니 적기는 보지도 못하고 어디선가 날아온 미사일 얻어맞고 증발할 확률이 사실상 거의 50%란 거다. 어찌저찌 기체를 마구 돌리고 교란장치 쏟아내가며 겨우 미사일 하나를 회피했다 치자. 그동안에도 적기는 가만히 있을까?
헬리콥터나 아음속 공격기의 경우에는 매우 낮은 고도에서 활약하기 때문에 대공포 같은 거에도 당할 확률이 높다. 특히 헬리콥터는 기체에 이상이 생기면 비교적 똑바로 추락하는 비행기와는 달리 미친 듯이 돌면서 추락한다.[53]
미국, 러시아, 중국, 북한에만 해당하는 사항이긴 하지만 폭격기는 훨씬 더 위험 부담이 크다. 물론 폭격기가 뜰 때는 아군이 바보가 아닌 이상 호위기를 딸려보내겠지만 적군도 바보가 아닌 이상 폭격기를 놔뒀다간 자국의 군사 기지나 도시에 쑥이 무수히 심길 게 뻔하니 폭격기를 격추시키려고 용을 쓸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대부분의 전술기들은 적의 영공 안에서 작전하는 경우가 많아 이 모든 악재를 이겨내고 비상탈출에 성공하여도 높은 확률로 착지한 지역이 적의 점령지역인지라 착지에 성공해서 생명을 건졌다고 해도 적에게 죽거나 포로로 잡힐 위험이 매우 크다. 적이 인도적이고 빨아먹을 단물이 있다면 포로로 잡혀 비참하게나마 목숨을 연명할 수는 있겠지만 그렇지 못한 적군이라면 즉시 사살당하면 양반이요, 고문당하다가 모욕적이고 고통스럽게 죽임당할 수도 있다. 심지어 해군 항공대 소속 전술기가 해상에서 추락했을 때에는 운 좋게 탈출해도 제때 구조받지 못한다면 위의 해군의 사례처럼 바다 위에서 저체온증으로 천천히, 아주 고통스럽게 죽거나 상어와 같은 맹수의 습격을 받아 죽을 수도 있다. 또는 지상 환경이 사막, 온대림, 대평원 같은 인적이 없는 곳에 추락해 완전히 길을 잃고 탈진해 죽거나 굶어죽을 수도 있다. 태평양 전쟁, 베트남 전쟁의 열대림처럼 적군보다 훨씬 무서운 것들이 널려 있는 경우는 아군에게 구조되거나 적군의 손에 죽기 전에 맹수밥, 벌레밥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설령 이 모든 위험을 배제한다 해도 기본적으로 군용기를 모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전투에 참여하거나 긴급출동을 할 일도 없고 초음속으로 날아다니면서 중력가속도를 버틸 일도 없고 정해진 항로를 여유롭게 다니는 민간 여객기만 해도 전문가를 요구하는 데다 그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라 전문적인 교육기관을 요구하는 마당인데 하물며 초음속으로 비행하고 그 과정에서 엄청난 중력가속도를 버텨야 하는 데다 언제 어디서든 긴급 출동을 준비해야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항로를 변경하기도 해야 하는 군용기 조종사의 경우, 더욱 전문적인 교육은 물론이고 이러한 상황들을 제대로 대처해야 하기 때문에 양성하기가 더욱 어렵다. 게다가 지상의 수세식 변기만큼 좋진 않지만 자유롭게 화장실을 사용할 수 있는 데다 피곤하면 기내에 있는 인력과 교대해서 휴식할 수 있는 여객기와 달리, 군용기는 화장실이 없거나 있더라도 여객기의 그것에 비유하면 형편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생리현상도 마음대로 해결하기 어려우며, 업무 중 피로가 생겨도 다른 인력과 교대해서 휴식을 취하기도 어렵거나 불가능하다.
사실 수만의 공군 중 실질적으로 전투기나 폭격기 타고 나가서 미사일 쏘는 이들은 장교급이기에 전체 공군에 비해서는 수가 적다. 공군병들의 대부분의 업무는 활주로 청소 및 병장기, 전투기 관리, 그리고 공군기지 사수가 주 업무다. 사실 말이 청소지, 버드 스트라이크를 방지하기 위해 하늘을 나는 새들을 향해 산탄총을 갈겨대고 전시에는 폭격으로 망가진 곳을 보수하는데 공병들과 동원되고, 비행장에 화학무기가 떨어지면 목숨걸고 제독작업을 하고 전투기가 언제 어디서든 출격이 가능하게 준비하는 등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우주군의 경우에는 아직 우주전쟁이 한 번도 발발하지 않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2000~2100년대 전반기 과학 기술상 우주 생활은 평시에도 열악하기에 전쟁이 터지면 더 생존이 어려울 것이다. 가령 비행기에서는 비상탈출이라도 할 수 있지만 현 우주선에서는 비상탈출을 해봐야 우주 공간 속에서 갈 곳이 없다.[54]
9.1.3. 가혹한 전장 환경[편집]
전쟁이 일어나면 일단 수도, 식량, 가스, 전기와 같은 기본적인 요소가 전장 환경에서 제공되지 않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보급을 받는다. 보급은 현지에서 조달을 하는 경우가 많은 편으로, 전장에서 어느 정도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전쟁터에서는 보급의 안정적인 상황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최악의 경우로는 한국전쟁과 같이 대규모 폭격이 일어나서 도시 전부가 사라지는 경우까지 있다.[55]
또한 총알이 날아다니는 전시에 제대로 된 화장실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현재 군 분야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있는 미군도 고지 등에 소대단위로 배치되고 철수했다 말았다 하는 야전 전투 진지에서는 제대로 된 화장실 그딴 거 쓰지도 못했다. 수세식 변기와 화장지도 당연히 공산품이니 전쟁으로 난리가 난 상황에선 그냥 아무 곳에나 실례하고 나뭇잎으로 뒷처리한 다음 같이 묻어둘 뿐이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막말로 정말 정상적으로 잘 싸는 것만 해도 축복받은 경우도 있다. 대표적으로 장진호 전투가 그 예시인데,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어마어마한 추위로 배변을 하라고 바지를 내리고 몇분만 있으면 그대로 항문이 얼어붙을 정도였다고 한다. 게다가 그런 상황에서는 당연히 최대한 빨리 싸는 것이 그나마 고통을 최소화시키는 방법인데, 장진호 전투 당시에는 말도 안 되는 추위로 투시 롤을 제외한 수많은 전투식량이 상하거나 먹지 못하게 되었고, 이를 먹은 병사들은 더 심한 복통에 시달렸던 관계로 설사를 하였다가 그대로 얼어 붙으며 엄청난 고통을 겪었다고 전해진다.
각종 오물뿐만 아니라 환자나 시신도 문제이다. 평상시엔 약국에서 돈내고 당연히 사던 생필품과 의약품의 공급은 끊기고 남은 물량은 즉각 사재기 당하며, 그뿐만이 아니라 주거 환경이 파괴된 상황에서 제대로인 생활, 치료는 불가능하다. 또한 이들을 제때 조치하지 않고 방치하면 악취를 풍기고 주변을 오염시키며 전염병의 매개체가 된다.
21세기 들어 위생 문제는 다소 나아지고 있지만 1, 2차 세계대전 당시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국가들이 막장 수준의 위생 상태를 보였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과 관련된 문헌이나 기록을 보면 협상국 동맹국 할 것 없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열악한 위생 상태 하에서 전쟁을 치렀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56] 2차 세계대전의 참혹한 전장이었던 스탈린그라드에서는 땅이 얼어붙은 관계로 시체를 묻지 못해 날이 풀릴 때까지 그냥 방치해 뒀다. 그나마의 위안거리는 이런 추운 날씨에선 시체도 얼어붙어서 썩는 냄새가 덜 난다는 사실이다. 물론 봄이 되자마자 썩기 시작해서 모아다 태워버렸는데, 이 작업을 맡은 소련군들의 PTSD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군인으로 징집되고 전쟁상황이 벌어지면 행동 하나하나가 통제된다. 음식을 먹고 싶어도 그나마 여유가 있을 때 물과 아껴둔 간식을 먹는 정도를 제외하면 마음대로 먹을 수 없고, 담배를 피우고 싶어도 맘대로 피울 수 없으며, 힘들어서 중간에 쉬고 싶어도 마음대로 쉬지 못하게 된다. 시간 내에 집결지로 합류해야 하는데 누구 하나가 쉬겠다고 해서 시간을 지체할 수는, 보급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배고프다고 식량을 무작정 먹어버릴 수도 없다. 장기 포위전 상황에서 그건 죽음과 동의어다.
이렇게 통제가 되는 이유는 전시에는 개인적인 행동으로 아군에게 피해를 주는 상황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개인 하나가 행동을 잘못하면 부대 하나가 현장에서 증발해 버릴 수 있다. 적의 공격을 받아서 숨어 있는데 누구 하나가 담배를 피워서 적군들이 담뱃불이나 연기, 혹은 냄새로 위치를 알아내서 박격포를 쏜다면? 이 예시는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실제로 다국적군 상대로 탈레반이 자주 했던 짓이다. 어디서 담배 한 번 잘못 피웠다가 박격포탄이 날아와서 분대가 몰살당한다든가, 은엄폐가 조금 소홀했다가 소부대가 대규모 탈레반에게 포위되어 전멸한다든가.
미군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를 때 같은 상황이면 장비와 병력의 건강을 관리하면서 싸울 수 있어서 피해가 최소화되기는 하는데, 그 천조국 미군도 진짜 전쟁 상황에서는 개별 병사의 희생 같은 건 추후에 보상을 철저하게 해 주긴 했어도 전쟁 그 시점에는 수백, 수천 명 죽는 것도 크게 의식하지 않았다.
9.2. 경제적 피해[편집]
예로부터 고대 중국에서도 "전쟁이 한 번 일어나면 천 금[57][58] 그대로 소요된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쟁은 시대를 불문하고 일단 한 번 시작하면 심지어 전쟁이 끝난 이후까지도 밑도 끝도없이 돈을 집어삼키는 경제의 블랙홀과 같은 역할을 하며[59] , 궁극적으로는 후술되는 모든 문제에 직간접적인 원인을 제공하는 가장 큰 전쟁피해 중 하나다. 당장 2차 세계대전만 봐도 궁극적으로는 독일에서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세계적 경제 대공황을 극복하지 못하고 불거진 혼란이[60] 아돌프 히틀러라는 결과를 낸 산물임을 알 수 있다.
여하튼 후술하겠지만 공방수단이 고도로 발전한 현대 장비들의 억소리 나는 규모를 제외하고서라도 기본적으로 만~십만 단위가 넘을 수도 있는 인건비와 유지 및 보수비용을 국가 재정에서 출차하여 언제 끝날 지도 모르는 전쟁 내내 평소보다 많이 지속적으로 보급해줘야 되는데 돈이 결코 적게 들어갈 수가 없다. 전쟁에 관해 잘 모르는 경우, '"보급이란 원래 적에게서 취하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상대가 물자나 보급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고, 더군다나 이길지 질지 한 치 앞도 보지 못하는 것이 전쟁의 특성인데, 적의 물자에 보급을 의존하는 것은 말 그대로 도박에 지나지 않는다. 민간인 약탈은 당연히 주민들의 반발심을 사고 적의 내통자를 늘려주는 꼴이다.
이러한 만큼 국소전만 해도 상당한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특히나 국가 대 국가 차원의 총력전이라면 최우선적으로 이러한 자금 유지에 온 국력을 유지해야 될 판으로, 당연히 내수 경기나[61] 복지는 위축될 수밖에 없고, 자금을 충당하기 위한 세율은 미친 듯이 높아진다.[62] 이러한 상황에 뿌리는 국채는 전쟁이 장기화되거나 해당 국가가 패색이 짙어질수록 오히려 나라 잡는 아킬레스건이 되는 판국이며, 전쟁 후에도 전쟁 여파가 자국까지 영향이 미쳤을 경우, 경우에 따라 재건 비용만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어갈 수도 있는데 여기에 승전국이 배상금까지 요구하면 답이 없다. 특히나 이런 점 때문에 전쟁에 대한 무분별한 보상의식이 아무런 경계를 갖지 못한 근대까지만 해도 이러한 의식의 산물이 패전국가의 초인플레이션까지 불러일으켰다.
미래로 갈수록 전쟁의 이러한 현상은 더욱 심화되어간다. 근대전만 와도 무기 하나하나가 일반 국민들이 생각하기 힘들 만큼의 거금이라, 미 해군에서는 함포 1발을 쏠때마다 구호 겸 비아냥으로 '또 캐딜락 1대 날아간다'(One more Cadillac on the way)라고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로 엄청난 수준이다. 한국산 5.56mm 탄 하나의 가격은 대략 500원 정도지만, 대충 500 곱하기 1탄창(30발들이 STANAG 기준.) × 6(단독군장기준.) 곱하기 대한민국 육군 병력 수 46만 4천 하면 417억 6천만원이라는 후덜덜한 금액이 나온다. 게다가 이거 총값+해공군에 돌려질 총과 탄약+기타 비용을 몽땅 제외한, 전 육군에 보급할 즉응탄과 예비탄 값이다.[63] 참고로 저게 8천만발 정도인데, 한국군 정도면 소구경탄은 수억발도 산다.
보병무기가 이 정도라면 다른 건 어떨지 상상이 잘 안 갈 것이다. 그나마 싼 편에 속하는 전차가 최소 몇 십억 원이고, 전투기라면 500억 원은 기본이며, 스텔스 성능이 들어간 스텔스기라면 기본적으로 1,000억 원 쯤 된다. 소모품으로 생각되기 쉬운 포탄이나 폭탄도 수백만 원을 왔다갔다하며, 미사일도 가장 싼 게 억 단위, 비싼 건 수백억 단위이다. ICBM 개발국들 치고 핵보유국 아닌 나라가 없는 게 괜한 게 아니다. 핵을 장착하지 않고 배치하기에는 가격 대비 효과가 너무 낮기 때문이다. 이런 걸 이기기 위해서 기본적으로 수천 발을 쏘고 또 쏠텐데, 미국 수준의 부국이 아니고서야 웬만한 나라들의 경제라면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대량생산으로 단가 낮추는 것도 한계가 있다.
가장 최근의 예시 중 하나로 미군은 제한전이었던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서 도합 18년(실질적으로는 11년)간 공식적으로 1조 5,000억 달러의 전비를 소모했다. 비공식적으로는 무려 5조 6,000억 달러에 이른다. 조세 저항이 큰 미국의 특성상 이를 세금 인상으로 해결할 수는 없으니, 복지 예산이나 기타 예산의 축소를 통해 재원을 확보했을 것인데, 예상대로 조 바이든 대통령이 전쟁을 끝내자마자 미국 국내 인프라 재건과 국민 복지에 엄청난 예산을 투자함으로써 미국 또한 어디서 돈이 나오는 게 아니라 지금까지 사회 유지에 필요한 지출을 대폭 줄여서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번외로 소개하자면 전쟁에 드는 경제적인 소모에 관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현대에서 전쟁으로 한 국가가 터지면 그 국가가 만들어내던 물품들도 터지면서 세계 시장에 큰 타격을 준다. 세계 시장은 철저하게 가성비로 분업화되어 보잘 것 없어보이는 한 나라의 물품에도 의존도가 유래없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세계 시장에서 맡은 역할인 에너지, 곡물 공급이 끊기면서 전 세계의 물가가 올라간게 대표적이다.
9.3. 사회적 혼란[편집]
"아침에 독일군 추격대가 우리 마을에 불을 질렀어… 숲으로 도망친 사람들만 목숨을 부지했지. 뭐라도 챙겨 나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럴 정신이 어딨어. 빈손으로, 심지어는 빵 한 조각도 챙기지 못하고, 아무것도 없이 도망쳤어. 달걀도 기름도 없었지. 밤에 우리 이웃인 나스차 아줌마가 자기 딸을 막 때리는 거야. 계속 운다고. 아줌마네는 애들이 다섯이었어. 큰딸 율레치카는 내 친구였고. 율레치카는 몸이 약했어. 늘 병을 달고 살았지… 그리고 밑으로 아들만 넷이었는데, 다 어리고, 누나처럼 배가 고프다고 칭얼댔어.
그러자 나스차 아줌마가 그만 정신이 나가버렸지 뭐야. '우우우' 괴상한 소리를 내고… 밤에 율레치카가 아줌마에게 애원하는 소리가 들렸어… '엄마, 나, 물에 빠뜨리지 마. 안 그럴게… 먹을 거 달라고 안 조를게. 다시는 안 그럴게… '
다음날 아침, 율레치카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나스차 아줌마… 우리는 마을로 다시 돌아왔어… 하지만 불타버린 마을이 온전히 남아 있을 리 없었지. 나스차 아줌마는 며칠 뒤에 자기 집 마당의 까맣게 탄 사과나무에 목을 맸어. 곧 발이 땅에 닿을 듯이 그렇게 나무에 걸려 있었지. 아이들은 엄마 곁에 서서 계속 먹을 걸 달라고 보채고…."
- 독소전쟁 당시 소련에서 벌어진 한 자녀 살해 사건에 대한 증언
-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박은정 역, 문학동네(2015), p.50~51[68]
[69]
전쟁이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기본적인 사회기능이 무너지고 치안이 매우 불안정해져서 살인 및 강간과 절도 등 범죄가 빈발한다. 전쟁의 포화가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경우, 법과 질서를 수행하는 공권력이 사라지니 무법 천지로 변해 생각하기도 힘든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일어난다. 심지어 질서 체계가 유지되고 있었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 다 알고 지내던 연평도 포격전 때만 해도 빈집털이가 있었을 정도다.
홀로코스트 관련 재현작들을 보면 더더욱 심각하다. 아트 슈피겔만의 쥐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주는 척하면서 팔아먹거나 믿었던 동료들에게 팔려가는 등 별의 별 상황이 다 나온다. 즉 극한상황이라 한 인간의 인격과 윤리관, 생활 양식 등 모든 것들이 무너진다.
평화로울 때 만들어진 법률, 사회적인 규율, 도덕적인 가치관 등이 총체적으로 붕괴한다는 점에서, 전쟁이 사람 사는 사회를 망치는 방법은 정말 끝이 없다. 당장 적의 물자를 노획하면 그나마 다행이지 전쟁 상황의 도덕적 해이와 파괴적 기회주의를 틈타 아군이 써야하는 물자부터 빼돌려 나라와 사회를 지켜야 할 군인이나, 보호의 대상이 되어야 할 민간인들은 떼로 굶고 얼어죽는 와중에도 부귀영화를 쌓아 먹는 인간들 같이 평시에는 드러나지 않을 악한 인간상이 얼마나 많이 생기는지는 역사가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전쟁은 정치적 공동체의 물리적 생존이란 절대적인 명제로 평상시에는 떳떳하지 못한 일 처리 과정이나 폭압적인 조직 논리를 정상화시키고, 여기서 더 막나가면 오히려 이를 사회 구성원들에게 권장하기 시작하여 장기적으로 그 사회의 집단적 가치관 자체를 크게 망가뜨려 놓는다.
또한 전쟁이 무서운 까닭은 침략당하지 않는 국가, 폭탄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상술했듯 우선 간접적으로 경제가 어려워지니 살림이 팍팍하고, 사람이 극히 이기적으로 바뀐다. 당장 사스,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메르스 등의 전염병 사태에서 보여지는 생태만 봐도 세계적으로 가게 생필품 등이 모두 동이 나고, 현지에 살던 교민들을 송환해서 유치하려는 행동이 극단적으로 반발을 얻는 판인데, 이것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간다고 생각해보자.
특히 본인이 사는 지역이나 도시가 전쟁의 직접적 피해를 입지 않았더라도, 몰려드는 피난민 문제도 심각할 것이다. 6.25 전쟁 관련 문학 작품을 읽어보면 피 튀기는 전장의 묘사도 있지만 인간이 얼마나 비인간화하는지 드러난다. 중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 나온 기억 속의 들꽃을 보면, 주인공의 부모님이 얼마나 악질로 바뀌었는지 알 수 있다.
본토에서 전쟁을 치르는 것도 아닌 미국 역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을 치르면서 아메리칸 드림에 대한 회의감,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에 대한 분노, 각종 사회복지 시스템의 붕괴와 이에 따른 사회적 피폐화, 전례 없는 민간 사회의 군사화와 위기의식 확산 등의 사회적 문제를 겪고 있다.
9.4. 일반인 피해[편집]
현대에는 민간인 피해가 커지는 추세이다. 오히려 전투력 유지를 위해 애쓰는 군인들의 피해가 더 적다는 말이 생길 정도이다. 다만 아직까지도 각 집단에서의 비율로 치면 당연히 군인이 더 많이 죽는다. 특히 전투에 참가한 군인들은 전투에 참가하지 않고 잘 보호되고 있는 일반인들 보다 더 죽을 확률이 높다. 이런 차이는 옛날에 비해서 인구가 크게 증가한 것에 비하여 군대 규모는 상대적으로 덜 증가했기 때문에 양적으로 일반인들이 더 많이 죽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학살이 자주 발생했던 한국전쟁만 봐도 각각 비율로 치자면 일반인들이 훨씬 덜 죽었다. 일반인은 2,000만 명이 넘어 한국군과 북한군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사상자가 군인에 비하여 그리 많지 않았다. #
현재는 핵무기와 같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면서 핵전쟁이 일어나면 인류가 스스로 만든 무기의 위력으로 전 인류의 생존이 위험할 지경이다. 다만 냉전 당시의 핵전력 최고조 단계에서도 핵무기가 폭발하면 지구가 박살난다든지, 전 인류가 멸종한다든지 등은 현대의 연구에서는 실제론 약간 과장된 말이다. 그러나 주요 도시들이 모두 부서지고 국가 행정 및 통치체계가 무너져 기존의 발전이 한순간에 멈추면서 적어도 수십 년, 길게는 수백 년에 걸쳐 열릴 혼돈의 시대가 문제라면 문제. 가장 큰 문제점은 핵전쟁 자체의 피해가 아니라 이로 인해 벌어지는 국가 행정체계의 붕괴 및 전사회적 무법사태다. 그런 상황을 표현한 것으로 매드 맥스 시리즈 영화가 있다.
고대와 중세의 전쟁도 군인들끼리만 하는 신사적인 전쟁이 아니었다. 아즈텍이나 마야의 전쟁, 혹은 야노마뫼족의 전쟁 등을 보면 농업이 미발달한 사회에서는 전쟁으로 온 일반인 사망자의 비율이 현대전에서보다 훨씬 높다. 현대에는 인구가 많아서 더 큰 규모의 살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일 정도. 게다가 전쟁으로 인한 질병, 기아 등으로 사망하는 사람의 비율은 근대적 구호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은 고대에도 무시할 수 없는 정도였다. 고대 부터 얼마나 심했는가면 저항하면 학살이고 저항하지 않으면 노동력착취로 일관하던 시대로, 민간인을 신경썼다면 십자군이란 군대가 동로마를 약탈하는일은 없어야 하고, 칭기즈 칸은 환경전사라는 희대의 대학살마를 비꼬는 단어가 탄생할 수가 없다. 삼국지관련 문서에 보면 XX난이 일어난 뒤 식인판이 벌어졌다거나, 수습하기 위해 구휼 정책을 펴지만 막장이었다거나 하는 서술을 찾기가 매우 쉽다. 앞의 언급은 이러한 파급 효과보다는 전투로 살상한 인명만을 고려한 것으로 보면 될 것이다.
전쟁이 벌어지면 주로 약자, 특히 그중에서도 약소국 측 민간인이 최대 피해자가 된다. 그동안의 전쟁 결과를 바탕으로 한 통계 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총탄이나 포격에 휘말리거나 약탈당하고 적군에게 죽임을 당할 수 있다.[70] 제네바 조약에는 일반인을 건드리지 말라고 되어있지만 이건 패전국을 확실하게 무력화시키기 위한 법이나 마찬가지라서 잘 알려진 대로 PKO 중에도 지키지 않는 자들이 허다하다. 언론통제나 선전등으로 그리고 마지막엔 승전국이 되면 모든걸 덮어버릴수 있기 때문, 뿐만 아니라 종교적, 민족적인 갈등이 존재하는 집단간에 전쟁을 하는 경우 상대편의 군인과 포로는 물론 일반인들까지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 과거의 십자군들이나, 유고슬라비아 내전때도 조직적인 학살을 국가에서 주도했다. 그렇다고 민간인들이 군인들을 좋게 대해주었냐면 그건 또 아닌데, 전투가 끝나면 민간인들이 버려진 부상병을 죽이고 시체를 약탈하는 일은 일상이었다.
따라서 전쟁, 특히 현대 사회에서 전쟁이란 갈수록 의도적으로 후방에서 군수 산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닌 100% 무관한 순수한 일반인이란걸 정치적, 군사적 차원에서 배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고, 그런 탓에 전쟁은 내가 하기 싫다고 꼭 피해갈 수 없다. 한번 불어닥치면 남녀노소 역시 가리지 않는다. 때문에 내가 관심이 없더라도 어느 정도는 사전지식이 있는 편이 여러 사람들의 미래를 위해서도 좋다. 이 때문에 레프 트로츠키는 "당신은 전쟁에 관심이 없을지 몰라도, 전쟁은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라고 말한 바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 현재의 국방력과 적국 및 가상적국의 화력을 보았을 때 벌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긴 하지만, 만약 대륙에서부터 적이 밀고 내려올 경우 반도의 특성 상 바다를 건널 수 없다. 때문에 피난을 가지 않으면 도시에서 현대전의 특성 상 강력한 화력에 그대로 노출되어 문자 그대로 학살당하거나, 피난을 간다쳐도 남부지역까지 밀린다면 물리적으로 도망갈 수 없어 역시 대규모 사상자가 날 수밖에 없다.[71] 물론 그 지경쯤 되면 국제사회가 엄청난 압박을 가할 테지만 당장 바로 위에 자기네 국민들도 제대로 대우 안해주는 놈들이 있는지라...
9.5. 학살[편집]
덧붙여 냉전이 와해한 뒤 이데올로기 문제는 많이 사라졌지만,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과 한국군+UN군이 서로 엎치락뒤치락 할 때, 점령군이 바뀔 때마다 마을(이나 도시)에서 숙청 작업으로 주민들끼리 서로 학살하는 일이 흔했다. 북한군이 점령하면 자유주의, 자본주의 주장한 사람들을 죽이고 다음 날 미국이 점령하면 어제의 공산주의자들을 죽이는 식이다. 몇몇 지역에서는 밤에 게릴라가 점령하면 정부군 측에 도움을 준 사람들이 죽고, 낮에는 그 반대 상황인 초막장이던 일도 있었다. 이 와중에 이념이라곤 전혀 모르는 촌로들까지 같이 휩쓸려서 학살을 겪곤 했다. 그래서 휴전 60년이 넘었지만 그때의 후유증으로 지금까지도 서로를 원수처럼 여기며 전혀 왕래하지 않는 마을들도 있다. 특히 지방 산간지역에서는 모두 같은 날 죽어서 마을 제사를 한날에 같이 하는 때도 많다.
이러한 학살에 관하여 또 전쟁이란 상황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고찰해 볼 여지가 있다. 6.25 전쟁 당시 마을 하나 하나 찾아다니며 양민학살을 저질렀던 북한, 15년 전에 딱 그 선례를 남긴 스페인 내전을 비롯한 전간기 유럽, 아시아의 각종 민족, 이데올로기적 분쟁, 현대 중동, 동남아, 아프리카의 조직화된 학살은 양민들이 누구편인지 확실하게 만들기 위해 일부러 저질렀던 것이다. 제3자, 중립 세력, 휘말리기 원치 않는 사람들을 조직적으로 자기 진영에 들어 간다는 선택을 강제하기 위해 학살을 의도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은 거의 모든 근현대사의 내전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전쟁이라는 상황은 이렇게 인간의 목숨을 기만의 도구로 취급하는 것을 당연하게 만든다.
냉전이 종식되었지만 이념이 아닌 종교와 민족적 갈등으로 촉발된 전쟁은 상대국 민간인들을 조직적으로 학살하는 경우가 많아서 전쟁에서의 학살은 끊이지 않고 있다.
9.6. 전쟁범죄[편집]
전쟁 중에도 정도를 벗어난 일들을 하면 처벌을 받으며 현대에는 전시국제법도 형성되었다. 북한이나 소말리아 같은 나라의 군사 지도자들이 아니라면 일반적으로 정도에 벗어난 짓을 하는 군인들을 처벌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의식과 군법이 있다. 과거보다는 많이 나아져서 승전국 군대여도 전시국제법을 어기거나 하면 자체적으로 전범들을 처벌을 하거나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각종 매체가 발달한 것도 있고 민주주의 국가 국민들의 평균 인권 의식이 상승하면서 전쟁 범죄를 저지른 사실이 금방 세계에 알려지고 또한 그 파급력도 강해졌기 때문이다. 과거의 전쟁에서는 종종 포로는 물론 적 민간인까지 싸그리 몰살시켜 진격 속도를 높여 승리하는 사례도 있었고 점령지를 확실히 통제하기 위해 원주민을 몰살시키고 자국민을 이주시키기도 했지만 이 사실이 주변국이나 자국에 널리 알려지지도 않았고 알고 있는 이들도 다들 '나와 상관없는 남의 죽음'으로만 인식했다. 현대는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난 전쟁으로도 이쪽의 민생이 뒤흔들리는 지구촌 사회이므로 뉴스로 보도되는 전쟁범죄의 희생자들이 더 이상 나와 상관없는 남이 아니게 된다. 또한 이렇게 영향받는 제3국과의 교류 없이는 단 하루도 지속할 수 없는 것이 현대전이다. 따라서 전쟁 당사자들은 자국의 전쟁범죄는 감추려고 애쓰고 적군의 전쟁 범죄는 적극적으로 SNS 등을 활용해 널리 알리며 적군에 대한 지지를 끊고 자신을 지지해주기를 항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예전처럼 이기면 묻어버릴 수도 있는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승리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 요소가 된 것이다.
9.7. 환경 파괴[편집]
전쟁의 특성상 인간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경시되기 쉽지만, 전쟁은 환경 자체에도 상당한 피해를 입힐뿐만 아니라 지형자체가 바뀔 수도 있다. 고강도의 포격이나 폭격은 사람을 죽일 뿐만 아니라 지형 그 자체를 바꿔버릴 정도로 강력하다. 잦은 전투가 일어난 고지의 경우 전투가 끝나고 달의 크레이터 마냥 높이가 수십 미터 낮아졌다든지, 혹은 민둥산이 된다. 비가 내리자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 인공연못이 생겼다든지 하는 기록들도 많이 존재한다. 일례로 네바다급 전함의 함포 사격에서 발사된 고폭탄 한 방이 터진 자리에는 수영장만 한 포탄 구멍이 생겼기 때문에 수영장 제조기(pool maker)라고 불렸다.
이렇다 보니 서식지가 파괴되고 동식물들이 직간접적으로 살상되는 건 기본이며, 군사 장비들을 사용하고 파괴, 방치하는 과정에서 각종 오염물질들이 대량으로 유출된다. 베트남전에서의 고엽제 살포, 걸프 전쟁에서 이라크 군의 유정 방화 및 원유 방출과 같이 아예 군사 작전을 명목으로 직접적인 환경 파괴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9.8. 전후 피해[편집]
"전쟁터에서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됐소...... 확실히! 내가 전쟁터에서 훨씬 괜찮은 인간이 된 건 사실이오. 그런 고초를 겪었는데 당연하지 않겠소? 수많은 고통을 봤고, 나 자신도 많은 고통을 겪었소. 그곳에선 살아가는 데 중요하지 않은 것들은 금방 제거돼버리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거든. 그곳에서 그걸 깨닫게 됐소......"
"하지만 전쟁도 우리에게 앙갚음을 했소. 우린 그 사실을 인정하기를 두려워하지만...... 전쟁이 우리를 쫓아와 나란히 가고 있소...... 우리 딸내미들 중에는 불행하게 사는 아이들이 많소. 그건 전쟁터에 나서 싸운 엄마[74]
들이 자기들이 살았던 전장의 방식으로 딸들을 키웠기 때문이오. 아빠들도 마찬가지고. 전선의 윤리로 말이오. 전쟁터에서 사람은, 당신한테 이미 말했듯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치를 지닌 사람인지 단박에 드러났소. 그곳에선 감출 필요가 없었거든. 우리 딸들은 세상엔 다른 방식의 삶도 있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소. 전쟁을 겪은 부모들이 딸들에게 이 세상에 감춰진 추악한 이면은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사실 전쟁 그 자체로 인한 피해는 크지 않을 때도 많다. 상대가 제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복구를 할 수도 없을 정도의 피해를 입히려고 하지는 않는다. 민족 또는 국민 말살 같은 건 생각보다 경제력과 인력, 기회비용이 많이 소모가 된다. 특히 민족주의의 발흥 이후 집단의 조직 능력과 저항력이 크게 향상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다. 인프라 역시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의 피해를 입히는 것보다 그걸 이용하는 편이 훨씬 이익이다. 실제로 2차 세계대전 때도 바르샤바나 도쿄 같은 극단적인 예를 제외하면 의외로 많은 도시들이 멀쩡한 편이었다.
인명 피해 역시 현대에는 상대를 다 죽이려고 전쟁을 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보통 그렇게 심각한 편은 아니다. 보통 징집된 성인 남성 세대가 전멸한다 해도 20대나 30대 남성에 한정되기에 그 이전 세대와 다음 세대를 이용하는 걸로 대체가 충분히 가능하고, 여차하면 여성 노동력을 재건에 투입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독소전쟁과 같이 극단적인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이건 나치의 공식적이고 계획적인 민간인 학살정책이 크고, 다른 나라는 그 정도 상황에 이른 사례가 없다. 전쟁을 일으킨 그 독일조차도 그 정도 피해는 입지 않았고, 민간인 인명 손실도 실상을 보면 해외 거주 독일계가 많지, 본토 피해는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를 제외하면 얼마 안 된다. 이건 독일 본토로 진입한 소련군이 너무 전쟁을 빨리 끝낸 게 크다. 또한 독일에 대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 민간인에 대한 보복을 가능한 한 막았다.
민족을 말살하고 도시들을 다 초토화시키는 일들은 과거에나 일어나는 편이었는데, 활동 범위가 좁아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국가들이 근본적으로 적기 때문에 국력을 굉장히 낭비해도 다른 세력들을 요즘처럼 신경 쓸 필요가 없는 고대 제국들 혹은 역청야전술까지 쓸 수 있는 과거 유목민들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들도 도시에서 대량학살을 한 경우는 흔하지 않고, 주로 농촌의 경작지를 초토화시키며 도시 인구도 말려죽이는 형태였다.[75]
전쟁 피해를 복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자국이 전쟁터가 되었다 해도 평균 수년 가량이다. 예컨대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해는 전후 복구가 휴전 전부터 이미 후방 지역에서는 시작됐고, 휴전과 동시에 서울을 비롯한 전방지역도 복구에 착수하여 아무리 늦게 잡아도 1955년 즈음에는 전쟁 전 수준으로 복구가 완료되었다. 간혹 1970년 즈음에야 복구됐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또한 전쟁 시기 성년이었던 세대가 자리를 잡고 경제성장에 전념하면서 극단적인 반공 분위기가 가라앉기 시작했기 때문일 뿐, 물질적 피해와는 별 관련이 없다.
그래도 전쟁이 문제가 되는 건 심리적인 충격과 더불어 앞서나가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뒤쳐지는 것 자체로 인한 국민들의 빈곤 의식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이 앞서 나가면서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짐에 따라 국민들의 상대적인 생활 수준은 떨어지기 마련이고, 또한 전쟁을 치른 결과 형성된 심리적 충격은 이후 그 사회를 한 세대 이상 트라우마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정신적으로 국민들이 패전했다면 패전에 대한 원인을 찾거나, 승전했어도 보상 받은 게 희생에 비해서 적다고 느끼면 사회에 대한 분노가 커지며 집단적 극단주의가 판치기 쉬운 정치적 환경이 마련된다.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낙후된 경제와 혼란한 정치에 대한 불만으로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전세계를 휩쓸었으며 결국 제2차 세계 대전이라는 홍역을 다시 한 번 치러야 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로도 각국의 독립운동가들 중 온건 노선을 추구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매카시즘이나 공산주의를 등에 업은 극단주의 독립운동가들도 더러 있었다. 이렇게 전쟁이 당사자들의 인간성을 말살하고, 사회를 폐쇄적이고 편집증적인 불안감에 몰아 넣고 일상적인 도덕관이 마비시키면 극단주의가 퍼지기 쉬운 환경이 된다. 1950~1980년대의 대한민국에 반공주의가 팽배해 있던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10. 전쟁 미화[편집]
Dulce bellum inexpertis.
겪어보지 않은 자에게 전쟁이란 아름다운 것이다.
전쟁을 시작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가 지도부의 결심과 더불어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전쟁을 벌이는 지도부는 그럴 듯한 명분과 함께 전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전쟁 미화는 전쟁하는 국가 지도부의 명분을 강화하고 국가 여론을 통일해 전쟁에 참여한 국민들의 지속적 적극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한 방법이고 이 때문에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다."라는 말이 나온 이유이다.
직설적으로는 막대한 부와 영토의 획득 같은 이익의 제시, 고상한 척 침략을 교묘하게 미화한 것으로는 나치 독일이 제시한 아리아 인종의 통합과 유럽의 정복, 일본제국이 제시한 대동아 공영권 같은 사례가 있다. 혹은 마음에 안드는 적대국을 공공의 적으로 선포하고 자국을 그 공공의 적을 응징하는 정의의 사도로 꾸미는 경우가 있다.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MD)를 가지고 세계평화를 위협한다며 미국이 벌인 이라크 전쟁이 그런 사례. 지금은 워낙 잘 알려졌고 미국 상원도 인정했다시피 이라크에 그런 무기는 없었다. 미국 내에서도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 부족하다는 인식 때문에 비판을 받는 전쟁이고 미국 할리우드와 같은 영화 문화업계 또한 이라크 전쟁 미화 영화보다 전쟁범죄와 명분없는 전쟁행위를 비판하는 영화가 더 많다.
국가는 전쟁에 참여한 군인들의 전공을 찬양하고 그들의 죽음을 드높이며 다른 국민들에게도 전쟁에 적극 참여해 국가 목적을 위해 숭고한 희생을 할 것을 독려했다. 전쟁 영화, 국영 뉴스 같은 국내 선전이 그 목적을 위해 만들어졌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이고 국가는 명분의 정당성과 자국군 찬양하며 선전하지만 정작 당시 전쟁에 참전자에 대한 대우가 매우 박한 경우[76] 가 많다.
하라다 가나메의 반전운동. 중앙일보
전쟁 영화랑 완전히 일치하는(=멋진) 전쟁은 역사상 단 하나도 없었다.[77][78] 참전 용사들이 액션성을 넣으며 영웅적인 서사를 적은 전쟁 영화를 절대 안 본다는 게 괜히 나온 말이 아니다. 전쟁의 이상과 현실의 괴리가 너무나도 심하며,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전쟁의 이유와 다르게 정의롭지 않은 일들이 훨씬 더 많이 터지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부 전선을 비롯한 20세기의 이데올로기가 체계화된 집단 증오가 끼어든 전쟁들은 비무장 민간인 학살 같은 명예와는 정반대의 것들이 오히려 일상화된다. 100인 참수 경쟁 문서에서 등장하는 살고 싶어서 발악하다 졸렬하게 죽은 전쟁 범죄자들은 악한 자들이 봐도 어이가 없을 것이다.
10.1. 사기를 위한 거짓 선전[편집]
전쟁은 절대로 마음 먹은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전선은 모든 부분에서 아군이 이길 순 없고 어느 한 곳은 아군에 불리하게 돌아가기 마련이다. 더 재수없으면 전선 전체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한다. 어느 한 전투에서 패배 소식과 사상자 수가 국내로 전해지면 국민들은 동요하고, 전쟁 지도부는 언론 통제로 여론을 조작했다.
심지어 나폴레옹 같은 영웅들조차 병사들을 징발하기 위해 전세가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이기고 있다고 프로파간다, 거짓 선동을 하기도 했으며, 현대에도 정확한 자료 수집을 위해 재조사를 해보면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어이없는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예를 들어, 베트남 전쟁에서 미국과 중국의 전략가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보고를 해서 필요한 군인들이나 물자를 지원받기도 했으나 그들의 보고에 의하면 곧 이길 것 같은 전쟁이 도무지 끝나지 않자 조사를 해보니 결과적으로 최소한 당시에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으로 판단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때 일본군 역시 적의 일부 군함을 격침시켜놓고 말도 안 되는 전과로 부풀렸고 그걸 진짜 믿은 상부의 지시에 의해 레이테 해전이 벌어져 박살이 나기도 했으며 병사들에게는 중국 역시 짧은 기한 안에 끝을 낼 수 있다고 선전했으나 항복시키려고 온갖 짓을 다해도 적이 항복할 생각을 하지 않아 병사들이 맛이 가기 시작했다.
심지어 베트남 전쟁이나 6.25 전쟁 등의 장군들의 회고록을 보면 대한민국도 그런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는 않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라 군사 교류가 자유롭고 투명하게 되면 작전 계획서나 각종 보급률 등을 기반으로 보다 정확한 사실이 알려질 가능성이 높다. 6.25 전쟁에 참전한 한국 우방국들도 전설적인 업적들이 있는데 이 역시 곧이 곧대로 믿기 어렵다.
당장 우리나라의 우크라이나 전쟁관련 뉴스만 보아도 대부분 우크라이나측의 자료를 인용,사용하여 우크라이나가 매우 선전하며 러시아를 압도하듯 보도하지만 정작 전황은 압도하는 측없이 서로 밀고 밀리며 싸우고있다.
10.2. 전쟁 낭만주의[편집]
국가의 선전과 사회 분위기에 이끌려 나라와 민족과 정의를 위해 전쟁에 참가하는 것을 낭만적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여러 시대에 걸쳐 존재했다. 그들은 전쟁에서 맹활약하여 역사에 이름이 남고, 설사 죽는 한이 있어도 명예로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구상의 수많은 전쟁과 수억명의 사상자들 중에서 이름이 남은 것은 극소수였다. 전쟁은 귀족과 평민을 막론하고 수많은 아들딸들을 전장에서 죽였고 대다수가 식별조차 안되어 이름 없는 시체 신세가 됐다. 당장 내가 살아남기 위해 남을 죽이고 또 누군가 나를 죽이는 참혹한 전장에서 명예와 낭만은 실종됐다. 황산벌이란 코믹 전쟁사극에서의 김품일의 대사처럼 폼~나게, 비~장하게, 장~렬하게 죽은 사람은 없었다. 무기에 잘리고 뚫리고 불타고 폭사하고 생화학 무기에 숨막혀죽고 식량 부족으로 굶주림과 추위에 얼어 죽었을 뿐이다. 화려하게 꽃피운 젊음을 누려야 할 젊은이들은 전장에서 허무하게 졌다. 그걸 누릴 본인이 죽고 없는데. 유가족인들 그걸 기꺼이 즐겁게 누리겠는가? 남은 것은 전사자 통지서와 몇몇 운 좋은 유가족들이 위로거리로 훈장이라는 별 의미도 없는 철쪼가리를 받았을 뿐이다.
셔먼은 미국 남북 전쟁에서 남군을 수도 없이 없애는데 공헌한 전쟁영웅이지만 그 역시 전쟁은 영광과 한참 동떨어져 있음을 역설했다.There is many a boy here today who looks on war as all glory, but, boys, it is all hell.
오늘날의 많은 젊은이들이 전쟁을 영광스럽게 보지. 그러나 젊은이들이여, 전쟁은 다 지옥이야.
미 육군 원수 윌리엄 테쿰세 셔먼#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애국심이 불타올라 군 입대를 자원했던 수많은 젊은이들과, 오랜 평화로 마땅히 전쟁을 겪어 본 적 없는 벨 에포크 시대 유럽의 중장년층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비스무리한 생각을 했었는데, 실제로 당대 많은 사람들이 전쟁에 대해 명예, 영광 따위의 낭만적인 서사시적 인식을 품고 있었다. 지금껏 알고 있는 전쟁은 소설에 나오는 멋진 전쟁영웅 주인공의 일대기나 당시 영화에 나오는 영광스러운 조국 군대의 돌격 장면에 패퇴하는 적군들 따위의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입대한 젊은이들이 꿈도 희망도 없는 잔혹한 전선에 도착하자마자 그 환상은 완전히 박살났다.[79] 제2차 세계 대전과는 달리 후방의 민간인 지역에 대규모 전략폭격을 하는 개념이 아직 발달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가끔씩 포격이나 폭격이 있긴 했어도 비교적 평화로웠던 후방의 민간인들은 여전히 전쟁터의 지옥같은 시궁창에 대하여 모르고 있었고, 심지어 도시에선 공원에서 참호전 놀이까지 즐길 정도였다. 자신의 아들과 남편들이 시궁창에서 구르고 있다는 걸 국민들에게 알려봤자 여론상 좋을 게 없었기 때문에 정부와 군 수뇌부에서도 현실을 가리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총력전이 길어지며 후방 역시 극심한 물자, 경제난을 겪고, 비행선과 폭격기, 파리 대포 등이 등장하며 때때로 후방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기도 했으며 가장 결정적으로 불구가 된 상이군인들, 제 형태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싸늘한 시신이 담긴 관짝들이 고향으로 끝없이 돌아오는 꼴을 보면서 이러한 낭만주의는 후방에서도 곧 사라졌다. 다만 이렇게 전선의 상황이 국민들에게 알려진 후에도 당시의 강한 국가주의와 애국심을 강조하는 분위상 차마 입대를 회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청년층 대부분은 스스로 사지로 걸어들어갔다.[80]
제2차 세계 대전 직전의 뮌헨 협정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독일의 도발에도 머뭇거렸던 이유가 흔히 네빌 체임벌린의 잘못으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여론주도층이던 중장년층 대부분이 전쟁이 일어날 수 있는 행위를 반대했고 체임벌린 역시 그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섣부른 행동을 하기가 힘들었다. 알다시피 당시의 여론 주도층들의 연령대는 과거 1차 세계 대전 참전자들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겪었던 끔찍한 일을 아들 세대가 또 다시 겪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체임벌린의 결정 역시 독단적으로 내린 것이 아닌 딜레마 속에서 그나마 취할 수 있었던 절충안이었다. 하지만 히틀러의 야욕은 체임벌린의 결정을 한참 뛰어넘어서 전쟁을 원하는 자들[81] 로 인해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결국 전쟁터에 다시 나가 지옥을 보아야 했다.[82] 그럼에도 전쟁은 끝나지 않고 계속되었다.
베트남 전쟁이 터져 남베트남의 공산화를 막고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하에 미군과, 한국군을 포함한 연합군이 파병되었지만, 베트남전은 그냥 단순한 냉전 시기의 이념 싸움이 아니라 프랑스로부터 독립하고자 한 베트남에 미국이 엮인 복합한 전쟁이어서 누구도 함부로 끼어들어선 안 될 전쟁이었다. 결국 베트남전은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났고 거기서 참전용사들이 얻어온 것은 그들이 생각했던 참전의 목적이 아닌, PTSD와 고엽제 후유증이었다.[83] 베트남전에 참전한 미군들 역시 이전처럼 영웅 대접은커녕 명분 없는 전쟁에 가서 베트남인들을 죽이고 온 자들이라고 미국내 언론과 시민들에게 비난받았고, 많은 불운한 미군 참전자들이 PTSD와 비난 여론으로 삶에 허무함을 겪거나 심하면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1. 전쟁 옹호[편집]
11.1. 전쟁은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다[편집]
전쟁 체제는 한 국가의 독립적인 체제가 존재하는 데 필요한 요소일뿐 아니라 정치 안정에도 필수불가결하다. 전쟁이 없으면 정부가 국민을 통치하는 '합법성'에 문제가 생긴다.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은 하나의 정부가 권리를 유지하는 기초를 제공해준다. 전쟁의 위협이 없는 정권은 결국 와해된다는 진리를 그동안의 역사가 증명해준다. 이러한 파괴적 작용은 개인 이익의 팽창과 불공정한 사회에 대한 원망, 기타 해체 요소에서 비롯된다. 전쟁의 가능성은 사회조직 구조를 유지하는 정치적 안정 요소다. 전쟁 가능성은 사회계층을 분명하게 유지하고 국민이 정부에 복종하도록 보장해준다.
아이언 마운틴 보고서 中
"모든 군인과 정치가들은 전쟁을 가볍게 여겨서도 두려워해서도 안 된다."
전쟁이 '우리'가 속한 정치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쟁만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주장이다.
조지 W. 부시 시절 네오콘 강경파들 역시 이러한 부류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이 권력을 잡고 있을 때에만 전쟁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반대하는 사람들은 비애국자로 몰아가기 때문에 전쟁광이라고 비판받았다. 여러 나라의 극단적 정치 세력에게서 의외로 자주 볼 수 있는 주장인데, 또 ISIL에 의한 테러 피해를 입은 국가들은 테러리스트와의 전쟁을 일으켜 씨를 말려야 된다고 주장한다.
남은 해결 수단이 정말로 전쟁뿐인 경우도 있다. 방어 전쟁도 이에 해당된다. 적이 전면적으로 침략해 오면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대개 맞서 싸우는 방법밖에 없기 때문이다.[84]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역시 뮌헨 협정 당시 영국과 프랑스가 여론의 반대를 감수하고 공세를 취했다면 독일이 항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집단의 이념 자체가 반인륜적이며 호전적인 집단의 경우 스스로도 전쟁을 피하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이런 이들이 외교적 해결책을 받아들이는 경우도 없기 때문에 전쟁밖에 답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가령 나치 독일, 무솔리니 정권과 같은 파시즘 정권은 파시즘의 특성상 지속적으로 세계를 향하여 전쟁 위협을 가했다.[85] IS 역시 전세계를 이슬람으로 정복하겠다는 광기에 찬 사상을 가지고 있어서 외교적인 해결책은 거의 기대하기 어려운 상대였다.
이유가 어찌되었건 전쟁은 필연적으로 이기는 쪽도 피해를 입기 때문에 문제 해결을 위해 전쟁을 할 수밖에 없는, 최후의 상황에서나 고려해볼 옵션이다. <손자병법>의 저자 손무조차도 최선의 승리는 싸우지 않고 원하는 바를 얻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 정도는 별거 아니야. 전쟁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마을이 공격을 받는다면 우리도 지키러 나가야지."
존 둘리틀, <둘리틀 선생의 바다 여행> 중
사회 구조의 개혁을 원하는 자들 중 전쟁이라는 방법을 찾는 자들 또한 있는데, 집이 한두 군데가 삐걱거린다고 집을 허물고 다시 지을 생각을 하는 꼴이다. 심지어 전쟁으로 국가가 처음부터 시작한다고 해도 나라가 나아진다는 보장 역시 없다. 전쟁으로 사람들이 죽더라도 남은 사람들의 정신이 개혁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전쟁 자체는 해결책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현대전에 다가올수록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의 가격과 가치는 폭등하고 있고, 그에 비례하여 무기들의 위력도 폭발적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전쟁에서 가장 많이 소모되고 파괴되는 "개인"의 가치도 윤리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대단히 올라가 있다. 즉 전쟁으로 무슨 문제를 해결할 수는 있겠지만, 전쟁 이후에는 국가의 존망이 걸리는 더 큰 문제가 따라붙게 되어 있다. 한마디로 뒷감당이 안 된다는 뜻이다.
가끔 전쟁이 없었다면 인류의 숫자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 지구가 인류 포화 상태에 빠져 엄청난 문제들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도 인류의 폭발적인 증가를 멈출 수는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자세한 내용은 인구 밀도 문서로.
11.2. 전쟁은 올바르다[편집]
상무적인 가치관을 가진 민족 집단 사이에서 간혹 나타난다. 바이킹의 북유럽 신화에서는 전투로 죽은 사람들을 위한 곳인 발할라가 따로 마련되어 있어서 영원한 전쟁을 즐길 수 있다는 게 하나의 예. 일본 역시 무인 집단이 집권한 막부의 역사적 경험이 있어 전투 자체는 명예롭다고 보는 가치관이 있다.
한편 힘 자체를 숭상하는 경우로 힘의 우위를 판단하기 위해 일종의 결투와 같이 어떠한 행위는 비겁하게 여겨져 피하는 등의 규칙이 생겨난다. 그러나 이러한 정형화된 규칙은 외부 세력에 의해서 파괴되기 십상이다.[86] 이렇게 규칙화된 전쟁과 전투에서 살상력을 제거한 것이 스포츠로 정착하기도 한다.
전쟁의 끔찍함은 잘 알려져있기 때문에 대체로 본인들이 행하려는 전쟁에 한해서 올바르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명분을 마련한다. 대부분의 경우 영토 확보이나 세력 확장을 위해 전쟁을 일으켰으면서도 개전 명분을 내세우는 것도 해당 전쟁이 올바르다고 선전하기 위함이다. 성전(聖戰) 역시 올바르다는 믿음 하에 벌어지는 전쟁이다.
그러한 명분이 설득력이 없거나 보편 윤리에 어긋나는 경우 전세계적으로 비난받는다. 전자의 사례로는 헐 노트가 사실상 전쟁을 강요한 것이라면서 진주만 공습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는 일본 제국이 있다. 후자의 경우 자신들의 영토 확장을 올바른 성전인 지하드라고 주장하는 ISIL이나, 다른 민족들을 아예 열등민족(Untermenschen)으로 간주하고 절멸시키려고 했던 나치 독일을 들 수 있다.
살육이나 잔학행위 등을 벌이기 위해서라는 등 잔혹하고 악한 행위를 의도적으로 추구하려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정도를 넘은 짓들을 했더라도 특수한 시대, 상황에 있었거나 당시 사람들을 정상적인 상태에 있었던 사람들이 아니라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한다. 위에서 든 나치 독일과 ISIL과 같이 본인들은 그것이 옳다고 믿을지언정 전인류의 보편적인 가치관으로서는 용납할 수 없는 경우는 종종 있다. 개인 단위에서도 악한 자들이 위선이라도 갖추려고 하는 것을 보면 악이라는 것은 국가 단위에서는 더더욱 드러내놓고 추구하기에 어려운 듯하다. 악한 가치관은 대개 소수를 위한 가치관이라 다수에게 선전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선하다고도 악하다고도 주장하지 않은 채 전쟁을 일으키는 것도 가능성 중 하나로서는 존재한다. 가령 아무리 일이 커져봤자 두 사람만 다치고 끝날 개인간의 다툼의 경우 그럴 수 있겠거니 하고 넘어가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7 문단에서 다룬 것처럼 전쟁은 피해가 워낙에 크기 때문에 특별히 가치관을 구축하지 않으면 대개 나쁜 것으로 여겨지기 마련이다. 게임이나 영화를 아무리 실감나게 만들어도 전쟁의 악함에 대해서 잘 느끼지 못할 위험이 상존해 있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가상 매체로서는 정말 사람이 죽는 등의 피해를 구현하는 것은 (기술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사전적 정의상으로나[87] )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방어를 위한 전쟁은 정당하다고 옹호받을 수 있다. 적의 침략이 이미 벌어진 상황에서 이에 맞서는 것은 국가적 정당방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침략전쟁을 하면서도 침략을 받은 척 자작극을 펼치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동유럽에서 슬라브인을 몰아내고 레벤스라움을 확보하는 것을 게르만족의 역사적 사명이라고 생각하던 나치 독일 역시 폴란드 침공 당시에 폴란드의 기습을 당했다고 위장했을 정도이다.[88] 한편 침략이 일어나기도 전에 침략이 벌어질 것을 예방하기 위한 예방전쟁은 국제법상 인정되기는 하나 그 용인의 폭이 매우 좁다.
먼저 전쟁을 일으켰는데도 옹호받는 경우도 있다. 고대 로마 시대에 자유를 얻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 스파르타쿠스가 대표적인 예다. 전쟁광이라고 욕할 수가 없는 게 그는 로마의 노예였다. 자신을 노예로 부리던 자들을 죽이고 도망쳤지만 살기 위해서는 산적질을 할 수밖에 없었고 로마군은 그를 잡아 죽이기 위해 쫓아왔다. 결국 그는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인명을 죽였지만 그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로마인들이 '물건'에 불과한 노예를 상대로 협상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평화적인 방법으로는 노예라는 멍에를 벗을 수 없으니 스파르타쿠스에게 남은 길은 전쟁 뿐이었다. 결국 그는 전사했고 노예군은 전멸했지만 스파르타쿠스는 자유의 투사로 그 이름을 남겼으며 볼테르는 스파르타쿠스가 일으킨 전쟁을 '가장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평가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파르타쿠스를 옹호한다.
간혹 약육강식의 원리에 입각하여 우수한 국가가 그렇지 않은 국가를 침략하는 것이 응당하다고 생각하는 주장도 있다. 제국주의 시대에는 사실상 약육강식이었던 서구 열강의 식민지화가 횡행하였고 서구 유럽의 근대성을 바탕으로 이를 백인의 의무로 포장하였다. 그러나 능력의 우수성과 지배·복속 관계의 도덕적 올바름을 묶어서 논하는 것은 비형식적 논리 중 범주의 오류이다. 비록 국가간에는 불법적인 행위를 처벌할 세계정부와 같은 기구가 부재하기는 하나, 개인간의 사례로 비유해보았을 때 비도덕적인 일이어도 뛰어난 능력을 요구하는 경우가 있음은 물론이다. 요컨대 '약육강식'이라는 말이 능력의 우수성을 지배·복속 관계의 도덕적 올바름에 결부시키는(=능력이 모자르면 복속되는 것이 옳다) 주장을 담고 있으므로, 위와 같은 주장을 합당화하기 위해선 약육강식이 정말 사실인지를 먼저 입증해야 할 것이다.
11.3. 전쟁은 인류 발전에 기여한다[편집]
자세한 내용은 전쟁발전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1.4. 전쟁은 돈이 된다[편집]
일부 말로는 전쟁 중 군수 물자 장사로 이득을 보는 사람과 그 외의 장사로 이득 보는 사람이 많다고 하며, 그건 사실이다. 한 예로 영국의 조셉 시릴 뱀포스라는 사람은 제2차 세계 대전 직후에 '전쟁이 끝났으니 이제 이것저것 고치겠지.' 하는 생각으로 JCB[89] 라는 건설기계 회사를 세워 떼돈을 벌었다. 러일전쟁으로 파산 직전까지 갔던 일본도 1차 세계대전으로 이때 처음으로 제조업이 농업의 비율을 앞지르며 매년 10% 이상의 경제성장률로 일약 공업국가로 탈바꿈하게 됐으며, 한국 전쟁이 없었다면 지금의 경제 대국 일본이 되는건 복구하기까지 시간이 상당히 걸렸을 것이다. 한국도 베트남 전쟁을 통해 한강의 기적이 나오게 된 핵심 원동력이기도 했으니. 포드 역시 지프로 전쟁 중에도, 그 후에도 대박을 거두었다. 그래도 당연히 전쟁으로 이득을 보는 사람은 극소수일 뿐이며 불이익을 보는 사람이 더 많다.
전쟁이라는 행위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다. 전쟁경제 문서로. 전쟁이 난다면 고용률이 높아지며 잉여인력과 잉여자산 등은 싸그리 불타 없어지고 사회가 말소되므로 이 위에 새로운 토대를 지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통계적 착시이다. 고용률은 생산량과 상당한 비례 관계를 지니고 일반적으로 전쟁으로 인해 손익계산서에서는 생산량이 증가할 수도 있지만 대차대조표를 살피면 순자산은 감소하기 때문이다. 전쟁에 돈을 퍼붓고 남은 돈으로 후방에 남은 사람들을 공장에 데리고가서 고용률이 높아지는건 고용 자체도 이유겠지만 절대량이 줄어서 높아보이는 거다.
국가 단위의 경제를 판단할 때는 생산량보다 순자산이 더 올바른 지표이다. 예컨대 어떤 원인으로 당신의 집이 파괴된다면 손익계산서에서는 그 건물을 복구하거나 새로운 건물을 건설하느라 생산량이 증가할 수도 있지만 대차대조표에서는 자산이 감소한 것으로 나온다.
12. 악한 이들과 전쟁 수행력[편집]
전쟁 중에는 평시에 벌어지지 않는 살인, 강간 등 악한 행위들이 여럿 펼쳐지기 때문에, 평시에 이러한 행위에 익숙한 이들은 전시에 더 활약하지 않을까 하는 추측이 있다.
통제 하에서 사회 부적응자이나 범죄자들을 병사로서 활용하려는 시도가 있다. 형벌 부대 같은 사례. 흔히 악독한 살인마들이나 깡패 등 사회부적응자들을 모아서 부대로 만들면 어쨌든지간에 싸우기는 잘 싸우지 않을까 하는 인식이 많지만, 군대라는 곳은 일반 사회보다도 더 억압적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사회 규범에 잘 따르는 일반인들이 군인으로서도 더 훌륭한 경우가 많다. 인류 역사에서는 범죄자들만이 아니라 평범하거나 약한 사람들도 아무렇지 않게 공격성과 잔인성을 발휘한 사례가 많으며 오히려 범죄자들이 면죄부가 주어진 일반인들에게 학살당할 수도 있다. 실제 역사에서도 반사회적인 인간 혹은 범죄자는 유사시 타깃이 되기 쉬웠다.
한편 사회 부적응자나 범죄자들을 병사로 활용한 것이 아닌 군인들을 악인으로 만든 사례도 있다.[90] 이들은 남에게 손해를 끼쳐도 개의치 않으며 PTSD에도 좀 더 면역력을 지닌다. 미군도 이를 시도한 결과 적을 죽이기 위한 사격을 가할 수 있는 병사 비율이 10%~15%에서 베트남 전쟁 때 최대 90% 이상까지 올라가는 등 전투력은 향상됐으나 상관 살해 등 문제가 발생되어 점진적으로 포기하였다. 데이브 그로스먼에 의하면 끝까지 악인이 되지 못한 군인들도 10% 정도 나왔다고 한다. 재미있게도 처음부터 그런 훈련 자체가 필요없는 악한 군인들도 10% 정도 있었다.
나폴레옹[91] 역시 악한 인간이 뛰어난 군인이라며 군대 구성에 활용했지만 그 결과 러시아 원정에서는 진짜 지옥을 보여주었다. 부르고뉴 하사관이나 몽테스키외 페젠작 공작, 하인리히 포슬러 등의 회고록에 의하면 점차 패색이 짙어지고 위험한 상황에 빠지자 다른 동료들이 불에 타 죽어가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고 거기서 온기를 쬐고 있거나 아직 죽지도 않은 동료를 죽이거나 죽게 내버려두고 가진 것을 빼앗거나 하는 등 거의 통제불능의 상태로 날뛴 군인들이 많았다. 이런 인간들이다 보니 그들과 싸운 적들이 그들을 악마라고 생각하고 두려워할 만큼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반면에 주로 신앙심이나 옛 도덕에 의존한 러시아군은 비록 초기에 프랑스군에 의해 크게 참패를 당하고 있었으나 지고 있을 때도 프랑스군에 비하여 훨씬 영웅적으로 행동했다. 그리고 러시아는 결국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최종적으로 승리했다.
21세기 들어서도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가 전황이 불리해지자 온갖 강력범죄자들을 사면을 미끼로 전쟁터로 보냈지만 크게 두드러지는 전투력을 보이고 있지는 못하고 있다.
13. 인간 이외의 종의 전쟁[편집]
전쟁을 인간만이 한다고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곤충들 중 벌과 개미, 흰개미도 전쟁을 한다. 흰개미는 종족 특성상 대부분 개미의 침공을 방어하는 방어전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개미는 흰개미와 흰개미들의 알, 애벌레가 단백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먹이로 삼으려고 흰개미들을 공격한다. 개미들끼리 전쟁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 어느 한 쪽이 전멸할 때까지 양측은 살육을 반복한다. 개미산으로 폭격을 하고, 턱으로 백병전을 벌이며 적군의 고치를 약탈해 노예로 부리는 등 사회성이 짙은 곤충답게 개미들의 전쟁은 생각보다 인간의 전쟁과 많이 닮은 모습을 보여준다.
그 밖에는 돌고래나 침팬지, 고릴라, 늑대 같은 사회생활을 하는 동물 가운데도 사회 구조가 발달한 종들은 대부분 전쟁을 한다. 사자나 늑대 따위도 영역을 두고 집단간에 전쟁을 한다. 심지어 다른 동물들과도 전쟁을 한다. 가령 하이애나 패거리들과. 사실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대부분 전쟁을 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전쟁을 벌이는 종들은 자기 집단의 승리를 위해 다른 종을 쓰는 때도 많고, 가끔은 다른 종으로 이루어진 집단과 연합해서 싸우는 종의 벽을 넘어선 연합 전투를 벌이는 일도 있다. 다만 인간은 종의 월등한 능력에 기반하여 동물과 대등한 관계를 맺지 않기 때문에 인간의 전쟁에서는 이러한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 기병이나 코끼리 병, 혹은 불타는 돼지 같은 것은 동물과의 연합이 아니라 동물을 생체병기로 사용한 것이다.
흑사병, 스페인 독감, 코로나 19 등의 전염병 대확산은 인간과 질병(혹은 바이러스, 세균과 같은 병원체) 사이의 전쟁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바이러스나 세균과 같은 병원체는 매우 작아 통상적인 인간 스케일의 무기가 통하지 않으며 인간이 100% 통제할 수 없는 생물/화학적 방법을 쓸 수밖에 없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라 해도 아직 완벽한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만약 이들 병원체를 물리적으로 공격하면서 100% 인간의 통제가 가능한 나노머신이 현실화된다면 이들과의 전쟁 양상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호주에서는 에뮤와 전쟁을 벌인 적이 있다. 이름하여 에뮤 전쟁. 단순한 동물 소탕이었지만 어쨌든 제한되기는 했어도 기관총과 같은 실전무기도 쓰였고 테크니컬 활용에 에뮤 측의 반격도 있었어 '전쟁'이라고 불린 것인데, 더 큰 문제는 졌다는 것. 한편 호주는 토끼와 낙타를 상대로는 생태계 차원에서 정말 진지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다.
14. 목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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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 전투 목록[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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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전쟁의 양상에 따른 분류[편집]
15.1. 세부 구분[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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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관련 이미지 및 영상[편집]
17. 명언[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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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관련 문서[편집]
- 6.25 전쟁
- 가공의 전쟁
- 군대 관련 정보
- 군사 관련 정보
- 무기 관련 정보
- 역사 관련 정보
- 군국주의
- 군사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 선전포고
- 현대전
- 시가전
- 세계의 화약고
- 전후세대
- 정보기관
- 정복
- 승자없는 싸움
- 명장 vs 명장
- 명언/전쟁
- 문민통제
- 반전주의
- 백년 전쟁
- 전리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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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목록
- 전쟁/요리
- 전쟁/행동지침
- 전시상황
- 전쟁특수
- 전범
- 전범기업
- 전범 재판
- 전투
- 약탈
- 명령을 따랐을 뿐
[55] 대표적으로 평양같은 경우는 조선시대 평양부라고 불리며 제 1의 도시인 경성부에 이어 제 2의 도시 역할을 맡았지만, 미군의 폭격으로 기반시설이 싸그리 박살나고서 전쟁 직후에는 보통문과 은행 건물만이 남아있었다.[56] 단, 미군은 초기에 같은 문제를 겪고 머리를 굴린 후 전투식량으로 지급된 통조림을 먹고 남은 깡통을 따로 버리지 않고 그대로 발밑에 버려 진흙 대신 잔뜩 쌓인 깡통을 밟고 다니는 식으로 위생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었다.[57] 무게로 금 천 냥이라고 가정한 뒤, 요즘 시세로 대충 계산해봐도 70억 안팎을 웃도는 돈이다. 그럼에도 후술할 여러 내용들을 고려하면 결코 과장 없는 금액이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지금 전쟁 나면 70억 이상은 당연히 들고, 과거에도 70억 정도는 당연히 들었을 것이다. 성벽, 건물도 많이 파괴될 것이고 사망한 병사들, 그리고 병사들을 위한 군량미를 수송하기 위한 자원, 파괴되어 못 쓰게 된 농작지까지 합친다면...[58] 현대 전쟁은 전면전 기준 개전하자마자 즉시 70억이 우스울 정도로 큰 돈이 소모된다. 당장 순항미사일 한발 한발이 몇억에서 몇십억을 호가하는데 탄도미사일처럼 수백억대를 호가하는 미사일들도 전쟁 초기에 선제타격을 위해 수백 수천발이 날아다닌다. 70조가 안쓰이면 다행일 지경이다.[59] 비교적 그 규모가 현대보다도 적은 옛날의 예시만 보더라도 대표적으로 수나라의 경우, 온갖 토목공사와 주지육림급 사치로 국고를 미친듯이 낭비하던 양제가 주저앉은 결정적인 원인이 무리하게 재정을 바닥까지 긁어모았던 고구려 정복 원정의 실패에 따른 연쇄 반응이다.[60] 당시 독일 수준에서 말도 안 되는 금액의 배상금+1차대전에서 과도하게 펼친 군수 사업으로 미국이 잠시 휘청거리다가 → 남은 자금으로 경제개발 → 경제 버블 → 터짐(대공황) → 전세계 공황 → 더블로 개판인 독일에서 나치당 집권 까지 이어진다.[61] 허나 전쟁은 돈이 된다 문단에서도 나오지만 다국적 기업 및 전쟁으로 인한 수요 증가로 오히려 호황을 누리게 될 분야는 예외다. 물론 이를 제외한 절대 다수는 굶주리게 될 확률이 높고 이들 또한 전쟁이 끝난 경우를 대비하지 않는다면 거품 감소로 인해 엄청난 손해를 보게 될 확률이 높다.[62] 당장 감기 같은 사소한 질병에 몇 만 몇 십만의 진료비를 내야 된다거나, 여름겨울에 전기세가 몇 배는 뛰어오른다고 생각해 본다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2020년에 대유행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만 해도 대봉쇄라는 단어로 대표되는 심각한 전세계적 경기 둔화를 가져온 판인데, 전쟁이 가져오는 불경기는 이보다 몇 배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63] 대강 계산한 것이니 정확하지 않은 추정치이긴 하다.[64] 한화로 대략 100만원을 약간 밑도는 금액이다.[65] 당시 미국 병사들은 월급으로 60에서 70달러 정도, 일당으로 계산하면 2달러 남짓을 받았다.[66] 21세기 현재의 액면가로도 약 3,000만 원의 거금이지만, 저 당시엔 훨씬 더 엄청난 돈이었다. 1943년의 25,000달러는 2019년 기준으로 371,646.45달러, 한화로 대략 4억 원이라은 어마어마한 돈이다. #[67] 진지하게 따지자면 계산에 들어간 병사들의 봉급, 군대의 유지비용까지 더한 것이기에 이 돈을 나눠주면 이미 전개한 군대의 철수비용 및 병사들의 인건비는 감당할 책임이 없어지지만, 어쨌든 내용의 요점인 전쟁이 그 정도로 비경제적인 행위라는 걸 잘 보여주는 일화이다. 참고로 진짜로 이렇게 그냥 돈을 쥐어주고 적군을 돌려보낸 역사도 있다. 전연의 맹 같은 경우.[68] 이 증언은 원래는 초고에 포함되어 있었으나, 그 끔찍함 때문에 '영웅적인 소비에트 인민의 항전' 신화를 지키고자 한 소련 정부의 검열 과정에서 잘려나갔고, 개방 이후에야 수록될 수 있었다.[69]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가 증언자에 대한 정보를 수록하지 않아, 해당 증언자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같은 책에서 알렉시예비치는 많은 참전용사들이 자신을 익명으로 남기고자 했다고 전한다.[70] 바르샤바 1944만 봐도 군인과 상관없는 일반인들까지 전쟁에서 가차없이 학살당하는것을 제대로 알수 있다.[71] 그나마 돈 있거나 사전에 이상을 감지 하고 일본을 경유해서 제3국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해외 피난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워진다.[72] 영상 출처는 AP통신 공식 유튜브 채널이다. 이곳에서는 이틀에 걸쳐 28구의 시신들이 발견되었다. 피해자의 가족들이 현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으며, '알마사 스마일로비치'라는 이름의 여성은 어머니 '세리파'가 세르비아인 이웃(슬로보단카 하일로비치라는 이름의 세르비아계 여성. 이 사람도 살해당했다.)의 집에 들러 같이 커피를 마시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세르비아계 병사들에게 변을 당했다며 오열하고 있다.[73] 영상 출처는 이스라엘 야드 바셈 홀로코스트 박물관의 공식 유튜브 채널이다. 당시 리예파야 해변 사구에서는 약 5천에서 7천 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학살당했다. 친위대 특무대와 보안대 주도 하에 오르포(질서경찰), 국방군 육군 및 해군, 그리고 라트비아인 부역자들이 구덩이 속에 유대인들을 한 줄로 세우고 총살한 후 흙으로 덮는 것을 반복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영상에서 확인 가능하듯 수많은 국방군, 친위대, 민병대원들과 심지어는 주민들이 이 사건을 목격하고도 막지 않았으며, 오히려 구경하며 학살을 방관하였다.
이 영상은 메멜(현 리투아니아 클라이페다 시)에서 라트비아 리가로 가던 도중 현장을 목격한 독일 해군 중사 라인하르트 비너(Reinhard Wiener)가 8mm 필름 코닥 카메라를 통해 촬영하였다. 비너는 전후까지 생존하였고, 1981년에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의 상세 정황을 설명하였다. 그 인터뷰 영상 또한 야드 바셈 박물관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인터뷰 영상 1, 인터뷰 영상 2[74] 당시 소련은 상황이 급하다 보니까 여성들까지 전투원으로 일선에 배치돼 직접 독일군과 싸우는 상황이었다. 류드밀라 파블리첸코와 리디아 리트뱌크가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 인터뷰의 인터뷰이(남자)는 본인은 물론 부인도 참전용사였고, 군대에서, 전선에서 만나 결혼한 부부였다.[출처]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박은정 역, 문학동네(2015), p.198~199.[75] 허나 코소보 내전과 같이 현대에 벌어진 전쟁에서도 민족적 갈등이 개입된 경우, 대량 학살이 자행된 경우가 있기에 없다고는 볼 수 없다. 시리아 내전에서도 민간인과 반정부군이 섞여있어 정부군의 폭격에 민간인이 휘말려 희생되는 사례가 많이 발생했다. 물론 군인에 비해 사망하는 비율은 민간이 더 적지만 삶의 터전에서 전쟁에 휘말려 죽는 비극은 현대에도 언제든지 벌어질 수 있다.[76] 지금이야 미국은 모병제로 인해 군인에 대한 존경이 높지만 징집제로 펼치던 베트남전 참전용사들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학살자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채 살아야 했다. 모병제로 전환 이후 발발한 걸프전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을 겪은 참전자들 일부는 PTSD를 겪어 심리치료를 받아야 했으나 많은 참전자들로 인해 심리치료를 못 받아 사회 부적응자가 되기도 하였다.[77] 이런 것을 제대로 고증하는 전쟁 관련 작품은 거의 없다. 한국 영화 역시 마찬가지인데, 그나마 알려진 것으로는 태극기 휘날리며, 고지전정도다. 일본 역시 자국군 미화가 심해서 영화는 물론이고 애니메이션 중에서도 코드 기아스처럼 전쟁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지휘관의 이야기를 그려내는 게 아닌 기동전사 건담처럼 병사나 전사를 주역으로 삼는 작품 가운데에는 전혀 없다.[78] 미국 다큐에서 남북전쟁의 다른 면을 보여주었는데 바로 부상당해 후방으로 이송 된 병사들이다. 전쟁의 비참함이 극대화 되는데 부상 당해 후방으로 온 이들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당연히 마취제도 없이 그냥 팔다리를 절단하고 그로 인해 쇼크사하고 설사 안 죽어도 균에 감염되어 죽고 (이 시절은 의학계에서 위생을 신경쓰지 않던 시절이었다.) 절단한 팔다리가 산처럼 쌓여있고, 고통에 비명을 지르고, 구더기가 가득한 병사 등 전쟁의 참모습을 제대로 부여주었다. 오히려 전장에서 죽은 이들이 다행일 정도로 비참한 모습의 병사들이었다. 그나마 미국에서 전쟁의 참혹함을 표현한 드라마가 밴드 오브 브라더스로 다른 시각으로 보면 101 공수사단의 영웅적인 스토리로 보일수 있지만 PTSD나 총상, 전쟁이 진행될 수록 사라져가는 동료들 등 참모습을 보여준다.[79] 동부전선, 발칸, 캅카스, 중동 등의 지역에서는 말, 기차, 장갑차를 이용한 기동전이 주가 되었고 서부전선 역시 초반에는 참호전 외 형태의 전투도 벌어졌다.[80] 특히 귀족 등 사회 주도층의 자제들은 노블레스 오블리주 사상으로 대부분 앞장서서 하급 장교로 자원입대했는데, 이런 하급 장교들은 일반병들의 사기 독려를 명목으로 항상 최선두에 서서 전진해야 했기 때문에 생존 비율은 일반 병사들보다도 현저히 낮았다. 실제로 전후에 이렇게 아들들이 모조리 전쟁터에서 죽어버려 가계가 끊기거나 양자를 들여야 했던 귀족가들이 유럽에 넘쳐났다.[81] 전쟁을 일으킨 히틀러가 정작 전장에서 죽다 살아나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렸다는 점이 참 아이러니. 인간의 광기가 얼머나 무서운 건지 잘 보여준다.[82] 그나마 영국은 지원자 한정이었지만 소련은 청년층이 거의 갈려나가다 보니 1차대전 참전용사들 상당수가 2차대전 때도 40대가 넘어간 나이에 더욱더 잔혹해진 전쟁터로 끌려가 목숨을 걸고 싸워야 했다.[83] 베트남전의 참전으로 대한민국은 미국에게서 국군 현대화와 외화벌이, 전투 경험과 베트남 관련 사업을 획득하긴 했다. 그러나 그것을 대가로 한 참전용사들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다. 참전용사들의 피해는 지금도 유공자 관련법으로 국가가 책임지는 중이지만, 물가 변화를 반영하지 않은 탓에 굉장히 애매해졌다.[84] 제한전의 경우 적도 속전속결을 원하기 때문에 이미 전투가 몇 번 있었던 상황에서도 평화적 해법이 있을 수도 있다. 고려-거란 전쟁에서의 서희의 담판이 대표적인 사례이다.[85] 이 때문에 2차대전은 "파시즘 때문에 결국에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전쟁"이라는 평도 있다. 이는 모두가 어떻게든 전쟁을 회피하려는 노력을 시도했던(7월 위기 참고) 1차대전과는 다른 점이다.[86] 여몽연합군의 일본원정에서도 일본인 사이의 전쟁 규칙에 익숙하던 일본군이 종과 징을 치면서 진격하는 것이 패배를 초래했다. 춘추전국시대 당시 초나라가 강을 건널 때까지 기다려줬다가 패배한 송양공의 송양지인(宋襄之仁)의 사례 역시 그러한 류로 볼 수 있다.[87] 만약 신체에 직접적 손상을 입힐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다면 그것은 더이상 '가상 매체'라고 하기 어렵다. 만약 폭탄의 파괴력을 그대로 구현하는 폭탄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가상의 폭탄이 아니라 전송 가능한 형태의 실제 폭탄이다.[88] 폴란드 침공 문서에서도 언급하듯이 이것이 자작극이라는 사실은 1945년 뉘른베르크 국제군사재판에서야 밝혀졌다.[89] 나무위키에 항목이 개설된 신용카드사와는 관계없다.[90] 흔히 악인을 떠올릴 때 사회부적응자나 범죄자들을 예로 들지만 이들은 규범을 잘 따르지 못하는 성향 때문에 부수적으로 악하게 된 이들이다. 여기서 말하는 악인은 악한 행위를 하기 위해서 손해도 감수할 수 있는 경향이 강한 인간을 의미한다.[91] 사실 주변인들 회고록에 의하면 나폴레옹 본인부터가 보통 사람들보다 악한 면이 있었다.[92] 사실 한국군의 훈련 부족과 철갑탄 재고 부족 그리고 대전차포 본연의 (매복)임무보단 사단 화력의 부족으로 인해 전방에서 직사포로 사용하던 한국군의 운용방식이 큰 문제였다. 실제로 철갑탄을 충분히 소지한 일부 숙련된 부대가 치른 몇몇 전투에서 SU-76M 자주포는 물론 T-34 전차를 격파하였는데, 특히 청주전투에서 1문이 T-34/85 3대를 격파한 사례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