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특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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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1. 개요
2. 사례
3. 21세기에는?


1. 개요[편집]


전쟁특별수요(戰爭特別需要, Special demand for war) 또는 전쟁특수(戰爭特需)란 전쟁이 발발하거나 이를 준비할 때 군용품 및 무기, 식량, 의약품 등 군인들이 전장에서 사용하는 필수품이 요구됨에 따라 발생하는 특별수요이다.

교전국의 전장이 본토와 멀어 경제운영이 가능할 경우에는 막대한 배상금과 군수물자 수출을 통한 경제활성화 등 전쟁특수를 누릴 수 있는데, 제1차 세계 대전 종반부터 세계 대공황 이전까지의 일본 경제와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의 미국 경제, 베트남 전쟁 당시의 한국 등이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 특히 1차대전부터 대공황 이전까지의 일본 경제는 쑥대밭이 된 유럽의 산업기반을 대신해서 일본의 제조업이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이 시기의 호황을 '대전경기'라고 부를 정도였다.[1] 다이쇼 데모크라시도 이런 경제호황을 배경으로 형성된 것이다.

그러나 교전국의 본토가 전장이 될 경우에는 교전국 내 산업시설로 물자를 생산하고 조달하는 능력이 파괴되는 경우가 다반사라 인접한 제3국이 전쟁특수를 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는 6.25 전쟁 당시의 일본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물건을 판매할 때 거두어지는 세금, 군수물자 생산을 위한 투자와 고용이 늘기 때문에 국고가 증대한다. 덕분에 현실에서 일어나는 어부지리의 유형들 가운데 제3자가 얻는 이익이 가장 큰 유형이기도 하다.

고대 로마의 원정, 십자군 전쟁, 몽골 제국의 원정처럼 세계구급은 아니더라도 전쟁은 언제나 존재해왔고 전쟁특수 또한 비일비재한 일이였다.


2. 사례[편집]


미국은 대양을 사이에 두고 있다는 입지를 발판으로 유럽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전쟁에서 한발 물러나 있었다. 물론 미국의 입지 조건상 그런 거 없었어도 될 나라였지만. 훗날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미국이 직접 참전하게 될 때까지 미국은 수많은 전쟁특수로 한몫 두둑히 챙길 수 있었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장 박태균 교수가 노구치 유키오[2]의 분석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20세기 일본의 총력전 경제.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어떤 의미에선 지금까지도 당시 프로이센의 총력전 경제를 극복하지 못하고 전쟁특수에 의지하는 전쟁경제의 대표적 국가라고 일본 내부에서의 자조적인 평가가 있을 정도다. 메이지 유신 이후 청일전쟁, 러일전쟁, 제1차 세계 대전등 몇번이나 제국주의 충돌로 발생하거나 일으킨 전쟁에서 힘의 논리에 따라 열강의 도움을 받아 본토가 아닌 동아시아를 전쟁터 삼아 전쟁특수로 경제호황을 누렸고, 심지어 제1차 세계 대전의 승전국이 되기도 했다. 그 약빨이 빠짐과 동시에 찾아온 대공황도 1931년 만주사변을 일으켜 만주국을 수탈하면서 타개하려 했고, 그걸로도 모자라자 중일전쟁태평양전쟁을 동시에 일으키는 짓으로 극한까지 쥐어짠 총력전을 벌였다.

그렇게 한계까지 쥐어짜 총력전에서 패하고 제2차 세계 대전 패전국이 되고 나서고 채 5년도 지나지 않아 공산주의 소련태평양 진출을 막기 위한 방패로 낙점받아 미국과 최우선 우방국이 되었다. 이런 식으로 전쟁경제,병참경제 시스템을 이어가던 패전 5년 뒤 한국전쟁이 터지자, UN군이 비참전국 중 전화의 위협에서도 벗어나 있었으면서도 한국과 가장 인접한 일본에 병참기지와 주둔지역으로 활용하게 되면서 미군을 비롯한 다국적 UN군이 주둔하면서 사용한 돈과 물자를 생산해 판매한 돈을 바탕으로 경제를 재건했고, 미군들을 위한 군수품을 생산하면서 최신 기술을 손에 넣고 미국식 대량생산 기술을 배웠다. 6.25 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은 일본이 다시 전쟁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일본의 경제 재건과 공업력 회복 조치에 소극적이었으나 한반도에서 가까운 곳에 군수물자 생산 공장이 필요해지자 이 계획을 수정하여 일본의 경제를 빠르게 재건하게 된다. 요시다 시게루가 했다고 알려진(물론 실제 발언은 크게 다르다) 이제 일본은 살았다!가 일본의 전쟁특수를 간단히 요약해 주는 말이다. 거기다, 하술할 한국의 전쟁특수로 알려진 베트남 전쟁조차도 실제로는 일본도 같이 전쟁특수를 누렸다.

한국은 베트남 전쟁의 참전이라는 형태로 전쟁특수를 얻어냈다. 대한민국의 지리적 특성상 베트남 전쟁의 직접적 특수를 누리기는 어려웠으나 전쟁에 전투 병력을 파병하는 것에 대한 반대급부 형식으로 여러 경제적인 지원을 받았다. 먼저 미국에 일부 군수물자를 공급하였으며, 이 돈과 함께 파병 장병 및 노동자들의 월급 해외송금 중 일부를 기반으로 여러 경제 개발 사업을 진행하였는데, 대표적으로 경부고속도로를 들 수 있다. 게다가 이 때 쌓은 건축기술로 1980년대 이후에 중동에서도 돈을 벌었다. 당시 대한민국의 높으신 분들은 미국 등이 능력껏 늘려보라고 쥐어준 돈을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방법을 잘 알았고, 무엇보다 한국전쟁 이후 경제 성과 대결로 전환된 체제 경쟁에서 지면 미국에게 버림받을 가능성이 높았기에[3]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는 절박함도 있어서 전쟁특수를 최대한으로 활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순수한 의미의 전쟁특수라고는 보기 어려운게, 도합 30만에 가까운 인력을 파병했기 때문에 사실상 참전이나 다름 없었고, 그 과정에서 서로 북한과 대리전을 벌였으며[4] 68년 이후부터는 북한이 한국의 참전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1.21 사태를 비롯한 각종 군사도발을 일으켜 안보위기를 여러번 초래했기 때문에, 그만큼 국내 안보와 안정을 위해 필요이상의 군비지출도 한 만큼 베트남 전쟁을 일방적인 전쟁특수라고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다만, 결과적으로는 베트남전 파병 한국군의 군수/물자 생산을 한국에서 맡도록 허가를 따오면서 통조림, 군복, 군화, 기타 물자 생산능력 등, 한국의 경공업 능력이 완벽히 갖춰졌다. 또한 노획한 공산권 무기, 그리고 무엇보다도 미국의 무기들, 특히 M16을 미국 몰래 한국으로 들이며[5] 국방과학연구소들이 한국산 무기를 만들어 2020년대 현재 자주국방을 이루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 전쟁특수로 경공업을 마스터한 덕에 중공업으로 나아가는 올바른 단계를 거쳤고, 결국 중진국 함정에서 탈출하는 데 기여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3. 21세기에는?[편집]


90년대 말에 접어들어 잃어버린 10년에 이르는 경제불황이 닥친 일본에서는 다시 한반도에 전쟁이 벌어지면 일본 역시 특수로 부활하지 않을까 하는 소리가 나오곤 했다. 하지만 정작 일본 경제학자들도 50년대의 전쟁특수는 불가능하며 오히려 당시 미국이 부담한 비용 만큼의 책임을 지금의 일본에게 부담시킬 것이며 전쟁 난민으로 일본의 사회적-경제적 현실만 악화될 것으로 우려한다. 거기다 지원 댓가로 돈이나 자원 혹은 독도 같은 영토 요구도 못한다. 만약 일본이 이런 요구하면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다. 상술한대로 일본 대장성 고위관료를 역임한 경제전문가조차, 일본경제의 잃어버린 30년이 생긴건 이런 20세기 군국주의때나 먹히는 총력전 경제를 창조적으로 깨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이 30년 장기 불황의 늪에 빠졌다고 공공연하게 말할 정도다.[6]

사실 소소하게나마 21세기에서도 한국은 전쟁특수를 보고있다. 테러와의 전쟁이니 이라크전이니 하며 미군이 투입된 전쟁터에서 상대가 숨어있는 것 같거나 적이 멀리 있거나 해도 무조건 자동으로 갈기고 봤기에 총알이 미국 민간 시장의 탄환 가격을 폭증시킬 정도로 수요가 부족해졌고 때문에 서방권 탄약을 생산하는 업체 및 국가 중에서 군용으로 쓸만한 신뢰성을 갖추면서도 탄환 가격이 비교적 저렴한 한국제 탄약을 대량으로 수입했기 때문이다. 사실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터키 등 상당히 많은 국가에서 한국제 무기들을 많이 사들여서 이따금 한글이 적힌 무기/탄약들이 목격되기도 한다.

그리고 미국의 대규모 개입으로 탄생한 친서방 국가나 조직은 미군의 영향으로 서방제 무기로 갈아타게 되는데 역시나 가성비가 출중한 한국제 무기도 구입하기 때문이다. 사실 한국 말고도 이라크전으로 발생한 수많은 수요 때문에 전쟁특수를 본 국가가 제법 있다. 허나 대한민국에서는 유사시 북한, 나아가 중일러와의 총력전에 대비하기 위해 과잉 비축을 해가며 군수산업을 유지하는 것이라 해외의 전쟁특수는 부차적인 것에 불과하다.

이라크 전쟁 이후 한국은 공군을 재건하려는 이라크와 필리핀에 T-50, FA-50을 팔았고 K-2라던지 국산 총기 일부가 중소국가들의 군경용 무기로 꽤 팔려나갔다. 현궁은 비공식적으로 팔려서 국내보다 중동에서 먼저 실전을 치뤘다. 게다가 중국의 팽창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신냉전 기운이 전세계를 돌면서 한국산 무기의 수요가 늘었다. K-9 자주포는 인도와 호주와 이집트, 북유럽 각국의 러브콜을 받아 방산 효자상품이 되었고 2022년 대한민국-폴란드 방산계약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본의 아니게 전쟁으로 로또를 맞았다.

양안관계가 악화되고 중국의 위협이 가시화되면서 대만의 안보가 점점 위태로워지자, 미국은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지 않던 정책을 뒤바꿔서 대만에 M1 에이브람스 탱크를 판매하고 대만이 가진 구형 F-16을 최신 F-16V로 업그레이드를 해주면서 떼돈을 벌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2022년 9월에도 대만에 하푼과 사이드와인더 등 1.5조원 어치의 미국산 무기를 판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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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같은 시기에 중립을 지켰던 스웨덴도 유럽 경제 재건에 필요한 물자를 공급하면서 대호황을 누렸다. 그리고 급속히 확대된 제조업 노동자들을 기반으로 처음으로 스웨덴사회민주노동당이 집권하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복지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2] 1940~ 대장성 관료출신 경제학자, 국립 히토츠바시대 명예교수. 일본 경제학계의 거물로 1940년대 혁신관료들이 군부와 손잡고 만들어 놓은 총력전 체제(1940년 체제)가 2차대전 패전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어서 경제재건을 이룩했다는 그동안의 통설과는 완전히 반대되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버블 붕괴 이후의 장기불황(잃어버린 30년)도 IT혁명으로 인해서 1940년체제가 한계에 달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분석한다. 국내에선 2022년 <일본이 선진국에서 탈락하는 날>이란 자극적인 제목의 책이 번역출판되면서 대중들에게 많이 알려졌다.[3] 실제로 당시 경제 발전의 이유 중 하나로 미군 철수를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이 제대로 된 가치를 입증 못하면 남베트남을 비롯한 동남아처럼 될 테니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해야 한다는 것. 사실 냉전 때 미국은 유럽과 일본을 제외한 동맹국은 필요에 의해 가차 없이 포기하곤 했다. 인도-파키스탄 분쟁에서 파키스탄의 지원에 소극적이었으며, 결국 인도의 괴뢰국이나 다름없는 방글라데시의 건국을 묵인하기도 했다.유럽 또한 2차대전 참전 전만해도 비추축 세력 중 가장 강한 국력과 군사력을 가졌음에도 국내의 고립주의 심화로 군수물자 지원 등 소극적으로만 전쟁에 나섰다.[4] 북한도 몰래 공군 조종사 위주로 파병한 것이 이후 드러났다.[5] 미국도 이걸 모르는 건 아니어서 조치를 취하긴 했지만, 한국은 남베트남군과 달리 공산권에게 무기를 팔아먹는 짓을 하는 게 아니라 모국으로 보내 공산권에 데해 무장할 국산무기 연구를 한다는 것도 미국이 알아내고 있었기에 어느정도 눈감아주고 넘어갔으며, 나중엔 아예 한국에게 M16 라이센스 생산도 허가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게 한국의 K2 소총. 또한 총 뿐만 아니라 여러 미국산 군용 장비들도 월남전 당시 들여 분해 및 연구하여 국산무기를 스스로 만드는 오늘날에 이르렀다.[6] 대한민국도 베트남 전쟁이 끝나자 바로 과잉투자,과잉생산으로 인한 불황+오일쇼크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세계 경제 침체까지 엮여 70년대 말 심각한 경제위기가 왔고 그것이 10.26 사건으로 이어지는 박정희 정권의 갑작스런 붕괴와 무관하지 않다. 전두환 정권이 김재익을 내세워 이런 경제구조를 신속하게 깨는 과정에서 국민들도 무지막지한 고금리를 감당하면서 버텨냈기에 3저 호황을 맞을 수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