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고등학교 야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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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전주고등학교로고.png
전주고등학교 야구부
(Jeonju High School)
창단
1925년(99주년) /1977년(47주년)
소속 리그
전라권
감독
주창훈[1]
우승 기록[2]
1회





대회
우승
준우승
4강
대통령배
-
1회(2022)
1회(1982)
청룡기
-
-
-
황금사자기
1회(1985)
-
1회(1984)
봉황대기
-
-
-
이마트배
-
1회(2019)
-


1. 연혁
3. 출신 선수[3]
4. 여담
4.1. 연고권 관련
5. 관련 문서
6. 둘러보기




파일:2022 전주고등학교 야구부.jpg

전주고등학교 야구부


1. 연혁[편집]


긴 역사, 부족한 우승, 그런데 프로 100승 투수, 거포 외야수명 포수, 심지어 전직 메이저리거들의 모교. 흑역사까지도 있다

1925년에 야구부가 시작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큰 영향력은 없었던 것으로 보이고, 1960년대 말에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군산상고의 돌풍과 전국적인 고교야구 붐에 자극을 받았는지 1976년부터 야구부 재건 운동을 시작하여 1977년에 재건에 성공, 전국 무대에 데뷔하기에 이른다. 재건 후, 1978년부터 1981년까지 4년 연속 봉황대기 8강에 오르면서 저력을 보였다.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공헌했으나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사망한 김대현, 해태 타이거즈의 지명을 받았지만 프로에 입단하지 않고 한국실업야구에 남아 실업야구의 마지막 해였던 2002년까지 뛴 백재우[4]가 당시 주축 선수였다. 1982년 대통령배 4강, 1984년 황금사자기 4강에 이어 마침내 1985년 황금사자기 결승전에서 진흥고를 누르고, 최초의 창단으로 따지면 60년만에 첫 우승의 감격을 누렸다. 이 때의 주역이 된 선수가 훗날 쌍방울에서 뛴 좌완 박성기다.

그 뒤 쌍방울 레이더스의 창단 이후, 군산상고와 함께 쌍방울의 선수 수급의 주된 팀이 되어 김원형이나 박경완의 모교로 명성을 날렸다. 그러나 좋은 이야기는 여기까지고,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1985년 우승 이후 전주고 야구부의 성적은 그야말로 만년 약체였고 타팀에 비해 쌍방울의 연고지 내 고교가 군산상고와 전주고 이렇게 단 2개 학교에 불과해 쌍방울이 전력보강을 하는데 늘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도 신용운, 박정권, 최형우처럼 프로 무대를 수놓는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명맥은 이어갔지만, 2011년에는 선수 부족으로 해체 일보직전까지 몰리는 위기를 맞았다.[5] 다행히 수습이 되면서 야구부의 명맥은 유지하는 중. 다만 기대를 걸었던 10구단 유치 경쟁에서 전주시가 밀려버리고, 설상가상 연고 구단이 2001년부터 2013년까지 KIA 타이거즈에서 지역과 전혀 관련이 없는 2014년 부터 NC 다이노스로 변경된 탓에 미래는 장담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6] 그래도 2016년부터 연고구단 NC 다이노스가 개최하는 다이노스 고교야구 윈터파이널에 참가하는 등 꾸준히 구단의 후원과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한 때 20명이 안 되는 인원으로 운영하기도 했지만[7] 2010년대 후반은 그런대로 안정을 찾기는 했다. 그래도 과거에 비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 최형우도 모교 야구부의 하락세가 아쉽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최형우, 모교 후배들과 담금질…"초심을 되찾겠다"

2010년대 후반까지 계속 침체기를 걷던 전주고는 2019년에 서울고에서 전학한 박재민[8]을 앞세워 중흥을 노렸고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4강에 올랐다. 1985년 황금사자기 우승 이후 34년 만의 메이저 전국대회 4강 진출. 이어진 준결승에서 삼성의 1차지명을 받은 황동재를 무너뜨리면서, 경북고에 3-0으로 승리하며 배명고와 결승에서 만나게 됐다. 준결승에서 원투펀치인 탁건과 박재민의 투구수를 적절히 관리하면서 원투펀치 모두 결승전에 등판할수 있게 됐지만, 상대인 배명고도 준결승에서 한계 투구 수를 넘긴 권규헌을 제외한 모든 투수들이 투입 가능하기에[9] 딱히 어느 팀이 유리하다고 보기는 힘들다. 결승에서는 6회까지 팽팽했으나 7회말 수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5실점을 하며 3-6으로 패했다.

2020년 봉황대기 8강전에 진출하여 전북 지역 또 하나의 라이벌인 인상고등학교 야구부와 대결했으나 4-11 7회 콜드게임패를 당했다.

2021년 3월 제8회 전국 명문고 야구열전에서 난적 덕수고를 준결승에서 꺾고 결승전에서 경북고등학교를 상대했으나 0-5으로 패했다.

2022년 8월 대통령배 4강에 진출했고, 4강에서는 대구고등학교를 꺾고 창단 처음으로 대통령배 결승에 진출해 대전고등학교와 겨루게 됐다. 다만 주축 투수인 박권후(3학년, 우완)와 손현기(2학년, 좌완)가 투구수 제한에 걸려 결승전에 나오지 못하는 것이 변수.[10] 정제헌(3학년), 홍주환(2학년), 이호민(1학년)으로 결승전 마운드를 운용할 계획이다.결승전 진출 관련기사김원형 인터뷰 그 결과 7:4로 대전고가 승리를 거두며, 전주고는 대전고가 28년만의 대통령배 우승을 차지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2022년 봉황대기 2회전에서 대통령배 우승팀인 대전고와 맞붙었는데 14:1 7회 콜드게임으로 대전고를 대파하면서 대통령배 결승에서 패한 것을 완벽하게 복수했다.

2023년 신세계이마트배에선 32강전에서 세광고한테 패하며 탈락했다.

2023년 황금사자기에선 32강전에서 충암고한테 0:14 6회 콜드패를 당하며 탈락했다.


2. 야구대제전[편집]


  • 역대전적: 5승 4패
  • 최고기록: 4강(2015 야구대제전)
1981년 제 3회 야구대제전에서 처음 참가했으나 차준섭휘문고등학교에 패배하며 탈락했다.

2013 야구대제전에서는 20강에서 승리를 거둔후 오른 16강에서 경남고등학교를 맞아 3:2 패배로 탈락했다.

2014 야구대제전에서는 28강에서 승리를 거둔후 오른 16강에서 용마고등학교를 맞아 4:2로 패배하며 탈락했다.

2015 야구대제전에서는 19강에서 승리를 거둔후 오른 16강에서 부산고등학교 야구부(4:3), 8강에서 덕수고등학교(3:0)를 꺾고 4강에 진출했으나 북일고등학교에 13:6으로 패배하며 4강에 머물렀다.


3. 출신 선수[11][편집]


이름
포지션
프로입단
경력
김대현
투수
1986년 1차 지명
원광대-해태(1986~1988)
박성기
투수
1991년 특별우선지명
원광대-쌍방울(1991~1997)-롯데(1998)-한화(1999)
최한림
투수
1990년 고졸연고지명
쌍방울(1990~1995)-삼성(1995~1997)
김원형
투수
1991년 고졸연고지명
쌍방울(1991~1999)-SK(2000~2011)
김정수
내야수
1991년 고졸연고지명
쌍방울(1991~1996)
박경완
포수
1991년 신고선수 입단
쌍방울(1991~1997)-현대(1997~2002)-SK(2003~2013)
조진호
투수
1998년 1차 지명
원광대-BOS(1998~2002)-SK(2002~2004)-삼성(2008~2009)
이정훈
투수
1997년 고졸우선지명
쌍방울(1997)
송수근
외야수
2003년 신고선수 입단
원광대-SK(2003~2007)
최경철
포수
1999년 고졸우선지명
동의대-SK(2003~2012)-넥센(2012~2013)-LG(2013~2016)-삼성(2017)
박정권
내야수, 외야수
2000년 2차 9라운드
동국대-SK(2004~2019)
신승현[12]
투수
2000년 2차 11라운드
SK(2000~2013)-KIA(2013)-LG(2014~2017)
신용운
투수
2002년 2차 1라운드
KIA(2002~2011)-삼성(2012~2017)
최형우
외야수[13]
2002년 2차 6라운드
삼성(2002~2005)-경찰(2005~2007)-삼성(2008~2016)-KIA(2017~)
박현준
투수
2009년 2차 1라운드
경희대-SK(2009~2010)-LG(2010~2012)
임태준
포수
2007년 2차 2라운드
현대(2007)-넥센(2008~2016)-SK(2017~2018)-질롱 코리아(2018/2019)
장우람
투수
2012년 9라운드
건국대-두산(2012)
박정음
외야수
2012년 4라운드
성균관대-넥센/키움(2012~2021)
김광연
내야수
2013년 신고선수 입단
동강대-KIA(2013~2015)
김은성[14]
내야수
2015년 신고선수 입단
원광대-넥센/키움(2015~2021)
김인범
투수
2019년 2차 4라운드
키움(2019~)
박재민
투수
2020년 2차 2라운드
롯데(2020~)
김찬민
투수
2022년 2차 4라운드
KIA(2022~)
한승연
외야수
2022년 2차 8라운드
KIA(2022~)
박권후
투수
2023년 2라운드
삼성(2023~)
손현기
투수
2024년 2라운드
키움(2024~)



4. 여담[편집]



4.1. 연고권 관련[편집]


  • KBO 리그 1차지명 제도가 있었던 시절 군산상일고와 함께 학교의 연고구단이 여러 번 바뀌었다.

  • 1982년 프로야구 원년부터 1989년까지는 호남 유일의 연고구단이었던 해태 타이거즈가 연고권을 행사했고, 1980년대 중반까지는 해태 선수단 내 중심을 이뤘다.

  • 1990년 전라북도를 연고로 하는 쌍방울 레이더스가 창단되면서 호남 연고가 둘로 쪼개지며 자연스럽게 쌍방울의 연고 학교가 되었고, 1999년을 끝으로 쌍방울이 해체된 뒤에는 다시 KIA 타이거즈로 연고권이 넘어갔다.

  • 그러다 2013년 5월 KBO가 신인 1차지명 제도를 부활하면서 지역별 대상학교를 재분배하는 과정을 통해 전주고와 군산상고는 전북과는 인연이 없는 NC 다이노스로 연고권이 넘어갔다.
    • 당시 10구단 창설이 확정되었고, 지역 1차 신인지명이 부활하면서 각 구단 간의 형평성 유지를 위해 구단별 연고 지역 기준으로 5개교씩을 나누되 먼저 도시 연고로 5개교씩 배정하고, 미충족 시에는 광역 연고에서 우선으로 배정하고 그래도 미충족 시에는 전체구단 배정 후 남은 고교를 대상으로 추첨을 통하여 배정하였다.
    • 이러한 사정으로 KIA는 광주제일고, 동성고, 진흥고, 순천효천고, 화순고 5개교를 배정받은 후 추가로 인상고를 배정받았고, 당시 연고지역에 고교가 적었던 NC는 마산고, 용마고, 김해고, 울산공고 4개교에 추첨/선정으로 군산상고와 전주고를 추가배정 받았고, 2013년 10월에는 NC는 경남·울산·전주·군산을 기반으로, KIA의 연고지역은 전주·군산을 제외한 전북 지역과 전남으로 1차지명 연고지역 중고등학교 분배도 조정되었다.
    • 2013년의 이러한 결정 이후 2014년부터 KIA와의 연결고리는 끊어졌다. 2014년 광주-기아 챔피언스 필드 개장과 맞물리며 근근히 이어오던 월명 야구장에서의 KIA 제2구장 경기도 사라졌는데, 당연히 전북지역 내 KIA 팬들은 전주고의 지명 연고팀 이전은 역사를 무시하는 일이라며 KBO에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 2013년 NC로 연고권이 넘어갈 당시에는 1차지명 부활과 함께 프로야구단이 없는 전라북도 3개 고등학교 야구부 구성원은 미아신세가 되고, 역차별을 당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으나 2022년 1차지명이 폐지되고 전국지명이 부활할 때까지 NC는 전북지역 고교에 대한 꾸준한 지원을 이어갔고# 2020년대 들어 NC 연고권 고등학교들이 전국대회에서 연이어 호성적을 거두면서 투자의 성과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전주고 역시 긴 침묵을 깨고 2019년 이마트배 준우승, 2022년 대통령배 준우승으로 지역야구의 부활을 알렸다.

  • 2023년 드래프트부터 1차 지명이 폐지되면서 연고에 대한 논란은 일단락되었다. 전주시는 야구장을 신축한 후 KIA 타이거즈의 경기를 유치하고 싶어하고, KIA도 2023 드래프트에서 지명에는 아쉽게 실패했지만 박권후에 대해 호남권 최대어라는 이유로 애착을 갖고 지명을 준비했었다. 전주 지역도 다시 KIA의 연고권으로 돌아왔다고 볼 수 있다.

  • 이것과 별개로 1차지명 제도가 시행될 당시에도 전북지역 고교선수 1차지명에 대한 유권해석과 관련해선 말이 많았다.# 대표적으로 2022년 신인드래프트 당시 NC의 1차지명 후보군으로 오르내렸던 전주고 투수 김찬민의 사례[15]가 있는데, 결국 NC는 김찬민에 대한 1차지명권을 행사하지 않았다.


5. 관련 문서[편집]




6. 둘러보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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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
우승 구단
우승 연도
우승 횟수
1
파일:경남고 야구부_배경제거.png
경남고등학교
1947년, 1948년, 1949년, 1955년
1967년, 1974년, 2022년
★★★★★★★
7회
2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8j59qdJcK1sqk8veo9_r1_100.png
인천고등학교
1954년, 1989년
★★
2회
3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8kax4zrJR1sqk8veo1_250.png
동산고등학교
1957년, 1988년
★★
2회
4
-
경기공업고등학교[*]
1958년, 1962년
★★
2회
5
파일:경동고등학교 로고.png
경동고등학교
1959년, 1960년
★★
2회
6
파일:성동고 야구부.png
성동고등학교(해단)
1961년

1회
7
파일:선린인터넷고.png
선린인터넷고등학교
1963년, 1966년, 1969년
1980년, 2015년
★★★★★
5회
8
파일:성남고등학교 로고_배경제거.png
성남고등학교
1964년, 1970년
★★
2회
9
파일:중앙고 로고_배경제거.png
중앙고등학교
1965년

1회
10
파일:경북고등학교 로고.jpg
경북고등학교
1968년, 1971년, 1979년, 1981년
★★★★
4회
11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8n8v2LQ4t1sqk8veo4_r1_250.png
군산상일고등학교
1972년, 1986년, 1999년
★★★
3회
12
파일:QiXxmjQ.jpg
대구상원고등학교
1973년, 1998년
★★
2회
13
파일:smPNVat.jpg
개성고등학교
1975년

1회
14
파일:신일고 야구부.jpg
신일고등학교
1976년, 1978년, 1987년, 1991년
1993년, 1996년, 1997년, 2003년
★★★★★★★★
8회
15
파일:D0GcVeV.jpg
광주동성고등학교
1977년

1회
16
파일:MQL5Oe0.png
세광고등학교
1982년

1회
17
파일:FzeX4gI.png
광주제일고등학교
1983년, 1984년, 2005년
2008년, 2010년, 2018년
★★★★★★
6회
18
파일:ImVr0SY.png
전주고등학교
1985년

1회
19
파일:external/azine.kr/201103281617123257.jpg
충암고등학교
1990년, 2009년, 2011년
★★★
3회
20
파일:attachment/baemyunggo_logo.png
배명고등학교
1992년

1회
21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8j7lw8dMb1sqk8veo5_r1_540.png
덕수고등학교
1994년, 1995년, 2004년
2013년, 2016년, 2017년
★★★★★★
6회
22
파일:경기고등학교 투명로고.png
경기고등학교
2000년

1회
23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8j59qdJcK1sqk8veo7_r2_250.png
휘문고등학교
2001년

1회
24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8n8v2LQ4t1sqk8veo1_400.png
북일고등학교
2002년, 2012년
★★
2회
25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8j7lw8dMb1sqk8veo3_r1_400.png
장충고등학교
2006년, 2007년
★★
2회
26
파일:서울고등학교 로고 (Another).png
서울고등학교
2014년

1회
27
파일:유신고등학교_로고.jpg
유신고등학교
2019년

1회
28
파일:r542oyv.gif
김해고등학교
2020년

1회
29
파일:his_img0277.jpg
강릉고등학교
2021년

1회
30
파일:부산고등학교 야구부 로고.svg
부산고등학교
2023년

1회
[*] 학제 개편을 통해 고등교육기관으로 승격하며 해단. 現 서울과학기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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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81년생. 좌투좌타의 거포 내야수로 광주상고(現 광주동성고)-원광대를 졸업하고 계약금 1억원, 연봉 2천만원에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으나 큰 활약을 하지 못하고 선수생활을 마감했다.[2] 4대 메이저 + 협회장기[3] 나무위키 등록 선수 한정, 졸업 연도순[4] 전주고, 원광대를 거쳐 한국전력공사 야구단에서 외야수로 활약했다. 오랜 기간 국가대표로도 선발되었으며 선수 말년에는 한전 플레잉코치로 뛰었다.[5] 같은 학교의 농구부는 2006년에 3학년 4인방(김현호, 조효현, 김민섭, 김현민)에 2학년 김승원의 베스트5로 출전하는 대회마다 모두 우승을 쓸어담았다.[6] 그렇지만 야구단 지원금은 유지가 되기 때문에 구단 운영비에는 큰 변화가 없을듯.[7] 물론 9명만 유지해도 참가에는 문제가 없다. 다만 그렇게 할시 한명이라도 부상 당하면 그대로 탈락이니...웬만큼 야구부 운영이 개판이라도 10명 이상은 운영되고 있다.[8] 3학년 좌완투수로 프로팀 지명 가능성이 높았다. 군산중앙초등학교를 다녔으며 연고 중학교인 군산중 및 군산남중으로 진학하지 못하고 서울 청원중학교로 스카우트 됐다. 서울고에서 전주고로의 전학은 사실상 고향 컴백이다.[9] 청룡기 우승을 차지했던 2017년만 해도 배명고는 총 13명이 등판했고 투수 한 명의 최다 이닝이 36이닝에 불과했다. 2019년 들어서도 12명이 마운드에 올랐다.[10] 박권후는 공주고와의 16강전에서 5 2/3이닝동안 104구를 던졌고, 장충고와의 8강전에서 6과 2/3이닝 동안 103투구 7피안타 2사구 6탈삼진 2실점(1자책점)을 기록했다. 손현기는 대구고와의 준결승전에서 5이닝동안 92개의 공을 던지며 9개의 삼진을 기록했다.[11] 나무위키 등록 선수 한정, 졸업 연도순[12] 2004년 김명완에서 개명.[13] 지명 당시에는 포수로 입단했으나 입단 후 외야수로 전향했다.[14] 김수산에서 개명했다.[15] KIA 연고 학교인 이평중을 나왔기에 원칙적으로는 NC의 1차 지명이 불가능했다. 김찬민이 나온 이평중은 정읍시에 있는데 정읍에는 KIA 연고 고등학교인 인상고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