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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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치''' ||[[전주원|{{{#010048,#fff 전주원}}}]] · [[임영희|{{{#010048,#fff 임영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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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원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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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1]
2005 여름
(선수)

2007 겨울
(선수)

2008
(선수)

2009
(선수)

2010
(선수)

2011
(선수)

2012
(코치)

2013
(코치)

2014
(코치)

2015
(코치)

2016
(코치)

2017
(코치)

2018
(코치)

2020
(코치)

2023
(코치)










파일:한국여자농구연맹 로고.svg
WKBL 베스트 5 (9회)
1999 여름, 2000 겨울, 2000 여름, 2001 겨울, 2003 여름, 2005 여름, 2006 겨울, 2006 여름, 2007 겨울


1999 여름 WKBL BEST 5
이미선
G / 삼성생명
전주원
G / 현대
박정은
F / 삼성생명
장선형
F / 신세계
정은순
C / 삼성생명
2000 겨울 WKBL BEST 5
김지윤
G / 국민은행
전주원
G / 청주 현대
박정은
F / 수원 삼성생명
장선형
F / 광주 신세계
정은순
C / 수원 삼성생명
2000 여름 WKBL BEST 5
김지윤
G / 국민은행
전주원
G / 청주 현대
이언주
F / 수원 삼성생명
박정은
F / 수원 삼성생명
정선민
C / 광주 신세계
2001 겨울 WKBL BEST 5
이미선
G / 수원 삼성생명
전주원
G / 청주 현대
조혜진
F / 춘천 한빛은행
박정은
F / 수원 삼성생명
정선민
C / 광주 신세계
2003 여름 WKBL BEST 5
전주원
G / 청주 현대
이미선
G / 수원 삼성생명
변연하
F / 수원 삼성생명
앤 바우터스
F / 수원 삼성생명
이종애
C / 춘천 우리은행
2005 여름 WKBL BEST 5
전주원
G / 안산 신한은행
김영옥
G / 춘천 우리은행
박정은
F / 용인 삼성생명
정선민
F / 천안 KB
아이시스 틸리스
C / 용인 삼성생명
2006 겨울 WKBL BEST 5
전주원
G / 안산 신한은행
김지윤
G / 구리 금호생명
변연하
F / 용인 삼성생명
타미카 캐칭
F / 춘천 우리은행
테즈 맥윌리엄스
C / 안산 신한은행
2006 여름 WKBL BEST 5
전주원
G / 안산 신한은행
김정은
G / 부천 신세계
변연하
F / 용인 삼성생명
정선민
F / 천안 KB
마리아 스테파노바
C / 천안 KB
2007 겨울 WKBL BEST 5
전주원
G / 안산 신한은행
박정은
G / 용인 삼성생명
김정은
G / 부천 신세계
타미카 캐칭
F / 춘천 우리은행
로런 잭슨
C / 용인 삼성생명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영구 결번
No. 0


아산 우리은행 우리WON 코치
ASAN WOORI BANK WOORIWON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No. 0

파일:전주원2022-23.png

전주원
錢周媛

출생
1972년 11월 15일 (51세)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신장 176cm|체중 67kg
직업
농구 선수 (포인트 가드 / 은퇴)
농구 감독
학력
선일초등학교 (졸업)
선일여자중학교 (졸업)
선일여자고등학교 (졸업)
우송대학교 (스포츠건강관리학부 / 학사)
실업 입단
1990년 현대산업개발 농구단
소속
선수
현대산업개발 농구단-청주 현대 하이페리온 (1990~2004)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2004~2011)[1]
감독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2021)
코치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2011~2012)
춘천-아산 우리은행 위비-우리WON (2012~ )

1. 개요
2. 선수 경력
2.1. 실업 시기
2.2. 프로 시기
3. 지도자 경력
4. 여담
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대한민국농구 선수 출신 감독.

현역으로 21시즌을 뛰어 한국여자프로농구의 최고령 선수 타이틀을 가졌고 종목을 떠나 2011년 1월까지 최고령 여자 스포츠 선수 타이틀을 가지고 있었다.[2]

정규 시즌 기록은 10.34점 3.95리바운드 6.56어시스트 1.39스틸 필드 골 43.3% 3점슛 31.8% 자유투 72.9%

플레이오프 기록은 8.80점 3.61리바운드 5.64어시스트 1.00스틸 필드 골 40.5% 3점슛 29.3% 자유투 67.6%


2. 선수 경력[편집]



2.1. 실업 시기[편집]


선일초등학교 5학년 시기에 농구에 처음 입문. 선일여중고를 거쳐 1990-1991 시즌 현대산업개발에 입단, 성인 무대에 데뷔한다. 현대가 그녀를 스카우트하기 위해 왕회장님 2억을 베팅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실업 1년 차에 국가대표로 발탁됐을 정도로 장래가 촉망되는 가드였다.

데뷔 당시로서는 대형 가드였던지라 농구포지션 1번부터 4번까지 뛰었으며 간혹 5번도 소화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그러나 그녀의 장점은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고 리딩능력이 뛰어나 최종적으로 포인트 가드로 포지션을 자리잡았다. 포인트 가드로써 제 실력이 만개해 1990-1991 시즌 신인왕을 비롯 WKBL로 전환되기 전까지 한 해만 빼고 베스트5에 7회 선정됐다.(1991, 93~98)

트리플 더블을 프로에서 두 차례, 농구대잔치에서 한 차례 기록한 바 있다. 첫 트리플 더블은 1996년에 기록하였는데 여자 농구선수로써는 두 번째이고, 남녀 통틀어 네 번째로 이루게 된 트리플 더블이다.# 1999년에 두 번째 트리플 더블을 기록했는데 프로여자농구가 출범한 이후 정은순에 이은 두 번째의 트리플 더블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트리플 더블이 있는데, 바로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쿠바와의 조별 예선 경기에서 올림픽 여자 농구 역사상 최초로 트리플 더블에 성공한 것이다. 본인 스스로는 미국 선수들이 풀타임을 뛰었다면, 충분히 달성했을 거라고 겸손하게 말하지만, 이 기록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 맞다. 오오오. 그리고 2021년 현재까지도 올림픽에서 트리플 더블을 달성한 여자 농구선수는 전세계를 통틀어 전주원이 유일하다.

1990년대 정은순, 유영주, 정선민 등과 함께 대한민국 여자농구의 간판으로 활약했다. 특히 이들과 함께했던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4강에 오르는 기적을 만들어냈다.[3] 시드니 올림픽 4강은 1984 LA 올림픽 은메달 이후 최고 성적이며, LA 올림픽이 공산진영이 거부한 반쪽짜리 올림픽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가히 엄청난 성적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주원은 이 올림픽에서 예선부터 3-4위 결정전까지 8게임을 뛰면서 총 31개의 어시스트를 기록, 게임당 4.4개로 12개 출전국 선수중 가장 많은 어시스트를 하였다. 이 때가 한국여자농구의 최전성기라 할 수 있다.


2.2. 프로 시기[편집]


전주원은 2004년 여름리그 때 출산으로 잠시 빠진 것만 빼곤 거의 매해 꾸준히 출장하여 40세까지 현역으로 뛰었다. 선수 말년에 가서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으나,[4] 마침 최윤아의 성장을 적극적으로 도우면서 쏠쏠하게 활약했다. 프로화 이후 여자선수들의 선수 수명을 연장하는데 큰 공헌을 했는데, 특히 결혼-출산이면 으레 은퇴 크리를 맞았던 여자선수들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줬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그녀의 현역 21시즌은 여자 스포츠 통틀어서, 아니 아니, 남자 프로스포츠(개인종목 제외)까지 범위를 넓혀도 가히 대단한 기록임에 틀림없고, 출산으로 인한 휴지기 1년 후에도 출산 이전 못지않은 활약을 보여줬다는 것은 그만큼 몸 관리가 철저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물론 출산한 후에는 잠시 코치를 맡기도 했으나, 2005년 5월에 코트로 복귀하였다.[5]

2000년대 초 즈음부터 선수와 코치를 겸하는 플레잉 코치이기도 했다. 어린 팀 후배들은 전주원을 '선생님'이라 부른다고 한다. 은퇴 뒤에는 정식으로 신한은행의 코치로 활약 중. 한때는 징그러울 정도로 우승 복이 없던 선수였지만 콩라인?, 2002년 현대건설이 WKBL 리그 우승에 성공하고, 소속팀이 레알 신한이라 불릴 정도니 우승 복 없다는 이야기도 쑥 들어갔다. 상복도 은근히 없어서 정규리그 MVP가 선수 생활 내내 딱 한 번, 그것도 노장 반열에 들어간 2007년에 처음 받았다. 어시스트왕 타이틀은 상당히 많은데 무려 10번이나 어시스트왕을 차지하였다. 통산 어시스트는 2,164개/평균 6.56개.

2011년 4월 20일에 FA 자격을 얻었지만, 협상을 포기하고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팀 후배인 최윤아대한민국을 대표하는 포인트가드로 성장했고 전주원 자신도 은퇴 후 그동안 소홀했던 그녀의 딸 양육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그녀의 트레이드 마크인 복점을 뺐다.[6] 2011년 10월 19일 안산 홈 경기에서 은퇴식을 가졌다. 그녀의 등번호 0번은 신한은행의 영구결번으로 정해졌다. 여담으로 대한민국 여자농구 역사상 한 시대를 풍미한 포인트 가드답게 각 팀의 포인트 가드들이 선호하는 번호가 전주원이 출산 전에 썼던 5번과 영구결번이 된 0번이라고 한다.


3. 지도자 경력[편집]


파일:external/tmtj1.tvcps.com/l_2014032901001241900071381.jpg
우리은행의 코치.

은퇴한 뒤 2011-2012 시즌에 신한은행의 코치로 활동하다가, 2012-2013 시즌을 앞두고 위성우 코치가 춘천 우리은행 한새의 신임 감독으로 선임되면서 위성우와 함께 우리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무려 23년 간 함께 했던 평생 직장을 뿌리치고 옮기는 셈인데, 전주원 코치의 상징성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핵폭탄급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인터뷰에 의하면 그동안 미뤄 뒀던 공부를 하면서 코치직을 수행하겠다고 한다. 그리고 팀을 옮기자마자 위성우 감독과 함께 선수들을 빡시게 굴린 결과 우리은행을 2012-2013 시즌 정규리그 1위로 올려놨다. 오오오.

파일:external/photo.jtbc.joins.com/20130319180600142.jpg
그러나 챔피언 결정전이 시작된 후 모친상을 당했다. 2차전 때 선수들 몫으로 식혜까지 챙겨올 정도로 건강한 분이셨는데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것도 딸이 챔프전 치르는 거 생각해서 새벽기도를 갔다가 오신 이후 주무시다가 일어난 일이라고. 크게 충격을 받은 전 코치는 챔피언 결정전에 참가하지 않으려고 했으나 구단 측의 권유로 참가하기로 했다. 빈소에 머무르다 3월 19일 챔피언 결정전에 코치로 합류했다. 검은 정장 차림으로 침착하게 선수들을 지휘했으며 선수들 또한 검은 리본을 달고 사력을 다해 뛰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경기 결과는 66:53으로 우리은행의 챔피언 결정전 승리. 전주원 코치로서는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바치는 우승인 셈이다. 감정이 북받쳐 울음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아직 장례 절차가 남아 있어서 시상식에는 참석하지 않고 빈소로 돌아갔다고 한다.

3.1. 2020 도쿄 올림픽 여자 대표팀 감독[편집]


2021년 1월 경에는 혹사 논란으로 하차한 이문규 감독의 뒤를 이어 여자 농구대표팀의 감독으로 임명되어 도쿄 올림픽부터 지휘봉을 잡게 되었다. 이는 한국 국가대표팀 역사상 최초의 여자 감독 선임이기도 하다.

예선에서 영국을 잡고 12년 만에 어렵게 진출한 올림픽인만큼 박지수, 김한별 등 베스트 멤버로 25인을 추렸는데 5월부터 훈련을 시작할 예정이다.# 4월까지는 도쿄로 갈 최종 12인을 선발할 예정이라고 하는 것을 보아 5월 훈련부터는 본선에 참가할 최종 12명만 합류할 듯 하다.#

최종 엔트리에는 박지수, 강이슬, 김한별, 박지현 등 현재 꾸릴 수 있는 전력을 최대한 포함시켰으나 김한별, 김민정 등이 부상으로 연달아 대표팀에서 이탈하는 악재가 발생했다.

7월 26일 열린 세계랭킹 3위 스페인을 상대로 69:73으로 아쉽게 4점차로 패했지만 적절한 교체로 3쿼터까지 스페인을 압도하는 경기력을 보여주며 예선전과 다른 격변수준의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마지막에 에이스 역할을 한 강이슬의 외곽 3점슛이 성공했다면 스페인을 상대로 연장전에 들어가거나 승리하는 이변을 보여줄 뻔했다. 그래서인지 농구팬들은 전임 이문규 감독 시절과 비교하며 캐나다 전과 세르비아 전이 기대된다며 호평했다. 4쿼터가 되며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모습이 보였고 그것이 패인이 되긴 했지만, 애초에 상대적 약팀이 강팀을 상대하려면 수비활동량을 더 가져가야 해서 후반에 체력고갈이 드러나는 게 일반적인데다 코로나19에 따른 변수로 정상적인 훈련을 오래 할 수 없었기에[7] 이 문제로 전주원 감독을 비판하는 의견은 드물다.

앞선 스페인전의 선전으로 농구팬들의 기대치가 상당히 올랐다. 정상적인 훈련을 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랭킹 3위를 상대로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주었으니 정상적인 훈련이 진행되는 상태에서 상대하는 캐나다, 세르비아전은 또 어떤 경기력을 보여줄지 기대가 컸다.

7월29일 조별리그 2차전 캐나다전에서는 53-74로 졌다. 아쉽게도 스페인전 보다 안좋은 상황이 계속됐다. 대표팀은 캐나다를 상대로 15-16, 1점차로 맞설만큼 대등하게 경기를 하고 있었고 3쿼터 역시 39-49로 대등하게 맞섰지만, 3쿼터 중반부터 4퀴터까지 심판의 이상한 판정이 계속됐다. 대표적으로 트레블링콜에서 한국 쪽에 지나치게 엄하고 캐나다에게는 관대한 판정이 이어졌다. 게다가 몸싸움 파울콜에서도 비슷한 충격이 있을 때 한국 선수들에게 더 많은 파울이 주어지는 등 총체적 난국에 빠지면서 선수들의 멘탈이 흔들렸다. 여자배구에 이어 농구에서도 이상한 판정이 나오자 시청하는 팬들 또한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8월1일 세르비아와의 최종전에서 까지 61-65로 안타깝게 패했다. 1쿼터 2쿼터에서 밀렸지만 이번에는 엄청난 뒷심을 발휘하며 4쿼터를 56-58로 역전하며 세르비아를 몰아세웠으나 막판 잔실수들이 나오며 61-65로 패했다.

스페인, 캐나다, 세르비아에게 모두 3전 전패하여 탈락했지만 전주원 감독을 비난하는 의견은 드물다. 애초에 세나라 모두 세계 랭킹 10위안에 드는 여자농구 강국들이고 전주원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지 5개월 밖에 되지 않았기 때문. 그러나 전주원 감독 본인이 대표팀 감독직 연장을 고사하면서 짧은 임기를 마무리하게 됐다.[8]

후임인 정선민 감독이 여자농구국가대표팀을 2년동안 망치는모습을보여주면서 전주원 감독을 그리워하는 농구팬들이 상당히많다.


4. 여담[편집]


  • 성인이 된 뒤 첫 최우수 선수상를 국내 리그가 아닌 국제 대회에서 수상했다. 1999년 시즈오카에서 열린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ABC대회)에서 MVP를 수상했는데 이 대회는 일본 팬이 생겨나게 된 계기였다. #


  •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 끝난 후 WNBA 구단인 워싱턴 미스틱스에서 입단 제의가 왔으나 당시 소속 구단인 현대와 계약한 상황이라 이뤄지지 않았다. #



  • 여자 농구 선수 중 최초로 팬들이 팬클럽을 결성했다. 팬클럽명은 어시스트.


  • 영어일본어에 능통하다. 영어는 남편과 미국에 머물면서 익혔고 일본어의 경우 일본에 십자인대 수술을 받으러 간 것이 일본어 공부의 계기가 되었다. 당시 8주간 병실에 있었는데 혼자 병원에 있으니 할 줄 아는게 없고 간호사는 이것저것 물어보는 게 많아 살아남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 일간지 <메트로>에 '전주원의 바스켓볼 다이어리'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했다.

  • 모델 프로덕션인 '모델라인'이 선정하는 '2002 베스트드레서 백조상' 남녀 스포츠 부문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됐다. 참고로 전주원과 함께 베스트 드레서로 선정된 남자 스포츠인은 허재다.

  • 2003년 퀴즈 프로그램인 KBS TV <스타 집현전>에서 1위를 차지해 황금 열쇠를 받았다. #

  • 영구 결번을 두 개나 가지고 있다. 출산을 앞둔 2003년 첫 번째 은퇴를 선언했을 당시 소속 구단이었던 현대건설은 전주원의 등번호 5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그리고 2011년에 은퇴식에서 신한은행이 전주원의 등번호 0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해 한 선수가 두 개의 영구 결번을 가지게 됐다. 한국 프로 스포츠를 통틀어 등번호가 두 차례나 영구 결번된 사례는 전주원이 유일하다. 그러나 5번은 팀이 신한은행으로 바뀌면서 이양되지 않아 신한은행의 0번만이 영구 결번으로 남아있다.


  • 대다수의 운동선수가 은퇴한 후 체중이 늘어나는 것과 달리 전주원은 오히려 은퇴한 후 체중이 줄었다. 선수 시절은 뛰어야 하니까 억지로라도 먹어서 프로필상의 체중을 유지했는데 은퇴한 후 운동량이 줄자 근육량도 줄어들어 체중이 줄었다고 한다. #

  • 2004년 임신으로 은퇴했을 당시 MBC 스포츠 특선은 '굿바이! 전주원'이라는 전주원 은퇴 특집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 2007년 제1회 한국페어플레이상 개인 부문을 수상했다. #


  • 2014년에 현역 선수로 7번 코치로 3번 우승 반지를 거머쥐게 됨으로써 자신의 열 손가락에 모두 우승 반지를 끼울 수 있게 됐다. #

  • ‘2015 더 바스켓 농구인 골프대회’에서 우승했다. #

  • 2017-18 WKBL 올스타전 3점슛 콘테스트 번외 경기로 갑자기 불려나와 3점슛 세 개를 던져 모두 성공하는 기염을 토했다. 함께 번외 경기에 나선 김영옥김은혜는 모두 3점슛을 세 번 시도했으나 한 개만 성공하고 말았다. 영상 보기


  • 현재까지 여자 농구에서 유일하게 출산 이후 현역으로 복귀해서 활동한 선수다.

  • 전주원이 2층짜리 단독주택을 구매해 꼬마빌딩으로 재건축해 팔아 186억원의 차익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5.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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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4년에는 출산으로 잠시 쉬었다. 그래도 WKBL에서 그 해 올스타전을 '전주원 출산 전 기념 경기(?!)'로 성대하게 치러 줬다.[2] 여자 배구 GS칼텍스 서울 KIXX장윤희 코치가 2011년 1월 27일 현대건설전에서 복귀하는 바람에 최고령 타이틀이 넘어가고 말았다. 하지만 몇 경기만 뛰고 다시 코치로...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장윤희를 제외해도 2020년 현역인 핸드볼 인천광역시체육회의 오영란이 여전히 현역이다. 전주원과는 동갑(!)[3] 다만 유영주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 부상으로 출전하지 못했으며, 이듬해 은퇴했다.[4] 이미 전주원은 2003년 이후 출산과 부상 등으로 국대에 선발되지 못했다. 2010년 세계선수권 대회를 앞두고 국대에 차출될 것으로 기대됐으나 사실 이미 국대에는 이미선, 최윤아를 비롯한 후배 포가들이 충분히 그녀의 몫을 해내고 있었다.[5] 이 때 코치 자리가 공석이 되자, 신한은행의 이영주 당시 감독은 모비스에서 FA로 풀린 후 재계약하지 못하고 은퇴한 위성우에게 코치 제의를 하여 영입하였다. 곧, 전주원 덕분에 위성우가 신한은행의 코치로 선임될 수 있었던 것.[6] 몇 년 전 모 인터뷰에서 은퇴 뒤에 코 밑의 점을 뺄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마찬가지로 복점으로 유명했던 체조선수 신수지도 그 복점을 뺐다.[7] 당장 대표팀의 대들보인 박지수는 WNBA와 코로나 이후 까다로워진 출입국 절차로 인해 대회 1주 전에야 팀에 합류했다.[8] 본인은 제의가 왔을때 부터 대표팀 감독직을 한사코 고사했으나, 소속팀 감독인 위성우도 권유를 하였고 워낙 국가대표팀이 절박한 상황이라 올림픽까지 맡는 조건으로 수락한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