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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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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배우에 대한 내용은 전풍(배우) 문서 참고하십시오.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원호(元皓)로 기주(冀州) 거록군(鉅鹿郡) 출신, 일설에는 발해군(勃海郡) 출신.
원소를 섬긴 호족 출신[2] 의 모사. 원소의 세력 확대에 크게 기여해 원소군의 대표적인 모사가 되었으며, 조조군의 순욱과 비견될 만큼 뛰어난 재사로 평가받았다.
전풍은 성장하면서 재주가 뛰어났고, 웅대한 계략은 다수의 눈을 집중시켰다. 젊었을 때 아버지를 잃어 상중에 매우 슬퍼했으며, 세월이 지나도 이가 드러날 정도로 웃지 않았다. 박학다식하여 주(州)의 사람들로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처음엔 태위(太尉)의 처소에 초빙되어 무재(茂才)로 추천되었고, 이후 시어사로 승진하였다. 하지만 환관이 조정에서 득세하는 것을 보고 혐오감을 느끼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전풍은 심배와 더불어 기주목 한복을 섬겼는데, 두 사람은 정직했기 때문에 한복에게 소외되었다. 191년, 원소는 한복의 세력을 흡수한 후 좋은 말로 전풍을 초빙하였다. 전풍은 황실이 곤란에 처했고, 난세를 구제하고자 하는 뜻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원소에게 갔다.
원소는 전풍을 별가, 심배를 치중에 임명하여 중용하였다. 훗날 원소의 명령으로 한복을 섬겼던 경무와 민순을 죽였다.
그 해 겨울 공손찬과 계교에서 전투를 벌일 때 이기고 있던 원소가 방심하고 적은 수의 병사만 이끌고 쉬던 도중 공손찬군에게 공격받아 위기에 쳐했다. 이 때 전풍은 원소에게 후퇴할 것을 권했으나, 원소는 투구를 내팽개치면서[3] 도망치는 대신 비장하게 싸우고자 했다. 이에 병사들이 화살을 마구 쏴대서 공손찬군이 그 기세에 주춤했고, 그 와중에 국의가 이끄는 주병력이 오자 마침내 달아났다.전풍의 판단이 틀린 유일한 사례.[4]
196년, 조조가 헌제를 허도로 맞이하였는데, 그 해 전에 전풍이 먼저 헌제를 맞이할 것을 원소에게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원소는 헌제를 견성으로 모셔올 것을 조조에게 권유했다. 조조가 이를 거절하자 전풍은 원소에게 허도를 습격해 헌제를 데려올 것을 건의했지만 원소는 듣지 않았다. 조조가 장수를 포위하고 있을 때 전풍은 다시 한 번 원소에게 허도를 습격해 헌제를 맞이할 것을 진언했지만, 원소군 휘하의 탈주병이 이 계획을 조조에게 전했기에 조조는 포위망을 풀고 급히 돌아왔다.
정사 원소전에 주석으로 달린 전풍전에 따르면 원소는 전풍의 모책을 이용하여 공손찬을 평정했다. 원소는 전풍 덕분에 숙적을 물리치고 하북의 패자가 된 것이다.
원소는 허도를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일으켰는데, 심배·봉기에게 군사를 통괄하게 하고 전풍·순심·허유를 참모장으로, 안량·문추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여기서 전풍은 저수와 함께 지구전 전략을 주장했으나, 원소는 심배·곽도가 주장한 단기결전 전략을 채용하였다.
원소의 군대 동원 소식을 접한 공융이 조조에게 전풍·허유라는 지혜로운 자가 참모가 되었으니, 승리하기가 어렵겠다고 걱정하자, 순욱은 전풍이 억센 인물로, 필히 윗사람을 거스를 것이라고 평했다.
200년 유비가 서주자사 차주를 살해, 패성을 점령하고 조조를 배신하자 조조는 유비를 직접 치기 위해 출정한다.[5] 전풍은 이 때가 조조의 뒤를 칠 호기라고 보고 원소를 설득했지만, 원소는 자식이 아프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에 전풍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평생 찾아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겨우 어린 아이 병 때문에 놓치다니 애석하다고 말했고 이에 원소가 분노하며 둘의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다.
이후 원소가 조조를 치려 하자, 전풍은 원소에게 지구전을 펼치고 농사를 짓고 기병을 운영해 성동격서로 조조를 지치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즉 서서히 말려죽이자는 건데, 앞서 서둘러 조조를 치자고 하던 것과 비교하면 갑자기 말을 바꾼 것 같지만 그저 상황이 달라졌기에 그런 것 뿐이다. 하여튼 그렇지만 원소는 조조와 전면전을 펼쳐 단기결전으로 빠르게 끝내고자 했다. 전풍은 재차 간곡하게 원소에게 진언했는데 결국 원소는 크게 노해서 군기를 어지럽힌다는 죄목으로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전풍이 종군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는 원소가 이미 진 것이나 다름 없다며 기뻐했다.
원소군이 조조와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돌아오자, 장군들은 모두 울면서 이전에 전풍의 말을 들었으면 이렇게까지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전풍에게 "주공(원소)이 이젠 그대를 중용하실 걸세"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전풍은 고개를 저으며 "주공이 겉으론 관용이 있지만 속으로는 의심이 많아, 만약 승리했다면 기쁜 마음에 나를 사면하겠으나 패배하여 날 볼 면목이 없을 테니 더 이상 살 희망은 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소전의 주석 선현행장에 의하면, 원소는 "기주 사람들은 모두 내가 패배한 소식을 듣자 모두 나를 걱정하였소. 다만 전풍만은 나를 꾸짖었기에 다른 이와는 다르오. 나는 이제 전풍의 얼굴을 부끄러워서 볼 수가 없소."라고 말했다. 이때 봉기는 "전풍은 공이 패한 소식을 듣고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이 적중한 것에 기뻐한다고 합니다."라고 참언(讒言)을 했다. 원소는 이 말을 듣고 전풍을 해치려는 뜻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전풍의 예상대로 패하고 돌아온 원소는 전풍을 죽였다.[6] 이때 원소는 측근들에게 말하길, 자신이 패했으니 전풍에게 조소당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관도대전만 봐도 그는 두 번이나 예리하고 유용한 계책을 냈지만 원소는 묵살했다. 이것을 두고 조조는 "전풍의 계책이 채택되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원소일 것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으니 그의 재사로서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수준. 심지어는 삼국의 건국세력이 아닌 인물들에겐 평가가 매우 박했던 진수조차도 전풍과 저수의 책략은 장량과 진평이 한고조에게 헌상한 책략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순욱이 원소 세력을 깔 때도 전풍은 "강인하나 윗사람을 거스르며"라 비판했다. 당시 순욱의 비판들은 소름돋을 정도로 맞아 떨어졌는데, 그가 평한 원소군의 다른 무장들의 단점은 부패와 비리가 심하다는 것 (허유), 계획성이 없고 침착하지 못하다는 것 (심배), 주변의 말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 (봉기), 지혜와 임기응변이 부족하다는 것 (안량, 문추) 등등이었다. 반면, 전풍에 대해서는 능력이나 도덕적 측면이 아닌, 너무 강직하여 윗사람과의 대립에서 자신의 의견을 꺾지 않는 것이 흠이라는 평을 한 것이다. 순욱의 평가는 강대한 적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므로, 아군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 있었다. 따라서 어떻게든 상대의 단점을 강조하며 깎아내리려 했을 터인데, 전풍의 단점을 강조한답시고 이야기한 게 겨우 "지나치게 강직하여 윗사람과 부딪친다"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다. 물론 순욱의 말대로 전풍의 성격이 본인에게 독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주군의 관대함의 크기에 따라서 문제도 아닐 사항이다.
관도대전에서 그가 내놓은 계책이 번번히 무시당한 것에 있어서는 "강직하여 윗사람을 거스른다"라는 순욱의 인물평을 기초로, 다소 독선적인 면이 있던 원소와 사이가 틀어진 것이 아닐까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전풍 역시 하북에 나름 세력기반을 갖춘 호족 출신이었던 만큼, 원소 입장에서는 전풍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때문에 원소가 전풍을 무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일단 주인하고 입장이 틀어지고 나니 전풍의 대쪽 같은 성격이 더더욱 안 좋게 작용을 한 것. 전풍 입장에서는 원소의 선택이 당장 눈에 보이는 큰 문제가 없고, 어떻게든 성공은 했어도 큰 삽질을 하는 셈이니 속이 터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원소 입장에서는 이런 전풍의 태도가 좋게 보일 리가 없고 이게 더더욱 둘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드는 건 당연하다. 결국 관도대전의 패배 이후 분노한 원소의 분풀이와 봉기의 부추김으로 옥에서 죽고 만다.
자세한 내용은 전풍/기타 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개요[편집]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원호(元皓)로 기주(冀州) 거록군(鉅鹿郡) 출신, 일설에는 발해군(勃海郡) 출신.
원소를 섬긴 호족 출신[2] 의 모사. 원소의 세력 확대에 크게 기여해 원소군의 대표적인 모사가 되었으며, 조조군의 순욱과 비견될 만큼 뛰어난 재사로 평가받았다.
2. 생애[편집]
2.1. 원소를 따르기 전까지[편집]
전풍은 성장하면서 재주가 뛰어났고, 웅대한 계략은 다수의 눈을 집중시켰다. 젊었을 때 아버지를 잃어 상중에 매우 슬퍼했으며, 세월이 지나도 이가 드러날 정도로 웃지 않았다. 박학다식하여 주(州)의 사람들로부터 명성이 자자했다.
처음엔 태위(太尉)의 처소에 초빙되어 무재(茂才)로 추천되었고, 이후 시어사로 승진하였다. 하지만 환관이 조정에서 득세하는 것을 보고 혐오감을 느끼고,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후 전풍은 심배와 더불어 기주목 한복을 섬겼는데, 두 사람은 정직했기 때문에 한복에게 소외되었다. 191년, 원소는 한복의 세력을 흡수한 후 좋은 말로 전풍을 초빙하였다. 전풍은 황실이 곤란에 처했고, 난세를 구제하고자 하는 뜻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원소에게 갔다.
2.2. 원소 휘하에서[편집]
원소는 전풍을 별가, 심배를 치중에 임명하여 중용하였다. 훗날 원소의 명령으로 한복을 섬겼던 경무와 민순을 죽였다.
그 해 겨울 공손찬과 계교에서 전투를 벌일 때 이기고 있던 원소가 방심하고 적은 수의 병사만 이끌고 쉬던 도중 공손찬군에게 공격받아 위기에 쳐했다. 이 때 전풍은 원소에게 후퇴할 것을 권했으나, 원소는 투구를 내팽개치면서[3] 도망치는 대신 비장하게 싸우고자 했다. 이에 병사들이 화살을 마구 쏴대서 공손찬군이 그 기세에 주춤했고, 그 와중에 국의가 이끄는 주병력이 오자 마침내 달아났다.
196년, 조조가 헌제를 허도로 맞이하였는데, 그 해 전에 전풍이 먼저 헌제를 맞이할 것을 원소에게 진언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원소는 헌제를 견성으로 모셔올 것을 조조에게 권유했다. 조조가 이를 거절하자 전풍은 원소에게 허도를 습격해 헌제를 데려올 것을 건의했지만 원소는 듣지 않았다. 조조가 장수를 포위하고 있을 때 전풍은 다시 한 번 원소에게 허도를 습격해 헌제를 맞이할 것을 진언했지만, 원소군 휘하의 탈주병이 이 계획을 조조에게 전했기에 조조는 포위망을 풀고 급히 돌아왔다.
정사 원소전에 주석으로 달린 전풍전에 따르면 원소는 전풍의 모책을 이용하여 공손찬을 평정했다. 원소는 전풍 덕분에 숙적을 물리치고 하북의 패자가 된 것이다.
2.3. 관도대전[편집]
원소는 허도를 공격하기 위해 대군을 일으켰는데, 심배·봉기에게 군사를 통괄하게 하고 전풍·순심·허유를 참모장으로, 안량·문추를 사령관으로 임명했다. 여기서 전풍은 저수와 함께 지구전 전략을 주장했으나, 원소는 심배·곽도가 주장한 단기결전 전략을 채용하였다.
원소의 군대 동원 소식을 접한 공융이 조조에게 전풍·허유라는 지혜로운 자가 참모가 되었으니, 승리하기가 어렵겠다고 걱정하자, 순욱은 전풍이 억센 인물로, 필히 윗사람을 거스를 것이라고 평했다.
200년 유비가 서주자사 차주를 살해, 패성을 점령하고 조조를 배신하자 조조는 유비를 직접 치기 위해 출정한다.[5] 전풍은 이 때가 조조의 뒤를 칠 호기라고 보고 원소를 설득했지만, 원소는 자식이 아프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이에 전풍은 지팡이로 바닥을 두드리며 평생 찾아올 수 없는 절호의 기회를 겨우 어린 아이 병 때문에 놓치다니 애석하다고 말했고 이에 원소가 분노하며 둘의 사이는 멀어지게 되었다.
이후 원소가 조조를 치려 하자, 전풍은 원소에게 지구전을 펼치고 농사를 짓고 기병을 운영해 성동격서로 조조를 지치게 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즉 서서히 말려죽이자는 건데, 앞서 서둘러 조조를 치자고 하던 것과 비교하면 갑자기 말을 바꾼 것 같지만 그저 상황이 달라졌기에 그런 것 뿐이다. 하여튼 그렇지만 원소는 조조와 전면전을 펼쳐 단기결전으로 빠르게 끝내고자 했다. 전풍은 재차 간곡하게 원소에게 진언했는데 결국 원소는 크게 노해서 군기를 어지럽힌다는 죄목으로 그를 감옥에 가두었다. 전풍이 종군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조조는 원소가 이미 진 것이나 다름 없다며 기뻐했다.
2.4. 죽음[편집]
원소군이 조조와의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돌아오자, 장군들은 모두 울면서 이전에 전풍의 말을 들었으면 이렇게까지 패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고, 어떤 사람은 전풍에게 "주공(원소)이 이젠 그대를 중용하실 걸세"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전풍은 고개를 저으며 "주공이 겉으론 관용이 있지만 속으로는 의심이 많아, 만약 승리했다면 기쁜 마음에 나를 사면하겠으나 패배하여 날 볼 면목이 없을 테니 더 이상 살 희망은 버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소전의 주석 선현행장에 의하면, 원소는 "기주 사람들은 모두 내가 패배한 소식을 듣자 모두 나를 걱정하였소. 다만 전풍만은 나를 꾸짖었기에 다른 이와는 다르오. 나는 이제 전풍의 얼굴을 부끄러워서 볼 수가 없소."라고 말했다. 이때 봉기는 "전풍은 공이 패한 소식을 듣고 손뼉을 치며 기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말이 적중한 것에 기뻐한다고 합니다."라고 참언(讒言)을 했다. 원소는 이 말을 듣고 전풍을 해치려는 뜻을 품게 되었다.
그리고 전풍의 예상대로 패하고 돌아온 원소는 전풍을 죽였다.[6] 이때 원소는 측근들에게 말하길, 자신이 패했으니 전풍에게 조소당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3. 평가[편집]
관도대전만 봐도 그는 두 번이나 예리하고 유용한 계책을 냈지만 원소는 묵살했다. 이것을 두고 조조는 "전풍의 계책이 채택되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원소일 것이다."라고 말하기까지 했으니 그의 재사로서의 능력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수준. 심지어는 삼국의 건국세력이 아닌 인물들에겐 평가가 매우 박했던 진수조차도 전풍과 저수의 책략은 장량과 진평이 한고조에게 헌상한 책략에 비해 뒤지지 않았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순욱이 원소 세력을 깔 때도 전풍은 "강인하나 윗사람을 거스르며"라 비판했다. 당시 순욱의 비판들은 소름돋을 정도로 맞아 떨어졌는데, 그가 평한 원소군의 다른 무장들의 단점은 부패와 비리가 심하다는 것 (허유), 계획성이 없고 침착하지 못하다는 것 (심배), 주변의 말을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한다는 것 (봉기), 지혜와 임기응변이 부족하다는 것 (안량, 문추) 등등이었다. 반면, 전풍에 대해서는 능력이나 도덕적 측면이 아닌, 너무 강직하여 윗사람과의 대립에서 자신의 의견을 꺾지 않는 것이 흠이라는 평을 한 것이다. 순욱의 평가는 강대한 적을 상대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므로, 아군의 사기를 북돋우려는 의도가 다분히 들어 있었다. 따라서 어떻게든 상대의 단점을 강조하며 깎아내리려 했을 터인데, 전풍의 단점을 강조한답시고 이야기한 게 겨우 "지나치게 강직하여 윗사람과 부딪친다" 정도밖에 안되는 것이다. 물론 순욱의 말대로 전풍의 성격이 본인에게 독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주군의 관대함의 크기에 따라서 문제도 아닐 사항이다.
관도대전에서 그가 내놓은 계책이 번번히 무시당한 것에 있어서는 "강직하여 윗사람을 거스른다"라는 순욱의 인물평을 기초로, 다소 독선적인 면이 있던 원소와 사이가 틀어진 것이 아닐까 추정하는 경우가 많다. 전풍 역시 하북에 나름 세력기반을 갖춘 호족 출신이었던 만큼, 원소 입장에서는 전풍을 견제할 필요성을 느꼈고 그 때문에 원소가 전풍을 무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일단 주인하고 입장이 틀어지고 나니 전풍의 대쪽 같은 성격이 더더욱 안 좋게 작용을 한 것. 전풍 입장에서는 원소의 선택이 당장 눈에 보이는 큰 문제가 없고, 어떻게든 성공은 했어도 큰 삽질을 하는 셈이니 속이 터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원소 입장에서는 이런 전풍의 태도가 좋게 보일 리가 없고 이게 더더욱 둘의 사이를 틀어지게 만드는 건 당연하다. 결국 관도대전의 패배 이후 분노한 원소의 분풀이와 봉기의 부추김으로 옥에서 죽고 만다.
4. 미디어 믹스[편집]
자세한 내용은 전풍/기타 창작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1] 거록군인지, 발해군인지 확실치 않다.[2] 별가를 지냈는데, 이 벼슬이 지방 유력 호족에게 주는, 지방관의 제1 보좌역이다.[3] 별로 중요한 건 아니지만 모자였다는 말도 있다. 원소는 평소 투구를 쓰지 않고 모자를 써서 과시하는 성격이었다고 하며, 기록에도 '두무'라고 되어있는데 관이나 두건에도 쓰이는 단어라고 한다.[4] 유일한 사례이지만 첫 간언이 틀린 간언이 되어버려 이후로 전풍의 말을 잘 안듣는 이유가 되었을 수 도 있다.[5] 연의에서는 유비가 손건을 보내 원소에게 구원을 청한다.[6] 연의에서는 자결을 명하여 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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