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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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영
全惠英| Jon Hyeyong


파일:전혜영대공연.jpg

출생
1972년 8월 10일 (51세)
평양시 동대원구역
국적
[[북한|

북한
display: none; display: 북한"
행정구
]]

전직
보천보전자악단 가수
현직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성악지도교원
학력
청진예술학원
금성학원[1]
주요서훈
공훈배우, 인민배우, 김일성소년영예상
가족
딸 홍선아

1. 개요
2. 생애
3. 대표곡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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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전혜영공연.jpg
북한 보천보전자악단 가수이자 만경대학생소년궁전 교원.


2. 생애[편집]


파일:전아.jpg
(20대의 전혜영, 1993년)
파일:전혜영2015.jpg
(40대의 전혜영, 2015년)
1972년 8월 10일 평양시 동대원구역에서 출생한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노래를 잘 불렀다고 한다.
어머니는 교원, 아버지는 사로청(現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에서 일꾼으로 일했다고 한다.
보천보전자악단 가수 중 외부세계에 가장 많은 정보가 잘 알려 져있다.
어린시절 전혜영이 1980년대 여러 공연에 출연해 부른노래들이 90년대 방송에서 소개되거나 1983년 평양학생소년예술단 일본공연에서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를 부른 일화[2], 1999년 겪은 성대마비 등이 방송이나 신문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유치원때부터 노래에 재능을 보였고, 평양에서 인민학교(現 소학교)를 다닐때 전국학생예술축전에서 3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1983년 평양학생소년예술단 일본 공연에 참가했고 그 해에 김일성소년영예상을 받았다.
1988년 보천보전자악단에 입단했고 김광숙과 함께 80년대 북한의 전자음악 열풍을 일으킨 가수이기도 하다.
1991년 19살에 공훈배우 칭호를 받았고 1992년 인민배우 칭호를 받았다.
'휘파람'은 당시 북한에선 파격적 수준의 노래로, 많은 사랑을 받았으며 전혜영 또한 1990년대 북한 최고의 인기를 자랑했다.
현재 만경대학생소년궁전 성악지도교원으로 재직중이다.
2011년 왕재산예술단 공연에 김광숙, 윤혜영, 김정녀와 출연했으며 2012년 조선소년단 창립 66주년 공연에 만경대학생소년궁전 학생들과 출연했고, 2015년 추억의 노래와 1만명대공연에 출연했다.
2012년 조선신보, 2015년 통일신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2019년에는 '휘파람가수의 추억' 이라는 특집방송에 출연했었다.


3. 대표곡[편집]


파일:Jube.jpg
전혜영의 솔로앨범[3][4]
  • 김정일화(1988)[5]
  • 휘파람(1989)
  • 조국의 사랑은 따사로워라
  • 나는야 꽃봉오리[6]
  • 우리는 꽃송이 우린 꽃나비[7]
  • 산으로 바다로 가자[8]
  • 하나의 대가정(1990)
  • 나는 생각해(1991)
  • 날 보고 눈이 높대요(1991)
  • 처녀시절(1991)
  • 그 품을 못 잊어(1992)
  • 가고 싶어 가는길(1992)
  • 기다렸습니다(1992)
  • 뻐꾸기(1992)
  • 우리 아버지(1993)
  • 새별[9]
  • 우리의 김정일 동지(1994)
  • 10월입니다(1995)
  • 태양의 노래는 영원하리라(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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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당시 금성고등중학교[2] 특히나 이 일화는 여러번 알려졌고 모란봉클럽에도 알려졌다.[3] 2000년에 발매된 보천보전자악단 제99집 전혜영 독창곡집 5[4] 전혜영의 첫 솔로앨범은 1991년에 발매[5]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1988년 7월에 출간한 서적에 이 노래가 실렸다고 하는데 김정일화는 1988년 2월에 헌정되었으므로 1988년 노래라고 추정할수 있다.[6] 어린시절 부르는 노래 중 하나, 1983년 설맞이공연과 평양학생소년예술단 일본공연에서 불렀다고 알려져있다.[7] 어린시절 부른 노래 중 하나, 1984년 설맞이공연에서 불렀다고 알려져있다.[8] 1948년 창작된 노래를 편곡[9] 1983년 동명의 영화 주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