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날의 링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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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ng Mr. Lincoln
(1939)

" 만약 요정이 ‘마술지팡이로 네가 원하는 미국영화의 감독이 될 수 있게 해준다면 어떤 작품을 고르겠느냐’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답하겠다. 포드의 《젊은 날의 링컨》이라고. "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출처


1. 소개
2. 여담
3. 외부 링크



1. 소개[편집]




존 포드 감독, 헨리 폰다 주연의 1939년작 영화. 에이브라함 링컨을 주인공으로 한 법정물이다. 원제는 "젊은 링컨 씨"(Young Mr. Lincoln)이지만 《젊은 링컨》, 《청년 링컨》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국내에는 누군가가 이를 "젊은 날의 링컨"으로 번역해 이 제목으로 알려졌으나, 정작 국내에 이 제목으로 소개된 영화는 "일리노이의 에이브 링컨"(Abe Lincoln in Illinois)이란 1940년 제작 영화이다. 1978년 KBS에서 "일리노이의 에이브 링컨"(Abe Lincoln in Illinois)을 방영할 때 이 이름으로 소개했으며, 이 문서가 소개하는 "젊은 링컨 씨"(Young Mr. Lincoln) 영화가 국내 방영할 때에는 "청년 링컨"으로 MBC에서 방영했다.

법정에서의 전개가 드라마틱하여 혹시 이부분은 허구인가 싶기도 하지만, 링컨이 실제로 살인누명을 썼던 윌리엄 암스트롱의 변호를 맡은 사건에서 내용을 가져왔다. 영화에서는 삭제됐으나 원안에는 어린 존 윌크스 부스와 링컨이 만나는 장면까지 구상했었다고 한다. 제작자 Darryl F. Zanuck은 넣고 싶어 했지만, 존 포드 감독은 불필요하다 판단해 이 문제로 대판 싸우고 잘랐다. 만약 진짜 넣었다면 시리즈로 전기 영화를 만들어야 했을지도...

변호사 출신 대통령의 변호인 시절을 다뤘다는 점에서 후에 한국에서 《변호인》이 개봉했을 때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언급하기도 했다.

존 포드 이야기를 연재중인 허문영 평론가가 해당 코너에서 프롤로그글을 제외한 첫 번째 비평문을 쓴 작품이다. 해당 글에서 "<역마차>와 <젊은 날의 링컨> 두 편만으로도 존 포드는 영화사의 만신전에 등재될 자격이 있다. 1939년은 존 포드의 이력에서도 특별한 해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말하며 극찬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역마차》, 《수색자》와 함께 많은 비평가들이나 존 포드 매니아들이 최고작 중의 하나로 추켜세우는 작품이기도 하다.

홍상수, 페드로 코스타, 장 피에르 고랭 감독, 유운성 평론가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라고 한다.

4K 복원이 이뤄졌으며 크라이테리온 콜렉션에서 블루레이로 발매되었다.


2. 여담[편집]


  • 존 포드 감독은 당시 이미 링컨을 소재로 한 셜리 템플 주연의 대흥행작 《꼬마 반항아, The Littlest Rebel》(1935)도 있었고, 비슷한 시기에 제작 중이던 《일리노이의 에이브 링컨, Abe Lincoln in Illinois》(1940) 역시 젊은 날의 링컨을 소재로 하는 영화라서 비교당하기 싫었는지 연출을 망설였다가 마음을 바꿨다.

  • 헨리 폰다는 개인적으로 에이브러햄 링컨을 존경[1]해서 출연을 망설였지만, 존 포드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꿨다. 그 후에 "예수님을 연기한 기분이었다."라고 출연 소감을 밝혔다.

  • 헨리 폰다는 이 영화 촬영 당시 젊은 날로 키가 187cm였는데, 실존 인물 링컨이 193cm라서 깔창을 신고 촬영했다. 먼 훗날 링컨(영화)에서 다니엘 데이루이스도 똑같은 경험을 한다.


3. 외부 링크[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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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열혈 민주당원인 헨리 폰다가 공화당 링컨을 존경한 게 의아할 수 있는데, 링컨 당시엔 공화당이 진보적, 민주당이 보수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