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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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개요
1.2. 역사
1.2.1.1. 전성기
1.2.1.2. 내란기
1.2.1.3. 쇠퇴기
1.2.1.4. 자산(子産)의 개혁
1.2.1.5. 다시 쇠퇴기
1.3. 기타
1.4. 유력 세경가
1.4.1. 칠목
1.4.2. 칠목이 아닌 유력 가문
1.5. 역대 군주
2. 수말당초 왕세충이 세운 왕정


1. 춘추전국시대의 정[편집]


춘추시대 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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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시대 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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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존속기간
기원전 806년 ~ 기원전 376년
위치
중국 허난
수도
신정(新鄭)
국성
희(姬)
국가원수
백작
주요 군주
장공 희오생
주요 재상
국자산
언어
상고 중국어
문자
금문전서 (대전체)
종교
중국 토속 종교
종족
화하족
성립 전
주나라
멸망 후
한(韓)나라
현재 국가
중국




1.1. 개요[편집]


중국 서주 시대부터 존재했던 나라로 시조는 환공(桓公), 수도는 신정(新鄭)이었다.[2] 작위는 백작이었으며 주나라의 제후국 중에서 봉건 시기가 매우 늦은 나라였다. 그 이유는 무왕상나라를 멸망시킨 이후나 성왕이 분봉을 했었던 때가 아니라 서주 말기였던 주선왕(宣王) 때 왕이 동생 우(友)를 봉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왕실과 동성인 희(姬)성 제후국이었다. 그가 충신으로 유명한 정환공으로 그는 쇠락해 가고 있던 왕실의 사도로서 조카였던 주유왕(幽王)을 보필했으나, 견융의 대침공 때 유왕을 보호하려다가 전사했다. 원래 환공이 처음 받은 땅은 섬서성 지역의 정(鄭)이라는 곳[3]이었으나, 하남성 지역으로 봉지를 옮겼다. 수도 이름이 신정인 것도 '새로운 정'이라는 의미였다. 기원전 375년에 전국칠웅 중의 하나였던 한(韓)나라에게 멸망했다.

인구는 정장공 시기 약 80만이었다가 정문공 시기에는 50만으로 감소. 초장왕 시기(=정양공 시기)에는 다시 80만으로 회복했다고 추산된다.#


1.2. 역사[편집]



1.2.1. 춘추시대[편집]



1.2.1.1. 전성기[편집]

지리적으로 중원의 이점을 살려 교통과 상업이 발달하여 BC 8세기경 환공의 아들 무공(武公)과 손자 장공(莊公) 때 최전성기를 이루었는데 그들은 동주의 경사(卿士)를 지냈다. 장공의 어머니 무강(武姜)이 난산을 겪으며 낳았기 때문에 장공의 이름을 역산(逆産)을 의미하는 오생(寤生)으로 지었다. 무강은 장공을 매우 싫어했으며 대신 반대 급부로 아우 단을 사랑했다. 무강은 단에게 요충지였던 제읍을 줄 것을 청했다가 장공이 이를 거부하자 큰 고을인 경성을 주기를 요청하니 이를 승낙했다. 이에 채중(祭仲)은 너무 큰 읍을 주었다고 간언하기도 했다.

훗날 태숙 단이 어머니 무강과 호응하여 본국을 치려 하자 장공은 군사를 일으켜 단의 봉읍 경성을 치니 경성 사람들이 단을 배반했다. 단은 언으로 도망쳤고, 장공이 이를 추격하자 다시 공나라로 도망갔다. 장공은 무강을 성영으로 옮기고 “황천(黃泉, 저승)에 가기 전까지는 절대 어머니를 만나지 않겠습니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이를 후회했고 이듬해 영고숙이 황천(지하수)에서 만나면 된다고 진언하자 이를 따라 굴을 파서 어머니를 만나고 화해했다.

장공은 경사라는 지위를 남용 활용해 각 나라를 침공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동주 천자의 권위를 떨어뜨렸다. 장공의 만행을 견디지 못한 환왕(桓王)[4]이 장공을 토벌하러 오자 대부 축담(祝聃)이 화살을 쏴서 환왕의 어깨를 맞춰 버렸다(수갈 전투). 그나마 처음에 축담이 왕을 사로잡자고 하는 걸 거부한 것이었다. 거기다가 장공이 잘못한 것을 천자가 토벌하러 온 건데 천자에게 오히려 맞섰던 것이기 때문에 화살을 맞은 환왕에게 사과와 재물을 보내는 것으로 매듭지었다. 이에 대해 환왕은 별 말을 하지 못했고 왕실의 권위는 추락했다. 그리고 550여 년에 걸친 춘추전국시대의 대난세가 개막되었다.


1.2.1.2. 내란기[편집]

정나라는 사실상 춘추시대를 개막시킨 국가였지만 패자의 위치까지는 오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주 왕실의 권위를 바닥으로 만든 데다가, 애초에 영토가 크지 않은 나라였고 장공 사후 권력 다툼으로 인한 내분으로 인해 급격히 쇠퇴해 약소국으로 전락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장공은 등만과 혼인하여 태자 홀을 낳았으나, 궁중에는 총애하는 여자가 많았고 그래서 11명의 아들을 더 두었다. 이들 중 공자 돌, 공자 미, 공자 의가 특히 군위를 겨룰 만했다. 장공이 죽자 채중이 세자 홀을 세우니 그가 소공(昭公)이다. 하지만 채중이 송나라의 협박을 받고 소공을 내친 후 그의 아우 여공을 세웠다. 하지만 여공은 채중을 제거하고 국정의 실권을 쥐려고 했다. 그래서 여공은 채중의 사위인 옹규(雍糾)를 시켜 장인인 채중을 암살하게 했지만 옹규의 아내인 채중의 딸이 이를 아버지에게 발설하여[5] 옹규는 살해당했다. 그리고 채중은 자신을 죽이려고 한 여공을 쫓아내고 다시 추방되었던 소공을 군주의 자리에 앉혔다. 하지만 소공은 대부 고거미와 사이가 좋지 않았는데 장공이 고거미를 경으로 삼으려 했을 때 소공이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고거미는 이에 앙심을 품고 중신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수렵에서 소공을 시해하고 말았다.

채중은 이에 당황하였으나, 자신이 쫓아낸 여공을 다시 불러들이면 X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공자 미(亹)를 군주로 세웠다. 하지만 제나라양공이 위나라의 수지 땅에 주둔하자 고거미를 보좌로 삼아 데리고 양공과 회합했다. 제 양공과 미가 둘 다 공자일 때 서로 싸웠으므로 채중은 미에게 수지에 가지 말기를 청했으나, 미는 강한 제나라가 제후를 거느리고 국외로 추방당한 여공과 함께 자신을 칠 것을 두려워해 끝내 갔다. 양공은 미에게 과거의 일을 사과하도록 요구했으나, 이를 따르지 않자 분노하여 숨겨둔 병사로 미를 죽이고 말았다. 더불어 고거미는 군주를 시해했다는 이유로 거열형에 처했다.[6] 이에 채중은 공자 영(嬰)을 군주로 세웠다. 하지만 여공이 본국으로 쳐들어와 수장 부하가 대릉에서 사로잡혔고 부하가 자신을 살려주면 여공을 복위시키겠다고 했다. 그 조건으로 풀려나 영과 두 아들을 죽이고 여공을 맞아들였다. 여공은 복위했지만 채중에게 복수는 하지 못했는데 이미 채중은 죽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장공 이후 그의 아들들간에 벌어진 내분으로 정나라는 엉망이 되었다.


1.2.1.3. 쇠퇴기[편집]

여공이 사망하자 그의 아들 문공(文公)이 즉위했다. 정나라의 위치는 당시 지정학적으로 매우 중요했기 때문에 패권을 잡고자 하는 대제후들은 제환공을 필두로 우선 정나라를 굴복시켜 자기 휘하로 넣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패권을 두고 다투는 동쪽의 (齊), 북쪽의 (晉), 남쪽의 (楚)는 심심하면 정나라를 공격했고 정나라는 살기 위해서 제나라가 쳐들어오면 제나라에 붙고 진나라가 쳐들어오면 진나라에 붙고 초나라가 쳐들어오면 초나라에 붙는 변화무쌍한 외교 전략으로 명맥을 보전했다. 제, 진, 초의 패권 경쟁은 누가 정나라를 자기 편으로 끌어넣는지를 보면 누가 우세한 지를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이처럼 정나라는 각 제후국들의 완충 지대라는 점을 이용해서 간신히 나라를 보전하고 있었다.

중간에 진(晉)나라의 공자 희중이가 방문했을 때 무례하게 대했는데 그가 훗날의 진문공이었다. 그 결과 나중에 진 문공에게 뼈저리게 털렸다. 문공의 뒤를 이어 목공(穆公)이 즉위했는데 그의 재위 시기에 진(晉)과 진(秦)이 효산에서 싸워 진(晉)이 크게 이겼다. 목공의 뒤를 이어 영공(靈公)이 즉위했는데 재위한지 얼마되지 않아 자송과 자가에게 시해당했다. , 초나라에서 영공에게 큰 자라를 보냈다. 이에 자가와 자송이 영공에게 조현하려는데 자송의 식지(食指)[7]가 저절로 움직였다. 자송이 자가에게 '예전에도 손가락이 움직인 일이 있었소. 반드시 기이한 것을 먹을 것이오.' 하고 들어가려는데 자라국을 영공에게 바치는 것을 보고 자송이 웃으며 말했다. '과연!' 영공이 그 웃은 까닭을 물으니 그대로 말했다. 영공은 약올리기 위해 자송에게는 자라국을 주지 않았다. 자송은 노하여 손가락을 솥에 넣고 맛보고 나왔다. 영공은 자송의 버릇없는 행태에 노해 자송을 죽이려고 했다. 그러자 자송은 자가와 함께 모의하였고 선수를 쳐 여름에 흙자루로 눌러 영공을 시해했다.

영공 사후, 그의 아우 공자 거질을 옹립하려 했으나, 거질이 사양하자 나이 순대로 형 공자 견을 즉위시키니 그가 양공(襄公)이다. 참고로 영공은 죽은 후의 시호를 '유공'(幽公)이라 했으나, 자가가 사망한 후 양공이 자가의 일족을 축출하고 '영공'으로 시호를 고쳤다. 다만 시법에 따르면 '유'(幽)나 '영'(靈)이나 둘 다 좋은 시호는 아니다.


1.2.1.4. 자산(子産)의 개혁[편집]

이처럼 정나라는 군주의 힘이 약했다. 거기다 목공의 아들들의 후손들인 방계 공족들이 실권을 쥐고 있었다. 특히 목공의 아들 중 예닐곱의 자손의 세력이 강해 그들을 칠목(七穆)이라고 불렀다. 공자 거질(자량子良)의 자손 양씨, 공자 희(자한子罕)의 자손 한씨, 공자 비(子駟)의 자손 사씨, 공자 발(子國)의 자손 국씨, 공자 언(子游)의 자손 유씨, 공자 평(子豊)의 자손 풍씨, 공자 곤(子印)의 자손 인씨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나마 간공(簡公) 때 재상으로 임명된 자산[8]의 개혁 정치를 통해 잠시 부흥하기도 했다. 자산은 25년 동안 재상을 지냈는데 일련의 교묘한 외교 활동을 통해 국력이 약한 정나라를 열강 사이에서 쓰러지지 않고 우뚝 설 수 있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정치적 지위도 존중받게 되었다. 공자가 자산을 그토록 높게 평가한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다.

자산은 재상으로 있으면서 통치 집단 내부의 암흑, 정치 문란, 민중들의 무법, 불법 비리 등 범국가적인 혼란에 맞서 먼저 국가 질서를 정돈하는 일부터 손을 댔다. 법규와 제도를 건전하게 다듬고, 통치 기구의 등급을 제대로 갖추었으며, 각종 법률 조항을 형정(刑鼎)에다 새겨 전국에 반포했다. 자산은 각종 엄격한 제도를 실행하기 시작했는데 줄곧 혼란 속에 빠져 허우적대던 정나라에서 이런 조치는 결코 순조롭지 못했다. 백성들은 원망의 목소리를 끊임없이 냈고 심지어는 노래까지 만들어 자산을 저주했다. 그러나 자산은 나라를 잘 다스렸으며 시정 개혁을 굳세게 밀고 나갔다. 그리하여 3년 ~ 5년 사이에 정나라의 정치는 큰 효과를 보게 되었고 백성들은 다시 노래를 지어 자산을 칭송했다.

이런 일화가 있다. 자산이 병이 든 지 몇 달 만에 세상을 떠나자 자태숙(子太叔)이 뒤를 이어 재상이 되었다. 그는 차마 엄한 정치를 펼치지 못하고 관대한 정책으로 일관했다. 그 결과 정나라에 도적이 갈수록 늘고 사회 치안이 혼란에 빠졌다. 자태숙은 "그 분(자산)의 말을 들었더라면 이런 골치는 없었을 것을"이라며 후회했다. 그리하여 사회를 혼란하게 만드는 강도들을 무력으로 잡아들이고 죽였더니 사회 치안이 비로소 나아졌다.

정나라는 오랫동안 대국 세력에 의해 통제당해왔기 때문에 통치 계층 내부의 귀족 세력도 이해 관계에 따라 상호간 모순된 입장이 겹겹이 쌓여 있었고, 권력 쟁탈을 위해 죽이거나 다치게 하는 일도 그칠 날이 없었다. 자산은 재상이 된 뒤 국내의 이런 상황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고압적인 수단으로 나간다면 각종 세력이 연합하여 반발할 것이 뻔했다. 더구나 자산의 집안 즉 국씨는 칠목 중에서 위계가 낮은 축에 속했다. 그는 잠시 모순을 이용하여 양측 모두 상처를 입힌 다음 다시 하나하나 징벌하는 책략을 구사하기로 결심했다. 그 결과 군주의 권한을 강화할 수 있었다. 정나라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외교의 성패가 매우 중요했다. 자산은 집정 기간 동안 제후들과 여섯 차례 이상 동맹을 가졌는데, 민첩한 외교 수단으로 정나라의 굴욕적인 모습을 바꾸어 명예와 지위를 유지했다.


1.2.1.5. 다시 쇠퇴기[편집]

하지만 자산이 죽은 후에는 권력 다툼으로 또다시 쇠퇴했다.(...) 간공의 아들 정공(定公) 때는 초나라 평왕(平王)의 태자 건(建)이 망명왔는데 배은망덕하게도 진(晉)나라와 짜고 내응할려다가[9] 걸려서 분노한 정공에 의해 주살되기도 했다. 이 후 애공(哀公)은 정나라 사람들에 의해 시해되기도 했다.


1.2.2. 전국시대[편집]


전국시대 들어서는 더욱 입지가 약해졌다. 전국시대 전 진(晉)나라가 공중분해 되기 전부터 진나라 실권을 장악한 육경들에게 틈마다 침략당하는 샌드백 신세로 전락하였는데, 삼가분진 이후로는 가장 근접한 한나라의 압박을 심하게 받기 시작한다. 유공(幽公)은 한나라(韓)의 무자(武子)의 침입을 받아 피살되었고, 그의 아들 또는 아우[10]수공(繻公)은 그 와중에 재상 자양을 죽였다가 2년 후 자양의 무리에게 시해당했다. 그나마 천혜의 입지 조건이라는 잠재력은 어디 가지 않아 한나라 주력군이 다른 나라와 전쟁 중에 온 국력을 끌어보아 한나라에게 잃은 영토를 잠시 탈환하고 거꾸로 당시 한나라의 수도인 양책을 포위까지 하며 분전하였으나, 초나라 등 이웃 국가들의 개입으로 실패하고 만다. 결국 유공의 아우 강공(康公) 때는 한나라에게 부서와 양성을 빼앗기고 이어 한애후(哀侯)에 의해 수도가 함락되고 강공이 참수당하면서 희성 정씨의 정나라는 기나긴 역사를 마무리했다.

이후 한나라는 정나라의 옛 수도였던 신정을 새로운 수도로 삼아서 전국칠웅 중의 하나가 될 정도로 국력을 상승시키나, 아이러니하게도 예전 정나라와 똑같이 옆의 강대국인 진(秦)나라와 초나라의 압박을 받아 약소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심지어 영토를 잃어가는 수순도 정나라와 똑같으며 마지막은 수도인 신정 하나만 달랑 남았다가 진시황의 천하통일 여정의 첫 희생양이 되고 만다.


1.3. 기타[편집]


시경》 중에서 '정나라의 노래', 즉 <정풍>(鄭風)에는 음란한 노래가 많다고 해, 역사에서 음란의 대명사로 쓰였으며. <한림별곡>의 '혀고시라 밀오시라 뎡소년(鄭少年)하'의 '뎡소년'이 이 정나라에서 따온, '음란한 아이들'을 가리키는 말이란 설도 있다.[11]

짧은 전성기를 제외하면 존속기간 내내 강대국 눈치를 보며 빌빌대던 정나라지만 의외로 최후는 무기력하게 망하는 게 아닌 전국칠웅과 일진일퇴를 겨루다 장렬하게 망했다는 점에서는 그나마 체면치례는 한 경우이다. 정나라의 오랜 상전으로 군림하며 지배력을 행사하던 진(晉)나라는 정작 신하들에 의해 나라가 3등분나서 군주가 옛 신하들 후손의 왕들에게 문안 인사나 올리는 대굴욕을 당하다가 무기력하게 영토를 뺏기고 망한 거와 비교된다.


1.4. 유력 세경가[편집]



1.4.1. 칠목[편집]


정나라 중•후기에는 11대 국군 정목공의 일곱 아들의 후손인 칠목이 국정을 좌지우지했다. 자산도 칠목의 가문 중 하나인 국씨였다. 이들은 주로 ''로 언급되며, 그 자손들도 대부분 조상의 '자'를 씨로 사용했다.
  • 한씨(罕): 목공의 아들 자한{子罕, 휘는 희(喜)}의 자손.
  • 양씨(良): 목공의 아들 자량{子良, 휘는 거질(去疾)}의 자손.
  • 사씨(駟): 목공의 아들 자사{子駟, 휘는 비(騑)}의 자손.
  • 인씨(印): 목공의 아들 자인{子印, 휘는 곤(㫻)}의 자손.
  • 국씨(國): 목공의 아들 자국{子國, 휘는 발(發)}의 자손. 자산이 자국의 아들이다.[12]
  • 유씨(游): 목공의 아들 자유{子游, 휘는 언(偃)}의 자손.
  • 풍씨(豊): 목공의 아들 자풍{子豊, 휘는 평(平)}의 자손.


1.4.2. 칠목이 아닌 유력 가문[편집]


  • 공씨(孔): 목공의 아들 자공{子孔, 휘는 가(嘉)}의 자손이나 3대만에 멸족했다.
  • 연씨(然): 목공의 아들 자연(子然, 휘는 불명)의 자손.
  • 우씨(羽): 목공의 아들 자우{子羽, 휘는 휘(揮)}의 자손.
  • 대계씨(大季): 목공의 아들 자공{子孔, 휘는 지(志)}의 자손. 이복형제인 공자 가와 자가 같아서 그 자손은 공씨가 아닌 대계씨를 일컬었다.


1.5. 역대 군주[편집]


정 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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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공(桓公) 우(友): 기원전 806년 ~ 기원전 771년 , 견융의 침입 당시 유왕을 지키다 전사.
  • 무공(武公) 굴돌(掘突): 기원전 770년 ~ 기원전 744년, 환공의 아들
  • 장공(莊公) 오생(寤生): 기원전 743년 ~ 기원전 701년, 무공의 아들
  • 소공(昭公) 홀(忽): 기원전 701년, 장공의 맏아들, 폐위
  • 여공(厲公) 돌(突): 기원전 700년 ~ 기원전 697년, 장공의 아들, 폐위. 정 장공의 아들 중 가장 유능해서 정 장공이 세자를 이 사람으로 바꾸려다 포기하였다.
  • 소공(昭公) 홀(忽): 기원전 696년 ~ 기원전 695년, 복위, 고거미에 의해 시해
  • (亹): 기원전 694년, 장공의 아들, 제나라 양공에 의해 시해
  • (嬰) 기원전 693년 ~ 기원전 680년, 장공의 아들, 부하에 의해 시해
  • 여공(厲公) 돌(突): 기원전 679년 ~ 기원전 673년, 복위
  • 문공(文公) 첩(踕): 기원전 672년 ~ 기원전 628년, 여공의 아들, 아들 다섯 중 공자 란(蘭)을 제외한 4명을 모두 사형에 처했다. 란이 살아 남은 이유는 세자가 비행으로 인하여 사형당하자 무서워서 망명을 시도했기 때문이다(...) 공자 란(蘭)은 혼자 진(晉)나라로 망명하여 살아남은 후 진(晉) 문공의 중재로 무사히 귀환했고, 공자가 그뿐이라 어부지리로 공위를 잇게 되었다.
  • 목공(穆公) 란(蘭): 기원전 627년 ~ 기원전 606년, 문공의 아들
  • 영공(靈公) 이(夷): 기원전 605년, 목공의 아들, 이복 동생인 자송에게 자라탕을 가지고 장난치다가 자송에게 암살[13]당했다.
  • 양공(襄公) 견(堅): 기원전 605년 ~ 기원전 587년, 목공의 아들
  • 도공(悼公) 비(費): 기원전 586년 ~ 기원전 585년, 양공의 아들
  • 성공(成公) 곤(睔): 기원전 585년 ~ 기원전 582년, 양공의 아들
  • (繻): 양공의 아들, 기원전 581년, 성공이 진나라에 구금된 후 추대, 신하들에 의해 시해
  • 곤완(髡頑): 기원전 581년, 성공의 아들, 임시로 추대, 후에 정희공이 됨
  • 성공(成公) 곤(睔): 기원전 581년 ~ 기원전 571년, 복위
  • 희공(僖公) 곤완(髡頑), 운(惲): 기원전 570년 ~ 기원전 566년, 복위(정식 즉위), 재상 자사에 의해 시해
  • 간공(簡公) 가(嘉): 기원전 565년 ~ 기원전 530년, 희공의 아들
  • 정공(定公) 영(寧): 기원전 529년 ~ 기원전 514년, 간공의 아들
  • 헌공(獻公) 채(蠆): 기원전 513년 ~ 기원전 502년, 정공의 아들
  • 성공(聲公) 승(勝): 기원전 501년 ~ 기원전 464년, 헌공의 아들
  • 애공(哀公) 역(易): 기원전 463년 ~ 기원전 455년, 성공의 아들, 정나라 사람에 의해 시해,[14] 여담으로 공자를 내친 적이 있다.
  • 공공(共公) 추(丑): 기원전 454년 ~ 기원전 429년, 헌공의 아들
  • 유공(幽公) 이(已): 기원전 428년, 공공의 아들, 한무자의 침입을 받아 전사
  • 수공(繻公) 태(駘): 기원전 427년 ~ 기원전 396년, 유공의 아들[15] 또는 아우,[16] 재상 자양의 무리에 의해 시해
  • 강공(康公)[17] 을(乙): 기원전 395년 ~ 기원전 375년, 수공의 아우, 한나라 애후의 공격을 받아 멸망했다.[18]


2. 수말당초 왕세충이 세운 왕정[편집]



수말당초 주요 세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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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역대 황제
양동(수나라)

1대 정왕 왕세충

정 멸망

619 ~ 622년간 존속하였다. 정통왕조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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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Baxter-Sagart의 재구에 의하면 상고음은 /*dreŋ-s/. 현대 발음은 zhèng.[2] 현 정저우시. 지정학적으로도 낙읍, 즉 낙양 바로 옆에 있는 걸 알 수 있다[3] 한편, 견융의 침입 때 정나라에서 망명한 사람들 중 일부가 한중 분지(지금의 한중 시)로 흘러들어가, 그들의 거주지를 '남쪽의 정'이라는 뜻으로 남정(南鄭)이라고 했다.[4] 평왕(平王)의 손자[5] 채중의 딸이 어머니에게 물었는데 남편은 결혼하기 전에는 수많은 남자들 중 한 명일 뿐이지만 아버지는 한 명밖에 없다고 대답했다. 그래서 채중의 딸은 기탄없이 아버지에게 이를 말했다.[6]사기》 <정세가>에서는 고거미도 함께 영을 옹립했다고 되어 있으나, 《춘추좌씨전》에 따르면 양공이 고거미를 거열형에 처했다고 나온다.[7] 둘째 손가락[8] 목공의 손자이자 공자 발의 아들로 이름은 교(僑)이다. 자산은 그의 자다.[9] 태자 건이 자신을 정나라 군주로 만들어주면 정나라 내부에서 호응하겠다는 조건으로 진나라를 끌여들였다. 정공이 태자 건을 엄청나게 대접한 것에 비하면 명백한 반역 행위다.[10] 《사기》 <육국 연표>에서는 아들, <정세가>에서는 아우[11] 연암 박지원의 단편 소설 《호질》의 배경이 정나라로 나오는데 위선자인 북곽(北郭) 선생과 열녀 표창까지 받았지만 성이 각각 다른 아들들이 다섯(...)이나 있는 이웃의 동리자(東里子)라는 과부가 나온다.[12] 그래서 공손교 혹은 국교가 자산의 본명이다.[13] 자세히 말하자면 자송은 정 영공이 자라탕을 공족들과 대신들에게 대접하는 날에 연회에 참석하여 자신의 손가락 하나가 저절로 움직이면 그날 별미를 먹게 된다면서 오늘도 그 손가락이 움직이길래 뭔가 별미를 먹을 줄 미리 알았다고 정 영공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정 영공은 장난기가 발동하여 자라가 모자라서 자송에게 못 주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자송은 정 영공의 탕그릇에서 자라 고기 한 점을 멋대로 집어 먹었고, 정 영공은 자송을 죽이겠다고 날뛰었다. 겁먹은 자송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정 영공이 자는 사이 그를 질식사시켰다. 물론 나중에 들켜서 사형.[14] 사유는 불명.[15] 《사기》 <육국 연표>.[16] 《사기》 <정세가>.[17] 《사기》 <육국 연표>와 달리 《사기》 <정세가>에서는 시호없이 '정군(鄭君) 을(乙)'로만 나온다.[18]열국지》에서는 한소후의 업적으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