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현(19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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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0 박진만 [[코치(스포츠)#s-2.1|

]] · 75 손주인 · 76 타치바나 · 77 배영섭
· 78 강봉규 · 79 이병규 · 87 박희수 · 89 이정식
· 94 권오준 · 97 강명구 · # 이진영 · # 정민태 · # 정연창'''

2군
71 조동찬 · 74 박한이 · 90 박찬도 · 91 다바타
· 98 채상병 · # 정대현 · # 강영식 · # 김지훈


육성군
85 김정혁 · 88 정현욱 · 92 정병곤


컨디셔닝
72 나이토 · 80 황승현 · 81 권오경 · 82 김현규 · 83 윤석훈
86 한흥일 · 93 윤성철 · 95 박승주 · 96 류호인 · # 김용해 · # 염상철 · # 허준환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입대선수등록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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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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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현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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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2.svg파일:SK 와이번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7
2008
2010

파일:2000 시드니 올림픽 로고.svg
2000 시드니 올림픽 야구 종목
동메달

2000

파일:2008 베이징 올림픽 로고.svg
2008 베이징 올림픽 야구 종목
금메달

2008

파일: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로고.svg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은메달

2009

파일: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2010

파일:WBSC 프리미어 12 엠블럼.svg
2015 프리미어 12
우승반지

2015

파일: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로고.svg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코치)

2022

파일:KBO 로고(세로형, 2013~2021).svg KBO 포스트시즌
2012 준플레이오프 MVP



정대현의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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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와이번스 등번호 1번
강병규
(2000)

정대현
(2001)


제춘모
(2002)
SK 와이번스 등번호 21번
조규제
(2001)

정대현
(2002~2011)


백인식
(2012)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38번
김근호
(2011)

정대현
(2012~2016.5.31.)


노경은
(2016.6.1.~2018)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28번
고원준
(2016~2016.5.31.)

정대현
(2016.6.1.~2016)


안태경
(201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1번
강승현
(2016)

정대현
(2017)


김대우
(2018~2022)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번


정대현
(2024~)


현역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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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No.
정대현
鄭大炫 | Chong Tae-Hyon
[1][2]
출생
1978년 11월 10일 (45세)
전라북도 군산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군산중앙초 - 군산중 - 군산상고 - 경희대
신체
185cm, 101kg
포지션
투수[3]
투타
우언우타
프로입단
1997년 고졸우선지명 (쌍방울)[4]
소속팀
SK 와이번스 (2001~2011)
롯데 자이언츠 (2012~2017)
국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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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AF 인터컨티넨탈컵 2회 (1994, 2002)
올림픽 2회 (2000, 2008)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3회 (2006, 2009, 2013)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1회 (2007)
아시안 게임 1회 (2010)
WBSC 프리미어 12 2회 (2015)

지도자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 2군 연수코치 (2018)
동의대학교 야구부 투수코치 (2019~2023)[5]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 (2024~)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불펜코치 (2021 / 2023)
병역
제2국민역[6]
가족
부모님, 아내 박상민, 아들 정범준, 딸 정서진
1. 개요
3. 피칭 스타일
4. 지도자 경력
5. 별명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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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 現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이다

정통 언더핸드 마무리 투수로, 손승락, 구대성, 오승환, 임창용과 함께 마무리 투수의 대표격으로 언급되던 선수이다. 1999년부터 2015년까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에서 활약했으며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결승 9회말에 등판하여 상대팀 쿠바의 병살을 유도하고 한국의 금메달을 완성한 것으로 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SK 와이번스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이적한 롯데 자이언츠에서는 노쇠화와 부상 때문인지 기대만 못한 성적을 냈다. 그럼에도 국제대회에서는 가히 최종병기라고 불릴 만한 기량을 자랑했었다.[7] 롯데에서는 이적 첫 해인 2012년[8]을 제외하면 나머지 5년간 김성배, 홍성민 등 다른 언더-사이드암 투수에 비해 훨씬 안 좋은 성적을 올렸을 뿐더러 부상에 시달리며 풀타임을 뛰지 못 한 경우도 허다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기간동안 참여한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2015 WBSC 프리미어 12에서는 SK시절 여왕벌의 위용을 가감없이 보여주며 롯데 팬들의 빈축을 사기도 했다.


2. 선수 경력[편집]




3. 피칭 스타일[편집]


정지원: 선수 시절에 정대현 선수와 상대했을 때 어땠습니까?

마해영: 그냥 마운드에 정대현 선수가 있으면 대타로 바꿔줬으면 했어요.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해설을 맡은 정지원마해영의 대담 중[9]


정통 언더스로 투수로, 고창성 등의 투수들은 언더인가 사이드암인가 논쟁이 오가기도 하지만 정대현은 논쟁의 여지없이 모두 언더핸드로 분류한다. 구속은 느려서 속구가 130km/h 초반대로 평범하지만 그걸 상쇄할 정도로 공의 무브먼트가 아주 좋다. 뜬공보다는 땅볼이 매우 많으며, 덕분에 적은 이닝을 틀어막는 데 아주 적합하다.

본래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 투수의 공은 무브먼트가 오버핸드나 쓰리쿼터보다 심하다고 하는데, 정대현의 무브먼트는 특히 더 격렬해서 베이징 올림픽 야구 때 정대현과 불펜에서 호흡을 맞춰 본 포수 강민호는 "정대현 선배가 말하길, '형은 똑바로 가는 공이 없다. 직구 사인이 나면 공이 약간 휠 거다'라고 했다"라고 말할 정도로 볼 끝이 더럽다. 3루, 1루 덕아웃에서 볼 때 정대현의 공은 던지는 순간 아래로 살짝 내려 앉다가 위로 솟구친 뒤 홈플레이트 앞에서 갑자기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정대현의 공을 받아본 지 얼마 안 된 포수들은 절대로 미트질을 함부로 하면 안 된다고 하는데, 이유가 볼 끝이 몹시 더러워서 엄지손가락이 부러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이미지와는 달리 제구력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구속이 느려서 그런지 제구가 좋을 것이라는 평가가 있는데 실제로는 구속이 느릴 뿐 엄청난 구위를 기반으로 스트라이크 존에 쑤셔박아 K/BB를 올렸던 파워 피쳐였다. 물론 기본적으로 언더스로 투수들이 폼의 안정성 때문에 제구력이 나쁜 편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언더스로 치고는 괜찮았던 편이다. 일본의 대표적인 언더스로 투수인 와타나베 슌스케도 리그에서 제구력이 좋다는 소리는 빈말로라도 못들었으며,[10] 박종훈도 커리어 내내 제구 때문에 골치를 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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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무기는 단연 싱커. 국내 최고의 싱커 투수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뒷받침용 구종으로는 싱커와는 반대의 무브먼트를 가진 일반 커브, 110km/h 후반대의 업슛성 커브[11], 스트라이크존 바깥쪽에서 안쪽 코너로 절묘하게 걸치는 백도어성 슬라이더 등의 변화구를 구사한다. 덕분에 전성기 정대현은 우타자들에겐 악몽같은 존재로 군림했었다. 좌타자들에겐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주로 사용하는데, 아무래도 우타자에 비해서는 좀 성적이 떨어진다.

완급 조절과 수싸움 역시 뛰어나다. 프로 생활 내내 보크를 단 한 번도 기록하지 않고 은퇴했다는 점도 특이한 점. 사실 언더핸드라 견제 자체가 상당히 힘들기도 하다.[12] 근데 견제 자체는 시도하면 꽤 많이 잡아냈다.

단 내구성이 좀 약한 편인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 단점은 더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투수진을 짜내는 운영을 하는 김성근 감독조차 혹사 시키지 않고 철저하게 관리해가며 등판시켰다.[13] 실제로 팀 전체가 처지고 불펜 사정이 역대급으로 급하게 돌아가던 SK의 2010년 여름에도 정대현만큼은 등판일정, 투구수, 이닝을 철저하게 지켰었다. 물론 실적 하나는 확실하기 때문에 지켜준 만큼 잘 막았다. 팀 입장에서는 경기에 급하게 핵심 불펜을 쓰는 것보다 건강만 하다면 리그 톱 클래스인 투수를 부상으로 날려먹는 것이 더 큰 손해이기 때문에 별 말은 안 나온 편. 정대현 본인은 유리몸이라는 시선에 대해 스탭들의 관리 차원이지 공을 못 던질 정도의 몸은 아니라고 인터뷰한 적이 있다. 실제로 통산 등판 경기가 662경기로 역대 19위다. 다만 정대현의 프로생활 17년 중 부상없이 풀타임 출장한 시즌은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그런 부상 위험성을 차단하기 위해 과도하게 굴리지 않았을 뿐이다. 김성근의 혹사를 비켜나간 사실상 유일한 투수이다.

다만 내구성이 약하다는 게 연투나 로테이션을 도는 게 문제인 거지, 한 경기에서 이닝을 오래 끄는 게 불가능하진 않았다. 2014년까지는 나름 가비지 이닝 정도면 2~3이닝을 먹기도 하는 등 이닝 소화력이 충분히 괜찮았다. 우규민과 비슷하게 장기 연투가 어려운 거지 단일 경기에서의 이닝 소화력은 뛰어난 편이다.

본래 대학교까지는 선발이었고, 시드니 올림픽 때도 허구연이 말하듯 승리는 못 챙겼으나 많은 이닝을 좋은 투구로 책임져 동메달을 따는 데 크게 기여했었다. 프로 기준으로 애매한 제구력과 로테이션을 꾸준히 돌기 힘든 내구성을 가졌지만 너무나도 좋은 구위를 감안해 빠르게 불펜으로 전환해 대성공한 케이스이다.

또한, 위에서 말한 내구성과 이어지는 부분으로 운동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편이다. 채드 브래드포드 스타일 투구 폼과 맞물려 주자 견제와 투수 수비가 매우 약하다. 몸이 둔하고[14] 무릎 수술 경력으로 달리기가 힘들어 1루 커버도 매우 느린 편이었다. 땅볼 유도형 투수로서는 치명적인 결점이지만, 이런 치명적 결점에도 불구하고 통산 2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것이 역설적으로 그의 공이 얼마나 위력적이었는지를 증명해주는 부분이다.

4.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일본으로 건너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은 뒤 2019년부터 정보명 동의대학교 야구부 신임 감독의 요청을 받고 동의대학교 야구부 코치로 선임되었다. # 2020년이 되어서야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에 정식 지도자로 등록되었다.

이어 다음 해인 2020년에는 김경문 감독의 부름을 받고 최원호의 후임으로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불펜코치로 부임하면서 2020 도쿄 올림픽에 참가했다. 이후 류중일 감독으로 바뀐 후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대표팀의 불펜코치 역할을 수행했다.

2023년 10월 17일, 이종열 단장의 부름을 받고 삼성 라이온즈의 2군 감독으로 부임한다는 기사가 올라왔다.[15] 이종열 단장이 대대적인 퓨처스 코칭스태프 개편을 선언한 만큼 그 중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1월 3일 삼성 라이온즈 2군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5. 별명[편집]


가장 대표적인 별명은 역시 여왕벌. SK 시절 김성근 감독의 운영을 벌떼야구라고 불렀는데 그 중 가장 관리 받으면서 마지막에 나온다고 해서 여왕벌이 되었다. 여기서 여왕벌을 그대로 영어로 옮긴 '퀸비'(Queen Bee), 롯데 이적 후 생긴 여왕갈매기 등의 별명이 파생되었다.

별명이 여왕벌이라는 게 일본에도 알려져 여체화되었다. #. 이 작가는 이대호, 이대형, 김광현, 김병현 등을 여체화하기도 했다.

2008년 베이징의 활약으로 '직각갑', '궁고의 카볼 투수'[16] 등등의 별명이 생겼다. 이 때문에 2012년 SK로 이적한 임경완의 별명 중 '작각갑'이 생겼다.

이대호카운터. 중요한 상황에서 이대호가 타석에 들어서면 전담 투수로 나올 때가 있었다.

통산 맞대결 전적이 54타석에서 49타수 5안타 6삼진 4볼넷 1사구 1희생플라이로 상대 타율은 0.102

이 때문에 국내야구 갤러리에서 정대현을 부르는 별명이 생겼으니 이름하여 돼지 도살자. 이대호9경기 연속 홈런타격 7관왕을 기록하는 등 타격 능력이 절정에 이르렀던 2010년에도 어김없이 9타수 무안타로 막아냈으며, 6월 27일 사직경기 6회말 상황에서 김광현이 무사 1,2루 상황을 자초하고 다음 타석에 이대호가 들어서자 어김없이 구원 등판, 깔끔한 6-4-3 병살타를 유도하고 결국 그 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했다. 8월 18일 경기야말로 백미. 1사 만루에 이대호 타석이 되자 당연하다는 듯이 정대현이 등판, 이대호 한 명만을 잡아낸 후 내려갔다. 이쯤 되면 불쌍할 지경. 이대호도 "대현이 형만 없으면 4할에 50홈런은 칠 수 있었다" 라고 한탄하기도.[17]

2011년 6월 14일 경기에서는 9회초 2아웃 상황에서 이대호가 나오자 어김없이 등장. 그 결과는 초구 쳐서 투수 앞 땅볼…. 야갤에서는 시구 드립이 흘러 넘쳤다.[18] 하지만 다음날 경기에서 3년 9개월만에 안타를 허용했다. 그래도 후속타자 강민호를 병살로 잡아내서 위기 탈출.

2011년 7월 8일 문학 경기에서 다시 만났다. 7회초 김주찬손아섭의 안타로 무사 1, 3루 상태에서 이대호가 등장하자 어김없이 정대현이 등판했다. 결과는 이대호의 희생플라이로 1점 획득. 하지만 이미 6회말에 진명호가 불을 질러 7점을 내주면서 이미 승부가 기운 상태인데다 이대호 이후 강민호와 대타 홍성흔을 각각 우익수 플라이와 삼진으로 잡아내며 고비를 넘겼다.

그리고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도 이대호에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하였다.

2017년 이대호가 친정팀 롯데로 복귀해 같은 팀이 되며 마주칠 일이 없어졌다. 그런데 kt의 동명이인 투수 정대현을 상대로 롯데 타선이 폭발하는 동안 이대호가 단 하나의 안타도 때려내지 못하여 오랜만에 회자되었다.

6. 여담[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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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싸움이 굉장이 능한 편. 1루에 대주자 양종민이 나가 있자 주자 견제를 할 거라는 싸인을 준 후 견제.[19] 1스트라이크 3볼의 볼카운트에서 양종민은 도루를 시도했고, 결국 양종민은 도루에 실패했다.
  • ||파일:VWbZBxJ.gif ||
    상호야, 생각해, 생각. 생각하라고.
정상호 문서에도 있지만, '상호야 생각을 해 생각을' 짤방으로 유명하다.











7. 관련 문서[편집]


[1] 매큔-라이샤워 표기법에 따라서 적은 것으로, 반달점 Bréve는 빠졌지만 2000년 개정 이전 당시에 표기법을 맞게 적었다. 다만, 표기법에 맞춰 쓰는 사람이 오히려 적어서 특이하게 보이는 경우 중 하나다.[2] WBSC 공식 등록명[3]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주로 마무리 투수로 출전했으나 롯데 자이언츠 시절에는 주로 중간계투로 출전했다.[4] 쌍방울 레이더스의 지명권 승계로 SK 와이번스에 입단했다.[5] 정식 지도자 등록은 2020년.[6]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로 병역특례를 받은 것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은데, 무릎 수술 경력으로 인해 제2국민역 처분을 받았다.[7] 김정준 해설위원 말로는 국제대회에서는 싱커보다 뜨는 커브가 기가 막히게 들어갔다고 한다.[8] 그나마도 부상으로 전반기를 거의 날리고 후반기에만 나섰다. 그 기간 워낙 언터쳐블급 포스를 보여줬기에 롯데 팬들의 기대감을 키웠지만 커리어가 종료된 후 돌아보면 이 시즌이 롯데에서의 커리어 하이였다.[9] 마해영이 정대현과 제대로 맞붙은 해는 2002~2006, 2008년이므로 전성기를 지나 하락세가 오던 시기였다. 역으로 정대현은 05년까지는 여러 보직을 오가고 1군 레귤러긴 했지만 완전한 필승계투라 보기는 어려웠음에도 마해영이 까다로워했다는 것에서 정대현의 구위를 체감할 수 있다.[10] 2006 WBC 한국과의 경기에서 호투로 한국 타자들이 공략하는데 상당히 애를 먹었는데, 그 와중에 몸맞는공이 꽤 있었을 정도로 제구력이 왔다갔다했다.[11] 싱커가 땅볼 유도용으로 쓰인다면 업슛성 커브는 주로 헛스윙 유도용으로 쓰이는 또 다른 필살기다. 솟아오르는 정도가 심해, 쳐도 내야 플라이에 그친다.[12] 2015 WBSC 프리미어 12선동열이 굳이 김인식과 상의해서 좀 더 견제하기 편한 좌완 투수인 이현승으로 바꾼 것만 봐도...[13] 이닝 수가 많아보이는 건 00년대 중반 마무리 투수들이 전체적으로 이닝을 많이 먹은 탓이 크다.[14] 잠수함투수라 샤프하고 날쌜 것 같은 이미지와 달리 정대현은 몸무게가 100kg이 넘어가는 거구였다.[15] 이미 이종열 단장과는 2020 도쿄 올림픽,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서 같은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호흡을 맞춘 바 있다.[16] 올림픽 결승전 9회말 1사 만루의 위기상황에서 병살타를 유도하는 투구를 하기 직전, 전자는 한광섭이, 후자는 허구연이 한 말.[17] 이대호 항목에도 기록되어 있지만, 이 시즌 이대호의 대 SK전 타율은 0.197이다.[18] 이때 정대현이 등판하자 이대호 본인도 어이없었던지 SK 덕아웃 쪽을 보며 허탈한듯 웃음을 지었다고. 김성근 당시 SK 감독도 마주 웃어줬다는 후문.[19] 초구 던지기 전에 한 번, 볼카운트 1 and 1에서 한 번씩 견제를 하였다.[20] 작이라는 글자는 작다는 뜻이 아닌 작가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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