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호(1935)

덤프버전 :




역임한 직위
[ 펼치기 · 접기 ]







대한민국 제4대 대통령경호실장
정동호
鄭東鎬 | Jeong Dong-ho


파일:정동호 의원.png

출생
1935년 2월 20일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사망
2009년 3월 26일 (향년 74세)
서울특별시
본관
진주 정씨
재임기간
제4대 대통령경호실장
1979년 10월 30일 ~ 1981년 7월 12일

[ 펼치기 · 접기 ]
배우자
구형선
자녀
슬하 3남
학력
마산고등학교 (졸업)
육군보병학교 (수료)
육군대학 (졸업)
의원 선수
2
의원 대수
13, 14
경력
대통령경호실장
육군참모차장
한국낙하산협회 회장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총동창회장
재경마산고등학교 동창회장
국회 농림수산위원
한국스카이다이빙연맹 회장
한국도로공사 사장

군사 경력
임관
육군사관학교 (13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57년 ~ 1986년
최종 계급
중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육군참모차장
주요 보직
제5군단장
대통령경호실장 직무대행
제8보병사단장


1. 개요
2. 생애
3. 선거 이력
4. 매체에서
5.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전 군인, 정치인.


2. 생애[편집]


본관은 진주(晉州).#

1935년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에서 태어났다.# 마산중학교, 마산고등학교(12회), 육군사관학교(13기)를 졸업하였다.


2.1. 12.12 군사반란[편집]


10.26 사태 당시에는 청와대 경호실 상황실장이었다. 하나회 멤버로서 12.12 군사반란 당시 반란에 가담했다. 당시 준장이었던 정동호는 대통령경호실장 직무대행이었다.

장관급(대장급)인 경호실장을 준장인 정동호가 직무대리했던 이유는 10.26 사태 이후 상관들이 대통령 시해에 대한 책임으로 숙청당했기 때문이다. NO.1인 경호실장 차지철이 비명횡사한 후 NO.2인 경호차장 이재전 중장은 보안사에 끌려가 구속되었고, 직후 예편. NO.3인 경호차장보 김복동 소장[1]제5군단 부군단장으로 좌천당하는 등 대통령 시해에 대한 도의적 책임에 대한 징계가 줄줄이 이어졌다. 그래서 NO.4였던 상황실장 정동호가 3계급을 뛰어넘어 대통령 경호실장을 직무대행하고 있었으며 이후 12.12 군사반란에서 후배인 고명승 작전담당관과 같이 총리 공관을 점거하며 최규하 대통령을 위협했다. 이 공로에 힘입어 전두환 정권에서 80년 8월부터 81년 7월까지 정식으로 경호실장을 지냈으며, 후배 장세동에게 경호실장을 이임하고 군에 복귀하여 제5군단장, 육군참모차장을 역임했다.

참모차장을 역임하며 차기 육군참모총장 후보군 중 한명으로 꼽혔으나[2]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난투극 사건으로 인해 강제 예편당했다.[3][4]

2.2. 대한민국 제5공화국[편집]


후에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을 역임하는 최세창과 함께 하나회 13기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으나 육군참모차장 시절 1986년 국회 국방위원회 회식 난투극 사건이 일어나 이 일의 책임을 지고 예편했다.

그 후 바로 윤필용의 뒤를 이어 한국도로공사 사장을 지내게 된다.


2.3. 노태우 정부 ~ 말년[편집]


노태우 정권 때인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경남 의령군-함안군 지역구에 민주정의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으며 이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민주자유당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지는 않았지만 1993년 연초에 터진 재산공개 파동이 원인이 되어 민주자유당에서 제명되었다. 이후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정계를 은퇴하였다. 12.12 사태에 대해서는 처벌받지 않았다.

2000년 총선에서는 새천년민주당에서 공천을 받아 나왔으나 3위로 낙선하였다. 경상도 전라도 지역이 당심을 따라가지 인심을 따라가지 않는다는 영호남의 당 정서의 예시 중 하나로 지역에서 간간이 회자될 때 쓰인다. 이후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5] 2009년 3월 26일 사망하였다.


3.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1988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남 의령·함안

파일:민주정의당 글자.svg

34,861 (49.57%)
당선 (1위)

1992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민주자유당|
파일:민주자유당 글자.svg
]]

34,813 (53.03%)
[6]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새천년민주당|
파일:새천년민주당 흰색 로고타입.svg
]]

6,470 (13.08%)
낙선 (3위)


4. 매체에서[편집]


  • MBC 제4공화국에서는 윤석오가 연기했다.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와 달리 풍채가 좋고 우스꽝스러운 캐릭터로 나온다.
  • MBC 제5공화국에서는 조경호가 연기했다.
  • 2023년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배우 임철형이 연기했다.

5. 둘러보기[편집]







파일: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__CC.png 이 문서의 내용 중 전체 또는 일부는 2023-12-16 08:56:22에 나무위키 정동호(1935) 문서에서 가져왔습니다.

[1] 더군다나 김복동은 하나회 수장격인 全, 盧에게 찍혀있던 상황이었다.[2] 다른 한명은 최세창.[3] 난투극 당시에 술에 쩔어서 옆에 있던 민주정의당 이세기 원내총무의 머리를 잡고 술주정을 하는 등 막 나갔다고 한다. 아무리 군사정권기에 군 실세라고 해도 여당 원내대표격인 원내총무의 머리채를 잡고 술주정을 부린 행동은 꽤나 문제가 되었고 직속상관이였던 박희도 육군참모총장이 국회를 찾아 국방위원장과 국회의원들에게 머리를 숙여가며 일일히 사죄를 할 정도로 파장이 컸다고 한다.[4] 정동호가 국방위 난투극 사건으로 인해 예편당하고 최세창도 합참의장으로 가면서 육군참모총장은 박희도가 그대로 유임되었으며 박희도 이후에는 14기인 이종구가 육참총장이 되면서 육사13기는 육참총장을 배출하지 못해 12기와 14기 사이에 끼인 기수 취급을 받는다는 후문이 있다. 참고로 16기 역시 육참총장을 배출하지 못했으나 16기는 안기부장과 대통령경호실장을 지낸 장세동이나 국방부장관을 지낸 천용택 등을 배출하여 13기네 비해 끼인기수 취급은 덜한 편이다.[5] 이 쪽은 12.12 군사반란 재판으로 연금이 짤리지 않았다.[6] 1993. 3. 30 공직자 재산공개 파동으로 제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