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두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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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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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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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 대한민국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정두근
鄭斗根 | Jeong Dugeun


파일:정두근 장군.jpg

학력
대아고등학교 (졸업 / 3회)
영남대학교 (행정학 / 학사)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계획학[1] / 석사[2])
경력
상호존중과 배려운동본부 총재
군사 경력
임관
육군3사관학교 (7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72년 ~ 2010년
최종 계급
중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
주요 보직
제70보병사단 198보병연대장
제11보병사단 13보병연대장
육군3사관학교 생도대장
제32보병사단장
육군훈련소장
제6군단장

1. 개요
2. 생애
3. 군 경력
4. 전역 이후



1. 개요[편집]


대한민국 육군의 前군인, 최종 계급은 중장이며, 제6군단장 및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을 역임하였다. 상호존중과 배려 운동본부 창립자다.


2. 생애[편집]


1952년 9월 5일 경상남도 하동군에서 출생했다. 진주 대아고등학교(3회)를 졸업하고, 1971년 1월 육군3사관학교 7기로 입교, 1972년 12월 졸업과 함께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이후 군 위탁교육으로 영남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1986년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행정관리 전공으로 계획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육군대학 및 국방대학원에서 수학했다.


3. 군 경력[편집]



  • 중위 1974년 6월 진급




  • 대령 1993년 4월 진급
    • 제70동원보병사단 제198보병연대장
    • 제11군단 민심참모
    • 제11보병사단 제13보병연대장
    • 제2군사령부 지휘통제실장
    • 제11군단 교육훈련평가단장, 작전참모
    • 합동참모본부 통합방위과장[3]


  • 소장 2003년 10월 진급
    • 제32보병사단(2003.10 ~ 2005.11)[4]
    • 육군훈련소(2005.11 ~ 2006.12)[5]

사단장 시절, 윗선으로부터 상호 존중과 배려 운동을 그만두라는 압박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병사들의 인권증진을 위하여 상존배운동을 계속 추진했었다. 그래서 당시 군단 내 직할부대들에서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상호 존중과 배려를 실천화합시다. 0중대 (계급) 누가입니다~"라는 것을 해야 했고, 상호 존중과 배려를 강조했다. 이는 그의 대장 진급에 발목을 잡는 결과를 낳았다.

보통 대장급 정기 인사에서 비육사 출신 중장 중 한 명을 육사 출신 다수와 함께 대장으로 진급시키는데, 이때는 정두근 장군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6] 정 장군은 사실상 '상존배 운동을 그만두면 대장으로 진급된다'라는 제의까지 우회적으로 받았다고 한다.[7] 하지만 정두근 장군은 상존배운동을 멈추지 않았고, 이로 인한 인사보복 조치로 제2작전사령부 부사령관으로 전보되어 무려 2년이 넘는 기간을 재직했다.[8]

결국 대장 진급은 8군단장 임기 중이던 이철휘 중장에게 돌아갔으며, 결국 자신의 대장 진급과 장병 인권을 향한 노력을 맞바꾼 셈이다.

역으로 말하면 병영문화 개선에는 병사 개개인의 의지도 중요하지만, 지휘관의 노력과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정두근 장군이 증명한 셈이다.[9]

2010년 12월 28일, 장병들의 인권증진을 위해 온 힘을 다 쏟았다는 이유로 육사 출신 장군들의 음해에 시달리던 정두근 장군은 전역식에서 임석 상관[10] 조차 없이 전역하였다.

4. 전역 이후[편집]


상호존중과 배려 운동본부를 창립해 초대 총재로서 우리 사회의 올바른 가치관과 미덕을 가꾸는 일에 매진하였다. 군내 장병 인권 문제가 대두될 때마다, 각종 방송과 인터넷 신문매체 등에서 앞다투어 정 총재에게 군 인권의 미래에 대해 인터뷰를 요청하는데, 이는 그가 군 시절 보여준 장병 인권 향상을 위한 노력이 지금에 이르러서야 시대를 앞서간 깨어있는 지휘관의 모습으로 평가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예이다. 이후 2018년 3월 29일, 총재직을 박호군 前과학기술부 장관에게 이임하고 명예총재가 되었다. 현재 이 자리는 다시 장경석 예비역 중장이 맡고 있는 상태.

그를 지휘관과 상관으로 모셨던 이, 사회운동가로서 그의 모습을 보아온 이 등 그를 겪어본 많은 이들은 그를 장병 인권 향상과 복지 증진에 온 힘을 다 써온, 이 시대에 보기 드문 참군인으로 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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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행정관리 전공[2] 석사 학위 논문 : 軍組織의 指導性에 關한 硏究(군조직의 지도성에 관한 연구, 1986).[3] 비육사 대령의 최고 요직[4] 사단장 취임 직후부터 부조리의 온상을 목격하고 상호 존중과 배려운동을 처음 도입하여 사단내 사건사고를 혁신적으로 줄였다.[5] 훈련병을 대상으로 인분 사건이 발생을 계기로 육군훈련소를 제2의 창설이라고 불릴 만큼 혁신함. 사단장 시절 병영 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는 성과를 거둔 정 장군을 육군훈련소 분위기를 쇄신할 수 있는 적임자로 보고 육군훈련소장으로 임명한 것.[6] 군단장 재임 시, 상호 존중과 배려 운동의 결과 부대 내 각종 형사처벌 및 영창 발생률 감소, 지휘검열 우수부대로 육군참모총장 표창을 받는 등 각종 성과를 내고 있었다.[7] 남재준 참모총장이 제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써 있었는데, 정두근 중장의 군단장 재임기를 감안하면 시기가 맞지 않는다. 당시 편한 군대가 아닌 강한 군대를 지향하면서 병들에게 비토를 받던 이상희 국방장관이 가장 유력하다.[8] 부지휘관은 보통 전역 대기 혹은 다른 보직으로 옮기기 전에 6달~1년간 거치는 보직[9] 실제로 조현오 경찰청장은 경찰청장 재임기 본인이 앞장서 전의경 내무 부조리를 척결하였고, 그 결과 의경 지원률이 상승하게 되었다. 조 청장의 여러 논란 때문에 그를 비판하는 사람도 조 청장의 전의경 내무 부조리 척결 업적은 인정할 정도.[10] 당시 제2작전사령관(임석상관)은 그를 꺾고 진급한 이철휘 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