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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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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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976년 9월 12일
사망
2011년 12월 9일 (향년 35세)
데뷔
1988년 KBS1 '따뜻한 남쪽나라'

1. 개요
2. 생애
2.1. 전성기
2.2. 사건사고로 인한 방송가 퇴출
2.3. 죽음으로 끝난 근황
3. 활동 내역
3.1. 출연작 목록
3.2. 광고 경력
4. 출처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아역 출신 전(前) 배우.


2. 생애[편집]



2.1. 전성기[편집]


전라남도 함평군에서 태어나 서울 이태원초등학교[2] 4학년 때 삼촌이 일하는 연기학원을 다니면서 연기를 배웠고, 1988년 KBS 다큐드라마 《따뜻한 남쪽나라》에서 광호 역으로 데뷔했다. 같은 해 MBC 어린이연속극 《또래와 뚜리》[3]에 출연하여 MBC와 연을 맺었고, 이듬해 후속작 《댕기동자》의 허물렁, 1990년 《꼴찌 수색대》에서 사고뭉치 소년 '귀봉' 역으로 나와 리더이자 곡마단의 마술사보조 도마(홍경인 분), 말괄량이 소녀 모래(강승현 분), 맹물박사 지동(이남혁 분) 등과 함께 탐정단의 멤버로서 재치있는 활약을 하는 모습을 보여 서서히 인기를 끌었다. 이듬해 《한지붕 세가족》에서 신문을 팔던 악동소년 병태 역을 맡으며 아역배우로는 정상권에 오르고, 장길수 감독 작품 《은마는 오지 않는다》에서 기지촌 아이들 중 하나로 출연했다.

어린이 드라마에서는 주로 공부 못하고 장난은 좋아하는데 자기 장난에 자기가 당하는 일이 많거나, 악하진 않으나 운도 없는 말썽꾸러기 역할을 주로 맡았다. 그렇지만 1992년 3월 29일 경향신문 기사에서는 실제로 문제아가 아니라고 자부했다. 하지만 연기생활 시절 학교에서 조퇴하는 일이 잦았다.

후에 1992년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한 코너인 <이경규몰래카메라>에서 이경규가 "장닭표 양념통닭 프랜차이즈의 광고"를 찍는다고 그를 섭외해 낚았다. 정명현은 이것이 몰래카메라용 가짜 설정이라는 것을 모른 채 열연했고, 여기서 대박을 터트려 이경규와 친분을 트게 되었다. 이경규는 자신이 보기에 괜찮다 싶으면 밀어주는 스타일이고, 정명현도 이경규의 눈에 띄어 자주 캐스팅되었다.

강호동, 이휘재, 박경림, 박명수 등은 이경규의 이런 습관의 최대수혜자였으며 이렇게 뜬 개그맨들이 규라인을 형성하며 자연스럽게 공동출연 등으로 이경규가 오랫동안 영향력 있는 연예인으로 활동하는데 이바지했다. 그리하여 정명현은 1992년 이경규 주연 《복수혈전》에 출연했다. 그리고 《장닭 고교얄개》라는 원맨쇼 코미디 영화를 찍었고, 여러 CF에 출연했다. 대표적으로 '마이구미' CF와 박중훈하고 공동 출연한 '딥콘' CF 등이 있다.

후에도 최진실, 최수종이 주연으로 활약한 《질투》에 피자집 아르바이트생으로 출연하는 등 여러 드라마에서 감초역으로 나왔다. 개성있는 구수한 외모에 준수한 연기력으로 장래가 기대되는 배우였다.


2.2. 사건사고로 인한 방송가 퇴출[편집]


그러나 당시 고등학생(선린상업고등학교#)이었던 그는 행실에 문제가 있었다. 급기야 1993년 본드를 흡입하고 절도행위를 하다 잡혀서 소년원 신세가 되었고 방송 출연이 금지되었다. 얌전히 반성하고 있었다면 몇 년 있다가 일이 풀렸을 수도 있는데, 5개월 후 더 심각하게 본드 흡입 후 성폭행을 저질렀다. 이 사건은 논란이 있는데, 일단 당시 신문기사에는 분명히 특수강간, 그러니까 윤간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되었다고 한다. 일설에는 최종적으로 강간미수로 판결났다고 하지만 어쨌든 시도를 했던 것부터 인간이길 포기한 행동이기 때문에 이로 인해 그동안에 쌓아온 이미지, 커리어가 한순간에 무너져 버렸다.

인기와 인지도를 쌓은 학생 신분이었다고는 하나 나름 촉망받던 장래를 두고 있다는 것을 당사자가 모를 리 없었고, 그의 일탈을 접한 당시 대중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연예기자 이진호는 후술할 2013년 <tvN eNEWS> 인터뷰에서 정명현의 범행 경위에 대해 "아역배우들은 어려서부터 주목을 너무 받다 보니 대중들의 시선에 너무 민감해질 수밖에 없으며, 특히 자아가 발달 안 된 청소년일 경우 이런 시선을 부담스러워한 나머지 갈등 혹은 우울증으로 이어질 여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어쨌거나 MBC에서 출연금지 연예인이 되었으며 연예계에서 완전히 퇴출되었고 한지붕 세가족에서 강판되었다. 특히 이 사건사고로 인해 진심으로 밀어줬던 이경규도 결국 정명현과 절연하게 되었고, 그렇게 어렵게 쌓아놓은 정명현의 인맥도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었다. 후에 그는 1998년 SBS 드라마 미스터Q에서 카메오로 출연했지만[4], 그가 카메오에 출연하다는 얘기가 없었기 때문에 지금도 정명현이 《미스터Q》에 카메오 출연한 것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5] 그리고 이것은 고인의 마지막 방송 출연 커리어가 되었다.


2.3. 죽음으로 끝난 근황[편집]


후에 그의 소식이 끊겼고, 1990년대 후반 케이블에서 모 프로의 진행을 맡았다는 설이 있으나 확실하진 않다. 어쨌든 대중의 눈에는 거의 띄지 않았고, 더 이상 설 자리를 잃은 정명현은 결국 2006년경에 조용히 한국을 떠나 외국으로 이민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2011년 12월 9일에 사망했는데, 이는 2013년 1월 21일에야 인터넷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되었으며 이는 경기 광주시 소재 분당스카이캐슬 추모공원 측의 답변으로 확인되었다.#, 단, 추모공원 측이 그의 구체적 사인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고 답했기에 불명이나 사인이 아역배우로 뜬 그가 방송을 떠나 지내는 것이 엄청난 스트레스였을 거라는 추정만 나왔다.[6]

이런 뜬금없는 부고기사에 많은 사람이 놀랐고, 한동안 포털 사이트 검색조회수 1위를 기록했다. 이 때 그와 같이 한지붕 세가족에서 병태 동생 역으로 나온 서재경은 트위터에서 조의를 표했다. 동월 23일 tvN eNEWS 《CSI 스타수사대》가 전술한 추모공원까지 찾아가 관계자들에게 사망 경위를 물었으나, 추모공원 측은 이슈화를 우려하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연락처 제공과 촬영 요청을 거절했다.

연기력에 대해서는 천부적 재능을 가졌으나, 성장기를 빼앗기는 바람에 인격을 다듬을 수 없어 이후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양진영[7]과 더불어 아역 배우의 최악의 사례들 중의 한 명이 되었다. 한국판 신나는 개구장이의 저주인 셈이다.

위에 언급했듯 이경규는 정명현한테서 가능성을 보았는지 한동안 작정하고 밀어주었다. 거물급 예능인들을 두루 발굴해낸 이경규의 안목을 보면[8], 만약 크게 문제만 일으키지 않았다면 내로라하는 예능계 거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지도 모른다.


3. 활동 내역[편집]



3.1. 출연작 목록[편집]






3.2. 광고 경력[편집]


광고정보센터 DB 등을 토대로 작성한 목록임을 밝힌다. 10대를 대상으로 한 과자 제품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참고로, 이 제품은 이외에도 애니메이션 광고를 냈었다.


  • 사조산업
    • 사조 로하이 김치찌개전용 참치 (1992)

  • 하림
    • 더글러스치킨 (1992)


4. 출처[편집]


  • 주간경향 1991년 제1172호(9월 29일) 기사 '사람 사람들: 한지붕세가족 정명현(박상용 기자)'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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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후술할 사건사고 이후부터 사망 전까지의 근황 사진을 찾을 수 없기 때문에, 활동 당시 사진으로 기재했다. 아래 사진은 그의 출연작인 <장닭 고교얄개> 스틸 사진 일부.[2] 《TV가이드》 1991년 제499호 p41 기사에서 언급.[3] 《꾸러기》의 후속작이다.[4] 방송계에서 퇴출됐다고 상술했지만 KBS와 MBC 같은 공영방송이나 그렇지, SBS는 민영방송이라 어찌 출연이 가능했다는 얘기도 있었다.[5] 사건사고 이후 5년이나 지나버려서 이미 대중들 에게 잊혀진지 오래이며, 설령 정명현 인걸 아는 사람들도 저 악질 범죄자를 TV에 다시 출연시킨다는게 전혀 반가워 하지 않는 반응을 보였을 것이다.[6] 오랜 이민생활 중 생활고로 자살했다는 말도 있었다.[7] 1974년 1월 29일 경기도 가평군 출생. 전원일기의 금동이로 데뷔하였으며 많은 드라마와 영화에 출연했다. 1992년에 취객의 지갑을 훔친 혐의로 인해 불구속 입건된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되면서 방송가에서 퇴출되었다. 이후로도 2002년 충청북도 청주시의 호스트바에서 사건을 일으켜 지명수배되기도 했다.[8] 대표적인 인물이 '강호동'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