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삼국전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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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봉 삼국전투기.png

1. 개요
2. 작중 행적
2.1. 삼로 전투
2.2. 동흥 전투
2.3. 합비 신성 전투 ~ 낙가 전투
2.4. 전투외편 5 ~ 전투외편 6
2.5. 검각 전투 ~ 서릉 전투
3. 작중 묘사
4. 여담




1. 개요[편집]


최훈 작가의 작품 삼국전투기에서 등장한 정봉을 서술하는 문서. 링크의 1번 항목의 정승연이며 동생 정봉은 짤린 걸로도 모자라 일언반구의 언급도 없다.

빈란드 사가토르핀 카를세프니로 패러디되었다.


2. 작중 행적[편집]



2.1. 삼로 전투[편집]


첫 등장으로 이 때는 아직 소대 하나 정도 맡고 있는 녀석이었다고 언급된다.[1] 그래서 주소가 이제 겨우 소대 하나 맡고 있는 녀석에게 어떻게 주력을 맡기냐며 항의하기도 했지만 어쨌든 주환의 명을 받들어 유수오의 주력을 이끌고 선계로 향했다.

조인이 보낸 왕쌍과 상조의 특공대를 주환의 지시에 따라 저지하는 모습으로 등장. 이 때 정봉은 정말로 수로로 위군의 돼지들이 들어올 줄은 몰랐다며 주환을 고평가하기도 했다.

매복으로 위군을 공격해 상륙하게끔 만든 뒤 상조에게 달려들어 순식간에 목 뒤와 하반신 부위에 칼을 꽂아 죽이고 왕쌍의 유성추 공격을 간단히 피하고 왕쌍유성추쌍방울을 절단한 뒤 사로잡는다.

2.2. 동흥 전투[편집]


삼로 전투 이후 무려 30년 만에 재등장한다. 세월이 많이 지나서인지 수염도 자랐고 헤어스타일도 뒤로 묶은 머리스타일로 바뀌었다.

제갈탄과 호진이 이끄는 위군을 상대하기 위해 제갈각이 소집한 제장들 중 하나로 등장. 그들과 본격적으로 맞서기에 앞서 동흥에 상륙지점을 논할 때, 여거와 유찬, 당자가 동흥제에 바로 상륙하자는 것을 지지할 때 홀로 제갈각에게 유수구에서 상륙한 뒤 동흥제로 갈 것을 주장하며, 위군이 대군을 동원한만큼 대군을 몰고 직접 상륙하게 되면 적이 있는 힘을 모두 모아 공격할 테니 자신들이 피해를 입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에 제갈각은 정봉의 말에 일리가 있으나,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걱정하자 자신의 사병만을 동원해 먼저 상륙하여 시간을 벌겠다고 말한 뒤 동흥으로 출발한다.

위군이 술과 고기를 먹고 마시며 주연을 즐기는 틈에 단검 하나씩을 든 자신의 사병들과 함께 제방을 타고 올라 위군을 습격하고 도중에 마주친 한종을 죽인 뒤 지원군이 당도할 때까지 시간을 번다.


2.3. 합비 신성 전투 ~ 낙가 전투[편집]



제갈각의 합비 신성 공략에 참전했다는 언급이 나온다.

낙가 전투에서 패퇴한 문흠, 문앙 부자가 조진의 추격에 의해 위기에 몰렸을 때 단번에 조진의 목을 베고 추격대를 전멸시켰다.


2.4. 전투외편 5 ~ 전투외편 6 [편집]


전투외편 5편에서는 여거와 등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손침의 요구를 받은 손량의 명을 받아 여거쪽으로 이동한다는 언급이 나온다.

수춘2 전투 편에서는 수춘 전투에서 주태와 석포를 상대로 고전하던 주이에게 손침의 명으로 파견되어 그의 군에 배속되었다. 그러나 활약한 건 정봉뿐이었고 결국 오군은 위군에게 패했다.

전투외편 6편에서는 손휴의 손침 주살작전에 참여하여 손침이 연회장소를 빠져나가려는 것을 제지. 다 끝났다며 포기해라는 정봉의 모습에 손침은 압도되어 손휴에게 처형당하게 되며 거사가 끝나고 대장군이 된다. 정봉 본인은 "밖에서 그렇게 죽여대도 쥐꼬리만큼 올랐는데 안에서 하나 죽이니까 쑤욱 올라갔다"며 착잡해했다.


2.5. 검각 전투 ~ 서릉 전투[편집]


검각 전투 편에서는 손휴의 명에 따라 위군이 촉한을 공략할 때 위군이 촉에만 집중하지 못하게 하도록 수춘으로 원정을 나갔으나... 촉한이 멸망하자 모든 대촉 지원작전이 중지되면서 그냥 퇴각한다.

전투외편 8편부터 정봉의 머리가 하얗게 세었고 주름살도 늘어났다.

전투외편 8편에서는 손호가 제위에 오른 뒤 그의 명을 받아 제갈정과 함께 합비 공략에 착수했다. 정봉은 일단 안쪽부터 흔들어보자며 동요를 하나 만들어 퍼트려 석포와 진의 중앙을 이간했고, 이는 잘 먹혀들어가 사마염은 석포를 의심했지만, 석포가 모든 군권을 포기하며 사마염이 의심이 풀어져 석포를 실추시키려는 계략은 실패했다.[2]

석포를 실추시키려는 계략은 실패했지만 어쨌든 합비는 공략해야 했기에 작피 루트로 공략을 시도하지만 사마준에게 격파당했다. 270년경에 또 손호의 명을 받아 합비 공략에 나서고[3], 이번에는 평소 가던 길이 아닌 새로운 길로 돌아가지만 견홍에게 박살나며 또 실패했다. 정봉의 거듭되는 실패에도 손호는 차마 정봉은 죽이지 못했다고 언급되기도 했다.

그 뒤 서릉 전투 편에서는 서릉 전투가 끝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다는 언급과 함께 아들 정온이 정봉의 죄를 대신 받아 처형당했다는 언급도 나온다. 정봉은 더러운 꼴 안 보고 먼저 죽어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동시에 정봉 대신 처형당한 아들 정온에게 자긴 뭔 죄냐며 한 소리 듣기도 했다.


3. 작중 묘사[편집]


후반기 오나라 최강의 무장

작가의 평으로는 개인 전투력이 손책, 감녕을 뛰어넘는다고 되어 있다.

삼로전투에서 순식간에 상조를 죽이고, 왕쌍의 쌍방울(...)을 따는 모습, 동흥 전투에서 한종을 죽이는 모습 등 삼국전투기 후반부에서 문앙과 더불어 가장 임팩트있고 유이하게 무쌍을 펼칠수 있는 장수로 묘사된다.

말년에는 비록 사마준, 견홍에게 깨지지만, 석포를 실각시키는 계략을 짜는 모습을 보인다.

4. 여담[편집]


나이를 먹은 이후엔 머리가 새하얗게 변했는데 오히려 위쳐 3의 게롤트에 더 가깝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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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실 정사대로라면 이때 등장하기는 어렵다. 연의와 섞는 과정에서 적당히 타협한 듯.[2] 작중에서는 실패라고 표현되지만, 사실 석포가 모든 군권을 포기하면서 수춘에서 석포를 치워버리는데 성공했으니 이간책 자체는 어떻게 보면 성공에 더 가까웠다. 본래 목표였던 합비 정벌에는 실패해서 그렇지(...)[3] 이 때 정봉은 어디는 영감이 젊은이를 혹사한다는데 왜 여긴 젊은이가 영감을 혹사시키냐며 푸념을 늘어놓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