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석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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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대한민국의 남성 정치인
- 제10대 국회의원
- 제11대 국회의원
- 제12대 국회의원
- 제13대 국회의원
- 제14대 국회의원
- 제15대 국회의원
- 민주공화당(1963년) 국회의원
-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 민주자유당 국회의원
- 자유민주연합 국회의원
- 대한민국의 경찰공무원
- 경찰 출신 정치인
- 대한민국의 교육인
- 교육인 출신 정치인
- 공주시 출신 인물
- 동래 정씨
- 대한민국의 가톨릭 신자
- 1929년 출생
- 2009년 사망
- 강원특별자치도지사
- 충청남도지사
- 내무부 치안국장
- 시·도경찰청장
- 전두환 정부/인사
- 박정희 정부/인사
- 공주고등학교 출신
- 서울대학교 출신
- 내무부 차관
- 내무부 장관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제43대 내무부 장관.
아들 정진석은 국민의힘 소속 5선 국회의원이자 제21대 전반기 국회부의장이며, 이종성 전 충남방직 회장과는 사돈이다. 정석모의 장남이자 정진석의 친형은 흑금성 사건의 주인공인 박채서와 같이 동업을 했는데 동업 당시 회사명인 아자커뮤니케이션의 실질적인 오너였던 정진호(鄭鎭虎)다.[3]
2. 생애[편집]
1929년 3월 11일[4] 에 충청남도 공주군에서 태어나 공주고등학교(19회)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경찰 출신으로 1971년 12월 16일부터 1973년 1월 16일까지 내무부의 치안국장(現 경찰청장: 1950년대~1960년대의 이사관급 경찰총수)을 역임했다. 곧이어 강원도지사와 충청남도지사를 거쳐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1978년 제1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공주-논산 선거구에 출마하여 친야 무소속 박찬 후보와 동반 당선되어 정계에 입문하였다.
이후 1980년 전두환이 집권하고 민주정의당이 창당될 때 민주정의당에 입당했고, 같은 시기 매헌윤봉길기념사업회 3대 이사장도 3년여 간 역임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국국민당 임덕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신한민주당 김한수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그 후 내무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노태우 대통령의 대한민국 제5공화국 색깔 지우기로 인해 일단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하였다. 그러다가 전국구 공천에서 구제되어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창당하고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민주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김종필이 1995년 자유민주연합을 창당하자 자유민주연합에 입당하였다. 이듬해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공주시 지역구에 출마, 민주정의당과 민주자유당에서 한솥밥을 먹던 신한국당 이상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지역구를[5] 아들 정진석에게 물려주고 정계에서 은퇴했다. 이후 2009년 6월 8일에 노환으로 인해서 향년 80세로 사망했다. 묘는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하대리(河大里) 은곡(銀谷)에 있다.[6]
3. 선거 이력[편집]
4. 소속 정당[편집]
5. 둘러보기[편집]
[1] 음력 1929년 2월 1일[2] 임당공파 30세손.[3] 당시 정진호는 대북사업에 관심이 많았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4] 음력 1929년 2월 1일[5] 공주시와 연기군(현 세종특별자치시)이 통합 선거구로 구성됐다.[6] 다음은 이하 출처 사진이다. [a] A B 논산군, 공주군[7] 무소속 박찬 후보와 동반 당선[8] 한국국민당 임덕규 후보와 동반 당선[9] 신한민주당 김한수 후보와 동반 당선[10] 1995.2.9 탈당 및 의원직 사퇴[11]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신설 합당. 이른바 3당 합당.[12] 자유민주연합 창당을 위한 탈당.[13] 한나라당에 흡수 합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