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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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민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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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 챔피언 결정전 우승 반지
1999 겨울
2000 여름
2001 여름
2002 겨울
2007 겨울
2008
2009
2010
2011













파일:한국여자농구연맹 로고.svg
WKBL 베스트 5 (14회)
1998 여름, 2000 여름, 2001 겨울, 2001 여름, 2002 겨울, 2002 여름, 2003 겨울
2004 겨울, 2005 겨울, 2005 여름, 2006 여름, 2007-08, 2008-09, 2009-10




대한민국의 농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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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민
鄭先珉

출생
1974년 10월 12일 (49세)
경상남도 마산시[1]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84cm, 79kg
직업
농구 선수 (파워 포워드 / 은퇴)
농구 감독
학력
산호초등학교 (졸업)
마산여자중학교 (졸업)
마산여자고등학교 (졸업)
가족
부모님, 동생 정훈종
실업 입단
1993년 SKC 여자 농구단
소속
선수
SKC-SK증권 여자 농구단 (1993~1998)
광주 신세계 쿨캣 (1998~2003)
시애틀 스톰 (2003~2004)
천안 KB 세이버스 (2004~2006)
안산 신한은행 에스버드 (2006~2011)
청주 KB 스타즈 (2011~2012)
산시 신루이 플레임 (2012~2013)
감독
대한민국 여자 대표팀 (2021~2023)
코치
부천 KEB하나은행 (2014~2016)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 (2016~2019)
해설
부산MBC (2020~2021)

1. 개요
2. 기록
3. 선수 경력
4. 지도자 경력
5. 해설가 경력
6. 여담
7.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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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타공인 여자 농구의 끝판왕이자 지존. 별명은 바스켓 퀸. 이 별명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농구 관계자나 팬은 아무도 없다. 국내 제일의 파워 포워드이자 센터, 그리고 대한민국 여자 농구 레전드 중 한 명. 1993년 성인 무대에 데뷔해 2012년 은퇴할 때까지 20년동안 한국 여자 농구의 대들보이자 여왕으로 군림한 선수다.

동시대 정은순, 전주원 이후 변연하 등 쟁쟁한 스타들이 있었지만 정선민은 레벨이 그 위였다. 한국 여자 농구의 GOAT라고 봐도 무방하다.


2. 기록[편집]


정규 시즌[2]
415경기 19.61점 7.57리바운드 4.28어시스트 1.86스틸 필드골 46.0% 3점슛 22.2% 자유투 87.1%

플레이오프
83경기 17.90점 7.35리바운드 4.61어시스트 1.76스틸 필드골 42.8% 3점슛 22.0% 자유투 82.5%


3. 선수 경력[편집]


마산산호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의 권유로 농구에 입문했다. 그 후 마산여자중학교를 거쳐 마산여자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2부터 고교대회 MVP를 차지하면서 일찍부터 거물급 루키로 평가받았는데, 스카우트 싸움 끝에 결국 1993년 SKC로 진로가 확정되었다. 데뷔 시즌에 농구대잔치 신인상을 받으면서 일찍부터 능력을 보여줬다.

팀 창단 후, 우승이 없던 SK증권[3]을 이끌고 세 차례 농구대잔치 우승을 일궜다. 그 때 함께 우승을 만든 주역이 유영주, 김지윤, 이종애로 지금도 WKBL의 주역인 선수들이다. 그러나 1997년 우승을 차지하고도 팀이 해체되면서 드래프트를 거쳐 신세계 쿨캣으로 이적하게 된다.

WKBL에서 신세계의 4차례 우승을 이끌었다. 그리고 2003년 한국 여자 농구 사상 최초로 WNBA에 진출했다. 1라운드 8순위로 시애틀 스톰에 지명되어 한 시즌을 뛰었으며 평균 6.9분 17경기 출전에 평균 1.8득점을 기록했다. 성적이 그다지 좋지 못해서 바로 돌아왔는데, 신세계로 복귀한 것이 아니라 2004년 국민은행으로 이적했다. 2006년 당시 국민은행의 여름리그 우승에 일조함에 따라 여름리그 MVP를 수상하게 된다. 이후 2006년 10월 신한은행으로 이적한 뒤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WKBL에서 MVP만 무려 7번을 차지했다. 이 기록은 거의 깨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하도 많이 받아서 2008-2009 시즌에는 일부러 후배인 최윤아에게 기자들이 표를 몰아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적수가 없어서 2009-2010 시즌에 바로 정규시즌 MVP를 수상했다. 득점왕에 오른 것도 4차례, 심지어 2002년에는 센터임에도 불구하고 스틸 부분 1위에 올랐다. 완벽한 만능 선수. 또 1가지의 기록이 절대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바로 통산 최다 트리플더블 기록이다. 무려 13차례의 기록을 세워서 WKBL 역대 최다 기록을 가지고 있다.

국가대표로 여자 농구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동료인 전주원, 정은순, 유영주 등과 함께 국가대표를 이끌면서 2000 시드니 올림픽 4강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반대로 그녀가 없던 2004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전패로 탈락하는 수모를 기록했으니까, 그녀의 비중을 짐작할만 하다.[4] 이 시기 정선민의 실력은 아시아권에서는 적수가 없었다. 중국에게 예선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연달아 패하던 시기인데도 정선민 만큼은 항상 20~30점은 득점했었다.

국가대표로 복귀한 이래 다시 맹활약, 2008 베이징 올림픽 8강과 2010 세계선수권 8강을 이끌었다.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을 끝으로 국가대표에서 은퇴하려고 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출전이 좌절되었고, 결국 그녀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력은 2010 세계선수권이 되었다.

2010-11 시즌에서도 신한은행이 또 우승을 차지했지만, 정작 본인은 부상으로 거의 출전하지 못했다. 마지막 불꽃을 태우기 위해 이미 이룰 것은 다 이룬 신한은행 대신 다른 팀으로의 이적을 요청, 결국 곽주영, 허기쁨이 신한은행으로 가고, 정선민이 국민은행으로 가는 1:2 트레이드가 성립되었다. 점프볼 서민교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임달식 감독과의 불화나 프런트와의 갈등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으며, 스스로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WKBL 챔프전 우승이 단 한 번도 없었던 KB로 가서 말년을 장식할 듯 하다.

2011-12 시즌 국민은행에서 활약하며, 팀을 챔프전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챔프전에서 3전 3패로 신한은행에게 패하며, 자신의 능력으로 신한은행 상대로 복수하려는 꿈은 이루지 못했다. 패배가 확정적이자 분해서 눈물을 보이는 장면이 안타까움을 자아냈고 결국 이 장면은 정선민의 마지막 장면이 되었다.

2011-12 시즌을 끝으로 선수 생활 은퇴를 공식 선언하고, 화려했던 선수 생활을 접었다. 2012년 4월 30일 은퇴 기자회견을 가진다. 은퇴 후에는 농구 선수가 아닌, 평범한 여성의 삶을 살겠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하지만, 은퇴 이후부터 곧바로 지도자로 활동하면서 다시 농구계로 돌아왔고 2021년부터는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었다.


4. 지도자 경력[편집]


2013년 ABC 선수권대회에서 코치로 합류하여 활동했다. 그리고 2014년 6월 서울 인헌고등학교 남자 농구부의 코치로 선임되어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됐다. 여자코치가 남고팀 코치로 활동하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

2014년 12월 1일부터 여자프로농구 부천 KEB하나은행의 코칭스태프로 임명되어 선수들을 지도하였고 2015~2016 시즌 종료 후 인천 신한은행 에스버드에 새롭게 부임한 신기성 감독을 따라 옮겨갔으나, 2018~2019 시즌 후 성적 부진의 책임을 물어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아 신기성 감독, 전형수 코치와 함께 팀을 떠나게 되었다.


4.1.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 감독[편집]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국가 대표팀을 이끌었던 전주원 감독의 뒤를 이어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감독직 데뷔 후 첫 대회는 2021 FIBA 여자 아시안컵으로 이 대회에서 4강 안에 들어야 다음 농구 월드컵 예선에 진출할 수 있다.#

박지수가 없이 대회를 치러야하는 상황이라 다소 부침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으나, 뉴질랜드를 상대로 승리하고 일본과 접전을 펼치면서 조별예선을 통과해 4강 진출전으로 올라갔고, 여기서 박혜진의 활약으로 대만을 80-74로 잡아내면서 월드컵 예선 진출을 확정지었다. 하지만 이후 준결승전에서 중국, 3·4위전에서 호주에 패하면서 한국 대표팀은 다시 한 번 4위에 그쳤다.

다만 대회 기간 동안 정선민 감독의 전술 능력에 대한 평가는 전임 전주원 감독보다는 아쉬움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상대 3점슛이 폭발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수비를 바꾸지 않는다든가 박혜진에게 과부하가 걸리는 상황에서도 안혜지 등 부담을 줄여줄 추가 가드를 투입할 생각을 하지 않는 점 등이 지적받고 있다. 아무래도 감독 경력은 처음이다보니 생기는 경력 부족으로 인한 판단 실수로 보인다.

2022년 2월 세르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열린 농구월드컵 예선에 참여했는데, 강이슬과 박지수의 활약으로 1승 2패로 통과해 9월에 열릴 농구 월드컵 진출권을 따냈다.#

3월 3일 열린 조 추첨 결과 미국, 벨기에, 중국,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푸에르토리코와 함께 A조에 편성되었다.#

2022년 6월. 최윤아 코치와 FIBA 인스트럭터 과정에 참여하였다. 연합뉴스

2022년 9월, FIBA 월드컵 본선에서 1승 4패를 기록하며 초라하게 귀국하였다. 출국 전에는 당차게도 8강을 노리겠다고 인터뷰를 하기도 했고[5], 대회 최약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대표팀을 상대로 1승을 거둬서 언론에서 12년 만에 농구 월드컵 본선 승리라며 애써 포장을 하기도 했는데, 실제 경기 내용을 들여다 보면 썩 좋지 않은 결과다.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를 제외한 나머지 팀들에게는 그야말로 참혹한 대패를 당하고 말았는데, 중국에게는 44 - 107로 무려 63점 차 패배를 당했고, 미국에게는 145 - 69로 무려 76점 차 패배를 당했다. 심지어 미국이 기록한 145점은 역대 FIBA 월드컵 대회 최다 득점 신기록이었다. 설령 강팀을 상대로 버릴 건 버린다는 생각이었다고 해도 이 정도 점수 차이라면 선수들이에게 심리적으로 타격을 줄 수 밖에 없는 수준이었고, 여농 대표팀을 응원하는 팬들의 기대감을 산산조각내버려 더이상 대표팀을 응원하지 않게 만들어 버리는 수준이었다.

단순히 박지수가 빠져서라는 핑계를 대기도 힘든 게, 인사이드를 버리고 극단적으로 외곽슛에 기대는 단순 그 자체였던 공격 패턴, 김단비, 박혜진 등 트랜지션이 안 돼서 세대교체가 시급한 노장들, 전략 분석조차 제대로 안 돼서 40%가 넘는 3점을 보유한 상대 센터를 스위치해서 따라가지 않고 외곽슛을 쏘게 내버려두는 이해되지 않는 수비까지[6], 도대체 두 달이라는 그 긴 준비기간 동안 뭘 준비한 건지 의문이 들 정도로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이 모든 문제가 집약된 경기가 출국 전에 1승 제물로 지목했고 가장 준비를 많이 했을 법한 푸에르토리코전이었는데, 상대의 속도와 힘에 밀리는 와중에 에이스 한 명만 막겠다는 극단적인 수비를 펼쳐 1쿼터 시작부터 0 - 18로 밀리며 일찌감치 승부가 결정돼 버렸다. 결국 후반부턴 지나칠 정도로 3점에 의존하여 결국 총 69개의 슛 시도 중에 40개가 3점슛 시도라는 극단적인 공격을 펼쳤는데, 그 반대급부로 인사이드 공격을 포기하다시피하여 결국 이 경기에서 얻어낸 한국 여농 국대팀이 얻어낸 자유투는 단 3개에 불과했다. 다시 말하지만 선수 한 명이 얻어낸 자유투가 아니라 팀 전체가 얻어낸 자유투 갯수다. 한마디로, 인사이드에서 밀리고 트랜지션이 안 되는 팀이 극단적으로 3점에만 의존하는 고리짝 시절 양궁 농구를 연출했다가 실패해버린 것.

심지어 그나마 대회 기간 동안 공수에서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인 윤예빈이 이 푸에르토리코 전에서 십자인대 파열이라는 중상을 입고 선수생명에 큰 타격을 받게 되었다. 결국 얻은 것 하나 없이 손해만 입으며 시대에 뒤처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2023년 6월, 아시아컵에서 4강에 실패함으로써 2024 파리 올림픽 진출에 실패하였다. 첫 경기였던 뉴질랜드전에서 64대 66으로 패배하면서 이미 예고된 비극. 더불어 아시아컵 4강 진출 실패 자체도 1964년 대회 창설 이후 최초. 이런 이유로 지난 FIBA 월드컵에서 실패했을 때와는 달리 언론에서 '충격', '참사', '역대 최악' 같은 표현을 들어가며 매우 안 좋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실패 원인에 대해선 팬들 사이에서 감독의 전술 문제라는 질타가 나오고 있다. 간단히 말해 박지수에게 공을 몰아줬는데, 정작 그 박지수의 컨디션이 끔찍한 수준이었던 것. 첫 경기 뉴질랜드 전에서 박지수가 팀 야투의 3분의 1인 23개의 야투를 던져 달랑 8개를 넣어 야투율 34.8%를 기록하며 패배의 1등 공신이 되었는데 이후 경기에서도 전술적으로 달라진 게 전혀 없이 박지수에게 몰아주고 박지수는 30%대 야투율을 기록하는 모습이 반복되었다. 이게 유일하게 먹힌 게 대회 최약체 레바논 전이었을 뿐이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본인도 박지수에게만 의존해선 안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다는 것. 실제로 경기 도중 선수들에게 박지수에게만 의존해선 안된다는 지시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특별히 준비된 공격 전술이나 선수 구성이 없어 씨알 도 안먹혔다는 게 문제.

어쨌거나 2022년 들어서부터는 옹호보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확연이 크다. 내부 여러 사정이 있겠지만 드러나는 모습으로는 감독으로서 한 팀을 만들 시간을 충분히 부여받았음에도 박지수가 없을 땐 박지수가 없어서 지고, 박지수가 있을 땐 박지수가 못해서 진다는, 감독으로선 영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고 있기 때문. 상당히 급하게 지휘봉을 잡고 임기가 짧은 상황에서 큰 대회를 치렀지만 좋은 경기력으로 호평을 받았던 전임 전주원 감독과 대비되는 모습이라 비판이 날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

이렇게 영 안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아시안 게임이 코 앞에 닥친데다가 아시안 게임이 끝나면 향후 2년 간 국제 대회 출전이 없는 사정 탓에 울며 겨자 먹기로 대표팀 감독직을 유지하였다. 그리고 아니나다를까 아시안게임에서도 마찬가지인 모습을 보여주며 동메달에 그쳤다. 선수 구성이나 전술에서 아무런 변화 없이 기존의 모습을 되풀이하였고, 작전타임때도 별다른 작전 지시를 내리는 모습도 없어 농구팬들에게 무능하다는 인상을 재각인시켜줬다.
사실 대회전부터 기존의 강팀 중국과 선진 농구를 빠르게 받아들여 강팀으로 거듭난 일본에게 안될게 뻔하다는 예상이었는데, 역시나 4강전에서 일본에게 81-58로 완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참고로 여농 국대가 아시안게임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한 것은 무려 17년 만의 일이었다.
이후 북한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박지수의 맹활약으로 동메달을 획득하긴 했고, 많은 사람들의 예상대로 이번 대회를 마지막으로 대표팀 지휘봉을 내려놓게 되었다.#

정선민 호가 참혹한 실패를 거둔 것이 100% 정선민의 잘못만은 아니긴 했다. 근본적인 이유는 선수층이 나날이 얕아져만 가는 가운데 최근 세계 농구 트랜드에 맞는 선수, 즉 포지션 관계없이 빠르게 잘 달리고 외곽에서 망설임 없이 잘 쏠 수 있는 선수가 거의 없다시피했다는게 최대 문제였다.
그런데 정선민 감독의 문제는 이런 상황을 타개할 만한 공격 전술을 준비하지도 못했고, 그렇다고 상대방의 달리고 점퍼하는 농구를 막을 수비 전술을 마련하지도 못했다. 그러다보니 선수, 감독 모두 시대에 뒤처지고 아무 컨셉도 없는, 그냥 단순한 박지수 몰아주기 농구를 하다가 개같이 멸망해버린 것.

어쨌거나 정선민 감독 재임 동안 대한민국 여자 농구 국가대표팀역대 최악의 실적을 낸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기에, 아무래도 정선민 역시 아무래도 역대 최악의 여농 국대 감독으로 기억될 수 밖에 없을 듯하다.


5. 해설가 경력[편집]


부산 출신의 KB 스타즈 영구 결번의 주인공인 변연하 부산MBC 해설 위원이 BNK 썸 코치로 떠나게 되면서 후임 해설 위원이 되었다. 주말 홈 경기 해설을 맡게 되었고 BNK 썸 구단 유튜브 영상에는 해설 과정 영상이 나왔다.


6. 여담[편집]


  • 동생인 정훈종전주 KCC 이지스에서 선수로 뛰었다.[7] 그러나 누나에 비해서 선수로서 이룬 것은 없다. 꿈도 소박한 것이 KCC 시절의 인터뷰에서 은퇴 후에 하고 싶은 일이 PC방 운영이라고 했으니...[8] 2015년에 경기도 모처의 물류센터에서 근무한 것을 직접 보았었는데???

  • 아직 미혼이다. 언론 인터뷰를 보면 결혼할 생각도 은근히 표하고 있으니 결혼 생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닌 듯. 다만, 만나는 친구나 후배들이 남자로 안 보인다 카더라. 유영주서장훈이랑 엮을려다가 죽을 뻔했다고 썰 풀던데



7. 관련 문서[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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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2] 통산 8140점 3142리바운드 1777어시스트 771스틸[3] SKC에서 운영 주체가 바뀌었다.[4] 물론 이 당시에는 전주원을 비롯해 이름있는 노장 선수들은 다 빠졌다.[5] 다만 크게 잡은 목표가 그렇다는 것이지 실질적인 목표는 푸에르토리코 상대로 1승이긴 했다.[6] 사실 그동안 여농 국제 대회가 있을 때마다 손대범 농구 전문 기자 겸 여농 해설위원이 전력 분석에 참여해왔는데, 이상하게도 이번 대회에선 요청이 없어 그냥 자진해서 전력 분석 자료를 작성하여 전달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마저도 활용하지 않는 근거 없는 자신감을 보이며 자멸하다시피 한 것.[7] 205cm의 장신으로 누나와 같은 포지션(센터)로 뛰었다. 마산고등학교중앙대학교를 졸업했다.[8] 실제로 친했던 선수들의 말에 의하면 정말로 PC방을 차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