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훈/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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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위문서.png   상위 문서: 정성훈

1. 아마추어 시절
5. FA 1기
6. LG 트윈스 시절
6.1. 2009 시즌
6.2. 2010 시즌
6.3. 2011 시즌
6.5. FA 2기
6.10. FA 3기
6.11. 2017 시즌
6.12. 충격의 방출
8. 국가대표 경력
9. 연도별 주요 성적


1. 아마추어 시절[편집]


고등학교 시절 광주제일고등학교 야구부의 황금 내야진(최희섭-송원국-정성훈-이현곤)의 일원이었다. 프로 입단 후 3루수로 주로 뛰었던 이현곤과 반대로 고등학교 재학시절에는 유격수로 활약. 이후 해태의 1999년 1차 지명을 받고 입단한다. 프로 데뷔해인 1999년도에 정성훈은 입단하자마자 고교선배 김종국의 부상으로 인한 내야진 연쇄이동으로 주전자리를 잡는 행운을 잡으며, 규정타석을 채운 타율 .292, 7홈런의 호성적으로 홍현우, 양준혁, 장성호 등과 팀 210홈런의 엄청난 핵폭발타선 일원이 된다.


이 해의 신인왕 자격은 규정타석 돌파이고, 정성훈은 유일한 후보였지만, 불행하게도 IMF로 막장이 된 해태는 신인왕 PR 및 로비를 못하고 두산의 로비와 해태의 막장사정으로 자격도 갖추지 못한 홍성흔에게 부당하고 억울하게 강탈당한다.

여담으로 01년의 박한이 역시 단독후보였지만, 한화 김태균에게 신인왕을 강탈당했고, 신인왕후보 규정은 삭제된다


2. 해태-KIA 타이거즈 1기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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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타이거즈 시절.1999년 신인 시절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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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A 타이거즈 1기 시절.

포지션은 유격수로 시작했지만 얼마 안 가 홍현우가 2루수로 이동하고, 박계원이 유격수로 자리잡자 수비 부담이 적은 3루수로 전업하였다. 그 이후 홍세완의 입단으로 잠시 유격수로 복귀하기도 했지만 홍세완이 3루에서 수비불안을 일으키고 오히려 유격수로는 안정된 수비를 보이자 3루수로 다시 돌아왔다.[1] 2002 시즌에는 3루수 알바를 뛰던 이종범이 외야로 가게 되었고, 전 시즌 주전 3루수으로 뛰었으나 수비에서 아쉬움을 보이던 이동수를 밀어내고 9번타자로 활약하면서 규정타석에 조금 모자랐지만 3할을 기록하였다. 이종범김종국의 테이블세터에게 오히려 밥상을 차려주는 공포의 9번타자로 군림하였고, 도루도 만만치 않게 성공시키며 또 다른 테이블 세터의 개념을 만들어 냈다.

그러나 김성한 당시 KIA 감독은 이 즈음만 해도 평가가 높은 내야 유망주였던 이현곤[2]을 믿고 팀내 거포 부재를 해결하기 위해[3] 10억원까지 얹어주면서 박재홍과 정성훈을 트레이드하게 된다. 당시 정성훈과 이현곤은 타이거즈의 차세대 핫코너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었으며, 1루수 장성호, 2루수 김종국, 유격수 홍세완으로 정해진 가운데 정성훈과 이현곤 중 하나를 타 팀으로 트레이드하여 내야진의 교통정리가 필요한 상황이었고, 결국 정성훈이 트레이드 카드로 선택되어 현대로 이적하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정성훈은 현대에서 타격 포텐이 터지게 되었고, 반면 박재홍은 KIA에서 첫 시즌은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으나 이듬해 부상과 더불어 태업에 가까운 모습을 보이고 난 뒤 SK로 재트레이드되는 등 실패한 트레이드가 되어버렸고, 이현곤이 2007시즌을 빼면 기대에 못미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KIA팬들에게 있어서 정성훈은 아까운 선수로 남게 되었다. 실제로 본인도 팀에 대한 애정이 대단했는지 트레이드 될 때 떠나기 싫다고 펑펑 울었다고. 이런 애정이 있었기에 아래에서 언급할 올스타전 KIA 헬멧 에피소드를 만들었으며 15년이 지나고 전성기도 끝나긴 했지만 기어이 다시 타이거즈로 돌아올 수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자세한 건 아래 내용 참고


3. 현대 유니콘스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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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포토로)
현대 유니콘스 시절.

2002년 시즌이 끝나고 2003년 1월 박재홍의 트레이드 상대가 되어 현대 유니콘스로 이적.[4][5] 이적 첫해 0.343의 타율을 기록하지만 시즌 중후반 대구구장에서 삼성 라이온즈 투수 라이언 글린의 공에 손목을 맞는 부상으로 시즌을 접어[6] 규정타석 미달로 타격왕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한다.[7] 그래도 2005년에는 126경기 다 출장해서 경기왕이라는 비공식 타이틀은 획득했다

2004년은 2003년 때 손목부상 후유증으로 인한 저조한 성적 + 병역비리 크리로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가지 못하여 별다른 활약을 보여주지 못하나, 이듬해 2005년에는 팀내 중심타선 역할로 부활. 그리고 2006년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활약으로 병역특례를 받는다. 2006년~2007년 2시즌동안 현대에서 공-수 양면으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4. 우리 히어로즈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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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즈 시절.

그러나 2008년 시즌에는 전체적으로 부진했고, 당시 소속팀인 히어로즈도 '현대의 흔적을 지운다'는 미명 하에 지지가 높던 김시진 감독을 해임하면서 전체적으로 팀 케미스트리가 악화된 상태였다.[8] 급격히 추락한 성적을 보고 태업 의혹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5. FA 1기[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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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시즌 종료 후 FA 선언과 함께 LG 트윈스로 이적한다. 최악의 2008 시즌을 보낸 LG는 그 해 최동수[9], 최원호 등 별다른 고과가 없던 소속 선수들까지 FA를 신청하게 하면서[10] SK의 이진영과 함께 정성훈을 영입한다. 한편 이진영의 보상 선수로 이승호를 영입한 SK와 달리 히어로즈는 보상금을 선택했다.[11]

이진영은 먹튀vs아니다로 논란이 되었지만[12] 정성훈만큼은 그런 논란도 별로 없다.[13]


6. LG 트윈스 시절[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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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No.16
정성훈
鄭成勳 | Jeong Seong-Hoon


6.1. 2009 시즌[편집]


LG의 3루는 본래 한대화, 송구홍 등이 지키며 탄탄했던 포지션이지만, 암흑기에 접어들면서 이종열만이 준수한 수비와 그냥저냥의 타격으로 자리를 지켜왔고 기대주인 김상현은 2군 활약에 비해 미미한 공격력과 잇따른 수비 실책으로 실망감을 안겨주며 눈 밖에 났고, 박기남이나 김태완은 수비에 비해 타격이 약해 주전으로 쓰기는 무리여서 사실상 정성훈이 3루에 무혈입성하게 된다.

LG에 합류한 첫 시즌인 2009년, 3할대의 타율과 안정적인 3루 수비로 FA의 성공사례로 남는다. 최종 성적은 121경기 0.301 126안타 10홈런 70타점 5도루. 3루에서 정성훈이 정착함에 따라 본래 3루의 주인이었던 김상현은 준수한 3루 백업박기남과 패키지로 KIA 타이거즈로 트레이드, 페넌트레이스 MVP와 홈런왕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한다. LG로서는 김상현이 약 8년간 LG에 있으면서 보여주길 바랐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고 KIA에서 폭발한 것이 억울할 판에 정성훈마저 먹튀로 남았다면 분통이 터질 일이었으니 그나마 다행. [14]


6.2. 2010 시즌[편집]


시즌 초 타격감이 제대로 올라오지 않는 모습을 보이면서 2할대 중반을 마크했다. 수비에서도 기록된 실책수는 현재 2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에러성 플레이가 자주 터져나오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7월 21일까지 타율 0.277, 73안타 4홈런 35타점을 기록중이며 어찌저찌 2010 올스타에 선발되었다. 다만 병살타가 12개(리그 공동 6위). 그 위로 발 느린 장돈건홍성흔, 강민호, 잉금님 등이 포진해 있는 걸 보면 보통 수치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더불어 실책은 6개를 기록 중이며, 간혹 나오는 정줄놓은 수비 덕분에 가뜩이나 오지환의 돌 글러브질이 불안한 LG팬들은 3-유간으로 가는 타구만 나오면 일단 포기한다. 현대 시절 정성훈-박진만의 3-유간을 떠올려 본다면 참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 밖에...

올스타전 이후에도 타격 슬럼프를 보이다가 막판 페이스를 찾았으나 너무 늦게 찾았다. 결국 0.263 96안타 4홈런 38타점으로 시즌 마무리.


6.3. 2011 시즌[편집]


3할대 중반 가까이까지 갔다가 2할대 중반까지 떨어진 이대형이 폭풍까임을 당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가려졌지만 정성훈도 지난 시즌 상당히 많이 까여야 할 상황이었다. 3루수 포지션의 선수로써는 겨우 4홈런 밖에 못친 것이 가장 까일거리였고 0.263 의 타율도 그랬다.

그러나 10일까지의 경기만 놓고 봤을 때는 다시 괜찮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타석에서의 집중력이 살아났다는게 가장 중요한 점이다. 수비에서도 좋은 모습이다. 장타력만 조금 더 발휘해준다면...[15]

15일까지 평균 수준의 실력을 보이고 있고 LG의 내야진 안정에 큰 공헌을 하고 있지만 0.257의 타율이 불만이고 아직 장타가 없다. 더군다나 15일 경기에서 환상적인 송구로 벤자민 주키치의 어깨를 무겁게 하기도 했다.

6월 5일 롯데전에서 실책으로 3점을 내줬다.

6월 2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 3타수 2안타 1홈런 1타점 1볼넷을 기록하면서 좋은 활약을 했고 6월 들어서 방망이가 불을 뿜고 있다. 21일 활약으로 타율도 3할대로 올랐다. 더불어 개그신도 두 번이나 연출했다. 한 번은 슬라이딩하다 눈에 흙이 들어갔는데 트레이너가 뛰어오자 괜찮아 하면서 손사래를 쳤는데 모르고보면 빨리 와달라는 걸로 보였고 두 번째는 권영철 심판에게 개그성 묵념항의를 했다.

6월부터 맹타를 치기 시작해서 7월 9일 현재 타율 5위에 올라왔다. 2010년엔 정성홍어라고 불리며 엄청나게 까였지만 현재는 똘느님까지 격상.

7월 12일 SK전에서 2루타를 때려내며 팀의 결승점의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그 직후, 꼬리뼈의 통증을 호소하며 교체되고 말았다. 10일 기아전에서의 부상이라고 한다. 네이버 중계창에서는 정성훈의 2루타 후 교체되고 나서 득점이 난 걸 꼬리뼈 타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7월 23일 올스타전에서 웨스턴이 4:3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10회말 오승환을 상대로 동점 적시타를 날리며 웨스턴의 승리에 일조했다. 다만 그 후에 큰 이병규가 끝내기 안타를 날리며 묻힌 감이 있다.

9월 8일 쓰리런을 쳐내 벤자민 주키치의 패전을 막는데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


6.4. 2012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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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성훈/선수 경력/2012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김기태 신임 감독의 방침에 따라 난생 처음 4번타자로 시즌을 시작하게 되었다. 한때는 홈런 단독 1위까지 올라올 정도로 4번타자다운 모습(?)을 보여줬지만 체력적 한계 때문인지 시즌 중반 홈런페이스가 급하강, 결국엔 12개의 홈런과 타율 0.310 출루율 0.411 장타율 0.499 13병살 6실책으로 시즌을 마친다.

그래도 투고타저 시즌에 3루를 안정적으로 맡았고 타율 대비 1할이 높은 출루율을 기록한 것에서 보이듯이 수준급 선구안을, 동시에 OPS 0.9 이상을 찍어주는등 상당히 준수한 활약을 했다고 볼수있다.[16] 특히 WAR은 5.5를 찍으며 커리어 하이.


6.5. FA 2기[편집]


2012시즌을 마치게 되면서 FA 4년 계약이 모두 종료되었고, 이에 같이 FA로 LG에 합류한 이진영과 함께 두 번째 FA 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김주찬과 더불어서 2012년 스토브 리그의 FA 시장에서 최대어로 뽑히게 되었다.

김기태 감독이 직접 나서 내부 FA인 이진영과 정성훈을 잡아 달라고 부탁했고, LG 구단 역시 단장이 나서 두 선수를 잔류시키겠다고 선언한 상태였지만 정성훈을 노리는 구단도 굉장히 많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비록 첫 번째 FA도 아니고 나이도 33세로 적지 않은 편이었지만, 그래도 리그 정상급 3루수인데다가 공수 양면에서 기대해 볼 만한 선수였기 때문에 충분히 수요가 나올 만한 상황.

우선 신생 구단인 NC 다이노스에서 전력 보강을 위해 노릴 가능성이 컸으며[17], 한화 이글스에 새로 부임했던 김응용 감독[18] 역시 FA 보강을 요청한 상태였기 때문에 정성훈을 원할 확률이 컸다.[19] 마찬가지로 이범호의 부상 장기화 등으로 3루에 공백이 생긴 친정 팀 KIA 타이거즈 역시 정성훈을 노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에 FA에서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전년도의 FA 시장에서의 내부 단속을 실패한 LG 트윈스였기 때문에 정성훈과 이진영의 잔류에 더욱더 사활을 걸었고, FA 우선협상기간이 시작된 뒤 사흘 만인 11월 12일, 같이 FA를 선언한 이진영과 4년간 총액 34억 원에 재계약하면서 4년 더 LG 유니폼을 입을 수 있게 되었다. 이에 많은 LG 팬들은 한 시름 덜었다. 못해도 10억 원은 더 받을 수 있던 걸 고려하면 의리로 남은 듯. 여담으로 FA 재계약 당일 이진영과 함께 예비군 훈련을 받는 날이었는데, 훈련이 끝나자마자 LG 구단의 연락을 받고 예비군 군복을 그대로 입은 채(...) 사무실로 들어가 첫 협상 테이블을 차렸고, 첫 만남 1시간 만에 속전속결로 계약이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6.6. 2013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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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2014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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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2015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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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2016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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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0. FA 3기[편집]


2016 시즌 종료 후 세 번째 FA를 맞이하였으나, 계약기간을 두고 구단과 장기적인 기싸움을 해왔고, 결국 2017년 1월 24일 1년 7억원 계약을 체결하면서 잔류했다.

다수의 LG팬들은 1+1 형태로라도 2년은 맞춰주는게 좋지않겠냐는 여론이 대세였으나 결국 단년계약에 그쳤다. 오랫동안 팀에서 준수한 활약을 해오며 준 프랜차이즈 취급을 받는 그에게 너무했다는 반응이 대다수이다. 같은 LG입단 동기인 이진영과 KT의 2년 15억 계약과 비교되고 말았다.


6.11. 2017 시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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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전엔 젊은 선수들과 1루수 포지션을 놓고 경쟁이 예상됐으나 서상우는 극도의 부진을 보이며 2군으로 내려갔고 양석환히메네스가 빠진 자리를 메꾸러 3루수로 출장하게 되어 1루수로 출장하고 있다.요즘은 박용택 대신 지명타자로 출장하고 있기도 하다.

6월부터 7월까지 각종 기록들을 쏟아내고 있다. 6월 14일 개인통산 7000타수 (역대 세 번째)[20], 6월 25일 개인통산 1000득점 (역대 11번째), 7월 23일 개인통산 3000루타 (역대 11번째)를 기록했다. 하지만 6월 14일 두산전 외에는 모두 패배해 기록을 달성할 때마다 팀이 지는 징크스가 생기는 것 같다 (작년 시즌의 2000안타때도 팀은 패배).

7월 말 새로운 외국인 선수로 1루수인 제임스 로니가 오게 되며 포지션 경쟁이 예상된다.

8월 10일 SK전 9회말 유강남의 대타로 출장해 안타를 때려내고, 대주자 황목치승과 교체되었다.

8월 현재 2100경기 출장을 달성했는데, 이는 현역 최다며 달성한 선수도 양준혁, 김민재 단 둘 밖에 없는 기록이다. 차이가 그렇게 많이 나지 않아 부상이 발생하지 않는 한 이 기록이 올해 내 갱신될 가능성은 높다.

9월 1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2112경기 출장으로 우타자 최다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9월 14일 드디어 KBO 우타자 최초로 2100안타를 쳤다.

10월 3일 팀 마지막 경기에서 KBO 최다경기 출장 타이기록(2135경기)을 달성했다. 그런데....


6.12. 충격의 방출[편집]


2017년 11월 22일, LG 트윈스에서 방출 당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엘지팬들은 정말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류중일 감독이 베테랑들 잘 챙기기로 유명한 감독이기에 과연 정말로 이번 방출에 감독의 의중이 들어갔는지 의문이라는 반응들도 있다. 이후 양상문 단장 공식 인터뷰에서 전지 훈련지인 일본 고지로 직접 가서 류중일 감독과 상의하여 내린 결정이라며 류중일의 의중이 반영됐음을 밝혔다. 그러나 이 역시도 의문스러운 시선들이 있다. 아무리 최고액으로 모셔온 감독이라도 엄연히 다른 팀에서 프렌차이즈로 있다가 온 사람인데, 오자마자 팀 사정을 곧바로 파악하는 건 어렵고, 거기다 지도자 생활만 코치 포함에서 10년 넘게 한 사람이 단순히 단장과 상의 끝에 결정한다는 것도 석연치 않다.

LG는 2차 드래프트 40명 짜기도 수월한 구단이라 이것을 피하려 방출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지금 정성훈급 내야수면 NC, 삼성, KT, 롯데 그리고 친정팀인 KIA까지 달려들 만한 선수라 왜 방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참고로 정성훈의 2017 시즌 성적은 wRC+ 121에[21] WAR 1.57로 최소한 한 사람 몫은 했다. 그리고 이 만큼도 안 되는 선수들이 3루수/지타/1루수를 보는 것이 거의 모든 팀들의 현실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정성훈 성적은 LG 내야수들 중에서 4위다. 황재균이 괜히 FA에서 88억을 받은 것이 아니다.

어쨌든 방출이라는 단어가 영 어감이 좋지 않아서 그렇지 구단 입장에서 보자면 나름대로 정성훈을 배려했다고 볼 수 있다. 2차 드래프트로 데려가려는 구단 입장에선 억 단위의 돈이 들어가기에 주저할 수 있는데 그런 부담없이 영입을 타진해볼 수 있게 되었고, 정성훈 입장에선 나름 원하는 팀을 골라갈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2018 시즌에 39세가 되는 노장의 나이에, 연봉도 높아서 데려갈 구단이 있겠냐는 반문도 있다.

이후 LG 트윈스 구단에서 정성훈 방출 건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LG 구단 관계자는 "팀에서 교체요원, 대타요원으로 올시즌 나름대로 좋은 활약을 했다. 하지만 내년 팀이 가고자 하는 방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결단을 내리게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박수받을 일은 아니지만 팀으로선 나름대로 깊은 고민을 하고 내린 결정이라고 덧붙였다.


방출 통보에 있어 시기적인 문제도 고려했다. 2차 드래프트에 앞서 따로 거취에 대한 설명을 해주는 것이 고참 선수에 대한 기본적인 도리였음도 전했다. 정성훈이 여전히 대타로 경쟁력이 있다는 내부판단도 있었으나 팀의 체질개선을 위해서 선택과 집중을 한 것이라고도 했다. LG팬들로선 아쉬울 수 있는 결정이다.


유망주 윤대영이 군 복무를 마쳤다. 외야수 김용의도 마무리캠프에서 1루수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 자원인 양석환김재율도 있다. 1루수 자원이 4명이다. 냉정한 판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정성훈에게 출전 기회를 줄 수 없을 것 같았다.


이후 SPOTV와의 인터뷰에서 정성훈은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 그저 막막할 뿐이다"라고 심정을 밝혔다. 그가 2차 드래프트에서 지명받지 못했다는 기사가 나왔지만 실제로 그랬는지는 불분명하다. 보호 선수에서 빠진 선수는 비공개인데 대놓고 발설하는 꼴이 되기 때문.

9년 동안 LG에서 훌륭한 활약을 해주었고, 데뷔만 LG에서 안했을 뿐이지 팀에서 프랜차이즈 스타 대우를 받을 정도의 선수가 이렇게 차가운 대접을 받는 데 대하여 LG팬들의 분노가 크다.

KBO 리그 단독 최다 출장경기 기록에 딱 1경기 모자란 상태에서의 방출이기도 하다.[22] 이대로 아무 구단도 영입없이 은퇴로 이어진다면 정성훈 본인에게도 정말 아쉬울 기록.

여담으로 위에 나온 윤대영은 2019년 캠프 탈락했다고 술 먹고 음주운전으로 걸려 임의탈퇴. 2020년 말에 임의탈퇴에서 복귀했으나 계속 2군에 있었다. 그리고 11월 이상호와 트레이드 되어 NC로 적을 옮긴다. 그리고 1루수 자리는 계속 주인을 찾지 못하다가 결국 외국인 타자로 해결해야 했다.


7. KIA 타이거즈 2기[편집]


혼란한 와중에 고향 팀이자 프로 데뷔 팀이기도 한 KIA 타이거즈에서 영입을 고민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다. KIA의 주전 평균 연령이 상당히 높은지라[23] 세대 교체를 위해 최원준 등의 신인 선수들을 키워도 모자랄 판에 내일 모레 은퇴할지도 모를 39세의 정성훈을 데려갈 여력이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지만, 믿을만한 대타감들이 전부 좌타자인 반면 우타 대타감이랍시고 있는 게 김주형김지성 둘밖에 없는 상황인데다 그 둘마저 30대 중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며 그나마 가능성있는 신예 황대인, 김호령은 군 복무 중인지라 단기 계약으로라도 정성훈을 데려오는게 낫지 않냐는 시각도 있다.[24] 실제로 KIA 타이거즈 내부에서도 논의되고 있는지, 김주찬양현종의 협상이 종료된 이후 현장에서 원한다면 정성훈의 영입에 대해 고민을 해볼 것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김기태 감독도 '생각하고 있다'는 입장이다.#[25]

KIA 타이거즈 갤러리의 한 고닉이 정성훈 영입의 필요성을 역설했는데 꽤 많은 추천수를 받았고, 이 때문에 크리스마스 연휴동안 KIA 타이거즈 갤러리에서 꽤 과열된 논쟁이 벌어지는 일이 있었다#[26][27]

2018년 1월 4일, 구단에서 관심이 있다는 기사이선호 기자 피셜로 나왔다. 이선호 기자가 KIA 팬들에게도 거의 "프런트의 나팔수"라는 소리를 들을만큼 구단 사정 파악에 능하며 구단 입장을 알리는 기사를 주로 쓴다는 걸 생각하면 거의 KIA 입단이 확정적이라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여기에 FA가 된 김주찬의 계약이 늦어지면서, 역시 1루수인 정성훈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이며 그에 관련된 기사들이 계속 올라오는 중이다. 이래저래 정성훈에게는 호재인 상황인 셈. 물론 젊은 선수들의 성장을 가로막는다는 부정적인 시선도 있었다.

김주찬은 만 36세의 많은 나이와 노쇠화에도 불구하고 기아 측에서 2+1년 연간 10억원 제안을 했으나 이를 찼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비난을 받고 있다. 반면 정성훈은 2016년 FA 당시 1년 8억원이라는 단년계약을 맺고 시즌 후 방출당한 상태에서 절실히 소속 팀을 찾고있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낮은 눈높이에서 계약할 수 있다. 나이는 정성훈이 한 살 더 많지만 김주찬과 타격능력도 별 차이가 나지 않기에 김주찬이 양보하지 않는 이상 김주찬을 대체할 자원으로 정성훈과 계약을 맺을 가능성이 더 커진다.[28]

1월 16일 자로 김주찬이 KIA와 재계약을 맺었지만, 동시에 "양현종, 김주찬의 계약이 먼저"라던 언급대로 정성훈에 대한 관심이 상승중으로 김주찬 재계약 기사 바로 직후에 정성훈에 관한 기사만 여러번 뜰 정도다. 특히 이선호 기자의 글에서 "정성훈은 팀에 필요한 자원"이라는 뉘앙스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역시 영입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되는 중.[29]

1월 17일, 이선호 기자가 영입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에 반박기사를 내놓았다. # 발표만 안했다 뿐이지 도장이 이미 찍혔다고 추정하는 사람까지 생겨나기 시작했다.[30][31]

1월 18일, 결국 연봉 1억원에 계약기간 1년으로 16년 만에 타이거즈로 복귀했다. # 기사에 의하면 김기태 감독이 우타 대타감이 필요하다고 조계현 단장에 의견을 피력했다고 한다.

마침 영입된 날이 광주월드컵경기장에서 체력테스트가 있던 날이었는데, 나이도 있어서 베테랑 대우 겸 체력테스트는 제외되었다. 선수들과 간단히 인사 겸 상견례만 하고 인터뷰는 거절했다고 한다. 인터뷰를 고사한 이유는, "대단한 선수도 아니고 프리에이전트(FA)로 입단한 것도 아니다. 오갈 곳 없는 나이 많은 선수에 불과한데 소속팀을 찾았다는 이유로 팬 앞에 당당히 얼굴을 내밀수는 없다. 나 때문에 후배들 중 누군가는 분명 피해를 볼 것이다. 기존 선수들 입장에서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들어와 물을 흐려놓는다고 볼 수도 있다. 조용히 시즌을 준비하면서 팀이 필요할 때 내 역할을 하는 게 우선이다. 그래야 후배들 볼 낯도 생긴다." 라고 밝혔다.#

기존에 사용했던 등번호들이 이미 선점된 상태라 배번이 어떻게 될지는 불명. LG때 달았던 16번은 김주찬이 달고 있고, 신인 시절 달았던 6번의 경우 최원준이, 현대로 트레이드되기 전에 달았던 5번의 경우 기존에 5번을 달던 김지성이 올해부터 김호령의 입대로 빈 53번으로 이동해서 5번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졌으나, 5번은 홍재호가 가져갔다.

결국 최종적으로 등번호는 56번을 선택했다. 초창기 KIA 시절 5번과 6번을 사용했는데, 이 두 번호를 합쳐놓은 나름 의미있는 숫자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32]


7.1. 2018 시즌[편집]



파일:18정성훈.jpg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정성훈/선수 경력/2018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전반기에는 놀라울 정도의 활약을 보여줬지만 여름 이후 체력 저하를 겪었다. 그리고 시즌 후 플레잉 코치 제안을 받았지만 결국 은퇴를 선택하고 일반코치로 선임되었다.


8. 국가대표 경력[편집]



8.1.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편집]



파일:정성훈wbc2006.jpg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화이트 로고.svg


경기
선발
타수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도루
삼진
4구
상세
4
0
5
0
0
0
0
0
0
.000
.000
.000
.000
0
2
0
-
원래 예비 엔트리 60인에만 들어가고 최종 엔트리에서는 탈락했으나, 김동주대만과의 1라운드 A조 1차전에서 6회초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과정에서 어께 부상을 입자 부상 선수가 나올 경우 60명의 1차 엔트리 내에서 대체 선수를 선발할 수 있다는 WBC 규정에 의거하여 대신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리고 대표팀의 4강으로 병역 특례를 받았다.

9. 연도별 주요 성적[편집]


  • 붉은 글씨는 1위 입상 성적. 진한 글씨는 리그 5위내 입상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1999
해태-KIA
108
366
.292
107
19
1
7
39
49
5
34
51
.349
.407
2000
119
457
.260
119
21
3
1
37
50
10
28
55
.302
.326
2001
49
161
.280
45
7
1
4
18
17
6
13
18
.331
.410
2002
114
340
.312
106
19
3
9
39
65
16
37
42
.376
.46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03
현대
91
338
.343
116
17
0
13
51
55
9
31
40
.397
.509
2004
118
470
.266
125
23
0
8
59
66
1
61
60
.350
.366
2005
126
(1위)
458
.266
122
20
1
17
72
61
7
56
67
.346
.426
2006
122
416
.291
121
26
(4위)
0
13
66
56
3
56
43
.369
.447
2007
122
445
(6위)
.290
129
29
(4위)
1
16
76
59
1
48
66
.357
.467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08
우리-서울
109
355
.270
96
21
2
3
34
43
8
41
41
.345
.366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09
LG
121
419
.301
126
19
2
10
70
62
5
63
46
.389
.427
2010
111
365
.263
96
20
1
4
38
52
3
45
58
.342
.356
2011
127
422
.291
123
18
1
10
57
61
9
54
69
.366
.410
2012
107
365
.310
(5위)
113
27
3
12
53
50
3
66
62
.411
(4위)
.499
2013
121
407
.312
127
22
1
9
62
64
13
66
58
.405
.437
2014
112
383
.329
126
25
1
13
59
71
10
66
56
.424
.501
2015
117
363
.284
103
16
1
9
45
47
9
67
65
.392
.408
2016
126
370
.322
119
22
1
6
64
58
8
38
59
.380
.435
2017
115
276
.312
86
14
0
6
30
32
4
42
49
.400
.428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18
KIA
88
183
.295
54
11
0
4
28
22
0
21
49
.366
.421
KBO 통산
(20시즌)
2223
(3위)
7359
(3위)
.293
2159
(4위)
396
(4위)
23
174
997
1040
130
923
1054
.370
.424

[1] 정성훈이 2001년에 리드오프로 시즌의 2/3까지 꾸준히 치뤄줬다면, 기아의 마지막 성적표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많은 시즌이었다.[2] 연세대학교 재학 시절 제2의 이종범이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닐 정도로 당시 대학리그 최고의 타자 중 하나였다.[3] 2002년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 이후 거포 부재를 절실히 느꼈다고 하며, 시즌 후에 김동주박재홍의 영입을 시도한 결과 기어이 박재홍을 데리고 오는 데 성공한다.[4] 당시 확실한 중심타자의 확보를 목표로 하던 기아는 현대에게 고졸우선지명으로 확보해 둔 대학 국가대표 유격수 이현곤을 제시했지만, 현대는 정성훈이 아니면 안된다고 못을 박았다. 당시만 해도 수준이 높았던 대학리그의 국가대표 유격수인 이현곤인데도... 정성훈이 그만큼 프로에서 보여준 것이 컸다는 뜻이다.[5] 참고로 2002시즌 .312의 타율을 기록하면서 기아의 붙박이 3루 자리를 굳히는가 했더니, LG와의 플레이오프 5게임에서 21타석 17타수 무안타 타율 .000을 기록하는 대부진으로 팬들에게 가루가 되도록 까였었다. 이후 빵횽과의 트레이드때 젊은 주전 3루수를 보내는건 아깝다는 의견도 있었으나 플옵에서의 미운털로 인해 좋은 트레이드라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리고 6개월 뒤...[6] 2003년 한국시리즈에는 가까스로 출전하긴 했지만, 부상 후유증을 극복하지 못했다.[7] 이 타율 기록은 그 해 전체 타율 기록 중 7위이지만 앞의 여섯 명은 모두 30타수 미만. 조금만 더 타석을 채웠더라면 '토니 그윈 룰'에 의해 타격왕이 될 수도 있었다. 참고로 이 해 타격왕은 0.342를 기록한 김동주.[8] 정확히 말하자면, 당시 히어로즈의 초대 감독으로 취임한 이광환과의 불화가 생긴 것도 커다란 요인 가운데 하나였다. 참고로, 정성훈은 현대시절 선수단 내에서 '분위기 메이커'역할하던 선수였다.[9] 전년도 대비 스탯은 하락했지만 타율과 삼진 빼고 모든 스탯이 올라서 연봉을 더 받았다는 듯 하다.[10] 리그 전체 FA 신청자가 9명 이상이 되면 각 팀은 자유계약 선수를 2명까지 영입할 수 있다. 그 이하일 경우 팀당 1명. 전력 강화를 위해 소속 선수들에게 FA 선언을 시키고 재계약.[11] 애초에 이걸 노리고 히어로즈 창단시 대량으로 선수들의 연봉을 동결시키는 와중에도, 정성훈만 연봉을 인상시켰다. 역시 장사꾼. 7년 후 넥센 히어로즈손승락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했을 때에도 FA 보상금만 받았다. 유한준의 경우는 kt wiz가 신생 팀이다 보니 규정상 보상금만 받은 것이다.[12] 금액에 비하면 활약이 부족한건 맞지만(연도별로 기복이 심했던 탓이 컸다) LG의 이전 FA 선수들에 비하면 확실히 나은 성적이고, 어쨌든 7년 동안 약 74억을 받고 WAR*만 따져도 13을 약간 넘겼기 때문에 돈값은 해줬으면 해줬지 먹튀는 아니다.[13] 정성훈은 LG 시절 9년 동안 WAR* 27.17을 기록했는데, 매년 평균 3 정도는 찍어준 셈이고 1WAR당 5억이라고 치면 약 136억 정도의 가치를 해낸 셈. 정성훈이 1차 FA 때 금액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40억 정도라고 해도 9년 동안 90억 정도를 받은 것이니 돈값을 완벽히 해낸 것.[14] 한편 히어로즈는 황재균이 3루수로 포텐이 터지면서 정성훈은 2명에게 자리를 새로 준 셈이 되었다. 근데 황재균은 2010시즌 부진에 빠지고 롯데로 팔려가면서 김민우가 공백을 메웠으며, 김민성이 2012년부터 3루수로 뛰게 되었다.[15] 코너 내야수는 기본적으로 두 자릿 수 이상의 홈런은 기록해주는 것이 기본 미덕으로 여겨진다. 물론 정성훈이 장타력이 아주 뛰어난건 아니지만 17홈런을 기록했던 적도 있는만큼 좀 더 장타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16] 당시 리그에서 WRC+ 5위였다. 3루수 골든글러브 수상자인 최정과 동률.[17] 하지만 신생팀 특별지명을 통해 SK에서 20인 외로 풀린 모창민을 지명하며 3루수 보강에 성공했다.[18] 김응용 감독은 해태 타이거즈 감독 재임 시절 고졸 신인이었던 정성훈을 데뷔 첫 해부터 믿고 주전으로 기용하며 정성훈과 어느 정도 인연이 있다.[19] 특히 한화는 이범호의 이적, 송광민의 군 복무로 인해 3루 자리가 사실상 구멍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같은 포지션에서 어느 정도 가능성을 보여준 오선진이 있지만 오선진 본인은 3루보다는 2루나 유격수가 더 적합하다고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여상은….[20] 우타자 최초다. 기존 7천타수 기록은 좌타자인 양준혁장성호만이 갖고 있던 기록.[21] 이는 팀내 2위의 좋은 스탯이다.[22] 2017 시즌까지 2135경기로 양준혁과 공동 1위이다.[23] 주전 평균연령이 가장 높다. 당장 타자들 중 김주찬과 이범호는 30대 후반, 최형우와 나지완, 서동욱 역시 30대 중반이며 트레이드로 데려온 리드오프 이명기마저 30대 초반, 주전 타자들 중 거의 막내인 안치홍마저 서른을 코앞에 둔 상태일 정도로 타자진의 나이가 제법 있는 편이다. 게다가 투수쪽도 43세로 리그에서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임창용이 있고.[24] 특히 정성훈의 2017년 타율은 여전히 3할인데다 장타율과 출루율까지도 4할대를 찍고 있는지라, 1년 계약으로 데려와서 성적을 본 뒤에 판단해도 늦지 않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최원준 등의 팀내 신인들에게 경험을 전수해줄 좋은 선배가 될 수도 있고, 고향팀으로 복귀한다는 명분도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했듯 정성훈 본인도 현대 유니콘스로 트레이드될 때 매우 아쉬워했기 때문에 만약 1년만이라도 KIA로 오게 된다면 동기부여가 되고도 남을 수 있으니. 게다가 이 경우에는 임창용처럼 정성훈을 과거 신인때부터 봐오고 응원했던 올드 해태팬들까지 끌어들일 수도 있다.[25] 장성호 해설위원 말에 의하면 2012년 겨울 LG와 재계약한 것도 당시 김기태 감독과 인연 때문에 타 구단(KIA 혹은 한화로 추정)에서 LG보다 5억원 정도 높게 오퍼했음에도 불구하고 잔류를 선택했다고 한다. 그럼으로 이번에도 김기태 감독과의 인연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자세한 것은 KBS N SPORTS 합의판정 2018.01.19 방송분을 참조. [26] 요약하자면, 우타대타 역할과 최형우, 김주찬, 나지완 등의 휴식로테이션 역할 추가, 백업 멤버 중 수준급 타자의 추가, 긁어볼 우타 신인이 부재, 구단의 윈나우 모드에 맞춰진 이유들이다.[27] 2018년 시즌 중반쯤을 지나 되돌아보자면, 이 글에서 주장한 바가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우타 대타로서도, 백업 멤버로서도, 인성과 팀웍으로서도 합격점. 또라이툴은 황윤호에게 뺏겼다... 이 글에서도 잠깐 언급되는 황윤호 역시 대수비감으로서 합격점을 받아 짐짝은 아마도 영영 1군에서 볼 일이 없게 되었다.[28] 물론 김주찬과 재계약을 한다 해도 위의 이유 때문에 정성훈을 영입할 가능성은 높다.[29] 그럴 가능성은 낮지만, 김주찬이 만약 부상이라도 당할 경우 정성훈은 당장 서동욱과 플래툰으로 활약할수도 있다.[30] 최소한 입단에 대한 확언은 미리 받았을 가능성이 높다. 계약 발표일인 18일은 KIA의 전체 체력테스트 날자인데, 물론 전 선수단이 모이는 날이므로 선수단 상견례를 하기 좋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함께 체력테스트도 받게 해서 몸상태 점검을 할 필요도 있고 이럴 경우 정성훈의 연령 문제상 어느정도는 미리 준비할 시간이 필요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31] 기사에 의하면 김기태 감독의 OK사인은 이미 15일에 났다고 언급되는데, 김주찬의 계약발표는 16일이긴 하지만 계약 자체는 15일에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는 걸 생각하면 김주찬의 계약이 끝나자마자 바로 정성훈에게 연락이 갔고, "양현종, 김주찬 영입이 먼저"라는 구단 발언에 대한 이미지+정성훈 영입에 대한 분위기 조성을(위의 이선호 기자의 반박기사 같은것이 좋은 예) 위해 순차 발표를 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32] 단 번호를 달았던 순서는 6번이 먼저였고 그 다음이 5번이었기 때문에 연혁까지 생각한다면 65번을 다는 것도 자연스러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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