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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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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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대한민국 제29·30대 통일부 장관
정세현
丁世鉉 | Jung Se-hyeon


파일:정세현_프레시안.jpg

출생
1945년 5월 7일 (78세)
만주국 삼강성 자무쓰시
(現 중국 헤이룽장성 자무쓰시)
본적
전라북도 장수군 산서면 봉서리[1]
본관
창원 정씨 (昌原丁氏)[2]
현직
사단법인 한국통일협회 회장
재임기간
제11대 통일부 차관
1998년 3월 9일 ~ 1999년 5월 24일
제29대 통일부 장관
2002년 1월 29일 ~ 2003년 2월 26일
제30대 통일부 장관
2003년 2월 27일 ~ 2004년 6월 30일
제6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상임의장
2005년 2월 22일 ~ 2009년 3월 19일
제18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2019년 8월 9일 ~ 2021년 8월 31일
링크
파일:유튜브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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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오수국민학교 (졸업)
전주북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 60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 / 학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외교학[1] / 석사[2]·박사[3])
종교
원불교
약력
통일부 공산권연구관실 연구관 (박정희 정부)
일해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전두환 정부)
일해연구소 기획조정실 실장 (전두환 정부)
민족통일연구원 부원장 (노태우 정부)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 (문민정부)
민족통일연구원 원장 (문민정부)
제11대 통일부 차관 (국민의 정부)
제29대 통일부 장관 (국민의 정부)
제30대 통일부 장관 (참여정부)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참여정부)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원광대학교 총장
제18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문재인 정부)

1. 개요
2. 생애
3. 대북정책의 중심인물
4. 비판 및 논란
4.1. 존 볼턴에 대한 비난
4.2. 사드 배치 관련 입장
4.3. 국정감사 위증
4.4. "남북관계 파탄 원인은 미국" 발언
4.5. 김정남 암살 사건 관련
5. 여담
6. 저서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의 前 관료 겸 교수, 외교학자.

제11대 원광대학교 총장[3], 제18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4]을 역임했다.


2. 생애[편집]


1945년 5월 7일 만주국 삼강성(三江省) 자무쓰시[5]에서 아버지 정하생(丁夏生, 1919. 4. 5 ~ 1982. 12. 9)과 어머니 함안 조씨(1924. 6. 14 ~ 2017. 9. 30)[6] 사이의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8.15 광복 후 귀국하여 본적지인 전라북도 장수군에 인접한 전라북도 임실군 오수면과 전라북도 전주시에서 성장하였다.

오수국민학교, 전주북중학교, 경기고등학교(60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제정치학 전공으로 외교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7]

1977년 국토통일원(현 통일부) 공산권연구관실 연구관으로 근무했으며, 1982년에는 38세의 나이로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외교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전두환 정부 때는 일해연구소(현 세종연구소)에서 수석연구위원, 기획조정실 실장 등을 지냈다. 노태우 정부 때는 민족통일연구원 부원장 등을 지냈다. 김영삼 정부 때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 민족통일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다.

김대중 정부 때는 통일부 차관을 지낸 뒤 명지대학교, 경희대학교 등에서 객원교수로 있다가 국가정보원장 통일특별보좌관을 지냈고, 2002년 1월부터 2003년 2월까지 통일부장관을 지냈다.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고서도 유임되어 2004년 6월까지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이후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경남대학교 석좌교수,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상임의장, 김대중평화센터 부이사장, 원광대학교 총장 등을 지냈다.

2019년 8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수석부의장에 임명됐다.#

2년 임기를 마친 2021년 8월 이후에는 전,현직 통일부 공무원 중심으로 모인 통일운동 비영리사단법인 한국통일협회의 회장이 되었다.


3. 대북정책의 중심인물[편집]


기본적으로 이 사람은 어떠한 국가 對 국가의 외교라도 협상과 대화로 모든 것을 풀 수 있다는 대표적인 협상주의 성향 관료이자 학자다. 실제로 체제대결이 극한에 치닫고 반공주의가 치솟던 70년대부터 통일부 관료로 일하면서 국민들 머리속엔 뿔달린 빨갱이 괴물인간만 살 것 같던 북한과의 정상 외교를 위해 열린 실무회의에 참석하고 이를 주관하여 북한 공산당의 외교 담당자들과도 자주 만나 협상했던 경력을 가지고 있다.

80년대 초중반에는 <북한의 통일전략 구도와 통일방안 변천 과정> 같은 논문에서 북한의 통일전략, 평화통일 주장을 논리적으로 분석해 반박(요약 : 선 남한무력혁명, 후 평화정착) 하였기에 보수진영에서 변절자라는 비난을 하기도 한다.
월간조선의 관련 기사
보수진영의 비난에 대해 본인이 라디오에서 아래와 같이 직접 해명하였다.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북한이 다른데 어떻게 옛날 북한이 평양에 있다고 생각하고 대책을 논의하느냐"[8]

-본인 해명 발언 영상


이 시절에도 정세현은 1984년 국내에 대규모 수해가 났을 때 북한이 인도적 차원의 물자 지원을 제안하자 → 은사였던 서울대 교수 출신 통일원 간부와 함께 북측의 제안을 수용할 것을 주장하는 유연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북한을 직접 방문해 그쪽 고위층과 대화를 나누고 현지 모습을 살필 수 있었던 국무위원 출신 대북 전문가라는 희소성 때문에 정권이 바뀐 뒤에도 북한문제 주요 이슈가 있을 때면, 한국경제신문, 한겨레신문, 경향신문 등의 언론사에서 인터뷰나 글 기고 형식으로 의견을 구하곤 하였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에도 기고문, 자문의 형식으로 언론에 자주 비춰지는 대표적인 전직 통일부 관료. 특히 북한 관련 이슈에 대해서 외교적 협상의 대상이라는 전제를 깔고 북한 관련 사건에 해석 및 논평을 내놓고 있다. 이는 대한민국 외교의 성향과 관련이 있어서 추가서술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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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전 장관에 대한 협상주의적 성향이라는 뜻은 북한이 아무리 김정은이 대외적으로 미치광이처럼 보이는 행보와 국제적 도발을 할지라도 2000년대처럼 공식·비공식적 외교채널을 통해 대화와 협상이 가능한 국가라는 시각이다. 대한민국 국내에서 보수와 진보의 외교관&통일관 충돌, 특히 대북정책을 두고 충돌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바로 이것이다.

보수층은 대한민국 헌법에도 명시되어있듯 북한 영토를 반체제단체(북한 공산당정권)가 점령한 미수복지역, 더 나가면 IS나 다름없는 무장 군벌취급하므로 북한에 대해 국가대 국가 협상이란건 해서도 안된다고 간주하고, 북한이 근본적으로 김씨 일가 옹위를 위해 국가파탄을 감수하면서까지 핵무장을 국책으로 추진해온 체제이므로 아무리 회유해도 눈속임으로 시간을 벌며 혜택을 먹튀하거나, 내부모순이나 북한 주민들의 혁명같은 내부붕괴로 실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발적으로 핵무기를 포기할 일은 전혀 없다고보며 정권의 위기가 찾아올 경우 어떤 돌발적 행동도 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때문에 영구적+검증가능+불가역적 비핵화가 먼저 이행되지 않는 대화와 협상은 무의미하며, 군사적 압박과 경제봉쇄를 통해 북한이 핵무장에 따라 치러야 할 리스크를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진보진영에서는 80년대 문익환 목사의 방북이나 임수경같은 인물의 방북을 통해 북한과의 접촉을 겪어보면서 일부 래디컬한 케이스는 있으나 일단 주류는 북한이 기형적인 독재체제 집단이지만 어쨌든 UN가입까지 한 국제사회의 일원임을 인정하고 국가대 국가로써의 협상을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정세현 전 장관은, 북한을 가난한 것까진 인정하지만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허리띠 졸라매면서 사는 생존법이 있다. 한국 보수가 아무리 밖에서 혁명이니 내부모순이니 해도 북한이 그렇게 간단하게 내부붕괴할 국가가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그 근거로 북한은 이미 자체 무기수출로 2000~2008년간 10억달러 이상의 수익을 낸 세계 11위 무기수출국이라는 데이타를 제시했다.

또한 북한은 현재 강력한 대북제재와 감시구조 속에서 한국이 뭘 준다고 그걸 전용해 핵무기를 몰래 만들 정도의 능력은 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하며 김정은 정권때부터는 이전까지의 군부중심 경제가 아니라 어쨌든 자력갱생을 통해 보통국가로 경제활성화를 하고 싶어하며, 때문에 북미수교를 통해 경제제재가 풀리면 이전까지 미국과의 협상카드인 핵무기를 포기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부분은 이란과 우크라이나의 사례를 보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 부분.

어쨌든 겉보기엔 비정상적인 군벌국가처럼 보인다고 해도 북한도 엄연히 UN가입국가인만큼 전략적 사고속에서 수립된 정책을 통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할 만큼의 기본적인 외교술과 통치능력은 갖췄으므로 당연히 국가대 국가의 협상을 하는 것이라 본다. 비록 그 방법이란게 국제사회의 상식을 한참 벗어난 잔인한 공포정치와 군사국가화, 단기적인 선심성경제라고 할지라도. 이때문에 북한과도 이해관계가 부합하면 충분히 1대1 또는 다자간 협상이 가능하며, 그런 대화를 통해서 북한의 급박한 체제붕괴 리스크는 줄이고 최대한 국제 역학구도를 깨지 않는 선에서 국제사회에 편입시키는 것이 최선이라는 화해협력정책(혹은 햇볕정책)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그동안 부시 부자의 공화당 정권은 한국의 보수정권과 비슷한 시선으로 대했고, 과거 클린턴 정권때부터 대북협상에 참여해왔던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을 앞세운 전임 버락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는 둘 사이의 타협책으로 "벼랑끝으로 밀지는 않지만, 적극적으로 협상하지도 않는다"는 <전략적 인내>를 8년간 밀고 나갔으나 북한 체제는 붕괴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핵과 미사일기술은 나날이 발전하는 최악의 상황을 마주하고 말았다.

실제로 정세현 전 장관은 이 전략적 인내에 대해 전략적 혼수상태라고 신랄하게 비난했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오바마 정부의 외교적 무능을 탓하지는 않고 그렇게 되지 않도록 우리 정부가 계속 미국과 북한을 주도적으로 설득해야 하는데 미국 눈치만 보면서 손 놓고 있다가 오바마와 미국 국무부가 아무 것도 하지 않게 만든 당시 이명박근혜정권의 책임도 있다고 주장했다. 전략적 인내에 대해서는, 오바마 정권이 공들이던 이란 핵협상때문에 당시 양면전쟁및 외교를 수행할 수 없었던 미국내 북한정책에서 네오콘의 목소리가 커지는 걸 막는 방편의 성격도 있었는데, 이때 미국이 자기들 인도-태평양 안보를 일본에 하청-한국에 재하청주는 구도를 만드는 것을 막아야하는 한국 외교가 무책임하게 머리를 숙였다고 정세현 장관이 이명박근혜정권의 외교팀을 강하게 비난하기도 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이전에도 김어준의 파파 이스등에도 몇번 출연하여 북한 및 대북제제, 북미관계 관련 국제정세에 대해 해설을 해왔다. 다만, 북한과의 대화 진전이 양 체제 최고 지도부의 결단없이는 쉽지 않은 과정이기[9]. 때문에 대화가 지난할수록, 남북관계가 경색될수록 평가가 크게 갈린다.

비유상징 표현을 시의적절하게 구사하며, 출처 분명한 통계 수치로 상황설명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를 들면,
  • 노무현 정부 말기인 07년에야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을 두고 "나이 80에 애를 낳은 격"이란 표현으로 아쉬움을 표한 바 있으며, 2011년 북한 김정은 체제 출범 후 국내 일부 전문가들의 대북붕괴론 주장에 대해, 김정은을 왕족 모시듯 하는 북한 군 고위관계자들의 모습을 제시하며, "14살이든 27살이든 동궁(東宮)은 동궁"이란 말로, 94년 김일성 사망 후 승계과정을 겪어 본 북한의 후계구도는 연착륙하게 될 것이라는 대조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 한국의 대북지원금이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됐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북한은 05년 한 해에만 무기수출로 10억달러를 벌어들였다."며,[10] 남북경협자금을 전용하지 않고도 무기 개발이 가능한 수준의 자금을 벌고 있었기 때문에, 이북이 우리나라에만 목을 맬 것이라 보면 안 된다는 주장을 한 바 있다. 다만 미국은 북한이 경협자금을 핵개발에 전용했다고 보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2010년 북한이 남북경협자금을 핵개발에 전용했다는[11] 결론을 내렸고, 2018년 트럼프 행정부도 남북경협이 북한의 불법 무기와 미사일 프로그램 증진을 도왔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이 문제의 큰 진전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는, 이후의 남북문제의 진전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12][13]

2018년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고, 모두가 북미관계에서 긍정적 전망을 했다. 그러나 한미정상회담 모두발언 직후 정세현 전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을 바로 읽어내서 대북전문가 중 거의 유일하게 부정적 기류를 알아챘다. 뉴스공장에서 한미정상회담에서 걱정하는 목소리로 상황이 좋지않고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숙제를 내준 것같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미정상회담 직후 트럼프가 서한을 보내 북미정상회담을 취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남북 두 정상은 급하게 만나 판문점에서 극비리에 2018년 2차 남북정상회담을 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남북미 관계가 급박하게 진전됨에 따라 스케쥴이 많이 늘었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때에는 청와대의 초청으로 만찬장에 초대 받기도 했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뉴스공장은 거의 반 고정 수준이고 외교 안보 관련한 방송에는 거의 다 출연하고 있다.

2018년 10월 8일 뉴스공장에서 출연했다. 10.4 남북공동선언 기념행사를 위해 방북할 때 북한 관계자들이 여러 매체 인터뷰를 봤는데 결국 국제 정세가 정세현 전 장관의 예측대로 흘러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다만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전망(미국의 대북제재 일부 해제)처럼 빗나가는 경우도 있으며, 철저한 대북 유화파, 대화론을 주장하기 때문에 대북 강경론 주장과 충돌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하노이 회담 직후부터 북한의 대남 메시지가 180도 변화했음에도, 이런 언사에 대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북한을 옹호하며, 대한민국 정부의 독단적인 대북 정책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하지만 북한은 2019년에만 대한민국의 촉진자 역할에 대해 비난하고, 유해발굴사업에 아무런 통보 없이 참가하지 않았으며, 미사일 도발의 감행, 대한민국 정부가 개성공단 기업인들의 방북을 승인했으나, 북한이 입북을 거부하였고,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에 불참했다. 6월 2019년 남북미정상회동에서도 김정은은 개인적인 감사는 보냈을지 몰라도 문재인 대통령과 실질적으론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이후 연말까지 크고 작은 도발과,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비난을 지속하는 상황에서, 정세현은 북한의 비난 행태에 대해 북한의 '숨은 의도'와 북한의 '화법' 이면의 행간을 파악하고자 노력하였다.

정세현 본인이 통일원 실무자 시절부터 북한 동향을 다년간 꾸준히 살피면서 북한의 과거 대화 방식과 '화법', 그리고 변화 양상을 파악하는 눈을 갖게 된 덕분에 설득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분석력 덕분에, 김정일 정권 시절 체스판처럼 다양한 대외 전술로 정권에 필요한 것을 얻는 데 주력하는 북한 당국자들 대화 행간을 읽어내고 때로는 우리 관료들이 북한측의 요청에 따라 미국과의 대화 관련 조언을 건네기도 하였다.
- 다만 김정은 정권이 들어서면서 이런 체스판에서 → 권투의 링 위로 북한이 대화 포지션을 바꾼 것처럼 매우 직설적인 모습을 보이는데다 + 미국발 대외변수 + 그리고 남남갈등 구도에서 일부 강경 탈북단체들의 돌출행동까지[14] 예측 어려운 상황이 계속 불거지고 있어,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그리고 한 번 중용하면 큰 실수 없는 한 10년 넘게 중용되는 북한의 외교, 대남 부서의 담당자들도 조금씩 새 인물이 들어오고 있는 것 역시 우리 관계자들이 새로이 파악에 진력해야 하는 변수.[15]

정세현은 2019년 9월 1일부터 2021년 8월 31일까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맡았기에,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정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기도 하였다. 일례로 대한민국 정부가 2019년 김연철 장관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금강산 관광 추진, 철도 연결 추진 등 지속적으로 북한에게 경제적 혜택을 제공해보겠다고 밝혔던 일 역시 일정부문 정 씨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겠느냐는 요지. 하지만 북한은 이런 것에는 거의 반응하지 않았고, 김연철 장관은 통일부 장관으로서 북한과 단 한 번도 회담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2020년 6월 북한이 탈북자들의 삐라를 명분(최고존엄 모독) 삼아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를 감행하는 파국 직전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 파견 제안을 공개하며, 문재인 대통령(실제로 강조 표기를 사용함)이 '간곡히 제안'했으나 김여정이 그것을 단호히 거부하는 모양새로 무안을 준 것. 다행히 며칠 후 미국 헤리티지 재단에서는 이 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을 연출된 분노로 간주하며 대북 제재 완화를 검토할 필요성을 언급하고 있고, 트럼프 미 대통령이 북미관계의 교착상태 책임을 질 사람을 언급하며 사안 확대를 원치않는다는 메시지를 전하면서, 남북미 문제가 2020년 중반기 제1의 핫이슈이자, 당면과제로 떠올랐다.[16]

정권이 윤석열 정부로 교체된 가운데, 2022년 5월 30일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북한을 압박하면 소규모 국지전이 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 #

2023년에는 북한이 대외입지를 위해 일본과 친하게지내려고 물밑으로 노력하고 있어 한국이 그 흐름을 읽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중이다. 정부에서 2023년 7월 통일부 차관을 국토통일원 5급특채 출신에서 외교관 출신으로 교체하자, 남북관계는 민주정 내에서의 특수관계이며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외교관계가 될 수 없기때문에 외교관 출신은 남북관계를 이해하고 직무를 수행하는데에는 한계를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김영호 장관 후보자 인선이나 조직개편에 의한 통일부 인원 25% 감축안에 대해서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표하고 있다. 지금 북한에서 트럼프 시기 인사를 다시 전면에 내세웠고 도널드 트럼프가 돌아오면 통일부가 할일이 많아질 텐데 통일부가 개점휴업 상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

4. 비판 및 논란[편집]




4.1. 존 볼턴에 대한 비난[편집]


  • 2019년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존 볼턴이 회담 결렬을 주도했다고 주장하며 (한국에는) 재수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고 인디언을 죽이면서도 조금도 양심의 가책 없이 자기가 잘했다고 하고 정당화하는 서부영화의 백인 기병대 대장이 생각난다고 비난했다.[17] 인종 문제에 민감한 동맹국 미국의 최고위급 공무원에 대한 '인디언 죽이는 백인 기병대장이 연상된다'는 인신공격성 막말으로 인해# 이번 회담 결렬을 북한의 위장 비핵화 때문으로 보는 사람들의 비판이 쏟아졌다. 또한 "퍼주기 없이 평화 없다"고 말하며 남-북 경협을 전제로 하는 대북 지원을 주장하여, 비핵화 없는 대북 지원은 굴종이자 조공일 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참고기사1 : "퍼주기 없이 평화 없다"참고기사2 : 평화는 공짜가 아니다

  •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미국 실무자들은 사실 북한의 비핵화를 바라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 대적할 상대가 있어야 사세를 유지할 수 있는 미 군산복합체의 이해관계와 북한의 비핵화 문제 타결이 서로 상충한다는 게 그 요지이나, 일각에서는 근거가 약한 정치적인 음모론이라 비판하는 의견도 있다. #(위에서 15번째 문단)

  • 월간조선은 정세현이 DJ 집권 이전 보수정권 시대에는 반북 성향의 논문을 작성했던 사실을 공개하며, DJ 집권 이후 정세현이 친북으로 변절했다고 강력히 비판했다.## 이는 보수진영의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한데, 정 전 장관이 군사정권 시절부터 공직 생활을 하며 대북관련 실무를 맡았던데서 연유한 것.[18]
보수진영의 비난에 대해 본인이 라디오에서 아래와 같이 직접 해명하였다.
"1970년대,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북한이 모두 다른데 어떻게 옛날 북한이 평양에 있다고 생각하고 대책을 논의하느냐"
본인 해명 발언 영상

  • 대표적인 보수 정치인인 정진석 의원은 정세현의 발언에 "햇볕정책 전에는 보수처럼 보이더니, 참 묘한 인간이다"라고 비판하였다. 이 또한 월간조선의 논조를 따른 것.


4.2. 사드 배치 관련 입장[편집]


사드 국내 도입 논란에 대해 연합뉴스와 진행한 인터뷰에서는, 우리 경제에서 대의존도가 크고 "THAAD배치를 철회할 때 미국의 보복 가능성에 대해서는 "압력이야 있겠지만 보복이라고 해서 주한미군 철수를 하겠느냐. 그러면 동아시아에서의 패권 유지를 위한 전초기지가 사라지는 셈"이라며 "미 공화당의 트럼프 후보는 엄청나게 주한미군을 줄일 것처럼 얘기하지만 철수론은 공갈일 뿐"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압력을 넣으면 한미동맹을 깨자는 얘기인데, 그렇게 동맹을 압박하겠느냐"는 것. 동시에 "만일 미국이 경제보복을 한다면 중국과 더 손을 잡아야 하지 않나. 그래야 굶어 죽을 걱정이 없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대통령이 미국을 설득할 만한 실력을 갖춰야 한다는 걸 강조하며, "사드를 막는 것과 함께 민주정부 10년과 같이 남북관계를 관리할 수 있는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며 "그러려면 대통령이 실력이 있어야 한다. 과거 1994년 김일성 사망 직전 위기 상황 때의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미국 대통령을 직접 설득할 수 있는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연합뉴스


4.3. 국정감사 위증[편집]


2003년 11월 3일 정세현 통일부 장관이 제주도 민족평화축전에 참가한 북한에 대가를 지불한 것과 관련해 국회 국정감사 도중 위증한 것으로 밝혀졌다. 기사 2003년10월 7일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국정감사에서 북한의 참가 대가로 100만달러 제공 여부에 관한 질문에 "사업승인이 완전히 나지 않았다"고 부인했었다. 기사


4.4. "남북관계 파탄 원인은 미국" 발언[편집]


지금 합의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고 해서 우리 정부가 북한한테 이런 모욕, 수모를 당하고 있다. 이렇게 만든 것은 사실 미국이었다

2020년 6월 15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김여정의 담화문이나 옥류관 주방장의 막말 등으로 남북관계가 파탄에 이른 배경에 대해 "이러한 모욕, 수모를 당하게 만든 건 미국이다"라며 "미국에 할 말은 해야된다"고 주장했다. 기사

또 "미국이 사사건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데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개발 때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에 책상 치고 고함 지를 수 있는 용기가 없으면 남북관계는 한 발짝도 못 나간다.”이라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기사


4.5. 김정남 암살 사건 관련[편집]


  • 2017년 김정남 암살 당시에는 김정남 암살을 김대중 납치와 비교하며 "우리도 비난할 처지 아니다"라 발언, 대선 후보였던 문재인이 직접 해명했고, 김정남 암살은 "용서받을 수 없는 패륜 범죄이자 테러 범죄"라고 말하며 진화하기도 했다.당시 문재인 후보의 정확한 발언은 아래와 같다.

"(이번 사건은) 인류가 함께 규탄해야 할 테러범죄행위라는 것은 저와 민주당의 단호한 입장"이라며
"정 전 장관의 말씀 취지에 대해서는 제가 정확히 알지는 못하겠지만 그와 다른 뜻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본인의 직접해명
"권력의 속성을 안보문제로 비화하지 말라는 뜻으로 얘기한것이었지, 김정은 체제의 잔혹사에 눈을 감자는 얘기가 아니었다. "




4.6.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 관련 발언[편집]


폭파한 건 사실이지만 옆에 있는 15층짜리 건물에 방이 많다. 거기 다시 들어가면 되는 것.

2020년 6월 17일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사건에 대해 위와 같은 발언하여 논란이 되었다.# 그 15층짜리 건물이란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인데, 이 건물 또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의 후폭풍으로 반파됐다.


4.7. 연평도 해역 공무원 피격 사건 관련 발언[편집]


이건 북쪽이 그동안 안 보여 왔던 행태다. 김정일, 김일성 시대와는 좀 다른 면모, 통 큰 측면

"유가족에게는 유감이지만, 전화위복의 계기가 될 수도 있다"라는 논조의 인터뷰를 해 비판을 받았다. #


5. 여담[편집]


  •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옥류관 냉면을 곱빼기로 먹고 술까지 한 잔 했다고 한다. 만찬이 끝난 직후 출연한 프로그램에서 만찬 메뉴판을 가지고 알딸딸한 상태로 출연했다.

  • 2018년 남북정상회담 하루 전 JTBC 손석희 사장과 얘기를 나누며 남북정상회담 결과 및 방향성에 대해 얘기했다.

  • 대북 대화론에 강한 신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지난 10여 년 동안 강경책을 내세운 자유한국당 인사들의 주장과 대척점이 서는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가 워낙 많다보니, 정 전 장관이 "그 쪽 사람들", "그쪽에서"라 칭하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특정 정당 이름을 떠올릴 정도.

  • 미디어에 출연할 때 나이대에 비해 상당한 패션 센스를 자랑한다. 수준급의 정장 차림으로 고급스러운 노신사의 멋을 잘 표현한다. 고급 제품들을 주로 애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현직 외교관시절부터 상대해온 미국, 북한과 중국의 권력층과 실무팀들이 모두 형식미와 권위적인 이미지를 중시하다보니 그들을 상대하면서 자연스레 본인도 그에 맞추면서 기른 습관으로 보인다.

  • 도올 김용옥과 친분이 깊다. 1972년 대만 유학 시절부터 교분을 나누었다고 한다. 이런저런 문제로[19] 대만 유학을 오래 하진 못했지만 이때의 공부를 계기로 박사 논문을 '모택동의 대외관 연구'로 쓰기도 했다. 아직도 서로 교류하고 남북관계와 국제정치에 대한 생각을 교환하는 것으로 보인다

  • 2020년 8월 12일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공개 좌담회에 참여하여 의견을 내놓았다. 모란봉 경기장에서의 문재인 대통령 연설 당시 김정은 위원장이 원고를 사전에 검열하지 않았다고 파악하며, 김정은 위원장의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신뢰가 부담되는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한미 워킹그룹 형성과 동시에 남북 관계 진전에 대한 어려움을 예견했다. 90년대 중반에 북핵 문제에 대해 한미 간의 협력 중 김영삼 정부가 미국에 대해 사사건건 엇박자를 놓으니 한미 공조 원칙을 들고 나오니, 합의를 했는데 이후 미국의 견제를 경험이 있던 점이 첫째,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무리하게 금강산 관광과 개성 공단을 조건과 댓가 없이 제공하겠다고 선언한 점이 둘째 근거였다. 이 외에 북한의 남한에 대한 열등 의식과 고압적인 자세는 표리의 관계로 이해해야 한다고 파악하고 최근 북한의 외교 정책은 선미후남이라는 주장에 동의하며 이는 한국이 국제 정세 사이에서 주도적 역할을 놓친 점을 원인론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 한국 젊은이들이 미국 기념일인 할로윈을 기념한다는 것이 사대주의적이라며 비판했다.

  • 2023년 7월 통일부 인원 25%를 감축한다는 소식을 발표하자 큰 우려를 표하며 본인 장관 시절 일화를 풀었다. 당시 외환위기 때문에 인원을 감축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국 정서상 나이순으로 명예퇴직할수밖에 없었기에 경력이 오래된 사람들이 줄어 햇볕정책 실무부서로서 애환이 컸다고 밝혔다. 본인은 그당시에도 20년 넘게 통일부 업무를 해본 베테랑이었고 차관에서 장관으로 영전한 것이어서 그나마 통일부답게 일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6. 저서[편집]


  • <모택동의 國際政治思想>
  • <정세현의 정세토크>
  • <정세현의 통일토크>
  • <담대한 여정-판이 바뀐다 세상이 바뀐다>
  • <판문점의 협상가 정세현 회고록>
  • <정세현의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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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위
명단
재정경제부장관 →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장관
이규성강봉균이헌재진념전윤철
교육인적자원부장관 →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장관
이해찬김덕중문용린송자이돈희한완상이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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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통상부장관
박정수홍순영이정빈한승수최성홍
법무부장관
박상천김태정김정길안동수최경원송정호김정길심상명
국방부장관
천용택조성태김동신이준
행정자치부장관
김정길김기재최인기이근식
과학기술부장관
강창희서정욱김영환채영복
문화관광부장관
신낙균박지원김한길남궁진김성재
농림부장관
김성훈한갑수김동태
산업자원부장관
박태영정덕구김영호신국환장재식신국환
정보통신부장관
배순훈남궁석안병엽양승택이상철
보건복지부장관
주양자김모임차흥봉최선정김원길이태복김성호
환경부장관
최재욱손숙김명자
노동부장관
이기호이상룡최선정김호진유용태방용석
여성부장관
한명숙
건설교통부장관
이정무이건춘김윤기오장섭김용채안정남임인택
해양수산부장관
김선길정상천이항규노무현정우택유삼남김호식
기획예산처장관
진념전윤철장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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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인근의 사계리·하월리와 함께 창원 정씨 집성촌이다.[2] 부승공파(副丞公派) 20세 ○현(鉉) 항렬.[3] 2014년 12월 임기만료.[4] 2021년 8월 임기만료.[5]중국 헤이룽장성 자무쓰시[6] 조백규(趙伯奎)의 딸이다.[7] 이후 인터뷰에 따르면 이 시기인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에 신민당 후보로 출마했던 김대중 후보가 장충단공원에서 수십만의 유권자들을 모아놓고 한 <4대국교차승인론>과 <남북교류협력론>을 골자로 하는 대북 정책 관련 연설을 듣고 큰 충격을 받았으며, 김대중 대통령의 국제관계 인식을 크게 높이 평가하였다."서울대 교수들보다 훨씬 더 유식해 보였다"라고 언급하였다. <출처 평양갑시다. 333 P> 하지막 정작 김대중 정권시절인 1998년 통일부 차관이 될때까지는 김대중 대통령과 일면식도 없었다. [8]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를 수 있는 게 국제정세인데, 어떻게 1가지 방법론 및 원칙만 고수할 거냐는 말.[9] 일례로 전두환 정부 때, 대통령이 참모들의 의견을 전격 수용해 비밀리에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했지만, 이를 인지하지 못한 여권의 반대로 실패한다. 때문에 후임인 노태우 정부에서는 역시 대통령 결단 하에 공개적으로 남북대화를 추진, 7.4 남북 공동 성명(1972년) 이래 최고의 대북정책 성과이자 통일의 기본방향을 담은 남북기본합의서(1991년)를 조인(調印)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10] 2005년 미국 의회조사국 보고서, 유튜브 11분 16초. 다만 이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래리 닉시 한반도 담당 연구원처럼 남북경협 자금의 전용에 의혹을 보내는 시각은 여전히 있었다. 그리고 2006년 10월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미국 보수 씽크탱크 기관을 중심으로 남북경협 자금의 핵개발 전용 의혹 조사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한다.[11] 05년 보고서에 관여한 "래리 닉시" 한반도 담당 연구원이 이번에도 작성 전반에 참여하였다.[12] 북한은 여타 공산국가들처럼 민수경제와 군수경제를 분리해서 운용하고 있지만, 북한의 절대권력자인 김정은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전용이 가능하다 보는 시각이 있다. 미국이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스몰딜을 거부한 것도 남북경협 자금이 북한 핵개발에 전용되는 것을 우려했기 때문.[13] 탈북자 출신 주성하 동아일보 기자의 주장에 따르면, 김정일이 용처를 자유롭게 정할 수 있는 자금을 다루는 39호실이라는 부서가 있기 때문에, (이북의 무기판매 실적과 별개로) 개성공단 등 남북경협 자금을 이 39호실 관할로 끌어들일 경우, 김정은이 핵개발 자금으로 전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39호실 자금의 구체적인 모습이 밝혀지지 않고 있기 때문에, 아직은 2015년 홍용표 통일부 장관의 주장(개성공단 유입 자금의 70%가 39호실로 흘러들어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사용)처럼, 김정은이 가진 수많은 자금원 중에 딱 개성공단의 달러가 핵 개발에 쓰였다고 단정할 증거는 제시하기 어렵다고.[14] 미국이 2차대전 때 ' 일본의 최고 존엄인 천황을 건들지 않았던 것과 대조되는 모습이기도 하다.[15] 2020년에 북한은 김여정을 전면에 내세우며, 다음 정권 때야 대화를 고려해볼 수 있다는 식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대한 비난 수위를 올렸다. 이 때 정세현은 대한민국이 나서서 미국과 연계시켜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라는 요지로 북한의 발언을 해석하였다. 6월 들어 포르노 삐라에(노무현 전 대통령과 + 이설주 사진 + 포르노 배우 몸통을 합성한 물건) 강경한 태도를 보인 김여정이 문재인 대통령의 이름을 거론하며 욕설에 가까운 담화를 내놓은 후에는, 북한이 진짜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요지의 발언을 했는데, 탈북민들이 설마 포르노를 남북한 지도자 얼굴과 합성한 물건을 삐라로 보냈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16] 7월 10일,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 주관 하에 진행된 공식 담화에서, 김여정이 미국 독립기념일 행사 DVD를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싶다는 의사를 공식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미국의 반응을 타진하고자 일종의 신호를 보내는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후문[17] 문제의 백인 기병대장 발언의 정확한 내용은 "저는 그 사람을 보면 인디언을 죽이면서도 조금도 양심의 가책 없이 자기가 잘했다고 하고 정당화하는 서부영화의 백인 기병대 대장이 생각납니다."였다.[18] 사실 정세현은 본래 정치인이 아니라, 대학교수를 목표로 통일부 내에서도 북한 동향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부서에 5년 이상 근무하며 공부를 했던 "학자"이다. 5년 넘게 북한 동향을 살피다 보니, 나름 그쪽 변화의 흐름을 감지하는 전문가가 돼 고위직에도 발탁되며 출세를 하게 된 것.[19] 도올 曰, 성격이 까탈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