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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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 변천 : 합동참모회의의장(초대) ▸ 연합참모본부총장(초대~6대) ▸ 연합참모회의의장(7대) ▸ 합동참모의장(~현임)

※ 초대~현재: 대장





역임한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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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37대 합동참모의장
정승조
鄭承兆 | Jung Seung-jo

파일:정승조 장군.jpg
출생
1953년 1월 21일 (69세)
전라북도 정읍군
재직
제35대 제1야전군사령관
2009년 9월 18일 ~ 2010년 6월 17일
제22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2010년 6월 24일 ~ 2011년 10월 24일
제37대 합동참모의장
2011년 10월 26일 ~ 2013년 10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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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가족}}}'
배우자 박정경, 슬하 2남
학력
백산고등학교 (졸업)
연세대학교 대학원 (경영학 / 석사)
군사 경력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76년 ~ 2013년
임관
육군사관학교 (32기)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합동참모의장
경력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제1야전군사령관
육군사관학교장
제2군단
국방부 정책기획관
합동참모본부 민군심리전부장
이라크 평화·재건사단
제1보병사단
제3야전군사령부 작전처장
한미연합군사령부 기획참모차장
제3공수특전여단
합동참모본부 합동작전과장
육군특수전사령부 작전참모
육군특수전사령부 정보참모
제1보병사단 제11보병연대

1. 개요
2. 생애
3. 경력
4. 상훈
5. 여담



1. 개요[편집]


대한민국군인. 前 합동참모의장 겸 통합방위본부장.


2. 생애[편집]


1953년 1월 21일[1] 종교가톨릭이며, 세례명은 모세이다. 전라북도 정읍시 출신으로 부안 백산중학교(19회), 백산고등학교(4회)를 졸업하고 1976년 육군사관학교 32기로 임관했다.

군사정권 당시 서울대학교에 준했던 육사[2]를 수석으로 입학한 뒤 역시 수석으로 졸업한 후 임관하고 나서도 대위 지휘참모과정·육군대학 등 각종 교육기관을 1등으로 수료했다. 1976년 3월 육군사관학교 졸업·임관식 때 박정희 대한민국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3]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강재구 소령의 전기를 읽고 육사에 들어가는 것이 가장 옳고 멋있게 사는 법을 배우는 길이라 생각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 기사. 또한 그의 기수인 육사 32기는 고교 졸업 후 바로 입교했을 경우 1953년생, 재수(再修) 등의 이유로 1년 늦게 들어가면 1952년생이 된다. 前 육군참모총장김상기 대장, 前 1야전군사령관인 박정이 대장 등이 같은 32기 동기이자 학교를 1년 늦게 들어간 52년 생인 경우이다. 빠른 55년생으로 알려져 있으나 위키피디아의 항목에서는 53년생이라고 나오는 것으로 보아 출생신고를 늦게 한 듯 하다.

파일:attachment/jungsj2.jpg
1976년 3월 26일 육사 수석 졸업 직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

무인다운 다부진 체격으로 뚝심이 강하다는 평과 함께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온화한 인품으로 선·후배 모두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고 있다. 통역 없이 국제회의에 참석할 정도로 탁월한 영어실력을 갖추고 있으며, 국방정책과 군사외교, 특수전, 작전 분야의 최고 전문가라는 것이 주위의 평가이다. 주요 보직으로 제11보병연대장, 합동참모본부 합동작전과장[4], 제3공수특전여단, 한미연합사 기획참모부 차장, 3야전군사령부 작전처장, 1사단, 자이툰부대(이라크 평화재건사단) 2진 사단장#, 합참 민군심리전부장, 국방부 정책기획관, 제2군단장, 육군사관학교장, 제1야전군사령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등을 역임했다.

이라크 평화재건사단장 시절에는 그의 지휘 아래 민사 재건 작전에 힘을 쏟아온 자이툰부대는 창설 2년 만에 완전히 현지인들의 동반자로 자리 잡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공로로 미국 정부로부터 공로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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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5월 8일 판문점 북측 지역 통일각에서 남북 장성급 회담이 열리기에 앞서 남측 대표인 정승조 국방부 정책기획관과 북측 대표인 김영철 중장(우리 군의 소장급)이 악수하고 있다.

국방부 정책기획관 시절에는 남북 장성급회담 수석대표를 맡아 북측 수석대표였던 김영철 現 정찰총국장을 상대하여 군사보장 합의서를 도출해냈다. 김영철은 우리 군이 2010년 천안함 폭침사태 등 최근 각종 대남 도발을 기획·집행한 것으로 지목하고 있는 사람으로, 김정은의 핵심 측근이다. 2007년 5월 판문점 북측 구역인 통일각에서 열린 제5차 군사회담 당시 정승조 소장이 김영철과 신경전을 벌이면서 회담이 당초 일정보다 하루 더 열리기도 했다.

2009년 9월 대장으로 진급하여 제1야전군사령관에 보임되었다. 그런데 2010년 3월 벌어진 천안함 폭침사태에 대해 당시 합동참모의장이었던 이상의 대장이 모든 책임을 지고 전역하였다. 그리하여 공석이 된 의장 자리에는 당시 육군참모총장이었던 한민구 대장이 올라가게 되었고, 총장직은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이었던 황의돈 대장이 맡게 됨에 따라 정승조 대장이 후임 연합사 부사령관에 내정되었다. 이에 따라 9개월간의 야전군사령관직을 마친 후 2010년 6월 24일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으로 보직을 이동했다.[5] 이 기간동안 월터 샤프 前 연합사령관, 제임스 서먼 現 사령관과 호흡을 같이하며 한반도 전구작전태세와 한미동맹 발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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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7월 15일 제임스 서먼 한미연합군사령관과 정승조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이 판문점을 방문하고 있다.

2011년 하반기 대장인사에서 합참의장 한민구 대장이 전역했고 제37대 합동참모의장에 내정되었다.[6] 이로써 그는 대장 보직만 세 번째 맡는 진기록을 세우게 되었다. 보통 대장에 오르면 한 보직만 마치고 전역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많아야 두 보직을 경험할 수 있는 정도이기 때문이다. 한편, 정승조 대장이 합참의장에 내정된 것에 대해 군 안팎에서는 최적임자를 발탁한 인사라며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이후 대한민국 국회 국방위는 정승조 합참의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를 채택했으며, 대통령의 재가와 함께 정승조 대장은 2011년 10월 26일 합동참모의장에 취임했다. 그는 제37대 합참의장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통해 "만일 적이 도발한다면 단호히 대응하고 격퇴함으로써 도발의 대가가 얼마나 처절한지를 뼈저리게 느끼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바야흐로 정승조 대장이 합참의장에 취임하게 되어 이제는 軍수뇌부로서 전술한 김영철을 맞상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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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이미지에서는 북한이 농협 전산 사고를 일으킨 것으로 써놓았는데 현실은 농협 전산 사고 항목을 참조할 것.

정승조 합참의장은 약 2년간 합참의장의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다가 2013년 9월 국군 수뇌부 인사에서 후임 합참의장으로 대한민국 해군참모총장 최윤희 대장이 내정되었고, 인사청문회를 통과함에 따라 10월 16일 국방부 연병장에서 열린 합동참모의장 이·취임식에서 이임과 동시에 38년간의 군생활을 마치고 예편했다.

3. 경력[편집]




4. 상훈[편집]



5. 여담[편집]


  • 대부분의 경력을 특전사에서 보낸 특수전분야의 전문가이다. 다만 소장부터는 야전으로 나가면서 특전사를 떠나게 되었다.

  • 국방부 근무지원단 병사들의 구전에 의하면 정승조 합참의장이 국방부 정문을 지날 때마다 차창을 내리고는 위병들에게 고생한다고,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줬다고 한다.

  • 한편으로는 약간 모양 빠지는 이야기도 있는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시절에 한민구 합참의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꾸벅꾸벅 졸았다(!) 한민구 의장은 정승조 대장의 체면을 생각[7] 해서 "연부사[8]님, 연부사님. 졸면 안 됩니다."라고 가볍게 주의를 줬고, 정승조 대장 또한 고개를 흔들고 잠을 쫓으려 했지만 그 때 뿐이었던 상태가 반복되고 정승조 부사령관이 계속 졸자 참다 못한 한민구 의장이 의자를 박차고 벌떡 일어서서는 "야! 정승조!"라고 버럭 소리를 지른 것. 이에 정승조 대장을 비롯한 모든 회의실 내 인원들이 꽁꽁 얼어붙었고 그렇게 한 번 내지른 한민구 의장의 지시에 병사들이 회의실 문을 닫자마자 한동안 고성이 울렸다는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다. 못 미덥겠지만 국방부 근무지원단 소속이었던 예비역으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니 뜬 소문은 아닐 듯.

  • 합참의장 이, 취임 기념 행사에서 전임 의장인 한민구 합참의장이 당시 상당한 머리숱에 백발이었던 점에 착안, 정승조 합참의장 본인이 직접 백두장군에서 민두장군으로 합참의장이 바뀌었다는 개그를 시전했다는 뜬소문도 존재한다.

  • 정승조 장군의 친형은 예비역 준장 정동조 제독으로 해사 28기 출신이고[9], 해사를 3등으로 졸업하였다.

  • 부인[10]과 슬하에 두 아들이 있고, 손자가 있다.[11]

  • 고향 친구인 장종대 장군[12]과는 백산중학교, 백산고등학교, 육군사관학교 동기/동창이다. 둘다 병과는 보병이지만 직능은 달랐다. 정승조 장군은 작전이었고, 장종대 장군은 인사였다.

  • 2000년대 후반 2010년대 초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대청해전,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전 등으로 남북관계가 최악일 당시 북한에선 선전 방송으로 훈련 중인 인민군이나 인민군 지휘관들이 인터뷰에서 최고 사령관 동지께서 명령만 내리면 만고의 역적 이명박, 김관진과 더불어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정승조가 있는 서울을 무자비하게 짓뭉게버리겠다는 인터뷰를 자주 했었다. 제복군인의 최선임이기도 했고, 그간의 경력에서 알 수 있듯이 상당한 엘리트였기 때문에 북한에서는 그를 두려워하고 상당히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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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헌데, 위키백과에는 1953년 5월 23일 생으로 나온다.[2] 끝발이 과거보다 떨어지기는 했지만 지금도 육군사관학교는 엘리트의 상징이다.[3] 이 때 대표화랑은 최진학이었는데 최진학은 하나회 가입 이력 때문에 대령에서 옷을 벗었다.[4] 합참 대령 보직들 중에서 준장 진급률이 높은 요직으로, 역대 과장은 대부분 고위직으로 진급했다. 이 직위를 역임한 사람들로 정승조(육사 32기-대장 전역), 이홍기(육사 33기-대장 전역), 신현돈(육사 35기-대장 전역), 김종배(육사 36기-중장 전역), 신원식(육사 37기-중장 전역), 김왕경(육사 38기-준장 전역), 장경석(육사 39기-중장 전역), 구홍모(육사 40기-중장 전역), 박철희(육사 41기-준장 전역), 김승겸(육사 42기-대장 전역), 안준석(육사 43기-대장 전역), 김정유(육사 44기-소장 전역), 전동진(육사 45기-대장 전역), 김홍석(육사 46기-소장 전역), 강호필(육사 47기-현직 중장), 이승오(육사 49기-현직 소장), 강현우(육사 50기-현직 소장), 안찬명 (육사 51기-현직 소장), 우석제 (육사 52기-현직 준장)가 있다.[5] 그리고 동기인 박정이 합참 전력발전본부장이 대장으로 2차 진급하여 1군 사령관에 취임했다.[6] 연합사 부사령관은 육사 34기인 권오성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이 1차 진급과 함께 이어받았다.[7] 물론, 한민구 합참의장이 제복군인 중 최선임이지만 정승조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또한 자신과 같은, 그것도 전군 내에서 8명 뿐인 대장이었다. 또한 선임이 후임을 질책하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부하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질책해야 한다. 후임의 리더십이 큰 타격을 입기 때문.[8]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의 줄임말이다.[9] 참고로 해사 28기에 박인용 국민안전처 장관과 최초의 잠수함 함장인 안병구 제독이 있다.[10] 정 장군의 전역사가 인상적이다. "지금까지 휴대전화 단축번호 1번을 합참 지휘통제실로 했지만 오늘부터는 당신을 1번으로 등록하겠다"고 말하였다.[11] 장남은 2013년 초에 장가를 갔다. 차남은 합참의장 청문회 자료를 분석한 결과 89년생이나 90년생으로 추정된다. 정 장군의 전역 당시 큰며느리가 임신 중이었으므로 손자는 2014년에 출생한 듯 하다.[12] 예비역 소장. 23사단장, 육군훈련소장, 교육사 교리발전부장, 1군 부사령관 역임. 보병 병과에 인사 직능 출신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