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우(독립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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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연우(鄭然愚)
본관
연일 정씨
생몰
1869년 ~ ?
출생지
황해도 송화군 상장양면[1]
(현 황해남도 삼천군 도봉리)[2]
사망지
함흥형무소
추서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3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1869년 황해도 송화군 상장양면(현 황해남도 삼천군 도봉리)에서 태어났다.

1920년 음력 6월 황해도 일대에서 독립운동 자금을 모집하고 독립운동에 반대하는 자와 독립운동 자금 모집에 방해되는 자를 처단할 목적으로 남만주 관전현(寬甸縣)[3]에 소재한 대한독립단 지단(支團)의 변춘식(邊春植)·고두환·이명서(李明瑞)·민양기·이지표(李芝杓) 등 일행이 입국하여 그해 음력 7월 2일[4]에 친일파로 지목된 은율군수 최병혁(崔丙赫)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명의로 처단하였다.

정연우는 같은 해 음력 7월 4일부터 5일까지 이들 일행을 황해도 송화군 장양면 자양리 자신의 집에 숙박케 하고, 같은 달 17일에도 같은 마을의 양민환(梁敏煥)의 집에 숙박케 하고 음식물을 공급하였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는 1921년 8월 19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다이쇼 8년(1919) 제령 제7호[5] 위반 및 범인 은닉죄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의 행적 및 최후에 대해선 자료가 미비해 알 수 없다.

2013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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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구한 말 송화군 상장양면 소양동·상기산동·중기산동·하기산동 → 1914년 송화군 장양면 자양리 → 1952년 황해도 삼천군 자양리 → 1958년 황해남도 삼천군 도봉리[2] 연일 정씨 집성촌이다.[3]중국 랴오닝성 단둥시 콴뎬만주족자치현(寬甸滿族自治縣).[4] 양력 8월 15일[5]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