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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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1868년
강원도 춘천도호부 북내면 우두리
(현 강원도 춘천시 우두동)[1]
사망
1902년 1월 1일
강원도 춘천군
본관
초계 정씨
묘소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201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인회는 1868년생이며 강원도 춘천도호부 북내면 우두리(현 춘천시 우두동) 출신이다. 그는 1895년 을미사변단발령이 잇달아 발발하자 1896년 1월 18일 춘천진어영의 초관(哨官) 출신 성익현, 상인 박현성(朴玄成)을 규합하여 포군 400여 명과 함께 봉기한 뒤 명망높은 유학자 이소응을 의병대장으로 추대했다. 이후 춘천관찰부를 습격하여 의병의 본영으로 삼았고, 전임 춘천유수 민두호(閔斗鎬)의 생사당(生祠堂)을 불태우고, 그의 아들 민영준(敏泳駿)의 향제(鄕第)에 난입하여 집기를 불태웠다.

그러나 얼마 후 관군의 반격으로 의진이 해체되었을 때 체포되어 서울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고, 풀려난 후 자택에 은거했으나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1902년 1월 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2010년 정인회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그리고 2011년 그의 유해를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묘역에 안장했다.
[1] 초계 정씨 집성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