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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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권의 역임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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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축구 행정가
한양대학교 축구부 감독
HANYANG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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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정재권
鄭在權 / Jung Jae-Kwon
출생
1970년 11월 5일 (53세)
부산광역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신체
168cm
직업
축구선수 (공격수[1] / 은퇴)
축구 감독
학력
사하초 - 장평중 - 부산상고 - 한양대
소속
선수
중소기업은행 (1993)
부산 대우 로얄즈 (1994~1999)
비토리아 FC (1998 / 임대)
포항 스틸러스 (2000~2001)
지도자
동의대학교 (2002 / 코치)
동래중학교 (2003~2007)
한양대학교 (2008~2013 / 코치)
한양대학교 (2014~)
행정
대한축구협회 (2023~2023 / 이사)
국가대표
파일: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15경기 3골 (대한민국 / 1992~1997)

1. 개요
2. 선수 경력
2.1. 클럽 경력
2.2. 대표팀 경력
3. 지도자 경력



1. 개요[편집]


대한민국축구인. 1970년생으로 부산 대우 로얄즈포항 스틸러스에서 활약했으며 현재는 모교 한양대학교의 감독을 맡고 있다. 168cm의 작은 체격이었지만 국내에서 최고급의 준족을 자랑하며 '쌕쌕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2. 선수 경력[편집]



2.1. 클럽 경력[편집]


1993년 한양대학교를 졸업하고 한 해 실업축구 중소기업은행을 거친 후 1994시즌 드래프트를 통해 고향 팀 대우 로얄즈에 입단했다. 실업을 거친 것은 졸업시즌 드래프트에서 신생팀 완산 푸마에 지명되는 것을 기피했기 때문이다.[2] 정재권은 계약금 1억 6500만원에 대우에 입단하며 프로축구 최초의 억대 신인 선수가 되었다.[3]

당시 호화 멤버를 자랑하던 대우에서도 정재권은 윙어로서 주전을 꿰어찼고, 1996 시즌에는 커리어 하이인 27경기 8득점을 거뒀다.

1998년에는 포르투갈 프리메이라 리가 비토리아 세투발에 단기 임대로 진출하여 데뷔전부터 득점을 기록했으나, 임대 연장에 실패하기도 했다.

1999년 대우그룹이 무너지고 부산 대우가 고액연봉자를 대거 정리하면서 2000 시즌을 앞두고 포항 스틸러스에 트레이드되었다. 그러나 30줄에 들어서 스피드가 떨어지고 부산 시절과 달리 포항 공격진이 난맥을 보이면서[4] 큰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2001 시즌 후 은퇴하였다.

2.2. 대표팀 경력[편집]


1992 올림픽 대표팀으로 16개국 본선에 나가 조별라운드 세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했고 첫 경기 모로코전에서는 동점골을 넣으면서 활약하기도 했다. 이후 대표 상비군 멤버로 월드컵 1차예선이나 친선경기 수준에서 기용되었다.


3. 지도자 경력[편집]


은퇴 후 동의대학교 축구부 코치를 거쳐 동래중에서 5년 간 지도자 생활을 했다.

2008년 모교 한양대 코치로 합류했고, 2013년 말 전임 신현호 감독이 정년 퇴임하며 2014년부터 감독을 맡고 있다.

한양대에서 임찬울, 서영재 김현욱, 윤용호, 원두재, 송환영, 이건희, 주민규 등 여러 프로 선수들을 배출해냈다. 또한 정재권 감독 부임 이후 한양대학교 선수들의 유럽 직행이 꽤나 잦아졌다. 다음은 최근 한양대 소속으로 유럽 무대에 직행한 선수들.

2018년부터는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회 멤버로 있다.

2020년 11월 국가대표팀의 유럽 원정 A매치에 TSG 분석 업무차 동행했는데 마침 원두재가 이때 A매치 데뷔전을 치러 한양대 제자의 A매치 데뷔를 현장에서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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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윙어[2] 완산 푸마는 1993 시즌 직전 와해되면서 사전에 포항 스틸러스와의 트레이드가 확약되어 있던 최대어 황선홍를 제외하고 관계된 전원이 미아 신세로 전락하는 사고를 냈다.[3] 연봉으로 1억원을 달성한 것은 1995년 홍명보가 최초이다.[4] 포항 팬들이 치를 떨 정도로 2000년 전후의 포항 공격진은 성적 이전에 몸 간수조차 제대로 못했다. 이동국이 부상 치료하러 독일 갔다가 얼떨결에 SV 베르더 브레멘에 임대 다녀온 게 이 시절이며, 샤샤는 둘째치고 1년이나 똑바로 뛰는 외국인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