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호(18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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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정재호
鄭在鎬, 鄭在浩

파일:정재호2.jpg
출생
1886년 8월 14일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읍 용천동
사망
1956년 3월 31일
서울특별시
상훈
건국훈장 애족장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한국의 독립운동가. 1992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받았다.

2. 생애[편집]


정재호는 1886년 8월 14일 함경북도 경성군 경성읍 용천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중국 상하이에 수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서 국내비밀조직인 연통제(聯通制) 실시를 공포하자, 동년 7월 서울에서 활동하고 있는 명제세는 그에게 함경북도 연통제 조직을 요청했다. 이에 정재호는 윤태선(尹台善)·전재일 등과 함께 20여 일간에 걸쳐 수차례 왕래하며 조직결성을 논의하였다.

이어 경성읍 승암동에 거주하는 송완섭(宋玩燮)의 집에서 이상호·전재일·김동식·정두현(鄭斗賢)·이운혁(李雲赫)·장창일(張昌逸)·송관섭·송윤섭 등 경성군내 관리·학생·종교계 인사들과 회합을 가졌으며, 그후 계속하여 윤태선·전재일·정두현 등 용포동·원향동·남부동·용천동·남석동 5개 동의 유지들이 다수 참석한 가운데 경성군 연통제 총감부를 조직하고, 전재일을 함북 지부장에 선임하였으며, 재무에 정두현, 서무에 박두환, 경무부장에 전용락을 각각 임명하였다.

또 각 면에는 사감을 임명하였는데, 오촌면에는 정두현, 주을온면에는 최병학, 주북면에는 석린욱, 나남면에는 이영순, 용성면과 어랑면에는 이희복을 임명하였다. 이어 군자금 모집, 시위운동, 일본군 무장상황, 군경청사 조사 등을 내용으로 한 유고문(諭告文)·사령서(辭令書)를 낭독함으로써 폐회하고 자신이 직접 지휘하여 태극기를 들고 봉화대 낙타봉으로 향했다.

그러나 일제 경찰이 중도에서 가로막는 바람에 뜻을 이루지 못하고 체포된 뒤 주동자의 한사람으로 나남경찰서에 수감되어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1920년 8월 10일 함흥지방법원 청진지청에서 소위 제령 제7호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서울에서 조용히 지내다 1956년 3월 31일에 사망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2년 정재호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