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훈(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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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훈의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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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등번호 40번
남찬섭
(2004~2005)

정재훈
(2006~2008)


허경민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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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news.donga.com/7015718.1.jpg
왼쪽이 1981년생 정재훈, 오른쪽은 김태영.
두산 베어스 전력분석원
정재훈
鄭載勳 | Jung Jae-Hoon

출생
1981년 5월 6일(42세)
서울특별시 강동구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display: none; display: 대한민국"
행정구
]]

학력
중대초 - 배명중 - 배명고 - 단국대[1]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2000년 2차 5라운드 (전체 38번, 두산)
2006년 신고선수 (두산)[2]
소속팀
두산 베어스 (2006~2008)
프런트
두산 베어스 전력분석원 겸 외국인 스카우트 (2012~)
명역
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4~2005)
1. 개요
2. 선수 경력
3. 은퇴 후
4.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두산 베어스 소속의 야구 선수이자, 현재는 두산 베어스의 전력분석원 및 운영 팀의 프런트다.


2. 선수 경력[편집]


서울중대초, 배명중을 나와 1999년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에서 심수창, 이명호와 함께 배명고를 결승으로 이끌었으나 2학년생들인 추신수-정근우-김백만이 활약한 부산고에 대통령배를 내줬다.

2006, 2007 시즌에는 두산의 불펜을 책임졌지만, 2008년 시즌 후 방출되었다. 2010년 일본 독립 리그에서 활동하다가 지난 3년 간 미국에 건너가 독립 리그에서 활약하기도 했다. 이후 미국에서 귀국하여 2012 시즌을 대비해 전력분석관으로 박종섭과 함께 친정팀 두산 구단에 영입되어 프런트 생활을 시작했다.

같은 팀이었던 정재훈(1980)과 한자 성명마저 같은 동명이인인데다 포지션도 같아서 현역인 정재훈은 '큰 정재훈'이라 불리고 이쪽은 '작은 정재훈'이라 불렸다. 둘을 가리켜 짝재훈이라고도 불렀다.

이 두 선수는 2007년 8월 4일 잠실 LG전에서 41번이 구원승, 40번이 세이브를 기록하는 한 경기 동명이인 승리-세이브 라는 진기록을 수집하였다. 현재까지는 KBO 정규리그에서 유일한 사례로 남아있다. 이승호 콤비(?)가 달성할 수도 있었으나 2011 시즌 후 작은 이승호가 FA를 선언하고 롯데 자이언츠에 이적하면서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아졌다.[3]


3. 은퇴 후[편집]


2012 시즌부터 두산 베어스 전력분석관 겸 외국인 선수 스카우트로 활동하는데, 스카우트로서의 선구안이 매우 최악이어서 돡갤에서는 대차게 까였지만, 그런데 이 외로 2016년은 외국인 농사가 대박을 치면서 재평가 조짐이 있다.

4. 관련 문서[편집]


[1] 00학번[2] 배명고 시절 지명을 받고 단국대에 진학했으나 대학 졸업 무렵 지명권이 풀렸다. 대학 졸업 후 상무에 입대했으며 전역 후 신고선수로 입단했다.[3] 2010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이승호 콤비가 이를 달성했다. 큰승호(구원승)-작은승호(세이브). 하지만 포스트시즌이기 때문에 정식 기록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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