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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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정부 내무부장
초대
제2대
제3대
제4대
안창호
이동녕
홍진
김구
제5대
제6대
제7대
제8대
이유필
이규홍
김구
최창식
제9대
제10대
제11대
제12대
윤기섭
김구
차이석
조완구
제13대
제14대
제15대
제16대
차이석
조소앙
송병조
조완구
제17대
제18대
제19대
홍진
조완구
신익희


내무부장관 (1948~1998)

초대
윤치영
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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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김효석
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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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대
조병옥

6대
이순용
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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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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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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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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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대
백한성
12대
김형근
13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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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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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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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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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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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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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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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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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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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대
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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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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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엄민영

31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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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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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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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대
박경원
37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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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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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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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무처와 통합
61대
서정화
62대
강운태
63대
조해녕

행정자치부장관 (1998~2008)


초대
김정길
2대
김기재
3대
최인기
4대
이근식
5대
김두관

6대
허성관
7대
오영교
8대
이용섭
9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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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안전부장관 (2008~2013)

초대
원세훈
2대
이달곤
3대
맹형규

안전행정부장관 (2013~2014)

초대
유정복
2대
강병규
3대
정종섭

행정자치부장관 (2014~2017)


초대
정종섭
2대
홍윤식
3대
김부겸

행정안전부장관 (2017~현재)

초대
김부겸
2대
진영
3대
전해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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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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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국회휘장.svg 대한민국 국회의원 (대구 동구 갑)
제19대
류성걸

제20대
정종섭


제21대
류성걸



대한민국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정종섭
鄭宗燮 | Chong Jong-sup


파일:정종섭.jpg

출생
1957년 6월 16일[1] (66세)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2]
본관
연일 정씨[3]
현직
한국국학진흥원 원장
사단법인 세계신지식인협회 고문
재임기간
제3대 안전행정부 장관
2014년 7월 16일 ~ 2014년 11월 18일
초대 행정자치부 장관 (박근혜 정부)
2014년 11월 19일 ~ 2016년 1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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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안영안[1]
자녀
슬하 1남 2녀
학력
안강제일초등학교 (졸업 / 44회)
경주중학교 (졸업)
경북고등학교 (졸업 / 57회)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 77 / 학사)
경희대학교 대학원 (법학[2] / 석사[3])
연세대학교 대학원 (법학 / 박사[4])
병역
육군 대위 만기전역 (군법무관)
소속 정당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20
경력
제24회 사법시험 합격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장 및 교수
한국헌법학회장
안전행정부장관
제18대 여의도연구원장 권한대행
제20대 국회의원(대구 동 갑)
한국국학진흥원

1. 개요
2. 생애
3. 논란
3.1. 청년 시기
3.2. 서울대 법대 교수 시기
3.3. 행정자치부장관 시기
3.4. 20대 총선 시기
3.5. 20대 국회의원 시기
4. 여담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둘러보기



1. 개요[편집]


대한민국헌법학자, 법조인, 정치인.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거쳐 박근혜 정부안전행정부장관, 새누리당 제20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저서 '헌법학원론' 이 유명하다.


2. 생애[편집]


1957년 6월 16일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에서 아버지 만취(晩翠) 정병찬(鄭柄璨, 1900. 12. 27 ~ 1966. 7. 6)[4]과 어머니 달성 서씨(1916. 1. 15 ~ )[5] 사이에서 5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안강제일초등학교(44회), 경주중학교, 경북고등학교(57회)[6]를 졸업하고, 1977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법학과(77학번)에 입학하였다.

유신 시대 법대를 다니면서 헌법의 정당성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다고 한다. 서울법대 졸업 후 당시 소장 학자였던 허영 교수를 좇아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헌법 전공으로 법학 석사 학위[7]를,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법학 박사 학위[8]를 취득하였다.[9]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 사법연수원 14기로 수료하고 1985년부터 1989년까지 육군 군법무관으로 병역을 마친 후,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거쳐 1992년 건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이 즈음 국내 최초로 '특별검사제' 도입을 주장하여 각광받기도 했다.

1999년 9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로 자리를 옮겼다. 국회 정치쇄신자문위원회 위원장, 대검찰청 검찰개혁심의위원회 위원장, 한국헌법학회 회장 대구대학교 임시이사 등을 지냈다.

제자로 전종익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황희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상우 인하대학교 사회교육과 교수, 기현석 명지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윤성현 한양대학교 정책과학대학 교수, 김정현 한국법제연구원 연구위원, 이석민 헌법재판연구원 연구관 등이 있다.

2014년 박근혜 정부에서 안전행정부 장관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말 정부조직 개편으로 안전행정부의 일부 기능이 이관되고 행정자치부로 개칭되자, 2016년 1월까지 행정자치부장관을 역임하였다.

2016년 2월 서울대학교 교수 직을 사퇴하고, 같은 해 4월에 치러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현역 국회의원이자 친이, 친유 정치인인 류성걸을 제치고 새누리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동구 갑 선거구에 공천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한 류성걸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국회의원 당선 후에는 별 존재감 없이 지내다가, 2020년 1월 19일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국경제당 합류설이 있었으나, 조선일보로부터 핀잔을 듣고는 합류설을 부정했다. 대구 동구 갑 지역구에 예비후보로 나선 이진숙을 전폭적으로 지원했으나, 결국 류성걸이 경선에서 승리하여 미래통합당 후보로 출마, 당선되면서, 향후 정계 복귀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2021년 3월 이철우 경북도지사에 의해 한국국학진흥원장으로 임명되었다.

3. 논란[편집]



3.1. 청년 시기[편집]


  • 1985년에 군법무관으로 입대해 1989년에 제대하였다. 그동안 연세대학교 대학원을 다니며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제대 후 5개월 뒤 연세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석·박사 수학기간을 합하면 군 복무기간 거의 대부분에 해당하는 3년 9개월이 된다.[10] 이때 군 복무 지역인 강원도 화천군경기도 용인군을 이탈했다는 의혹이 있었으나,[11] 청문회 과정에서 지휘관의 영외 출입 허가를 얻어 다녔으며, 박사과정은 연구발표 방식으로 이루어짐에 따라 직무를 소홀히 한 점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석사과정은 몰라도 박사과정 입학까지 하려면 지휘관의 영외 출입 허가만으로는 부족하고 군 위탁교육 허가를 받는 것이 보통이며, 박사과정이라 하더라도 수업 참가는 필수이고, 당시 경희대학교연세대학교 법과대학 석·박사 과정에는 야간 과정이 없었다는 점에서 위법 및 특혜 논란이 일었다. #


3.2. 서울대 법대 교수 시기[편집]


  • 서울대 법대 교수로 재직할 당시 강단에서 "현행 민주주의에서 하는 1인 1표제는 문제가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100표를 줘야 한다."는 주장을 자주 했다는 증언이 동아일보 등 언론에 실려 안행부 장관 후보자 시절 논란을 빚었다. 해당 증언을 제보한 당시 재학생들에 따르면 농담으로 한 말이 아니라 "진지하게" 주장한 것이었다고 한다.



3.3. 행정자치부장관 시기[편집]


  • 2015년 6월, 국회법 파동과 관련하여 말바꾸기 행각으로 곡학아세라는 비판을 받았다.#1 #2.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새정치민주연합과 합의하여 법률에 반하는 정부의 시행령에 대해 국회가 수정을 요구할 수 있게끔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한 것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이 진노하면서 유승민을 원내대표 자리에서 쫓아낸 일이 있었는데, 문제는 정종섭이 예전에 집필한 '헌법학원론' 교과서에다가 "법률에 대한 국회입법의 독점을 보다 실질화하기 위해서는 위임입법의 경우 하위법령에 대한 국회의 통제권을 보장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명히 썼다는 것.[12] 그 외에 "대통령이 법률을 집행하기 위한 대통령령을 발하지 않거나 법률에 위반하는 내용을 정하는 경우, 이러한 권한의 남용은 통제할 필요가 있다"는 대목도 같은 책에서 발견되었다.[13] 그동안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박근혜 대통령이 이에 대해 날 선 비판으로 반대한 것과 전면으로 배치되는 내용들이었다. 그래서 2015년 6월 24일 국회 대정부질의에서 추미애 의원이 이에 관해 입장 표명을 요구하였으나, 끝까지 답변을 회피하였다. "책은 일반적 이론"…답변 '어물쩍'

  • 2015년 8월 25일에는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하여 만찬 건배사로 "총선 필승!"을 외쳤다. 이게 문제가 된 것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고위 공무원, 그것도 선거 주무 부처인 행정자치부의 장관으로서, 2016년 4월 13일까지 무려 여덟 달이나 남은 총선 얘기를 굳이 꺼내면서 특정 정당 의원들 앞에서 뜬금없이 한 발언이었기 때문. 본인은 단순한 덕담이었다고 변명하였지만 선거 중립 의무 위반 논란이 일었고, 야당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 장관의 해임을 촉구했다. #


3.4. 20대 총선 시기[편집]


  • 결국 2015년 8월 28일 '총선 승리' 건배사 발언과 관련해 야당이 탄핵소추를 추진하겠다고 나서자 야당에 대해 정치적 중립을 지킬 것이라 약속하고 그 일환으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진화에 나섰다.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던 야당도 이러한 그의 모습을 보며 탄핵소추를 그만두었는데, 상황이 진정되고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총선 불출마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번복하고 20대 총선에 출마했다. #

  • 선거운동 기간에는 박근혜 대통령을 예수에 비유하며 "피를 흘리며 예수가 십자가를 지듯 어려운 언덕을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서 그는 박 대통령에 의해 '배신의 정치' 낙인이 찍힌 유승민[14]을 겨냥하면서 이번 총선을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어둠의 세력과 대한민국을 수호하는 희망의 세력의 전쟁", "배신의 정치 대 의리의 정치의 전쟁'''"이라고 규정하기도 했다. #


3.5. 20대 국회의원 시기[편집]


  • 2016년 5월 24일에는 국회 ‘청문회 활성화법’(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기자회견을 열고 "의회·국회 독재를 가져올 위험성이 높다. 위헌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청와대가 국회 청문회 활성화법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검토하는 기류에 발맞춰 당선자 신분으로는 이례적으로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해 이같이 주장한 것. 하지만 11년 전인 2005년 4월, 노무현 정권 시절에는, 서울대 법대 교수 신분으로 국회 공청회에 참석하여 이와 정반대 입장에 선 것이 확인됐다. 당시 유사한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두고 열린 국회개혁특별위원회 공청회에서 "대통령제 정부 형태라도 국정운영 중심은 대통령에서 국회로 전환돼야 한다. 24시간 모든 (국회) 위원회에서 입법·인사·국정통제와 관련해 조사위원회와 청문회가 열려야 한다"고 진술한 것이다.[15] 물론 이에 대해서는 당연히 말 바꾸기 논란이 일어났다.

  • 2016년 5월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정부에 이송된 청문회 활성화법을 국회 임기만료 때까지 공포하지 않으면 폐기되느냐, 법률로 확정되느냐’는 것도 역시 큰 논쟁거리였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학자 시절 저서에서 ‘확정설’을 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그의 학문적 견해대로라면 국회 청문회 활성화법은 곧 확정될 수밖에 없고,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 궁지에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2016년 5월 24일 기자회견장에서 기자들이 이에 대해 묻자 “입장을 추후에 밝히겠다”며 답변을 피했다. #

  • 2016년 10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자 최순실이 저지른 범죄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의심되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가능한지를 두고 논란이 일고 있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해 그는 그의 저서 '헌법학원론'에서 "시간이 경과하면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우므로 대통령의 재직 중에 행해진 범죄행위에 대해서도 수사기관은 언제나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대표적인 친박의원으로 분류되는 그가 자신의 이 법학적 견해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보일지 주목되었는데, #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그때와 생각이 바뀐 것이 없다'라고 답변하였다고 한다. 다만, 이론적으로 수사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이고, 수사가 실제로 필요한지는 수사기관이 판단할 문제라고 했다고. #

  • 2018년 6월 보궐 및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궤멸적으로 참패하자, 초선의원들을 모아다가 '중진들 정계은퇴하라'는 이른바 '정풍운동'을 주도하는데, 6월 15일 그 대표로서 성명을 발표하였다. # 이에 대해 전여옥 전 의원은 "진박 인증하던 정종섭, 보수 궤멸의 진짜 책임자"라며 "역대급 철판"이라 평하였다.#

  • 2018년 6월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보수 그라운드 제로’ 토론회에서 자신은 "친박·비박 다 적용이 안되는 사람"이라며 운을 떼며 "박근혜 팔아 정치한 사람들 다 내려놔야 한다"고 강변하였다. 그러나 박근혜 집권기간 내내 그는 장관으로서나 의원으로서나 진박 중에서도 골수 진박임을 인증하려는 언행으로 일관해왔다. 심지어 선거 유세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복사기에 넣어 복사하면 나와 똑같다. 국가와 시대를 보는 철학이 완전히 일치한다"고 했을 정도.# 이외에도 이른바 '진박'임을 인증하느라 연출한 튀는 언행은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그 중 대표적으로 구설수에 오른 것이 이른바 진진박(眞眞朴) 인증샷. #1 #2 물론 본인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21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했고 실제로도 출마하지 않았다.


4. 여담[편집]


  • 로스쿨이 도입되기 훨씬 전부터 로스쿨 도입을 주장해 왔다. 뿐만 아니라 2011년에는 로스쿨 졸업생의 취업확대를 위해 ‘행정고시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법대생은법전을가지고다닌다신학도들이성경을가지고다니듯이신학도들이하나님의말씀을따라그품속에서행복하다면법대생은법전속에서우울하다대학을졸업할때까지데이트도잘할줄모르고남과대화를해도밑천이달린다입학동료들이국가와사회를논하고예술과철학을논하거나하다못해술집을돌아다니며진탕놀고있을때에도법대생은우울하다그모든것이자기와는무관한것이라고생각한다그러면서도남들이상종하기싫어할만큼자기고집을세운다학교에와서는모두사법시험을준비한다고하며다닌다당락에관계없이그러한분위기에소속이라도되어야법대생의신문에맞다고한다고시촌에는이러한생각을하며이제나저제나합격을바라며세월을보내는사람이많다결혼을한사람이나결혼을하지않은사람이나그저사법시험하나에매달려있다나이서른을넘기고마흔을넘긴다사회에서직장을구할수있는시기도놓쳐버렸다일자리를차지하고자경쟁적으로달려드는젊은이들을보면실력에서경쟁이될것같지도않다고시공부를하며점점시간이흐를수록외국어실력이나현실감감에서이들과경쟁하는것이두려워지고시험용지식외에는별로아는것이없어이와다른환경에적응하는데자신을잃어간다그러나추억은있다과거에는공부도잘했고사회에서출세한동료들보다는대학에더좋은성적으로합격했다그리고지금이라도한번만잘하면너희들과는비교가되지않을만큼나도출세를한다는생각을가지고있는사이에시간은속절없이간다그러다가도문득회의가생긴다어쩌다가내가이지경이되었는가지금이나이에사법시험을합격한다고무엇이크게바뀔것인가그리고는대학다닐때를생각한다법대를다닐때는사실법학에대하여깊이생각해보지않았다법학의기능이무엇이고법대의기능이무엇이며법대교수들이무엇을고민하는지는알려고도안했다사법시험위원인교수가누구냐어느교수가답안지쓰기에가장편리하게강의를해주느냐수업은점수를가장잘주는교수의과목과결석을해도점수를주는교수의과목을신청한다그리고시험공부에매달린다교수는내인생에중요하지않다교수가무슨생각을하든지나는시험만합격하면된다교수의철학은나와관계가없으며교수의수업방식이시험에도움이되지않는한나와는상관이없다법학도의직업은오로지법률가이다나머지직업은모두시시하다법률가이외의직업은머리가좀모자라는사람들이나가지는직업이다이런생각을가지고해마다신판이나오는수험서를껴안고시험공부를한다고하며방안에들어앉아있었다그런데대학시절내가시시하게만봤던사람들이이제는외국을나다니며사업을하고유명회사에들어가능력을발휘하며승진을하고있다매일보는신문에서언론인으로활약하고있고외교관이되어있고행정부의관료가되어있다정치계에서활약하는사람도있고종교가로서많은이들에게영향을주는사람도있다사회봉사에서보람을느끼는사람도있다교수가된사람문학가가된사람예술가가된사람이많은이들의얼굴이이제는옛날의그얼굴이아니다그런데나는여전히올해의신판수험서를구해서또밑줄을그어대고지겹게도보아온문제집을또넘기고있다두꺼워지기를경쟁하는수험서와수험생의약점을잘도노려책이나팔아먹으려는상술에대항조차못하고그저저자들에대해한바탕욕이나하고또자리에앉아이제나저제나합격을위하여읽고읽은그부분을또읽고있다
실제로 시 원문이 저렇게 띄어쓰기 없이 되어 있다. 시라고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지극히 사실주의적이기는 하다. 아마 많은 고시생들이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참 아이러니한 게 그렇다고 해서 출제위원인 교수가 그러한 상술에 벗어나도록 출제를 하는가? 따지면 또 그것은 아니다... 결국 이리저리 치이며 교수들한테는 영혼이 없는 수험법학을 한다고 욕처먹고 교과서 없는 내용을 출제해버려 수험가의 수험서를 구매하게 만들어버리는. 어떻게 보면 수험생만 고달픈 인생이 바로 고시생인 것이다.
아래는 띄어쓰기 버전.
법대생은 법전을 가지고 다닌다. 신학도들이 성경을 가지고 다니듯이 신학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그 품속에서 행복하다면 법대생은 법전 속에서 우울하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데이트도 잘 할 줄 모르고 남과 대화를 해도 밑천이 달린다. 입학 동료들이 국가와 사회를 논하고 예술과 철학을 논하거나 하다 못 해 술집을 돌아다니며 진탕 놀고 있을 때에도 법대생은 우울하다. 그 모든 것이 자기와는 무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남들이 상종하기 싫어할 만큼 자기고집을 세운다. 학교에 와서는 모두 사법시험을 준비한다고 하며 다닌다. 당락에 관계없이 그러한 분위기에 소속이라도 되어야 법대생의 신문에 맞는다고 한다. 고시촌에는 이러한 생각을 하며 이제나 저제나 합격을 바라며 세월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결혼을 한 사람이나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이나 그저 사법시험하나에 매달려 있다. 나이 서른을 넘기고 마흔을 넘긴다. 사회에서 직장을 구할 수 있는 시기도 놓쳐버렸다. 일자리를 차지하고자 경쟁적으로 달려드는 젊은이들을 보면 실력에서 경쟁이 될 것 같지도 않다. 고시공부를 하며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외국어 실력이나 현실감에서 이들과 경쟁하는 것이 두려워지고 시험용 지식 외에는 별로 아는 것이 없어 이와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데 자신을 잃어간다. 그러나 추억은 있다. 과거에는 공부도 잘했고 사회에서 출세한 동료들보다는 대학에 더 좋은 성적으로 합격했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한 번만 잘하면 너희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나도 출세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이에 시간은 속절없이 간다. 그러다가도 문득 회의가 생긴다. 어쩌다가 내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지금 이 나이에 사법시험을 합격한다고 무엇이 크게 바뀔 것인가. 그리고는 대학 다닐 때를 생각한다. 법대를 다닐 때는 사실 법학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법학의 기능이 무엇이고 법대의 기능이 무엇이며 법대교수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는 알려고도 안했다. 사법시험위원인 교수가 누구냐 어느 교수가 답안지 쓰기에 가장 편리하게 강의를 해주느냐 수업은 점수를 가장 잘 주는 교수의 과목과 결석을 해도 점수를 주는 교수의 과목을 신청한다. 그리고 시험공부에 매달린다. 교수는 내 인생에 중요하지 않다. 교수가 무슨 생각을 하든지 나는 시험만 합격하면 된다. 교수의 철학은 나와 관계가 없으며 교수의 수업방식이 시험에 도움이 되지 않는 한 나와는 상관이 없다. 법학도의 직업은 오로지 법률가이다. 나머지 직업은 모두 시시하다. 법률가 이외의 직업은 머리가 좀 모자라는 사람들이나 가지는 직업이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해마다 신판이 나오는 수험서를 껴안고 시험공부를 한다고 하며 방안에 들어앉아있었다. 그런데 대학시절 내가 시시하게만 봤던 사람들이 이제는 외국을 나다니며 사업을 하고 유명 회사에 들어가 능력을 발휘하며 승진을 하고 있다. 매일 보는 신문에서 언론인으로 활약하고 있고 외교관이 되어있고 행정부의 관료가 되어있다. 정치계에서 활약하는 사람도 있고, 종교가로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도 있다. 사회봉사에서 보람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교수가 된 사람, 문학가가 된 사람, 예술가가 된 사람. 이 많은 이들의 얼굴이 이제는 옛날의 그 얼굴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올해의 신판수험서를 구해서 또 밑줄을 그어대고 지겹게도 보아온 문제집을 또 넘기고 있다. 두꺼워지기를 경쟁하는 수험서와 수험생의 약점을 잘도 노려 책이나 팔아먹으려는 상술에 대항조차 못하고 그저 저자들에 대해 한바탕 욕이나 하고 또 자리에 앉아 이제나 저제나 합격을 위하여 읽고 읽은 그 부분을 또 읽고 있다.

  • 서울대학교 교수 시절 수업시간에 "내가 한국의 칸트가 아니라 칸트가 독일의 정종섭이다" 라는 파천황적인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소위 정칸트 발언은 서울대 법대생 사이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으며, 법대가 없어진 지금도 인문대나 사회대 학생들 사이에서 전설처럼 내려온다. 국회의원 당선 이후에는 스누라이프에서도 부정적인 행보를 보일 때마다 빈정대는 의미로 정칸트라고 불리우고 있다.


파일:external/img.focus.kr/2016040200193759514_1.jpg
  •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유승민, 류성걸, 정종섭의 공천파동으로 논란이 되었을 때, 이 세 사람이 경북고등학교 제57회 동창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화제가 되었다. 특히 류성걸과 정종섭은 2학년 때 같은 반이기도 했는데, 20대 총선에서 무소속 vs 새누리당으로 진검승부를 벌였다.

  • 서예에 능하며,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의 명사서예전에 출품하였다.


5. 소속 정당[편집]


소속
기간
비고

[[무소속|
무소속
]]

2014 - 2016
정계 입문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6 - 2017
입당

[[자유한국당|
파일:자유한국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17 - 2020
당명 변경

[[미래통합당|
파일:미래통합당 흰색 로고타입.svg
]]

2020 -
합당[16]

파일:국민의힘 흰색 로고타입.svg

2020 - 현재
당명 변경

6. 선거 이력[편집]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대구 동 갑

[[새누리당|
파일:새누리당 흰색 로고타입.svg
]]

36,017 (49.06%)
당선 (1위)
초선

역대 선거 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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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둘러보기[편집]






[1] 음력 5월 19일.[2] #[3] 사정공파(司正公派)-쌍봉공계(雙峯公系) 31대 섭(燮) 항렬. 인조 때 금정도 찰방(金井道察訪, 종6품)을 지낸 정극후(鄭克後)의 14대손이다.[4] #. 자는 서원(瑞瑗).[5] 서정대(徐正大)의 딸이다.[6] 동기생으로 권오을, 유승민, 주성영, 류성걸이 있다.[7] 학위논문명 : 憲法의 正當性에 關한 硏究 : C.Schmitt理論에 대한 批判을 中心으로 (1986, 지도교수 허영)[8] 학위논문명 : 代議制에 관한 批判的 硏究 (1989, 지도교수 허영)[9] 허 교수가 모교 경희대학교에서 연세대학교로 이직하는 바람에 석사학위논문 지도교수가 윤명선 교수로 바뀌었고, 박사과정은 연세대로 진학하게 되었다고 한다.[10] 군 생활 절반인 1년반을 대학원에서 재학한 문창극 국무총리 후보보다 훨씬 더 긴 기간이다.[11] 특히 강원도 화천과 경기도 용인은 '위수지역'에 해당하므로, ‘위수지역 이탈’의 범죄를 범한 것일 수도 있었다.[12] 정종섭, 헌법학원론, 2015년판, 1050페이지.[13] 정종섭, 헌법학원론, 2015년판, 1246페이지.[14] 경북고등학교 동기동창이기도 하다.[15] 당시 김희정 한나라당 의원이 "조사청문회 대신 국정감사 확대가 효율적이지 않느냐"고 묻자, "우선 조사청문회를 보다 더 활성화시켜서 수시적으로 하면 국정감사를 안 해도 될 만큼 성과를 얻는다고 본다"고 답했다. 그는 "제도의 원리와 원칙, 이념을 인식하면 그 답은 아주 쉽게 찾아진다"며 이렇게 설명했다.[16]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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