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채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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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채봉
丁埰琫
[1]


출생
1946년 11월 3일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
사망
2001년 1월 9일[2] (향년 54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

대한민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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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

본관
창원 정씨 (昌原 丁氏)[3]
직업
동화 작가, 수필가, 시인
학력
광양농업고등학교 (졸업)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 / 학사)
종교
불교가톨릭 (세례명: 프란치스코)
가족
아내 김순희[4]
아들 정승태[5], 딸 정리태[6]
활동 기간
1973 ~ 2001년
장르
, 아동문학, 수필

1. 개요
2. 생애



1. 개요[편집]


대한민국동화 작가, 수필가, 시인.


2. 생애[편집]


1946년 11월 3일 전라남도 순천시 해룡면 신성리에서 아버지 정용석(丁容錫, 1922 ~ ?. 9. 25)과 어머니 양천 허씨 허정순(1927 ~ 1948. 9. 6)[7] 사이에서 무녀독남으로 태어났다. 1948년 1월에 일가족과 함께 옆동네인 전라남도 광양시로 이주하였고, 이후 그 곳에서 성장하였다. 3살 때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으며, 5살 때는 아버지도 일본으로 이주하여 그 뒤 소식이 끊겨 정채봉은 줄곧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광양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재학 중이던 1973년 동화 《꽃다발》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데뷔했다. 1975년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1978년부터 2001년까지 월간 《샘터》를 발행하는 샘터사에서 편집부장, 주간, 편집이사 등으로 근무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물에서 나온 새》, 《오세암》, 《스무살 어머니》, 《생각하는 동화》(전 7권) 등이 있다. 불교를 신봉하는 가정에서 자랐지만, 1980년 광주민중항쟁이 전두환 독재 정권에 의해 잔혹하게 진압된 이후, 정신적인 방황에 시달리면서 가톨릭 신앙을 갖게 된 다양한 종교 체험은 그의 작품이 불교와 가톨릭의 영향을 동시에 받게 했다. 그는 대한민국의 성인동화 장르를 크게 개척한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

1998년부터 모교인 동국대학교에 겸임교수로 출강하기도 했으나 그해 간암 선고를 받아 투병생활을 시작했고, 2001년 1월 9일 결국 향년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사후 10년째인 2011년에 그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정채봉 문학상이 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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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압해정씨대동보 16권 88쪽에는 丁埰으로 등재되어 있다.[2] 음력 2000년 12월 15일.[3] 대사성공파(大司成公派)-월천공계(月川公系) 24세 ○채(埰) 항렬.[4] 1951년 1월 8일생. 김해 김씨 김재원(金才元)의 딸이다.[5] 丁承泰. 1976년 2월 4일생.[6] 丁梨泰. 1979년 1월 4일(음력 1978년 12월 6일)생. 서울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서울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를 졸업하고 마찬가지로 동화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7] 허봉구(許奉九)의 딸이다.